All Chapters of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Chapter 401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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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구승훈이 그 자리에 굳어졌다.기회를 줬다고? 언제…….‘아…….’지난번에 보경시에서 강하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송유라를 기소하게 내버려두면 생각해 보겠다던.곧 심장이 터질 듯 후회가 구승훈을 꽉 채웠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왜 그게 송유라를 향한 원한이라고만 생각했을까.왜 단 한 번도, 그게 자신을 향한 마지막 한 가닥의 기대라곤 생각을 못 했을까.그러고 보니 그 전에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송유라를 멀리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강하리.그러가다 결국, 송유라를 내버려두면 생각해 보겠다고.그러나 자신은 어땠던가.“멀리해라”가 “내버려 둬라”가 되는, 그 차이도 못 알아채고.그게 점점 희미해지는 강하리의 기대와 마음인 줄도 모르고.벼랑끝에 선 기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협의서를 내밀며 고소 취하를 들먹이지 않았던가.“그 얘긴 그만하고, 얼른 밥 먹어요 우리.”휘몰아치는 감정을 먼저 추스린 건 강하리였다.그만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상처투성이가 되었다가 아문 가슴은 더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 법.살을 깎아내는 고통으로 겨우 벗어난 악연인데. 오직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은 이제 막 시작했는데.구승훈에게서 미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이제는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사랑했던 만큼 컸던 미움마저 빠져나간, 텅 빈 방 안 같은 마음.거기에 다시 채워지는 것이 자신을 사무치게 괴롭혔던 감정이고 싶지는 않았다.묵묵부답이던 구승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그렇게 그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어떤 가정식 레스토랑에 마주 앉게 되었다.강하리가 말없이 메뉴를 고르고 웨이터를 불렀다.주문한 요리들을 위에터에게 읊는 강하리의 목소리에 구승훈의 눈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다 기억하네.”느닷없는 구승훈의 목소리에 강하리가 벙찐 표정이 되었다가, 곧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물 흐르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구승훈이 즐겨 먹는 요리로만 주문했던 것.“네 뭐, 하도 습관이 돼서.”구승훈과 외식할 때마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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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힐끔.또 힐끔.불안에 찬 강하리의 눈길이 자꾸자꾸 구승훈을 향한다.반면 당사자는 운전대를 잡은 채, 초 집중 모드로 앞쪽만 주시하는 중.“뭘 그렇게 흘겨봐. 앞으로 오랫동안 더 봐야 할 얼굴 싹 다 닳을라.”열 다섯번째인가로 강하리가 이쪽을 흘끔거리는 순간, 구승훈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대체 무슨 속셈인가요?” 강하리가 냉랭하게 되물었다.기존의 수법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구승훈의 행보에, 경계심으로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있는 그녀였다.“그냥 호텔에 데려다주는 것 뿐이야. 약속했잖아. 털끝 하나 안 건드린다고.”온통 불신으로 가득 찬 강하리의 눈초리에 구승훈이 말을 이었다.“뭔데 그 눈빛은. 내가 여자에 미친 놈도 아니고.”“그러기엔 전과가 너무 화려하셔서요.”구승훈이 흥, 콧방귀를 뀌었다.“무척이나 그러고 싶다만, 이제부터 너한테 강박은 안 하려고. 나도 기본 매너 쯤은 있는 놈이라고.”퍽이나.강하리가 눈을 희번득였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별 탈 없이, 구승훈의 차가 강하리가 묵고있는 호텔 앞에 멈춰섰다.안도의 숨을 내 쉬며 강하리가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그 뭐야. 내가 호텔 예약을 안 했거든.”……어쩐지, 그러면 그렇지.“예약해드릴게요. 설 연휴 기간이라 빈 방 많을 겁니다.”“하룻밤만 재워주면 안 돼?”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음성에 강하리가 하, 헛웃음을 터트렸다.“얼굴값 좀 하시죠.”냉랭하게 한 마디를 남긴 강하리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의외로 잡거나 쫓아가지 않는 구승훈. 대신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붙였다.방으로 돌아온 강하리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욕실에 들어갔다.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핸드폰에 메시지 한 장이 와 있었다.[그래 뭐. 맞아. 나 같은 건 이 한겨울 밤에 얼어 죽어도 싸지.]낯선 번호였지만 발신자가 누구인지는 발 뒤꿈치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습, 짧은 숨을 들이쉰 강하리가 창가로 다가갔다.휘오오오-.창 밖으로 매섭게 몰아치는 북풍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지나갔다.아래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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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강하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슴속에서 모든 감정이 북받쳐올라 뒤엉켰다.하지만 그녀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 구승훈이 물러났다.그러더니, 강하리를 이끌고 호텔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이윽고 구승훈이 멈춰선 한 방 앞, 강하리가 움찔했다.그건 다름아닌 그녀가 묵고있는 방이었다.“설마 프런트 직원과 짜고친 거예요?”구승훈이 웃으며 카드키를 가져다 댔다.띠리릭!경쾌한 울림과 함께 문이 그대로 열렸고, 구승훈이 굳어진 강하리를 이끌고 방 안에 들어섰다.강하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당장 내 방에서 나가요!”“왜 이래. 네가 들어와서 자라고 했잖아.”물고 늘어지기를 시전하는 구승훈.대답 대신, 침대 머리맡에 놓였던 베개가 날아왔다.웃으며 베개를 받아쥔 구승훈이 도로 침대에 놓으며 말했다.“소파에서 잘게.”“아닙니다. 내가 나갈게요 내가 나가.”돌아서서 나가려는 강하리를 구승훈이 다시 잡았다.“급하긴. 털끝 하나 안 건드린단 약속, 아직 유효하다고.”차라리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라.강하리가 불신과 분노로 찬 눈길로 구승훈을 노려보았다.“그냥 옆에만 있고 싶을 뿐이야. 물론-.”길게 말을 늘여뜨린 구승훈이 반 박자 쉬었다가 은근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원한다면 오늘 밤 이 몸을 너한테 줄 수도 있고.”얼굴이 확 달아오른 강하리. 애꿎은 베개가 다시 허공을 가로질러 구승훈에게 날아갔다.“이 변태가! 꺼져!”“농담이야 농담.”가볍게 다시 베개를 받아쥔 구승훈.“나 이 옆 방이야. 열두 시까지만 여기 있으면서 너랑 보름달 보다가 사라져 줄게. 응?”강하리의 의심의 눈초리가 잔뜩 치켜올랐다.“정말 방 예약한 거예요?”증명이라도 하듯, 구승훈이 카드키 하나를 또 꺼내들었다.“씻고 올게. 기다려.”강하리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 구승훈이 방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그 통에 강하리의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아니 됐어요”가 갈 길을 잃고 입가에서 맴돌았다.벙찐 얼굴로 구승훈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던 강하리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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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당신이 왜 하리 방에…….”주해찬은 어지간히 놀란 모양인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물론 그건 구승훈도 마찬가지였지만.“내가 할 소린데. 해찬 도련님은 이 야밤에 어쩐 일이실까.”“하리한테 사과하러 온 겁니다.”“이 한밤중에? 시커먼 속이 다 보이는데 지금 그걸 믿으라고?”“속 시커먼 건 그쪽이고!”강하리가 다가오기도 전, 둘은 이미 손찌검이 붙었다.날아오는 주해찬의 주먹을 반쯤 피하던 구승훈이 움찔했다.바로 뒤쪽에선 아연실색한 얼굴을 한 강하리가 달려오고 있었고.주먹은 그와 강하리를 가로지르는 궤도로 날아오고 있었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승훈이 그대로 우뚝 멈췄다.퍼억!주먹이 무서운 속도로 구승훈의 안면에 꽂혔다.“꺅!”비틀거리는 구승훈. 강하리가 비명을 질렀고, 주해찬도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구승훈과 주먹질이 오간 적 있는 주해찬인지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단 걸 잘 알고있었다.그런데 왜…….그제야 구승훈의 어깨너머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강하리가 보였다.경악과 공포로 치켜뜬 그녀의 두 눈도.아…….“……고의로 그런 게 아니야, 하리야.”얼빠진 얼굴이 된 주해찬의 입에서 짧은 변명이 튀어나왔다.강하리의 관자놀이가 툭툭 튀었다.“알아요. 선배, 늦었으니까 일단 오늘은 그냥 가 줘요.”낯빛이 확 바뀐 주해찬이 다시 입을 벙긋거렸지만.이쪽을 지그시 응시하는 강하리의 눈길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주해찬이 돌아간 뒤.구승훈이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소파에 걸터앉아 있었고.“미친 거 아니에요? 왜 안 피해요?”부어오른 구승훈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며, 강하리가 구승훈을 노려보고 있었다.“……못 피한 거야.”겨우 한 마디 뱉은 구승훈. 그게 강하리의 화를 더 돋구었다.“개뿔! 그쪽 피지컬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욕을 뱉은 강하리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구승훈의 다리를 콱 걷어찼다.구두 굽이 아닌 맨발이라 별 대미지는 없었지만, 구승훈의 표정은 더 구겨졌다.“오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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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가, 강하리? 왜... 왜 그래, 하리야? 응?”갑자기 깬 강하리 때문에 한 번 놀라고,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당황함과 걱정, 놀람으로 더듬거리는 구승훈의 목소리.구승훈의 목소리에 강하리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급급히 고개를 돌려 눈물을 쓱 훔쳤다.“열두 시가 지났네요. 얼른 가요.”시간을 확인하며 한 마디 던지고는, 노트북을 내려놓고 황급히 욕실로 뛰쳐들어갔다.찬 물을 틀어 한참 동안이나 세수를 했지만, 눈시울은 여전히 불그스름했다.너무나도 생생했다. 꿈 속에서 심연으로 내리꽂히던 추락감과 출렁이는 파도, 입과 코로 마구마구 밀려드는 바닷물에 숨이 콱 막혀오던 그 느낌까지.눈을 뜨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듯한 공포는 사라졌지만.악몽 같은 그 날의 기억이 또 뇌리를 엄습했다.바다 추락 사건 이후, 종종 자신을 괴롭히던 악몽이었다.떨쳐낼래야 떨쳐낼 수가 없는 그 악몽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눈을 뜬 순간, 꿈의 끝자락에 보인 구승훈의 얼굴에, 그 끔찍한 꿈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찬 물로 얼굴을 몇 번 더 문지른 강하리가 몸을 일으키자, 욕실 문 앞에 서 있는 구승훈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한껏 좁혀진 구승훈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져 있었다.“…아니에요. 아무것도.”“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무것도 말해주기 싫은 거야?”구승훈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진짜 별거 아니에요. 들어가 봐요.”구차하기 짝이 없는 변명.사실 변명이랄 것도 없이, 강하리의 표정만 봐도 말하기가 싫단 걸 알아챌 수 있는 구승훈이었다.동시에 화가 살짝 치밀었다아니, 오늘 분위기 좋았잖아.밥도 같이 먹고, 머리도 말려주게 했고, 방 안에 있게도 해 줬잖아.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건데. 대체 왜.“하리야.”화를 꾹 누른 채, 구승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또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묻지 마요, 좀.”“그럼 잘 됐네. 어차피 걱정되던 차였는데. 나 안 가.”배 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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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오면 강하리만 난감할 뿐이란 걸 잘 알 텐데.”구승훈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온다.“집사람들 단속이나 잘 좀 하고 찾아오든가. 아니면 멀찍이 떨어져 있지 좀?”“그러는 구 대표님은 집안 사람들 허락 받고 이리 들러붙는 겁니까?”주해찬이 차가운 시선으로 맞받아쳤다. 구승훈이 움찔했다.그 모습에 냉소를 짓는 주해찬.“아니면, 집안 사람들과 하리를 대면시킬 생각조차 안 해 보신 겁니까?”구승훈의 표정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이렇게 들러붙는 목적이 결혼 생각조차 없는 애인이라니, 가소롭기 짝이 없군요.”“입 조심해라.”성난 야수를 닮은 구승훈의 으르렁거림이 잇새로 새어나왔다.“난 구 대표님과 다릅니다. 하리를 위해서라면 곁에 꼭 붙어있을 수도 있고-.”주해찬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영영 멀찍이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쪽은 그게 안 되잖아요.”“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포기하겠다는 뜻인가?”구승훈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강하리의 방 문을 두드렸다.한 참이나 두드렸지만 잠잠하기만 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거의 동시에, 두 남자의 머릿속에 쎄한 느낌이 자나갔다. 두 미간이 동시에 좁아졌다.“1206번 손님 찾으러 오셨어요? 아침 일찍 외출하셨습니다.”지나가던 호텔 직원 하나가 일러주었다.“몇 시 쯤에 나갔습니까?”주해찬이 급급히 또 물었다.“글쎄요. 대여섯 시 쯤으로 기억합니다만.”구승훈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일곱 시 즈음부터 강하리의 방 문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한 시간이나 더 일찍 나가버렸을 줄이야.한 동안, 두 남자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아침 드시겠습니까?”손에 든 도시락을 내미는 주해찬.“너나 많이 드세요.”잔뜩 부아가 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남긴 채, 구승훈이 휙 돌아서 멀어져갔다.사실 강하리의 이른 외출은 두 남자를 피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밤샘 작업을 마치고 바로 호텔을 나선 것 뿐.회의장에라도 나가보려고 그 쪽으로 가다가, 모닝 운동을 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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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순식간에 구승훈이 뒤로 빠졌다.노기에 찬 눈길로 구승훈을 노려보는 강하리.“미쳤어요? 방키 놔두고 당장 나가요!”차가운 음성에도 아랑곳 없이 구승훈이 픽 웃었다.“네가 준 거잖아. 왜 나한테 뭐라 하는데.”호주머니에서 나온 그의 손에는 1204라고 적힌 방 키가 들려있었다.“인심 썼다. 여기 잠자리가 불편하면 내 방에 가서 자도록.”그리고, 아니나 다를가, 베개가 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꺼지라고!”잽싸게 베개를 받아든 구승훈이 조심히 침대맡에 내려놓았다.이쯤하면 목적은 이룬 셈, 치고 빠질 때가 되었다.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강하리가 걱정돼서 와 본 것 뿐이니까.딴 마음은 없었다. 음, 없는 거다.“잘 자. 좋은 꿈 꿔.”나지막이 속삭이는, 성X경 뺨치는 꿀 중저음과 함께 강하리를 한 번 꼬옥 안아주고는, 그녀가 어쩔 새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멍해진 표정으로 강하리가 구승훈이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았다....이틀 간의 준비 끝에, 정상회담이 성대한 막을 올렸다.세련된 옷차림의 강하리가 회의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박근형 교수의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그 모습은 실시간 방송을 타고 온 세상에 전해졌고 세간의 감탄을 자아냈다.[정삼회당 최강 미모 통역사]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한 타이틀.생방송으로 화면에 비친 강하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있었다.‘잘 하네, 강하리.’후우, 구승훈이 빨았던 담배 한 모금을 뱉었다.찬란한 빛이 나는 강하리였고, 온 회의장이 그녀의 메인 스테이지였다.하지만 구승훈은 마냥 기쁠 수가 없었다.높이 날아오를 수록 그와는 점점 멀어질 강하리니까.한 순간, 그녀가 너무 잘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쳐들었지만.강하리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단 걸 잘 알고있는 구승훈이었다.성황리에 막을 내린 정상회담 후, 어김없이 축하연이 열렸다.강하리가 극구 참석을 사양했지만, 박근형의 엄근진 모드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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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뭐 하는 짓이에요!”“보면 몰라? 춤 추러.”가까스로 신형을 멈춰세운 강하리가 구승훈의 발을 콱 밟았다.“쓰읍!”짧은 들숨이 저절로 쉬어진 구승훈, 대신 더 거칠게 강하리의 허리를 끌어당겼다.“이 씹, 또 밟기만 해 봐.”원하신다면야.강하리가 더 힘을 실어 또 내리 밟았다.구승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그만 밟으라고! 이 독한 여자야!”“이것부터 놓으시죠! 양아치 씨!”“놓으면 주해찬과 붙어서 알콩달콩 춤 출 거잖아!”다급한 마음에 본심이 나와버렸다.강하리의 입매가 한껏 굳어졌다.“안 될 거라도 있나요?”“당연히 안 되... 아니야. 되는데.”급히 말을 바꾸는 구승훈.“그러지 마. 부탁이야.”살짝 비참하게까지 들리는 구승훈의 음성이었다.“...안 춥니다. 안 춰요! 선배랑도, 그쪽이랑도! 됐어요?”구승훈의 팔에서 빠져나온 강하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연회장 안쪽으로 사라졌다.그 뒷모습을 말없이 노려보던 구승훈은 한 참이 지나서야 쩔뚝거리며, 강하리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미안해요 선배.”주해찬의 곁으로 다가간 강하리가 사과의 눈빛을 보냈다.한숨을 푹 내 쉰 주해찬은, 더이상 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어갔고.강하리의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도 점점 더 늘어갔다.처음에는 한 둘씩 인사하러 오던 데로부터, 급기야는 무리를 지어 강하리를 에워싸고 찬사를 무더기로 쏟아냈다.일찍부터 외교부의 될성부른 후지기수란 소문이 돈 데다, 오늘 강하리의 활약을 모두가 직관한 터라 너도나도 앞다투어 강하리의 주위에 몰려들어 잔을 부딪쳤다.강하리는 서서히 머리가 어지러워나기 시작했다.건배라고 해 봤자 조금씩 홀짝대는 정도였지만, 건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지라 벌써 위스키 잔을 세 번이나 새 걸로 바꾼 강하리였다.결국 잔을 내려놓고 세면실을 향해 걸어간 강하리.그 뒷모습을 응시하는 구승훈의 미간이 좁혀졌다.찬 물로 얼굴을 씻어낸 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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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쓰라린 고통이 찾아온 건, 강하리의 외침소리가 구승훈의 귀에 들어온 뒤었다.동시에 구승훈의 반대쪽 손이 번개같이 날아가 사내의 손에 든 비수를 낚아챘다.“말해. 누가 시켰어.”“구승훈, 내가 누군지나 알아?”사내가 표독스런 눈길로 구승훈을 응시했다.“내 알 바 아니고. 이쪽이었지?”“끄아악!”강하리에게 닿았던 손이 비수에 관통된 사내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세면실에 울려퍼졌다.무슨 일인가 싶어 세면실 밖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단숨에 사내를 쳐 기절시킨 구승훈의 야수 같은 눈길이, 파랗게 질린 고이선을 향했다.“다신 이러지 말라고 분명 경고했을 텐데.”“구, 구 대표님, 유라 지금 무슨 꼴인지나 아세요? 정신이 반쯤 나가서, 온종일 한 마디만 중얼거려요. 대표님이 지켜줄 거라고요! 지금 이 순간까지도요! 저 천박한 년이 대체 뭐라고 유라를 정신병원에까지 넣으신 거에요? 네?”떨리는 목소리로 주절이는 고이선의 말에 구승훈이 움찔했다.다른 게 아니라, 답을 얻어서였다.고이선이 스스로 주제넘는 짓을 또 벌인 건 아닐 테고.누군가가 부추긴 게 분명했다.고이선이야 그냥 제 딴에는 베프를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겠지만.그 머리에선 이런 악독한 계략이 나올 수가 없었다.“머리가 나쁘니까 별 멍청한 짓을 다 도맡아 하는군.”구승훈이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떠는 고이선을 한 켠으로 밀어버렸다.그떄 마침 심준호가 뛰어들어왔고, 고이선이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그에게 허둥지둥 뛰어갔다.“삼촌! 삼촌! 저 좀 구해줘요! 저 천한 년이...”“닥쳐!”심준호가 서늘한 눈길로 고이선을 흘끔 쳐다보고는 뒤에 따라온 경비원들에게 손짓했다.“당장 경찰서로 데려가요. 둘 다.”“사... 삼촌?”고이선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한 줄기 희망이 그대로 폭삭 무너졌다.“삼촌!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 나 이선이라고요! 삼촌 조카딸 고이선! 이거 놔아아악!”고이선의 비명이 멀어졌고, 축 늘어진 사내도 끌려나갔다.심준호의 미간에 깊은 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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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하리야! 괜찮냐?”헐레벌떡 달려온 박근형 교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강하리를 위아래로 훑었다.“저 괜찮아요, 교수님.”강하리의 확답을 들은 박근형은 안도의 표정이 되었다가, 곧 이어 분개했다.“정신 나간 놈! 여기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교수님, 걱정 마세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심준호가 서늘한 음성으로 거들었다.“외교부의 치욕입니다. 바로 데려가세요.”진태형 역시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소문의 터지면 외교부의 위상에 큰 타격을 줄 게 뻔했으니 말이다.진태형은 옆의 사람에게 몇 마디 분부한 뒤,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 양, 이번 일은-.”“소문내지 않을테니 걱정 마세요 부장님. 저 역시 외교부 사람이니까요.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안 합니다.”“정말 미안해요. 꼭 제대로 처리해서 하리 양에게 알려줄게요.”진태형은 미안함 가득 담아 사과하고는 급급히 자리를 떴다.이번 일로 한동안 바쁘게 보낼 건 확정된 것 같았다.연회장 휴식실.사건을 일으킨 두 사람을 경찰에 넘긴 뒤, 심준호가 찾아왔다.“많이 놀랐죠?”아까의 차가운 얼굴은 오간데 없고, 걱정 가득한 눈길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조금은요.”방금 같은 순간에 안 놀랐다면 거짓말일 터.심준호의 눈에 안쓰러운 빛이 스쳐지났다.왜 자꾸 강하리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죄가 있다고.“그 두 사람, 반드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예요.”강하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진통제라도 갖다줄까?”심준호의 눈길이 한껏 어두운 얼굴로 묵묵히 앉아있는 구승훈에게 향했다.“네가 안 왔다면 좀 괜찮았을지도.”부르퉁한 소리에 심준호가 눈을 희번득였다.‘지금 저게 무슨 뜻이지? 강하리와 단둘이 있을 기회가 날아갔다고 나무라는 거?에라이, 더러워서 내가 간다. 더러워서.’심준호가 나갔고, 휴식실에는 구승훈과 강하리 단 둘이 남게 되었다.한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아파요? 의사가 남기고 간 진통제 있는데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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