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403화

작가: 재인
강하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속에서 모든 감정이 북받쳐올라 뒤엉켰다.

하지만 그녀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 구승훈이 물러났다.

그러더니, 강하리를 이끌고 호텔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이윽고 구승훈이 멈춰선 한 방 앞, 강하리가 움찔했다.

그건 다름아닌 그녀가 묵고있는 방이었다.

“설마 프런트 직원과 짜고친 거예요?”

구승훈이 웃으며 카드키를 가져다 댔다.

띠리릭!

경쾌한 울림과 함께 문이 그대로 열렸고, 구승훈이 굳어진 강하리를 이끌고 방 안에 들어섰다.

강하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 내 방에서 나가요!”

“왜 이래. 네가 들어와서 자라고 했잖아.”

물고 늘어지기를 시전하는 구승훈.

대답 대신, 침대 머리맡에 놓였던 베개가 날아왔다.

웃으며 베개를 받아쥔 구승훈이 도로 침대에 놓으며 말했다.

“소파에서 잘게.”

“아닙니다. 내가 나갈게요 내가 나가.”

돌아서서 나가려는 강하리를 구승훈이 다시 잡았다.

“급하긴. 털끝 하나 안 건드린단 약속, 아직 유효하다고.”

차라리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라.

강하리가 불신과 분노로 찬 눈길로 구승훈을 노려보았다.

“그냥 옆에만 있고 싶을 뿐이야. 물론-.”

길게 말을 늘여뜨린 구승훈이 반 박자 쉬었다가 은근한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한다면 오늘 밤 이 몸을 너한테 줄 수도 있고.”

얼굴이 확 달아오른 강하리. 애꿎은 베개가 다시 허공을 가로질러 구승훈에게 날아갔다.

“이 변태가! 꺼져!”

“농담이야 농담.”

가볍게 다시 베개를 받아쥔 구승훈.

“나 이 옆 방이야. 열두 시까지만 여기 있으면서 너랑 보름달 보다가 사라져 줄게. 응?”

강하리의 의심의 눈초리가 잔뜩 치켜올랐다.

“정말 방 예약한 거예요?”

증명이라도 하듯, 구승훈이 카드키 하나를 또 꺼내들었다.

“씻고 올게. 기다려.”

강하리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 구승훈이 방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통에 강하리의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아니 됐어요”가 갈 길을 잃고 입가에서 맴돌았다.

벙찐 얼굴로 구승훈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던 강하리가 한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04화

    ”당신이 왜 하리 방에…….”주해찬은 어지간히 놀란 모양인지,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물론 그건 구승훈도 마찬가지였지만.“내가 할 소린데. 해찬 도련님은 이 야밤에 어쩐 일이실까.”“하리한테 사과하러 온 겁니다.”“이 한밤중에? 시커먼 속이 다 보이는데 지금 그걸 믿으라고?”“속 시커먼 건 그쪽이고!”강하리가 다가오기도 전, 둘은 이미 손찌검이 붙었다.날아오는 주해찬의 주먹을 반쯤 피하던 구승훈이 움찔했다.바로 뒤쪽에선 아연실색한 얼굴을 한 강하리가 달려오고 있었고.주먹은 그와 강하리를 가로지르는 궤도로 날아오고 있었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승훈이 그대로 우뚝 멈췄다.퍼억!주먹이 무서운 속도로 구승훈의 안면에 꽂혔다.“꺅!”비틀거리는 구승훈. 강하리가 비명을 질렀고, 주해찬도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구승훈과 주먹질이 오간 적 있는 주해찬인지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단 걸 잘 알고있었다.그런데 왜…….그제야 구승훈의 어깨너머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강하리가 보였다.경악과 공포로 치켜뜬 그녀의 두 눈도.아…….“……고의로 그런 게 아니야, 하리야.”얼빠진 얼굴이 된 주해찬의 입에서 짧은 변명이 튀어나왔다.강하리의 관자놀이가 툭툭 튀었다.“알아요. 선배, 늦었으니까 일단 오늘은 그냥 가 줘요.”낯빛이 확 바뀐 주해찬이 다시 입을 벙긋거렸지만.이쪽을 지그시 응시하는 강하리의 눈길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주해찬이 돌아간 뒤.구승훈이 어두운 얼굴을 한 채 소파에 걸터앉아 있었고.“미친 거 아니에요? 왜 안 피해요?”부어오른 구승훈의 얼굴에 약을 발라주며, 강하리가 구승훈을 노려보고 있었다.“……못 피한 거야.”겨우 한 마디 뱉은 구승훈. 그게 강하리의 화를 더 돋구었다.“개뿔! 그쪽 피지컬을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욕을 뱉은 강하리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구승훈의 다리를 콱 걷어찼다.구두 굽이 아닌 맨발이라 별 대미지는 없었지만, 구승훈의 표정은 더 구겨졌다.“오늘 내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05화

    “가, 강하리? 왜... 왜 그래, 하리야? 응?”갑자기 깬 강하리 때문에 한 번 놀라고,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당황함과 걱정, 놀람으로 더듬거리는 구승훈의 목소리.구승훈의 목소리에 강하리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급급히 고개를 돌려 눈물을 쓱 훔쳤다.“열두 시가 지났네요. 얼른 가요.”시간을 확인하며 한 마디 던지고는, 노트북을 내려놓고 황급히 욕실로 뛰쳐들어갔다.찬 물을 틀어 한참 동안이나 세수를 했지만, 눈시울은 여전히 불그스름했다.너무나도 생생했다. 꿈 속에서 심연으로 내리꽂히던 추락감과 출렁이는 파도, 입과 코로 마구마구 밀려드는 바닷물에 숨이 콱 막혀오던 그 느낌까지.눈을 뜨는 순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듯한 공포는 사라졌지만.악몽 같은 그 날의 기억이 또 뇌리를 엄습했다.바다 추락 사건 이후, 종종 자신을 괴롭히던 악몽이었다.떨쳐낼래야 떨쳐낼 수가 없는 그 악몽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눈을 뜬 순간, 꿈의 끝자락에 보인 구승훈의 얼굴에, 그 끔찍한 꿈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찬 물로 얼굴을 몇 번 더 문지른 강하리가 몸을 일으키자, 욕실 문 앞에 서 있는 구승훈의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한껏 좁혀진 구승훈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져 있었다.“…아니에요. 아무것도.”“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무것도 말해주기 싫은 거야?”구승훈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았다.“진짜 별거 아니에요. 들어가 봐요.”구차하기 짝이 없는 변명.사실 변명이랄 것도 없이, 강하리의 표정만 봐도 말하기가 싫단 걸 알아챌 수 있는 구승훈이었다.동시에 화가 살짝 치밀었다아니, 오늘 분위기 좋았잖아.밥도 같이 먹고, 머리도 말려주게 했고, 방 안에 있게도 해 줬잖아.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건데. 대체 왜.“하리야.”화를 꾹 누른 채, 구승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또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묻지 마요, 좀.”“그럼 잘 됐네. 어차피 걱정되던 차였는데. 나 안 가.”배 째라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06화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오면 강하리만 난감할 뿐이란 걸 잘 알 텐데.”구승훈의 입에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온다.“집사람들 단속이나 잘 좀 하고 찾아오든가. 아니면 멀찍이 떨어져 있지 좀?”“그러는 구 대표님은 집안 사람들 허락 받고 이리 들러붙는 겁니까?”주해찬이 차가운 시선으로 맞받아쳤다. 구승훈이 움찔했다.그 모습에 냉소를 짓는 주해찬.“아니면, 집안 사람들과 하리를 대면시킬 생각조차 안 해 보신 겁니까?”구승훈의 표정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이렇게 들러붙는 목적이 결혼 생각조차 없는 애인이라니, 가소롭기 짝이 없군요.”“입 조심해라.”성난 야수를 닮은 구승훈의 으르렁거림이 잇새로 새어나왔다.“난 구 대표님과 다릅니다. 하리를 위해서라면 곁에 꼭 붙어있을 수도 있고-.”주해찬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영영 멀찍이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그쪽은 그게 안 되잖아요.”“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포기하겠다는 뜻인가?”구승훈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강하리의 방 문을 두드렸다.한 참이나 두드렸지만 잠잠하기만 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거의 동시에, 두 남자의 머릿속에 쎄한 느낌이 자나갔다. 두 미간이 동시에 좁아졌다.“1206번 손님 찾으러 오셨어요? 아침 일찍 외출하셨습니다.”지나가던 호텔 직원 하나가 일러주었다.“몇 시 쯤에 나갔습니까?”주해찬이 급급히 또 물었다.“글쎄요. 대여섯 시 쯤으로 기억합니다만.”구승훈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일곱 시 즈음부터 강하리의 방 문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한 시간이나 더 일찍 나가버렸을 줄이야.한 동안, 두 남자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아침 드시겠습니까?”손에 든 도시락을 내미는 주해찬.“너나 많이 드세요.”잔뜩 부아가 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남긴 채, 구승훈이 휙 돌아서 멀어져갔다.사실 강하리의 이른 외출은 두 남자를 피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밤샘 작업을 마치고 바로 호텔을 나선 것 뿐.회의장에라도 나가보려고 그 쪽으로 가다가, 모닝 운동을 하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07화

    순식간에 구승훈이 뒤로 빠졌다.노기에 찬 눈길로 구승훈을 노려보는 강하리.“미쳤어요? 방키 놔두고 당장 나가요!”차가운 음성에도 아랑곳 없이 구승훈이 픽 웃었다.“네가 준 거잖아. 왜 나한테 뭐라 하는데.”호주머니에서 나온 그의 손에는 1204라고 적힌 방 키가 들려있었다.“인심 썼다. 여기 잠자리가 불편하면 내 방에 가서 자도록.”그리고, 아니나 다를가, 베개가 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꺼지라고!”잽싸게 베개를 받아든 구승훈이 조심히 침대맡에 내려놓았다.이쯤하면 목적은 이룬 셈, 치고 빠질 때가 되었다.아침부터 보이지 않는 강하리가 걱정돼서 와 본 것 뿐이니까.딴 마음은 없었다. 음, 없는 거다.“잘 자. 좋은 꿈 꿔.”나지막이 속삭이는, 성X경 뺨치는 꿀 중저음과 함께 강하리를 한 번 꼬옥 안아주고는, 그녀가 어쩔 새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멍해진 표정으로 강하리가 구승훈이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았다....이틀 간의 준비 끝에, 정상회담이 성대한 막을 올렸다.세련된 옷차림의 강하리가 회의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박근형 교수의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그 모습은 실시간 방송을 타고 온 세상에 전해졌고 세간의 감탄을 자아냈다.[정삼회당 최강 미모 통역사]실시간 검색 1위를 차지한 타이틀.생방송으로 화면에 비친 강하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있었다.‘잘 하네, 강하리.’후우, 구승훈이 빨았던 담배 한 모금을 뱉었다.찬란한 빛이 나는 강하리였고, 온 회의장이 그녀의 메인 스테이지였다.하지만 구승훈은 마냥 기쁠 수가 없었다.높이 날아오를 수록 그와는 점점 멀어질 강하리니까.한 순간, 그녀가 너무 잘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 쳐들었지만.강하리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단 걸 잘 알고있는 구승훈이었다.성황리에 막을 내린 정상회담 후, 어김없이 축하연이 열렸다.강하리가 극구 참석을 사양했지만, 박근형의 엄근진 모드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08화

    “뭐 하는 짓이에요!”“보면 몰라? 춤 추러.”가까스로 신형을 멈춰세운 강하리가 구승훈의 발을 콱 밟았다.“쓰읍!”짧은 들숨이 저절로 쉬어진 구승훈, 대신 더 거칠게 강하리의 허리를 끌어당겼다.“이 씹, 또 밟기만 해 봐.”원하신다면야.강하리가 더 힘을 실어 또 내리 밟았다.구승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그만 밟으라고! 이 독한 여자야!”“이것부터 놓으시죠! 양아치 씨!”“놓으면 주해찬과 붙어서 알콩달콩 춤 출 거잖아!”다급한 마음에 본심이 나와버렸다.강하리의 입매가 한껏 굳어졌다.“안 될 거라도 있나요?”“당연히 안 되... 아니야. 되는데.”급히 말을 바꾸는 구승훈.“그러지 마. 부탁이야.”살짝 비참하게까지 들리는 구승훈의 음성이었다.“...안 춥니다. 안 춰요! 선배랑도, 그쪽이랑도! 됐어요?”구승훈의 팔에서 빠져나온 강하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연회장 안쪽으로 사라졌다.그 뒷모습을 말없이 노려보던 구승훈은 한 참이 지나서야 쩔뚝거리며, 강하리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미안해요 선배.”주해찬의 곁으로 다가간 강하리가 사과의 눈빛을 보냈다.한숨을 푹 내 쉰 주해찬은, 더이상 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연회장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무르익어갔고.강하리의 주위에 몰려드는 사람도 점점 더 늘어갔다.처음에는 한 둘씩 인사하러 오던 데로부터, 급기야는 무리를 지어 강하리를 에워싸고 찬사를 무더기로 쏟아냈다.일찍부터 외교부의 될성부른 후지기수란 소문이 돈 데다, 오늘 강하리의 활약을 모두가 직관한 터라 너도나도 앞다투어 강하리의 주위에 몰려들어 잔을 부딪쳤다.강하리는 서서히 머리가 어지러워나기 시작했다.건배라고 해 봤자 조금씩 홀짝대는 정도였지만, 건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지라 벌써 위스키 잔을 세 번이나 새 걸로 바꾼 강하리였다.결국 잔을 내려놓고 세면실을 향해 걸어간 강하리.그 뒷모습을 응시하는 구승훈의 미간이 좁혀졌다.찬 물로 얼굴을 씻어낸 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돌아서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09화

    쓰라린 고통이 찾아온 건, 강하리의 외침소리가 구승훈의 귀에 들어온 뒤었다.동시에 구승훈의 반대쪽 손이 번개같이 날아가 사내의 손에 든 비수를 낚아챘다.“말해. 누가 시켰어.”“구승훈, 내가 누군지나 알아?”사내가 표독스런 눈길로 구승훈을 응시했다.“내 알 바 아니고. 이쪽이었지?”“끄아악!”강하리에게 닿았던 손이 비수에 관통된 사내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세면실에 울려퍼졌다.무슨 일인가 싶어 세면실 밖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단숨에 사내를 쳐 기절시킨 구승훈의 야수 같은 눈길이, 파랗게 질린 고이선을 향했다.“다신 이러지 말라고 분명 경고했을 텐데.”“구, 구 대표님, 유라 지금 무슨 꼴인지나 아세요? 정신이 반쯤 나가서, 온종일 한 마디만 중얼거려요. 대표님이 지켜줄 거라고요! 지금 이 순간까지도요! 저 천박한 년이 대체 뭐라고 유라를 정신병원에까지 넣으신 거에요? 네?”떨리는 목소리로 주절이는 고이선의 말에 구승훈이 움찔했다.다른 게 아니라, 답을 얻어서였다.고이선이 스스로 주제넘는 짓을 또 벌인 건 아닐 테고.누군가가 부추긴 게 분명했다.고이선이야 그냥 제 딴에는 베프를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겠지만.그 머리에선 이런 악독한 계략이 나올 수가 없었다.“머리가 나쁘니까 별 멍청한 짓을 다 도맡아 하는군.”구승훈이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떠는 고이선을 한 켠으로 밀어버렸다.그떄 마침 심준호가 뛰어들어왔고, 고이선이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그에게 허둥지둥 뛰어갔다.“삼촌! 삼촌! 저 좀 구해줘요! 저 천한 년이...”“닥쳐!”심준호가 서늘한 눈길로 고이선을 흘끔 쳐다보고는 뒤에 따라온 경비원들에게 손짓했다.“당장 경찰서로 데려가요. 둘 다.”“사... 삼촌?”고이선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한 줄기 희망이 그대로 폭삭 무너졌다.“삼촌!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 나 이선이라고요! 삼촌 조카딸 고이선! 이거 놔아아악!”고이선의 비명이 멀어졌고, 축 늘어진 사내도 끌려나갔다.심준호의 미간에 깊은 주름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10화

    “하리야! 괜찮냐?”헐레벌떡 달려온 박근형 교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강하리를 위아래로 훑었다.“저 괜찮아요, 교수님.”강하리의 확답을 들은 박근형은 안도의 표정이 되었다가, 곧 이어 분개했다.“정신 나간 놈! 여기서 이런 짓을 벌이다니!”“교수님, 걱정 마세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심준호가 서늘한 음성으로 거들었다.“외교부의 치욕입니다. 바로 데려가세요.”진태형 역시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소문의 터지면 외교부의 위상에 큰 타격을 줄 게 뻔했으니 말이다.진태형은 옆의 사람에게 몇 마디 분부한 뒤,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 양, 이번 일은-.”“소문내지 않을테니 걱정 마세요 부장님. 저 역시 외교부 사람이니까요.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안 합니다.”“정말 미안해요. 꼭 제대로 처리해서 하리 양에게 알려줄게요.”진태형은 미안함 가득 담아 사과하고는 급급히 자리를 떴다.이번 일로 한동안 바쁘게 보낼 건 확정된 것 같았다.연회장 휴식실.사건을 일으킨 두 사람을 경찰에 넘긴 뒤, 심준호가 찾아왔다.“많이 놀랐죠?”아까의 차가운 얼굴은 오간데 없고, 걱정 가득한 눈길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조금은요.”방금 같은 순간에 안 놀랐다면 거짓말일 터.심준호의 눈에 안쓰러운 빛이 스쳐지났다.왜 자꾸 강하리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죄가 있다고.“그 두 사람, 반드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예요.”강하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진통제라도 갖다줄까?”심준호의 눈길이 한껏 어두운 얼굴로 묵묵히 앉아있는 구승훈에게 향했다.“네가 안 왔다면 좀 괜찮았을지도.”부르퉁한 소리에 심준호가 눈을 희번득였다.‘지금 저게 무슨 뜻이지? 강하리와 단둘이 있을 기회가 날아갔다고 나무라는 거?에라이, 더러워서 내가 간다. 더러워서.’심준호가 나갔고, 휴식실에는 구승훈과 강하리 단 둘이 남게 되었다.한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아파요? 의사가 남기고 간 진통제 있는데 드실래요?”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411화

    강하리의 물음에 구승훈은 살짝 불쾌해졌다.“내가 그 정도로 시비를 안 가리는 사람으로 보여?”‘아닌가요’가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강하리는 꾹 참고 다시 집어넣었다.이제 와서 다시 이 문제로 다투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구승훈이 일어서서 강하리 앞으로 다가왔다.“걱정 마. 정말 걔가 한 거면, 너를 절대 막아서지 않을 테니까.”강하리는 대답이 없었다.사실 별 기대도 없었다.이런 승낙을 하도 많이 들어왔지만, 매번 실망만 안겨줬으니 말이다.“일단 호텔로 돌아가요.”강하리가 밖으로 나갔다.구승훈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으나, 별 말 없이 강하리의 뒤를 따라갔다.외교부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은한 달빛에 앞뒤로 서서 걸어가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구승훈의 눈가에 앞서서 걸어가는 강하리가 오롯이 맺혔다. 왠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골짜기처럼 느껴졌다.그리고 그러한 기분은 그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재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강하리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옆을 다 막고 선 웅장한 남자의 몸집에 강하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좀 떨어져 줄래요?”구승훈을 밀어봤지만 꿈쩍도 않는다.대답도 없었고.이윽고 구승훈의 차 앞에 도착한 강하리가 손을 내밀었다.“차 키 줘요.”하지만 구승훈은 대답도 없이 바로 운전석에 올라탔다.강하리고 별다른 말 없이 차에 올라탔고.그렇게 침묵 속에서 차가 호텔에 도착했다.구승훈을 1204호에 데려다준 강하리가 돌아서려는 순간, 구승훈이 그녀를 끌어당겼다.“나 배고파.”“배달 시켜줄게요.”“같이 먹자. 너도 별로 먹은 게 없잖아.”“아닙니다. 전 입맛이 없어서요.”“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그러다 몸 상해.”“배고프면 어련히 알아서 먹지 않을라고요.”“밥을 다 먹으면 씻어야 하는데 이 팔로 씻을 수가 없잖아.”강하리의 눈길이 구승훈의 팔에 감긴, 별로 두텁지가 않은 붕대에 멈췄다.“나도 팔 다쳐봤거든요. 어디서 엄살이에요.”구승훈이 움찔했다.그러고 보니,

최신 챕터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90화

    강하리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표면적인 평온함은 결국 깨져 버렸고 그녀는 심준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삼촌, 구승훈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삼촌은 알고 있죠?”심준호는 룸미러를 보며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오늘 승훈이가 내 사무실에 와서 유언장을 작성했어. 아마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확실해. 아니면, 누가 그 나이에 유언장을 쓰겠어?”강하리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고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찔렀다.심준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어찌 됐든 너에게 숨긴 거잖아. 죽어도 싸. 안 그래?”강하리는 심준호를 묵묵히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준호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굳이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차가 JM 건물 앞에 멈추자 심준호는 강하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출근해. 쓸데없는 놈 때문에 괜히 신경 쓰지 말고. 나중에 삼촌이 좋은 사람 소개해 줄게.”하지만 강하리는 바로 회사로 향하지 않았고 뒤돌아 정안 빌딩을 바라보았다.“삼촌도 구승훈이 왜 그런 건지 모르는 거예요?”심준호는 부정하지 않았다.“어쨌든 나는 승훈이에겐 남이니까.”강하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JM 건물로 향했다.심준호는 강하리가 사라지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분명 서로 마음이 있는데 왜 이렇게 서로를 괴롭히는 걸까?강하리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기명 제약 인수 건은 이미 시작되었고 강하리는 신중하게 모든 단계를 꼼꼼히 살폈다. 이것은 결국 손연지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었기에 어떠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결정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강하리는 회의실에서 나와 안예서에게 말했다.“오늘 저녁 연성시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 줘.”안예서는 대답하며 바로 예약을 진행했다.그 순간, 강하리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역시 심준호였다.[아, 맞다. 깜빡했네. 그 녀석, 다친 것 같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9화

    강하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눈앞에 있는 차는 그녀에게 익숙했다.얼마 전 심준호 생일에 그녀가 직접 선물했던 차였다.심준호는 차에서 내려 석연란과 심연청을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특히 심연청은 더욱 그랬다.심씨 가문 사람 중에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사촌 오빠, 심준호였다.“오빠...”심연청은 매우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고 조금 전까지의 거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석연란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준호야, 무슨 일로 왔어?”심준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제 조카 데리러 왔어요.”그는 강하리를 바라보며 덧붙였다.“아, 방금 구승훈이 나를 찾아왔는데, 이혼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더라. 그러니까 기다리지 마.”석연란과 심연청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그들은 드디어 집안에서 한숨 돌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결혼식 날 강하리가 혼자 남겨진 모습을 보며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던 그들이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구승훈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니?“준호는 참 자기 사람한테 잘해준다니까. 하지만 이 결혼을 후회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구승훈 당사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심준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래서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해도 받아줄 수 없다는 거죠.”석연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심준호는 이미 강하리를 데리고 차로 향하고 있었다.“삼촌이 그랬잖아. 이런 인간들 만나면 말로 싸울 필요가 없다고. 그냥 바로 한 대 갈기면 되는 일을 뭐 하러 목 아프게 말다툼해?”심준호는 말하면서 강하리를 차에 태운 후, 자신도 옆자리에 올라타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석연란은 심준호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를 갈았다.“엄마, 오빠 말이 진짜야? 구승훈, 후회하는 거야?”석연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말도 안 돼. 구승훈이 뭐가 아까워서 강하리 같은 여자한테 매달리겠어? 그냥 한때의 감정이지. 곧 다른 여자 찾을 거야. 두고 봐. 남자들은 원래 다 그렇잖아.”그녀의 눈빛이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8화

    만약 진짜로 아직 희망이 있었다면 이혼하고 나중에 일이 해결되면 다시 그녀를 되찾으면 되는 거였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들의 유일한 연결고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구승훈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한참 후 쓴웃음을 지었다.그는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여초연과의 문제는 해결책을 찾고는 있지만 해결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여초연은 차라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행복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게다가, 그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언젠가 갑작스레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그는 유언장을 쓰고 싶었다.그가 줬던 것들을 강하리는 모두 되돌려줬다. 하지만 유언장에 적힌 것이라면 돌려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구승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심준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절차에 따라 유언장을 작성해 주었다.일을 마치고 나서야 심준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네 가족이야. 도움이 필요하면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구승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 삼촌.”심준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흥!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나 받아. 피 냄새가 진동하네.”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심준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하리 쪽은 내가 설득해 보겠지만, 하리 성격을 너도 알잖아. 만약 하리가 계속 이혼을 고집한다면 나도 굳이 강요하지 않을 거야.”구승훈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 긴 침묵이 흐르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았어.”가정 법원 앞에서 강하리는 계단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녀의 표정은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에서 조용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결국 구승훈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그녀는 실망해야 할지, 아니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7화

    심준호는 그 말을 듣고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어릴 적부터 구승훈과 함께 자랐고 그가 강하리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구승훈 편에 서서 도왔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지나쳤다.“이혼하기 싫다고? 난 네가 이혼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 전혀 안 보이는데?”심준호는 비웃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휴게실로 가서 약상자를 가져와 책상 위에 던졌다.“알아서 약 찾아 발라.”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넥타이를 쓰레기통에 내던졌고 구승훈은 문에 기대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약은 괜찮아. 그렇게 몸 약한 사람 아니야.”심준호는 그를 무시한 채 책상에 앉았다.“오늘 가정 법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었어?”구승훈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았다.심준호는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아무리 세게 때렸다고 해도 앉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다쳤을 리가 없었다.“다쳤어?”하지만 구승훈은 그 질문을 무시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강하리에게 전화해서 기다리지 말라고 해.”심준호는 전화를 걸지 않았고 그의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다쳤으면 병원에 가.”구승훈은 테이블 위에 놓인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내려다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준호야.”이 망나니는 평소에는 뻔뻔하게 ‘삼촌’이라고 부르다가, 이럴 때는 다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이혼할 마음을 먹은 것 같네.”구승훈은 손가락으로 꽃잎을 쓸며 말했다.“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심준호는 구승훈을 조용히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부탁인데?”구승훈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나, 유언장을 쓰고 싶어.”심준호는 깜짝 놀란 기색을 보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야?”그는 구승훈이 강하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가 강하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구승훈이 이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심준호뿐만 아니라 강하리도 분명히 구승훈에게 무슨 사정이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6화

    구승훈의 눈빛이 순간 가늘어졌다.바의 어둡고 밝은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전에 없이 깊게 가라앉았다.“최하영 씨에게 전화해서, 연성시에 있는 형수님을 잘 돌봐주라고 해. 필요하면 안현우에게 직접 손을 써도 돼.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질게.”구승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임희주 씨는 어떻게 할 거야?”구승훈은 비웃음을 띠며 눈을 내리깔았다.“임희주는 아직 시험하고 있어. 하지만 오래가진 않을 거야. 여초연이 임희주에게 그렇게 긴 시간을 주진 않을 거니까.”구승재는 잠시 형을 바라보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왜?”구승훈이 시선을 돌렸다.구승재는 잠시 침묵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방금 형수님이 이혼 서류를 서산 퍼스트 빌리지로 보냈어.”구승훈은 술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입가에는 쓴웃음이 맴돌았다.“정말 빠르네.”그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폭탄을 보내지 않은 걸 보면 봐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구승재는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입을 다시 다물었다.서산 퍼스트 빌리지의 정원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구승훈은 이곳에 리시안셔스를 가득 심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이 정원에서 강하리와 함께 늙어갈 거라 믿었다.하지만 텅 빈 지금의 주택은 그의 마음처럼 공허했다.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이혼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약속을 상징하는 결혼반지도 그 위에 놓여 있었다.구승훈은 반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자기야, 나 이혼하고 싶지 않아. 괜찮을까?”그러나 텅 빈 주택에는 그의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다음 날, 드물게 햇살이 쨍쨍했다.강하리는 붉은색 긴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화장을 했다.가정 법원에는 사람들이 북적였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도로 건너편에서 구승훈은 묵묵히 강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휴대폰은 계속 울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준봉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5화

    바는 여전히 활기 넘쳤지만 구승훈이 앉아 있는 바 카운터 앞에는 텅 빈 술잔이 열 개도 넘게 쌓여 있었다.천아름은 한 칸 떨어진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결혼식을 취소한 건 분명 구 대표님이면서 강하리보다 더 힘들어 보이네요.”구승훈은 담배를 깊이 들이마신 뒤 가볍게 웃으며 술잔을 다시 들어 올렸다.천아름은 바 카운터에서 술잔을 집어 들고 따라 마시며 말했다.“남자들에게 여자는 그저 부르면 오고 가라면 가는 존재인가 봐요?”구승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천아름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어 구승훈에게 내밀었다.“결혼식 날, 우리 하리 사진이에요.”구승훈의 시선이 사진으로 향했다.메이크업실에서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강하리는 흰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옆에는 천아름과 손연지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사진 속 강하리는 이후에 닥칠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구승훈은 가볍게 두 번 숨을 내쉬었다.“그날, 하리는...”천아름은 휴대폰 화면을 끄며 말했다.“그날 하리는 구 대표님을 찾으러 갔어요. 우리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죠.”구승훈은 이마를 짚으며 힘없이 몸을 기울였다.천아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이유라고 물어봅시다. 구 대표님이 여태 사랑했던 여자는 강하리뿐이었잖아요. 분명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한 거예요?”구승훈은 담배를 입에 문 채 깊게 빨아들인 후에야 대답했다.“아무 이유 없어요. 그냥 갑자기 재미없어져서, 결혼하기 싫어졌어요.”천아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알겠어요. 지금이 재밌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요. 하지만 하리 같은 여자는 아이가 있어도 구혼자가 줄을 설 걸요? 구 대표님, 후회하지나 말아요.”그녀는 의자에 걸쳐 둔 헬멧을 들고 구승훈의 어깨를 툭 치며 돌아섰다.때마침 구승재가 구승훈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헬멧을 안은 채 나오는 천아름과 마주쳤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4화

    하지만 몸은 탈진한 듯 힘이 빠졌다.그저 질렸을 뿐이라니.강하리는 웃으며 눈가의 씁쓸함을 애써 삼켰다.“강 대표님, 제가 모셔다드릴까요?”임명우가 그녀의 등 뒤에서 조심스레 물었다.“괜찮아요.”강하리는 짧게 대답하고 자신의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대리운전을 불러 차를 맡긴 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집으로 향했다.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고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두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그러나 강하리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하이힐을 손에 들고 맨발로 차가운 아스팔트를 밟으며 걸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그녀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가 짧아졌다.강하리는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였지만 애초에 도박을 건 것은 자신이 아닌가?이제 패배를 인정할 때였다.하지만 가슴 한편이 텅 빈 듯 아팠고 숨을 쉴 때마다 폐 깊숙이 스며드는 통증이 뼛속까지 얼어붙었다.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자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후, 차가운 공기 속에서 눈물은 투명한 이슬로 변했다.한편, 구승훈은 핸들을 부술 듯이 꽉 쥐고 천천히 움직였다.검은색 마이바흐는 그렇게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강하리의 뒤를 따라갔다.한참 뒤, 그는 결국 휴대폰을 들어 ‘강하리’라는 이름 위에서 머뭇거리다 이내 다른 번호를 눌렀다.“구승훈 씨, 전화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손연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화가 난 듯 소리쳤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구승훈은 눈앞에서 홀로 걷고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제가 잘못했어요.”“미안했다고 하면 다예요?”손연지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결혼하기 싫었으면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요? 하리를 결혼식장에 혼자 남겨두고, 사람들이 어떻게 수군거리는지 알기나 해요?”구승훈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꾸짖음을 묵묵히 받아들였다.한참을 쏟아내던 손연지가 한숨을 내쉬고 조용해진 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리 데리러 와줘요.”손연지는 곧장 강하리에게 달려갔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3화

    강하리가 떠난 후, 복도는 다시 고요해졌다.구승훈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창가에 서 있었고 손에 든 은은한 불꽃이 계속 깜박거리고 있었다.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다 봤어요?”임명우가 빙긋 웃으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참 우연이네요, 구 대표님.”구승훈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가볍게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었다.“임 대표님의 취미가 남의 사생활 엿듣기였나?”임명우는 옆으로 다가와 낮게 웃으며 아래층 불빛을 바라보았다.“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죠. 저는 단지 강 대표님과 구 대표님 사이의 일에 관심이 많을 뿐인데요.”그는 한 박자 쉬고 덧붙였다.“아, 맞다. 구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강 대표님께 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항상 구 대표님만 바라보았고 저는 다가갈 틈조차 없었죠. 한때는 포기했어요. 강 대표님이 저를 싫어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기회를 주시다니,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그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도발이 스며 있었다.하지만 구승훈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어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임명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삭이듯 말했다.“설마 구 대표님, 정말로 강 대표님을 포기하시려는 건 아니죠? 저는 혹시나 연기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다면 이제 저는 당당하게 강 대표님에게 다가가도 되겠네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승훈이 번개처럼 손을 뻗었다.날렵한 팔이 순식간에 움직였고 힘줄이 선명하게 돋아난 손가락이 임명우의 얼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쾅!순간,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임명우의 머리가 강화 유리에 부딪혔다.유리는 거미줄처럼 촘촘한 금이 번지며 위태롭게 흔들렸고 구승훈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붉어진 얼굴의 임명우를 바라보았다.표정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깊은 눈동자에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무슨 수작을 부리든 상관없어. 하지만 강하리에게 손끝 하나라도 대면, 넌 살아 있는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임명우는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82화

    강하리는 비웃으며 시선을 돌렸다.“임 대표님, 사회적 거리 두기, 모르세요?”임명우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아무 반응도 없네요?”“장난에 굳이 반응할 필요가 있나요?”강하리는 무심하게 답했고 임명우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구승훈은 어떻게 생각할까요?”강하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이 무슨 생각을 하든 이제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 이미 끝난 관계에 미련을 두는 게 아니었다.그가 그녀를 결혼식장에 혼자 남겨두고 떠난 그 순간부터, 모든 건 끝났으니까.“혹시 나중에 찾아와서 주먹이라도 날릴까요?”임명우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강하리는 조용히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임 대표님, 계속 장난칠 생각이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임명우는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가벼운 농담을 던지지는 않았다. 그는 곧장 태도를 바꿔 다음 회의 내용을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강하리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레스토랑 저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계속 신경에 거슬렸고 손에 쥔 젓가락을 무의식적으로 움켜쥐었다.“죄송하지만, 술 좀 주세요.”강하리는 갑자기 임명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임명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음을 지었다.“어이구, 강 대표님이 술 마시고 싶었나 봐요?”강하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 시선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임명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거두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종업원을 불렀다.곧 레드 와인 한 병이 테이블에 놓였고 강하리는 잔을 들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마셨다.그러나 와인 한 잔은 금세 다 비워졌고 술이 들어가자 강하리의 마음도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멀리서 들려오던 웃음소리도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고 눈앞의 세상은 희미하게 번져갔다.구승훈은 자주 강하리를 냉정하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이 세상에서 구승훈보다 더 냉정한 사람이 있을까?구승훈은 지금도 저쪽에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