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석의 목소리는 역시나 쓸쓸하고 무거웠다.“정길이 돌아갔대.”“네?”고은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어제 우리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씩씩하게 말씀하시고 멀쩡하시던 할아버지가 어쩌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지?’“의사 선생 말로는 숨을 거두기 전에 기운이 며칠 돌아왔던 거래.”고준석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고준석의 마음은 말이 아니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고은서에게 복이 많다고 말하던 할아버지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고은서도 마음이 안 좋았다.고준석을 위로하고 나서 고은서는 다시 전미자의 곁으로 돌아갔다.“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오늘 밤에 할머니를 모시지 못할 것 같아요. 외할아버지의 친구분이 돌아가셨어요. 저는 외할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할까 봐 돌아가서 곁에 있어 줘야 할 것 같아요.”전미자는 살짝 화를 내며 말했다.“아가야, 사과를 왜 해. 그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외할아버지의 곁을 지키면서 위로해 주는 게 맞지. 내가 승재보고 널 데려다주라고 할게.”말을 마치고 전미자는 도우미를 시켜 곽승재를 불러오게 하려 했지만, 고은서는 거절했다.“할머니,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승재는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하니까 저는 택시를 잡아서 돌아가면 돼요.”“그럼 안되지. 승재도 같이 가서 너의 외할아버지를 돌봐드려야지.”본가에서 고준석의 저택까지 한 시간 노정이었다.곽승재는 안 그래도 업무가 바쁜 데다가 곽현수도 본가에 있는 마당에 고은서는 그를 부탁하고 싶지 않았다.고은서는 다시 한번 거절했다.“할머니, 택시를 부르는 것도 아주 간편해요. 승재가 굳이 저를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요.”전미자는 고은서가 지금 사랑에 신경 쓸 때가 아닌 것을 보고 더 권유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제안했다.“그럼 집안의 기사님더러 데려다 달라고 해. 네가 택시를 부르는 것도 시간이 걸릴 거잖아.”고은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반 시간 뒤,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고 차량은 번화한 시 중심을 벗어나 조금 외진 교외에서 달리고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