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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1화

강지아는 최금성이 화령을 온씨 저택에 데려와 자기 여자친구라고 소개할 줄 몰랐다.결혼 외에 모든 것은 다 상관없는 것 같았다.오늘 우아하게 차려입은 화령은 여기 있는 재벌가 사모님 못지않았다.화령은 얼굴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최금성의 곁을 따라다녔고 나대거나 함부로 끼어들지 않았다.이런 화령이야말로 최금성이 필요로 하는 여자이다.석식 장소에 데리고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굳이 여자를 달래는데 너무 많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이때 누군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조만간 최씨 가문의 잔칫술도 마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축하합니다.”황은숙은 난감한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젊은 사람들의 일은 본인들 맘대로 하게 놔둬야죠. 저는 상관 안 해요.”황은숙은 손님들 앞이라 최대한 화를 참았지만 맞은편 화령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화령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수줍은 척했다.옆 사람들은 이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긴장감을 눈치채지 못한 채 연신 감탄만 했다.“최 대표님이야말로 우리 서울에서 유명한 사랑꾼이죠. 지난 몇 년 동안 그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았잖아요.”그러자 황은숙이 말했다.“우리 며느리가 명문대 출신에 학식도 깊어요. 우리에게 이렇게 총명한 손자를 낳아줬는데 본인은 정작 일찍 하늘나라로...”마음이 씁쓸해진 화령은 다른 사모님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강지아에게 몰래 눈짓을 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만났다.“방금 온씨 집안 사모님을 만났는데 네 친구냐고 묻더라고.”화령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 같아.”“괜찮아.”자기주장이 확실한 강지아가 바로 말했다.“내가 미워서 그러는 거야. 너와 상관없어.”화령이 말했다.“여기 사람들은 내가 최금성의 자산을 보고 만난다고 생각해서 내가 최금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나 봐.”사실 최신애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화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이 뭐라고 하든 본인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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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2화

“너, 너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최신애는 온유한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유한이 앞에서 감히 윗사람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강씨 가문에서는 이렇게 가르쳤어?”온유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어머니, 말 좀 작작 하세요.”“그냥 내가 나갈게요.”강지아가 말했다.“여기서 지적질이나 받으며 욕먹을 생각은 없습니다.”하지만 최신애는 포기하지 않았다.“거기 서! 한마디만 물을게. 나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네 친구더러 금성이를 꼬시라고 한 거야?”“혹시 피해망상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강지아는 최신애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놀랐고 온유한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형이 꼬신다면 넘어갈 남자예요? 엄마, 외숙모, 별일 없으면 가세요. 나도 이만 좀 쉬어야겠어요.”최신애가 화를 냈다.“네 형이 가족들에게 그 여자를 소개했어. 미래의 최씨 가문 안주인인 것처럼 말이야. 외숙모에게서 들었는데 그 여자 집도 외지에 있고 집안 형편도 별로라고 하던데. 예전에는 금혁이와도 어울리며 놀았고. 금혁이 아프리카에 가자마자 금성이의 침대에 오르는 여자가 좋은 여자일 리가 있어?”온유한은 이 일을 몰랐고 강지아는 설명하기 귀찮았다.이때 강지아가 말했다.“진화영이 어떤 여자인지는 금성이 오빠에게 물어보세요. 뒤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요?”온유한은 그저 머리가 지끈거렸다.최신애는 벌컥 화를 내더니 한 발짝 앞으로 나가서 뺨을 한 대 때렸다.‘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모두가 멍해졌다.“어르신을 공경하는 게 뭔지 오늘 네 어머니 대신 내가 가르쳐줄게.”최신애는 강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꺼져, 다시는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어머니!”깜짝 놀란 온유한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지아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가방을 들고 바로 나갔다.“지아야!”오늘 강지아가 이대로 병실을 나선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온유한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여기에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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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3화

안 그래도 요즘 작업실이 별로 바쁘지 않아 강지아도 게으름을 피우며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작업실에 갔는데 이제 기분이 좋지 않은 데다 얼굴까지 부었으니 당연히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새언니, 오빠가 내 얼굴이 왜 부었냐고 물으면 실수로 문에 부딪혔다고 해줘요.”“네 오빠가 과연 속을까? 네 오빠가 온씨 가문 사업에 돈을 안 주는 것도 최신애의 태도에 화가 나서 그러는 건데 그것 때문에 일이 더 안 좋아진 것 아니야?”최신애의 말만 떠올리면 강지아는 화가 났다.“아니에요. 차라리 오빠더러 온씨 가문과 협력을 모두 끊으라고 하세요. 어차피 우리가 그 몇 개 공장에 의지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은 우리가 덕을 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우리 오빠 때문에 본인 아들이 빛을 못 봤다고 원망하는걸요.”정유진은 피식 웃었다.“이제 유한이까지 원망하는 거야?”강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온유한에게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강지아는 며칠째 병원에 가지 않았고 온유한은 매일 전화를 하지만 강지아는 기분이 좋으면 받고 싫으면 받지 않았다.그녀가 서원준의 전화도 받지 않으려 하자 서원준은 너무 억울했다.“또 나만 억울하지... 겨우 연락한 건데 전화를 안 받거나 아니면 기분이 다운되어 있거나. 또 누가 너를 건드린 거야?”강지아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오늘은 바쁘지 않아?”“바쁘지 않아. 요즘 투자 유치회 몇 개 참석해서 연출 감독 몇 명을 만났어. 오랜만에 쉬어서 네 생각이 나서 전화한 거야. 같이 드라이브라도 갈래?”잠깐 생각하던 강지아가 말했다.“내가 술 살게.”“지금? 술 마시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른 거 아니야?”“나와 같이 쇼핑 좀 하고 술 마시러 가자.”“그래.”세 시간 후, 쇼핑백을 한 무더기 들고 있는 서원준은 강지아가 또다시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힘이 빠져 소파에 털썩 앉았다.이것은 접대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이거랑 저거, 내 사이즈에 맞는 것으로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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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4화

강지아는 서원준을 단골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일찍 도착한 덕에 가게에 아무도 없었고 두 젊은 웨이터는 지루한 얼굴로 카운터에 엎드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강지아 씨, 왔어요? 오늘은 뭐로 주문하실 건가요?”강지아는 서원준을 데리고 늘 앉던 자리로 갔고 메뉴판도 들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아저씨가 해주시는 대로 먹을게요. 오늘 새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지난번에 다 마시지 못한 술, 한 잔 더 주세요. 이 친구가 여기는 처음이라 사장님 솜씨를 맛보게 하고 싶네요.”“네, 바로 차리겠습니다.”여기 술은 한 병씩 팔고 있다. 만약 다 마시지 못하면 집에 가져가든지 아니면 여기에 맡겨두고 다음에 와서 계속 마시면 된다.오래된 술집 아래에 지하실이 있고 사장님은 그곳에 술을 저장해 두기에 집에서 보관하는 것보다 장소가 더욱 적절하며 술의 향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서원준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이런 곳은 어떻게 찾았어? 아주 괜찮은 것 같아. 사장님이 심상치 않으신 분 같아.”강지아가 말했다.“화령이가 데리고 온 건데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음식이 정말 맛있고 술도 아주 훌륭해.”사장은 이내 완두콩 한 접시, 바삭바삭한 땅콩 한 접시와 볶음 요리 같은 것을 내왔다.“일단 먹고 있어. 오늘 싱싱한 토끼가 왔으니 마라 맛으로 만들어 줄게. 먹을 거지?”강지아가 웃으며 대답했다.“먹어요. 하지만 너무 맵게 하지는 말아주세요.”사장이 옷소매를 위로 올리며 주방으로 돌아가 바쁘게 일하기 시작하자 서원준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너 같은 사람도 토끼를 먹어? 토끼를?”강지아가 말했다.“처음 먹는 거야.”그러자 서원준이 혀를 내둘렀다.“화가 많이 났나 보네? 네가 토끼를 다 먹겠다고 하고? 말해봐. 누가 우리 강씨 가문 아가씨를 이토록 화나게 한 거야?”“그런 사람 없어. 나는 기분 나쁘면 안 돼?”최신애에게 직접 대들거나 정유진 앞에서 최신애의 불평을 토로할 수 있지만 서원준에게 그런 말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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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5화

병실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한참 후 온유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머니가 지아에 대한 너무 안 좋은 선입견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그 선입견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이해가 안 돼요.”여기까지 말한 온유한은 관자놀이를 주물거리며 한마디 더 했다.“이만 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듣기 싫으니까.”최신애는 입술을 떨었다. 친아들 때문에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조금 전 온유한의 행동에 놀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온유한이 강지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뭐해?]강지아는 30분 후에야 답장했다.[친구와 술 마시는 중이야.][언제 병원에 올 거야?][시간 되면.]다음 날, 강지아는 최신애가 없는 틈을 타 병원에 왔다.작업실에서 주문을 받은 바람에 한동안 출장을 가야 했다.서로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지아야, 이리 와.”온유한이 침대 옆을 두드리며 말했다.“왜?”내키지 않은 얼굴로 다가간 강지아가 미처 앉기도 전에 온유한은 팔을 뻗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이내 온유한의 입술이 강지아의 입술을 덮쳤다.강지아는 혹시라도 온유한에게 너무 기대어 무게가 실릴까 봐 최대한 몸을 지탱했다.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온유한의 절박하고 깊은 키스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두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두 사람 모두 숨을 헐떡였다.하지만 온유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강지아의 손을 잡더니 더 확 끌어당겼다.강지아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오늘 온유한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예전에 두 사람이 아무리 뜨거웠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키스를 마친 후 강지아는 온유한의 품에 엎드려 숨을 헐떡였다.그러자 온유한이 그녀의 볼에 입술을 살짝 맞추며 말했다.“애기야, 뒷수습 좀 부탁할게.”강지아는 당장이라도 온유한을 물어뜯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잠갔다.조금 전, 정신이 없는 바람에 이런 것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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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6화

두 달 뒤.온유한은 지팡이를 짚고 걷는 모습을 페이스 톡을 하면서 강지아에게 보여줬다.이제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지만 힘을 많이 쓰지 못했다.“봤지? 네가 돌아올 때면 공항으로 마중 나갈 수 있을 것 같아.”“넘어지지 않게 조심해.”강지아는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그런데 주변에 왜 아무도 없어?”“재활 도와주는 선생님은 밖에 있어.”온유한은 집에 돌아왔다.온유한이 다치는 바람에 온미정은 결혼을 다음 달로 미뤘다.그때쯤이면 온유한의 다리도 많이 회복되었을 것이다.“지아야, 고모 결혼 때 올 거야?”“가야지, 꼭 가야지.”“그래, 내가 데리러 나갈게.”두 사람은 한참을 질척거리다가 페이스 톡을 마쳤다. 강지아가 요즘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온유한이 굳은 얼굴도 말했다.“들어와.”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하인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말했다.“도련님, 집에 손님이 오셔서 사모님이 내려오시라고 합니다.”“누구인데?”“임, 임유희 씨요.”“안 만날 거야.”하인은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어서 다시 온유한의 방문을 닫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임유희는 이제 온씨 집안의 단골손님이다.최신애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초대해 오늘은 차를 마시면 내일은 식사를 했고 또 같이 쇼핑을 하거나 미용하러 갈 때도 있었다. 누가 보면 친 모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최신애가 예전에 주유정에게는 한 번도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유한이는 아직도 재활운동 중이야? 왜 안 내려와?”하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슬기롭게 핑계를 대어 대처했다.“도련님의 재활운동이 아직 안 끝난 것 같아요.”온유한이 본인을 만나기 싫어하는 것을 눈치를 챈 임유희는 바로 말했다.“저는 어머니를 뵈러 온 거예요. 오늘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가 볼게요.”그러자 최신애가 말했다.“며칠 뒤에 새 영화 개봉하는데 우리 둘이 같이 보러 갈까? 너도 이제 겨울방학을 했으니 푹 쉬어.”“좋아요.”임유희가 떠나자 최신애의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지만 그렇다고 온유한에게 강요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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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7화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의료 사고를 겪은 적이 없다.예전에 태안 병원에 일이 생겼을 때 온혁진과 온유한이 앞에서 버티고 있어 그녀가 나서지 않아도 잘 해결됐다.그런데 지금 이런 일이 갑자기 코앞에 닥쳐오자 최신애는 눈앞의 광경에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옆에 있던 임유희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어머니, 일단 진정하시고 우리 아버님부터 만나러 가요.”최신애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맞아. 맞아.”쓰러진 온혁진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최신애가 오는 것을 본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상황을 설명했다.“원장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것 같습니다. 밖에 있는 저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그만... 안 그래도 고혈압이 있는 분인데 마음이 급해지니 바로...”“유한이에게는 알렸나요?”최신애의 물음에 부원장이 나와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유한이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어서 함부로 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단 사모님께 먼저 알리는 거예요.”평생을 남편과 아들에게 의지하는 데 익숙했던 최신애는 지금 이 순간 넋이 나갔다.“유한이에게 빨리 얘기해요. 아버지가 혼수상태라고 알려주세요.”이내 누군가가 가서 온유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경비원이 다급하게 뛰어오더니 아래층에 사람이 점점 더 많이 모이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기자들까지 왔다고 했다.부원장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장 주임은? 이런 일, 장 주임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야?”다른 한 부서의 주임이 대답했다.“장 주임님이 오늘 미팅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마찬가지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부원장은 골치가 아파 최신애에게 의견을 물어봤다.하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도 당황스러워하는 사람은 최신애였기에 무언가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연세가 많은 부원장은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병원은 원래부터 온씨 가문의 것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중요한 관리직을 맡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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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8화

‘예비 며느리’라는 신분은 분노한 유족들의 마음을 그저 조금 누그러뜨리는 데 그쳤다.임유희는 가족 중 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서 병원과 상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려 했다. 이때 한 여자가 불쑥 튀어나왔다.“예비 며느리라고 해도 남이잖아요. 온씨 가문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왜 남이 대신 나와서 우리와 상의를 하는 건데요? 태안 병원 병원은 지금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거예요. 오빠, 이 사람들 말에 속지 마.”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격분했다.“돈 많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태안 병원은 돌팔이 의사들만 있는 병원이야! 얼른 너희 원장 나오라고 해.”“원장을 불러내! 여자를 방패막이로 내세우지 말고! 오늘 반드시 우리에게 정확히 t설명해야 할 거야.”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며 밀치기 시작하는 바람에 하이힐을 신고 있던 임유희가 넘어질 뻔했을 때,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이내 귓가에 온유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저는 온유한이라고 합니다. 이 병원을 물려받을 사람이에요. 제 말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사람들은 그제야 조용해졌다.온유한은 잡고 있던 임유희를 놓아준 뒤 목발을 짚고 앞으로 걸어가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번 사건의 경위는 전해 들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판결했다고 해서 한쪽 말만 믿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태안 병원의 책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온씨 가문이 끝까지 책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병원, 여기에 그대로 있을 것이고 어디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가족분들께서 대표 한 분을 선출하여 저와 들어가서 얘기를 나누시지요.”상대방은 죽은 사람의 큰아들을 대표로 선출해 온유한과 이야기하게 했다.온유한이 큰아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시체와 함께 자리를 떴다.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길이 막힐 것을 염려해 병원에서 특별히 차까지 예약해준 덕에 병원 건물 앞은 이내 예전처럼 조용해졌다.이런 일은 거의 모든 병원에서 발생하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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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9화

온유한은 황급히 이곳저곳 다니면서 임유희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마치 임유희를 못 본 것처럼 말이다.복도 끝 창가에 서서 온유한이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임유희는 아직도 허리에 그의 손이 스쳐 간 따뜻함이 남아 있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온유한은 빠른 움직임으로 그날 오후 상황을 파악하고 공장에 문제가 있는 제품을 전부 회수하도록 했다.병원에 돌아왔을 때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다리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데 오늘 많이 걸은 탓에 오후 내내 뼈가 부러진 곳이 아팠다. 일을 다 처리했을 때는 이미 참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다.온유한의 상처를 살핀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더 이상 제멋대로 굴면 안 됩니다. 다리가 잘 회복되는 중이었는데 오늘 무리하는 바람에 적어도 보름은 더 딜레이 될 거예요. 일단 재활 운동은 중단하고 염증이 생긴 것 같으니 다 나으면 그때 계속하죠.”온유한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원했다.다행히 요 며칠간 병원에서 일을 처리하면 되기에 그나마 괜찮았다.간호사가 그의 휠체어를 병실로 밀고 들어간 뒤 온유한은 즉시 몇 사람을 불러 회의를 했다.회의가 끝나니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밥 먹는 것마저 잊었다.“임유희 씨 왔어요?”미팅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병실을 나가던 사람이 보온 통을 들고 들어오는 임유희를 보고는 웃으며 인사를 한 후 병실 문을 닫았다.임유희는 문 앞에 서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온 선생님, 어머니가 저녁을 갖다 드리라고 하셨어요.”온유한은 그제야 오늘 고맙다는 인사조차 상대방에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들어오세요. 오늘 일은 고마웠어요. 괜찮아요?”임유희는 온유한이 관심조로 묻자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저는 괜찮아요.”말을 마친 임유희는 가져온 저녁 식사를 얼른 병상 침대 테이블에 차렸다.“저녁은 집에서 가져온 거예요. 어머니는 저녁 식사하셨고 지금 아버님의 곁을 지키고 있어요.”온유한이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묻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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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0화

임유희가 얼음팩에 수건을 싸서 조금 전 만큼 차갑지 않았다.“내가 직접 할게요.”온유한의 말에 임유희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일단 밥부터 드세요.”온유한이 말을 더 하려 하자 임유희가 먼저 한마디 했다.“나에게 불만이 있는 거 알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짓도 안 할 것이고 밥 다 드시면 바로 갈 테니까.”임유희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온유한도 뭐라고 더 말하기가 곤란했다.온유한이 식사를 마치자 임유희는 얼음팩을 온유한에게 건넨 뒤 테이블을 치웠다.“온 선생님, 푹 쉬시고 당분간은 걷지 마세요. 아버님이 깨어나시면 바로 전하라고 할게요.”말을 마친 임유희는 보온 통을 들고 병실을 나갔다.얼음찜질한 온유한도 다리가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다.이내 온미정과 백무영이 달려왔다.백무영은 모자와 마스크로 꽁꽁 감싸고 있었다.“오늘 많이 피곤했지?”온유한의 다리에 얼음팩이 놓여 있는 것을 본 온미정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 일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이제 온미정이 돌아왔기에 온유한도 이 일을 그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온미정의 일하는 스타일은 일반 남자들보다 더 단호하기 때문이다.고모와 조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강지찬과 최의현이 왔다.“오늘 임직원 미팅이 있어서 늦게 끝나는 바람에 이제 왔네. 유한아, 괜찮아?”최이현은 큰 소리로 물으며 병실에 들어왔다.“어머, 고모님 오셨어요?”온유한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제품에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고모, 일단 유가족에게 먼저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이건 미루면 안 돼요. 공장은 급하지 않아요. 실마리가 어느 정도 잡혔으니.”강지찬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저 여자는 여기 왜 있어?”온유한이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누구? 임유희 씨? 저녁을 갖다 주느라.”“저녁까지 갖다 줘? 그렇게 다정하게 지내?”최의현이 소리쳤다.“자식, 지아가 없는 동안 잘 참아야 한다.”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던 온유한은 강지찬의 안색이 잔뜩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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