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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정유진은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였다.그녀는 서둘러 다가가 지아의 두 팔을 받아주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너, 너는...”옆에 있던 강지찬이 서둘러 제지했다.“그 이름은 말하지 말아요.”정유진은 이미 경악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어쩐지 지아가 그녀를 좋아하고 따른다더니 이미 진즉부터 유진을 알아본 것이었다.그때는 사내애 같은 모습이었고 이제 갓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며 단발머리에 지금보다 훨씬 뚱뚱했다.지금의 유진은 9년 전과 비교하면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가끔 옛 사진을 볼 때면 자신도 예전에 이렇게 못생긴 적이 있었나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지아는 어떻게 알아본 것일까?“네가... 지아였구나!”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말했다.“이렇게 컸어? 너무 예뻐졌네, 언니가 못 알아봤어.”10년이 거의 됐을 것이다. 그해 여름 방학에 유진과 몇 명 친구들이 산에 캠핑하러 갔고 그때 온몸이 엉망진창이 된 지아를 발견했었다.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 나서야 지아가 누군가에게 납치됐었고 엄마도 함께 납치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다만 경찰이 엄마를 찾았을 때 그 아름답던 여인은 이미 세상에 없은 뒤였다.사체는 끔찍했고 몸을 가릴만한 옷가지조차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경찰의 수사로 추정컨대 지아의 엄마는 딸을 도망시키기 위해 망을 보다 자신은 납치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지아야 무서워하지마, 언니 있잖아. 괜찮아.”강지아는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겁에 질린 채로 입으로는 “언니 살려줘” 만 외쳐댔다.이렇게 꽉 끌어안은 건 그녀를 마지막 지푸라기로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했다.마치 그때도 그녀의 목을 이렇게 꽉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하산은 상당히 힘들었지만, 지아는 유진의 등에만 업히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손도 대지 못하게 했었다.산 아래에 도착하자 유진은 거의 실신할 뻔했었다.유진은 과거를 회상하며 마음이 아파 가볍게 지아의 어깨를 토닥거렸고 지아의 비명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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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강지찬과의 더 큰 충돌을 피하고자 강지현이 먼저 자리를 떴다.병실에 정유진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지찬이 물었다.“왜 아직도 안 갔어요?”지아는 이미 깊은 잠에 빠졌고 유진은 그녀의 손을 이불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병실을 나오고 나서야 대답했다.“바로 갈 거예요.”강지찬은 병실 문을 닫으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그의 뜻은 유진을 내쫓으려는 게 아니었는데 말투가 퉁명스럽다 보니 누가 들어도 사람을 내쫓는 것 같아 보였다.유진이 가방을 가지려 하자 갑자기 손목이 턱 잡혀버렸고 지찬은 큰 힘으로 유진을 품에 끌어안았다.강지찬은 유진을 꽉 끌어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말아요.”“이거 놔요!” 정유진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에 온몸으로 저항했다.마치 뭍에 올라온 활어처럼 무의식적으로 미친 듯 발버둥 쳤다.“손대지 말아요! 이거 놔!”상당히 격한 유진의 반응에 강지찬도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그녀를 놓아줬다.유진은 바로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가슴팍이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렸다.강지찬은 결국 한발 뒤로 물러났다.“뭔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가지 말라고 한 거였어요.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요?”정유진은 여전히 살기등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기가 차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강지찬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난 그냥 지아가 깨어나서 또 소란을 피울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요. 유진 씨도 봤잖아요, 지아가 당신만 알아보는 거. 나도 못 알아보는 데 말이에요.”경계심 가득한 유진의 모습을 보며 강지찬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약속할게요, 손대지 않기로.”말을 하면서도 강지찬은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안는 게 뭐 어때서 그래요”정유진도 지아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강지찬과 단둘이 마주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지찬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아 차라리 병실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강지찬은 늑대를 경계하듯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유진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어이가 없었다.지아만 당신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 강지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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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정유진은 확실히 키도 작고 뚱뚱했으며 못생기기까지 했다.하지만 강지찬의 말은 얄밉기 그지없었다.“내가 예쁘든 못생기든 뚱뚱하든 날씬하든 강 대표님이랑 상관 없을 텐데요?”강지찬이 그녀의 얼굴을 흘겨보며 대답했다.“왜 상관이 없죠? 지금 나랑 마주 보고 밥을 먹고 있는데, 그래도 지금 얼굴이 밥 넘기기엔 더 좋네요.”“...” 정유진은 더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하지만 강지찬은 대화가 흥미진진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전에 지아가 언니를 찾아오라 소리칠 때 둘이 전에 만난 적 있지 않을까 의심했었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정유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전 만난 적이 없는데요.”강지찬같은 남자를 유진이 만난 적 있었다면 반드시 생각이 났을 텐데 말이다.강지찬이 그런 유진을 쳐다보며 대답했다.“당신은 날 만난 적 없겠죠. 그때 잠들어 있었으니까. 지아를 진정시키고 감사를 전하려고 찾아가니 이미 떠나고 없더라고요.”당시 하도 다급하게 움직였던 터라 지아를 산에서 업어내려 온 후 바로 탈진해 잠이 들었던 것이다.깨고 나서는 경찰 조사에 기록을 남기고 다급히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왔었다.그땐 아직 어려서 좋은 일을 하고도 나서지 않는 미풍양속을 따라 사건을 더 알아보지 않고 그대로 떠났었다.근데 이렇게 만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정유진은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아 반 공기에 국만 홀짝이고는 배가 불렀다.식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아가 잠에서 깼고 강지찬은 서둘러 의사를 불러왔다.지아는 눈을 뜨고 유진을 바라보더니 희미하던 시선이 차츰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언니?”작은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흥분한 듯 두 팔을 활짝 벌렸다.유진도 그런 지아의 두 팔을 안고는 크게 이상이 없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의사의 진찰이 끝났고 병세가 그나마 안정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인간의 두뇌는 자기보호 기능이 있어 안 좋은 일들은 지아가 선택적으로 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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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정유진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쯤 되었을까 새된 비명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살려주세요!”“엄마!”유진은 황급히 일어나 불을 켰다.지아는 두 손을 허공에서 휘적거리며 두 눈을 크게 뜨고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보아하니 아직 깨진 않은 채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정유진은 다급히 지아를 안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지아야 무서워하지 마. 언니가 있잖아, 그러니 괜찮을 거야...”지아는 한동안 깨지 못했고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엄마만을 외치고 있었다.정유진은 이런 환자는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어리고 예쁜 아이가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진 듯 예쁜 두 눈에 소름 돋는 공포만을 담고 있었다.“지아야, 지아야 일어나 봐! 언니야, 언니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 괜찮아, 지아야.”“지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요?”강지찬이 뛰어 들어오더니 이불째로 정유진과 강지아를 함께 품에 껴안았다.“악몽을 꿨나 봐요. 깨울 수가 없어요.” 정유진은 조급한 채 눈물을 터뜨리기 일보 지전이었다.강지찬은 익숙한 듯 답했다.“정상이에요. 이 정도면 많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에요, 예전엔...”과거를 회상할 새도 없이 강지찬이 말했다.“다시 시도해봐요, 깨우기만 하면 돼요. 안되면 내가 의사를 불러올게요.”의사가 온다 한들 진정제만 투여할 뿐이었고 강지찬은 지아가 진정제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정유진의 노력 끝에 지아가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내, 내가 또 놀라게 한 거야?”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죄책감 가득한 모습이었다.“미안해, 고의가 아니었어.”지아는 자신이 또 발작했음을 눈치채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이렇게 자주 아픈 모습을 보인다면 언니가 싫어하지 않을까?친척들처럼 미친년 취급하면서 영영 보러오지 않으면 어떡하지?오빠만이 날 싫어하지 않고 있어...지아는 와락 정유진을 껴안으며 말했다.“언니, 지아를 싫어하지 말아줘. 앞으로 최대한 발작도 안 하고 미친 짓도 않도록 노력할게. 날 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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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강 대표님, 지아가 잠들었어요. 당신도 얼른 돌아가서 쉬어요.”정유진은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지아에게 이불을 덮어줬다.오늘 밤은 유진이 수고를 해줬기에 강지찬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아니면, 나도 여기서 잘게요.”“...” 정유진이 멈칫했다.강지찬은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지아가 조금 이따 또 악몽을 꿀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정유진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아가 악몽을 꾸길 바란다는 거예요?”강지찬이 대답했다. “전에도 수많은 밤을 자지도 못하고 지아만 지킨 적이 많았어요.”오늘 밤은 유진이 있기에 그와 지아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정유진은 가슴이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강지찬은 지아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여기서 버티고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다.“당신이 안 가면 내가 갈게요.” 정유진은 말을 하며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온 밤 고생해줬는데 더는 유진을 건드릴 수 없었던 지찬이 한 발 물러났다.“그래요, 내가 갈게요. 얼른 쉬어요,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요.”정유진은 대꾸하지도 않았고 지찬은 방 한가운데 선 채 불쾌한 표정이었다.“왜 날 보지 못하는 거예요?”잠든 지아까지 있으니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강 대표님, 나가실 때 문 닫아주세요.” 유진이 말을 돌렸다.“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내 등에 마구잡이로 손자국 내던 거 잊었어요?” 강지찬이 짓궂게 받아쳤다.유진은 성이 난 채로 노기등등하게 지찬을 노려보며 말했다.“도대체 언제 나갈래요?”둘의 시선이 드디어 얽혔고 강지찬은 그제야 흡족한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다행히 지아는 더는 깨지 않았고 유진은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잘 수 있었다.얼른 출근길에 나서야 했기에 깨자마자 세수를 하고 옷부터 갈아입었다.지아는 아직도 자고 있었고 옆 방에 있는 강지찬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던 참에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강지찬의 아버지, 고세연, 그리고 처음 보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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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저번에도 말했지만, 당신 아드님이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정유진은 누군가와 크게 싸울만한 일은 벌이지 않는 사람이었다.하지만 그의 존엄성을 짓밟는 일은 참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한 눈빛으로 쳐다봤다.“여기에 온 건 지아 때문이에요. 저도 얼른 출근해봐야 하니, 길 좀 비켜주세요.”그녀의 모습은 류선과 고세연 같은 사람들 눈에는 억지로 고고한 척하는 것 같아 보였다.수많은 여자들은 강 씨네 남자들을 보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강지찬과 강지현 같은 젊고 멋진 청년들은 둘째치고 강홍식과 강홍택은 인생의 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질척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런데도 강지찬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그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고세연은 속으로 증오심을 불태우며 입을 열었다.“아버님, 전에는 멀쩡하던 지아가 갑자기 발작한 건 이 여자와 관계된 게 분명해요.”강홍식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지아한테 뭔 짓을 한 거야?”류선도 거들었다. “지아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곱게 보내주진 않을 거야!”정유진은 이 사람들과 더는 입씨름 하고 싶지 않아 말했다.“제가 뭘 했는지는 강지찬한테 물어보세요.”그러고는 류선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당신 아들한테 물어봐도 되고요. 자리에 있었으니.”류선은 움찔했다.“지현이가 왜 있었던거지? 너 세 형제한테 뭔 짓을 한 거야?”그 말에 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 자신도 언제부터 이렇게 매력 있는 사람이 돼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류선은 강홍식보다 더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거기다 대부분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하지 않던가.“이 천박한 년 내가 경고하는데, 지현이한테 뭔 짓이라도 했다간 서울에서 발붙일 수도 없게 해줄 거야!”정유진은 가슴이 찌릿찌릿했다.강지찬이 한빈을 대하는 수단을 직접 겪어봤으니 강 씨 집안의 능력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자신은 상관없었지만 아빠는 아직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고 예원과의 스튜디오도 이제 막 정상궤도에 진입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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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강지찬이 말을 마치자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정유진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녀는 두 귀를 의심했다.저 남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강지찬은 아침밥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어깨를 토닥거렸다.“여기선 먹지 못할 테니 회사로 가서 먹어요. 운전 조심하고요.”그는 기쁨과 흥분의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몸에 있던 스위치가 갑자기 켜진 듯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상당한 흥분감에 휩싸였다.지찬은 유진의 경악한 얼굴을 쳐다보며 그저 거칠게 입술부터 갖다 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그는 몇 배나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데려다줄까요?” 정유진은 완전히 어안이 벙벙해졌고 강지찬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말했다.“저,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그러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운전 조심해요. 지아는 내가 보고 있으니 안심하고요.”병실에 아직 사람이 가득 있어 데려다줄 수 없었기에 그녀가 보는 앞에서 쿨하게 문을 닫았다.그제야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강지찬의 심장은 쿵쾅거리다 못해 터져 나올 것 같았다.방금 그가 내뱉은 폭탄 발언은 위력이 상당했다. 정유진뿐만 아니라 강씨 집안 사람들 모두를 멍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심지어 그 자신조차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살면서 처음 겪는 일에 강지찬은 문 앞에서 몇 초간 정신을 가다듬었고 문밖에 있던 유진도 잠시 멍해 있더니 아침을 들고 떠났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강홍식이었다.“저런 후레자식, 저번에 내가 했던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게냐? 내가 말했었지,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저 어중이떠중이 같은 여자는 우리 가문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강지찬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그럼 절 집에서 쫓아내시죠.”쭉 말이 없던 강홍택이 입을 열며 훈계했다.“그게 아빠랑 말하는 태도냐? 지찬아, 작은 아빠가 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너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철들 때도 됐잖니. 우리 가족들 모두 널 위해 하는 말이야, 원수처럼 생각하지 말고.”강홍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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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강홍택과 류선은 떠났지만, 강홍식과 고세연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지아도 강홍식의 딸이었기 때문에 없는 사람 취급할 수는 없었다.그가 들어가서 보겠다고 하자 강지찬도 막지 않았다.지찬이 사 온 아침은 정유진이 모두 가져갔기에 형준을 시켜 다시 2인분을 사 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강홍식이 지아를 보러 들어가자 고세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찬 오빠, 회사 일로 바쁜 데, 제가 남아서 지아를 볼게요.”강지찬이 고세연을 한 눈 훑더니 답했다.“필요 없어, 지아를 돌봐줄 사람은 있거든. 지아도 널 싫어하니 앞으로는 다시 오지 마.”정유진이 앞으로 지아를 보러 자주 올 수도 있었으니 둘을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세연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버렸다.“지찬 오빠, 그렇게 제가 싫은 거에요? 제가 뭘 잘못했길래 절 이렇게 싫어하세요?”강지찬은 눈앞의 여자와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네가 잘했든 못했든 나랑은 상관없어. 아까 한 말 못 들었니?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그러니 너도 앞으로 본가에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강 씨 예비 며느리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전에는 일일이 신경 쓰기 싫었는데 앞으로는 알아서 잘 처신해.”강지찬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꺼져!”고세연은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며 불쾌함을 온 얼굴로 티 내고 있었다.“아버님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예요. 정유진을 갖고 노는 거라면 뭐라 할 순 없지만, 강 씨 가문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재벌 집 남자 중에 일편단심인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정유진 한 명 정도는 이해하려고 했다.강지찬이 지금은 좋아한다지만 남자의 호감은 유통기한이 냉장고 속 남은 잔반들보다도 짧았다.고세연은 한발 물러선 자신이 충분히 사려 깊고 마음이 넓어 보였고 이런 자신이 재벌 집 맏며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강지찬은 화를 누르며 말했다.“꺼지지 못해?”고세연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정유진은 그녀가 떠난 후 강지찬이 어떤 장면들을 마주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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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정유진은 강지찬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이제 진짜로 그가 두려워졌다.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전화를 계속했고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정유진은 밥도 넘어가지 않았지만 강지찬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그냥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까 했던 말 진심이라고. 먼저 밥 먹어요, 저녁에 다시 잘 얘기해봐요.”“...”밥은 먹지 못할 게 분명했고 그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강 대표님이 무슨 생각이든 상관없어요. 전 우리의 관계가 협력관계 그 이상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그럴 리는 없을 텐데요.”강지찬은 거리를 두는 유진의 태도에 화가 났다.“나 강지찬이 당신한테 자격 미달일 리는 없을 텐데요?”“제가 자격 미달이에요.”“당신이 자격 미달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요.”“...” 유진은 할 말을 일었다.젠장, 왜 이 남자는 왜 날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거지?고세연도 있으면서?아니, 그와 고세연이 어떤 관계든 상관없이 엮이고 싶지 않았다.“강 대표님, 감정은 둘 사이의 일인데 억지로 요구할 수 없겠죠? 외로워서 갖고 놀만 한 사람을 찾는 거라면 죄송한데 사람 잘못 찾으셨어요.”정유진이 차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계속 이렇게 귀찮게 구신다면 앞으로 지아를 보러 갈 수는 없을 것 같네요.”“날 위협하는 거예요?” 강지찬이 푸흡하고 옅게 비웃었다.“그럼 지켜보죠.”말을 마치고는 전화를 끊었고 정유진은 실로 어이가 없었다.그가 사준 아침밥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커피를 내리고 비스킷을 조금 먹었다.요 며칠 신안의 착공 업무에 열중하느라 손에 쌓인 일감이 점점 많아졌다.특히 상록수 별장의 설계도는 제때 완성해야 했다.오후 세 시, 눈 코 뜰 새 없이 돌아치고 있는데 키키가 노크하고 들어왔다.“누나, 밖에서 누가 찾는데요.”뒤이어 강홍식과 고세연이 사무실로 들어왔다.키키는 고객인 줄 알고 열성적으로 어떤 음료를 마실지 물어봤고 정유진이 담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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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공사현장에서 돌아온 예원은 문밖에 주차된 고급 승용차와 경호원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키키를 포함한 사람들도 일에 집중할 수 없어 밖에 숨어 대기하고 있었다.“뭐 하는 거야 저 사람들, 안에 누가 있는데?”예원이 채 마시지도 못한 어시스트의 밀크티를 빼앗아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목말라 죽는 줄 알았어. 오늘 너무 덥네.”키키가 답했다.“안에 웬 아저씨랑 미녀 한 분 계시던데요. 누나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거로 봐선 소란을 피우러 온 것 같아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쪽에서 호통 소리가 들렸다.“내가 걔 아비다, 내가 누구랑 결혼할지 정하면 그대로 결혼하는 거야!”모두 말문이 막혔다.예원이 밀크티를 어시스트에게 돌려주고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안으로 쳐들어갔다.사무실에 있던 유진은 평온한 얼굴로 예원을 보고는 한마디 묻기까지 했다.“돌아왔어? 현장은 별일 없지?”현장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다고, 예원이 둘을 쳐다보며 물었다.“누구야?”정유진이 대답했다. “강 대표님 아버지와...”그녀도 고세연이 도대체 무슨 존재인지 답할 수 없었다.하지만 예원은 테이블에 놓은 카드를 보고는 순식간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카드를 주어 들고는 고세연에게 쑤셔 넣으며 그들을 문밖으로 밀어냈다.“가세요, 어르신. 무슨 일이 있으시면 집에 가서 아들이랑 잘 얘기해보세요. 여기서 이렇게 깽판 부리시면서 화내시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흰 책임 못 져요.”정유진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어르신 오해하지 마세요. 이 거래를 싫다고 한 건 제가 가진 품격이 이 카드보다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당신 아드님이랑은 상관없고요.”둘이 못 알아들을까 봐 한 마디 덧붙였다.“말했잖아요, 저랑 강지찬은 아무 관계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요!”고세연은 당연히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정유진, 내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 다시 한번 지찬 오빠한테 꼬리치면 그땐... 흥!”그렇게 둘은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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