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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강지찬은 겨우 저택으로 돌아갔다. 방금 문에 들어서자 역시 갓 돌아온 강원훈과 마주쳤다.둘은 거의 한 달 만에 만난 듯했다. 지난번 만남은 K그룹의 주주총회에서였다.애초에 강지찬은 강원훈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작은 삼촌은 회사에 한가한 직무에 이름만 올리고 있어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회사에 나갈 뿐이었다.하필 오늘 강 대표의 기분이 좋지 않았으니 웃어른이라도 면치 못하고 한 소리 듣고 말았다.“회사 대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던지는 기억하세요?”강원훈은 지찬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체면 따윈 챙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몸에 기댔다.“왜, 기분 안 좋은 일 있어?”강지찬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강홍식의 별채로 휘적휘적 들어갔고 강원훈은 그런 그의 뒷모습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오랜만에 왔는데,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자.”강지찬은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따지러 들어갔다.“저런 싸가지 없는 놈, 어른 공경을 모른다니까.”강원훈이 투덜거렸다.원훈은 올해 서른둘로, 조카인 강지찬보다 네 살이 더 많았다.그의 존재는 강 씨 집안에서 실로 애매했는데 강지찬 할아버지의 늦둥이로 강홍식, 강홍택과는 배다른 형제였다.늦둥이여도 심한 늦둥이였는데 강원훈이 태어날 때 지찬의 할아버지는 환갑을 넘긴 나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한물간 배우였으며 한평생 강 씨 집안 대문을 넘은 적도 없었다.사생아인 원훈은 이름도 강 씨 자식들의 돌림자를 쓰지 않았고 족보에도 이름을 남길 수 없었다.다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에게도 주식을 얼마간 남겨줬기에 명실상부한 방랑도련님이 되었던 것이다.강홍식과 강홍택도 그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났기에 형제간의 정 따위는 있을 리 만무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식솔 하나 더 먹여 살리는 건 강씨 집안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영리하고 능력 있는 직계 손주인 강지찬이 있었기에 할아버지는 강원훈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강지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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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강지찬은 본가에 남아 식사를 하지 않은 채 아버지의 화만 잔뜩 돋우고는 떠나버렸고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상황이라 저택의 누구도 희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강지찬은 부경원으로 돌아가는 대신 금방 앓고 난 지아가 마음에 놓이지 않아 바로 요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이번에 지아는 오빠를 향해 뛰어오기는커녕 그의 뒤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오빠, 언니는?”“언니는 야근하고 있어.”지아는 착한 아이였다. 자신의 병이 사람을 괴롭힌다는 걸 알았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했고 그만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알겠어, 언니가 시간 나면 날 보러 오겠지.”강지찬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물었다.“밥은 먹었어?”“먹었어, 만두도 먹고 사골국도 마셨지.”지아가 눈을 깜빡이며 오빠를 쳐다보더니 되물었다.“오빠는 아직 안 먹은 거야?”“응.” 강지찬의 대답에 지아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사람 걱정하게 한다니까.”형준은 이미 저녁을 사러 나갔고 지찬은 옆방에서 간단히 샤워한 뒤 옷을 갈아입었다.요양원은 거의 집과 마찬가지였고 해마다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야 했기에 둘은 이런 생활이 익숙했다.지찬은 식사를 하며 정유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 여자가 또 안 받는다고?’그래도 유일한 위안은 그녀가 지찬의 번호를 차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저녁 시간에는 게임을 하지 못하게 막았기에 지아는 옆에서 젠가를 놀고 있었다.“지아야, 언니 좋아?”“좋아, 너무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언니가 옆에 있으면 안전감이 들었고 악몽을 꿀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었기 때문이다.강지찬은 슬쩍 질투가 났는지 짓궂게 물었다.“언니가 제일 좋으면, 나는?”“오빠는 두 번째.”강지찬은 말문이 막혔다.자신의 체면을 살려주지도 않는 동생이 얄미웠지만, 아이랑 실랑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그럼 오빠가 언니랑 결혼해서 새언니로 데리고 오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쾅 소리와 함께 지아의 손에 들려있던 젠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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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아침 댓바람부터 강지현이 무슨 일이지?예원이가 황급히 인사를 건넸다.“강 사장님 언제 오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죠?”강지현은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린 것 같았다. 아침이긴 했지만 8월의 날씨에 추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릴 수 있을까?보아하니 몸이 허약하긴 한 것 같았다.“아닙니다, 몇 분 안 됐어요.” 강지현의 옅은 미소는 마치 안개가 걷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고 예원은 잘생겼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잠시 기다리세요, 금방 문 열어드릴게요.”강지현이 자리를 내어주고는 정유진을 바라봤고 유진의 시선도 그의 얼굴을 훑었다.며칠 전 강지찬의 주먹에 맞은 얼굴은 이미 부기가 가라앉았지만, 입가에 상처 딱지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지현 씨 무슨 일이시죠?”설계도 제출기한은 아직 멀었기에 오늘의 방문은 설계도 때문은 아닐 것이다.강지현이 코트 주머니에서 물건 두 가지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건네줬다.“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해외에서 가지고 온 흉터 제고 연고에요. 효과가 있는지 써봐요.”정유진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만져봤다.이마에 난 상처는 나아진 지 꽤 됐지만, 상처가 깊었기에 딱지가 진 후 핑크색의 흉터를 남겼었다.의사에게 물어봤지만, 흉터는 제거할 수 없다고 했고 며칠간 양옆으로 앞머리를 내려 흉터를 가려봤지만 예상치 못하게 강지현에게 들켜버렸다.정유진은 연고를 받아들고 감동에 겨워 말했다.“고마워요, 요즘 흉터 제거 제품을 쓰고 있긴 한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어요.”강지현은 그의 손에 들린 연고를 가리키며 답했다.“이건 효과가 좋을 거에요, 전에 써봤는데 괜찮더라고요.”이때 예원이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어머, 지현 씨, 마음도 예쁘셔라.”“친구끼리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강지현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때 한 사내애가 화려한 붉은 장미꽃다발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혹시, 누가 유진 씨죠?”정유진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전데요.”“유진 씨 꽃입니다. 받아주세요.”정유진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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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예원은 일이 커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흉터 연고랑 장미꽃 중에, 뭐가 더 좋아?”의도가 분명한 질문이었기에 정유진은 걸려들지 않았다.“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흉터 연고는 나한테 쓸모 있는 거잖아.”그리고는 꽃을 예원의 품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네가 좋아하면 그냥 가져.”“너 안 가지려고? 그럼 그냥 버린다?”예원의 질문에 유진이 대답했다.“마음대로 해.”키키가 마침 문으로 들어서더니 단번에 장미꽃을 낚아채며 말했다.“버리지 말아요, 아까운 꽃을 왜 버려요, 학교에 갖고 가서 여자친구나 줘야겠어요.”예원이는 그런 키키를 콩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남이 버린 꽃을 여자친구한테 준다고? 너무 짠돌이야. 돈이 없으면 한 송이만 사도 되잖아?”키키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이건 짠돌이가 아니라 재활용이라고 하죠.”예원은 두 귀를 의심했다. 이런 놈은 어떻게 여자친구를 찾은 거지?키키는 그대로 꽃을 안고 문을 나섰고 커피 몇 잔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꽃은?” 예원이 물었다.“저 옆 거리 꽃집에 팔아버렸어요. 그 큰 꽃다발을 반값에 팔았다니깐요. 꽃집 사장이 오늘 아침 갓 따온 꽃이란 걸 알아보더니 바로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돈으로 커피 몇 잔을 사고도 만원이 남았으니까, 이걸로 여자친구한테 꽃이라도 사주려고요. 이러면 됐죠?”“...” 예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대단하다. 너, 여자친구가 있는 게 대단해!”그 뒤로도 사흘간 매일 아침 유진은 강지찬이 보낸 장미꽃을 받았다.하지만 지찬은 나타나지도, 전화를 걸어오지도 않았다.유진의 먼저 전화를 걸 리는 없었기에 꽃집에 연락해 더는 보내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넷째 날, 또 꽃 배달이 왔고 키키가 적극적으로 나섰다.“제가 서명할게요, 제가!”꽃을 받은 키키가 모두에게 물었다.“오늘은 뭘 먹고 싶어요?”요 며칠 모두들 밖에서 아침을 사 먹지 않았고 회사에서 키키가 사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정유진은 그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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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강지찬이 출장을 갔다는 소식에 예원은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회사의 컴퓨터로 설계도를 그리는 게 더 편했기에 회사에서 야근하기로 했다.예원은 열 시쯤 되자 버티지 못하고 잠을 자러 돌아갔고 회사에는 유진 혼자 남아 있었다.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전화벨이 울리자 화들짝 놀랐고 확인하니 지아에게서 온 전화였다.유진은 빙그레 웃더니 바로 전화를 받았다.“지아야, 왜 아직 안 잤어?”그녀는 컴퓨터 우측 하단을 쳐다봤고 시간은 이미 열두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잠이 안 오는 거지?”유진은 지아가 자신과 이야기 좀 나누려는 줄 알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려고 했다.바로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언니, 나 무서워.”이불 속에 숨어서 이야기하는 듯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정유진은 가슴이 철렁했다.“왜? 악몽을 꾼 거야?”“아니, 밖에 나쁜 사람이 있어.”휴대전화를 든 유진의 손이 멈칫했다.“밖에 나쁜 사람이 있다고? 병실 밖에?”유진의 목소리를 들은 지아는 더욱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언니, 나 무서워, 빨리 구하러 와.”유진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컴퓨터를 끄는 것도 잊은 채 가방과 열쇠만을 챙겨 뛰어나갔다.“지아야, 무서워하지마. 언니가 금방 갈게. 문만 잠그고 있어.”지아의 지능이 9세 수준이라는 걸 깨달은 유진이 재빨리 덧붙였다.“문 잠글 줄 알지?”“알아, 이미 문 잠그고 있어.”유진은 최고 속도로 차를 운전했고 도중에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운전 도중에 갑자기 지아의 방문 밖은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나쁜 놈이 있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지아에게 물었다.“지아야, 어떻게 나쁜 사람인지 알았어?”“나쁜 놈이 나한테 문을 열라고 했어.”지아가 갑자기 낮게 신음했다.“그놈이 날 불렀어, 언니 나 너무 무서워!”“지아야 무서워하지마. 언니 금방 도착하니까.”지금 시간에는 길에 차량도 적었던 터라 20분쯤 지나 요양원에 도착했다.“지아야, 언니 왔어. 조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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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사실 유진은 지찬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지아의 마음을 져버릴 수는 없었다.지아는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린 듯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특히 유진에게는 더더욱 그랬다.어쩔 수 없이 유진은 지아가 찾아준 여벌 잠옷과 속옷을 들고 옆방으로 갔고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기에 더 고민하지 않은 채 욕실로 향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휴대전화로 지아의 굿나잇 메시지가 도착했고 바로 유진도 답장을 보냈다.강지찬의 침대에서 불편해 제대로 잠을 못 잘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빨리 잠이 들어버렸다.요즘 하도 바쁜 데다 여러모로 지쳐있어 그대로 이튿날 아침까지 푹 자고 말았다.잠에서 깨어난 유진은 몸이 개운했는지 눈을 감고 이불 안에서 기지개를 켰고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제대로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오른손에 무언가 닿은 것 같았고 자세히 만져보니 단단하고 뜨거웠다. 이 촉감은...유진은 감전이라도 된 듯 손을 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단단한 남자의 가슴팍이 그대로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시선을 위로 올리니 관능적인 울대가 보였고, 그 위로는... 얇은 입술에 오뚝한 콧날…유진은 화들짝 놀랐다.“왜 여기 있어요?”지찬 역시 방금 일어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좋아요? 단단해?”이게 무슨 남사스러운 말이지?유진은 이불을 돌돌 만 채로 벌떡 일어났다.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없어지자 헐렁한 반바지만 입은 강지찬의 맨몸이 드러났다.유진은 정신을 제대로 잡고 있을 수 없었다.“출장 갔다면서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강지찬이 침착하게 그녀에게 상기시켰다.“여긴 내 방이고, 당신은 내 침대에 있잖아요.”“물론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언제 돌아온 거냐고요.”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상당한 충격에 잠이 확 깨버렸다.강지찬이 느릿느릿 대답했다.“목소리 좀 낮춰요, 다 들려요. 어젯밤 서울에 도착했고 새벽 1시쯤 이곳에 도착했어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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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지아는 잠에서 깨자마자 인형을 안고 유진을 찾아왔지만 이미 세수를 마친 강지찬만 보일 뿐이었다.“오빠, 돌아왔어?”그래도 오빠를 보니 지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언제 온 거야? 내 선물은 갖고 왔어?”강지찬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핑크색 쇼핑백이 네 거야, 직접 확인해봐.”지아는 흥분해 뛰어갔고 옆에 놓인 베이지색 쇼핑백 하나가 더 보였다.지아는 단번에 간호사 언니가 자신의 오빠는 새언니에게 꼭 선물 두 개씩 사 온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새언니 것만 있고 자신의 몫은 없다고 생각했다.지아는 핑크색 쇼핑백을 안고 시무룩해서 물었다.“오빠, 이건 누구 거야?”지찬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에 회의도 있어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언니 꺼야, 주는 걸 깜빡했어.”지아는 언니 것이란 말에 바로 기분이 풀렸다.“언니 거구나. 강지찬 이 바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다니.”강지찬은 지아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이제 오빠가 가져다줄게. 착하지, 오빠 먼저 출근할게.”하지만 지아는 단번에 그의 손을 낚아챘다.“오빠, 나 집 가고 싶어.”어젯밤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이곳에 있기 싫어졌다.강지찬이 멈칫하더니 말했다.“집? 의사 선생님이 지금 집 가도 된다고 얘기하지 않았잖아.”지아도 질세라 대꾸했다.“하지만 악몽도 꾸지 않잖아. 그리고 나 공주 보고 싶어.”공주는 지아의 반려견이었다. 상당히 준수하게 생긴 리트리버였고 지금은 본가에서 키우고 있었다.확실히 저번의 사고만 아니었다면 지아는 퇴원할 수 있었던 터라 지찬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이러자, 의현이를 불러올게. 의사 선생님이 퇴원할 수 있다고 하면 의현이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 말 잘 듣고, 말썽부리지 말아야 해, 알겠지?”“알겠어!”지아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돌아가면 언니를 집에 불러와서 놀 수 있겠다!”집에 불러온다고?지나치게 순진하네.하지만 아름다운 소망이긴 했다. 강지찬은 언제 그녀를 다시 집으로 속여 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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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선물을 주고도 맞을 짓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유진은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 가방을 보며 더 화가 났다.이 사람이 날 여기로 불러들인 이유가 이거였나?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기나 하는 걸까?“강 대표님...” 정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비켜주세요.”강지찬은 가방을 펄럭거리더니 말했다.“받아요.”“이유 없는 대가는 없다잖아요. 비킬래요, 말래요?”강지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비키지 않겠다는 태도를 내비쳤다.더운 날씨에 주차장에는 지붕조차 없었고 둘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그대로 대치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바삐 움직이는 노동자들이 들락날락했고 갑자기 안전모를 쓴 키 큰 남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이쪽을 향해 사진 한 장을 찍은 후 어딘가로 전송했다.사진을 보낸 뒤 남자는 계속 시멘트 한 봉지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정유진은 단단히 화가 났다.“안 비킨다 이거죠?”그녀는 강지찬의 선물을 받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조수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강지찬은 그대로 놀라버렸다.그녀는 바지를 입고 있어 손쉽게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차에 시동을 걸기도 전에 강지찬도 따라서 차에 올라탔다.이 뻔뻔한 행동에 별다른 수가 없었던 유진은 거울을 통해 뒷좌석에 탄 지찬을 보며 욕을 내뱉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대체 뭐 하려는 거에요?”강지찬은 거울을 통해 그녀를 차갑게 응시했다.“내 마음은 이렇게 명확한데, 모르겠어요?”정유진은 지친 마음으로 대답했다.“거절할게요.”“왜요?”“좋아할 리 없거든요, 강제로...”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누구나 다 눈치를 챌 수 있었고 강지찬 역시 짜증이 났다.변명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어떻게 말해야 할까? 남자들 사이의 경쟁과 수단이었다고...?“난 정말로 당신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면... 믿겠어요?”물론 유진의 외모가 자신의 취향에 딱 맞았고 그녀의 모습이 상당히 유혹적이었다는 것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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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강지찬 혼자서는 선물을 주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결국 이 어려운 임무를 지아에게 맡기기로 했다.지아는 가슴팍을 톡톡 내리치더니 자신 있게 말했다.“문제없어. 언니는 날 가장 아낀다니까.”그때 의현이 제안했다.“언니를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해 봐.”지찬도 옆에서 덧붙였다. “내가 쉬는 날에 말이야.”강지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다들 바보야? 이렇게 작은 일도 못 해내다니.”저녁을 먹고 난 후 강지찬과 최의현은 서재에서 중요한 일을 논의했다.최의현이 소파에 누운 채 입을 열었다.“둘째가 오늘 본가로 돌아갔어. 원래 지아도 본가에 가고 싶어 했는데 그냥 내 맘대로 부경원에 데리고 왔어.”강지찬이 차갑게 대꾸했다.“걔가 어디 살든 자기 자유지, 더 할 말 없어?”“사실, 정유진의 작업실에 간 적 있대. 잠시 들렀다가 나왔는데 정유진한테 뭔가를 줬다고 하더라고.”강지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걔가 정유진한테 물건을 줬다고? 유진 씨가 받았어?”“미행한 사람에 따르면 받았대. 두 개의 흰 상자 같은데, 연고 같은 것처럼 보였다더라고.”강지찬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생각에 잠겼다.내가 준 건 버리더니, 강지현이 준 것은 받았다니.허, 좋은 줄도 모르는 여자군.“또 있어?” 강지찬의 질문에 최의현이 대답했다.“없어, 강지현 그 친구 몸이 진짜 허약한 모양이야. 자주 병원에 가더라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하지 않았어.”최의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그 친구가 한 것 같지는 않아. 야망이 있어도 그럴 에너지가 없거든. 강홍택은, 여자 문제로도 벅차 보이니 다른 속셈을 품을 여력이 없겠지.”강지찬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묻기만 했다.“한빈 쪽은 어떻게 됐어?”최의현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거긴 더 재밌어. 소희라는 여자가 임신한 것 같아. 지금 결혼하자고 난리인데, 한빈이 동의하지 않아. 아, 너 그 여자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강지찬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알고 있었구나.” 최의현이 쯧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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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부경원은 강 씨네 본가가 아니었다.고세연은 이곳에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본가 쪽에서 강지찬이 고세연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해두긴 했으나 그곳에 사는 것도 아니었고 강홍식이 있었기에 본가의 도우미도 그녀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하지만 부경원은 달랐다.고세연의 자동차가 온종일 문 앞에 세워져 있었어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곳이었다.지난번 강지찬과 싸우고 난 후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이는 고세연을 불안하게 했다.어쩔 수 없이 강지아부터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전화가 연결되고 고세연의 아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아야, 새언니 보고 싶었어?”강지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새언니였다.하지만 감히 새언니 눈 밖에 날 수는 없었다.간호사 언니 말로는 새언니가 오빠한테 지아의 나쁜 말을 한다면 오빠가 지아를 더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무슨 일이야?” 지아는 웃지 않았다.풀이 죽은 얼굴로 조금 전 정유진과 영상통화 할 때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미술 선생님까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다.이 선생님은 강지찬이 특별히 고용한 미술대학 은퇴 교수로, 전시회까지 열었던 예술가이며 서울에서 이름 날린 사람이었다.선생님은 지아를 유난히 좋아했기에 그녀의 친절한 할머니가 되어줬고 지아도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통화를 끊은 후 지아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선생님은 그녀의 얼굴 가득한 슬픔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슬퍼 보이지?”지아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선생님, 사람이 커가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마주해야 하나요?”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그러자 지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저도 마주해야겠네요. 그 여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만나야 하니깐요.”선생님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며 조퇴를 허락했지만 대신 숙제를 남겨줬다.고세연은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하고 기사를 데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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