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찬이 출장을 갔다는 소식에 예원은 일찍 퇴근하지 않았다.회사의 컴퓨터로 설계도를 그리는 게 더 편했기에 회사에서 야근하기로 했다.예원은 열 시쯤 되자 버티지 못하고 잠을 자러 돌아갔고 회사에는 유진 혼자 남아 있었다.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전화벨이 울리자 화들짝 놀랐고 확인하니 지아에게서 온 전화였다.유진은 빙그레 웃더니 바로 전화를 받았다.“지아야, 왜 아직 안 잤어?”그녀는 컴퓨터 우측 하단을 쳐다봤고 시간은 이미 열두 시를 넘긴 시각이었다.“잠이 안 오는 거지?”유진은 지아가 자신과 이야기 좀 나누려는 줄 알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려고 했다.바로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언니, 나 무서워.”이불 속에 숨어서 이야기하는 듯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정유진은 가슴이 철렁했다.“왜? 악몽을 꾼 거야?”“아니, 밖에 나쁜 사람이 있어.”휴대전화를 든 유진의 손이 멈칫했다.“밖에 나쁜 사람이 있다고? 병실 밖에?”유진의 목소리를 들은 지아는 더욱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언니, 나 무서워, 빨리 구하러 와.”유진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컴퓨터를 끄는 것도 잊은 채 가방과 열쇠만을 챙겨 뛰어나갔다.“지아야, 무서워하지마. 언니가 금방 갈게. 문만 잠그고 있어.”지아의 지능이 9세 수준이라는 걸 깨달은 유진이 재빨리 덧붙였다.“문 잠글 줄 알지?”“알아, 이미 문 잠그고 있어.”유진은 최고 속도로 차를 운전했고 도중에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운전 도중에 갑자기 지아의 방문 밖은 경호원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나쁜 놈이 있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지아에게 물었다.“지아야, 어떻게 나쁜 사람인지 알았어?”“나쁜 놈이 나한테 문을 열라고 했어.”지아가 갑자기 낮게 신음했다.“그놈이 날 불렀어, 언니 나 너무 무서워!”“지아야 무서워하지마. 언니 금방 도착하니까.”지금 시간에는 길에 차량도 적었던 터라 20분쯤 지나 요양원에 도착했다.“지아야, 언니 왔어. 조금 이
사실 유진은 지찬의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게 달갑지 않았지만, 지아의 마음을 져버릴 수는 없었다.지아는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린 듯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특히 유진에게는 더더욱 그랬다.어쩔 수 없이 유진은 지아가 찾아준 여벌 잠옷과 속옷을 들고 옆방으로 갔고 이미 꽤 늦은 시간이었기에 더 고민하지 않은 채 욕실로 향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휴대전화로 지아의 굿나잇 메시지가 도착했고 바로 유진도 답장을 보냈다.강지찬의 침대에서 불편해 제대로 잠을 못 잘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빨리 잠이 들어버렸다.요즘 하도 바쁜 데다 여러모로 지쳐있어 그대로 이튿날 아침까지 푹 자고 말았다.잠에서 깨어난 유진은 몸이 개운했는지 눈을 감고 이불 안에서 기지개를 켰고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제대로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오른손에 무언가 닿은 것 같았고 자세히 만져보니 단단하고 뜨거웠다. 이 촉감은...유진은 감전이라도 된 듯 손을 뺐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단단한 남자의 가슴팍이 그대로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시선을 위로 올리니 관능적인 울대가 보였고, 그 위로는... 얇은 입술에 오뚝한 콧날…유진은 화들짝 놀랐다.“왜 여기 있어요?”지찬 역시 방금 일어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좋아요? 단단해?”이게 무슨 남사스러운 말이지?유진은 이불을 돌돌 만 채로 벌떡 일어났다.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없어지자 헐렁한 반바지만 입은 강지찬의 맨몸이 드러났다.유진은 정신을 제대로 잡고 있을 수 없었다.“출장 갔다면서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강지찬이 침착하게 그녀에게 상기시켰다.“여긴 내 방이고, 당신은 내 침대에 있잖아요.”“물론 여기가 어딘지 알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언제 돌아온 거냐고요.”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상당한 충격에 잠이 확 깨버렸다.강지찬이 느릿느릿 대답했다.“목소리 좀 낮춰요, 다 들려요. 어젯밤 서울에 도착했고 새벽 1시쯤 이곳에 도착했어요. 알았죠?”
지아는 잠에서 깨자마자 인형을 안고 유진을 찾아왔지만 이미 세수를 마친 강지찬만 보일 뿐이었다.“오빠, 돌아왔어?”그래도 오빠를 보니 지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언제 온 거야? 내 선물은 갖고 왔어?”강지찬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핑크색 쇼핑백이 네 거야, 직접 확인해봐.”지아는 흥분해 뛰어갔고 옆에 놓인 베이지색 쇼핑백 하나가 더 보였다.지아는 단번에 간호사 언니가 자신의 오빠는 새언니에게 꼭 선물 두 개씩 사 온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새언니 것만 있고 자신의 몫은 없다고 생각했다.지아는 핑크색 쇼핑백을 안고 시무룩해서 물었다.“오빠, 이건 누구 거야?”지찬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에 회의도 있어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언니 꺼야, 주는 걸 깜빡했어.”지아는 언니 것이란 말에 바로 기분이 풀렸다.“언니 거구나. 강지찬 이 바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다니.”강지찬은 지아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이제 오빠가 가져다줄게. 착하지, 오빠 먼저 출근할게.”하지만 지아는 단번에 그의 손을 낚아챘다.“오빠, 나 집 가고 싶어.”어젯밤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이곳에 있기 싫어졌다.강지찬이 멈칫하더니 말했다.“집? 의사 선생님이 지금 집 가도 된다고 얘기하지 않았잖아.”지아도 질세라 대꾸했다.“하지만 악몽도 꾸지 않잖아. 그리고 나 공주 보고 싶어.”공주는 지아의 반려견이었다. 상당히 준수하게 생긴 리트리버였고 지금은 본가에서 키우고 있었다.확실히 저번의 사고만 아니었다면 지아는 퇴원할 수 있었던 터라 지찬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이러자, 의현이를 불러올게. 의사 선생님이 퇴원할 수 있다고 하면 의현이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 말 잘 듣고, 말썽부리지 말아야 해, 알겠지?”“알겠어!”지아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돌아가면 언니를 집에 불러와서 놀 수 있겠다!”집에 불러온다고?지나치게 순진하네.하지만 아름다운 소망이긴 했다. 강지찬은 언제 그녀를 다시 집으로 속여 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따라
선물을 주고도 맞을 짓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유진은 정교하게 포장된 선물 가방을 보며 더 화가 났다.이 사람이 날 여기로 불러들인 이유가 이거였나?내가 얼마나 바쁜지 알기나 하는 걸까?“강 대표님...” 정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비켜주세요.”강지찬은 가방을 펄럭거리더니 말했다.“받아요.”“이유 없는 대가는 없다잖아요. 비킬래요, 말래요?”강지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비키지 않겠다는 태도를 내비쳤다.더운 날씨에 주차장에는 지붕조차 없었고 둘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그대로 대치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바삐 움직이는 노동자들이 들락날락했고 갑자기 안전모를 쓴 키 큰 남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이쪽을 향해 사진 한 장을 찍은 후 어딘가로 전송했다.사진을 보낸 뒤 남자는 계속 시멘트 한 봉지를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정유진은 단단히 화가 났다.“안 비킨다 이거죠?”그녀는 강지찬의 선물을 받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조수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강지찬은 그대로 놀라버렸다.그녀는 바지를 입고 있어 손쉽게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차에 시동을 걸기도 전에 강지찬도 따라서 차에 올라탔다.이 뻔뻔한 행동에 별다른 수가 없었던 유진은 거울을 통해 뒷좌석에 탄 지찬을 보며 욕을 내뱉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대체 뭐 하려는 거에요?”강지찬은 거울을 통해 그녀를 차갑게 응시했다.“내 마음은 이렇게 명확한데, 모르겠어요?”정유진은 지친 마음으로 대답했다.“거절할게요.”“왜요?”“좋아할 리 없거든요, 강제로...”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누구나 다 눈치를 챌 수 있었고 강지찬 역시 짜증이 났다.변명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어떻게 말해야 할까? 남자들 사이의 경쟁과 수단이었다고...?“난 정말로 당신이 알고 있는 줄 알았다면... 믿겠어요?”물론 유진의 외모가 자신의 취향에 딱 맞았고 그녀의 모습이 상당히 유혹적이었다는 것을 부
강지찬 혼자서는 선물을 주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결국 이 어려운 임무를 지아에게 맡기기로 했다.지아는 가슴팍을 톡톡 내리치더니 자신 있게 말했다.“문제없어. 언니는 날 가장 아낀다니까.”그때 의현이 제안했다.“언니를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해 봐.”지찬도 옆에서 덧붙였다. “내가 쉬는 날에 말이야.”강지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다들 바보야? 이렇게 작은 일도 못 해내다니.”저녁을 먹고 난 후 강지찬과 최의현은 서재에서 중요한 일을 논의했다.최의현이 소파에 누운 채 입을 열었다.“둘째가 오늘 본가로 돌아갔어. 원래 지아도 본가에 가고 싶어 했는데 그냥 내 맘대로 부경원에 데리고 왔어.”강지찬이 차갑게 대꾸했다.“걔가 어디 살든 자기 자유지, 더 할 말 없어?”“사실, 정유진의 작업실에 간 적 있대. 잠시 들렀다가 나왔는데 정유진한테 뭔가를 줬다고 하더라고.”강지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걔가 정유진한테 물건을 줬다고? 유진 씨가 받았어?”“미행한 사람에 따르면 받았대. 두 개의 흰 상자 같은데, 연고 같은 것처럼 보였다더라고.”강지찬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생각에 잠겼다.내가 준 건 버리더니, 강지현이 준 것은 받았다니.허, 좋은 줄도 모르는 여자군.“또 있어?” 강지찬의 질문에 최의현이 대답했다.“없어, 강지현 그 친구 몸이 진짜 허약한 모양이야. 자주 병원에 가더라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하지 않았어.”최의현이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그 친구가 한 것 같지는 않아. 야망이 있어도 그럴 에너지가 없거든. 강홍택은, 여자 문제로도 벅차 보이니 다른 속셈을 품을 여력이 없겠지.”강지찬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묻기만 했다.“한빈 쪽은 어떻게 됐어?”최의현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거긴 더 재밌어. 소희라는 여자가 임신한 것 같아. 지금 결혼하자고 난리인데, 한빈이 동의하지 않아. 아, 너 그 여자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강지찬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알고 있었구나.” 최의현이 쯧 소리
부경원은 강 씨네 본가가 아니었다.고세연은 이곳에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본가 쪽에서 강지찬이 고세연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해두긴 했으나 그곳에 사는 것도 아니었고 강홍식이 있었기에 본가의 도우미도 그녀를 막아설 수는 없었다.하지만 부경원은 달랐다.고세연의 자동차가 온종일 문 앞에 세워져 있었어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 곳이었다.지난번 강지찬과 싸우고 난 후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이는 고세연을 불안하게 했다.어쩔 수 없이 강지아부터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전화가 연결되고 고세연의 아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아야, 새언니 보고 싶었어?”강지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새언니였다.하지만 감히 새언니 눈 밖에 날 수는 없었다.간호사 언니 말로는 새언니가 오빠한테 지아의 나쁜 말을 한다면 오빠가 지아를 더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무슨 일이야?” 지아는 웃지 않았다.풀이 죽은 얼굴로 조금 전 정유진과 영상통화 할 때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미술 선생님까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다.이 선생님은 강지찬이 특별히 고용한 미술대학 은퇴 교수로, 전시회까지 열었던 예술가이며 서울에서 이름 날린 사람이었다.선생님은 지아를 유난히 좋아했기에 그녀의 친절한 할머니가 되어줬고 지아도 그녀를 매우 좋아했다.통화를 끊은 후 지아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선생님은 그녀의 얼굴 가득한 슬픔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슬퍼 보이지?”지아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선생님, 사람이 커가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마주해야 하나요?”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그러자 지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저도 마주해야겠네요. 그 여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만나야 하니깐요.”선생님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며 조퇴를 허락했지만 대신 숙제를 남겨줬다.고세연은 자신이 직접 차를 운전하고 기사를 데려오
고세연의 낯빛은 무섭게 굳어졌다.“공사 현장에서 얼마나 있은거야?”김주환이 낄낄 웃으며 고세연의 앞에 놓인 커피를 바라보며 말했다.“여긴 와 본 적이 없어서 커피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네.”고세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웨이터를 불러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시켜주었고 김주환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오래 머무르지도 않았고, 강 대표님도 차에 올랐어. 근데 잠시 후 내려오더니 그 여자가 차 밖으로 강 대표님 손에 있던 쇼핑백을 던져버리던데.”고세연이 불만스럽게 대꾸했다.“이게 다야? 끝났어?”김주환은 고세연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응, 끝이야.”고세연은 화가 치밀었다. 카페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뺨이라도 한 대 올리쳤을 것이다.“네 눈깔이나 제대로 관리해. 그리고, 앞으로 일 없으면 날 찾아오지 마.”말을 마친 고세연은 가방에서 돈 두 묶음을 꺼내 김주환에게 던졌다.김주환이 돈을 받아들더니 더욱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화내지 마, 나한테 또 다른 소식이 있어. 그날 그 여자가 요양원에 있었고, 우연히도 강지찬도 밤중에 돌아오더라고. 아침에는 각자 요양원에서 나왔어.”“뭐라고?”고세연은 순간 당황했다.“이미 같이 있는 사이인 거야?”김주환은 케이크 한 조각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그 여자가 강지찬 방에서 잤다던데, 무슨 사이인지는 너도 잘 알겠지?”고세연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정유진 저 재수 없는 여자!입으로는 강지찬과 아무 사이도 아니라 하면서도 그의 침대에 기어 올라가? 날 뭐로 보는 거지?“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말하지 않았어?”김주환이 비열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널 너무 오래 보지 못해서 커피나 얻어 마시러 온 거야.”옆에 있던 지아는 그의 웃는 모습에 역겨운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왜 이 지저분한 남자와 고세연이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다 잠깐 부주의로 아이스크림을 손에 묻혔고 끈적거리는 느낌이 불편했다.“화장실 갈 거야.”고세연은 김주환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려고
지아는 지능이 9살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김주환의 음흉한 속내가 느껴지자 반항할 줄도 알았고 주환이 자신에게 가까워지자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살려주세요, 살려...”김주환은 낯빛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그대로 달려와 그녀의 입을 막았다.“지아 아가씨, 사실 나도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냥 당신 형이 너무 심하게 날 괴롭혀서 나도 당신한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고 싶을 뿐이죠.”김주환이 잔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무서워하지 마요. 그냥 지아를 너무 좋아해서요, 나한테...”강지아가 무서워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아이 같은 그녀의 사고방식으로는 상대가 가진 더러운 생각을 전혀 알 수 없었고 그저 자신을 때리려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진짜 성인 여성이었다면 이미 죽을 만큼 무서운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나쁜 놈을 물리치고 자신을 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남자는 힘이 상당히 컸고 그녀를 통제하기 위해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그녀의 두려움에 질린 눈동자를 보며 김주환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입만 맞추게 해주면,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그가 말하며 다가왔고 지아는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아랫배를 세게 찼다.김주환은 이런 어린아이가 호신술을 할 줄은 몰랐고 정확히 중요 부위를 걷어차이고 말았다.그는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고 지아는 서둘러 그를 밀쳐내고 문을 열고 도망쳤다.그는 고세연을 찾는 대신 그저 그 장소를 벗어나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맞아, 언니를 찾아가면 무섭지 않을 거야.그녀는 카페를 뛰쳐나와 계속 달렸다. 십자로를 지나고 또 다른 거리를 지나가며 멈추지 않았다.얼마나 달렸을까, 그녀는 겨우 지친 채 자리에 멈춰 섰다.거리는 오가는 차로 몹시 시끄러웠다.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고 기억과 현실이 겹쳐져 울창하던 숲이 높은 빌딩으로 변해있었다.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