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차 키를 들고 빠르게 예원에게 상황을 전달하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그녀는 휴대전화를 자동차 거치대에 올려놓고 지아의 마음부터 달래줬다.“지아야, 무서워하지마. 언니 이미 차 탔어. 바로 찾으러 갈게.”강지아는 눈물을 닦고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나 안 울어, 언니 기다릴게.”“카메라를 전환해서 주변에 큰 건물이 있나 봐봐. 그걸 카메라에 비춰줘.”유진도 아이를 돌본 적이 없어 어린애들이 전자기기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 몰랐다.“언니, 위치 알려고? 나 위치 보낼 줄 알아.”“... 그래, 얼른 보내줘.”그녀는 작은 창으로 띄워놓고 위치를 확인해보자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지아 뒤로 밀크티 가게가 보이자 그녀는 태양 아래 지아가 힘들 가봐 가게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다.한 편, 고세연은 전화 통화를 마친 뒤에도 지아가 나오지 않자 불안해졌다. 거기다 김주환도 화장실에 간다고 했는데 역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김주환이 쓰레기임을 알고 있었고 만약 지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큰 골칫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지아를 찾으러 나가려던 찰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김주환이 다가왔고 난처한 기색이 가득했다.고세연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지아는 어디 있어?”김주환은 그녀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녀의 심기도 거스르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돈을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도망쳤어...”“뭔 짓을 한 거야?”고세연의 질문에 김주환이 서둘러 해명했다.“아무것도 안 했어! 애가 미쳤는지 날 발로 차는 거야. 그대로 고자가 될 뻔했잖아.”“아직 손 대기 전이었나 봐?”고세연은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내리쳤다.“이 쓸모없는 놈, 죽고 싶어 환장했어? 왜 강지아를 건드려?”김주환은 비록 비열한 인간이었지만, 여자에게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이를 악물었다.“뭐야, 왜 그러고 있어? 빨리 사람이나 찾아!”고세연이 분노했다.“일을 그르치기만 했다 봐. 내 계획을 망치는
“지아야 뭐라고? 그날 밤 문을 두드렸던 사람이 경비원이었어?”말을 뱉자마자 유진의 머릿속에는 음흉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단 한 번 봤을 뿐이지만 그녀의 뇌리에 깊게 박힌 얼굴이었다.당시 반응이 조금만 느렸더라면 그 경비의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을뻔했었다.그럼 그게 우연이 아니라 상습범이었다고?그럼 그날 밤 지아는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녀의 문을 두드린 나쁜 놈이 있었단 말이야?“맞아, 너무 싫어. 내 얼굴도 만졌어.” 지아는 혐오스럽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정유진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오빠한테 말한 적 있어?”지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 오빠는 너무 바쁘잖아. 나도 엄청나게 센 사람이야, 나쁜 놈한테서 멀리 도망쳤어.”유진은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아파 떨리는 손으로 강지찬의 번호를 눌렀다.한편 지찬은 금방 회의를 마치고 몇 명의 고위간부들과 일을 토론하고 있었다.그때 걸려온 전화 화면을 보며 실눈을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가 어쩌다 먼저 전화를 했지?보고 싶었나?이런 생각에 지찬이 휴대전화를 들고 탕비실로 들어와서야 전화를 받았다.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정유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나랑 지아가 당장 찾으러 갈 거예요. 그리고, CCTV 좀 확인해주세요. 귀국한 날 밤 누군가 지아의 방문을 두드렸대요, 자세한 상황은 만나서 얘기해요.”정유진은 용건만을 말한 채 바로 전화를 끊었고 강지찬은 굳은 얼굴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한편 강지아는 고개를 갸우뚱한 채 물었다.“언니, 오빠랑 통화한 거야? 우리 오빠 찾으러 가?”“응.” 유진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지아는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좋아! 오빠 찾으러 가자.”그리고는 강지찬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오빠는 바보야. 선물도 줄 줄 모르고,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잖아. 언니, 왜 오빠가 준 선물을 받지 않는 거야?”“대가 없는 선물은 없으니까.” 유진의 대답에 지아가 눈을 깜빡이더니 물었다
K그룹 대표 사무실에서,유진에게서 자신이 귀국하던 날과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지찬은 분노하고 말았다.화를 못 이겨 옆에 놓인 의자를 세게 걷어찼고 그 바람에 지아도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지찬은 당장 형준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분부했고 의현도 요양원 측에서 보내온 CCTV 영상을 확인해봤지만, 중간에 빈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CCTV가 삭제된 것 같아.” 의현이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내가 소홀한 탓이에요.” 강지찬은 유진이 이전에 그에게 한 지적을 인정했다.정말로 경호원들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고 오늘 지아가 고세연이 나갈 때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지아의 병실 밖을 밤 10시 이후로 아무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형준은 놀라움에 몸서리쳤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제 불찰입니다.”유진은 한 손으로 지아를 끌어안고 말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경호원을 찾는 거예요.”그 사람은 강지찬이 해고한 사람이었고 그도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형준에게 그를 찾으라고 명령했다.지아는 자신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유진에게 물었다.“언니, 왜 오빠가 화가 난 거야? 너무 무서워 보여.”정유진은 진지하게 그녀에게 당부했다.“앞으로 나쁜 일이 생기면 바로 오빠한테 말해야 해, 알았지?”그 경호원이 지아에게 손을 댔다는 걸 생각하면 강지찬은 지금 당장 그 쓰레기 새끼를 찾아서 산산조각내고 싶었다.그때 지아가 망설이며 말했다.“근데 오빠는 너무 바빠. 거의 볼 수가 없어.”강지찬은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고개를 돌리자 유진의 비난하는 눈빛과 마주쳤다.강지찬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지아의 앞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그럼 앞으로 나쁜 일이 생기면 언니한테 말해, 알겠어?”지아는 바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알겠어 오빠!”정유진은 말문이 막혔다. 이 사람은 어디까지 더 뻔뻔해질 예정이지?지아는 대체 누구 동생인 거야?강지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유진은 오늘 있었던 계약 건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 건은 그녀와 키키가 한 달 정도 매달렸던 건이었다.회사에 돌아오니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고객도 이미 가버린 뒤였다.키키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 비 맞은 장닭마냥 늘어져 있었다.유진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미안해, 내 탓이야.”예원이 그녀를 훑어보더니 물었다.“왜 네 탓이야?”유진은 자신이 일을 제쳐두고 나간 행동에 변명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더 많은 계약을 따내게 노력할게.”예원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네 탓이야, 그래, 정말 널 죽이고 싶을 지경이지!”유진이 혼란스러워했다.“...응?”예원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네가 설계도를 너무 잘 만들어서 고객이 망설임 없이 계약을 체결했지 뭐야.”유진은 어안이 벙벙한 채 되물었다.“그럼 왜 다들 우울해 보이는 거야?”모두가 갑자기 책상을 두드리더니 큰 소리로 웃어댔다. 분명히 유진을 놀리려고 장난을 친 것이었다.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예원은 그녀를 사무실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고 솔직하게 얘기했다.“한빈이랑 네 사주가 상극인가 봐. 헤어진 뒤 계약을 얼마나 쉽게 체결했는지 봐봐. 오늘 이 대형 아파트 계약은 안 될 줄 알았는데, 고객이 네 설계도에 대해 칭찬이 끊이질 않았어. 다들 돈이 많나 봐, 너랑 나만 빼고 말이야.”정유진은 물을 한 컵 마시며 침착하게 대꾸했다.“키키한테 내 성과급에서 1%를 떼줘. 애가 일을 너무 잘해, 졸업하면 바로 우리 스튜디오랑 계약해도 되겠어.”“1%는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예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다른 디자인 어시스트들은 기본 급여만 받는데, 너랑 함께 디자인 작업을 하면 걔한테 이득인 거 아니야?”정유진은 더 먼 곳까지 생각했다.“회사를 키우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디자이너를 키워내야 해. 단지 우리 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나도 키키가 마음에 들고.”예원은 반대하지 않았다.“어차피 네 성과급에서 빠지는 거니까 마음대로 해.
순진한 강지아의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고세연은 그런 지아를 바라보며 속으로 몰래 질투했다.어떻게 바보 같은 애가 이렇게 예쁘게 생길 수 있지? 하느님도 눈이 멀었나?고세연은 마음속으로는 악랄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더욱 친절한 미소를 가득 담고 말했다.“네 오빠랑 결혼하면 난 진짜 새언니가 되는 거야.”“진짜 새언니?”지아의 눈이 밝게 빛났다.“그럼 지금은 가짜 새언니인 거야?”그녀는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구분할 수 있었다.그러니까 오빠는 여전히 내 것이고, 새언니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고세연은 ‘가짜 새언니’라는 말에 놀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화제를 돌렸다.“지아야, 오늘 그 나쁜 아저씨를 내가 쫓아냈어. 넌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오빠한테 말하지 말아 줄래?”강지아가 불쾌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안돼.”고세연이 멈칫하더니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왜, 왜 안돼? 네가 말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놀이공원에 데려다줄게.”강지아는 진지하게 흥하고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그 나쁜 아저씨는 내가 쫓아낸 거야. 내가 그 아저씨의 소중이를 차버렸거든. 언니는 어딜 찼어?”고세연은 말문이 막혔다.역시 얼굴만 예쁜 바보라니까.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지아를 설득했다.“나도 그놈 소중이를 차 줬어. 그래서 그놈을 쫓아낸 거야. 지아야, 네가 오빠한테 오늘 일을 말하지 않으면, 놀이공원에 데려다줄게.”하지만 지아는 여전히 거절했다.“안 돼.”“왜 또 안돼?” 고세연이 한숨을 쉬며 인내심의 바닥을 경험하고 있었다.강지아는 입을 삐죽이더니 그런 고세연을 불쾌하게 쳐다봤다.“나는 언니랑 더는 놀지 않을 거야. 그러니 더는 날 찾아오지 마. 우리 사이 절교야!”흥, 이젠 나한테 언니가 있거든.돌아오는 길에 오빠가 날 데리고 언니를 만나러 갈 거라고 약속까지 했었어.나 강지아 이제 언니가 있는 아이니 가짜 새언니 따윈 필요 없어!“너 이...”고세연은 화를 참지 못하고 강지아의
강지찬은 진즉부터 고세연을 자신의 친딸보다 더 끔찍이 아끼는 강홍식의 태도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고세연이 이 집 며느리가 되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진짜로 강 씨 집안 아가씨가 되어있을 법했다.강홍식은 분명히 지아의 울음소리를 듣고 뛰어온 것이겠지만 지아의 상황은 한마디도 묻지 않은 채 고세연이 바닥에 쓰러진 모습에 마음 아파했다.도우미가 전전긍긍하며 고세연을 석제 의자에 앉히고는 바로 옆으로 물러났다.고세연의 오른쪽 무릎은 바닥에 쓸려 피부가 벗겨졌고 피가 고여 나와 보기에 끔찍했다.“이게 무슨 일이야?”강홍식이 즉시 걱정스러워하며 조금 전 들었던 지아의 울음소리를 잊은 듯했다.고세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제가 실수로 넘어진 거에요. 아버님, 화내지 마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강지찬의 눈빛이 단번에 어두워졌다.고세연이 이토록 연기를 잘할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내대장부에 일까지 바빴으니 한 여인이 연기를 잘하는지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오늘 지아 때문이 아니었다면 이런 자잘한 일들까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이 여자가 이렇게 노인네의 동정을 얻은 거였나?강홍식은 그녀의 말을 듣고 그제야 고세연 스스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세연이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질렀길래 널 이렇게 화나게 만들었냐? 손찌검까지 하다니?”“지아를 꼬집었어요.”강지찬은 차갑게 강홍식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아를 울렸다고요.”강홍식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고 강지찬은 그를 비웃듯이 쳐다보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그 눈빛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도발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홍식은 아들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그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강지찬은 할아버지가 직접 키운 아이였다.할아버지는 강홍식과 강홍택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죽기 전에 K그룹을 손자에게 넘겼다.당시 강지찬은 갓 성인이 된 나이에 불과했다.이런 경험들을 통해 강홍식은 점점 자기 아들을 두려워하게
고세연과 강지아의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왔다. 일분일초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은 핏기가 가신 채 창백해졌다.그녀는 다리의 상처도 신경 쓰지 않고 강지찬의 발 앞에 자리한 채 그의 다리에 매달렸다.“제가 잘못했어요, 지찬 오빠. 제가 잘못했어요, 부탁이에요. 그만 멈춰주세요.”강지찬은 냉랭한 얼굴로 되물었다.“새언니라고? 너 지아에게 몰래 새언니라고 부르게 했어?”고세연은 펑펑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지찬 오빠를, 지아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어요. 제발 믿어줘요. 오빠!”강홍식은 그녀의 서러운 눈물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과거 자신의 옛 연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이젠 그녀의 딸마저 지켜주지 못했다.“왜 다들 서 있어? 빨리 세연 아가씨를 일으켜 세워줘!”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강지찬은 발로 고세연을 밀쳐내며 말했다.“네가 지아의 새언니라고? 그럼 그 경호원 이름은 뭐지?”고세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강지아 이 나쁜 년이 이미 오늘 일을 강지찬에게 말했다고?고세연은 지아와 나눈 대화를 잠시 회상했다. 다행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뗄 수 있었다.그녀는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비록 강지찬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별 감흥이 없었지만 강홍식은 그녀의 얼굴 앞에 무기력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가장 불쌍하고 나약하며 남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을 잘 알고 있었다.“지찬 오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지아와 함께 디저트를 먹으러 갔을 뿐이에요. 경호원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았어요.”강지찬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만나지 않았다고? 다시 물을게. 그 경호원 이름이 뭐지?”“정말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아가 항상 집에 갇혀 있었기에 그냥 좋은 마음으로 데리고 나갔을 뿐인데요...”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강지찬은 고세연의 목을 움켜쥐었다.“켁켁, 지찬 오빠...”고세연은 고통스러워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
고세연은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김주환 저놈이 쓰레기 같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떨어지는 콩고물만 얻어먹는 사람인 줄 알았고 큰 짓을 저지를 담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쓰레기 새끼가 심지어 지아의 방문 앞까지 찾아가 문을 두드렸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한밤중에 예쁘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바보 같은 여자애의 문을 두드렸다는 건 무슨 일을 하려 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더 큰 문제는 강지찬이 이제 그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강지찬이 지아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지 생각하면, 김주환은 덜미가 잡히자마자 감옥에 보내질 게 분명했다.고세연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난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오늘 지아가 언급한 그 아저씨는 제 엄마랑 같은 고향 사람이에요. 그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에요. 지찬 오빠, 믿어주세요. 아니면 커피숍 직원에게 물어보세요. 지아가 화장실에 간 뒤 오랫동안 나오지 않아서 저도 급히 지아를 찾으러 갔었어요.”강지찬은 비웃으며 대꾸했다.“네 말은, 그 이른바 고향 사람이란 남자가 지아에게 음란한 의도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거네. 그 남자가 내가 해고한 경호원이란 것도 부정하고, 그 경호원이 지아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거지?”고세연은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진짜 몰랐어요. 지찬 오빠, 절 믿어주세요. 전 오빠를 이렇게 사랑하고 지아도 아끼는데, 어떻게 저랑 전혀 관련 없는 경호원을 두둔할 수 있겠어요?”집사가 참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그럼 세연 씨, 왜 지아에게 오빠한테 그 나쁜 아저씨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나요? 게다가 당신도 그 사람을 차버렸다고 했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죠?”고세연은 당황했다.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다 보니 자신도 헷갈렸던 것이다.“저, 저는...”고세연은 목을 잡혀있어 머리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은 움직일 수 있었다.그녀는 강홍식을 쳐다보며 더욱 슬픈 눈물을 흘렸다.“아버님, 절 믿어주세요.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