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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갑작스러운 손찌검에 정유진은 멍해졌다.하지만 더 어이없는 일은 뒤에 있었다.고세연이 손찌검을 하더니 몸을 돌려 그 남자의 무릎에 엎드린 채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아버님, 바로 이 여자가...”이번에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울고 있었다.정유진은 이 모든 돌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무고하게 신고당한 것도 유진이었고 갑자기 얻어맞은 것도 유진이었는데 가슴 아프게 울고 있는 것은 이 여인이었다.“제가 말했잖아요, 지아를 꼬집지 않았다고. 당신들은 누군데 왜 저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죠?”중년 남자는 냉랭한 눈빛으로 정유진을 쳐다보더니 한 줄기 혐오감이 눈동자를 스쳐 갔다.“강홍식이라고 하네, 강지찬 아비 되는 사람이지.”정유진은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강지찬의 아버지라고? 그럼 지아는...강홍식은 유진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입을 열었다.“지아는 내 딸이라네. 세연이는 내가 점 찍어둔 며느릿감이고. 또 무슨 궁금한 게 있는가?”정유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고세연이 나에게 손찌검을 한 이유는 지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강지찬과 하룻밤을 보냈기 때문이었다.강홍식의 무릎에 엎드린 채 서럽게 우는 고세연은 눈가마저 시뻘게져 있었다. 일찍 이 여인이 정유진임을 알았더라면 어제 크게 한바탕 단도리를 쳤을 것이다.강지찬을 못 본 지 꽤 된 지라 어제 고세연의 목적은 강지찬이었다.그런데 어제 갑자기 출장을 떠나더니 지아가 한밤중에 열이 나는 바람에 바라던 강지찬은 안 오고 이 어르신만 불러왔던 것이다.어르신의 등장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강홍식이 고세연을 좋게 보고 있었기에 이 기회를 틈타 지아의 상처를 모두 정유진 탓으로 돌려야 조금이나마 화가 풀릴 것 같았다.이런 생각에 고세연은 더욱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아버님, 다 제 탓이에요. 아버님의 믿음을 져버렸으니.”강홍식은 혐오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유진을 힐끗 쳐다보며 대답했다.“걱정 말아라. 내가 네 편이 돼줄게. 우리 강 씨 집안 며느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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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세상이 좁다더니, 유진은 이름이 익숙하긴 했어도 강지현과 강지찬이 사촌 형제 사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강 씨 집안은 가족이 많지 않았는데 첫째 강홍식에게는 아들 강지찬과 딸 강지아가 있었고 강지찬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둘째 강홍택과 그의 부인 류선에게는 아들 강지현 하나만 있었다.강지현은 지아를 보러 왔다가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후 정유진을 보는 눈빛에 의아함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정유진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않았다. 배신과 상처를 겪고 난 뒤 지금 그녀에게는 두려운 것 따위는 전혀 없었다.경찰은 사건의 경위를 이해하고 난 뒤 강지현이 강홍식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삼촌, 저는 유진 씨가 지아를 해치지 않았다고 믿어요. 지아가 항상 허약했던지라 무엇 때문에 고열에 시달리는 지도 확실하지 않고요.”그는 고세연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요양원의 의사도 전공의는 아니니 지아를 종합병원에 데려다 제대로 검사를 받게 하는 게 좋겠어요.”정유진은 멍해졌다. 두어 번 만난 게 전부인 사람이 질문 하나도 없이 유진이 한 일이 아니라고 믿어주고 있었다.강홍식의 눈빛이 둘을 훑더니 물었다.“지현아, 둘이 아는 사이야?”강지현은 싱긋 웃더니 답했다. “집에 인테리어가 필요해서요, 유진 씨가 마침 디자이너세요.”강홍식이 유진을 쳐다보는 눈빛이 조금 더 매서워졌다.유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강지찬에, 강지아에 강지현까지 강홍식으로서는 유진이 강 씨 집안에 무슨 목적을 갖고 빌붙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뻔했다.옆에 있던 고세연은 강지현이 진짜 지아에게 병원을 옮겨줄 가봐 걱정돼 틈을 타 말했다.“지현 씨가 잘 아는 사람이라면 어제 일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네요. 아버님, 다시 잘 조사해봐요.”하지만 속으로는 강지현에 대한 증오심이 피어올랐다. 정유진 같은 년 편을 들어주다니.하지만 강지현의 의미심장한 눈동자를 보고는 고세연도 뭐라 나서지 못했다. 약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강지현도 만만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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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상황을 보니 이 둘... 아는 사이인 건가?”최의현은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둘째가 돌아오자마자 집을 장식하러 다닌다더니 혹시 공교롭게도 지현이 찾은 회사가 정유진의 사무소는 아니겠지? 쯧, 대화가 재밌는 모양이야.”강지찬은 굳은 얼굴로 대꾸를 하고 싶지 않았다.‘저 얄미운 여자 같으니라고, 조금 한눈판 사이에 다른 남자랑 눈길을 주고받다니.더군다나 그 남자가 강지현이라니!’지찬은 ‘쾅’하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문을 닫은 후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다가왔다.한편 강지현의 시선이 정유진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더니 당부했다.“돌아가서 얼음찜질 잊지 말아요.”“고마워요, 알고 있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리가 바짝 당겨졌고 강제로 단단한 품에 끌어안겨 졌다.“어... 강지찬?”정유진은 지찬의 얼굴을 바라보며 몇 초간 멍해 있더니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뭐 하는 짓이에요, 이거 놔요!”강지찬은 그런 유진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방금까지 강지현과 웃고 떠들더니 자신이 껴안는 건 죽이려는 것처럼 반응하다니.“안는 게 뭐 어때서요?”강지찬은 짓궂기 시작하면 한없이 사악해지는 사람이었다.“잠도 잔 마당에, 안지도 못해요?”그는 말을 하며 눈은 강지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눈동자 가득 경고의 뜻을 보내고 있었다.강지현은 추호의 표정 변화도 없이 입을 열었다.“형님, 오랜만이에요.”옆에서 듣고 있던 최의현은 그 말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짧은 한마디였지만 담고 있는 원한은 내막을 아는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강지찬은 안부 인사조차 하기 싫었는지 답했다.“밖에서 죽지 못한 게 아쉽네.”정유진은 깜짝 놀랐다.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지찬을 쳐다보더니 시선을 강지현에게 옮겼다.강지찬은 얼굴에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아무리 봐도 좋은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고 지현은 조금 전과 같은 모습으로 그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식사는 했는지 묻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들은듯한 모습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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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정유진은 매번 강지찬을 만날 때마다 화가 폭발하거나 폭발 직전 게이지를 쌓아나가는 중임을 발견했다.원래 유진은 쉽게 화내지도 폭발하지도 않는 성격이었다.강지찬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는 눈으로 경고를 보내며 말했다.“지아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가까이하지 말아요.”그 모습에 유진은 강지찬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그때도 이런 표정이었다. 마치 그녀가 더러운 무언가라도 되는 듯, 그의 앞에 등장만 해도 눈을 더럽힌다는 듯한 표정이었다.정유진은 지찬 때문에 화가 날 대로 나 있었다.“강지찬 씨, 제가 의도적으로 지아한테 접근했다고 생각해요? 똑똑히 알려줄게요, 맞아요, 일부러 지아한테 접근한 거에요. 그때 의도적으로 당신한테 접근한 것처럼요.”“전 의도적으로 당신을 꼬셔서 재벌 집에 시집갈 헛된 망상이나 하는 천박한 여인이거든요. 내 눈에 당신은 그저 재벌 집에 시집갈 디딤돌 쯤이나 되는 것 같네요.”말을 마치고 차 문을 잡아 열고 그대로 떠나버렸다.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다.차는 이미 자리를 떠났지만, 정유진은 또 후회가 밀려왔다. 아까의 행동이 만족스럽지 못했다.욕만 하고 떠날 것이 아니라 뺨이라도 세게 내리쳐 아까 맞은 것을 돌려줬어야 했다.망할 놈의 강지찬!차가 멀리 떠나자 강지현의 표정이 조금씩 옅어졌다.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할 때 순식간에 멱살이 잡히고 말았다.강지찬이 그를 차 문에 몰아넣은 채 차갑게 경고했다.“뭘 하고 싶은진 상관없어. 정유진한테서 멀리 떨어져.”몸이 허약했던지라 두어 번의 손짓만으로도 강지현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강지찬은 그런 지현을 혐오스럽다는 듯이 밀어버리더니 지아를 보러 위로 올라가려 했다.강지현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어제야 유진 씨 이름을 알았어요... 믿을진 모르겠지만.”강지찬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믿을 리가 없었다.최의현이 서둘러 뒤를 따르며 말했다.“유진 씨가 미쳤나 봐, 왜 지아를 꼬집고 그런대?”“...”강지찬은 엘리베이터에 오르더니 최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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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최의현이 들어왔을 때 강홍식과 고세연은 이미 강지찬에게 화가 난 채 떠난 뒤였다.병실에는 남매 둘만 남아 있었다.강지아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고 지찬은 옆에 앉아 그런 지아를 바라봤다.의현이 두 손 무겁게 가득 들고 오며 말했다. “환자를 보러 오는데 과일바구니를 들고 온단 걸 이제야 생각했지 뭐야. 지아가 잘 먹는 거 좀 사 왔어.”물건을 내려놓은 후 다가와서 쳐다보더니 물었다.“아직도 안 깬 거야?”강지찬은 의현을 잡아당겨 의자에 눌러 앉히더니 말했다.“네가 좀 지키고 있어.” 그리고는 형준을 데리고 원장 사무실로 향했다.강지찬을 보더니 원장이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나며 대표님에게 앉으라 손짓했다.강지찬은 한 바퀴 훑어보더니 수간호사, 경비, 간호사와 의사 모두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모든 질문은 단 한 번씩만 할 겁니다. 그러니 잘 생각하고 대답하세요.”“지아를 꼬집은 사람은 누구인가요?”모든 이가 고개를 숙인 채 답변을 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당시 아무도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경비 하나가 눈동자를 굴리더니 갑자기 크게 대답했다.“인테리어 회사의 여자였어요, 그 사람이 지아 아가씨를 꼬집었습니다.”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말했다.“그만 꺼져.”경비는 어안이 벙벙해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형준이 입을 열었다.“바른대로 말하지 않고 대표님을 속였으니 해고야 당신.”밖에 있던 경호원이 경비를 끌고 나가버렸고 그 순간 모두가 긴장된 채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이 요양원은 강지찬이 강지아를 위해 전문적으로 만든 것이었으니 그가 동생을 얼마나 아끼는 지 알 수 있었다.지금 그 지아 아가씨에게 사고가 생겼으니 요양원의 직원들 모두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강지찬이 두 번째 질문을 이어나갔다.“지아는 왜 고열에 시달린 거에요?” 명백하게도 의사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강지아의 주치의는 안경을 쓴 노인이었고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강 대표님, 전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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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정유진이 조예원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방금 일 처리를 마친 뒤였다.부주의로 추돌사고가 일어났었고 다행히 상황이 심각하진 않아 기스만 살짝 난 상태였다.상대방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인지라 유진은 돈을 이체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신안은 다시 우리에게 맡기겠다고?”주변에 은행이 보였는지라 유진은 카드를 들고 출금하러 은행으로 향했다.예원은 전화 반대편에서 누구보다 흥분해 있었다.“우리보다 더 적합한 인테리어 회사는 못 찾은 모양이야. 설계도는 수정할 필요도 없대, 전에 한 것대로 하면 되고, 내일 바로 계약서를 쓰러 오겠다고 했어.”좋은 소식이었지만 유진은 크게 기쁘지 않았다.“그래, 금방 돌아갈 거야.”예원은 어딘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심란한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라 유진은 어떤 일을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강지찬에게 하도 화가 났던지라 ATM 기계는 출금 한도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 어쩔 수 없이 창구로 가 남은 돈을 인출했다.전에도 한빈의 돈을 쓴 적이 없었던지라 강지찬의 옷 선물도 당연히 받을 리가 없었다.K그룹에 도착한 후 유진은 신문지로 포장한 돈을 안내데스크에 전달했다.“강 대표님께 전해주세요.”데스크 직원은 어리둥절했다.“아가씨 성함을 알려주시죠. 대표님께 메시지를 남길까요?”유진이 답했다. “아니요, 아마 알 겁니다. 감사해요!”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던 유진은 돈만 남긴 채 자리를 떴고 1시간쯤 흘렀을까 회사로 돌아온 강지찬을 데스크 직원이 불러세웠다.“강 대표님, 아가씨 한 분이 물건을 맡기셨습니다.”강지찬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데스크 직원이 건네준 물건을 보며 눈이 어둡게 번뜩였다.이에 최의현이 받아 보더니 외쳤다.“어머, 돈이잖아. 몇천만 원은 돼 보이는데?”“남긴 메시지는 없었어요?”“없었습니다. 알 거라고 하시던데요.”강지찬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누군지 알아차렸고 단번에 의현의 손에서 돈을 뺏어가더니 굳은 얼굴로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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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정유진과 조예원은 업무를 분담해 진행했다.조예원은 공사와 행정업무를 담당했고 정유진은 설계를 담당했다.신안에서 전에 제출한 방안을 사용하겠다 확정했지만, 정유진은 야근을 하며 효과 이미지를 다시 수정하고 새벽 2시가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팩을 했더니 다시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조예원은 그런 유진이 부러웠다.“너 야행성 인간이지? 밤을 새운 흔적조차 없다니 너무 화가 나.”예원도 어제 야근을 했고 유진과 비슷한 시각에 잠들었는데 다크서클이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정유진은 우유 두 잔을 따랐고 어제 겪은 일과 강지현의 신분을 예원에게 알려주기로 했다.사실을 알고 난 예원은 입을 떡 벌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세상에! 너랑 강지찬은 무슨 악연이래?”정유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신안 쪽은 상관없어. 우린 요양원과 협력하는 거지 강지찬과 협력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수고스럽더라도 계속 과정에 신경 써줘야 돼.”예원이 바로 대답했다.“당연하지, 이런 시공 안은 우리 전문이잖아. 상록수 별장까지 계약하면 앞으로 다른 건은 상관하지 않고 매일 이 두 공사현장만 돌아다닐 거야.”유진은 자신이 없었다. “강지찬과 강지현의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어. 이번 계약 따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강지현이 그녀에게 계속 설계도를 내달라 부탁했지만, 유진은 그가 그저 신의를 저버리지 못해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어차피 신안의 시공권은 따냈으니 상록수 별장 건은 따내든 말든 예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일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그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잖아. 넌 설계도나 생각해, 계약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하고.”예원은 언제나 여유로웠고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고 정유진도 그녀에게 동화돼 기분이 좋아졌다.어차피 곧 큰 계약을 따낼 예정이었고 이 계약은 올해 사무실에서 따낸 계약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정유진이 근 두 달이나 고생한 결과였다.하지만 이런 좋은 기분은 그녀가 회사에 들어선 그 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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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아픈 동생 때문에 시에서 가장 호화롭고 선진적인 의료 장비를 갖춘 요양원을 만들었다니, 역시 이런 일은 강지찬같은 재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일반인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이지.신안이라... 이 이름도 지아에게서 따온 것일까?정유진은 살짝 난감해졌다.하지만 예원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신안의 사장이 강 대표님이라고요? 역시 강 대표님 사랑이 대단하시네요, 존경스러워요!”강지찬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정유진만 바라보고 있었다.“정 사장님 계속하시죠!”정유진은 그런 강지찬을 한 대 때려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예원은 끊임없이 유진에게 눈짓을 보냈다.‘입원 동이 자그마치 3채야! 중요한 거래라고, 두 달이나 매진한 일이잖아!’강지찬과 함께 온 사람 중에 신안 요양원과 작업실 사이의 소통을 책임지던 책임자도 와있었지만, 발언권은 없었고 옆에 앉은 채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그제야 정유진은 왜 날아갔던 계약이 다시 돌아왔는지 알아챘다. 분명 강지찬이 수를 쓴 것이었다.다만, 지금 강지찬은 내가 지아를 꼬집었다고 의심하고 있지 않나?왜 다시 신안의 프로젝트를 나에게 맡긴 거지?유진은 말없이 가방을 내려놓은 후 키키에게 어제 다시 수정한 설계도를 보여주라고 부탁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이 계약서를 쓰러 오셨으니 다시 한번 방안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계약서에 견적도 적혀있으니 확인해보시죠.”키키는 아침에 다시 인쇄해 낸 계약서를 테이블에 올려놨고 강지찬은 일어서며 답했다.“그래요, 그럼 우리 정 사장님의 방안을 한번 들어봅시다.”입으로는 진지한 태도로 말하고 있었지만, 정유진에게 꽂힌 시선은 전혀 진지하지 않았다.마치 정유진이 방안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노래라도 한 소절 불러주는 듯한 모습이었고 차가운 눈빛에 한 줄기 웃음기가 서려 있어 보기만 해도 얄미웠다.강지찬이 자리를 옮겨 앞으로 앉았다.오늘 흑백 패턴의 드레스를 입은 유진은 넓게 퍼지는 치마단 덕에 허리가 유난히 가늘어 보였다. 실제로도 허리가 상당히 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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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강지찬이 일부러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자신이 차단당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저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정유진은 그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귀한 블랙 카드의 비밀번호가 이토록 쉽게 설정된 것일까?어쩔 수 없이 다시 이 사람을 차단 상대에서 옮겼고 휴대폰 번호 뒤 6자리를 입력했다.그 결과에 유진은 멍해졌다. “...”실제로 비밀번호가 맞았다.강지찬은 계약서를 보지도 않아 인테리어 비용조차 모르는 채로 계약을 마치고 모든 금액을 지불했다.그래, 부자한테 이 오십억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귓가에는 강지찬의- 차가운 말이 들렸다.“벌써 세 번째네요, 다음번에 정 사장님에게 연락할 때 연락이 통했으면 좋겠어요.”“...” 역시 일부러 저런 것이다. 듣기에도 살짝 미묘한 말이었고 하필 예원이도 일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었다.“저기, 계약서도 마무리했으니 앞으로의 공사는 저와 시공부서 부장님이 함께 책임지겠습니다. 한 부장님, 이쪽으로 와서 시공 관련 사항에 대해 논의하시죠.”한 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예원을 따라 시공부서 부장의 사무실로 향했다.예원은 한술 더 떠 유진에게 당부했다.“유진아, 방금 캡슐이 도착했던데, 대표님에게 커피라도 내려드려.” 그러고는 강 건너 불구경 하는 키키도 내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어제 옷값을 돌려줬으니 앞으로는 어떠한 일로도 엮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강지찬의 번호가 어느새 또다시 휴대전화에 저장돼있었다.사람이 없어지자 강지찬은 본모습을 드러냈다.“다시 날 차단한다면 어떻게 응징할지 기대해요.”협박을 가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당당하게 물었다.“당신 사무실은 어디죠?”정유진은 자신의 심정을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이 남자만 보이면 왠지 모르게 짜증이 밀려왔다.“전 마음이 바르지도 못한 여자인데, 왜 저랑 계속 협력하는 거죠?”강지찬은 그녀를 한 눈 보더니 계속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다.“도대체 어디에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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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정유진은 강지찬 덕에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 이토록 뻔뻔하고 무례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저리 비켜요, 사람 부르기 전에!”강지찬은 비키기는커녕 문까지 걸어 잠갔다.“불러요, 신경 쓰지 않으니까.”정유진은 화가 나 호흡이 거칠어지며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아까부터 쭉 그녀의 입술에 고정됐던 강지찬의 시선은 어느샌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깨달은 정유진은 그대로 강지찬을 차버리고 싶은 생각이었다.“변태예요? 뭔 생각 하는 거예요?”강지찬도 유진을 더는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결국, 한발 물러나 유진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뭘 무서워해요, 여기서 당신을 안을 만큼 미치진 않았거든요.”정유진은 문을 열고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고 싶었다.하지만 강지찬은 의자 하나를 끌어오더니 그대로 앉으며 말했다.“화내지 말아요, 날 화나게 했으면서, 내가 좀 놀리는 건 안 돼요?”유진은 생각할수록 미친놈이라는 생각에 대꾸했다.“내가 언제 화나게 했죠?”강지찬은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쳐다보며 답했다.“어제, 4번이나요.”“...” 도대체 누가 누굴 화나게 했단 말인가?강지찬은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유진에게 설명해줬다.“첫 번째는, 나 몰래 다른 남자한테 꼬리친 거.”정유진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누구한테 꼬리를 쳤다고 그래요? 아니, 내가 다른 남자한테 꼬리를 치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런 상관도 없거든요!”강지찬은 말을 이었다. “둘째는, 일부러 대꾸하면서 날 화나게 한 거.”“...” 정유진은 더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세 번째는, 옷값을 돌려준 거. 나 강지찬이 한번 선물한 물건을 다시 돌려받는 건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서요.”“..”“네 번째는, 또 나를 차단한 거.”정유진은 이제 깨달았다. 지찬의 눈에 유진이 얼마나 괴롭히기 좋았으면 집요하게 그녀만 잡고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또 있어요? 한꺼번에 말해요.” 말하고 당장 꺼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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