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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Chapter 91 - Chapter 100

911 Chapters

제91화

오늘은 시작부터 기분 좋은 날이었다.디자인 초안을 고객에게 보여줬을 때,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고 곧 큰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스튜디오나 정유진 개인에게도 축하할만한 경사였다.그런데 좋았던 기분은 강지찬의 전화 한통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강지찬 씨, 당신이야말로 미쳤어요?”정유진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숨이 막혔다.“당신 정말 쓰레기 같은 거 알아요?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해요? 내가 선보는 거랑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당신 정말 짜증 나는 거 알아요?”“난 강지찬 씨 정말 싫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알겠어요?”그 말을 끝으로 정유진은 전화를 끊고 강지찬을 블랙리스트에 넣었다.너무 화가 나서 속이 쓰리고 경련이 찾아왔다.한사람한테 화가 나서 위 경련까지 일으킨 건 처음이었다.“유진 씨, 무슨 일 있어요?”한참이 지나도 그녀가 나오지 않자 강지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닥에 배를 끌어안고 있는 정유진을 보자 다급히 달려왔다.“괜찮아요.”정유진은 그에게 힘없이 웃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런데 눈앞이 새카매지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그 시각, 스튜디오.강지찬은 정유진에게 한소리 들은 뒤로 치미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아버지를 제외하고 그에게 이렇게 심한 말을 한 사람은 정유진이 처음이었다.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음만 가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그는 정유진이 자신의 연락처를 블랙리스트에 넣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조예원은 옆에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워낙 정유진의 목소리가 커서 옆에 있던 사람의 귀에까지 무슨 내용인지 다 들렸다.그녀는 속으로 통쾌함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감히 내색하지 못했다.“강 대표님, 유진이 걔 선 보러 나가지 않았어요.”어차피 이렇게 된 거, 조예원도 더 이상 그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유진이는 강지현 씨랑 점심 먹으러 나갔어요. 지난번에 강지현 씨가 흉터 치료제를 갖다줬거든요. 유진이가 그 일로 계속 강지현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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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조예원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정유진은 이미 의식을 회복한 뒤였다. 옆에서 여자 의사 한 명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조예원은 급하게 오느라 사무실에서 신던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있었다.“어떻게 된 거야? 밥 먹으러 나왔다가 왜 기절해? 설마 강지찬 그 인간 때문에 혈압 올라서 쓰러진 거야?”조예원은 속사포 쏘듯이 따져 물었다.옆에 있던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친구분 나이로 봤을 때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일은 거의 없어요.”정유진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바닥에 오래 쭈그려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그런 것 같아.”의사가 말했다.“일단 혈액검사부터 하시죠.”그러더니 옆에 있는 강지현의 눈치를 살피고는 정유진에게 물었다.“마지막 생리를 언제 하셨어요?”정유진은 순간 당황했다.눈치 빠른 강지현이 말했다.“난 나가서 기다릴게요.”정유진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하게 질렸다.조예원이 말했다.“우리 생리 주기 거의 한 주밖에 차이 안 나지 않아? 매번 내가 끝나면 네가 시작했잖아. 이번에 좀 늦어진 것 같은데?”정유진은 멍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너무 바쁘게 보내서 생리가 늦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항상 생리가 규칙적이었는데 날짜를 세어 보니 벌써 열흘이나 늦어졌다.설마?정유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예원의 팔목을 잡았다.의사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듯이 말했다.“일단 혈액검사는 잠시 미루고 약국에 가서 테스트기 하나 사서 테스트 해봐요. 만약 임신이면 산부인과로 가셔야 할 것 같네요.”조예원이 바깥에 있는 약국으로 가서 테스트기를 종류별로 사왔다.“에이, 설마. 한번에 임신이 됐겠어?”그녀는 정유진을 화장실로 등 떠밀었다.“긴장하지 말고 일단 확인해 봐.”정유진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강지찬과의 첫경험이 있은 뒤로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정신이 없어서 적절한 피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테스트기에 진한 뻘건 줄이 두 줄 나타났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테스트기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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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집으로 돌아온 정유진은 천천히 안정을 찾았다.“이상하네. 입덧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졸리고 피곤한 느낌도 없었고.”조예원이 말했다.정유진도 그게 무척 궁금했다.전에 한빈과 결혼까지 갈 뻔했지만 아이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그녀는 운명이 자신에게 큰 장난을 쳤다는 느낌이 들었다.조예원은 따뜻한 물을 받아 그녀에게 건넸다.“먹고 싶은 거 없어? 만두라도 데워줄까?”정유진은 입맛이 없어 고개만 저었다.조예원은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유진아, 혹시 강 대표님한테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유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말하면 안 돼!”너무 격한 반응에 오히려 조예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아줌마한테는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정유진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아니, 알리지 않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속을 썩이시는데 이건 나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야.”조예원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진료 볼 때 나랑 같이 가자.”정유진은 침대로 돌아가서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조예원이 인터넷으로 병원을 검색하며 말했다.“내일이랑 모레는 예약이 꽉 찾네. 3일 뒤나 돼야 예약이 가능할 것 같아.”정유진은 강지현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뒤로 좀 미루자. 일단 강지현 씨 의뢰건이 더 중요해.”조예원이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넌 지금 이 상황에서 일 얘기가 나와?”정유진은 퀭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어떡해? 생계는 계속 이어가야지.”조예원이 말했다.“어차피 이번에 강지찬이랑 크게 다퉜으니까 그쪽에서 계약 파기하겠다고 나오면 그러자고 해. 나도 이제 그 인간 비위 맞춰주는 거 싫어.”정유진의 얼굴이 암담하게 변했다.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그녀는 강지찬이나 한빈과 절대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 시각, 조예원을 따라 나갔다가 놓쳐버린 강지찬은 한바퀴 돌다가 다시 예담 스튜디오로 돌아왔다.“정유진 씨 아직도 안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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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한편, 정유진은 침대에서 조예원과 키키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있었다.잠시 후, 조예원이 만두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강지찬이 앞으로 더는 너 귀찮게 하지 않을 거래.”정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조예원이 다가와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여기 계란찜도 있어.”정유진은 친구의 성의를 거절하기 미안해서 억지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부드럽고 촉촉한 계란찜은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정유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나도 우리 엄마아빠한테는 곱게 키운 딸인데 왜 그 자식들은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지?”그녀는 스스로를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나이도 젊고 스스로 일어설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어렸을 때, 연애 한번 실패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 질질 끌려다닐 줄은 몰랐다.강지찬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힘들었다.정유진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우리 부모님이 아시면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몰라.”조예원은 하필 계란찜을 만들어서 친구를 울린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계란찜은 정유진이 엄마가 해준 반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울지 마. 아줌마한테는 비밀로 하면 되잖아.”조예원은 다가가서 친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중에 너 수술하면 우리 엄마를 불러서 널 돌봐주라고 할게. 넌 집에서 푹 쉬고 건강을 회복하는데만 신경 써.”한빈이 정유진을 그런 식으로 배신했을 때도 정유진은 울지 않았다. 하지만 멀쩡한 새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지금, 정유진은 속절없이 무너졌다.조예원도 친구에게 이런 상처를 준 강지찬이 미웠다.“유진아, 겁낼 거 없어. 내가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검색했다.“지식백과에 알아봤는데 요즘은 수술하는데 전혀 아프지 않대.”“진짜?”정유진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물었다.“진짜라니까? 이거 봐.”조금 안정을 찾은 뒤, 정유진은 그제야 시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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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여자는 강지찬의 잔에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에도 한잔 따랐다.옆에서 흥을 돋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안나 씨, 우리 대표님은 원래 여색을 멀리하는 분이에요. 술집 출입도 한 달에 한번이면 많이 하는 거라고요.”“그래도 안나 씨가 직접 따라준 술인데 마시겠죠?”“안나 씨, 러브샷은 어때요?”강지찬은 얼굴이 싸늘하게 식은 채로 시끄럽게 떠드는 옆 사람들을 노려보았다.그는 시종일관 안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최의현이 다가와서 그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안나는 조 대표가 요즘 띄워주고 있는 여배우야.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하더라고. 조 대표가 저 여자를 위해 영화 제작에 투자한다고 하던데 저 여자는 네 지갑에 더 흥미가 많은가 봐.”강지찬은 안나가 건넨 술잔은 쳐다보지도 않고 술병을 들고 병나발을 불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술잔을 들고 있던 안나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주변에 있던 남자들은 눈치도 없이 떠들었다.“역시 우리 강 대표님은 곁을 안 주시네요.”“대체 어떤 여자면 우리 강 대표님의 눈에 들 수 있을지 궁금해요.”강지찬은 주변 남자들의 소리를 무시하고는 술병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오늘은 내가 다 살 테니 마음껏 마셔.”말을 마친 그는 주변 사람들의 인사를 듣지도 않고 바로 나가버렸다.술을 많이 마시기는 했지만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점점 정신이 또렷해졌다.그는 당장이라도 그 오만한 여자를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다.“강 대표님!”안나가 뒤에서 쫓아왔다.“강 대표님, 잠깐만요!”그녀는 얼른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팔목을 잡았다.걸음을 멈춘 남자가 순식간에 손을 뻗어 그녀의 숨통을 움켜쥐었다.그리고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대로 그녀를 벽으로 패대기쳤다.강지찬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지금 뭐 하자는 거지?”안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물러서기엔 남자의 기백과 핸섬한 외모가 너무 유혹적이었다.신이 내린 이목구비와 강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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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차에 오른 강지찬이 명령했다.“집으로 가자.”하지만 안나가 입고 있던 붉은 드레스가 자꾸 떠올라서 치미는 짜증을 주체할 수 없었다.“아니다. 예담으로 가.”예담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열 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창문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대표님,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네요.”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강지찬이 눈을 떴다. 그냥 한번 와보려고 했는데 여기서 정유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어제 더 이상 귀찮게 안 하겠다고 말해놓고 하루만에 다시 찾아오는 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불 켜진 창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너무 환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부만 야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30분이 지나도 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야근하는 것으로 보아 야근하는 사람이 정유정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상사가 말이 없자 장형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대표님, 안 들어가세요?”강지찬은 침묵으로 일관했다.또 몇 분이 지나고 드디어 예담 스튜디오의 전등이 꺼졌다.“대표님, 정유진 씨 나오시네요.”고개를 돌리자 문단속을 하는 정유진의 모습이 보였다.하얀색 원피스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녀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가녀렸다.강지찬은 미동도 않고 여자가 자신의 차를 지나쳐 가는 모습을 바라봤다.“대표님, 정유진 씨 차를 안 가지고 나온 것 같네요.”정유진이 길을 건너려고 신호등 앞에 멈춰섰을 때에야 강지찬은 차에서 내렸다.그는 멀리 거리를 두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더니 피곤한 기색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고개를 들자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멈추었다.그는 더 이상 쫓아가지 않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강지찬은 평소에 흡연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만 가끔 한 개비씩 꺼내서 피웠다.그만큼 그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얘기였다.오늘은 술도 마셨고 말이 격해질 수도 있으니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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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너무 진실해서 무시할 수 없는 꿈이었다.그녀는 꿈에서 한 어린 소녀를 만났다. 곱슬머리에 통통한 볼이 너무 사랑스러운 소녀였다.어린 소녀는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포동포동한 손을 그녀에게 뻗으며 달려오고 있었다.별을 닮은 아이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고 목소리마저 너무 앳되고 사랑스러웠다.“엄마, 안아줘.”정유진은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취해 얼른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가 손을 뻗자마자 소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눈을 뜨자 이미 아침이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아랫배를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회사에 도착하자 그녀의 얼굴을 본 조예원이 화들짝 놀랐다.“너 어제 저녁에 술 마셨어? 왜 얼굴이 그렇게 퀭해? 설마 또 야근했어?”정유진은 말하고 싶지 않아 힘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 꿈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갑갑했다.“아침은 먹었어? 뭐 먹을래? 내가 사줄게.”“입맛 없어.”“입맛 없어도 먹어야지. 몸 상태도 안 좋은데 끼니를 자꾸 거르면 어떡해?”조예원이 핸드폰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내가 나가서 죽이라도 좀 사올게. 아침은 무조건 먹어야 해.”정유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자리로 가서 노트북을 열고 검색창에 꿈 해몽을 검색했다.그리고 곧바로 결과가 나왔다.임산부가 소녀가 나오는 꿈을 꾸면 이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임산부가 소녀 꿈을 꾸면 산모가 딸 아이를 원한다는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 것이다.정유진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이 아이가 딸일 수도 있다고?꿈에서 봤던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강지아가 떠올랐다.어쩐지 둘이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녀는 오전 내내 정신이 딴데 팔려 잔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그래도 옆에 키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오늘 많이 덥네.”조예원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말했다.“나 시공 현장에 나갔다가 한 부장 만났어.”정유진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계약 파기건은 잘 얘기했어?”조예원이 혀를 차며 말했다.“아니, 아무 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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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강지현은 예산안을 보고 아무런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다.그는 흔쾌히 계약서에 사인하고 계약금을 지불했다.상록수 별장의 시공 현장은 정유진이 직접 감독하기로 했다. 이런 호화 별장을 인테리어하는데 디자이너가 빠질 수 없었다.그녀가 직접 관리 감독한다는 얘기에 강지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힐끗 보고 말했다.“괜찮겠어요?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정유진은 그가 왜 그러는지 알기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아요. 저는 감독만 할 거고 일은 작업자들이 해야죠.”강지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따로 얘기 좀 할래요?”정유진은 그를 사무실로 안내했다.그녀가 차를 내오려 하자 강지현이 그녀를 막아섰다.“차는 됐으니 이리 와서 앉아봐요.”사실 두 사람은 그리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없었다. 별장 인테리어를 그녀에게 맡긴 것 외에 유일한 공통 화제가 강지찬과 강지아였다.“저한테 따로 하실 말씀이 뭐예요?”정유진이 물었다.강지현도 뜸들이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정말 형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이에요?”정유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사람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강지현은 왜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 단호한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겉보기에 참 나약해 보이지만 속은 강한 사람이었다.이런 여자는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강지현이 말했다.“그래서 앞으로 어쩔 생각이에요?”정유진이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지워야겠죠.”좋아하는 남자도 아닌데 그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생각은 없었다.“나한테는 내 인생이 더 중요해요. 처음부터 원했던 아이도 아니니 낳을 이유가 없죠.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이게 맞아요.”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서글펐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꿈에서 봤던 소녀가 또 떠올랐다.안아달라고 말하던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정유진은 원래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체에 약했다. 그래서 최근 밤에 고민도 많이 했고 많이 힘들었다.하지만 이성이 결국 감성을 이겼다.그녀는 이 아이를 낳아서 키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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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초음파실에서 나온 정유진의 안색은 몹시 창백했다.조예원은 초음파 결과지를 받았지만 하나도 알아볼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이 시커먼 점이 아기야? 아기집이 생겼으면 벌써 이미 새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정유진은 차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그녀가 구슬피 말했다.“아기집이 생겼다는 건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대.”“좀 신기하긴 하네.”조예원이 말했다.둘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어차피 지울 아이였기에 더 말해 봐야 슬픔만 가중시킬 뿐이었다.이때, 초음파실 문이 열리고 소희가 나왔다.그녀는 비교적 박시한 면티를 입고 있었는데 아랫배가 부풀어 있었다.정유진을 발견한 소희의 시선이 그녀가 들고 있는 초음파 결과지에 닿았다.“여기서 뭐해?”조예원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소희를 흘기며 말했다.“당연히 검사하러 왔지. 설마 병원에 구경 왔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정유진의 손을 잡고 뒤돌아섰다.소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정유진, 너 설마 임신했어?”정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조예원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그냥 정기검진 받으러 온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비꼬는 듯한 시선으로 소희를 노려봤다.“배가 불룩 나온 걸 보니 임신한 모양이네? 그런데 한빈 그 자식이 책임지기 싫대? 어쩌나? 우린 둘 결혼식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인데 청첩장은 꼭 보낼 거지?”그 말에 소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그녀도 결혼이 하고 싶었다.하지만 한빈은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라며 재기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강지찬 쪽에서는 아직 그들을 놓아준다고 말한 적 없는데 이 도시에서 어떻게 재기가 가능할까?물론 소희도 비웃음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걱정 마. 청첩장은 보낼 테니까.”그녀는 정유진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미안해, 유진아. 난 또 너도 임신한 줄 알았지. 걱정돼서 물어본 거야. 나이도 어린데 지금 임신하면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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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조예원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역시 남자들은 다 개자식이야. 너한테 그렇게 집착하더니 뒤에서는 여배우를 만나고 있었어?”“그 여자 나 웹드라마에서 봤어. 화장 두텁게 하고 조명빨이더만. 너에 비하면 일반인 수준이야.”정유진은 용기를 내서 초음파 결과지를 들여다보았다.그녀의 덤덤한 모습에 조예원은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너는 화도 안 나?”“화날 게 뭐가 있어?”정유진이 담담히 말했다.“강지찬이랑 나는 고작 원나잇 한번 한 관계에 지나지 않아. 난 한 번도 그 사람이 진심으로 날 좋아해서 따라다닌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날 저녁에 그 사람의 본모습을 알아봤거든. 강지찬이나 한빈이나 똑 같은 부류야.”말을 마친 그녀는 초음파 결과지를 들고 의사 진료실로 들어갔다.의사는 각종 수치 모두 정상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정유진이 아이를 지우겠다고 하자 의사는 바로 수술 예약을 잡아주었다.차로 돌아오자 조예원의 잔소리 폭탄이 시작되었다.“엄마가 그러는데 수술한 뒤에 회복 기간을 가져야 한대. 일주일 동안 샤워도 하지 말고 3개월 안에는 무거운 거 들지 말라고 했어.”“일주일 뒤에 수술이라고 했지? 다행히 상록수 별장은 시공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일단은 키키한테 맡기고 너는 푹 쉬어.”“뭐 먹고 싶어? 그래도 입덧이 없어서 다행이다. 설마 딸은 아니겠지?”말을 마친 조예원은 바로 후회했다.괜한 말을 한 게 너무 미안했다.정유진이 말했다.“전에 꿈을 꾼 적 있는데 꿈에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애가 나한테 엄마라고 하더라.”순간 조예원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거 태몽 아니야? 설마 진짜 딸일까? 네 외모를 닮았으면 엄청 사랑스러울 것 같아!”신호등에 맞춰 차를 세운 조예원은 고개를 돌려 정유진을 바라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 약해지면 안 돼. 애는 나중에 결혼하고 낳아도 되잖아.”정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소희의 말은 그녀에게 그 어떤 영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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