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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한편, 그날 이후로 정유진은 입덧을 시작했다.아침에 일어나면 구역질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그녀는 퀭한 얼굴로 회사에 도착했다.키키가 아침을 사 들고 사무실에 왔는데 냄새를 맡고 그녀는 또 화장실에 달려가야 했다.조예원은 그러건 말건 자기 자리에서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안 그래도 왜 반응이 없다 했더니 드디어 찾아온 거야?”정유진이 양치를 하며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반응? 무슨 반응?”조예원은 먹던 햄버거를 그녀의 앞으로 쭉 내밀었다.“이 냄새 맡을 수 있겠어?”정유진은 음식을 보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왔다.“계속 이러면 안 돼. 뭐라도 좀 먹어야지.”조예원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며칠만 참으면 돼.”조예원은 먹던 것을 내려놓고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뱃속에 아기는 엄마의 감정을 느낄 수 있대. 네가 계속 애 지운다고 하니까 애가 삐진 것 같은데?”정유진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친구를 노려봤다.하지만 꿈에서 봤던 그 아이는 가끔씩 떠올라서 그녀를 괴롭게 했다.“엄마한테 들었어. 어른들 말 틀린 거 하나 없어. 물론 임신 반응은 사람 체질에 따라 다르겠지만.”조예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딸이면 매운 게 막 먹고 싶고 그러지 않아? 이따가 마라탕 먹으러 갈까?”말을 마친 그녀는 친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잠시 후 돌아온 조예원의 손에는 마라탕이 들려 있었다.순한 맛으로 주문해서 매운 맛이 덜했지만 삼킬 수는 있었다.정유진은 먹으면서도 속이 울렁거렸지만 억지로 삼켰다.오전 열 시가 되어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어젯밤 뺑소니 사건 때문에 조사할 게 있다고 서에 방문하라는 연락이었다.정유진은 어쩔 수 없이 옷을 챙겨 경찰서로 갔다.강력계 형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정유진 씨, 윗분들이 이 사건을 아주 주목하고 있어서요. 사실 우리 시에서도 요즘 폭주족들을 엄하게 다스리고 있거든요. 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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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경찰서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유진은 줄곧 강지찬에 대해서 고민했다.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질척거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이 왜 회사 대문 앞까지 찾아와서 기다렸을까?게다가 그녀가 퇴근하고 아파트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따라다녔다니!대체 원하는 게 뭘까?그녀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점심 시간이었다.조예원이 그녀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어서 와서 밥 먹어. 내가 맛있는 거 시켰어.”밥 얘기가 나오자 정유진은 벌써 속이 울렁거렸다.“너희 먹어. 난 입맛이 없어서 나중에 먹을게.”그러자 조예원이 다가와서 그녀의 팔목을 잡고 테이블로 이끌었다.“입맛 없어도 조금이라도 먹어둬.”그녀는 특별히 정유진을 위해 간이 덜한 생선찜을 주문했다.“내가 식당 사장님한테 특별히 간이 세지 않게 해달라고 했어.”조예원은 정유진을 의자에 눌러앉혔다.“빨리 먹어. 먹고 집에 가서 푹 쉬고 오후에 디자인 작업 시작해도 늦지 않아.”회사에는 사람이 몇 남아 있지 않았다. 안내데스크 직원과 회계 담당, 그리고 디자이너 두 명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시공 팀은 키키를 따라 상록수 시공 현장으로 나갔다.정유진은 공동 창업자이긴 하지만 특별 대우를 받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나 하나도 안 힘들어.”다른 직원들은 조용히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침에 떠들썩하게 회사에서 구토를 했으니 눈치 빠른 여직원들은 이미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결혼 3년 차 주부인 회계 담당이 웃으며 말했다.“몸이 안 좋으면 돌아가서 쉬어요. 대표는 그럴 자격 있어요.”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컨디션 안 좋으면 들어가서 쉬어요.”정유진이 가끔 이렇게 고집을 부릴 때면 조예원도 감당하기 힘들었다.식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퀵기사가 배달을 왔다.박스를 열어보니 온통 위약과 소화제가 들어 있었다.구매자는 아마 그녀의 몸 상태에 대해 제대로 모르니 이것저것 막 구매한 것 같았다.정유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탕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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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최의현은 강지찬과 완전히 상반된 성격이었다.강지찬이 여색을 극도로 싫어한다면 최의현은 유흥을 즐기는 편이었다.최의현이 뭔가 생각난 듯, 그에게 말했다.“참, 너랑 안나 같이 있던 사진을 누가 찍었어. 어제도 누가 너랑 안나 사귀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강지찬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안나가 누군데?”“뭐?”최의현이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네 머릿속에 든 여자는 정유진밖에 없지?”“지아가 있잖아.”강지찬이 말했다.최의현이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그날 너한테 치근대던 그 여배우 있잖아. 난 네가 관심 없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를 벽에 밀치는 사진이 찍혔더라? 너 기억 안 나?”그제야 강지찬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시뻘건 드레스를 입고 있던 여자?”최의현이 말했다.“시뻘건 드레스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기억에 얼굴은 괜찮았던 것 같아. 하지만 정유진 씨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 사실 나도 정유진 씨처럼 순수하고 맑은 여자는 처음 봤어.”그 말을 들은 강지찬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한씨 성을 가진 남성분이 찾아와서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는데 예약을 안 하고 오셔서요.”강지찬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하는데?”비서가 말했다.“정유진 씨에 관한 거랍니다.”강지찬이 말했다.“접대실에서 만나겠다고 해.”최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인데 한빈이 회사까지 찾아와?”“만나보면 알게 되겠지.”한빈은 비서의 안내를 따라 접대실로 왔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강지찬이 모습을 드러냈다.한빈의 얼굴은 아직도 심하게 부어 있었다.최의현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손 인사를 했다.“한 대표가 여기는 어쩐 일이죠? 얼굴은 왜 그래요?”한빈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강 대표님이랑 좀 오해가 생겨서요. 그리고 최 부사장님, 저 이제 대표 아니니까 한빈이라고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최의현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그러지 말아요. 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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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퇴근할 때가 되어 정유진은 경찰서의 연락을 받았다. 그 폭주족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다.경찰서 인맥까지 동원할 정도면 강지찬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정유진은 정시에 퇴근하려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그렇게 아홉 시가 되어 그녀는 문단속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강지찬은 평소처럼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가려 했지만 어쩐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들킨 건가?이때, 비상계단에 숨었던 정유진이 무덤덤한 얼굴을 나와 그를 지나쳐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강지찬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언제 발견했어요?”정유진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며 그에게 말했다.“오늘 경찰서에 출두했는데 최근에 누가 내가 퇴근할 때 계속 따라다녔다고 말해줬어요.”강지찬도 어색하게 얼굴을 붉히며 엘리베이터에 탔다.폭주족을 잡으려고 경찰 인맥을 동원했다가 자기가 했던 일만 들킨 꼴이 되었다.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집으로 들어선 정유진은 남성 슬리퍼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여분의 남성용 슬리퍼는 없고 이건 아빠가 신던 건데 대충 신어요.”강지찬은 누군가의 발이 닿았던 슬리퍼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별로 신고 싶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었다.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원치 않는다는 신호는 명확했다.정유진은 슬리퍼를 도로 신발장에 넣으며 말했다.“그럼 맨발로 다녀요.”강지찬은 그대로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정유진이 그의 팔뚝을 바라보며 물었다.“병원에 가서 처치는 받았어요?”“아니요.”강지찬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깜빡했어요.”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그녀가 사는 환경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아담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유진 씨가 해줘요.”강지찬이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집에 가서 혼자 하다가 지아 보면 곤란하니까요.”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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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설마 다 말한 건가?’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생각을 부정했다. 강지찬 성격에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이토록 담담할 리 없었다.그럼 한빈은 대체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그녀는 거즈를 꺼내 피가 나오는 곳을 누르며 무심하게 물었다.“왜 찾아갔대요?”그 모습을 보니 강지찬은 돌려서 정보를 알아내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 떨고 있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강지찬이 말했다.“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해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제안하더군요.”정유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한빈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쓰레기였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처 소독에 집중했다.강지찬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조금 둔감하기는 해도 그렇게 멍청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졌다.그가 말했다.“감히 주제에 나랑 거래를 제안하더라고요? 그럴 자격도 없는 녀석이.”정유진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그 표정 하나하나를 강지찬은 놓치지 않고 빤히 바라봤다.한빈이 하고 싶었던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정유진이 긴장할 정도면 분명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다.강지찬은 더욱 진실이 궁금해졌다.상처 소독이 끝난 뒤, 붕대를 다 감고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나 내일부터 정시에 퇴근할 거예요. 야근 안 한다고요.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오지 마세요.”강지찬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따라다니는 게 불편해서요?”“아니요. 강지찬 씨 때문이 아니에요.”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요즘 휴식이 필요했다. 며칠 뒤에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찬은 씩씩거리며 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지는 않았다. 정유진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드디어 긴장한 표정을 풀었다.의약품 상자를 정리하는데 강지아에게서 화상통화가 왔다.강지아는 매일 그녀에게 화상통화를 걸었다. 가끔은 대낮에 걸 때도 있고 밤에 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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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이날 밤, 정유진은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어렵게 눈을 감으면 꿈속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날이 어슴푸레 밝아질 때쯤에 그녀는 잠에서 깼다. 온몸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더 이상 잠들 수 없게 된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서 씻고 아침을 사왔다.잠에서 깬 조예원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너 어제 밤새 못 잤어? 안색이 너무 안 좋아.”“잠깐 잤어.”정유진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안색이 그렇게 안 좋아?”“너 달걀귀신 같아.”병원에 가야 했기에 그녀는 간단한 스킨로션만 바르고 립스틱도 생략했다.안색이 아주 퀭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수술 예약 시간은 아홉 시였다. 두 사람은 일찍 병원으로 가서 대기했다.복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정유진과 비슷한 나이대도 보이고 나이가 더 많은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심각했다.정유진은 갑자기 손발이 시리고 온몸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한편, 장형준은 멀리서 정유진과 조예원이 산부인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뒤따라갔으나 간호사가 남성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뒤돌아서야 했다.그는 밖으로 나가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정유진 씨가 지금 병원으로 갔습니다.”출근길에 있던 강지찬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병원?”장형준이 말했다.“네. 병원 산부인과요. 왜 내원했는지 이유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강지찬은 저도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당장 가서 조사해 봐. 그리고 그 병원 위치 나한테 보내줘.”이때, 당황한 장형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둘째 도련님도 여기 계시네요.”강지찬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강지현?”“지금 통화 중인 것 같은데 아직 저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장형준이 병원 위치를 보내왔다.이 도시에서 가장 큰 대학 병원이었다.강지찬은 바로 그곳으로 방향을 돌렸다.그때, 정유진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강지현이 어떻게 알았는지 수술 날짜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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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정유진은 무감각한 얼굴로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신발과 속옷을 벗었다.수술실은 의료진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의사가 다가와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고 그녀를 수술 침대로 안내했다.출산할 때 쓰는 침대와 비슷한 침대였다.정유진은 갑자기 오한이 들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의료진이 그녀를 재촉했다.“멍하니 서서 뭐 해요? 빨리 올라가지 않고? 걱정 마세요. 마취하면 하나도 안 아파요.”정유진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어떻게 침대로 올라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없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그녀에게 다가온 간호사가 물었다.“많이 추워요?”정유진이 물었다.“선생님, 이 아기는 제가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걸 모르겠죠?”그 말에 간호사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긴장 풀어요. 곧 끝나요.”“얼마나 빨리요?”정유진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간호사들은 항상 보던 장면이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왜 울어요? 수술하기 싫어요?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수술장갑을 착용한 의사가 주사기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오며 짜증을 부렸다.“환자분, 어떻게 할 거예요? 수술할 거면 지금 마취해야 해요.”정유진은 눈물을 흘리느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그녀는 지금 거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자지러지던 울음소리가 떠올랐다.숨이 막히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환자분, 수술하실 거예요? 아니면 안 하실 거예요?”의사가 정색하며 말했다.“고민을 잘 하셔야 해요.”“저는….”수술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남성분은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당장 나가세요!”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유진 안에 있죠?”침대에서 덜덜 떨고 있던 정유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수술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남자가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간호사들이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수술실 커튼이 젖혀지고 강지찬의 얼굴이 정유진의 시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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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정유진은 수치스러운 것도 잊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강지찬이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그대로 안고 수술실을 나갔다.정유진은 그의 목을 꽉 끌어안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이제 괜찮아요. 수술 안 할 거예요. 아기 무사해요.”아기 얘기가 나오자 정유진이 더 세게 울음을 터뜨렸다.강지찬이 정유진을 안고 밖으로 나오자 조예원이 물건을 챙기고 그의 뒤를 따랐다.“강 대표님, 우리 유진이 괜찮은 거죠?”강지찬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예요.”조예원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정유진의 소지품을 장형준에게 건넸다.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지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강지찬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강지현도 걸음을 멈추었다.조예원이 다가와서 그에게 말했다.“지현 씨, 우리도 가요. 유진이 수술 안 했어요.”“안 했다고요?”“네. 마침 강 대표님이 나타나셨거든요.”조예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유진이도 하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최근에 아기가 나오는 꿈을 꿨대요. 아마 속으로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꿈에 애가 나타난 거겠죠. 사실 강 대표님도 그리 나쁜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핏줄이니까 어떻게든 유진이 잘 돌보겠죠.”강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결정이든 친구라면 응원해 줘야겠죠. 걱정 마세요. 형이 보살피고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조예원은 얼굴이 반쪽이 된 그가 안쓰러웠지만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남자로서 건강한 신체를 가지지 못했다는 게 굉장히 자존심 상할 수도 있었다.한편, 정유진은 차에 오른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강지찬의 옷깃을 꽉 잡고 뒷좌석에 몸을 웅크렸다.강지찬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화가 나던 것도 잊고 걱정만 가득했다.차에 오른 그는 그녀를 꽉 품에 껴안았다.그의 품에서 따뜻함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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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집에 도착하자 강지찬은 그대로 그녀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방 집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유진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의사 부를까요?”강지찬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온유한한테 고모랑 같이 집으로 좀 와달라고 하세요.”방 집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연락할게요.”강지찬은 그대로 정유진을 안고 위층 침실로 올라가 그녀를 눕혔다.그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푹 자요. 지금은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해요.”정유진은 어떻게 그를 마주해야 할지 쑥스러워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최근 느꼈던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거센 피로감이 찾아왔다.그녀는 낯선 침대에 누워 바로 잠에 들었다.강지찬은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 밖으로 나갔다.그가 침실에서 나온 것을 보고 강지아가 비명을 지르려다가 강지찬에 의해 입이 틀어막혔다.“조용히 해. 언니 자고 있어.”강지아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언니 어디 아파?”“아니.”강지찬은 여동생에게 한바탕 자랑하려다가 여동생의 정신연령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언니 쉬는데 방해하지 말고 내려가자.”강지아가 활짝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오빠, 언니한테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하면 안 돼?”강지찬이 정색해서 말했다.“네가 한번 물어봐. 언니가 동의하면 난 상관없어. 평생 살아도 돼.”“진짜?”“진짜.”“오빠, 사랑해!”오빠가 일을 자신에게 떠넘긴 것도 모르고 강지아는 감격한 얼굴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여자가 자고 일어나서 또 딴소리를 할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지아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강지찬은 내려가서 방 집사에게 분부했다.“몸에 좋은 영양죽 좀 끓여주세요. 임산부한테 좋은 걸로요.”방 집사가 순간 눈을 빛내며 감격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진 씨가… 임신해썽요?”“네.”강지찬은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고용인들한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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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정유진은 잠결에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만지는 느낌을 느꼈다.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눈도 뜨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병원이 아니었기에 온미정은 자세한 검사를 할 수 없었다.다행히 할아버지를 따라 한의학도 좀 공부했기에 맥을 짚어보고 대략적인 상태를 추측했다.진료가 끝나자 강지찬은 바로 그녀의 손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고 나가자고 눈짓했다.조예원은 정유진의 검사 결과지를 강지찬에게 전송했다.검사 결과를 확인한 온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수치는 다 정상이네. 아기 건강해. 다른 이상이 없으면 당분간은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아. 12주 정도 됐을 때 다시 내원해서 초음파검사 하면 돼.”강지찬은 산부인과 최고 전문의인 온미정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시간 맞춰서 갈게요.”온미정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넌 꼭 필요할 때만 나를 찾더라? 그래도 예쁜 유진 씨를 봐서 내가 참아야지 뭐. 난 네가 그 방면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 그게 아니라 그냥 눈이 높았던 거구나?”온미정은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온씨 가문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분방한 성격이기도 했다.온유한이 말했다.“고모, 이따가 수술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이러다 늦겠어요.”온미정은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시간을 확인하고 강지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다 너 때문이야. 하마터면 수술 지각할 뻔했잖아.”그 말을 끝으로 온미정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버렸다.강지찬은 싸늘한 눈빛으로 온유한을 바라보며 물었다.“넌 안 가?”온유한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나 오늘 쉬는 날이야.”강지찬이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이 자식만 아니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정유진을 안고 잠자고 싶었는데 눈치도 없는 친구 녀석은 소파에 본드라도 붙인 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온유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지현이가 우리 병원에 왔더라. 한의사한테 기력 회복에 필요한 약을 잔뜩 처방 받았더라고. 그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지현이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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