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현은 강지찬과 완전히 상반된 성격이었다.강지찬이 여색을 극도로 싫어한다면 최의현은 유흥을 즐기는 편이었다.최의현이 뭔가 생각난 듯, 그에게 말했다.“참, 너랑 안나 같이 있던 사진을 누가 찍었어. 어제도 누가 너랑 안나 사귀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강지찬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안나가 누군데?”“뭐?”최의현이 못 말린다는 듯이 말했다.“네 머릿속에 든 여자는 정유진밖에 없지?”“지아가 있잖아.”강지찬이 말했다.최의현이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그날 너한테 치근대던 그 여배우 있잖아. 난 네가 관심 없어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를 벽에 밀치는 사진이 찍혔더라? 너 기억 안 나?”그제야 강지찬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시뻘건 드레스를 입고 있던 여자?”최의현이 말했다.“시뻘건 드레스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기억에 얼굴은 괜찮았던 것 같아. 하지만 정유진 씨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 사실 나도 정유진 씨처럼 순수하고 맑은 여자는 처음 봤어.”그 말을 들은 강지찬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한씨 성을 가진 남성분이 찾아와서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는데 예약을 안 하고 오셔서요.”강지찬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 하는데?”비서가 말했다.“정유진 씨에 관한 거랍니다.”강지찬이 말했다.“접대실에서 만나겠다고 해.”최의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인데 한빈이 회사까지 찾아와?”“만나보면 알게 되겠지.”한빈은 비서의 안내를 따라 접대실로 왔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강지찬이 모습을 드러냈다.한빈의 얼굴은 아직도 심하게 부어 있었다.최의현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손 인사를 했다.“한 대표가 여기는 어쩐 일이죠? 얼굴은 왜 그래요?”한빈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강 대표님이랑 좀 오해가 생겨서요. 그리고 최 부사장님, 저 이제 대표 아니니까 한빈이라고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최의현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그러지 말아요. 잘하면
퇴근할 때가 되어 정유진은 경찰서의 연락을 받았다. 그 폭주족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다.경찰서 인맥까지 동원할 정도면 강지찬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정유진은 정시에 퇴근하려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그렇게 아홉 시가 되어 그녀는 문단속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강지찬은 평소처럼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가려 했지만 어쩐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들킨 건가?이때, 비상계단에 숨었던 정유진이 무덤덤한 얼굴을 나와 그를 지나쳐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강지찬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언제 발견했어요?”정유진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며 그에게 말했다.“오늘 경찰서에 출두했는데 최근에 누가 내가 퇴근할 때 계속 따라다녔다고 말해줬어요.”강지찬도 어색하게 얼굴을 붉히며 엘리베이터에 탔다.폭주족을 잡으려고 경찰 인맥을 동원했다가 자기가 했던 일만 들킨 꼴이 되었다.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집으로 들어선 정유진은 남성 슬리퍼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여분의 남성용 슬리퍼는 없고 이건 아빠가 신던 건데 대충 신어요.”강지찬은 누군가의 발이 닿았던 슬리퍼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별로 신고 싶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결벽증이 심한 사람이었다.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원치 않는다는 신호는 명확했다.정유진은 슬리퍼를 도로 신발장에 넣으며 말했다.“그럼 맨발로 다녀요.”강지찬은 그대로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정유진이 그의 팔뚝을 바라보며 물었다.“병원에 가서 처치는 받았어요?”“아니요.”강지찬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깜빡했어요.”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그녀가 사는 환경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아담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유진 씨가 해줘요.”강지찬이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집에 가서 혼자 하다가 지아 보면 곤란하니까요.”정유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설마 다 말한 건가?’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 생각을 부정했다. 강지찬 성격에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이토록 담담할 리 없었다.그럼 한빈은 대체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그녀는 거즈를 꺼내 피가 나오는 곳을 누르며 무심하게 물었다.“왜 찾아갔대요?”그 모습을 보니 강지찬은 돌려서 정보를 알아내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속으로 떨고 있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강지찬이 말했다.“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해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제안하더군요.”정유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한빈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쓰레기였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처 소독에 집중했다.강지찬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조금 둔감하기는 해도 그렇게 멍청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졌다.그가 말했다.“감히 주제에 나랑 거래를 제안하더라고요? 그럴 자격도 없는 녀석이.”정유진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그 표정 하나하나를 강지찬은 놓치지 않고 빤히 바라봤다.한빈이 하고 싶었던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정유진이 긴장할 정도면 분명 작은 일은 아닐 것이다.강지찬은 더욱 진실이 궁금해졌다.상처 소독이 끝난 뒤, 붕대를 다 감고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나 내일부터 정시에 퇴근할 거예요. 야근 안 한다고요.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오지 마세요.”강지찬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따라다니는 게 불편해서요?”“아니요. 강지찬 씨 때문이 아니에요.”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요즘 휴식이 필요했다. 며칠 뒤에 수술이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찬은 씩씩거리며 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지는 않았다. 정유진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드디어 긴장한 표정을 풀었다.의약품 상자를 정리하는데 강지아에게서 화상통화가 왔다.강지아는 매일 그녀에게 화상통화를 걸었다. 가끔은 대낮에 걸 때도 있고 밤에 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
이날 밤, 정유진은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어렵게 눈을 감으면 꿈속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날이 어슴푸레 밝아질 때쯤에 그녀는 잠에서 깼다. 온몸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더 이상 잠들 수 없게 된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가서 씻고 아침을 사왔다.잠에서 깬 조예원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너 어제 밤새 못 잤어? 안색이 너무 안 좋아.”“잠깐 잤어.”정유진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안색이 그렇게 안 좋아?”“너 달걀귀신 같아.”병원에 가야 했기에 그녀는 간단한 스킨로션만 바르고 립스틱도 생략했다.안색이 아주 퀭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수술 예약 시간은 아홉 시였다. 두 사람은 일찍 병원으로 가서 대기했다.복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정유진과 비슷한 나이대도 보이고 나이가 더 많은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심각했다.정유진은 갑자기 손발이 시리고 온몸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한편, 장형준은 멀리서 정유진과 조예원이 산부인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뒤따라갔으나 간호사가 남성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뒤돌아서야 했다.그는 밖으로 나가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정유진 씨가 지금 병원으로 갔습니다.”출근길에 있던 강지찬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병원?”장형준이 말했다.“네. 병원 산부인과요. 왜 내원했는지 이유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강지찬은 저도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당장 가서 조사해 봐. 그리고 그 병원 위치 나한테 보내줘.”이때, 당황한 장형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둘째 도련님도 여기 계시네요.”강지찬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강지현?”“지금 통화 중인 것 같은데 아직 저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장형준이 병원 위치를 보내왔다.이 도시에서 가장 큰 대학 병원이었다.강지찬은 바로 그곳으로 방향을 돌렸다.그때, 정유진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강지현이 어떻게 알았는지 수술 날짜를 알
정유진은 무감각한 얼굴로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신발과 속옷을 벗었다.수술실은 의료진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의사가 다가와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고 그녀를 수술 침대로 안내했다.출산할 때 쓰는 침대와 비슷한 침대였다.정유진은 갑자기 오한이 들고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의료진이 그녀를 재촉했다.“멍하니 서서 뭐 해요? 빨리 올라가지 않고? 걱정 마세요. 마취하면 하나도 안 아파요.”정유진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어떻게 침대로 올라갔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없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그녀에게 다가온 간호사가 물었다.“많이 추워요?”정유진이 물었다.“선생님, 이 아기는 제가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걸 모르겠죠?”그 말에 간호사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긴장 풀어요. 곧 끝나요.”“얼마나 빨리요?”정유진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간호사들은 항상 보던 장면이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왜 울어요? 수술하기 싫어요?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수술장갑을 착용한 의사가 주사기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오며 짜증을 부렸다.“환자분, 어떻게 할 거예요? 수술할 거면 지금 마취해야 해요.”정유진은 눈물을 흘리느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그녀는 지금 거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자지러지던 울음소리가 떠올랐다.숨이 막히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환자분, 수술하실 거예요? 아니면 안 하실 거예요?”의사가 정색하며 말했다.“고민을 잘 하셔야 해요.”“저는….”수술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남성분은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당장 나가세요!”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유진 안에 있죠?”침대에서 덜덜 떨고 있던 정유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수술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남자가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간호사들이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수술실 커튼이 젖혀지고 강지찬의 얼굴이 정유진의 시야에
정유진은 수치스러운 것도 잊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강지찬이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고는 그대로 안고 수술실을 나갔다.정유진은 그의 목을 꽉 끌어안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이제 괜찮아요. 수술 안 할 거예요. 아기 무사해요.”아기 얘기가 나오자 정유진이 더 세게 울음을 터뜨렸다.강지찬이 정유진을 안고 밖으로 나오자 조예원이 물건을 챙기고 그의 뒤를 따랐다.“강 대표님, 우리 유진이 괜찮은 거죠?”강지찬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괜찮아요. 우리 집으로 데려갈 거예요.”조예원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정유진의 소지품을 장형준에게 건넸다.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지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강지찬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직행했다.강지현도 걸음을 멈추었다.조예원이 다가와서 그에게 말했다.“지현 씨, 우리도 가요. 유진이 수술 안 했어요.”“안 했다고요?”“네. 마침 강 대표님이 나타나셨거든요.”조예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유진이도 하고 싶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최근에 아기가 나오는 꿈을 꿨대요. 아마 속으로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꿈에 애가 나타난 거겠죠. 사실 강 대표님도 그리 나쁜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핏줄이니까 어떻게든 유진이 잘 돌보겠죠.”강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결정이든 친구라면 응원해 줘야겠죠. 걱정 마세요. 형이 보살피고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조예원은 얼굴이 반쪽이 된 그가 안쓰러웠지만 굳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남자로서 건강한 신체를 가지지 못했다는 게 굉장히 자존심 상할 수도 있었다.한편, 정유진은 차에 오른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강지찬의 옷깃을 꽉 잡고 뒷좌석에 몸을 웅크렸다.강지찬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화가 나던 것도 잊고 걱정만 가득했다.차에 오른 그는 그녀를 꽉 품에 껴안았다.그의 품에서 따뜻함을 느
집에 도착하자 강지찬은 그대로 그녀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방 집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다.“유진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의사 부를까요?”강지찬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온유한한테 고모랑 같이 집으로 좀 와달라고 하세요.”방 집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연락할게요.”강지찬은 그대로 정유진을 안고 위층 침실로 올라가 그녀를 눕혔다.그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푹 자요. 지금은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해요.”정유진은 어떻게 그를 마주해야 할지 쑥스러워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최근 느꼈던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거센 피로감이 찾아왔다.그녀는 낯선 침대에 누워 바로 잠에 들었다.강지찬은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 밖으로 나갔다.그가 침실에서 나온 것을 보고 강지아가 비명을 지르려다가 강지찬에 의해 입이 틀어막혔다.“조용히 해. 언니 자고 있어.”강지아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언니 어디 아파?”“아니.”강지찬은 여동생에게 한바탕 자랑하려다가 여동생의 정신연령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언니 쉬는데 방해하지 말고 내려가자.”강지아가 활짝 웃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오빠, 언니한테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하면 안 돼?”강지찬이 정색해서 말했다.“네가 한번 물어봐. 언니가 동의하면 난 상관없어. 평생 살아도 돼.”“진짜?”“진짜.”“오빠, 사랑해!”오빠가 일을 자신에게 떠넘긴 것도 모르고 강지아는 감격한 얼굴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여자가 자고 일어나서 또 딴소리를 할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지아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강지찬은 내려가서 방 집사에게 분부했다.“몸에 좋은 영양죽 좀 끓여주세요. 임산부한테 좋은 걸로요.”방 집사가 순간 눈을 빛내며 감격한 목소리로 물었다.“유진 씨가… 임신해썽요?”“네.”강지찬은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고용인들한테 앞
정유진은 잠결에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만지는 느낌을 느꼈다.하지만 너무 피곤해서 눈도 뜨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병원이 아니었기에 온미정은 자세한 검사를 할 수 없었다.다행히 할아버지를 따라 한의학도 좀 공부했기에 맥을 짚어보고 대략적인 상태를 추측했다.진료가 끝나자 강지찬은 바로 그녀의 손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고 나가자고 눈짓했다.조예원은 정유진의 검사 결과지를 강지찬에게 전송했다.검사 결과를 확인한 온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수치는 다 정상이네. 아기 건강해. 다른 이상이 없으면 당분간은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아. 12주 정도 됐을 때 다시 내원해서 초음파검사 하면 돼.”강지찬은 산부인과 최고 전문의인 온미정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시간 맞춰서 갈게요.”온미정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넌 꼭 필요할 때만 나를 찾더라? 그래도 예쁜 유진 씨를 봐서 내가 참아야지 뭐. 난 네가 그 방면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 그게 아니라 그냥 눈이 높았던 거구나?”온미정은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온씨 가문의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분방한 성격이기도 했다.온유한이 말했다.“고모, 이따가 수술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이러다 늦겠어요.”온미정은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시간을 확인하고 강지찬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다 너 때문이야. 하마터면 수술 지각할 뻔했잖아.”그 말을 끝으로 온미정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버렸다.강지찬은 싸늘한 눈빛으로 온유한을 바라보며 물었다.“넌 안 가?”온유한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나 오늘 쉬는 날이야.”강지찬이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이 자식만 아니면 위층으로 올라가서 정유진을 안고 잠자고 싶었는데 눈치도 없는 친구 녀석은 소파에 본드라도 붙인 건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온유한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지현이가 우리 병원에 왔더라. 한의사한테 기력 회복에 필요한 약을 잔뜩 처방 받았더라고. 그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지현이 걔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