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모든 챕터: 챕터 441 - 챕터 450

734 챕터

제441화

그녀가 상상했던 무게가 아니었다.그녀는 놀란 눈으로 장미꽃을 바라봤다. 새하얀 꽃잎에는 다른 잡색은 없었다. 새벽에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막 피려 하고 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금방 딴것 같은 꽃들이 엄청 예뻤다. 은은한 꽃향기와 이슬들이 어우러져서 상쾌하면서도 은은한 기분 좋은 향을 풍기고 있었다.차우미는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장미꽃을 받아봤다. 부드러운 꽃잎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에 병원에서 나는 소독수 냄새가 묻혔다. 방안 가득 찬 장미꽃 향기에 그녀는 장미꽃밭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나상준은 침대 끝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꽃을 보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씻지 않은 상태였지만 뽀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묶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들이 그녀 등 뒤에 자연스럽게 풀어져 있었다. 금방 일어나서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녀의 미모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다만 묶지 않은 머리카락들이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앞으로 기울며 작은 그녀의 얼굴을 반쯤 가렸다.그녀가 웃고 있었다. 평소에는 담담했던 눈매가 웃음으로 물들어있었다. 진심으로 웃고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굴에 정말 좋아한다고 쓰여 있었다.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 있는 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나상준은 마음이 뛰었다. 그녀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그의 눈에 변화가 생겼다.“찰칵.”울려 퍼지는 소리에 차우미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나상준도 자신의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남자를 바라봤다.하성우는 카메라에 차우미를 담고 있었다. 차우미가 고개를 들자 그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옳지, 지금 딱 좋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그리고는 이내 핸드폰 카메라에 차우미를 담았다. 꽃을 들고 있던 차우미의 의아한 표정이 고스란히 하성우의 핸드폰에 찍혔다.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린 차우미는 말을 하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은 침대 끝에 서서
더 보기

제442화

“지금 분위기도 좋고 하니 내가 한 장 찍어줄게.”하성우는 차우미의 사진을 보며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상준에게 말하고는 나상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를 끌어 침대 옆에 앉히고는 그의 팔을 차우미의 허리에 올려놨다.차우미는 빳빳이 굳었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하성우의 손에 이끌려온 나상준이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그의 손이 차우미의 허리에 닿자 얇은 잠옷 위로 그의 체온이 느껴졌고 빠르게 그녀의 마음속에 닿았다. 그녀는 나무토막처럼 몸이 빳빳이 굳었다. 마치 어제저녁처럼 말이다.차우미는 하성우가 아닌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나상준을 바라봤다‘이...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찰칵거리는 소리가 차우미의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차우미는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하성우를 바라보며 제지했다.“성우 씨, 그만 찍어...”하성우에게 있어서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사진을 찍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그녀는 찍지 말라고만 말했다.하지만 하성우는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며 핸드폰을 들고 계속 사진을 찍어댔다.차우미는 깜짝 놀랐다.‘뭐야, 성우 씨 내 말 듣지 못한 건가?’마음이 급해 난 차우미는 하성우와 나상준을 번갈아 쳐다봤다.나상준은 그녀의 옆에 앉아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피하지도 않았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으며 말리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하성우에게 찍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못 했다.‘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이고 무슨 관계인지 모르는 건가?’“형수, 미간 찌푸리지 말고 웃어요, 웃어. 조금 전에 환하게 웃을 때 아주 예뻤단 말이야.”카메라에 담긴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나상준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하성우가 말을 꺼낸 거였다. 마치 전문적인 사진사가 손님들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그의 말을 들은 차우미의 이마의 주름
더 보기

제443화

이 시각, 차우미는 이해할 수 없었다.나상준은 그녀의 맑은 두 눈에 어린 의문과 거절 그리고 배척을 보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고 말했다.“몇 장 더 찍어.”그의 낮은 목소리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그는 더 이상 차우미가 알던 나상준이 아니었다. 완전히 모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차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시각 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의 눈빛이 혼란스러움에 흔들렸다.나상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우리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낮았고 그녀를 달래는 것처럼 들렸다.차우미는 가슴이 뛰었다. 아까보다 더 낮아진 나상준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말 때문이었다.‘나중에 말하자고? 이렇게 행동한 게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차우미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자세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더 없이 이성적이었다.그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녀의 협조가 필요했다.그리고 이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그렇지 않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도 이렇게 행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차우미는 점차 마음이 안정되었다.하지만...차우미는 하성우를 바라봤다. 하성우는 서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를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아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그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을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 이건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과 태도, 그리고 하성우의 모습을 본 그녀는 주저했다.나상준도 재촉하지 않았고 하성우도 가만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차우미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몇 장만 더 찍자. 내가 몸이 별로 안 좋아서.”하성우는 차우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그녀는 지금 찍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나상준의 방금
더 보기

제444화

마성 같은 그의 목소리는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긴장했다.차우미는 즉시 고개를 들었다.그윽한 그의 눈빛에 차우미는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마치 누군가 손을 뻗어 그녀를 그의 눈 속에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가슴이 떨려왔다. 이 순간, 그녀는 그의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찰칵찰칵찰칵.”연속 사진을 찍는 소리에 차우미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재빨리 그의 눈길을 피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하성우를 바라보며 지금의 상황을 의식했다.“됐... 됐지? 나 쉬어야겠어.”그녀는 나상준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움직였다.하성우는 그런 차우미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사실 차우미를 달래는 건 진짜 쉬웠다.부드럽게 말만 하면 됐었다.“응, 됐어. 형수 그럼 상준이와 함께 쉬고 있어. 난 일 있어서 먼저 가볼게. 너희들 푹 쉬어.”말을 마친 하성우는 재빨리 병실을 빠져나갔다.분위기가 달아오른 것을 보고 자리를 비켜준 거였다.이내 병실 문이 닫기고 찰칵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문도 닫기고 하성우도 떠나갔다. 요란한 소음도 함께 사라졌기에 병실은 고요했다. 하지만 차우미는 여전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사람을 긴장시키는 분위기가 병실에 맴돌았다.나상준이 풍기고 있는 분위기라는 걸 차우미는 느낄 수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하게 느껴졌다.그는 아직도 여기에 있었다.“상준 씨도 가서 일 봐. 나 혼자 있을 수 있어. 걱정하지마.”그녀가 감기에 걸린 게 그와도 상관이 있었다. 어젯밤에 그가 축축한 옷을 입고 그녀를 안았었기에 그의 몸에 있던 한기가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간 거였다. 그리고 그녀가 욕실에 들어가서도 한참 차가운 유리에 기대어 서 있었기에 한기가 그녀의 몸에 들어간 탓도 있었다.그녀가 감기에 걸린 것은 의외가 아니었다.그가 어떻게 자신을 병원에 데려오게 된 건지 알 수도 없었고 이미 다 지나간 일이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따지지 않으려 했다.
더 보기

제445화

“딸깍.”문이 닫히자 병실은 고요했다.그제야 마음이 놓인 차우미는 눈을 떴다. 꽃다발을 꼭 안고 있던 손도 그제야 풀렸다.조금 전까지 긴장했던 마음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차우미는 손을 들어 혼란스럽게 뛰고 있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싶었지만 손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순결한 장미꽃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꽃다발을 아직도 품에 꼭 껴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혼란스러워하고 긴장했던 그녀는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마음이 점차 평온해진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꽃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는 창가에 다가가서 커튼을 젖혔다.“촤락.”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뜨거운 열기가 차가웠던 그녀의 몸과 마음을 감쌌다.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나상준은 어딘가 크게 달라진 듯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모든 의혹을 풀어줄 것 같았다.그녀는 그와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냉정함을 잃었었다.이건 그녀의 문제지 그와는 무관했다.하지만 조금 전에 있었던 그 일로 그녀는 그와 말을 할 필요를 못 느꼈다.예전에는 그와 분명하게 말을 해보고 싶었지만 어젯밤과 조금 전의 일로 그녀는 얘기를 나누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그녀는 다시 안평시로 돌아가 그와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이런 행동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한시라도 주저할 수가 없었다. 주저할수록 귀찮은 일들이 생겨났기에 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이따가 변호사에게 전화해 주혜민의 태도에 대해서 확인해보려 했다. 그리고 변호사에게 자신이 오늘 안평시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하려 했다.그녀가 나중에 회성시로 돌아와 주혜민의 일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지금 그녀는 나상준을 떠나려 했다.속으로 결정을 내린 차우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아직은 밝은 하늘을 보고 돌아서서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상준 씨가 날 병원에 데려
더 보기

제446화

나상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하성우를 바라보고 있었다.하성우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주위의 공기마저 뚜렷하게 달라졌다.조금 전에 비해 고요해졌다.하성우도 느꼈지만 그는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 나상준의 변화에 그가 더욱 득의양양하게 웃는 것 같았다.“꽃은 얼마 안 해. 200 정도밖에 안 돼. 하지만 조금 전 그 사진은...”하성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상준은 핸드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하성우는 나상준이 하는 행동을 조용히 지켜봤다.얼마 되지 않아 하성우의 핸드폰이 울렸다.하성우는 눈을 반짝이며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나상준이 그에게 2천만 원을 입금한 거였다.그렇다. 2천만 원이다.하성우는 생각지도 못했다.나상준은 인색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돈을 망탕 허비하는 사람은 또 아니었다.‘200만 원짜리 장미라고 했는데 2천만 원이나 이체를 해줬다고? 너무 많이 준거 아니야?’그러나 이내 하성우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왜냐하면 이 돈은 장미꽃 값이 아니라 방금 그가 찍어준 사진에 대한 돈이기 때문이다.그는 방금 간다고 했지만 진짜로 간 게 아니라 병실 앞에서 자신이 찍어준 사진을 보고 있었다.하성우는 노는 걸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했고 서핑, 암벽, 등반과 같은 각종 종목도 좋아했다. 그는 사진 찍는 기술도 엄청 훌륭했다.두 사람을 아주 잘 찍어줬다. 그의 눈에는 분위기, 눈빛, 각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다만 그는 나상준이 재빠르게 자신의 뒤를 따라 나올 줄은 몰랐다.그렇다, 아주 빠르게 쫓아 나온 것이다.그는 둘이 뭘 좀 할 줄 알았지 이렇게 빨리 따라 나올 줄 몰랐다.하지만 차우미가 그를 거절하는 모습을 생각한 그는 그가 이렇게 빨리 나온 게 이해가 됐다.나상준은 하성우를 힐끔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그가 뭘 할지 궁금해진 하성우는 그렇게 나상준의 뒤를 따라갔고 모퉁이를 돌자 멈춰서는 그를 보며 그가 뭘 할지 알게 된 거였다
더 보기

제447화

나상준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하성우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가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천만 원은 꽃값이야.”사진을 달란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하성우는 입을 벌린 채 차갑게 돌아서서 가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한참 뒤에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나상준은 사진을 달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사진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지금 이 순간, 하성우는 후회막심했다.나상준은 확실히 사진이 갖고 싶었다. 그는 꽃값도 그에게 확실히 줄 사람이었고 하성우도 그가 자신에게 준 꽃값을 받을 사람이었다.하성우가 비록 나상준이 산 거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꽃을 줬지만 꽃값은 반드시 줘야 했고 반드시 받아야 했다.그러나 사진은 달랐다. 나상준은 사진이 갖고 싶었지만 돈으로 사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성우도 그에게서 진짜로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그가 찍은 사진이었기에 그는 나상준에게 바로 사진을 줄 수도 있었고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사진을 주는 과정이 그저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거지만 하성우는 아마 나상준에게 사진을 줬을 거다. 나상준에게서 조금의 혜택을 받든지 아니면 그를 실컷 놀려준 뒤 사진을 줬을 거다.이런 기회는 많지 않을 테니까.그러나 하성우는 나상준이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나상준은 위협받는 것과 놀림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하지만 하성우는 그가 싫어하는 짓거리만 골라서 해대다가 이번에는 자기 발등을 찍은 셈이었다.하성우는 몹시 후회했다.‘양훈아, 넌 왜 병원에 함께 오지 않은 거야. 네가 옆에서 나 좀 말려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 시각 하성우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어디에 말할 곳도 없었다.몸을 돌려 떠난 나상준은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그는 모퉁이를 돌아 몇 발자국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추었다.그의 시선은 간호사 앞에 서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그녀는 부드러운 긴 생머리를 풀어헤친 채 머리카락을 귀 귀로 넘기고 있었다. 그녀
더 보기

제448화

차우미는 나상준이 떠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가 아직 병원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이렇게 공교롭게 만나게 될 줄도 몰랐다.이렇게 만나게 되니 그녀는 몇 마디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원래 퇴원 절차를 밟고 호텔로 돌아가서 회성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사려 했다.하지만 이렇게 그와 만나게 된 이상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떠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나상준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터치했다. 이 시각, 나상준의 눈빛에서 어떠한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고 그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오전의 병원은 매우 시끌벅적했다. 병문안하러 온 친척과 친구들, 다른 가족과 교대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복도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매우 시끄러웠다.그러나 이런 시끄러움은 두 사람과 무관한 것 같았다. 그들은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담담해 보였다.마치 병원 사람들과 그들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차우미는 맑은 눈빛으로 나상준을 빤히 바라보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그윽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상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방금 간호사에게 물어봤는데 나 이제 퇴원해도 된대. 그러니까 상준 씨도 나 걱정하지 말고 가서 일 봐도 돼.”그녀는 방금 간호사에게 몇 시인지 물어봤기에 지금 아홉 시가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상준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었기에 더는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나상준은 그녀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담담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얘기 좀 해.”차우미는 멈칫했다.‘얘기? 얘기를 나누자고?’차우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말을 마친 나상준은 시선을 거두고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그는 얘기를 나누자고 했으면 진짜로 얘기를 나누는 사람이었다.그는 거짓말과 농담을 할 줄 몰랐다.차우미는 차가운 분위기로 성큼성큼 병실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그의
더 보기

제449화

순간 차우미는 굳었다.그녀는 긴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무서운 분위기에 눌린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 어제 취하지 않은 건가?’‘아니면... 취했지만 어젯밤 일을 똑똑하게 기억하는 건가?’차우미는 갑자기 심장이 콩닥거렸다. 이 시각, 그녀는 나상준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의 눈빛을 피했다.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고개를 숙이고 서서히 미간을 찌푸렸다. 의아함, 놀람,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분했던 차우미는 나상준의 한마디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나상준은 담담하게 그런 차우미의 표정을 빤히 쳐다봤다. 차우미는 그의 매서운 눈길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차우미, 대답해.”나상준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투는 전과는 별반 다름이 없었지만 기분 탓인지 차우미는 그의 말투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차우미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나상준의 말투는 어제와는 확연히 달랐다. 아이처럼 집요하게 묻는 게 아니라 정신이 멀쩡한 성인이 묻는 것이었다.차우미에게 오해를 받은 그는 그녀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정확한 대답 말이다.지금의 그는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차분하고 이성적인 그의 물음에 차우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주혜민의 이름을 말했고 차가운 말투로 그녀에게 질문했다.마치 주혜민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더욱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차우미가 아무리 반응이 느린 사람이라고 해도 부정하는 말뜻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젯밤에 그가 했던 말처럼 말이다.“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주혜민이라는걸 나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이 말을 들었을 때 차우미는 긴장이 됐다.어젯밤에 그가 술에 취했었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었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똑똑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인정한 사실을 거듭 부인하며 말이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
더 보기

제450화

“주혜민.”곰곰이 생각한 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그녀는 줄곧 그의 마음속에 있던 사람이 주혜민이라고 생각했다.3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떠도는 소문을 들은 그녀는 일찌감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주혜민이라고 인식했다.그리고 이혼한 뒤에 주혜민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됐다.나상준은 눈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의아함을 비롯한 그녀의 생각이 찌푸린 미간에 담겨있었다. 이 시각 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그녀의 대답을 들은 그의 눈빛이 비웃음으로 바뀌었다.“걔가 그렇게 말했다고 넌 그 말을 믿어?”차우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상준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우미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뭘 설명해?’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주혜민의 말을 뒷받침 해주는 많은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주혜민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3년 동안 그녀는 줄곧 그를 오해했던 것 같았다.차우미는 입술을 달싹였다. 눈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했다.나상준은 그런 차우미의 모습을 보며 눈가에 웃음을 띠었다. 차우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이 웃음을 본 차우미는 마음이 철렁했다.“상준 씨, 나...”“차우미, 여자들이 너한테 가서 나상준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하기만 하면 넌 그 말 믿는 거 아니야?”차우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나상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입술을 벌린 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마치 차우미가 착각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지금의 그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조용한 모습이 무서웠다.“아니야, 난...”“네 맘속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집에 마누라 두고 바람이나 피는 그런 남자야?”차우미의 말은 다시 한번 그에 의해 끊겼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차우미는 나상준에게 더욱 미안한 마
더 보기
이전
1
...
4344454647
...
74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