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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0화

작가: 유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5-29 19:00:00
“주혜민.”

곰곰이 생각한 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는 줄곧 그의 마음속에 있던 사람이 주혜민이라고 생각했다.

3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떠도는 소문을 들은 그녀는 일찌감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주혜민이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이혼한 뒤에 주혜민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됐다.

나상준은 눈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의아함을 비롯한 그녀의 생각이 찌푸린 미간에 담겨있었다. 이 시각 그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그의 눈빛이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걔가 그렇게 말했다고 넌 그 말을 믿어?”

차우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상준의 말을 들은 차우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우미는 설명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뭘 설명해?’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주혜민의 말을 뒷받침 해주는 많은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주혜민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를 오해하고 있었다.

3년 동안 그녀는 줄곧 그를 오해했던 것 같았다.

차우미는 입술을 달싹였다. 눈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했다.

나상준은 그런 차우미의 모습을 보며 눈가에 웃음을 띠었다. 차우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이 웃음을 본 차우미는 마음이 철렁했다.

“상준 씨, 나...”

“차우미, 여자들이 너한테 가서 나상준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하기만 하면 넌 그 말 믿는 거 아니야?”

차우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나상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입술을 벌린 채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마치 차우미가 착각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지금의 그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조용한 모습이 무서웠다.

“아니야, 난...”

“네 맘속에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집에 마누라 두고 바람이나 피는 그런 남자야?”

차우미의 말은 다시 한번 그에 의해 끊겼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차우미는 나상준에게 더욱 미안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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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우미가 꺼낸 얘기를 처음으로 들은 나상준은 3년 넘게 끼고 있었던 결혼반지를 더 이상 만지작거리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맑은 두 눈을 바라봤다.3년 동안 그녀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도 자신이 그녀 옆에 없는 시간 동안에 이렇게 무수한 소문이 그녀의 귓가에 들렸을 줄 몰랐다.그녀도 그 앞에서 억울해한다거나 불안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지금 이 순간 나상준은 심장이 바늘에 찔린듯했다. 한 개의 바늘이 두 개가 됐고 두 개에서 세 개로 변해가다가 나중에는 무수히 많은 바늘이 심장에 촘촘하게 꽂혔다.차우미는 진지하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나상준의 말은 그녀로 하여금 한 가지 사실을 똑똑하게 알게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진실이 진실이 아니었다. 주혜민이 한 말들과 자신이 보고 들은 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비록 차우미는 나상준이 주혜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지만 나상준과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앞과 뒤가 다른 남자가 아니었다.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사실일 거다.소문과 몇 번 만나본 적 없는 주혜민보다는 그녀는 나상준을 더 믿었다.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각 차우미는 자신이 나상준을 오해해 그에게 상처를 줬음을 알게 됐다.그녀는 반드시 사과를 해야 했다. 이 사과가 그에게 준 상처를 아물게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 했다.그러나 차우미가 입을 열자 그는 차우미의 말을 끊고 또 그녀에게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왜 말하지 않았냐고?’차우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상준을 바라봤다. 그의 말뜻을 이해를 못 해서인지 아니면 그의 질문이 너무 갑작스러워서인지 그녀는 입술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결혼 기간 그는 모든 정력을 사업에 쏟았다. 일도 많이 바빴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가 사업을 얼마나 중요시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차우미는 성격이 세지 않고 유유한 편이었다. 가정교육 관계도 있었겠지만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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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   제454화

    그는 담배를 피울 줄 알았지만 중독은 아니었다.이 시각 그는 마치 무엇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어떻게 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그는 뭔가를 해야 했다.뿌연 연기에 그의 얼굴이 가려졌다. 실눈을 뜬 그의 깊은 두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핸드폰은 울리지 않고 조용했다. 차들이 오가는 소리, 사람들 말소리와 백화점의 할인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지만 그는 마치 이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곧게 서서 오랫동안 병원을 바라봤다.그의 발 옆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서서히 늘어갔다.“웅웅...”얼마나 지났을까,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병원을 바라봤다. 마치 듣지 못하는 것처럼 표정 변화도 없었다.“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를 들으며 하성우는 순간 조급해 났다.나상준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심나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원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받지 않으면 난처한 일이 생길 수 있었기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받으니 심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에게 숨기는 일이 없냐며 그를 믿지 못하겠다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소란을 피웠다.그는 그녀에게 각종 이유를 대며 어르고 달랬다. 회유와 협박을 하며 그녀와 오래 통화했다.하지만 심나연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믿지 못하겠다며 돌아오겠다고 했다. 화가 난 하성우는 급기야 전화를 끊어버렸다.심나연이 돌아온다면 하성우에게 더는 자유는 없었다.지금 나상준 말고 그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그래서 그는 병실에서 찍었던 사진을 나상준에게 보내주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나상준이 아무 연락도 없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 다른 그는 바로 나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나상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나상준이 전화를 받지 않다니!’하성우는 화가 나면서도 급했다.‘친구 사이에 장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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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옆에는 담배꽁초들로 가득했다. 나상준은 핸드폰을 들고 하성우의 말을 들으며 병원을 바라봤다. 그는 더는 실눈을 뜨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하성우는 그와 차우미 사이에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아니라면 그가 이런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다.차가운 나상준의 말투는 하성우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성우는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상준아, 차우미와 싸웠어? 이럴 때는 억지로 버티는 거 아니야, 억지로 버텨봤자 너에게 좋은 점 없어. 무슨 일인지 말해봐.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지금이 골든타임이야. 놓치면 안 돼.”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성우가 관심하는 목소리를 들은 나상준이 입을 열었다.“너도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해.”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후회하고 있었다.할머니의 말씀처럼 그는 사업에서는 아주 훌륭한 성과를 냈지만 가정에 있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그의 눈에 무서운 어두움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그는 핸드폰을 꽉 쥔 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순 없었기에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 뿐이었다.원래 그의 것이었던 것을 다시 되찾는 일이었다.그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길바닥에 있는 담배꽁초 치워줘.”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병원으로 들어갔다.운전기사가 병원의 주차장에서 나상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얼른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었지만 나상준은 차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나상준이 차에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운전기사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얼마 안 지나 나상준이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보였다.나상준의 전화를 받은 운전기사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차에서 내려 담배꽁초를 치우러 갔다.이 시각, 다른 곳.하성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핸드폰을 받지 않고 벨 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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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칫하던 차우미는 그의 표정을 보고 옆으로 이동했다.나상준은 그제야 차에 올라탔고 운전기사는 차 문을 닫았다.차는 이내 시동이 걸렸고 병원에서 멀어졌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상준이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말해야 할 것을 다 말한 것처럼 할 말이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차 안은 조용했다. 특히 이 좁은 차 안의 조용함은 병실에서의 조용함과는 또 달랐다. 사람을 긴장되게 만들었다.그러나 여기에서 운전기사만 긴장했다.차우미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평온했다.일도 해결이 됐겠다 그녀가 걱정할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 나쁜 감정들도 더는 생겨나지 않았다.나상준은 뒷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담담한 표정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호텔 앞에 도착했다.멀지 않은 거리여서 차로 십여 분이면 도착했다.차우미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풍경들을 보며 오후에 일할 내용을 생각하다가 차가 멈추는 것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차 문을 열고 내렸다.토론하고 있는 진도로 보아 적어도 2~3일 안에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결과가 나오면 그들은 안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시간이 나면 안평 특산물을 서서 선배에게 보내주려 했다.말한 일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에 차우미는 잊지 않고 있었다.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차우미가 차에서 내리자 나상준도 따라내렷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차우미보다 앞서 걸어 나가며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나상준을 보며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그녀는 어젯밤에 나상준의 캐리어를 본 것 같았다. 그의 캐리어가 아직도 방에 있었다.돌이켜 생각해보던 차우미는 어젯밤에 자신이 아파서 잘못 본 게 아닌지 의심했다.그는 예전에 그녀를 돌봐주면서 그녀 방에 캐리어를 가져다 놨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 방에 캐리어를 둘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거라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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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아니야. 시간도 늦었고 아빠와 엄마는 이제 주무실 거야. 그러니 상준 씨도 일찍 돌아가서 쉬어.”안평에 오기 전에 나상준은 차은평과 소명진을 보러 온다고 했지, 차동수와 하선주도 만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기에 차우미는 조금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나상준의 뜻을 이해했다.후배로서 예의상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안 가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것이다.하지만 차우미는 나상준이 자기 집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다.“가자.”차우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나상준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나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가 그와 차우미 앞에 멈춰 섰다.나상준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를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 가. 그리고 상준 씨는 일도 바쁠 텐데 얼른 가서 일해. 굳이 오늘 갈 필요 없으니 나중에 시간이 많을 때 가도 돼.”“지금 시간이 돼.”“...”차우미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굳이 가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순간 차우미는 나상준의 깊은 눈동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의 생각을 아예 모르는 듯 대답이 없는 차우미를 향해 말했다.“계속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더 늦어져.”차우미는 입술을 다시며 열려 있는 차 문을 보더니 잠깐 머뭇거리다가 올라탔다.나씨 가문에서 자란 나상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차동수와 하선주가 나상준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겠다고 하니 차우미는 포기했다.차우미가 차에 타자 나상준은 문을 닫고 다른 쪽으로 가서 차에 탔다.그들은 순식간에 청강 아파트를 떠났다.청강 아파트와 차동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멀지 않았기에 십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게다가 지금 시간은 교통이 막히지 않은 시간이고 도

  • 봄날   제954화

    차우미는 걸음을 멈추고 소명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상준 씨는 좋은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저희는 그냥 맞지 않을 뿐이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소명진은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평소와 같은 단순하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에는 걱정이 많았다.“알았어. 맞지 않으면 다시 찾으면 되지. 우리 손녀가 얼마나 훌륭한데, 꼭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차우미가 웃으며 소명진을 끌어안더니 소명진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할머니, 저 꼭 행복할 거예요. 저만 믿으세요.”소명진도 웃었다.“그럼, 우리 우미는 꼭 행복할 거야.”차우미와 소명진은 밖에서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고 30분 정도 있다고 신선한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차우미는 거실의 분위기가 나갈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차은평을 번갈아 보았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표정은 모두 달라졌다.나상준의 표정은 여전히 기쁨과 분노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차우미가 예민한 탓인지 그녀는 나상준이 조금 전과 너무 달라진 것 같았다.반면에 차은평은 표정에 명백한 변화가 있었는데 전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고 근엄하고 위엄이 느껴졌다.차우미와 소명진이 나가자마자 그다지 좋지 않은 대화를 한 모양이다.차우미는 과일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머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이제 쉬셔야죠. 저희는 이만 갈게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뵈러 올게요.”현재의 시간은 노인들에게 있어서 늦은 시간이 확실하다.차운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조금 전의 엄숙한 표정은 차우미 집에 들어오는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인자한 얼굴로 변했다.“우리도 알아. 걱정하지 마. 너도 지금 금방 도착했으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너의 부모도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잖아. 그런데 너 몇 달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아.”매년 청주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차우

  • 봄날   제953화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응축되면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차은평은 주전자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조금 전까지 보이던 후배에 대한 사랑은 온데간데없이 엄숙했다.나상준은 허리를 약간 굽혀 주전자를 받으려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차은평의 진지한 말에 그는 동작을 멈추고 차은평과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네, 사실입니다.”대답을 들은 차은평의 표정은 엄숙하고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낯설게 변했다.그와 동시에 나상준에게 차를 주려고 들었던 주전자를 거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상준은 차은평의 행동에 놀라지 않고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저와 우미가 이혼하게 된 건 제3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제 문제입니다. 하지만 결혼 3년 동안 절대 혼인 생활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저희 사이에 오해가 좀 있어요. 제3자는 저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저의 실수입니다.”차은평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자기 찻잔을 들고 마셨다.나상준이 담담한 어조로 하는 말을 들으며 차은평은 잠깐 흠칫하고 눈빛이 흔들리더니 계속 차를 마셨다.그 모습은 나상준의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나상준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우미와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보상하려는 것도 죄책감도 아니고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우미와 이번 생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차은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눈을 내리깔고 나상준의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은평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다.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차은평은 그렇게 나상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고요함을 만끽하며 차를 천천히 마셨다.손에 들고 있던 차를 절반 넘게 마시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차은평은 찻잔을 내려놓고 나상준을 바라보았는데 화는 조금 풀리고 미소가 살짝 보였다.하지만 그 미소는

  • 봄날   제952화

    청강 아파트는 도시 중심이 아닌 외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주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아파트인데 그 옆에는 강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산이 있다.때문에 청산녹수가 한눈에 보이고 경치가 너무 좋아 어르신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인데 차우미의 조부모님들도 바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그들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아파트 앞에서 기분 좋게 오가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차가 멈추려 하자 노인들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차 쪽으로 보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차우미도 밖에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았다.차가 멈추자 차우미는 잽싸게 내려서 노인들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데...”오늘 밤 차우미가 나상준과 함께 조부모님 뵈러 가는 것을 하선주는 싫어했지만, 그녀는 그래도 하선주와 통화를 마친 후 조부모님께 연락했었다.그리하여 그들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에 차우미는 할머니 소명진의 전화를 받고 도착 예정 시간을 얘기했다.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소명진은 차우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조금 전까지 산책하다가 마침 네가 올 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기다린 거야.”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명진은 차에서 내려 차우미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람을 보았다.나상준이 말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소명진은 나상준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우미를 보고 말했다.“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다리다가 먼저 집에 들어갔어.”“네.”차우미는 소명진의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계속 문질렀다.소명진은 차우미의 일과 생활에 관해 물었고 차우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했다.나상준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우미 옆에서 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두 분이 사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 봄날   제951화

    “띵.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비행기는 15분 후에 안평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착륙 준비를 위해...”기내에서 항공 승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차우미는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떴는데 기내의 희미한 조명과 윙윙거리는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제대로 한잠을 잤다.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바라보니 안평시의 불빛들이 깜빡였는데 밤하늘의 가득 채운 것이 은하수의 별빛처럼 아름다웠다.차우미는 일어나 앉아서 눈을 비볐다.나상준은 옆에 있는 차우미가 일어나면서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잽싸게 손을 뻗어 담요를 잡아 다시 덮어주었다.차우미는 무언가 느끼고 고개를 숙였는데 관절이 명확한 손이 자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고마워”그리고 직접 담요를 가져다가 덮었다.담요를 정리하고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하품하며 계속해서 창문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도시를 바라보았다.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점차 하강했는데 익숙한 도시, 고향이 가까워지자, 차우미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돌아오게 되어 그녀는 행복했다.나상준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차우미의 옆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에 빛이 반짝거렸고 또 하품으로 인해 살짝 촉촉했다.눈빛에서 나상준은 차우미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비행기는 유유히 안평 공항에 순조롭게 착륙했다.기내는 어느새 등이 전부 켜졌고 승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차우미는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는데 도로 옆에 앉은 나상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가방을 들고 먼저 나갔다.차우미는 하는 수 없이 나상준의 뒤를 따라 기내에서 나갔다.두 사람은 여전히 VIP 통로로 아무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몇 분 만에 공항을 나왔다.차는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사는 차우미와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짐을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나상준은 뒷좌석의 차 문을 열어 차우미에게 먼저 타라고 했다.차우미는 사양하지 않고 올라가서 안쪽으로 앉

  • 봄날   제950화

    진문숙은 마음이 어찌 조급했는지 가능하다면 올해에 결혼식까지 치르고 싶었다.파티에서 사람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우아한 음악 선율에 맞춰 각자의 생각과 행복, 그리고 걱정들을 이야기했다....성북동 별장에서.주혜민은 운전해서 별장을 떠난 후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고 큰 도로로 빠르게 달렸다.그날 밤, 그녀는 나상준의 냉정한 눈빛이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당황했다.주혜민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나상준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그래서 고민 끝에 문지영을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다.비록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지영과 친해지면 그것 또한 자기에게 유리할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주혜민이 문지영이 집에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는데 결국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정부의 말에서 문지영이 자신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왜 나를 안 만나려고 하는 거지?’주혜민은 설마 나상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문지영을 만났고 또 문지영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는지 궁금했다.그녀는 문지영의 성격을 잘 아는데 절대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런데 이제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문지영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다는 건 그 이유 외 다른 건 없다고 생각했다.이제 문지영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여자가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절대 안 돼!’주혜민은 지금 상황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상대가 자기보다 조건이 좋든 안 좋든 절대 나상준을 포기할 수 없었다.3년을 기다려서 겨우 기회가 왔는데 다시는 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핸들을 꽉 잡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자 기다란 브레이크 소리가 깊은 밤에 울려 퍼졌다.차를 길옆에 주차하고 주혜민은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그녀는 더 이상 시간

  • 봄날   제949화

    문지영도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한 번에 몇몇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봤다.거의 모두 만나봤던 사람들인데 그중에 온씨 가문의 진문숙도 있었다.문지영은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특별히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 필요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서혜란처럼 말이다.예를 들어 온씨 가문의 진문숙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평소에 가끔 만나면 간단하게 웃으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서혜란의 말에 문지영은 궁금해서 물었다.“결혼식이라니? 어느 가문에 결혼식이 있을 것 같아?”문지영 나이대의 사람들은 자식들의 나이가 모두 나상준과 비슷했는데 거의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어느 가문의 자식이 약혼하고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서혜란은 문지영을 보더니 턱으로 진문숙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가운데 있는 온씨 가문의 며느리 진문숙 씨 알지?”문지영은 진문숙 방향으로 보았는데 거기에는 3~4명이 있었는데 진문숙에 가운데서 제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무슨 경사가 있는 듯싶었다.문지영이 잠깐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온씨 가문의 아들은 해외에서 무슨 연구를 하는데 괜찮다고 들었어.”예로부터 사람들은 훌륭한 아이와 나쁜 아이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는다.“맞아. 온씨 가문의 아들은 모두가 좋다고 해. 최근에 들었는데 그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성격이 조용하고 가문도 좋으며 진문숙 씨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었나 봐.”문지영이 그제야 이해했다.그들과 같은 가문에서는 며느리를 볼 때 아들만 좋아한다고 되는 거 아니고 가문 어른들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만약 어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했다.그런데 서혜란이 진문숙도 만나보고 만족한다고 하니 아마도 성사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잘된 일이군.”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다급했다.주변의 많은 아이들은 모두 결혼

  • 봄날   제948화

    어떤 일은 당사자가 눈치채기 전에 잘못 말하면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 뒤에 주씨 가문에 일이 발생하고부터 문지영은 서혜란과 가까이 지냈는데 그녀를 통해서 더 많은 아기씨를 요해하고 직접 며느리를 고르고 싶었다.그때 서혜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고 문지영이 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란은 주혜민의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자기가 알고 있는 아가씨들에 대해서만 문지영에게 알려주고 문지영이 직접 만나보고, 조사하고 고려하게 했다.비록 주혜민은 좋아하지 않지만, 서혜란은 나상준을 높이 평가했다.서혜란이 봤을 때 나상준은 능력이 있고 대담하고 용감하며 신중하게 일 처리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하지만 결혼은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비록 자기 가문에 나이와 조건이 비슷한 소녀를 나상준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라봤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다.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려면 서로 맞아야 한다.서혜란은 모든 일을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본다.때문에 문지영이 며느리를 찾는 문제에서 그녀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모두 나상준과 잘 어울릴만한 아가씨들만 문지영에게 말했다.이제 남은 건 나상준의 마음에 달렸는데 그는 아무나 쉽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문지영이 주혜민을 얘기하는 것을 듣더니 서혜란은 곧바로 문지영이 이제 주혜민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주혜민은 정말로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서혜란도 그냥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것이다.“그 아이가 상준이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서혜란은 여전히 주혜민에 대한 나쁜 말은 하지 않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주혜민과 나상준에 대한 소문은 서혜란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나씨 가문의 나상준이 만약 정말로 주혜민을 좋아한다면 절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주혜민이 어떤 사람인지 나상준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때문에 나상준이 주혜민을 선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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