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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다음 날.차설아는 베이지 캐주얼 점프슈트 차림에 깔끔한 포니테일을 묶은 채로 클라우드 리조트로 향했다. 청순한 차림 덕분에 그녀는 마치 방금 학교를 졸업한 여대생 같았다.클라우드 리조트는 해안시에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숲에 위치한 리조트이다.울창한 나무와 산뜻한 공기는 물론이고, 천연 온천, 골프장에 천연 낚시터 등 시설이 갖춰져 있어 많은 부자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휴가를 즐기곤 했다.길이 좀 막혔기 때문에 차설아가 클라우드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10시 1분이었다. 1분 지각하게 되었다.같은 시각,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직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시끌벅적한 채 클라우드 리조트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중간에 둘러싸인 사람은 바로 차설아와 만나기로 약속한 남우 그룹 사장인 남해진이었다.남우 그룹은 실력이 탄탄하고 든든한 뒷배가 있는 해안시 탑급 투자 회사였다. 성대 그룹의 오래된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이번 성대 그룹에서 일어난 클라이언트 데이터 누설 이슈는 남우 그룹에게도 막심한 손해를 안겨줬다.그래서 남우 그룹은 성대 그룹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차설아는 빠르게 걸어가더니 한 무리 우람한 남자들의 앞을 가로지르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예의를 갖춰 말했다.“남해진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차설아라고 합니다. 말씀으로만 듣던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혹시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그녀는 여리여리하고 순해 보였지만 의외로 기가 센 여자였다. 카리스마 있는 말투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를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남해진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남우 그룹이 성대 그룹과 계약을 해지한 이후로 그는 포식자들이 탐내는 먹이로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설아처럼 그와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찾아왔기에 그는 차설아가 안중에도 없었다.“차설아 씨, 나 당신을 알아요. 나락으로 떨어진 차씨 집안 출신에, 지금 성씨 집안의 당정한 며느리로서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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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이리 줘봐!”남해진은 다급하게 서류 봉투를 뺏어오고는 안에 있는 서류를 꺼내봤다.너무 흥분해서인지 손가락마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바로 얼마 전에 나온 승소 판결문이었다.차설아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 판결문이 남해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남해진은 판결문에서 눈을 떼고는 차설아를 바라봤다.평소에 카리스마 넘치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날 따라와요!”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차설아는 남우 그룹 사장인 남해진과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성공적으로 따내게 되었다.럭셔리한 룸 안에서 남해진은 격앙된 얼굴로 말했다.“승소했어! 드디어 승소했어! 5년이나 걸렸다니... 이 순간을 너무 오래 기다려왔어!”그는 아직까지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판결문 내용을 여러 번 읽어보고 있었다.남해진을 보니 차설아는 문뜩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 감격에 겨워 말했다.“정의는 영원히 우리 편에 있습니다. 돌아가신 추희영 아가씨도 사장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남해진은 갑자기 경계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차설아를 노려보며 물었다.“이 일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미 결정된 판결을 어떻게 뒤집었어요?”“사장님을 존경하고 사장님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업 파트너가 되고 싶어서요. 그래서 공을 들여 사장님에 대해 알아봤어요.”차설아가 침착하게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죠, 사장님에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쁜 딸 남희진 씨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머나먼 해주시에는 사장님의 딸이 또 한 분 계시죠. 그분의 성함은 추희영이고요.”“추희영 씨는 남희진 씨보다 두 살 많습니다. 외모로든 성격으로든, 아니면 재능으로든 모두 남희진 씨보다 뛰어난데 사생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희진 씨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계셨죠...”차설아의 말을 들은 남해진은 추억에 빠졌다.줄곧 엄숙한 얼굴을 보이던 그는 인상을 펴더니 슬픈 눈빛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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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이어서 예쁜 여자애가 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아빠, 어떤 여우년한테 홀렸다면서요. 도대체 누가 이렇게 뻔뻔한지 한 번 봐야겠어요. 감히 클라우드 리조트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요.”남희진은 리미티드 에디션인 가방을 들고 검은색 부츠를 신은 채 또각또각 걸어왔다. 호들갑에 온갖 건방을 떨었는데 영락없이 버릇없는 아가씨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바로 남해진 맞은편에 있는 차설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안색이 어두워졌다.“너였어? 도윤 오빠가 4년 동안이나 내쫓았는데도 버티고 있는 그 여자잖아.”남희진은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차설아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는 경멸과 질투, 그리고 적대심이 깃들어 있었다.차설아가 담담하게 웃더니 남희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남희진 씨, 안녕하세요. 절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네요.”그녀는 남희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남희진은 성도윤의 열성팬이었는데 남해진의 예쁨을 듬뿍 받고 있었기에 제멋대로 행동하곤 했다.차설아는 될수록 이런 사람들을 피하기 마련인데 아마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듯했다...남희진은 차설아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뻔뻔한 년, 도윤 오빠 몰래 우리 아빠를 꼬시려고 해? 지금 바로 도윤 오빠한테 전화해서 이를 거야! 제대로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희진아, 가만있어!”남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귀염둥이 딸에게 모처럼 심각한 얼굴을 보였다.“차설아 씨는 일적으로 나 만나러 온 거야. 나가서 날 기다리고 있어!”“전업주부 주제에 무슨 사업 얘기를 한다고요. 아빠 설마 진짜 저년한테 홀린 거예요? 죽은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남희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를 부렸다.“엉엉엉, 아빠가 그럴 줄 알았어요. 엄마를 하나도 사랑하지 않고 나도 전혀 사랑하지 않잖아요. 아빠랑 인연 끊을 거예요!”“희진아, 왜 또 시작이야...”남해진은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남희진이 억지를 부릴수록 그는 죽은 큰딸 추희영을 더 그리워하곤 했다. 동시에 추희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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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미가연은 해안시에서 내로라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이곳에서 사업 얘기를 하곤 했다.이때, 규모가 제일 큰 홍연정에서 성도윤은 절대적인 핵심 인물로 메인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힘쓰고 있었다.“온 해안시에서도 성 대표님보다 더 대단하신 분은 없죠. 성대 그룹을 이끌어 승승장구하고 계시니 정말 부럽습니다!”사람들이 잇따라 술을 따라주며 아부를 떨면서 성도윤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기분이 들떠있었겠는데 성도윤은 그들의 아부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싸늘한 얼굴, 알 수 없는 표정, 그리고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속세에 찌든 상인들과는 아예 다르게 보였다.이때 어디선가 젊은이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성 대표님이 대단하시긴 하나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라이징 스타들도 많지 않아요? 배씨 집안의 늦둥이 배경수 씨가 경영하고 있는 천신 그룹도 대세잖아요.”성도윤에게 아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의 말은 유난히 거슬리게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자네가 뭘 안다고 그래? 배경수 씨는 바람둥이일 뿐이잖아. 맨날 여자 꼬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그런 사람을 감히 성 대표님과 비교를 해?”성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천신 그룹?”젊은이가 곧이어 대답했다.“네. 성 대표님, 저희 집안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이 회사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했었습니다...”“천신 그룹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규모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닌데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부잣집 자제가 여자 꼬시기 위해 그냥 만든 회사는 절대 아니에요. 미래를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합니다!”사람들이 반박하려고 하자 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말해봐요.”젊은이가 말을 이었다.“천신 그룹의 미래를 기대해 볼 만하다고 한 건 절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 천신 그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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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약 10분 후, 한복을 입은 종업원은 남희진을 데리고 홍연정 앞에 도착했다.“도윤 오빠,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 지금은 날 더 피하지 않겠지?”그녀는 성도윤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원래 성도윤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줬다.해안시의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남해진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씨 집안의 아가씨이자 남우 그룹을 상속받을 후계자였다. 그런 그녀는 성도윤을 미치게 사랑하고 있었다.성대 그룹은 또 남우 그룹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고, 또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집안 형편도 비슷하니 사람들은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예상했었다.하지만 나락 간 집안 출신의 차설아가 나타난 바람에 이 모든 게 바뀌었다...“도윤 오빠, 오랜만이야. 더 잘생겨졌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꿈도 오빠 꿈을 꿨다고...”남희진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성도윤에게 단 한 시라도 눈을 뗀 적이 없었다.그녀는 남자의 팔을 꽉 끌어안고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그동안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어? 우리 그래도 죽마고우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결혼한 후에 날 한 번도 찾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사적인 자리에 누가 얘를 부른 거예요?”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희진은 체면이 깎인 것 같아 분노에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오빠, 꼭 이래야겠어? 내가 무슨 맹수도 아니고 왜 그렇게 피하는 건데?”그러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빠만 그렇게 선을 지켜서 무슨 소용 있어? 단정하기로 소문난 오빠 아내도 그런 줄 알아? 오늘 직접 시인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사람이 오픈 마인드일 줄도 몰랐어. 정말 놀랍더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빠가 참으로 안타까워 보였어.”성도윤이 한껏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뭘 시인했는데?”“그건...”남희진은 사람들을 쓱 훑어보더니 난감한 얼굴을 보였다.사람들도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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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클라우드 리조트에서.무성한 숲으로 뒤덮인 클라우드 리조트는 낮에 부자들이 휴가를 즐기는 곳이긴 했지만 저녁에는 굉장히 위험했다. 날짐승과 포악한 맹수들이 오고 갔기에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숲 한가운데에는 밀폐된 작은 지하실이 있었다. 주위에는 가시덤불밖에 없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치 도깨비불이 존재하듯이 푸른빛을 발하곤 했다.차설아는 구덩이에 앉아 있었는데 습한 공기에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가끔 가다가 쥐나 바퀴벌레가 그녀의 옆을 기어다녔는데 차설아는 무서운 표정 하나 없이 덤덤했다.‘흥, 남희진도 참 멍청해. 날 이 방공호에 가두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난 아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고.’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지옥 같은 환경에 처해있었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겠지만 차설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일말의 무서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사실 차설아에게는 탈출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곧 죽을 사람처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차설아는 돌로 바닥을 문질러 불을 피운 후 그 불빛을 빌려 벽에 뭔가를 슥슥 적어내려갔다.“10, 9, 8, 7...”그녀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처음 약속한 대로라면 배경수는 아마 남해진의 사람을 이끌고 지금 그녀를 ‘구하러’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차설아는 행여나 비참해 보이지 않을까 봐 또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는 바닥에서 먼지를 한 줌 쥐어 얼굴에 벅벅 문질렀다.아니나 다를까, 차설아는 곧 전력질주하는 오프로드 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그녀는 재빨리 불을 끄고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있었다...고요한 어둠 속에서, ‘철컥’ 소리와 함께 방공호의 철문은 확 열렸다.달빛으로 차설아는 커다란 몸집의 누군가가 위에서 뛰어내려온 걸 볼 수 있었다.그녀는 목을 가다듬고는 비참한 목소리로 구해달라며 애원하려고 했는데 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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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성도윤은 차설아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줄 알아 아예 그녀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하지만 잇따라 발목 쪽에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고개를 숙이니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굵은 흑뱀이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는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젠장!”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발목 쪽의 근육이 점점 저려와 오롯이 서 있기도 힘들었다.그는 재빨리 차설아를 뒤에 감싸고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저 뱀을 끌어낼 테니 당신은 타이밍 보고 이곳을 벗어나!”“도윤 씨 물렸어?”차설아가 주먹을 꽉 쥐고는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무늬로 봐선 이 뱀은 우산뱀이야. 주로 이런 습한 환경에서 서식하고 있지. 독성이 워낙 강하니까 움직이지 마, 아니면 뱀독이 더 퍼질 거야!”“살고 싶으면 입 닥쳐!”성도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에게 있어서 차설아의 말은 뱀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뱀을 다뤘던 경험도 없었다.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나서려고 했다.성도윤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고는 살짝 몸을 돌려 뒤쪽에 있는 차설아에게 말했다.“준비하고 있어. 셋까지 세면 당신은 밖으로 뛰는 거야!”차설아는 한숨을 푹 쉬고는 어쩔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이제 그만해. 이 뱀도 곧 갈 거야.”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사실 이런 뱀은 공격적이지 않다. 시력이 제한되어 있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만 감지할 수 있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그리고 뱀은 그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혼자 자리를 뜰 것이다.하지만 성도윤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고, 차설아의 말도 믿지 않을 듯했다.“하나, 둘, 셋, 뛰어!”성도윤은 셋까지 세고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뱀 앞에서 흔들거리며 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했다. 그래야 차설아가 도망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차설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망했어, 다 망했어!”흑뱀은 바로 흥분한 채로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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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웁...”남자의 입술은 용암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차설아는 머리가 새하얘진 채로 성도윤에게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성도윤이 그녀에게 키스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그녀조차도 상황에 푹 빠져있어 저도 모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키스가 한참 진행되었고, 차설아는 눈을 뜨고서 몰래 성도윤이 키스할 때의 표정을 지켜봤다.남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긴 속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는 정말이지 하느님이 만들어낸 걸작과도 같았다.그윽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 완벽한 턱선, 그리고 얇고 섹시한 입술을 보고 있자니 차설아는 미칠 지경이었다.4년 전에도 그녀는 이 잘생긴 얼굴에 현혹되었었다.하지만 4년 뒤에도 그녀는 이 얼굴에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혀 홀리게 되었다니!“에헴!”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보스, 이젠 키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나랑 남 비서님이 꽤 오래 기다렸단 말이야.”배경수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조용히 말했다.“젠장!”도둑이 제 발 저린 차설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성도윤을 확 밀쳐냈다.성도윤은 방금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 나머지 뱀독은 더 빨리 퍼지게 되었다.그는 곧 의식을 잃더니 바닥에 쓰러졌다.“성 대표님!”남해진의 비서인 남영수가 이를 보자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성도윤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어떡하지, 성대 그룹의 대표인 성도윤이 아가씨의 장난 때문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남씨 집안은 백배사죄해도 모자를 판이 되잖아.’“도윤 씨는 뱀독에 중독되었어요,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차설아는 남영수 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고육지책을 펼칠 새도 없었다.그녀는 오로지 성도윤이 무사하길 바랐다.병원에서.그래도 재빠르게 조치를 취하였고, 또 독뱀의 혈청까지 있었기에 성도윤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지만 생명의 위험에서는 벗어났다.“정말 다행이야,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차설아가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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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앞장선 사람은 바로 차설아가 온밤 동안 기다린 남해진이었다.“차설아 씨, 제 못난 딸이 경우가 없었죠. 이미 한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벌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차설아 씨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남해진이 진심으로 사과하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이 가득했다.“저야 운이 좋아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제 남편은 저를 구하기 위해...”차설아는 성도윤이 있는 병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성도윤은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독소가 몸에 고여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그래서 차설아는 걱정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책감을 느끼기도 했다.만약 그녀가 남우 그룹과의 합작을 위해 고육지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성도윤도 뱀에 물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녀는 이 기회를 빌려 남해진에게 비즈니스 합작 제안을 할 수 있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하지만 배경수는 차설아처럼 주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과해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면 세상에 왜 경찰이라는 존재가 있겠어요? 사장님은 워낙 현명하신 분이시니 따님께서 친 사고를 사과 몇 마디만으로 넘기시려는 건 아니겠죠?”남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자세히 생각해 봤는데 만약 차설아 씨가 더는 이 일을 추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우 그룹이 천신 그룹과 합작할지 아니면 성대 그룹과 합작할지에 대해서 차설아 씨가 결정하는 거로 하죠.”“역시 남 사장님은 다르네요, 참 시원시원한 분이시네요.”배경수는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은 몰랐다.차설아는 역시 차설아였다. 남해진 같은 늙은 여우를 하루 만에 해결하다니, 그는 차설아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잖아요. 혹시 사장님께서 시간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계약하는 건 어떻습니까?”배경수는 혹시나 변고가 생기는 걸 대비해 이미 계약서를 준비해뒀다. 이제는 두 회사에서 계약할 일만 남았다.하지만 차설아가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너무 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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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차설아는 미간을 구긴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의사를 보며 말했다.“말씀하세요.”“뱀독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성 대표님의 중추신경을 교란시킬 수 있어요. 성 대표님에게는 사지가 마비되고 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반신불수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니 사모님과 대표님께서 너무 당황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뱀독이 완전히 제거되면 곧 회복하실 겁니다.”“사지가 마비된다고요?”차설아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하지만 이때, 병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꺼져. 다 꺼지라고! 나 건드리지 마!”성도윤은 이미 깬 듯하다.그의 격앙된 목소리는 복도를 울렸다.차설아와 의사는 다급하게 병실로 향했는데 곧이어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병실 문 앞에 굳어 선 젊은 간호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왜 여기들 서 있는 거야? 환자분이 깨셨으면 들어가서 살펴봐야지. 일 그만두고 싶어?”의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혼냈다.안에 누워있는 사람은 성대 그룹의 대표인 성도윤이었다. 자칫하면 이 병원이 문 닫게 생겼는데 말이다.수간호사가 벌벌 떨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저희가 안 살펴보려는 게 아니고요, 성 대표님께서... 성 대표님께서 너무 화를 내셔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어요. 자기를 건드리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셔서 저희... 저희도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뭐?”의사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일찍이 성도윤이 쉽지 않은 상대인 걸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차설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제가 가서 한 번 볼게요.”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바로 짜증이 가득 섞인 성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 꺼지라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도윤 씨는 어쩜 입원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버럭버럭 화를 잘 내. 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셈이야?”차설아가 성도윤의 병상 옆으로 가면서 그를 놀렸다.성도윤은 계속 반듯하게 누워있었기에 그제야 차설아의 얼굴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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