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예쁜 여자애가 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아빠, 어떤 여우년한테 홀렸다면서요. 도대체 누가 이렇게 뻔뻔한지 한 번 봐야겠어요. 감히 클라우드 리조트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요.”남희진은 리미티드 에디션인 가방을 들고 검은색 부츠를 신은 채 또각또각 걸어왔다. 호들갑에 온갖 건방을 떨었는데 영락없이 버릇없는 아가씨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바로 남해진 맞은편에 있는 차설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안색이 어두워졌다.“너였어? 도윤 오빠가 4년 동안이나 내쫓았는데도 버티고 있는 그 여자잖아.”남희진은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차설아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는 경멸과 질투, 그리고 적대심이 깃들어 있었다.차설아가 담담하게 웃더니 남희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남희진 씨, 안녕하세요. 절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네요.”그녀는 남희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남희진은 성도윤의 열성팬이었는데 남해진의 예쁨을 듬뿍 받고 있었기에 제멋대로 행동하곤 했다.차설아는 될수록 이런 사람들을 피하기 마련인데 아마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듯했다...남희진은 차설아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뻔뻔한 년, 도윤 오빠 몰래 우리 아빠를 꼬시려고 해? 지금 바로 도윤 오빠한테 전화해서 이를 거야! 제대로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희진아, 가만있어!”남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귀염둥이 딸에게 모처럼 심각한 얼굴을 보였다.“차설아 씨는 일적으로 나 만나러 온 거야. 나가서 날 기다리고 있어!”“전업주부 주제에 무슨 사업 얘기를 한다고요. 아빠 설마 진짜 저년한테 홀린 거예요? 죽은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남희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를 부렸다.“엉엉엉, 아빠가 그럴 줄 알았어요. 엄마를 하나도 사랑하지 않고 나도 전혀 사랑하지 않잖아요. 아빠랑 인연 끊을 거예요!”“희진아, 왜 또 시작이야...”남해진은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남희진이 억지를 부릴수록 그는 죽은 큰딸 추희영을 더 그리워하곤 했다. 동시에 추희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미가연은 해안시에서 내로라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이곳에서 사업 얘기를 하곤 했다.이때, 규모가 제일 큰 홍연정에서 성도윤은 절대적인 핵심 인물로 메인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느라 힘쓰고 있었다.“온 해안시에서도 성 대표님보다 더 대단하신 분은 없죠. 성대 그룹을 이끌어 승승장구하고 계시니 정말 부럽습니다!”사람들이 잇따라 술을 따라주며 아부를 떨면서 성도윤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기분이 들떠있었겠는데 성도윤은 그들의 아부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싸늘한 얼굴, 알 수 없는 표정, 그리고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면서 속세에 찌든 상인들과는 아예 다르게 보였다.이때 어디선가 젊은이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성 대표님이 대단하시긴 하나 지금 한창 떠오르고 있는 라이징 스타들도 많지 않아요? 배씨 집안의 늦둥이 배경수 씨가 경영하고 있는 천신 그룹도 대세잖아요.”성도윤에게 아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의 말은 유난히 거슬리게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자네가 뭘 안다고 그래? 배경수 씨는 바람둥이일 뿐이잖아. 맨날 여자 꼬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그런 사람을 감히 성 대표님과 비교를 해?”성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천신 그룹?”젊은이가 곧이어 대답했다.“네. 성 대표님, 저희 집안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이 회사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했었습니다...”“천신 그룹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규모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닌데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부잣집 자제가 여자 꼬시기 위해 그냥 만든 회사는 절대 아니에요. 미래를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합니다!”사람들이 반박하려고 하자 성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말해봐요.”젊은이가 말을 이었다.“천신 그룹의 미래를 기대해 볼 만하다고 한 건 절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 천신 그룹의
약 10분 후, 한복을 입은 종업원은 남희진을 데리고 홍연정 앞에 도착했다.“도윤 오빠,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 지금은 날 더 피하지 않겠지?”그녀는 성도윤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원래 성도윤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줬다.해안시의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남해진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씨 집안의 아가씨이자 남우 그룹을 상속받을 후계자였다. 그런 그녀는 성도윤을 미치게 사랑하고 있었다.성대 그룹은 또 남우 그룹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고, 또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집안 형편도 비슷하니 사람들은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예상했었다.하지만 나락 간 집안 출신의 차설아가 나타난 바람에 이 모든 게 바뀌었다...“도윤 오빠, 오랜만이야. 더 잘생겨졌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꿈도 오빠 꿈을 꿨다고...”남희진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성도윤에게 단 한 시라도 눈을 뗀 적이 없었다.그녀는 남자의 팔을 꽉 끌어안고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그동안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어? 우리 그래도 죽마고우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결혼한 후에 날 한 번도 찾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사적인 자리에 누가 얘를 부른 거예요?”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희진은 체면이 깎인 것 같아 분노에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오빠, 꼭 이래야겠어? 내가 무슨 맹수도 아니고 왜 그렇게 피하는 건데?”그러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빠만 그렇게 선을 지켜서 무슨 소용 있어? 단정하기로 소문난 오빠 아내도 그런 줄 알아? 오늘 직접 시인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사람이 오픈 마인드일 줄도 몰랐어. 정말 놀랍더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빠가 참으로 안타까워 보였어.”성도윤이 한껏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뭘 시인했는데?”“그건...”남희진은 사람들을 쓱 훑어보더니 난감한 얼굴을 보였다.사람들도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
클라우드 리조트에서.무성한 숲으로 뒤덮인 클라우드 리조트는 낮에 부자들이 휴가를 즐기는 곳이긴 했지만 저녁에는 굉장히 위험했다. 날짐승과 포악한 맹수들이 오고 갔기에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숲 한가운데에는 밀폐된 작은 지하실이 있었다. 주위에는 가시덤불밖에 없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치 도깨비불이 존재하듯이 푸른빛을 발하곤 했다.차설아는 구덩이에 앉아 있었는데 습한 공기에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가끔 가다가 쥐나 바퀴벌레가 그녀의 옆을 기어다녔는데 차설아는 무서운 표정 하나 없이 덤덤했다.‘흥, 남희진도 참 멍청해. 날 이 방공호에 가두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난 아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고.’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지옥 같은 환경에 처해있었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겠지만 차설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일말의 무서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사실 차설아에게는 탈출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곧 죽을 사람처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차설아는 돌로 바닥을 문질러 불을 피운 후 그 불빛을 빌려 벽에 뭔가를 슥슥 적어내려갔다.“10, 9, 8, 7...”그녀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처음 약속한 대로라면 배경수는 아마 남해진의 사람을 이끌고 지금 그녀를 ‘구하러’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차설아는 행여나 비참해 보이지 않을까 봐 또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는 바닥에서 먼지를 한 줌 쥐어 얼굴에 벅벅 문질렀다.아니나 다를까, 차설아는 곧 전력질주하는 오프로드 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그녀는 재빨리 불을 끄고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있었다...고요한 어둠 속에서, ‘철컥’ 소리와 함께 방공호의 철문은 확 열렸다.달빛으로 차설아는 커다란 몸집의 누군가가 위에서 뛰어내려온 걸 볼 수 있었다.그녀는 목을 가다듬고는 비참한 목소리로 구해달라며 애원하려고 했는데 곧이어
성도윤은 차설아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줄 알아 아예 그녀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하지만 잇따라 발목 쪽에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고개를 숙이니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굵은 흑뱀이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는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젠장!”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발목 쪽의 근육이 점점 저려와 오롯이 서 있기도 힘들었다.그는 재빨리 차설아를 뒤에 감싸고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저 뱀을 끌어낼 테니 당신은 타이밍 보고 이곳을 벗어나!”“도윤 씨 물렸어?”차설아가 주먹을 꽉 쥐고는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무늬로 봐선 이 뱀은 우산뱀이야. 주로 이런 습한 환경에서 서식하고 있지. 독성이 워낙 강하니까 움직이지 마, 아니면 뱀독이 더 퍼질 거야!”“살고 싶으면 입 닥쳐!”성도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에게 있어서 차설아의 말은 뱀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뱀을 다뤘던 경험도 없었다.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나서려고 했다.성도윤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고는 살짝 몸을 돌려 뒤쪽에 있는 차설아에게 말했다.“준비하고 있어. 셋까지 세면 당신은 밖으로 뛰는 거야!”차설아는 한숨을 푹 쉬고는 어쩔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이제 그만해. 이 뱀도 곧 갈 거야.”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사실 이런 뱀은 공격적이지 않다. 시력이 제한되어 있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만 감지할 수 있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그리고 뱀은 그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혼자 자리를 뜰 것이다.하지만 성도윤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고, 차설아의 말도 믿지 않을 듯했다.“하나, 둘, 셋, 뛰어!”성도윤은 셋까지 세고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뱀 앞에서 흔들거리며 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했다. 그래야 차설아가 도망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차설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망했어, 다 망했어!”흑뱀은 바로 흥분한 채로 빛을
“웁...”남자의 입술은 용암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차설아는 머리가 새하얘진 채로 성도윤에게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성도윤이 그녀에게 키스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그녀조차도 상황에 푹 빠져있어 저도 모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키스가 한참 진행되었고, 차설아는 눈을 뜨고서 몰래 성도윤이 키스할 때의 표정을 지켜봤다.남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긴 속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는 정말이지 하느님이 만들어낸 걸작과도 같았다.그윽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 완벽한 턱선, 그리고 얇고 섹시한 입술을 보고 있자니 차설아는 미칠 지경이었다.4년 전에도 그녀는 이 잘생긴 얼굴에 현혹되었었다.하지만 4년 뒤에도 그녀는 이 얼굴에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혀 홀리게 되었다니!“에헴!”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보스, 이젠 키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나랑 남 비서님이 꽤 오래 기다렸단 말이야.”배경수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조용히 말했다.“젠장!”도둑이 제 발 저린 차설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성도윤을 확 밀쳐냈다.성도윤은 방금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 나머지 뱀독은 더 빨리 퍼지게 되었다.그는 곧 의식을 잃더니 바닥에 쓰러졌다.“성 대표님!”남해진의 비서인 남영수가 이를 보자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성도윤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어떡하지, 성대 그룹의 대표인 성도윤이 아가씨의 장난 때문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남씨 집안은 백배사죄해도 모자를 판이 되잖아.’“도윤 씨는 뱀독에 중독되었어요,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차설아는 남영수 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고육지책을 펼칠 새도 없었다.그녀는 오로지 성도윤이 무사하길 바랐다.병원에서.그래도 재빠르게 조치를 취하였고, 또 독뱀의 혈청까지 있었기에 성도윤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지만 생명의 위험에서는 벗어났다.“정말 다행이야,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차설아가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앞장선 사람은 바로 차설아가 온밤 동안 기다린 남해진이었다.“차설아 씨, 제 못난 딸이 경우가 없었죠. 이미 한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벌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차설아 씨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남해진이 진심으로 사과하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이 가득했다.“저야 운이 좋아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제 남편은 저를 구하기 위해...”차설아는 성도윤이 있는 병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성도윤은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독소가 몸에 고여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그래서 차설아는 걱정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책감을 느끼기도 했다.만약 그녀가 남우 그룹과의 합작을 위해 고육지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성도윤도 뱀에 물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녀는 이 기회를 빌려 남해진에게 비즈니스 합작 제안을 할 수 있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하지만 배경수는 차설아처럼 주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과해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면 세상에 왜 경찰이라는 존재가 있겠어요? 사장님은 워낙 현명하신 분이시니 따님께서 친 사고를 사과 몇 마디만으로 넘기시려는 건 아니겠죠?”남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자세히 생각해 봤는데 만약 차설아 씨가 더는 이 일을 추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우 그룹이 천신 그룹과 합작할지 아니면 성대 그룹과 합작할지에 대해서 차설아 씨가 결정하는 거로 하죠.”“역시 남 사장님은 다르네요, 참 시원시원한 분이시네요.”배경수는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은 몰랐다.차설아는 역시 차설아였다. 남해진 같은 늙은 여우를 하루 만에 해결하다니, 그는 차설아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잖아요. 혹시 사장님께서 시간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계약하는 건 어떻습니까?”배경수는 혹시나 변고가 생기는 걸 대비해 이미 계약서를 준비해뒀다. 이제는 두 회사에서 계약할 일만 남았다.하지만 차설아가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너무 서두
차설아는 미간을 구긴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의사를 보며 말했다.“말씀하세요.”“뱀독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성 대표님의 중추신경을 교란시킬 수 있어요. 성 대표님에게는 사지가 마비되고 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반신불수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니 사모님과 대표님께서 너무 당황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뱀독이 완전히 제거되면 곧 회복하실 겁니다.”“사지가 마비된다고요?”차설아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하지만 이때, 병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꺼져. 다 꺼지라고! 나 건드리지 마!”성도윤은 이미 깬 듯하다.그의 격앙된 목소리는 복도를 울렸다.차설아와 의사는 다급하게 병실로 향했는데 곧이어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병실 문 앞에 굳어 선 젊은 간호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왜 여기들 서 있는 거야? 환자분이 깨셨으면 들어가서 살펴봐야지. 일 그만두고 싶어?”의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혼냈다.안에 누워있는 사람은 성대 그룹의 대표인 성도윤이었다. 자칫하면 이 병원이 문 닫게 생겼는데 말이다.수간호사가 벌벌 떨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저희가 안 살펴보려는 게 아니고요, 성 대표님께서... 성 대표님께서 너무 화를 내셔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어요. 자기를 건드리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셔서 저희... 저희도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뭐?”의사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일찍이 성도윤이 쉽지 않은 상대인 걸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차설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제가 가서 한 번 볼게요.”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바로 짜증이 가득 섞인 성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 꺼지라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도윤 씨는 어쩜 입원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버럭버럭 화를 잘 내. 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셈이야?”차설아가 성도윤의 병상 옆으로 가면서 그를 놀렸다.성도윤은 계속 반듯하게 누워있었기에 그제야 차설아의 얼굴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당신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
암컷 돼지가 새끼 돼지를 낳는 것을 도와주면 1000점을 얻을 수 있었다. 사도현이 그 점수를 얻게 되면 다른 참가자의 별장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도현은 배경윤이 선택한 바다 별장을 빼앗을 것이고 배경윤이 어떤 반응일지 몹시 궁금했다.사도현은 제일 빠른 속도로 달려 마을 안쪽에 있는 장은학의 집에 도착했다. 장은학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아주 가난했다.집에서 암컷 돼지를 다섯 마리 기르면서 돈을 벌려고 했다. 장은학이 정성스럽게 보살핀 덕분에 암컷 돼지들은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장은학이 까막눈이라서 어떻게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야 할지 몰랐다. 그때 > 제작진이 이 섬에 오게 되었고 장윤태는 장은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윤태는 무르팍을 치면서 무척 좋아했다.“그럼 게스트들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면 되겠어. 새끼 돼지가 태어난다는 건 새 생명을 맞이한다는 거잖아.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가 같이 출산을 도와주면 기묘한 분위기가 이루어질 거야.”이때 제작진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장 감독님, 출산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기묘한 분위기가 생긴단 말이에요?”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윤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일에 높은 점수를 걸었다. 이 에피소드는 시청률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이 나가기도 전에 이미 시청률은 정상을 찍고 있었다.사도현과 배경윤의 키스 장면 덕분이었다. 장윤태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말했다.“괜찮아.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가 될 거야.”장은학은 돼지우리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현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가서 말했다.“자네가 바로 출산을 도와주러 온 사람인가?”“저, 저는...”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록 제일 일찍 도착했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웃기지 마!”배경윤은 사도현을 밀어내고는 목청을 높였다.“너는 어쩌면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야? 내가 선택한 바다 별장에 너 같은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앞으로 내 집에 들어오지 말아줘.”배경윤은 사도현이 어떤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쳐 돌아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수위 높은 행각을 벌이려고 든다면 감당할 수 없었다.지금으로서 제일 좋은 방법은 사도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현의 음험한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조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경윤아, 지금 네가 한 말 후회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나한테 울면서 빌어도 소용없어.”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게스트들이 일부러 두 사람을 놀려댔다.“유명한 회사 대표가 경윤 씨만 바라보고 직진하는데 왜 자꾸 내빼는 거예요? 솔직히 마음 있잖아요.”“프로그램의 이름을 >이 아니라 >이라고 바꾸는 게 낫겠어요.”“사도현 씨, 경윤 씨가 지내는 별장에 들어오세요. 어차피 곧 가족이 될 사람들인데 초가집에 살든, 별장에 살든 상관없잖아요.”배경윤은 미간을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여러분,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사도현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예요. 요트에서 저를 제압하고 그런 짓을 했으니 여성 참가자를 쉽게 보고 함부로 대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저랑 같은 편에 서서 사도현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런 사람이라서 더 무섭다는 말이에요.”소수민은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사도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저는 차라리 사도현 님처럼 완벽한 남자가 다가와 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이미 마음은 정해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죠. 유빈 씨, 이나 씨. 제 말이 맞죠?”장유빈과 양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사도현 씨처럼 멋진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잡으세요.”명문대 학생 장유빈은 사도현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차갑기
소수민이 숙소를 선착순으로 정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 하늘과 더 얘기하지 않고 재빨리 달려갔을 것이다.“장 감독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거든요. 장 감독님이 촬영한 예능을 보면서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혹시나 해서 먼저 뛰었더니 진짜 선착순이더라고요.”“아까 경윤 씨가 사도현 씨랑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요?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별장까지 선택했으니 정말 모든 걸 다 가졌네요.”소수민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수민 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저랑 사도현을 보고 있었나요?”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배경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실시간 방송이라 진작에 소문이 났는걸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네티즌이 편집해서 올린 모양인데 그게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어요.”“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망신당했으니 어쩌면 좋아.”배경윤은 바다를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영상이 퍼졌다는 건, 진찬영도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사도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나랑 찬영 오빠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이잖아.’배경윤은 저 멀리서 진찬영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찬영의 두 눈은 오로지 배경윤을 향해 있었다.“찬, 찬영 오빠...”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모습은 바람이 난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경윤 씨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전에 나한테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별장이네요. 바다를 마주 보고 있고 날씨가 따뜻하잖아요.”진찬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네. 정말 좋아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찬영 오빠는 어디에서 지내요?”“아주 운 좋게도 경윤 씨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경윤 씨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해요. 이래 보여도 요리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저야 너
배경윤은 제일 빨리 달려갔고 여섯 채의 별장 중에서 가장 근사한 별장을 선택했다.반대로 사도현은 느긋하게 걸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별장을 선택했다. 별장이라 하기에는 한없이 누추한 초가집이었고 지붕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낸단 말이에요? 다른 집으로 안내해 주세요.”사도현은 재벌가 도련님으로서 어릴 적부터 큰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갑자기 초가집에서 지내라니 기가 찼다.“사도현 씨, 정말 죄송하지만 이곳의 규칙을 준수해야 해요. 숙소는 선착순으로 결정되지만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참가자에게는 숙소를 바꿀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며칠 동안 힘내서 점수를 얻으세요.”사회자 최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도현은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지만 연애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면 규칙을 잘 준수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숙소를 바꿀 수 있다고요?”사도현은 턱을 매만지더니 씩 웃으면서 물었다.“어떻게 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어요?”“밭일을 하거나 가축에게 먹이를 주면 돼요. 바닥에 널린 소똥과 개똥을 치워도 되고요. 아무튼 이곳은 할 일이 아주 많으니 일을 찾아서 하면 점수를 드려요.”그러자 사도현의 표정이 삽시에 굳었다.“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부려 먹는 프로그램 아니에요? 자꾸 힘든 일만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요.”최빈은 어색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시다시피 장윤태 감독님이 >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찾으러 온 이곳에서 직접 일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호감을 느끼는 상대의 마음을 얻으라는 취지라고 했어요.“하! 소똥이나 주우면서 매력을 발산하라는 말이네요? 궂은일만 하는데 어떻게 로맨틱한 분위기가 이루어지겠어요. 감독님도 참 대단해요.”사도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합산 점수가 제일 높으면 된다는 뜻이죠? 내가 이런 승부욕은 또 있거든요. 다른 남성 참가자한테 뒤처지지 않을 거예요.”사도현은 소
윤설은 화면 속의 배경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배경윤, 네까짓 게 뭔데 내 남자를 차지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줄 테니 딱 기다려. 연예계라는 곳은 너처럼 멍청한 년이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게.”윤설은 심호흡하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는 인터넷 마케팅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 회사는 수백 개의 계정으로 한 사건의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능했다.“윤설 씨, 오랜만이에요. 고귀하신 분이 어쩐 일로 연락했어요?”“장 사장님, 그동안 너무 받기만 해서 선물이라도 드리려고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예요.”“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요즘 장사도 잘되지 않아서 골치 아팠거든요. 한번 들어나 볼까요?”“배경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죠? 이 여자가 망신당하게 해주면 돼요.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챙겨드릴 테니 확실하게 해주세요.”“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건 우리 회사가 이 바닥에서 제일 잘해요.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윤설을 전화를 끊고는 피식 웃었다. 한편, 요트에서 사도현이 돌진한 뒤로 배경윤은 꼼짝하지 못했다.“사도현, 너는 내가 본 남자 중에 제일 뻔뻔한 남자야. 너처럼 뻔뻔하면 못 하는 일이 없겠어.”조각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도현은 개의치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배경윤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뻔뻔스러운 척했을 뿐이야. 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기 왔으니 뭐라도 해야지. 나는 직진할 줄밖에 몰라.”사도현은 평온하게 말했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나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서 왜 계속 확신을 주지 않았어? 너는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르는 멍청이야.”배경윤은 사도현과 사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사도현의 여자가 되려고 애썼지만 고통만 받았기에 다시는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너한테 상처 준 걸 많이 후회했어. 너를 잃고 나서 내가 잘못했다는
“읍!”배경윤은 갑자기 돌진한 사도현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사도현은 배경윤을 집어삼킬 것처럼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편집 없이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기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본 네티즌은 앞다투어 댓글을 달았고 시청률은 기록을 경신했다.[아니, 내가 이런 장면을 봐도 되는 거야? 드라마보다 더 로맨틱하잖아!][키스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줄 알았더니 정말 입을 맞추었어. 유명한 그룹의 대표와 사랑에 빠지는 대본을 나도 받아보고 싶네.][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그 여배우를 더 이상 밀어주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어. 벌써 새로운 여자랑 놀아나고 있었던 거지!][그럼 배경윤이 첩이네. 첩 주제에 연애 프로그램에 왜 출연하는 거야? 이런 사람을 섭외한 제작진도 이상해.][지금 몇 세기인데 첩을 논해? 고귀한 사도현이 그 여우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다가 지쳤을 뿐이야.][네가 뭔데 우리 윤설을 여우라고 해? 윤설이 사도현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네티즌은 의견이 분분했고 댓글이 삽시에 몇천 개씩 달렸다.사도현과 배경윤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경윤을 첩이라고 부르면서 모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윤설의 극성팬들이 윤설을 옹호했다.하지만 대부분 시청자는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장면에 감탄하면서 댓글을 달았다.사도현과 배경윤의 촬영을 맡은 일부 제작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라마 같은 장면을 계속 촬영해야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하지 못해서 장윤태한테 도움을 청했다.“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둬.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생각해.”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장윤태는 엄숙한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배경윤과 진찬영을 이어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돌진한 사도현 때문에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수줍고 천천히 다가가는 진찬영과 달리, 사도현은 직진하는 남자였다.방송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아무리 잘 짜인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