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분 후, 한복을 입은 종업원은 남희진을 데리고 홍연정 앞에 도착했다.“도윤 오빠,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 지금은 날 더 피하지 않겠지?”그녀는 성도윤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원래 성도윤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줬다.해안시의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남해진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씨 집안의 아가씨이자 남우 그룹을 상속받을 후계자였다. 그런 그녀는 성도윤을 미치게 사랑하고 있었다.성대 그룹은 또 남우 그룹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고, 또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집안 형편도 비슷하니 사람들은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예상했었다.하지만 나락 간 집안 출신의 차설아가 나타난 바람에 이 모든 게 바뀌었다...“도윤 오빠, 오랜만이야. 더 잘생겨졌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꿈도 오빠 꿈을 꿨다고...”남희진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성도윤에게 단 한 시라도 눈을 뗀 적이 없었다.그녀는 남자의 팔을 꽉 끌어안고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그동안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어? 우리 그래도 죽마고우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결혼한 후에 날 한 번도 찾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성도윤은 싸늘한 얼굴로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사적인 자리에 누가 얘를 부른 거예요?”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희진은 체면이 깎인 것 같아 분노에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오빠, 꼭 이래야겠어? 내가 무슨 맹수도 아니고 왜 그렇게 피하는 건데?”그러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빠만 그렇게 선을 지켜서 무슨 소용 있어? 단정하기로 소문난 오빠 아내도 그런 줄 알아? 오늘 직접 시인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사람이 오픈 마인드일 줄도 몰랐어. 정말 놀랍더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빠가 참으로 안타까워 보였어.”성도윤이 한껏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뭘 시인했는데?”“그건...”남희진은 사람들을 쓱 훑어보더니 난감한 얼굴을 보였다.사람들도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
클라우드 리조트에서.무성한 숲으로 뒤덮인 클라우드 리조트는 낮에 부자들이 휴가를 즐기는 곳이긴 했지만 저녁에는 굉장히 위험했다. 날짐승과 포악한 맹수들이 오고 갔기에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숲 한가운데에는 밀폐된 작은 지하실이 있었다. 주위에는 가시덤불밖에 없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치 도깨비불이 존재하듯이 푸른빛을 발하곤 했다.차설아는 구덩이에 앉아 있었는데 습한 공기에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가끔 가다가 쥐나 바퀴벌레가 그녀의 옆을 기어다녔는데 차설아는 무서운 표정 하나 없이 덤덤했다.‘흥, 남희진도 참 멍청해. 날 이 방공호에 가두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난 아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고.’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지옥 같은 환경에 처해있었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겠지만 차설아는 아니었다. 그녀는 일말의 무서운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사실 차설아에게는 탈출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곧 죽을 사람처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차설아는 돌로 바닥을 문질러 불을 피운 후 그 불빛을 빌려 벽에 뭔가를 슥슥 적어내려갔다.“10, 9, 8, 7...”그녀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처음 약속한 대로라면 배경수는 아마 남해진의 사람을 이끌고 지금 그녀를 ‘구하러’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차설아는 행여나 비참해 보이지 않을까 봐 또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는 바닥에서 먼지를 한 줌 쥐어 얼굴에 벅벅 문질렀다.아니나 다를까, 차설아는 곧 전력질주하는 오프로드 카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그녀는 재빨리 불을 끄고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있었다...고요한 어둠 속에서, ‘철컥’ 소리와 함께 방공호의 철문은 확 열렸다.달빛으로 차설아는 커다란 몸집의 누군가가 위에서 뛰어내려온 걸 볼 수 있었다.그녀는 목을 가다듬고는 비참한 목소리로 구해달라며 애원하려고 했는데 곧이어
성도윤은 차설아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줄 알아 아예 그녀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하지만 잇따라 발목 쪽에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고개를 숙이니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굵은 흑뱀이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는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젠장!”성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발목 쪽의 근육이 점점 저려와 오롯이 서 있기도 힘들었다.그는 재빨리 차설아를 뒤에 감싸고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저 뱀을 끌어낼 테니 당신은 타이밍 보고 이곳을 벗어나!”“도윤 씨 물렸어?”차설아가 주먹을 꽉 쥐고는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무늬로 봐선 이 뱀은 우산뱀이야. 주로 이런 습한 환경에서 서식하고 있지. 독성이 워낙 강하니까 움직이지 마, 아니면 뱀독이 더 퍼질 거야!”“살고 싶으면 입 닥쳐!”성도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에게 있어서 차설아의 말은 뱀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뱀을 다뤘던 경험도 없었다.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나서려고 했다.성도윤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꺼내고는 살짝 몸을 돌려 뒤쪽에 있는 차설아에게 말했다.“준비하고 있어. 셋까지 세면 당신은 밖으로 뛰는 거야!”차설아는 한숨을 푹 쉬고는 어쩔 수 없는 말투로 말했다.“이제 그만해. 이 뱀도 곧 갈 거야.”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사실 이런 뱀은 공격적이지 않다. 시력이 제한되어 있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만 감지할 수 있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그리고 뱀은 그들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혼자 자리를 뜰 것이다.하지만 성도윤은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고, 차설아의 말도 믿지 않을 듯했다.“하나, 둘, 셋, 뛰어!”성도윤은 셋까지 세고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뱀 앞에서 흔들거리며 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했다. 그래야 차설아가 도망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차설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망했어, 다 망했어!”흑뱀은 바로 흥분한 채로 빛을
“웁...”남자의 입술은 용암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차설아는 머리가 새하얘진 채로 성도윤에게 그대로 당하고 있었다.성도윤이 그녀에게 키스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렇게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그녀조차도 상황에 푹 빠져있어 저도 모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키스가 한참 진행되었고, 차설아는 눈을 뜨고서 몰래 성도윤이 키스할 때의 표정을 지켜봤다.남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긴 속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는 정말이지 하느님이 만들어낸 걸작과도 같았다.그윽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 완벽한 턱선, 그리고 얇고 섹시한 입술을 보고 있자니 차설아는 미칠 지경이었다.4년 전에도 그녀는 이 잘생긴 얼굴에 현혹되었었다.하지만 4년 뒤에도 그녀는 이 얼굴에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혀 홀리게 되었다니!“에헴!”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어색하게 목을 가다듬었다.“보스, 이젠 키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나랑 남 비서님이 꽤 오래 기다렸단 말이야.”배경수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조용히 말했다.“젠장!”도둑이 제 발 저린 차설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성도윤을 확 밀쳐냈다.성도윤은 방금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된 나머지 뱀독은 더 빨리 퍼지게 되었다.그는 곧 의식을 잃더니 바닥에 쓰러졌다.“성 대표님!”남해진의 비서인 남영수가 이를 보자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성도윤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어떡하지, 성대 그룹의 대표인 성도윤이 아가씨의 장난 때문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게 되면 남씨 집안은 백배사죄해도 모자를 판이 되잖아.’“도윤 씨는 뱀독에 중독되었어요,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차설아는 남영수 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고육지책을 펼칠 새도 없었다.그녀는 오로지 성도윤이 무사하길 바랐다.병원에서.그래도 재빠르게 조치를 취하였고, 또 독뱀의 혈청까지 있었기에 성도윤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지만 생명의 위험에서는 벗어났다.“정말 다행이야,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차설아가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앞장선 사람은 바로 차설아가 온밤 동안 기다린 남해진이었다.“차설아 씨, 제 못난 딸이 경우가 없었죠. 이미 한 달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벌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차설아 씨께서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남해진이 진심으로 사과하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이 가득했다.“저야 운이 좋아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제 남편은 저를 구하기 위해...”차설아는 성도윤이 있는 병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성도윤은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독소가 몸에 고여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그래서 차설아는 걱정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책감을 느끼기도 했다.만약 그녀가 남우 그룹과의 합작을 위해 고육지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성도윤도 뱀에 물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녀는 이 기회를 빌려 남해진에게 비즈니스 합작 제안을 할 수 있었지만,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하지만 배경수는 차설아처럼 주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사과해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면 세상에 왜 경찰이라는 존재가 있겠어요? 사장님은 워낙 현명하신 분이시니 따님께서 친 사고를 사과 몇 마디만으로 넘기시려는 건 아니겠죠?”남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자세히 생각해 봤는데 만약 차설아 씨가 더는 이 일을 추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우 그룹이 천신 그룹과 합작할지 아니면 성대 그룹과 합작할지에 대해서 차설아 씨가 결정하는 거로 하죠.”“역시 남 사장님은 다르네요, 참 시원시원한 분이시네요.”배경수는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은 몰랐다.차설아는 역시 차설아였다. 남해진 같은 늙은 여우를 하루 만에 해결하다니, 그는 차설아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잖아요. 혹시 사장님께서 시간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계약하는 건 어떻습니까?”배경수는 혹시나 변고가 생기는 걸 대비해 이미 계약서를 준비해뒀다. 이제는 두 회사에서 계약할 일만 남았다.하지만 차설아가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너무 서두
차설아는 미간을 구긴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의사를 보며 말했다.“말씀하세요.”“뱀독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성 대표님의 중추신경을 교란시킬 수 있어요. 성 대표님에게는 사지가 마비되고 잘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반신불수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니 사모님과 대표님께서 너무 당황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뱀독이 완전히 제거되면 곧 회복하실 겁니다.”“사지가 마비된다고요?”차설아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하지만 이때, 병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꺼져. 다 꺼지라고! 나 건드리지 마!”성도윤은 이미 깬 듯하다.그의 격앙된 목소리는 복도를 울렸다.차설아와 의사는 다급하게 병실로 향했는데 곧이어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병실 문 앞에 굳어 선 젊은 간호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왜 여기들 서 있는 거야? 환자분이 깨셨으면 들어가서 살펴봐야지. 일 그만두고 싶어?”의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혼냈다.안에 누워있는 사람은 성대 그룹의 대표인 성도윤이었다. 자칫하면 이 병원이 문 닫게 생겼는데 말이다.수간호사가 벌벌 떨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 저희가 안 살펴보려는 게 아니고요, 성 대표님께서... 성 대표님께서 너무 화를 내셔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어요. 자기를 건드리면 가만히 안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셔서 저희... 저희도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뭐?”의사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일찍이 성도윤이 쉽지 않은 상대인 걸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차설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제가 가서 한 번 볼게요.”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바로 짜증이 가득 섞인 성도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 꺼지라고 했잖아, 내 말 안 들려?”“도윤 씨는 어쩜 입원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버럭버럭 화를 잘 내. 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셈이야?”차설아가 성도윤의 병상 옆으로 가면서 그를 놀렸다.성도윤은 계속 반듯하게 누워있었기에 그제야 차설아의 얼굴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당신
도윤의 가슴 철렁 내려앉는 듯한 표정을 본 차설아는 인간적으로 너무 웃겼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멋지고 도도한 성도윤에게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이 있다니, 어찌 놓칠 수야 있었을까?차설아는 애써 미간을 찌푸린 채 무거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그래. 불행은 언제나 갑자기 오는 거지. 도윤 씨, 운명을 받아 들어야지!”성도윤은 눈을 꾹 감고는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의기소침해서 말했다.“나가, 나 혼자 있고 싶어.”“그건 안 되지. 나 때문에 다친 건데. 역경은 같이 이겨내야지. 내가 간호해줄게.”차설아의 의리는 성도윤의 무자비한 거절을 맞았다.“필요 없어!”“정말 필요 없을까?”“나가!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성도윤의 차디찬 태도는 마치 얼음 호수에 빠진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러던 와중에 성도윤의 전화가 울려 왔다. 전화는 성도윤이 받지 않으면 끊기지 않을 기세로 강직하게 울려댔다. “그, 도윤 씨... 나가있을 게. 통화 편하게 해!”차설아는 “속 깊은” 모양새로 눈썹을 찡긋하며 말하고 뒤돌아섰다. 전화는 계속 울렸고 잘생긴 성도윤의 얼굴은 한참 어두워지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핸드폰 줘!”“성 대표님, 뭐라고요? 잘 안 들리네.”차설아는 귀에 손을 다 갖다 대며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거... 핸드폰 갖다 줘!”성도윤은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 설아가 일부러 안 들리는 척하며 본인을 골탕 먹이는 걸 알면서도 당해낼 수밖에, 부탁하는 사람이 누그러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그래. 그래야지. 도움이 필요할 땐 부탁을 해야지. 그렇게 생떼 부리면 본인만 손해란걸 모르시나.”차설아는 웃어 보이며 혼내면서 성도윤의 양복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 그의 귀에 갖다 대주었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성도윤의 수행비서 진무열이었고 그는 전화 받자마자 구시렁대며 말했다.“보스. 어디예요? 미가연에서 나간 뒤로 이렇게 연락 안 되면 어떡합니까! 어머님께
“조금 전에 역경을 나랑 같이한다고 맹세하던 사람은 어데 갔어? 뭐 갑자기 하라니까 마음이 쫄려?”절망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는 표정의 성도윤은 냉소를 지어 보였다.“됐어. 뭐. 가려면 가. 나 혼자 죽든 말든 상관 말고 가. 이런 꼴로 살아서 뭐 해.”차설아는 전형적인 강강약약 스타일이라 성도윤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모른척하고 가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거기까지. 간호한다 해. 돈까지 준다는데 못 할 게 뭐야!”차설아는 시원스럽게 말했다.성도윤이 이렇게 된 게 결국 그녀를 구하기 위함이었기에, 또 인정을 빚지고는 못 사는 차설아라, 내버려 두면 본인 마음이 더 불편했을 것이다. 어차피 겨우 서너 날 정도면 될 일이라, 그녀만 참고 눈 딱 감으면 지나갈 일이었다!“선택은 당신이 한 거야. 강요하지 않았어, 난.”대표 성도윤은 새침하고 도도하게 얘기했다.“네, 네. 미천한 제가 배불러 터져서 기꺼이 도련님을 간호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네요. 그죠?”차설아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맘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입만 살아서, 츤츤거리기는!’성도윤은 자본주의 각성이 몸에 밴 사람인지라, 곧바로 비싼 노동력을 착취하기 시작했다.“나 목마른데 물 좀. 참고로 난 36도의 미지근한 물만 마셔. 물의 온도는 더도 덜도 안 돼.”“아...”그 말에 차설아는 주먹이 울었다.차설아가 투덜거리며 그가 마실 물을 받아주려고 몸을 돌리자, 성도윤의 한쪽 입고리가 귀에 걸릴 만큼 올라가 있었고 그윽한 눈빛에는 여우 같은 교활함이 묻어있었다.그사이 의사와 간호사가 진찰하러 들어왔고 의사가 조심스럽게 성도윤에게 물었다.“환자분, 몸 어떠세요?”“그걸 의사인 당신들이 더 잘 아는 거 아닌가요? 굳이 입 아프게 그걸 나한테 물어요?”성도윤은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입을 꾹 닫아버렸다.의사는 난처한지 손을 비벼 대는 모습을 취했다.“정말 죄송합니다. 환자분, 저희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 느끼는 현상은 독사에 중독되면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긴 한데 조금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