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신 시집간 내 남편이 재벌이라니?: Chapter 901 - Chapter 910
1102 Chapters
제901화
최군형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오늘은 아빠랑 같이 씻자, 앉지 말고, 서서!”“응? 그러면 안 돼요. 그럼...”강서연이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녀가 말릴 틈도 없이 최연준은 아들을 데리고 샤워실로 들어가 문을 철컥 잠가버렸다.강서연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얼마 뒤 물소리가 들려왔다. 최군형이 칭얼댔지만 최연준은 엄격한 아버지의 방식으로 그를 위로했다.“사나이가 이 정도로 무서워하면 어떡해? 머리 감는 거잖아! 왜 우는 거야? 최군형! 다시 한번 울었다가는 우유 없을 줄 알아!”강서연은 문을 따지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최군형은 이내 적응한 듯 깔깔 웃어댔다.얼마 후...“악!”최연준의 비명에 강서연이 깜짝 놀랐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문을 두드렸다.“왜 그래요? 넘어졌어요?”그 말이 끝나자 욕실 문이 열리더니 최연준이 수건을 두르고 굳은 얼굴로 걸어 나왔다.“여보? 왜 그래요?”“괜찮아, 이 자식이 날 꼬집어!”“네? 어디를요?”최연준이 입을 꾹 다물고는 허리에 두른 수건을 꼭 잡고 있었다. 어디긴 어디야, 당연히...이때 최군형이 거품도 닦지 않은 채 흥분해 달려 나왔다.“응가, 응가! 가지고 놀래!”최연준이 최군형을 흘겨보고는 도망갔다. 강서연은 이제야 상황을 깨닫고는 웃으며 아들을 안고 욕실로 들어갔다.잘 씻기기나 하지, 왜 같이 씻겠다고 해서는!사실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군형이 손힘이 센데, 다친 건 아니겠지?......늦은 밤, 황궁에는 온통 불이 켜져 있었다.옥이는 특제 복숭아 향 향초를 켰다. 가연은 이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송이수가 이를 좋아했기에 계속 켜두고 있었다.향이 온 궁전에 퍼졌다. 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마마, 이제 쉬시지요.”옥이가 천천히 말했다. 가연이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맨체스터 시티의 일은 잘 해결된 거야?”“네, 그 둘을 찾아냈습니다. 서지현의 양부모더군요.”“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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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2화
가연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뭔데?”옥이가 침을 삼켰다. 이게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부터 가연을 모셨기에 그녀에 대한 감정이 깊었다. 하지만 가연에게 그녀는 중요한 사람이 아닌 듯싶었다.“제 아들 학교 말인데요...”“이미 해결해 줬잖아?”“마마, 그 학교는 꼴통 학교에요! 학생들은 패싸움하고, 선생들도 제대로 일하지 않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어요!”“하지만 호적이 필요 없는 건 거기뿐이잖아. 옥아, 네 아들은 사생아야. 호적도 없는 애가 어떻게 공립학교를 다녀?”옥이가 멍해졌다. 그녀는 조용히 가연의 비웃음 어린 눈길을 쳐다보았다. 십여 년의 충성이 한낱 종이조각이 된 기분이었다.호적?왕후의 시녀가 제 아들의 호적도 만들지 못한다니,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가연이 입만 열면 해결될 문제였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하지만 가연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가연에게 옥이는 딱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옥이는 맨체스터 시티에 있을 때 강서연에게 똑같이 말했었다.“제 아들은 사생아라서 호적에 없어요. 그래서 공립 학교를 못 다니는데, 사립 학교를 보내려니 학비가 너무 비싸네요.”“걱정 마요, 제가 해결해 줄게요.”강서연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저 해보는 말인 줄 알았는데, 사흘 뒤 남양 최고의 공립학교 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었다.......“멍하니 뭐 해?”가연의 질책에 옥이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숙여 붉어진 눈시울을 가렸다.“옥아,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알겠지만, 이게 내 최선이야. 내가 왜 한낱 시녀 때문에 학교 교장에게 부탁해야 해? 심지어 사생아잖아. 치욕스러운 사생아 말이야!”“마마! 사생아가 뭐 어때서요? 사생아는 이 세상에 살아갈 자격도 없는 거예요? 교육받을 권리도 없는 건가요?”가연은 서지현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사생아는 방해만 되는 존재야. 됐어, 여기까지 하자. 경고하는데, 여기저기 내 이름 대고 다니지 마. 들켰다가는 너고 네 아들이고 모두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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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서지현은 진작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이 일을 떠벌린 거잖아요.”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그래서 가연 왕후께서 저더러 법정에 출석하라고 했죠, 전하를 해친 사람이 윤정재 회장님인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죠.”송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하지만 왕후의 바람대로 할 생각은 없어요. 법정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현 씨도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송혁준은 멈칫하다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재판 과정이 복잡할 테니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죠.”“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고요?”서지현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송혁준은 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서지현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드러났다.서지현은 그와 함께 자랐어야 하는,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생이었을 텐데 말이다.“전하.”서지현이 더 물었다.“무슨 일이 발생하는데요?”송혁준은 옆에 있던 나석진을 바라봤다.그는 오늘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두 사람 모두 이 일을 어떻게 서지현에게 말해야 할지 망설여졌다.윤정재는 진작 서지현의 혈통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자신의 추측이 맞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는 기회를 빌려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길 바랐다. 그래야 가연 왕후든 송지아든 더는 서지현에게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지금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기회는 바로 이 사실을 재판할 때 알리는 거였다.“아, 아니에요.”송혁준은 팔꿈치로 나석진을 툭툭 치며 말했다.“무슨 말이라도 해봐. 오늘 밤도 네가 꼭 와야 한다고 해서 온 거잖아.”나석진이 고개를 들었다.서지현과 눈을 마주쳤을 때, 그의 마음은 복잡미묘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그녀와의 추억들이 떠올랐다.맨체스터 시티 슬럼가에서의 첫 만남, 병원에서 생겼던 오해, 호텔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들, 그리고 스테이지 위에서 그녀와 같은 꽃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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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4화
“서지현.”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지난번에 내가 술에 취했을 때 네가 내 손에 반지를 끼워줬잖아. 그때 반지 사이즈도 딱 맞는 것 같았어. 나, 나 그렇게 잘 맞은 반지를 낀 적이 없었던 것 같아.”“네?”서지현은 이 상황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나중에 네가 다시 가져갔잖아. 내 손가락이 텅텅 빈 것 같아 너무 괴로워!”“...”“서지현, 넌 내가 괴로운 게 좋아?”서지현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나석진이 이렇게까지 조바심이 난 모습은 처음 봤다.그는 조급해 보였으나 또 그녀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유달리 인내심이 있었고, 말투는 상냥함을 넘어서 비굴하기까지 했다.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서지현은 문득 누군가에게서 들은 남양의 주술을 떠올렸다. 그 주술은 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심장이 쿵 내려앉은 그녀는 바로 나석진에게 물었다.“아저씨, 혹시 주술에 걸렸어요?”...송혁준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서궁은 원래도 외딴곳이었지만 정원 안은 더욱 조용해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까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이 평온한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하지만 이때, 반대편에서 흥분한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서지현의 목소리, 나석진의 목소리.그러다가 서지현과 나석진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기도 했다.‘뭐야? 두 사람 데이트하는 거 아니었어? 왜 싸우고 있어?’다시 돌아가려고 고개를 들자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면서 핑크색 가발을 쓰고 있는 나석진의 모습을 발견했다.그리고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반짝이는 뭔가가 하나 더 생겨 송혁준은 흠칫했다.‘끝내 반지를 뺏어온 거야?’“서지현, 감히 나에게 반지를 안 주려고 해? 흥, 이제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겠지?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만만한 사람인 줄 아나 봐!”송혁준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나석진을 보며 미처 반응을 하지 못했다.이때, 반대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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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5화
한 달 뒤, 재판이 열리는 날.황실 멤버가 연루된 만큼 이번 재판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윤정재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지만 마치 재판을 이끌어가는 사람인 것처럼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송이수와 가연 왕후는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검찰이 제기한 몇 가지 혐의를 듣자 가연 왕후의 얼굴에는 미소가 씩 스쳐 지나갔다.한편, 그녀 옆의 송이수는 무표정인 얼굴로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쥔 그의 눈동자 속에는 분노가 감돌아 있었다.“폐하...”가연 왕후가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송이수의 손끝은 살짝 떨렸지만 그녀를 밀어내지 않았다.이는 가연 왕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그동안 송임월 때문에 송이수는 그녀와의 신체적 스킨십을 피했었고, 심지어 부부 생활조차 점점 줄어들었다. 매번 그녀의 몸에 손이 닿을 때 송이수는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듯 미간을 잔뜩 구겼고 최근 몇 년 동안 두 사람은 아예 각방을 썼다.그래서인지 방금 송이수의 행동은 가연 왕후를 기쁘게 했다. 무심코 한 행동이었지만 가연 왕후에게는 의미가 남달랐다.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머리를 송이수 어깨에 기대려고 했다.송이수는 여전히 피하지 않았다.그런 그의 모습에 가연 왕후는 눈시울이 빨개졌고, 윤정재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굳혔다.윤정재를 제거하면 다시는 송임월을 깨어나게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송임월이 영원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아무도 서지현의 정체를 알 수 없을 것이다.이런 걸림돌들을 모두 제거하면 송이수는 온전히 그녀의 것으로만 된다.“윤정재 씨.”검사가 엄숙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이 혐의들, 다 인정합니까?”윤정재가 코웃음을 쳤다.“재판에서는 반드시 증거에 의해서만 사실인정을 허용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아무 증거도 없이 혐의를 인정하라고 하니, 그 속셈이 뭐죠? 우리 남양의 법원이 우스워 보입니까?”검사는 그를 힐끔 보다가 판사에게 증인 소환을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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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6화
가연 왕후의 입술은 부르르 떨렸다. 송이수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양심에 찔려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아, 아니에요.”가연 왕후는 겨우 미소를 짜내며 말을 이어갔다.“폐하, 재판 시간이 길어져서 힘드시죠? 먼저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겠어요?”“사실을 꼭 들어야겠어!”송이수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도대체 누구를 찾으려고 했던 거야?”가연 왕후는 제자리에 얼어붙더니 곧이어 시선을 옥이에게도 돌렸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그녀는 어금니를 깨물며 물었다.“옥이야,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왕후 마마.”옥이가 덤덤한 얼굴을 유지했다.“마마께서 주신 단서로 이 두 사람을 찾았을 뿐입니다.”“너...”옥이가 교활한 미소를 씩 지었다.“마마께서 그러셨잖습니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마약하고, 다른 한 사람은 몸을 판다고요. 제가 찾은 두 사람은 마마께서 주신 단서와 딱 맞아떨어집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가연 왕후는 분노의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분명 내가 알려준 다른 단서도 있었잖아!”“그때 마마께서 직접 친왕 전하를 저 두 사람에게 보내셨잖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옥이야!”가연 왕후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더니 이내 온몸의 피가 굳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옥이야, 뭐라고 한 것이야?”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송이수는 충격이 가시지 않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얼마 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가연 왕후를 바라봤는데 가슴은 비수에 꽂히듯 아프기 시작했다.“옥이야, 네 말이 다 사실이야?”그는 숨을 몰아쉬더니 한참 가연 왕후를 주시하다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그때 나에게 아이를 변호사 집안에 맡겨 잘 살 거라고 거짓말했잖아! 그리고 또 말을 바꿨었지. 아이가 슬럼가에 있지만 집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고 말이야! 당신, 나를 또 속였어! 나를 또 속였다고! 아이를 어떻게 이런 두 사람에게 맡길 수 있어? 입이 있으면 어디 한번 말해보라고!”송이수가 확 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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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7화
“너는 숙이와 함께 가서 저 두 사람을 찾아내고 남양으로 데려와... 그리고 이 증언을 외우게 해. 그러면 윤정재는 황실 멤버를 살해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친 죄로 감옥에 들어갈 거야. 서지현의 부모도 그 공범으로 될 거고.”“마마, 정말 저 두 사람이 우리의 말에 따라 움직이겠습니까?”“그 남자는 약쟁이야. 융대 가루를 조금 쥐여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어. 그 여자에게는 먼저 돈을 줘봐. 돈만 주면 무조건 우리의 말에 따를 거라고!”...법정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가연은 눈을 부릅뜨더니 얼굴색은 핏기 없이 새하얘졌다.“융대 가루?”어떤 외국 기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게 뭔데요?”“융대 가루는 마약이에요!”윤정재가 힘 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남양의 융대는 대나무가 아니라 꽃의 일종으로 양귀비와 비슷합니다. 열 송이 융대로 1mg의 융대 가루를 추출할 수 있죠. 융대 가루의 독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일정량을 흡입하면 단기간 내에 바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왕후 마마.”윤정재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남양에서는 융대 가루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적발된 즉시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는데 설마 그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겠죠?”판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양옆의 배심원과 눈을 마주쳤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두 증인의 정체를 밝혀내지도 못했는데, 또 가연 왕후의 융대 가루 은닉 사건이 발생하다니!만약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가연 왕후는 엄청난 형량을 선고받을 것이다.“옥이야...”가연 왕후는 이마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숨을 크게 몰아쉬어 그런지 말도 힘겹게 뱉어냈다.“네가, 네가 감히 나를 배신해?”“마마, 이건 배신이 아닙니다.”옥이가 평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마마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예전에 마마께서 분부하신 일마다 혹시나 세부 사항을 빠뜨릴까 봐 녹음해서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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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8화
가연의 코끝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녀는 손발에 힘이 탁 풀려 쓰러지지 않으려고 방청석 난간에 겨우 기대고 있었다.그리고 손을 들어 머리 위로 삐뚤어진 왕관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실수로 머리카락이 걸리고 말았다.왕관이 ‘쿵’ 소리와 함께 떨어지면서 커다란 보석이 굴러 나왔다.“왕후...”송이수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왜 그랬어?”“폐하, 저는...”“도대체 왜?”인내심을 잃은 송이수는 그녀의 목을 확 졸랐다!가연은 눈을 부릅떴다.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그녀는 온몸이 경직되고, 심지어 숨 쉬는 것조차 멈추게 되는 것 같았다.송혁준은 송이수를 말리며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숙부님, 이곳은 법정입니다. 절대 충동하시면 안 됩니다!”송이수는 그제야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하지만 분노로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위아래 이까지 덜덜 떨렸다.“폐하.”윤정재가 천천히 말했다.“왕후 마마께서 이러시는 이유는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말을 마친 후 그는 DNA 검사 결과를 내밀었다.“왕후 마마께서는 이걸 두려워하고 계시지요?”고개를 들어 검사 결과를 확인한 가연 왕후는 동공이 흔들렸다.그 위에 적힌 ‘99%’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돌풍 같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마치 돌풍처럼 재판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말을 이어나갈 수 없게 했다.서지현도 꿈을 꾸는 것처럼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99%라니? 그녀와 송임월의 유전자가 99% 일치하다니?이럴 수가!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서지현은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이내 슬럼가에서 생활했던 그 18년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불법 체류자의 딸이고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쥐새끼만도 못한 사람이었다.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하는 그녀는 습하고 음산한 지하실에서 살아왔다.그녀는 집시들과 함께 광장에서 춤을 추며 용돈을 벌면서 매일 어떻게 배를 채울지, 어떻게 경찰을 피할지만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그녀가 송임월의 딸이라는 DNA 검사 결과를 보여주다니?서지현은 철썩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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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9화
서릿발에 걸친 달은 위엄 있는 황궁에 한기를 드리웠다. 청석판 계단에는 이슬이 맺혀 사람들에게 한 줄기 서늘함을 안겨줬다.궁전 중앙에 서 있던 가연 왕후는 눈꺼풀이 축 처졌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그녀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은 송이수뿐이었다.송이수가 더는 그녀를 믿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그녀의 세상은 더 이상 빛나지 않을 것이다.“폐하.”가연 왕후는 한참의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배고프시죠? 제가 만든 약과를 좋아하시던 걸 기억합니다. 지금 바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그럴 필요 없어.”송이수가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아마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달고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내가 약과를 좋아한다고 계속 착각했던 건 당신이야!”가연 왕후의 눈빛은 어두워지더니 그녀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자신을 바라보는 송이수의 날카로운 눈빛에 가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당신은 항상 당신의 취향대로 나의 모든 것에 관여했지. 나를 사랑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이수 씨...”“나도 인정해. 그때 왕위에 마음이 혹한 걸.”송이수는 후회막심했다.“임월이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오빠로서 도와줬어야 했는데 내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동생을 해쳤어.”“당신.”송이수는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풍겼다.“난... 당신이 그 아이에게라도 잘해줄 줄 알았어. 당신이 정말 그 아이를 변호사 부부에게 맡겼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 아이뿐만 아니라 내 동생에게도 손을 대다니!”가연 왕후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였다.그녀는 문득 송이수와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렸다.열네 살의 나이에 옷을 차려입고 대황궁에 국경일 행사에 참석했는데, 한눈에 바로 중앙에 서 있는 왕자를 발견했다. 그는 마치 태양처럼 눈 부셨다.첫눈에 반하게 된 송이수는 그렇게 평생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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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0화
송이수는 눈만 끔뻑끔뻑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가연 왕후가 바닥에 쓰러진 순간, 그의 마음은 잠깐이나마 뒤틀렸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물결처럼 번져 나가다가 결국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송이수는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 아니었기에 그녀와 함께한 세월 때문에 그래도 정이 남아있었다.초라한 모습의 가연 왕후를 보며 송이수는 자신에게 잘해줬던 그녀의 과거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일단 의사를 불러와 왕후에게 붕대를 감아주라고 하세요.”나도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가연 왕후는 치료를 받아 머리의 피가 멈추었다. 그녀는 침전에 누워 휴식을 취했지만 침전 주위에는 많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 그녀는 더 이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나도훈은 송이수를 바라봤다.늙은 왕의 얼굴엔 피로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눈에는 광채 대신 괴로움과 자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폐하.”나도훈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왕후 마마의 건강이 좋아지면 검찰에서 마마를 데려갈 겁니다. 이 사건에 대한 많은 세부 사항은 아직 심사가 필요하기 때문에...”“몇 년을 선고받게 될까요?”나도훈은 흠칫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30년이 최선의 결과입니다.”송이수는 눈을 감은 채 숨을 깊게 내쉬었다.“최악의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무기형을 선고받을 겁니다.”송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벌로도 모자라죠.”“네?”나도훈은 조금 의외였다.송이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그 사람은 내 여동생과 조카를 해쳤어요. 나를 거의 20년 동안 감쪽같이 속였다고요! 왕후는 임월이의 평생을 망쳤어요.”“방금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는 걸 나도 인정해요. 어쨌든 오랜 부부 사이였으니 조금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겠죠.”“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왕후를 방관하고, 심지어 용서까지 한다면 그건 내 부모님, 그리고 송씨 집안에게 못 할 짓이에요. 더구나 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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