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의 모든 챕터: 챕터 901 - 챕터 910

1009 챕터

제901화

이로써 그 말이 증명된 듯싶다. 자식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이라는 것.심유진은 형체마저 제대로 알아낼 수 없는 ‘글자’를 물끄러미 보더니 육윤엽에게 물었다.“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요?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그녀의 질의에도 육윤엽은 흔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디테일하게 하나씩 짚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여기 좀 보시고 다시 평가하시죠. 얼마나 매끄럽고 날카롭습니까.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느낌이 동시에 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힘의 강약까지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기 이 부분 또한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그래요?”심유진은 무심한 듯 두 팔을 감싸안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럼, 여기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까?”순간 육윤엽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이리저리 한참을 보았으나 도통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옆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을 심유진이 신경 쓰여 그는 찍을 수밖에 없었다.“하... 티... 주...”“아니에요! 완전 틀렸어요.”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자 별이는 불끈 화를 내며 정성껏 만든 자기 ‘작품’을 도로 앗아왔다.그러고는 한 글자씩 짚어가며 정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허... 태... 준, 우리 아빠 이름이란 말이에요.”별이의 말에 그는 순간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싶었다. 당황하고 뻘쭘한 마음에 한동안 토 씨 하나 뱉지 못할 만큼.그런 모습이 마냥 우습기만 한 심유진은 불 난 집에 부채질까지 했다.“아직도 별이한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유명한 서예가로 될 것 같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거두어도 될 것 같은데.”그러자 육윤엽은 고개를 획 돌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입 좀 다물고 그만 좀 해라고.이때 별이는 ‘허태준’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기 시작했다. 마치 귀중한 보물을 대하는 듯이 아주 조심스럽게.“저 이거 집으로 가져갈 거예요.”별이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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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2화

육윤엽은 기어이 저녁 밥을 먹고 가라면 심유진과 별이를 붙잡았다.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담소도 좀 나누다가 두 사람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그만 가려고 했다.차에 오르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뒷좌석에 앉아 있는 별이에게 졸음이 밀려왔다. 배불리 먹고 신나게 놀아서 인지 피곤했던 별이는 끝끝내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푹 잤다.집에 도착한 심유진은 아래 층에서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별이 잠 들었어요. 안고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그러자 허태준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내려와 별이를 들어 안고 집으로 향했다.인제 제법 무거운 별이임에도 그는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체력적으로 남녀 사이에 꽤 차이가 난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게 했다.“외할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 우리 별이 엄청 잘 먹었어요. 살도 제법 찐 것 같고. 한 번 들어 안고 나면 아주 진이 다 빠질 정도예요. 태준 씨 아니었으면 저 혼자서 안고 올라가지 못했을 거예요.”떡 벌어진 어깨와 넓은 품속으로 쏙 안긴 별이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인다.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심유진의 칭찬에 허태준은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앞으로 힘쓸 일은 나한테 맡겨요.”“그렇게 할게요.”심유진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심유진은 말머리를 돌리며 물었다.“은설이는 자요?”“잘 모르겠는데요. 저녁 먹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뒤로 나오지 않았어요.”“컨디션은 어때 보였어요? 괜찮아 보이던가요?”“적어도 어제 보다는 좋아 보이던데.”“도우미는요? 왔었나요? 사람이 어때 보였어요?”“왔었어요. 사람이 어떠한지는 은설 씨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랑은 별다른 소통하지 않았거든요.”“네.”연달아 질문을 날리던 심유진은 답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해졌고 허태준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한참을 기다렸으나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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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엄마인 심유진을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기뻐하며 흥분하는 듯했다.기분 탓일까? 심유진은 질투가 난 듯 이간질을 하려고 했다.“별아, 그렇게 좋아? 근데 엄마가 알기로는 조금 전 외할아버지 댁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세상 제일 좋다며 한 것 같은데. 아빠보다는 외할아버지가 더 좋다고 별이가 그러지 않았어?”하지만 그녀의 의도와 달리 별이도 허태준도 낚지 않았다.별이는 아주 당당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어른이잖아요. 별이는 손자로서 당연히 기쁘게 해드릴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조리 정연하게 말하는 별이의 모습에 허태준은 절로 흐뭇했다.사랑이 듬뿍 담긴 손길로 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우리 별이 말이 맞아. 아주 잘했어.”허태준의 칭찬까지 등에 업은 별이는 점점 어깨가 으쓱거렸다.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심유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었다.“그럼, 엄마가 좋아 아니면 아빠가 좋아?”“엄마요.”별이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고민 일도 없이 바로.“엄마, 이 질문만 벌써 몇 번째인지 아세요?”같은 질문을 여러 번이나 하고 있는 심유진이 언짢아 별이는 숨김없이 자기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음…”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심유진은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번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물어본 듯 기억이 새물새물 떠올랐다.아들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니 다소 체면이 깎이는 듯했다.“내가 한 번을 하든 두 번을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엄마는 앞으로 별이한테 계속 물어볼 거야. 우리 아들 귀가 닳도록 물어볼 거라고.”심유진은 별이의 귀를 살포시 잡아당기며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다.이에 별이는 입만 삐죽거리며 허태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참, 여자들이란… 우리 아빠 힘들겠어요.”그러자 허태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덩달아 속삭였다.“그러니 앞으로 엄마 말씀 잘 들어. 아빠 좀 덜 힘들게.”“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별이 아니야?”이때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를 깨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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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4화

하은설은 그렇게 한참 동안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자기한테 잘해 주지 말라며.심유진과 별이는 번갈아 가며 하은설을 얼리고 닥쳤고 그들이 노력한 끝에 하은설은 마침내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별이는 심지어 오늘 하은설과 함께 자겠다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은설에 대한 자기감정은 변함이 없음을 확신해 주었다.좋은 마음으로 한 말인데, 하마터면 하은설은 그런 별이의 마음에 감동되어 또다시 눈물을 쏟을 뻔했다.정신을 쏙 빼놓는 듯한 시간을 뒤로 하고 심유진은 마침내 두 사람을 방으로 돌려보냈다.기진맥진한 몸을 이끈 채 그녀도 자기 침실로 돌아왔다.허태준은 고생한 심유진을 위해 마사지를 자처하며 꼼꼼히 주물러 주었다.“다들 자요?”“네. 내일 아침에 별이 등교는 제가 할 테니 태준 씨는 은설이 데리고 병원에 가주세요.”“갑자기요?”허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예요?”“그건 아니고.”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는 심유진은 어쩔 수 없어 했다.“허택양 씨가 지내고 있는 그 병원으로 데리고 가주세요. 은설이가 만나서 얘기 똑바로 하고 끝낼 모양이에요.”“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말려야 해요.”허태준은 이 일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다.허택양 같은 인간과 더 이상 얽히 필요도 없고 그런 인간 때문에 시간 낭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말렸는데 듣지 않아요.”심유진도 피곤하기는 매한가지이다.“허택양 씨한테 그동안 너무 당한 거 같아 속에서 내려가지 않나 봐요. 만나서 얘기하지 않는 이상 평생 끙끙 앓을지도 몰라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분풀이라도 좀 하고 싶은 모습인데 찾아가서 때리거나 아니면 욕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아직 회복 중이고 몸도 허약하니 너무 흥분하지 않게 태준 씨가 옆에서 좀 지켜봐 주세요. 그러다가 쓰러질지도 몰라요.”이에 허태준은 입술을 사리물었다.“알았어요.”…심유진과 별이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허태준은 지금 홀로 거실에 앉아 하은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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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5화

하은설을 보게 되는 순간 초점을 잃었던 그의 눈은 순간 빛이 나기 시작했다.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은설아, 왔어.”유난히 즐거워하는 허택양이다.“저 왔어요.”하은설도 심유진만큼이나 프로페셔널하여 바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허택양은 그녀와 담소를 나누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서두르는 모습으로.“너 지난번에 소송 취소한다고 한 거 말이야…”“경찰서에 이미 다녀왔어요.”하은설은 그가 내민 손을 꼭 잡고 이를 악물었다.용솟음치는 역겨운 기억과 그 시간을 애써 억누르며 말을 이어나갔다.“근데 신고자가 제가 아니어서 취소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울먹이는 모습과 더불어 무척이나 억울한 듯한 표정까지 보이면서.그 말에 허택양은 눈에 훤히 보이게 당황했다.“심유진 씨는? 만나지 않았어?”“아니요. 앞으로 절대 다시 심유진 찾으러 가지 않을 거예요.”독을 품은 듯한 모습으로 하은설은 그들에 대한 한을 털어 놓았다.“심유진, 허태준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된 거잖아요. 심유진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엮겨우니 다시는 입에 올리지도 마세요.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고 인연 끊고 살 거예요.”“그럼, 난 어떡해? 소송은 어떻게 할 건데?”단호한 하은설의 모습에 허택양은 점점 불안했다.“택양 씨, 제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요.”완쾌되지 않은 하은설은 오래 서 있을 수 없다.하여 의자를 그의 병상 옆으로 가져와 천천히 앉은 뒤 말을 이어갔다.“소송 취소하는 것 보다 우리 측에서 변호사 찾아서 심유진 걔들 고소하는 건 어때요? 허태준이 신고할 때 당신이 심유진 납치했다고 그랬다던데요. 경찰이 나한테 알려준 거예요. 근데 심유진 납치한 적 없잖아요. 그럼, 가짜 신고를 했다고 경력 낭비했다고 고소하고 당신 명예까지 침범했다고 그러면 되잖아요. 어때요?”허택양의 생각대로라면 하은설은 응당 심유진을 찾아가서 크게 한바탕 싸워야 한다.그러고 나서 심유진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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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6화

“왜 그러는 거예요?”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하은설은 질문 공세를 더해갔다.“억울 하지도 않아요? 하루라도 빨리 죄명 씻어내고 싶지 않아요?”“난…”허택양은 이를 악물더니 그나마 좀 더 쉬운 길을 택하기로 했다.“괜찮을 거야. 감옥에 얼마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너만 괜찮다면 나 좀 기다려 줄래? 감옥에서 나오는 대로 찾아갈게. 우리 세 식구 단란하게 살 수 있게끔 내가 노력할게. 나 때문에 너까지 피해 보는 건 싫어. 허태준을 상대로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네가 고소하잖아? 아마 배로 갚아주고 말 거야.”그 말을 듣고 하은설은 한참 동안 침묵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마침내 스스로 침묵을 깨며 그렇게 하기로 했다.“당신 말대로 해요.”이윽고 자기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모성애를 드러냈다.“아가야, 엄마랑 같이 아빠 기다리자.”자기 말대로 하겠다는 하은설의 말을 듣고 허택양은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돌아가서 심유진이랑 다시 화해해.”“내가 들어가고 나면 적어도 널 보살펴 줄 수는 있잖아. 난 그냥 너랑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평온하게 지냈으면 해. 그래야 나도 안에서 살맛이 나지 않겠어?”“근데 그들이 당신한테 한 짓만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도 태어날 건데, 그들 때문에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하잖아요.”하은설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자주 보러 오면 되지 않을까? 아이 데리고 오면 되잖아.”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복수 계획도 어느 정도 틀이 맞혀진 듯했다.“그래요.”하은설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심유진이랑 화해 하는 건 좀 뒤로 할게요. 당장은 얼굴도 못볼 거 같아요. 보자마자 바로 귀싸대기 날릴 것 같거든요.”그러자 허택양은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타일렀다.“그래도 되는데 너무 미루지는 마. 임신한 몸으로 홀로 지내는 건 시름이 놓이지 않아. 가능한 한 심유진 집으로 가서 같이 지내게 가장 좋을 것 같아. 적어도 널 돌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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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7화

심유진은 회사에 오자마자 김욱의 전화를 받게 된다.“나 도착했어. 각 부서 팀장한테 한 시간 뒤에 회의한다고 전해.”“오빠, 벌써 돌아왔어?”심유진은 이상하기만 했다.월요일 아침 일찍 해외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이틀도 있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갑자기 일이 좀 생겼어.”김욱의 목소리는 그리 좋지 않았다.“자세한 건 돌아가서 얘기하자.”“알았어.”덩달아 신경이 곤두선 심유진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회의 통지에 관한 이메일을 팀장들한테 보냈다.한 시간 뒤, 김욱은 말한 대로 회사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라 미처 슈트로 갈아입을 겨를도 없었다.평소와 달리 케주얼한 복장으로 딱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한 치의 오차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신체 조건으로 길쭉한 다리를 내디디고 있다.그에 비해 다리가 그리 길지 않은 루씨는 종종걸음으로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선명한 대조가 이뤄지면서 왠지 모르게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그와 반대로 김욱은 여느 때보다 멋지고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고개를 푹 숙인 채 일만 하고 있던 여성 직원들도 저도 모르게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시야가 정화되고 짧은 순간이었다.다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차가운 얼굴로 심유진의 책상을 두드렸다.“회의실로.”심유진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자료들을 챙겨 들고 전전긍긍하며 뒤따라 들어갔다.예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비즈니스로 해외로 갔었던 김욱은 도착하자마자 문전박대를 당하게 되었다.만나기로 한 바이어가 갑자기 후회하면서 연락조차 닿을 수 없었다.그쪽 비서를 통해 여러 번 시도를 해보았으나 수 없는 이유로 거절하기 바빴다.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김욱은 어느 한 친구로부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모어에서 그가 오기 전에 낮은 가격으로 그 고객을 꼬드겼고 비즈니스 관계를 맺는다면 앞으로 여러모로 이익이 될 것이라며 약속까지 했다고 했다.하여 김욱은 바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블루항공은 직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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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8화

사무실에는 어느새 큰 트렁크 하나가 덩그러니 나타났다.김욱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트렁크를 두드리며 말했다.“궁금하지 않아?”“지금은 근무시간입니다.”심유진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상사가 자기한테 했던 교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근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다른 일인지 아닌지 그건 내 마음에 달렸어.”김욱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트렁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길쭉한 다리를 웅크리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트렁크를 열기 시작했다.선물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다. 유혹을 견디지 못한 심유진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트렁크 안에는 선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옷, 가방, 쥬얼리, 화장품까지 한눈에 봐도 값이 만만치 않은 사치품들이다.“오빠, 우리 회사 지금 힘든 거 맞아?”심유진은 의문을 품은 채 김욱을 바라보며 답을 기다렸다.씀씀이를 보아서는 결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국내에서나 비싸지 해외에서는 꽤 저렴한 물건들이야. 그냥 간 김에 좀 많이 사 온 것뿐이고.”김욱은 설명하며 자리를 옮겨 심유진에게 자세하게 알려주었다.“여기 성인용은 모두 유진이 네 선물이고 어린이용은 별이 선물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심유진은 극히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보는 것만으로 황홀해지는 물건들인데 어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마음에 들면 됐어.”선물 받는 이가 좋아하니 선물을 주는 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퇴근할 때 잊지 말고 가지고 가.”김욱은 재삼 일깨워주었다.“알았어.”심유진은 선물을 일일이 열어보고 또다시 일일이 제자리에 담아 놓았다.“오빠.”갑자기 고개를 들어 김욱에게 윙크까지 해가며 애교를 부렸다.“친구한테 좀 줘도 돼?”그러자 김욱은 아주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안 될게 뭐가 있어? 내가 아니라 네가 주인인데, 마음대로 해.”마음 같아서는 흥분할 때 별이가 방방 뛰는 것처럼 심유진도 뛰면서 그에게 뽀뽀까지 하고 싶은 심정이다.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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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9화

"좋아요." 심유진은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계산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날이 오면 핑계 대고 빠져나가 자리를 비켜 줄 속셈이었다."역시 유진 씨!"마리아가 심유진의 팔을 껴안고 다정하게 붙어 왔다....캐리어를 끌고 가는 게 너무 눈에 띌까 봐 심유진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야 불이 켜진 김욱의 사무실을 노크했다.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물건 가지러 왔어."심유진은 구석에 놓인 캐리어를 가리켰다."응."김욱은 그제야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지친 표정으로 안경을 벗었다."왜 그래?"심유진이 방향을 바꿔 다가갔다."일이 잘 안 풀려?""조금." 김욱이 한숨을 쉬었다."모어 항공은 우리 고객뿐만 아니라 마케팅 직원도 스카우트하려고 해."그에 심유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덧붙였다."그래도 마케팅팀 고위직은 다 내가 키운 사람이라 쉽게 배신하지는 않을 거야."김욱이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육윤엽은 김욱을 후계자로 키울 의향이 있지만 힘을 완전히 가질 때까지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그래서 김욱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했을 때 밑바닥부터 시작했다.그 능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 결과, 불과 2년 만에 자신의 실력만으로 마케팅팀 부장 자리에 올라 부하 직원들과 함께 회사에 길이 남을 만한 공을 세웠다.김욱이 마케팅 부서에서 자리 잡고, 자기 편을 만든 후에야 육운엽은 그를 차근차근 승진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비서장 자리를 주었다."큰손들은 몇 명 떠났지만 지금 있는 주문도 적지는 않아. 적어도 상반기는 버틸 수 있어."김욱이 심유진을 바라봤다."다시 말하자면 주어진 시간은 4개월밖에 남지 않았어."심유진은 자신의 어깨에 진 짐이 더욱 무거워짐을 느꼈다."됐어, 빨리 가. 별이가 기다리잖아."김욱이 보내려 했지만 심유진은 입술을 짓씹을 뿐 안 움직였다.별이는 허태준이 데리러 갔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야근할 거야?"김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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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0화

마리아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수고 많으시네요.""회사 근황이 안 좋으니까 잘리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죠."잠깐 말을 멈춘 심유진이 말을 이었다."마리아 씨는요? 한참 전에 가신 거 아니었어요?""아, 두고 온 게 있어서요."마리아는 옆으로 비켜서며 뒤쪽을 가리켰다. "그럼 전 이만 가지러 갈게요.”"기다릴까요?”"아니에요. 괜찮아요."마리아가 연신 사양했다."먼저 가세요.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 안 나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알았어요."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건물에 사람은 여전히 많았기에 계속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먼저 가 볼게요. 내일 봐요~"엘리베이터 밖에서 손을 흔드는 마리아의 표정이 어딘가 굳어 있었다."내일 봬요~"...심유진이 가지고 온 캐리어는 구경꾼들의 관심을 끌었다."미친. 이 가방 8천 달러는 될 것 같은데?"여기서 '구경꾼'은 하은설뿐이었다."이 목걸이... 진짜 보석이면 만 달러는 넘겠어. 헉, 이 귀걸이. 미쳤다... 너무 예쁘네. 안목 대박이다. 아니, 이건! 전설의 귀부인 크림... 난 살 엄두도 안 났는데. 미백, 주름개선, 안티에이징에 탁월하대."그녀는 도굴하듯 캐리어를 뒤지면서 끊임없이 감탄했다.귀를 막은 심유진이 그 부자와 함께 스튜디오로 피신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하은설이 겨우 멈추자 심유진이 말했다. "마음에 드는 거 가져가. 어차피 오빠가 산 거라 내 돈 안 썼어."하지만 하은설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염치도 있는 사람이라 너무 비싼 물건 대신 자기가 평소에 쓰는 화장품만 챙겼다."그게 다야?"지켜보던 심유진이 부족하다 느껴 하은설에게 아까 그 팔천 달러짜리 가방과 하이힐을 챙겨 줬다."이건 너무 비싼데..."하지만 하은설은 쉽사리 받지 못했다."우리 사이에 무슨."심유진이 억지로 안겨 줬다."겨우 1억 조금 넘는 건데, 우리 사이에 못 받을 게 어디 있어."우리 사이라는 말이 하은설 마음 깊은 곳의 죄책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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