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 멀어 버린 것 같아."그에 심유진이 외쳤다."됐다. 너희한테 뭘 기대하겠어."별이가 혀를 낼름 내밀자 심유진이 삐죽이며 말다툼을 포기했다....저녁 식사 때 허태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허태준이 서재로 자리를 피했지만 심유진의 눈에 발신인 이름이 들어왔다.그렇게 허태준은 십여 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하은설과 별이는 벌써 밥을 다 먹고 스튜디오에서 게임하는 중이었기이 그 사이 심유진 혼자 허태준을 기다렸다.허태준의 표정이 아까보다 어둡자 심유진이 물었다."집에 무슨 일 생겼어요?""별일 아니에요."허태준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우리 둘째 숙모, 그러니까 허택양 엄마가 저희 집에서 난동 부렸대요. 허택양이 유럽에 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돌아가지 않은 걸 보니 분명 제가 가뒀을 거라고."여기까지 말하자 허태준이 비웃었다."자기 아들은 잘 알면서 전 모르더라고요.""부모님은 뭐라고 하셨어요?"심유진이 물었다."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한참 동안 욕을 듣기만 하고 돌려보내셨어요."허태준은 정말 걱정할 만한 '큰일'이 아니라는 듯 담담한 말투였다."아버님께서 정말 허택양을 가두었느냐고 안 물었어요?""물어봤어요.”"뭐라고 대답했어요?""솔직하게 말했어요.""네?"심유진이 깜짝 놀랐다."솔직하게 말하면 나중에 둘째 숙모를 쫓아낼 명분이 없어지잖아요."허태준의 부모는 자신이 정말 떳떳하지 못한 짓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하나, 잘못한 사람은 허택양이지, 내가 아니에요. 둘, 허택양을 가둔 사람은 경찰이에요, 이것도 제가 아니고요. 쫓아낼 명분이 왜 없어요"허태준은 당당했다."이미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앞으로 아무나 들이지 말라고. 집안 더러워지면 속상한 건 부모님이니까.""둘째 숙모가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있잖아요."심유진은 허씨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허가네 무리를 본 적이 있다. 허태준의 숙모와 숙부를 가까이서 본 건 아니지만 절대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최근 전염병의 영향으로 국제 무역이 크게 감소했는데 블루항공도 당연히 많은 고객으로부터 예약 취소 신청을 받았다.그에 회사 분위기는 암울했고 각 부서마다 잘려나간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심유진은 이 때문에 김욱이 확신을 주기 원했다.김욱은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해서 안색이 파리했다."직원 정리 계획은 있지만 '대규모'는 아니야."피곤함과 어이없음이 동시에 묻어나왔다."실적 최하위 해직. 우리 회사는 줄곧 이런 식이었는데 그냥 몇 년간 전체 실적이 나쁘지 않아서 그 많은 사람들을 그냥 뒀던 거야. 지금은 회사가 어려우니까 성적 못 내는 사람은 무조건 해고야."그에 심유진이 걱정에 표정이 어두워지자 김욱이 말했다."그런 표정 짓지 마.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정부가 일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니까 모어도 이번 일로 취소된 주문이 장난 아니던데.""그래도 우리 손해가 모어보다 훨씬 크지?"하지만 심유진은 그 말에 조금도 위로받지 못했다.육윤엽은 한국 토박이이기 때문에 블루 항공 고객의 대부분은 아시아 회사이고 그중에서도 한국 회사가 압도적으로 많다.모어는 블루 항공과 정반대였는데, 그들의 화물선은 거의 유럽과 미국으로만 다녔고 아시아 주문은 그저 새 발의 피였다."금방 지나가."김욱은 자신 있었다."유럽과 미국에도 바이러스가 퍼지는 건 시간문제야. 아마 그때가 되면 모어 상황은 우리보다 처참하겠지."심유진은 그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몰랐다."유럽과 미국에 바이러스가 퍼지면 우리도 끝장나는 거 아니야?""뉴스 좀 봐."김욱이 심유진을 일별했다. "가장 먼저 대규모로 발생한 도시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 감염자는 점점 줄고 있어. 그 도시들이 다 풀리면 우리 주문 양도 다시 증가할 거야.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확진자가 한 자릿수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마. 정부와 시민이 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 우리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어."심유진의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여기에 있고 평소 국내
김욱이 온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다.마리아에게 시간 없을 거라 말하자마자 자신에게 식사 요청을 해 왔으니.마치 둘 사이를 일부러 방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김욱 씨, 오늘은 벌써 퇴근하세요?"심유진이 이 오해를 벗어나고자 했다."주말이니까요."김욱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그래서 같이 밥 먹을 거예요?"그는 또 물었다. 심지어 심유진이 거절할까 봐 한 마디 덧붙이기까지 했다."제가 살게요.""아..."몇 초 동안 망설이던 심유진이 마리아의 이름을 내뱉었다."마리아 씨도 같이 가도 되죠? 마침 마리아 씨가 김욱 씨한테 밥 사려고 했어요, 맞죠."갑자기 자기 이름이 나오자 마리아는 약간 당황했다.마리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나중에요. 오늘 김욱 씨가 밥 사 드리기로 하셨으니까 저는 안 낄게요."그러고는 황급히 자신의 자리로 달려가 가방을 메고 떠나려 했다.그 가방을 본 김욱의 시선이 가방에 쭉 머물자 시선을 눈치챈 마리아가 무의식적으로 가방을 두어 번 만졌다."고마워요, 김욱 씨. 너무 마음에 들어요~ 언제 시간 되시면 밥 한번 사 드릴게요. 감사 인사 겸.""아닙니다." 김욱은 그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선물이 마음에 드시면 됐어요.”그에 마리아의 얼굴이 급격히 굳었다."그럼... 저 먼저 갈게요."마리아는 둘에게 손을 흔들며 하이힐 신은 발로 황급히 도망가듯 떠났다."일부러 그랬지?"심유진이 물었다.김욱은 눈치 없이 남들 앞에서 심유진만 따로 초대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러자 김욱이 코웃음 쳤다."내가 너한테 복수 안 해서 다행인 줄 알아.""응?" 심유진은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나한테 복수를 왜 해.""아저씨한테 무슨 말 했는지 생각해 봐. 나랑 마리아에 대해."김욱이 힌트를 주자 심유진이 곧장 반응했다."아빠는 진짜 별걸 다 말해.""직접 물어보진 않으셨고, 마리아에게 호감이 있냐고 떠봤어. 근데 이런 일을 너 말고 누가 시키겠어?"누가 시킨 일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
아까 떠났던 마리아가 언제 온지 모르게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마리아는 그 예쁜 푸른 눈이며 입이 모두 커진 채로 충격을 받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심유진이 준 새 크로스백이 발 옆에 떨어져 안에 있던 립스틱이 굴러 나왔다."미, 미안해요!"정신을 차린 마리아는 재빨리 바닥에 있는 것을 주워 재빨리 나갔다."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오해...한 것 같지?"심유진은 김욱과 거리를 두며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아까 자세가 이상했을 뿐더러 그녀는 마리아였으니 오해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오해해 준다면 더 좋지."김욱은 덤덤했다."이제 나랑 이어 달라는 부탁 같은 건 안 하겠지."심유진은 김욱과의 관계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꺼렸으니 마리아에게 해명하긴 어려웠다.심유진이 신경질적으로 물건을 챙기고 중얼거렸다."언제까지 혼자 지내나 보자."...사실 심유진에게 밥을 산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저 마리아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는 속셈이었다.그래서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사하고 차로 향했는데 심유진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와 조수석에 앉았다."밥 사 준다며? 가자."뻔뻔한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맸다.그에 김욱은 별다른 말 없이 부드럽게 차를 몰기만 했다.김욱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모퉁이에 세워둔 빨간 차가 비로소 혼잡한 차들 사이로 끼어들었다....모처럼 김욱에게 얻어먹는 것이니 심유진은 평소 비싸서 못 가던 레스토랑으로 골랐다.그러나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 넣어둔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이 시간에 심유진을 찾는 사람은 오직 집에 있는 세 명뿐이었다.심유진이 핸드폰을 쥐고 자랑하려는 순간, 발신인이 저번 부모 동반 수업 이후로 연락 없던 앨런인 것을 확인했다.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어 책상에 뒤집어 두고 알아서 끊기기를 기다렸다.그러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듯 첫 통이 끝난 지 2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울렸다.결국 김욱이 심유진을 설득했다."받아 봐, 만약 급한 일이면 어떡해
"프레디가 갈 만한 곳 잘 생각해 보세요."심유진이 끊임없이 앨런에게 아이디어를 내 줬다."참,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경찰이 도와줄 수 있겠죠?""아직 신고는 안 했어요."앨런이 말했다."가정부가 알려 준 지 얼마 안 돼서... 프레디가 그냥 몰래 놀러 나간 줄 알고 학교 근처를 한 바퀴 돌았는데 못 찾았을 때가 되어서야 심각해졌대요. 지금 프레디가 좋아하는 곳 찾아볼게요. 유진 씨도 생각해 주시면 안 돼요? 프레디가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유진 씨예요. 만약 프레디가 집을 나갔다면 유진 씨한테 갔을 가능성이 커요. 그리고..."앨런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뒷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그리고 뭐요?"심유진이 물었다."게다가, 유진 씨가 냉정하게 말한 뒤로 쭉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말수도 적어졌고... 우울증 전조증상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이 말을 들은 심유진이 충격으로 머리가 뎅 울리는 듯했다.심유진은 프레디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건 알아챘지만, 그게 자신 때문이었다는 건 몰랐다.미안함과 죄책감이 생긴 심유진이 말했다."프레디가 좋아하는 곳 알려 주세요. 저도 같이 찾아볼게요.""프레디를 좋아하시는 건 알지만 괜찮아요."앨런은 그 호의를 거절했다. "지금 집에서 쉬고 계실 테니까 방해 안 할게요. 만약 프레디가 정말 유진 씨 찾아간다면 번거로우시겠지만 저한테 알려 줄 수 있으실까요?""지금 밖이고 별일 없어요."심유진이 답했다."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프레디를 빨리 찾죠."앨런은 잠시 머뭇거렸다."네... 고마워요, 유진 씨."그러고 심유진은 앨런이 부르는 몇 가지 장소를 받아 적었다.전화를 끊은 뒤에야 김욱이 물었다."누가 사라졌어?""전 직장 상사 아이. 이름은 프레디인데, 별이 또래야. 오늘 하원하고 집에 안 갔다나 봐. 그래서 같이 좀 찾아야겠어." 심유진은 물건을 챙겨 일어나면서 김욱을 향해 손을 뻗었다."네 차 좀 빌려줘."오는 길에 김욱의 차를 얻어탔더니 심
심유진은 프레디를 차에 태웠다.그녀는 불을 켜서 프레디의 더러워진 얼굴을 비췄다.심유진은 물티슈로 프레디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꼼꼼히 닦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정리해 주었다.“아버지랑 싸웠어?”심유진은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물었다.프레디는 묵묵부답이었다.앨런과 통화를 하던 중 프레디가 우울증의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생각난 심유진은 마음이 다급해졌다.“프레디, 나랑 얘기 좀 해. 응?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뭐든 말해.”프레디의 시선은 심유진한테 머물러 있었다. 그의 눈은 마네킹처럼 초점이 없었다.앨런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김욱은 얼어붙은 분위기를 깼다.“쟤네 아빠가 금방 오겠으니까 여기서 기다리래.”도대체 어느 말이 프레디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모른다. 그는 갑자기 불안해져 잠긴 차 문을 미친 듯이 잡아당겼다.문이 열리지 않자 그는 창문을 툭툭 치며 어떻게든 탈출하려 했다.심유진은 서둘러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이거 놓으세요! 저 좀 나가게 해줘요!” 프레디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곧 새 차 안에는 검은색 발자국이 여러 개 찍혔다.발버둥을 치던 와중에 심유진은 프레디가 휘두른 주먹에 여러 번 맞았다.프레디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심유진은 팔뚝에서 끊임없이 전해오는 통증을 이를 악물며 견뎠다.김욱은 급히 뒷좌석에 가서 심유진을 도와 프레디를 잡았다.“아!”프레디의 비명에 심유진과 김욱의 고막이 터질 뻔했다.다행히 밤에 유치원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을 수 있었다.“프레디, 착하지. 겁먹지 마. 우린 널 해치지 않아.”심유진은 프레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하지만 이 방법도 효과가 없었다.프레디는 너무 격앙된 나머지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심유진의 손을 물었다.김욱이 잽싸게 나서지 않았다면 심유진의 살 한 조각을 떼어 냈을지도 모른다.“하.”심유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눈 깜짝할 사이에 심유진 손에 깊
그는 차 문을 닫기 바쁘게 심유진한테 달려갔다.“프레디는요?”심유진은 손으로 차를 가리켰다.“방금 달아나려고 해서 오빠가 묶어놨어요.”앨런은 다급하게 차 문을 열며 울부짖었다.“프레디!”앨런의 목소리에 프레디는 드디어 안정을 되찾았다.앨런은 마스크는 그대로 두고 프레디의 몸을 꽁꽁 묶어둔 양복과 넥타이를 풀었다. 앨런은 프레디를 품에 꼭 안고 희로애락이 섞인 말투로 따졌다.“도대체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프레디는 다시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아버렸다.“유진 씨, 고마워요. 정말. 그리고 김욱 씨도요.”앨런은 연신 굽신거리며 감사를 표했다.“이 늦은 시간에 밤늦게 돌아다니게 해서 죄송해요.”“괜찮습니다.”심유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어서 프레디를 데리고 가보세요. 아마 많이 놀랐을 거예요. 밥도 못 먹어서 배고파하는 것 같더라고요.”“네.”앨런은 고개를 끄떡이고 바로 자리를 떴다.“그럼, 먼저 가볼게요. 언제 제가 밥 한번 살게요.”그 둘의 뒷모습이 완전히 멀어진 후에야 심유진은 뒤로 숨겨두었던 왼손을 드러냈다.“나는 병원에 좀 가봐야겠어.”병원에서.프레디가 워낙 너무 세게 물었던 지라 의사는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꼼꼼히 펴발랐다. 그 후 거즈로 상처 부위를 빙빙 두른 후에야 치료가 비로소 끝났다.심유진은 족발처럼 동여맨 손을 들고 눈물을 머금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왜 운이 지지리도 없는 거야.”심유진은 김욱한테 하소연했다.“좋은 의도로 도와주려 한 건데 이렇게 다치다니.”“교훈이라 생각해.”김욱은 사랑이나 동정심 하나 없이 무뚝뚝하게 말했다.“앞으로는 바쁘면 굳이 남을 도우려 나서지 마. 애를 잃어버렸으면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왜 한밤중에 너한테 전화하는 건데. 내가 보기에 의도가 순수하지 않아.”“뭔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니... 설마 아닐 거야.”심유진은 굳이 앨런의 편을 들려는 것은 아니었다.“내가 프레디랑 친하기도 하고 프레디가 그렇게 되기까지 내 책임도 있어...”“네가 뭔 책
심유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허태준한테 이실직고했다.허태준은 심유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말아요.”허태준은 김욱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아들이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내버려둔 상사도 좋은 사람은 아닐 거예요.”이미 강욱한테 말을 들었던 터라 심유진은 더 대꾸하지 않았다.심유진은 쏙 들어간 배를 문질렀다. 그 일 때문에 진수성찬을 놓친 게 너무 아쉬워 한숨만 나왔다.“배고파요?”허태준은 이간을 좁히며 물었다.심유진의 행동과 표정만으로도 그녀가 배고픈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네!”심유진은 눈이 번쩍 뜨이더니 기대 가득한 눈길도 그를 쳐다봤다.“집에 먹을 것 좀 남았나요?”“뭐 먹고 싶어요?”허태준은 물었다.“오늘 소고기 좀 사 왔는데, 소고기탕 해줄까요?”“좋아요!”소고기탕을 들은 심유진은 군침이 절로 돌았다.십여 분 후, 허태준은 소고기탕과 밥 한 그릇을 내왔다.일품 한우를 삶은 깊은 육수는 너무 향긋한 나머지 코를 찔렀다.심유진은 한껏 들떠 숟가락을 들었다.오른쪽 손은 다쳐서 왼손으로 힘겹게 숟가락을 쥐었다.허태준은 그 불쌍한 모습을 보고 물었다.“왼손으로 밥 먹는 게 가능하겠어요?”심유진은 열심히 왼손을 휘저으며 강인한 척했다.하지만 왼손잡이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힘겹게 숟가락으로 밥을 펐지만 입으로 향하는 순간 비끗해서 다시 탕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튕긴 뜨거운 탕은 그녀가 데우기 딱 좋았다.“제가 먹여줄게요.”허태준은 하는 수 없이 심유진 손에서 숟가락을 뺏었다. 그는 밥을 듬뿍 떠서 그녀의 입 앞에 대령했다.“아--”심유진은 낯이 뜨거워 났지만 허태준이 떠준 밥을 꼭꼭 씹어먹었다.허태준의 인내심은 심유진한테 무한대로 올라간다.허태준은 밥을 소탕에 한 번 담근 후 소고기 한 점에 김치를 한 점 얹었다. 그는 템포를 유지하며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잠시 후 심유진은 불룩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소파에 걸터앉았다.허태준이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