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들 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했다. 그들은 고대 시대의 귀족들처럼 서로 혼인을 맺을 정도로 자신들끼리의 친목과 교류를 중시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집안마다 아들과 딸이 있으면 결혼할 나이가 되면 혼인을 해야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재산을 그들이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 재벌가의 눈높이가 워낙 높아 평범한 집안에서 사위나 며느리감을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벌가들은 레벨이 비슷한 상대를 물색했다. 그래서 다른 재벌가와 혼인하지 않는 재벌들은 거의 없었으며, 어떤 재벌가는 여러 재벌가들과 사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유럽의 왕실들과 비슷한데, 과거 유럽에서 왕과 여왕들은 서로 친인척 관계에 있었는데, 유럽 황실 전체가 오랜 기간 동안 결혼으로 형성된 거대한 대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공은찬의 어머니 권순화는 네오플램 그룹의 딸이자 권여빈의 고모였다. 그녀는 35년 전 공은찬의 아버지 공영룡과 결혼했다. 처음에 공심 그룹과 네오플램 그룹이 혼담이 오갈 때, 네오플램 그룹은 심지어 공심 그룹보다 더 재산이 많았다. 하지만 근 몇 년 동안 네오플램 그룹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공심 그룹이 점점 성장세를 보이다 보니 두 집안 사이의 격차는 점차 벌어졌다. 하지만 공심 그룹의 공 회장과 노부인은 늘 권순화를 매우 아끼고 마음에 들어했는데, 이는 당시 권순화가 시집온 후 네오플램 그룹이 공심 그룹을 확실히 밀어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권순화는 공영룡에게 시집온 뒤, 세 딸을 낳고 네 번째에야 아들인 공은찬을 낳았다. 그 때문인지 공심 그룹 어르신들은 공은찬을 매우 좋아했다. 공은찬도 올해 28세로 30살이 가까워지자 권순화는 아들의 결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평택을 비롯한 경기도 내에 있는 재벌가들을 물색했지만, 만족할 만한 며느리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LH 그룹, LCS 그룹 등의 딸들을 며느리로 맞자니 그들의 몸값과 지위는 너무나도 높으며, 괜찮은 재벌가들에서는 모두 그들과 사돈을 맺기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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