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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는 내가 10년 동안 사랑했던 사람이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졸업하고 나서 연애 그리고 결혼까지 3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오점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그동안 껌딱지처럼 꼬박 7년 동안 졸졸 따라다니면서 진심만 다 하면 아무리 차가운 남자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 고백을 받아준 날, 너무 기쁜 나머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결혼을 승낙한 이유가 단지 회사의 자금줄이 끊겨서 재정적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일 줄이야.

나는 결혼하고 나서 구호준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동시에 시중들고 비위를 맞춰주려고 갖은 애를 썼다.

덕분에 본인도 조금씩 변해갔고,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침을 준비하고 배가 아플 때 부드럽게 마사지도 해주었다.

심지어 비로소 그의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방방 뛰면서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가영, 임신한 게 사실이야?”

나는 의혹이 담긴 말투를 눈치채지 못하고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훗, 하지만 난 정자가 워낙 적어서 임신이 불가능해. 누구의 아이인지는 아마도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비록 서툴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의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전달해주었다.

“9주가 지나서 안정기에 들어서면 확인이 가능해. 널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나 임신이 확정된 날 이세라가 마침 귀국할 줄은 몰랐다.

구호준은 우스갯소리로 이세라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10년 동안 노력한 끝에 어렵게 얻은 사랑이 이세라의 귀국과 함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영혼도 고통이 느껴지는 건가?

나는 갑자기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캐리어에 갇혀 있을 때 느꼈던 절망적인 질식감이 다시 나를 덮쳤다.

이세라를 안고 있던 구호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왜 이렇게 안 오지? 며칠 동안 반성하고도 아직 교훈을 얻지 못했나? 설마 나랑 해보자는 거야? 물론 전제는 배짱이 그만큼 두둑해야 가능하겠지만.”

나는 싸늘한 눈빛으로 구호준을 바라보았다. 책상을 두드리는 남자의 손가락이 점점 빨라지더니 표정도 갈수록 부자연스러워졌다.

“세라야,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올게. 무조건 데려와서 사죄시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

구호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가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하는 순간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막았다.

“왜 이렇게 냄새가 심하지?”

뒤에 서 있는 비서는 식은땀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대표님이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슨 기분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끔찍한 사망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구호준은 문을 열었다. 이미 옷장에서 꺼낸 캐리어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반쯤 열린 지퍼는 억지로 다시 잠근 흔적이 역력했다. 캐리어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짜증이 극에 달했다.

“손가영, 풀어줘도 불만이야? 앞으로 평생 캐리어에서 살게?”

마치 내가 나오기 싫은 것처럼 말하다니? 분명 목숨을 다하기 직전까지 한 줄기의 빛이라도 보기 위해 발악을 했지만 두 번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 삐질 때야? 용서해줘도 난리네.”

그리고 캐리어 쪽으로 걸어갔다. 진동하는 악취 때문에 그는 눈조차 뜨기 힘들었지만 시종일관 건방지게 발을 들어 힘껏 걷어찼다.

“냄새가 이렇게 심한데 얼른 씻으러 가지? 비위가 상해서 상종도 못 하겠네.”

어찌나 세게 찼는지 캐리어가 뒤집히면서 뚜껑이 활짝 열렸고,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끔찍한 자기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캐리어에 들어 있는 시체는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팔은 90도로 꺾였다.

표정은 공포에 질린 채 눈과 입을 떡 벌리고 눈동자도 튀어나왔다.

하반신은 피가 말라서 검붉은 자국으로 도배되었다.

구호준은 당황하며 연신 뒤로 물러섰고 목소리마저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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