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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손가영 풀어줘. 그리고 깨끗이 씻고 사과하러 오라고 해. 괜히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서 세라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말고.”

구호준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비서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세라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호준 오빠, 가영 언니가 오면 잘 달래서 화 좀 풀어줘요. 어쨌거나 부부인데 대판 싸울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구호준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세라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럴 만한 자격은 있고? 손가영 때문에 넌 무려 엘리베이터 안에 30분이나 갇혀 있었잖아. 당시 얼마나 두렵고 무기력했을지 가히 상상조차 안 가. 세라야, 네가 이렇게 착하게 구니까 손가영이 점점 더 도를 넘는 거야.”

행여나 이세라가 겁이라도 먹을까 봐 그는 분노를 억누른 듯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오로지 비아냥과 조소로 들렸다.

일주일 전, 구호준이 회의하는 틈을 타서 이세라가 나를 찾아와서 도발했다.

“임신하면 다야? 어차피 태어나도 호준 오빠의 사랑을 받지 못할 테니까 넌 물론 아이도 미운털 박힐 게 뻔해.”

난 시비 붙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싸늘하게 꺼지라고만 대답했다.

하지만 이세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와중에 고장이 생겨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자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구호준에게 작별했고, 밖에 다시 못 나갈 수도 있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영 언니가 날 싫어하는 건 알지만 단지 내가 떠나면 대신 오빠를 잘 챙겨주길 바랄 뿐이에요. 호준 오빠, 우리 다음 생에 만나요.]

문자를 확인하자 구호준은 곧바로 회의를 중단하고 미친 사람처럼 달려와 구조 인력을 총동원했고, 마침내 엘리베이터에서 의식을 잃은 이세라를 발견했다.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이세라를 껴안고 애처롭게 흐느끼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라야, 나 두고 가지 마...”

그때만 해도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고작 30분 동안 갇혔는데 굳이 생이별당한 것처럼 오버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나중에 구호준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무자비하게 캐리어에 집어넣었을 때 비로소 사랑받는 자와 봉변당하는 자는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세라는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너 때문에 자칫 죽을 뻔했잖아! 설령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남을 거야. 손가영, 이번 기회에 내 아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가르쳐줄게. 만약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줄 알아.”

지금까지도 그는 싸늘한 얼굴로 내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원을 이루기에는 글렀다.

“대표님! 대표님! 가영 씨가... 이미 숨을 거둔 것 같아요.”

구호준은 어리둥절했다.

나는 그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고 적어도 조금이나마 동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척 피식 웃기만 했다.

“어디서 연기야? 원래 심보가 나쁠수록 오래 산다고 했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있겠어? 이참에 화장터에 연락해서 통째로 태워버려. 죽는 척하는 게 그리 좋으면 확실하게 보답해줘야지.”

구호준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리며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30분 안에 깨끗하게 씻고 찾아오라고 해. 아니면 더는 말썽 피우지 못할 때까지 계속해서 벌을 주겠다고 알려줘.”

비서는 흠칫 놀라더니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되레 혼났다.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지? 너도 벌 받고 싶어?”

그리고 이세라를 감싸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세라야, 이따가 마음 약해지지 말고 강하게 먹어. 이참에 제대로 반성하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할 테니까 손가영에게 주는 벌이라서 절대로 불쌍하게 여기면 안 돼.”

이세라의 표정은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다.

“호준 오빠...”

나는 이제 증오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영혼은 마치 발목이라도 묶인 듯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고, 구호준이 욕하고 비웃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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