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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작가: 뒤집기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01 20:34:00
보름 후, 악취를 도무지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경찰이 찾아왔고 멍한 얼굴로 시신 옆에 주저앉은 구호준을 발견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서 그는 체포되었고, 회사 건물 밖으로 끌려 나가는 와중에 몸부림치며 반항했다.

“가영과 나를 갈라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경찰차에 억지로 올라탄 이후에도 고함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단지 여태껏 그를 사랑했던 증거를 조금씩 보여줬을 뿐이다.

이는 영혼이 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는 일주일 전에 임테기를 확인했다.

제정신이 아닌 구호준을 보며 이세라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결국 그를 버리기로 마음먹고 회사 내부 정보를 팔아넘겨 경쟁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비록 화가 났지만 구호준은 자존심 때문에 차마 굴복할 수 없었다.

내가 지치지도 않고 괴롭힌 탓에 그는 날이 갈수록 초췌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욕실에 두었던 임테기가 양치 컵에 떨어지자 끝내 참지 못하고 나를 가둔 방으로 달려가 고래고래 외치면서 시체를 끌어안고 물었다.

“가영아, 이제 그만 화 풀고 얼른 돌아오면 안 돼?”

나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고, 더는 스스로 속이지 않았다.

구호준이 갑자기 사랑에 눈을 뜬 건 아니고, 단지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기댈 수 있는 익숙한 안식처를 찾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무력감과 광기를 느꼈을 뿐이다.

무려 10년 동안 이어온 인연인데 그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또한 안정감을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도구처럼 필요할 때만 쓰이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고작 화풀이하려고 내 목숨을 앗아간 이상 영혼의 마지막 힘까지 다해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설령 연기가 되어 사라지거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언정!

법정에 출석할 때까지도 그는 임테기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지금의 몰골이 괜스레 낯설게 느껴졌지만 내 마음속 응어리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판결이 끝나자 문득 입을 열었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손가영의 배 속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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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조사를 시작하자 예상치도 못한 결과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구호준은 조사 결과가 못마땅한 듯싶었다.이세라가 귀국한 날, 나는 욕실에 임테기를 몰래 놓고 SNS에 게시물을 업로드했다.[호준을 위해 몸조리를 6개월 동안 했더니 드디어 효과를 봤어! 사랑의 결실을 보는 순간이 드디어 오다니!] 그리고 구호준과 이세라가 같이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을 때 마음이 울컥했지만 단지 댓글로 불평을 늘어놓았을 뿐이었다.[설마 날 잊은 건 아니겠지?]심지어 유학 간 이세라를 도와 갖은 일을 처리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태생부터 착한 남자한테 시집갔는데 워낙 성격이 좋아서 남이 힘들어하는 꼴을 못 봐주네. 마치 당시 나한테 했던 것처럼 말이야.] 무려 4,000여 개에 달하는 혼잣말은 전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세뇌의 결과물에 불과했다.그와 동시에 구호준이 고용한 사설탐정은 이세라가 귀국 후에도 해외에 있는 전남편과의 계속 연락한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하며 노골적인 대화를 나눈 게 밝혀졌다.게다가 엘리베이터 사고 당일에도 이세라가 일부러 정지 버튼을 누른 탓에 고장이 생겼다고 했다.모든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구호준은 마음이 심란했다.그리고 나중에 이세라가 애교를 부리며 찾아오자 증거들을 그녀의 얼굴에 내동댕이치면서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이게 바로 나에 대한 보답이야?”그동안 여린 소녀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이세라는 난감한 얼굴로 입꼬리를 파르르 떨더니 목소리마저 갈라졌다.“나도 단지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이런 멍청한 짓을 벌인 거예요. 호준 오빠...”모처럼 화가 난 구호준은 손을 번쩍 쳐들었지만 끝내 따귀는 때리지 못했다.설령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언정 차마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없다니.하지만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숨까지 잃었다.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반드시 사과해야 하는 건 아닌 듯싶었다.적어도 이세라는 예외이지 않은가?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속

  • 후회의 끝은 무엇일까?   제6화

    어두운 불빛 아래 방 한가운데 검붉은 핏자국이 배어 나온 캐리어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기괴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음기가 제일 강한 귀신으로서 두려울 게 뭐 있겠는가?물론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라 처참하게 죽은 자기 모습을 목격하니 설령 내 시체일지언정 무섭기 마련이다.구호준은 가운데로 걸어가 캐리어 앞에 멈추어 섰다.나는 그의 곁을 맴돌면서 덜덜 떠는 두 다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왠지 모르게 겁을 주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 목덜미에 숨을 불어넣었다.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마침 캐리어에 엉덩방아를 찧었다.나는 후회가 밀려왔다.시체를 깔고 앉는 바람에 더욱더 보기 흉하게 변했을지도 모른다.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바짝 긴장한 얼굴로 허공을 두리번거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놀란 가슴을 달랬다.“만약 나한테 장난친 게 발각된다면 네 살갗을 싹 다 벗겨버릴 거야!”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시체가 벌써 부패하기 시작했는데 피부를 벗기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이지 않겠는가?물론 구호준은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꿈에도 몰랐다. 이내 캐리어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두 눈이 빨개져서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아마도 시체에서 나는 악취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사실 난 성격이 깔끔한 편이라 이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줄은 몰랐다.“손가영, 네가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잖아.”단호한 말투는 마치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기 위한 듯싶었지만, 캐리어를 열까 말까 망설이는 손은 저도 모르게 떨고 있었다.나는 욕설이라도 퍼붓고 싶었다.강철 체력을 가지거나 초능력자도 아닌 단지 평범한 임산부가 그런 봉변을 당하고도 살아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캐리어 뚜껑을 열어젖혔다.나도 끔찍한 모습을 비로소 직시하게 되었다.맙소사! 썩어 문드러진 얼굴은 그가 깔고 앉는 바람에 움푹 패어 있었다.빌어먹을 자식, 죽어서도 나에게 모욕감을 주다니!구호준은 넋을

  • 후회의 끝은 무엇일까?   제5화

    그 이후로 구호준은 내 생각을 전혀 안 하는 듯싶었다.이세라의 생일 파티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며 일찌감치 준비했다. 인맥을 총동원해 유명한 밴드를 섭외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도 초청했다. 오로지 사랑하는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돈을 쏟아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아이러니하게도 전부 우리 집에서 빼앗은 재산이었다.나랑 결혼했을 당시 그가 운영하던 게임 회사가 곧 망할 위기에 처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고, 심지어 집까지 담보로 내놓고 보태줄 만큼 모든 것을 다 바쳤다.자금을 확보하자 개발에 전념할 수 있어 회사도 기사회생했고, 게임이 런칭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온라인을 휩쓸었다.금세 이 바닥에서 유명세를 치른 그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하지만 지금은 전부 독이 되어 돌아왔다.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간 이세라는 외국의 재벌 2세와 눈이 맞았고, 3개월 전 헤어지고 나서 속상한 마음에 귀국했다.그때부터 구호준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무려 3시간 전부터 공항에서 기다렸고, 불만을 토로한 나한테 윽박지르기까지 했다.“내 동생인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어?”물론 실검을 확인하기 전까지 설령 핑계에 불과할지언정 그를 믿어주었다.[로스트 대표의 고백]로스트는 바로 구호준 회사에서 대박을 터트린 게임이다. 나는 재빨리 게임에 접속했고, 회사에서 거액의 게임 머니를 배포했는데 메일 제목이 바로 [대표가 보낸 사랑의 선물]이었다.이벤트 날짜가 마침 내가 임테기로 임신 사실을 확인한 날이다.그리고 서프라이즈 겸 두 줄이 선명한 임테기를 안방 욕실에 두었다.나는 평소에 과묵한 남자의 또 다른 애정 표현법인 줄 알았다.온라인은 금세 발칵 뒤집혔다.[상남자의 로맨스라니, 완전 내 스타일이잖아?][대표 와이프가 알아챌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네.][애먼 유저들만 낚였어. 그나저나 액수가 워낙 커서 거절하기 힘든데?]그날 밤 나는 요리를 한 상 만들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가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하지만 게임 머니를 배포한 날 마침

  • 후회의 끝은 무엇일까?   제4화

    “깜짝이야! 누가 이딴 걸 집어넣었어? 손가영은? 당장 찾아내지 못해? 고작 인형으로 대체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내가 바보처럼 보이나? 빨리 가서 붙잡아 와.”나는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났다.시체가 버젓이 누워 있고 악취까지 풍기는데 뭘 모르는 척하는 거지?이제 와서 날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대표님, 가영 씨는 이미 죽었어요! 시체가 벌써 부패했잖아요.”구호준은 비서를 노려보았다.“헛소리하지 마. 설마 너도 손가영이랑 한통속이야? 날 뭐로 보고! 악취가 나는 가짜 시체를 보여주면 죽었다고 믿을 것 같아? 이 잡듯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그리고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가 방문을 잠그게 했고, 그와 동시에 내 행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이세라는 굳은 표정의 구호준을 발견하자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까치발을 들고 목을 감싸 안았다.“호준 오빠, 왜 그래요? 가영 언니가 또 화나게 했어요?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구호준은 그녀를 안고 소파에 앉더니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에는 도를 넘었어. 글쎄 가짜 시체로 바꿔치기하고 도망갔다니까? 하지만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낼 거야. 아직 너한테 사과도 안 했는데 자기 입으로 잘못을 뉘우치도록 해야지.”시체를 직접 보고도 부정하는 이유가 단지 내가 죽으면 이세라에게 사과를 못 할까 봐 걱정된 건가?이렇게 어이없을 수가.이내 CCTV 영상을 플레이하자 방에 갇힌 후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점차 조용해지는 과정이 화면에 적나라하게 담겼다.그래도 구호준은 믿지 않았다.“어차피 후반부는 똑같은 영상이라 편집하기에 딱 좋아. 손가영,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했네?”그리고 노트북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가 갑자기 화를 내는 바람에 이세라는 화들짝 놀라 빨개진 눈시울로 품에 기댔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구호준은 다정한 목소리로 이세라를 달래주기 바빴다.“미안해, 많이 놀랐어? 단지 책임감 없이 홀연히 떠나가 버린 손가영 때문에 짜증이 나서 그만... 네 생일 전까

  • 후회의 끝은 무엇일까?   제3화

    그는 내가 10년 동안 사랑했던 사람이다.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졸업하고 나서 연애 그리고 결혼까지 3년.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오점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그동안 껌딱지처럼 꼬박 7년 동안 졸졸 따라다니면서 진심만 다 하면 아무리 차가운 남자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사랑 고백을 받아준 날, 너무 기쁜 나머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그러나 결혼을 승낙한 이유가 단지 회사의 자금줄이 끊겨서 재정적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일 줄이야.나는 결혼하고 나서 구호준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동시에 시중들고 비위를 맞춰주려고 갖은 애를 썼다.덕분에 본인도 조금씩 변해갔고,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침을 준비하고 배가 아플 때 부드럽게 마사지도 해주었다.심지어 비로소 그의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그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방방 뛰면서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하지만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손가영, 임신한 게 사실이야?”나는 의혹이 담긴 말투를 눈치채지 못하고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훗, 하지만 난 정자가 워낙 적어서 임신이 불가능해. 누구의 아이인지는 아마도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비록 서툴지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의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전달해주었다.“9주가 지나서 안정기에 들어서면 확인이 가능해. 널 배신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그러나 임신이 확정된 날 이세라가 마침 귀국할 줄은 몰랐다.구호준은 우스갯소리로 이세라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10년 동안 노력한 끝에 어렵게 얻은 사랑이 이세라의 귀국과 함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영혼도 고통이 느껴지는 건가?나는 갑자기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캐리어에 갇혀 있을 때 느꼈던 절망적인 질식감이 다시 나를 덮쳤다.이세라를 안고 있던 구호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왜 이렇게 안 오지? 며칠 동안 반성하고도 아직 교훈을 얻지 못했나? 설마 나랑 해보자

  • 후회의 끝은 무엇일까?   제2화

    “손가영 풀어줘. 그리고 깨끗이 씻고 사과하러 오라고 해. 괜히 고약한 냄새를 풍기면서 세라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말고.”구호준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비서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이세라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호준 오빠, 가영 언니가 오면 잘 달래서 화 좀 풀어줘요. 어쨌거나 부부인데 대판 싸울 필요까지는 없잖아요.”구호준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세라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그럴 만한 자격은 있고? 손가영 때문에 넌 무려 엘리베이터 안에 30분이나 갇혀 있었잖아. 당시 얼마나 두렵고 무기력했을지 가히 상상조차 안 가. 세라야, 네가 이렇게 착하게 구니까 손가영이 점점 더 도를 넘는 거야.”행여나 이세라가 겁이라도 먹을까 봐 그는 분노를 억누른 듯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내 귀에는 오로지 비아냥과 조소로 들렸다.일주일 전, 구호준이 회의하는 틈을 타서 이세라가 나를 찾아와서 도발했다.“임신하면 다야? 어차피 태어나도 호준 오빠의 사랑을 받지 못할 테니까 넌 물론 아이도 미운털 박힐 게 뻔해.”난 시비 붙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싸늘하게 꺼지라고만 대답했다.하지만 이세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와중에 고장이 생겨 안에 갇히게 되었다.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자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구호준에게 작별했고, 밖에 다시 못 나갈 수도 있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영 언니가 날 싫어하는 건 알지만 단지 내가 떠나면 대신 오빠를 잘 챙겨주길 바랄 뿐이에요. 호준 오빠, 우리 다음 생에 만나요.]문자를 확인하자 구호준은 곧바로 회의를 중단하고 미친 사람처럼 달려와 구조 인력을 총동원했고, 마침내 엘리베이터에서 의식을 잃은 이세라를 발견했다.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이세라를 껴안고 애처롭게 흐느끼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세라야, 나 두고 가지 마...”그때만 해도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고작 30분 동안 갇혔는데 굳이 생이별당한 것처럼 오버할 필요가 있을까?그러나

  • 후회의 끝은 무엇일까?   제1화

    “질투심에 눈이 먼 여자가 요즘은 조용하네?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대? 아니면 드디어 철이 들었나? 역시 벌을 줘야 정신을 차리는군.”이때, 옆에 있던 비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 가영 씨가 아직 갇혀 있는 것 같은데...”구호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원상태로 돌아왔다.“며칠 더 반성하게 놔둬.”비서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다시 삼켰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 가영 씨를 감금한 방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던데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게...”구호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고약하다고? 당연한 거 아니야? 살아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잖아. 최소한의 에너지를 축적하려고 똥오줌도 기꺼이 섭취할 사람인데 냄새가 안 나면 이상하지.”비서가 한마디 보태려고 했으나 구호준이 말을 끊었다.눈살을 찌푸린 모습은 혐오감이 역력했다.“알았으니까 그만 얘기해! 내일이면 풀어줄게. 그동안 충분히 반성했으니 성질도 많이 죽었을 거야. 나중에 세라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면 이번 사건은 없었던 일로 쳐줄 테니까.”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세라가 맨발로 걸어 들어왔다.구호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세라야, 아직도 악몽 꿔? 걱정하지 마. 손가영에게 아주 혹독한 벌을 내렸으니 네가 당한 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고통스러울 거야.”그리고 이세라를 안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역시 내 생각을 해주는 건 호준 오빠밖에 없다니까.”이세라는 그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마 가영 언니도 잘못을 뉘우쳤을 거예요. 저도 단지 언니가 사과하길 바랄 뿐, 벌까지 받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설마 제 탓하는 건 아니겠죠?”다정한 남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지만 인기척은 나지 않았다.왜냐하면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숨 막히는 고통에 절망스러운 순간 비좁고 끔찍한 캐리어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밖에서 바라본 캐리어의 표면은 이미 피에 흠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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