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박연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순간 박연준은 그 미소에서 깊은, 그리고 위험한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뭘 하려는 것 같아?”“...”이유영은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박연준이 뭐라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당신의 약혼녀로서, 최소한의 자유는 있는 거지?”“물론이지.”“점심은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먹어.”이 말을 남기고 이유영은 돌아서서 나갔다. 박연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이유영이 별장에서 나서자, 장혜주의 차가 도착해 있었다. 장혜주는 여진우가 붙여준 사람이었다. 차에 타자 장혜주는 봉투 하나를 이유영에게 건넸다. “요청하신 자료입니다.”“응, 고마워.”이유영은 자료를 받아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서주 지역 내부의 박연준과 강이한의 세력 분포도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 문서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 문서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어.”“말씀하세요.”장혜주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서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진우의 사람들이 그녀의 주위를 철저히 감시하며 보호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이곳으로 오기까지, 정씨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이유영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안전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박연준과 강이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줘.”결국, 이유영은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본인이 두 사람의 원한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알아봐야 한다. 도대체 어떤 갈등 때문에 그녀가 이 혼란 속에 휘말린 것인지. “알겠습니다!”장혜주는 고개를
“만약 누군가를 찾으려 한다면...”강이한은 말하다가 갑자기 멈췄다.‘누군가를 찾는다고? 대체 누굴 찾으려는 거지?’강이한은 순간 생각에 잠겼다. 오래전에 기억이 떠오르는 듯하면서 마음이 찝찝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연준도 이유영이 여진우 쪽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강이한과 마찬가지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애써 화를 억눌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소름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여진우 쪽 사람들 잘 감시해!”“네.”문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타이밍에 이유영과 여진우가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유영이 서주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았다.사람들은 박연준 약혼녀 신분으로 나타난 그녀를 박연준 라인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박연준이든 박연준 쪽 사람이든 다들 그렇게 쉬운 사람들이 아니었다.이유영이 아무리 덤덤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그 일을 쉽게 넘길 리는 없을 것이다. 이번엔 강이한 뿐만 아니라 박연준까지 처리하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만약 이유영이 십 년 전 강이한이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와 박연준이 십 년 동안 그녀를 이용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들 속이 빤했다.“되돌려보낼까요?”문기원은 은근히 걱정되었다.강이한과 달리 문기원은 박연준 곁에 오래전부터 함께 해온 사람이었기에 모든 일을 거의 다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문기원도 이유영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박연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 길게 빨아들이며 눈살을 찌푸렸다.강이한이 이유영이 서주로 오는 걸 계속 원치 않고 심지어 오는 걸 막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그런데 박연준은 그와 달리 계속 당당한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 이유영이 여진우와 연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약간 마음이 켕겼다.‘설마?’“문기원.”“네, 대표님.”“네가 보건대 이유영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더 미워할까 아니면 강이한을 더 미워할까?”“...”문기원은 순간 흠
“하지만 이유영 씨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 같이 있어 주셨잖습니까. 이유영 씨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지요.”“...”“연준 님은 이유영 씨가 기댈 곳이었습니다.”문기원이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박연준은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하지만 문기원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사실 박연준과 이유영 사이는...강이한이 용서받을 수 없다면 박연준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여진우의 사람을 잘 지켜보고 있어.”그렇게 생각하면서 박연준은 더 한층 차가워진 말투로 얘기했다.어찌 되었든 이유영이 그해의 일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문기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만약 여진우의 사람들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때는...”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유영이 여진우의 사람을 시켜 정보를 알아내게 한다면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게다가 여진우의 사람은 타지의 사람도 아니니 정보를 찾기 더욱 수월할 것이다.그렇다면 이유영은 원하는 정보를 아주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하지만 만약 그녀를 방해한다면...여진우의 사람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니 빠르게 눈치채고 반격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박연준에게는 독이 될 것이다.문기원이 그렇게 얘기하자 박연준은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깊은 주름이 생긴 미간을 꾹 누르면서 박연준이 물었다.“그래서 네 뜻은 뭔데.”“이유영 씨부터 건드려야합니다.”‘이유영? 알아보지 말라고 하게?’이유영이 박연준과 강이한 사이의 오묘한 관계를 눈치챘다는 것은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 전에 조사해 보지 않은 이유는 아마 서주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게다가 이유영은 강이한과 다른 접점이 생기질 않기를 원했으니 여기에 신경 쓸 사이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도 이유영 씨가 연준 님 곁에 있는 것을 어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조급해할 겁니다.”“...”문기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제 박연준이 강이한 앞에서 이유영을 데려가지 않았다.하지만 강이한 같은 사람이 이유영을 순순히
“...”문기원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나서 불안한 눈빛으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이유영이 서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연준 님과 강이한의 일은 결국 그녀에게 드러날 운명이었어요.”그랬다. 이전에 이유영과 강이한이 서로 상관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서주의 모든 일들이 영원히 이유영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온유의 병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온유가 강이한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병은 분명히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영천로.이유영은 카페에서 나와 강이한이 길가의 한 대형 SUV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네모난 차체, 눈부신 검은색과 남자의 강렬한 이미지가 결합하였다. 이유영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 남자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자, 이유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여진우에게 무슨 조사를 시켰어?”강이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차가운 표정의 이유영이 입꼬리를 올리고 냉소적하면서 말했다. “당연히 조사했지, 당신이 서주에서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강이한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이유영은 계속 말했다. “이전에 파리에서 당신이 서주에서 벌인 모든 일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어.”“...”“강이한, 지금 와서 보니, 우리의 그 10년이 정말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그제야 자신이 그의 앞에서 얼마나 바보처럼 행동하고 있었는지를 알았다.“여진우에게 무슨 조사를 시켰든지, 그만둬. 더 이상 진행하지 마!”“...”‘그만두라고? ‘강이한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을 보며, 이유영은 그 기운이 자신에게 보여주던 차가운 기운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의 한계를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다.“나는 계속 조사할 거야. 당신은 어떻게 할 건데?”이유영은 욱해서 강이한을 바라
이젠 늦었다.강이한은 그녀를 절대 놓아주지 않았지 않은가.‘이제 그만두라고? 늦었어!’쿵, 택시 문이 닫히는 순간 강이한을 향한 이유영의 마음도 같이 닫히는 것만 같았다....저택으로 돌아오자 이유영은 저택 곳곳에 피어 있는 튤립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점심.이유영이 떠날 때 박연준에게 함께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박연준은 마치 그녀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1시까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침과 맛이 다르네.”여전히 세무의 음식 맛이지만, 이유영의 미각은 매우 예민했다. 한 입 먹자마자 아침의 요리사와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맞은편의 박연준은 앞에 놓인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유 맛조차 잘못 느낀다면, 더 이상 남길 필요가 없으니까.”그의 말은 무심한 듯 다정했다. 이유영은 박연준을 무관심하게 바라보았다. 박연준의 눈빛은 여전히 온화했다. 그러나 그런 온화함이 오히려 이유영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이렇게 부드러운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하고 있다니, 정말 무섭다.“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거야?” 남자가 레드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신이 무섭다고 생각해.”이유영은 솔직하게 말했다. 박연준은 웃었다.“한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나는 다 먹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이유영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사실은 박연준을 마주하니 식욕이 없어진 것이었다.“너무 적게 먹었어. 좀 더 먹어!” 박연준은 강한 명령조로 얘기했지만 이유영은 대답하지 않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 이유영을 바라보며 박연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이 작은 고양이 같은 여자를...’문기원이 올 때, 박연준은 거의 한 병의 레드 와인을 마신 상태였다. 박연준의 마음속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 수 있었다. “연준 님.” ‘
그래, 지금! 이게 바로 핵심이다. “신씨 가문은 그녀와 강이한의 관계를 알고 있으니, 그들과 강이한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거다. 이 기간 동안 그녀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해.” 오늘 이유영이 혼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박연준이 여진우의 사람들이 이유영이 서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유영의 곁에서 이유영을 지켜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서주는... 이유영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으니, 박연준도 주의해야 한다. “네.” 문기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연준의 뜻을 이해했다. 이유영을 데려오기로 결정했으니, 절대 이유영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 이유영은 위층에서 소은지와 통화 중이다. 전화 너머 소은지의 목소리에는 이유영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나는 현우 씨가 말하는 걸 다 들었어. 유영아, 돌아오는 게 좋지 않을까?” 서주가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이유영은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이전에 정국진이 왔을 때 정국진은 이유영을 끌어들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때 이유영은 그리 잘 알고 있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괜찮아, 나 걱정하지 마.” “유영아.” “괜찮아 은지야, 나 먼저 끊을게.” “잠깐만.” 이유영이 전화를 끊기 전에 소은지가 그녀를 불렀다. 이제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소은지도 더 이상 이유영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은 소월이가 이 모든 일의 도화선이 되었다. 강이한은 왜 하필 아이를 건드린 것인지! 왜 그깟 한지음을 위해 이유영에게 이렇게 큰 상처를 준 건지!이유영은 그저 담담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어떤 여자가 남편이 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있을까?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아이?왜 아이에게 잘해주지 않는가?특히 강이한이 이온유, 즉 한지음의 딸을 소중히 안고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 이유영은 화가 치밀었다. 그 증
이유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박연준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이 서주의 과일차, 맛이 별로야.” “원하면 내일 파리 쪽의 걸 가져다줄게.” “청하의 걸 가져다줘. 나는 그게 맛이 더 좋아.” 청하에서 자란 그녀는 파리로 돌아와도 청하의 맛이 더 익숙했다. 박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기봉. 그 사람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줄 거야?” “...”박연준은 잠시 멈칫했다. 찻잔을 들고 있는 손이 굳어졌다. 이유영을 바라보는 박연준의 눈빛이 의미심장해졌다.이유영도 그를 바라보며 같은 눈빛을 보냈다. 두 사람은 이렇게 깊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도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했다. 이런 심리 전술은 이유영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다른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박연준이 웃었다. “이유영, 너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앞에서 숨길 노력도 안 하겠다는 거야?” ‘숨길 노력?’이유영도 웃었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나는 너희와 달라.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항상 분명히 알고 있어!”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박연준이 말했다. “그럼 지금 너는 뭘 원하는데?” ‘뭘 원해?’ “전기봉의 소식이 필요해!”“너 정말 솔직하네!”“당연하지.”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항상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연준은 다시 침묵했다. 이유영도 침묵했지만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연준이 그녀에게 답을 주기를. 박연준이 말했다. “유영아.” “응?” “그걸 제외한 다른 건 다 줄게, 괜찮아?” 이 순간 박연준은 부드럽게 얘기했다. 이유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박연준은 계속 말했다. “전기봉의 일이랑 널 10년 동안 이용한 일이랑 퉁치자는 거야.” 그녀가 전기봉의 소식을 엔테스 명우에게 팔았던 그 사건. 단
“끊겨버렸어, 상대방이 너무 교활해.” 소은지가 말했다. “...”‘그래서 이 사흘 동안 박연준을 보지 못한 이유가, 박연준이 요즘 바빠서였구나.’이 삼일 동안 강이한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엔데스 명우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지금 그 문서를 완전히 뒤엎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박연준과 강이한 쪽을 주시하게 만들어 두 사람은 더욱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소은지도 지금 상황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 문서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영아, 후회할 거야?” 소은지가 물었다. “...”‘후회?’ 그녀는 소은지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과 그녀는 10년을 함께했다. 그리고 박연준은 그녀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누가 이렇게까지 하고 싶었겠는가? 이유영은 아니었다! “소은지, 너는 이해하지 못해.” “아니, 나는 이해해! 너의 이 감정이 어떤지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래서 걱정되는 거야!” 소은지가 무겁게 말했다. “...”‘전후 관계를 말하는 건가?’ 소은지는 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시작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소은지는 이 감정을 좋게 보지 않았다. 부유한 가문 사이의 신분 차별과 어릴 적 자란 환경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소은지는 이혼 변호사로서 이런 헤어짐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처음에는 뜨겁게 사랑했지만, 헤어질 때는 미친 듯이 싸웠다. 하지만 이유영과 강이한같은 상황은 드물었다. 이런 복잡한 관계는 너무 얽히고설킨 것이다.“그만하자,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이유영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후회할까? 후회한다.강이한과의 시작을 후회했다. 소은지와의 통화를 막 끊자마자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장혜주의 번호였다! 이유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유영 님.” “소식이 있어?” 전에 강이한과 박연준 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
송연미는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께서 아직 현우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으셨어.”그 말을 하면서 송연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그 무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송연미를 바라보는 눈빛은 침묵 속에서 날카로움을 띠고 있었다.“네가 아직 여기 있기 때문이야.”송연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어느 정도 압박감이 배어 있었다.소은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송연미는 오늘 밤 소은지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소은지는 품에서 잠든 고양이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송연미가 그 고양이를 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왜냐하면, 송연미도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아마 현우는 그것을 잊었을 것이다. 송연미와 현우의 사이가 좋았을 때, 송연미는 현우에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좋아, 예쁜 고양이 한 마리 찾아 줄게.”그의 말은 여전히 소은지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그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다. 그 누구도 그때가 마지막 평화로운 순간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고 서로 다른 인생의 궤도로 나아갔다.송연미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기다린 것은 현우가 약속한 예쁜 고양이가 아니라 아버지가 그녀를 엔데스 운빈에게 시집보내려는 계획이었다.송연미는 강하게 반항했다. 미친 듯이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가문 내의 압박과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송연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하루를 겪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모든 것이 단번에 깨져버렸고 그녀는 고통과 분노 속에서 절망했다.그래서 그녀는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미워하게 된 것이다.“너랑 엔데스 운빈의 관계 때문에 네 아버지가...”소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연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이 가문은 어떤 집안인 걸까?소은지가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송연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하지만 소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딘가 고독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끼며,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넌 어떻게 생각해? 나와 현우 씨, 나름 함께 고난을 겪어온 사이 아닌가?”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시선을 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소은지의 말에 송연미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송연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고 눈 속에는 질투의 불씨가 번뜩였다.하지만 송연미는 엔데스 가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인 만큼 그런 감정들은 금세 억누를 수 있었다.“엔데스 가문이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어.”중대하다?소은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우가 자신을 이렇게 급하게 파리에서 떠나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려갔어.”“...”그 말을 듣고 소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송연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연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소은지, 너 모르지?”“뭘 말하는 거야?”“예전에 회장님 세대 때, 집안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소은지는 조용히 송연미의 말을 들었다.송연미가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송연미 말대로 소은지는 그들의 권력 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아버지가 그러셨어. 그 당시 엔데스 회장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고. 지금의 여섯째 도련님보다 훨씬 더 무서웠대.”“...”그 말을 들은 소은지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졌다.소은지는 가족 모임 때 한 번 마주쳤던 차가운 눈빛의 백발 회장님을 떠올렸다.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그녀를 얼어붙게 할 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엔데스 명우조차 이미 충분히 무서운 존재였는데, 회장님은 그보다 더했다니. 엔데스 가문이란 현우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끝없는 심연이었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리고 간 이유는 미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큰형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야.”단서 하나로
한때 청하시에 머물던 시절.소은지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아온 탓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남자를 광적으로 사랑한다는 것 역시 그녀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불같이 뜨거운 사랑이 결국 아픔으로 끝난다면, 그런 사랑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특히 현우의 내면을 어느 정도 들여다본 지금, 그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하지만 여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하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과거에 소은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그래, 여자가 순진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마지막에 우는 건 그 여자가 아닐 수도 있어.”소은지의 말은 냉소적이었고 태도는 언제나 가벼워 보였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소은지는 여자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왜 굳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 모를 그런 감정에 휘말려야 할까?사랑은 진심을 다한 사람이 결국 패배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 같았다.소은지는 너무 많은 상처받은 여자들을 보아왔다.그리고, 너무나 많은 상처받은 남자들도 보아왔다.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던 소은지는, 현우를 마주하는 순간 이미 마음이 깊이 흔들리고 있었다.“얼마나 걸릴까요?”소은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우천시로 떠나는 것에 관한 질문이었다.현우가 소은지를 우천시로 보내려 한다는 건, 현재 파리의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었다.시간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소은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엔데스 가문이 정말로 벼랑 끝에 다다른 걸까?소은지는 깊은숨을 내쉬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억눌렀다.“네.”짧은 한마디.그러나 그 짧은 대답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은 오직 소은지만이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에게 우
엔데스 명우는 설선비와 설유나의 일에 대해 스스로 깊은 죄책감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 죄책감을 보상이라는 형태로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쏟아부었다.하지만 복수를 결코 잊지 않는 성격답게, 이 모든 보상 또한 결국 갚으려는 계산일지도 모른다.“제가 알아서 할게요.”소은지가 현우에게 차분히 말했다.그 말을 듣고 현우는 그녀를 감싸던 팔이 잠시 멈췄다. 한참을 생각하던 현우는 말했다.“제가 바래다줄게요.”“...”바래다준다니? 어디로?“일곱째 도련님?”“이유영은 지금 우천시에 머물고 있어요. 은지 씨도 잠시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소은지는 현우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깊고 복잡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았다.“상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거예요?”“전기봉을 강이한이 찾아냈어요.”“...”전기봉. 이 중요한 인물을 찾는 일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최우선 과제였다.전기봉이 나타나면 모든 일이 해결될 단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를 찾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모두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이제는...소은지는 깊은숨을 내쉬었다.“찾아냈다고요?”“네.”이제 엔데스 가문의 운명은 앞으로의 며칠간 모든 것이 결정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소은지는 현우의 표정을 보며 더욱 불안해졌다.“하지만 전...”“지금 우천시에는 박연준이 있어요. 은지 씨도 그쪽에 있으면 더 안전할 거예요.”지금의 파리는 너무 위험했다.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그런 위험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청하시에 있던 시절, 평화롭게 지내던 소은지의 삶에 갑작스럽게 파리의 사건들이 찾아왔던 것처럼, 그 충격은 소은지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만약 우천시에 있었다면, 소은지는 지금처럼 위태롭지는 않았을 것이다.지금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 속에서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그리고 그 분노는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저는...”소은지는
기다리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다. 강이한, 박연준, 그리고 이유영. 세 사람의 얽힌 관계는 이제 누구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었다.한편, 파리에서는 엔데스 가문이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강이한은 서주로 돌아갔고 그와 관련된 문서는 점점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엔데스 명우와 엔데스 현우도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했다.반산월.남자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시가 연기가 희미하게 실내를 감싸고 있었다. 소은지는 품에 작은 고양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현우의 묵직한 눈빛이 그녀를 스쳤다.현우는 소은지를 보자 순간적으로 표정을 가다듬었다.“이 녀석을 꽤 잘 돌본 모양이에요. 아주 잘 자랐네요.”길에서 처음 이 고양이를 주웠을 때는 겨우 갓난 새끼 고양이였다.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작은 생명체였는데 지금은 소은지의 품에서 부드럽고 윤기 나는 털로 감싸인 작은 생명체로 자라 있었다. 여전히 조그마했지만 이제는 생명의 따뜻함과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는 작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현우의 옆에 앉았다.“작은 동물들은 금세 자라잖아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아이는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했다.반면, 동물들은 마음만 쓰면 빠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줬다.“...”소은지가 아이를 언급하자, 현우는 마음 한구석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아이 좋아해요?”현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은지는 잠시 멈칫했다.아이를 좋아하냐고?“좋아한다, 싫어한다로 설명할 수 없어요.”“왜요?”“아마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봐요.”소은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아이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존중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였다.그러나 소은지가 지금까지 보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그보다 더 복잡했다.청하시에서 일하며 소은지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과 얽힌 상황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처음엔 서로 사랑하던 부부가 결국 이혼을 앞두고는 지독히 싸우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우리, 결혼하자.”이유영이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박연준이 갑자기 말했다.“...”공기가 그 순간 얼어붙은 듯 정적이 흘렀다.이 남자, 미쳤나 봐.이유영은 박연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볼 수는 없었지만 텅 빈 두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다.박연준은 그런 이유영의 눈빛에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이유영은 차갑게 박연준이 있는 방향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침묵 속에서 전해지는 무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유영아.”“서주...”서주?“네가 원하는 건 결국 우리 아버지의 지원이야?”지원? 자신이 지금까지 보여온 확신마저 이유영에게는 이익을 위한 계산으로 보인단 말인가?“괜찮아. 세상 모든 일은 사실 네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걸 알려줄게.”“흥!”박연준의 다짐이 이유영에게는 터무니없게만 들렸다.“내가 기회를 줄 것 같아?”이유영은 단호했다.박연준이 자신을 이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싫었다. 그런데 이제 가족까지 이용하려 하다니. 박연준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박연준, 그런 기회를 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이유영은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날카롭게 내뱉었다.이유영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같은 말을 했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 증오가 서려 있었다.이유영의 마음속에 쌓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만약 지금 이유영이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분명 서주로 돌아가 강이한과 박연준을 혼란의 중심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박연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그날, 서재에서 박연준이 강이한에게 물었다.“이유영이 시력을 되찾으면, 서주를 가장 먼저 공격할 거야.”이유영은 신씨 가문을 알고 있었다.이유영과 신씨 가문이 어떤 관계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신지수가 이유영 편에 선다는 건 그 둘 사이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그런데 서주 자체가 워낙 복잡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