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존재..." 이유영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강이한이 계속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유영아... 정말로 이 모든 게 그냥 내 꿈이었으면 좋겠어.”‘그래, 그저 한낱 꿈이었으면 좋겠다.’이전 생, 그들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마지막에 결국 그들의 인생에는 서로만이 존재했다.이유영에게는 박연준이 없었다!그리고 강이한에게도 이유영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지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의 이유영은 이 모든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그녀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의 세계 속에서 무엇인지 따져보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이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모든 진실도, 존재의 의미도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세계에는 박연준이 있고, 강이한의 세계에는... 버릴 수 없는 온건한 이온유가 있었다.지금의 이 길은 그들에게 막다른 골목이다! 강이한은 정말 이 모든 것이 그의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둘만이 존재하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오직 서로에게 서로만 있던 그 시절로 말이다."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야!" 이유영은 강이한의 눈에서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그의 말 속에서 후회가 느껴졌다.그가 어떻게 이 세계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영은 그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렇다.강이한은 후회했다.이 세계에 온 것을 말이다! 이번 생은 저번 생보다 더 어려웠다."그래, 이게 내 인과응보야." 이건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니라, 그에게 내려진 벌이었다."고통스럽다면 여기서 멈춰서." 이유영이 또박또박 얘기했다.멈추라니?강이한은 마음속으로 그 말을 되새겼다.잠깐이나마 그는 정말로 이유영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빠르게 사라졌다.대신 더 깊어진 집착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오늘부터, 너는 이 저택을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어!" 눈에 서렸던 슬픔은 사라졌고, 그의
박연준이 도착했다. 강이한의 사람들이 그를 강제로 막아섰다. 강이한과 박연준은 한치의 예의도 차리지 않으려는 것만 같았다."저 자식한테 당장 꺼지라고 해!" 강이한의 목소리에는 차가움과 분노가 가득했다. 이 순간, 이유영은 그의 눈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픔 같은 감정을 보았다. 잠깐이지만 확실했다.그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확실히 느꼈다. 강이한이 박연준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예.”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이유영은 그의 옆모습에서 시선을 거두고, 큰 창 너머로 눈을 돌렸다.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마음이 날씨처럼 답답해졌다.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이유영이 비 오는 날을 싫어하게 된 것이.예전에 강이한과 함께 있을 땐 비 오는 날을 좋아했었다.강이한에게는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라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 오는 날을 일요일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는 언제나 홍문도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지금도 분명 중요한 전화가 와서 자리를 떴지만, 비가 내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하지만 아마도 이제는 강이한이 곁에 있는 것이 싫어져서인지, 이유영은 비 오는 날도 싫어진 듯했다.강이한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어디 가는 거야?""못 들었어? 저 사람은 날 데리러 온 거야."이유영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말이 끝나자, 손목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강이한은 더욱 세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유영은 숨이 막힐 듯 아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그녀는 여전히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연준이 널 어떻게 이용했는지 잊었어?"남자의 목소리에서는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예전에 박연준이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강이한은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었다.하지만
“...”순간 그는 목이 메었다.맞다. 과거에 이유영이 겪었던 모든 일은, 정말로 잔인했다. 그 일에 대해 무어라 여러 번 말하고 싶었지만, 항상 지금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떠올리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어차피 저번 생의 일에 대해서는 이유영이 모든 걸 이미 말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들, 강이한이 한지음과 함께 이유영을 위해 무언가를 희생했던 모든 것.이는 모두 두 사람에게 업보로 돌아왔다. 이유영은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리고 지금은...강이한이 입을 떼기 전에, 이유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넌 이온유를 구하려고 했을 때, 소월이에게도 아주 잔혹했어.”강이한은 머릿속이 윙하고 울리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잔혹했다고? 그가 어떻게 자신의 딸에게 잔혹할 수 있겠는가? “아니야, 유영아!”“당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당신은 결국 그렇게 했어!”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강하고 무겁게 그의 죄책감을 짓눌렀다.마치 죄책감이 강이한의 어깨 위로 무겁게 얹히는 것만 같았다.그들 사이에는 새로운 길이 생겼고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한 것과 같았다. 강이한이 어떠한 강경한 태도와 집념을 품고 있든, 이유영의 가득 찬 증오를 막을 수는 없었다.그래, 이유영은 강이한을 증오하고 있다. 이유영이 직접 말하기도 했다. 이번의 증오는 이전의 증오와는 달랐다. 과거에는 그저 그와 서로 관계없는 삶을 살기 바랐다. 그러나 이번엔, 그녀가 서주에 온 만큼 그를 향한 증오로 인해 그와 죽고 못 살 원수가 될 것이 분명했다.“도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이유영이 등을 돌리는 순간, 강이한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그의 목소리에는 고통이 스며들어 있었다.이유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이 감춰져 있었다.강이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그녀가 돌아본다
이유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박연준은 그녀의 가냘픈 모습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박연준의 곁에 다다르자마자 그는 서둘러 자신의 트렌치코트를 벗어 그녀의 머리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귀가에 나지막이, 약간 질책하듯이 말했다.“그 사람이 너를 이렇게 내보낸 거야?!”남자의 차가운 향기가 이유영의 곁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녀의 뒤쪽 멀리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가자.”이유영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박연준의 따스함에 대답하듯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박연준은 말없이 멀리 서 있는 사람의 붉은 눈을 바라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그래서 누가 이긴 걸까? 이곳에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유영은 너무나 차분했고 차가울 정도로 매정했다. 감정이 철저히 사라진 듯한 그 차가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서늘함마저 느끼게 했다.박연준은 이유영을 태우고 차에 올랐다. 강이한의 사람들은 막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질 정도였다.차 안에서 이유영은 창밖의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여전히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후회해?”박연준이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유영은 그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서주 식물은 파리랑 완전히 달라.”박연준은 입을 다물었다. ‘참... 사람 애태우는 데는 도가 텄다니까.’ 이유영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곳의 모든 것은 파리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식물뿐만 아니라 건물조차도 그렇다. 이곳 사람들은 커다란 별장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강이한의 크리스탈 별장을 보았을 때도 그 규모가 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는 박연준의 별장도 그에 못지않게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나무로 된 복도 바깥에 비가 내리고 빗방울이 야자수에 떨어졌다.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여기는 비가 자주 오는 것 같네.”“여기는 이런 날씨야. 한 달에 반 이상은 비가 내려서 날씨가 습해.”‘그렇구나.’이런 날씨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유
한때 강이한은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에게 이런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때의 강이한은 어땠는가?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여러 차례 말했었다. 이유영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이한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전부 사실이라며 오만하게 굴었고, 세상의 모든 유언비어를 믿으면서도 그녀만은 믿지 않았다. 이유영은 수없이 해명했지만 돌아온 건 언제나 차가운 말 한마디뿐이었다. “이유영, 이건 네가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야.”맞아, 그녀가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이 바로 이거였다. “무엇이나 당연한 건 없어요. 그 사람들은 그저 당신을 따르기로 한 것뿐이죠.”이유영은 앞에 놓인 우유를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복잡한 어조로 말했다. 박연준은 이유영의 말에 온몸이 경직되었다가, 이내 눈빛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그래, 그 얘긴 그만하자.”“...”“이제 서주에 왔는데, 앞으로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박연준이 그녀에게 물었다. ‘계획?’ 박연준의 질문에 이유영은 더욱 날카롭고 예리해진 박연준의 눈을 마주했다. 박연준은 멈칫하며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해도,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한 복수가 될 테니까.”박연준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 사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저 그의 곁에 약혼자라는 명의로 있는 것만으로도 강이한에게는 복수가 될 테니까. 하지만, 과연 이유영에게 있어서 복수가 정말 그런 것일까? 박연준은 그녀를 탐색하듯 바라봤다. 박연준은 이유영이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로열 글로벌을 관리할 정도의 사람이면서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박연준은 가볍게 웃었다. 못 믿겠다는 듯 말이다.이유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물었다. “왜, 믿지 못하겠어?”“이유영, 내가 널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랬다. 이유영에게 관심이
이유영은 박연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순간 박연준은 그 미소에서 깊은, 그리고 위험한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뭘 하려는 것 같아?”“...”이유영은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박연준이 뭐라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당신의 약혼녀로서, 최소한의 자유는 있는 거지?”“물론이지.”“점심은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먹어.”이 말을 남기고 이유영은 돌아서서 나갔다. 박연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이유영이 별장에서 나서자, 장혜주의 차가 도착해 있었다. 장혜주는 여진우가 붙여준 사람이었다. 차에 타자 장혜주는 봉투 하나를 이유영에게 건넸다. “요청하신 자료입니다.”“응, 고마워.”이유영은 자료를 받아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서주 지역 내부의 박연준과 강이한의 세력 분포도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 문서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 문서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어.”“말씀하세요.”장혜주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서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진우의 사람들이 그녀의 주위를 철저히 감시하며 보호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이곳으로 오기까지, 정씨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이유영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안전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박연준과 강이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 줘.”결국, 이유영은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본인이 두 사람의 원한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알아봐야 한다. 도대체 어떤 갈등 때문에 그녀가 이 혼란 속에 휘말린 것인지. “알겠습니다!”장혜주는 고개를
“만약 누군가를 찾으려 한다면...”강이한은 말하다가 갑자기 멈췄다.‘누군가를 찾는다고? 대체 누굴 찾으려는 거지?’강이한은 순간 생각에 잠겼다. 오래전에 기억이 떠오르는 듯하면서 마음이 찝찝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연준도 이유영이 여진우 쪽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강이한과 마찬가지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애써 화를 억눌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소름 돋을 정도로 섬뜩했다.“여진우 쪽 사람들 잘 감시해!”“네.”문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타이밍에 이유영과 여진우가 연락을 맺고 있다는 게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유영이 서주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았다.사람들은 박연준 약혼녀 신분으로 나타난 그녀를 박연준 라인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박연준이든 박연준 쪽 사람이든 다들 그렇게 쉬운 사람들이 아니었다.이유영이 아무리 덤덤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도 그 일을 쉽게 넘길 리는 없을 것이다. 이번엔 강이한 뿐만 아니라 박연준까지 처리하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만약 이유영이 십 년 전 강이한이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와 박연준이 십 년 동안 그녀를 이용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들 속이 빤했다.“되돌려보낼까요?”문기원은 은근히 걱정되었다.강이한과 달리 문기원은 박연준 곁에 오래전부터 함께 해온 사람이었기에 모든 일을 거의 다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문기원도 이유영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걸 더 잘 알고 있었다.박연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 길게 빨아들이며 눈살을 찌푸렸다.강이한이 이유영이 서주로 오는 걸 계속 원치 않고 심지어 오는 걸 막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그런데 박연준은 그와 달리 계속 당당한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 이유영이 여진우와 연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약간 마음이 켕겼다.‘설마?’“문기원.”“네, 대표님.”“네가 보건대 이유영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더 미워할까 아니면 강이한을 더 미워할까?”“...”문기원은 순간 흠
“하지만 이유영 씨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 같이 있어 주셨잖습니까. 이유영 씨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지요.”“...”“연준 님은 이유영 씨가 기댈 곳이었습니다.”문기원이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박연준은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하지만 문기원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사실 박연준과 이유영 사이는...강이한이 용서받을 수 없다면 박연준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여진우의 사람을 잘 지켜보고 있어.”그렇게 생각하면서 박연준은 더 한층 차가워진 말투로 얘기했다.어찌 되었든 이유영이 그해의 일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문기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만약 여진우의 사람들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때는...”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유영이 여진우의 사람을 시켜 정보를 알아내게 한다면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게다가 여진우의 사람은 타지의 사람도 아니니 정보를 찾기 더욱 수월할 것이다.그렇다면 이유영은 원하는 정보를 아주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하지만 만약 그녀를 방해한다면...여진우의 사람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니 빠르게 눈치채고 반격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박연준에게는 독이 될 것이다.문기원이 그렇게 얘기하자 박연준은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깊은 주름이 생긴 미간을 꾹 누르면서 박연준이 물었다.“그래서 네 뜻은 뭔데.”“이유영 씨부터 건드려야합니다.”‘이유영? 알아보지 말라고 하게?’이유영이 박연준과 강이한 사이의 오묘한 관계를 눈치챘다는 것은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 전에 조사해 보지 않은 이유는 아마 서주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게다가 이유영은 강이한과 다른 접점이 생기질 않기를 원했으니 여기에 신경 쓸 사이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분도 이유영 씨가 연준 님 곁에 있는 것을 어쩌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조급해할 겁니다.”“...”문기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제 박연준이 강이한 앞에서 이유영을 데려가지 않았다.하지만 강이한 같은 사람이 이유영을 순순히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
송연미는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께서 아직 현우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으셨어.”그 말을 하면서 송연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느낌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그 무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송연미를 바라보는 눈빛은 침묵 속에서 날카로움을 띠고 있었다.“네가 아직 여기 있기 때문이야.”송연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어느 정도 압박감이 배어 있었다.소은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송연미는 오늘 밤 소은지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소은지는 품에서 잠든 고양이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송연미가 그 고양이를 보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왜냐하면, 송연미도 고양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아마 현우는 그것을 잊었을 것이다. 송연미와 현우의 사이가 좋았을 때, 송연미는 현우에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좋아, 예쁜 고양이 한 마리 찾아 줄게.”그의 말은 여전히 소은지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그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다. 그 누구도 그때가 마지막 평화로운 순간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갔고 서로 다른 인생의 궤도로 나아갔다.송연미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기다린 것은 현우가 약속한 예쁜 고양이가 아니라 아버지가 그녀를 엔데스 운빈에게 시집보내려는 계획이었다.송연미는 강하게 반항했다. 미친 듯이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가문 내의 압박과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송연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하루를 겪었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모든 것이 단번에 깨져버렸고 그녀는 고통과 분노 속에서 절망했다.그래서 그녀는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미워하게 된 것이다.“너랑 엔데스 운빈의 관계 때문에 네 아버지가...”소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연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이 가문은 어떤 집안인 걸까?소은지가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송연미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하지만 소은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딘가 고독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끼며,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넌 어떻게 생각해? 나와 현우 씨, 나름 함께 고난을 겪어온 사이 아닌가?”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시선을 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소은지의 말에 송연미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송연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고 눈 속에는 질투의 불씨가 번뜩였다.하지만 송연미는 엔데스 가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인 만큼 그런 감정들은 금세 억누를 수 있었다.“엔데스 가문이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어.”중대하다?소은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우가 자신을 이렇게 급하게 파리에서 떠나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려갔어.”“...”그 말을 듣고 소은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송연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송연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소은지, 너 모르지?”“뭘 말하는 거야?”“예전에 회장님 세대 때, 집안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소은지는 조용히 송연미의 말을 들었다.송연미가 소은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송연미 말대로 소은지는 그들의 권력 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아버지가 그러셨어. 그 당시 엔데스 회장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었다고. 지금의 여섯째 도련님보다 훨씬 더 무서웠대.”“...”그 말을 들은 소은지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졌다.소은지는 가족 모임 때 한 번 마주쳤던 차가운 눈빛의 백발 회장님을 떠올렸다.단 한 번의 시선으로도 그녀를 얼어붙게 할 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엔데스 명우조차 이미 충분히 무서운 존재였는데, 회장님은 그보다 더했다니. 엔데스 가문이란 현우가 말한 것처럼, 정말로 끝없는 심연이었다.“다섯째 도련님이 큰형수를 데리고 간 이유는 미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큰형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야.”단서 하나로
한때 청하시에 머물던 시절.소은지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아온 탓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남자를 광적으로 사랑한다는 것 역시 그녀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불같이 뜨거운 사랑이 결국 아픔으로 끝난다면, 그런 사랑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특히 현우의 내면을 어느 정도 들여다본 지금, 그녀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하지만 여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하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과거에 소은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그래, 여자가 순진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마지막에 우는 건 그 여자가 아닐 수도 있어.”소은지의 말은 냉소적이었고 태도는 언제나 가벼워 보였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소은지는 여자가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왜 굳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 모를 그런 감정에 휘말려야 할까?사랑은 진심을 다한 사람이 결국 패배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 같았다.소은지는 너무 많은 상처받은 여자들을 보아왔다.그리고, 너무나 많은 상처받은 남자들도 보아왔다.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던 소은지는, 현우를 마주하는 순간 이미 마음이 깊이 흔들리고 있었다.“얼마나 걸릴까요?”소은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우천시로 떠나는 것에 관한 질문이었다.현우가 소은지를 우천시로 보내려 한다는 건, 현재 파리의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었다.시간은 얼마나 필요한 걸까?“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한 달 정도 걸릴 거예요.”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소은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엔데스 가문이 정말로 벼랑 끝에 다다른 걸까?소은지는 깊은숨을 내쉬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을 억눌렀다.“네.”짧은 한마디.그러나 그 짧은 대답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은 오직 소은지만이 느낄 수 있었다....소은지에게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