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이 떠난 뒤 이시욱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도련님.”그는 입술을 벌름거리며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수술실 위에 켜진 빨간 불을 보고는 결국 입가까지 나온 말들을 다시 도로 삼켰다.서주의 상황이 긴급했다.그는 반드시 제일 이른 시일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강이한 쪽의 광기에 비하면 이유영은 오히려 며칠 동안 조용한 나날을 보낸 셈이었다. 요 며칠 월이를 데리고 돌아온 뒤로부터 강이한은 줄곧 그들의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강이한이 없으니 그들은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표면적이라는 것을 이유영도 알고 있었다. 이온유의 상태가 악화하였다는 소식을 그녀도 전해 들었다.이건... 폭풍우 전야의 고요함이 분명했다.바로 이때 집사가 부랴부랴 위층의 어린이 놀이방으로 달아 들어오며 말했다.“아가씨!”“왜요?”이유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집사의 안색이 심각한 것을 보자 그녀는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집사가 말했다.“강이한 씨께서 오셨습니다.”“...”말이 끝나자 이유영의 안색은 확 어두워졌다.그러고는 뒤에서 월이를 돌봐주던 보모를 보면서 말했다.“월이랑 잠시 놀고 있으세요.”“네, 아가씨.”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집사를 바라보았다.“집사님도 여기에 계세요.”“네.”전에 강이한에게 당했던 적이 있었기에 이유영은 아이의 곁을 떠날 때면 반드시 적어도 3명을 월이의 곁에 붙여두곤 하였다.3명의 보모가 지금 다 월이의 곁에 있었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사까지 이곳에 남겨두었다.어찌 됐든 강이한 그 미친놈은 이온유를 위해서라면 못 할 짓이 없었다.아래층으로 와보니 강이한이 퇴폐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몸에 있는 흰색 셔츠는 조금 흐트러져 있었으며 가슴에는... 핏자국이 있었다.지금 강이한의 낭패한 모습은 딱 일주일 전 이유영의 낭패한 모습과 비슷했다.그녀는 미친 듯이 각 병원을 돌아다녔으며 거의 병원의 모든 수술실을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물렸다.강이한의 눈 속에 드러나 있는 실망을 보고서도 이유영은 한없이 평온하기만 했다.“아빠한테 사랑 못 받는 애라고 나까지 걔를 사지로 내몰 수는 없잖아?”누가 봐도 강이한 들으라고 하는 말에 그는 몸을 벌벌 떨며 대꾸했다.“그런 말이 아니잖아, 나는!”“아무것도 못 먹은 지 벌써 3일째야.”하지만 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평온한 말투로 내뱉는 엄청난 말에 강이한은 가슴이 답답해 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아직 두 살밖에 안 된 아이야. 그래서 남이 주는 건 먹지도 않아. 그런 애를 넌 진짜 죽일 생각이었던 거야?”“...”다시 한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강이한이 뭐라도 해명을 해보려 입술을 달싹였지만 입을 열어봤자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이내 다시 다물었다.이유영의 말대로 아직은 고작 2살이었다, 3일은 아이가 버텨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시간이었다.“유전자 검사했으니까 이제 네 딸인 거 알겠네.”다 알면서도 월이를 이용해 이온유의 수술을 진행하려고 했다는 게 이유영이 강이한을 절대 용서 못 하는 이유였다.끝도 없는 차별이 한 아이의 목숨을 뺏어버릴 뻔했던 것이다.“유영아.”“애가 어떤 분유 마시는지 물어본 적은 있어? 어떤 분유를 마시는지도 모르면서 왜 멋대로 분유를 바꿔. 분유를 바꿀 때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바꿔야 한다는 것도 모르잖아 넌. 애가 뭘 좋아하는지 넌 관심조차 없었잖아.”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이유영에 강이한은 그야말로 유구무언이었다.이소월도 제 딸인데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뭘 먹여야 하는지 물어보기는커녕 이유영의 귀찮은 연락을 피하려고 일부러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방치하고 전화가 꺼지도록 내버려 두었다.“어떤 분유를 먹는지, 종류는 어떻게 바꾸는지, 이유식은 뭘 먹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혼자 판단해.”이유영의 말투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 평온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그 말투가 너무나 평온해서 오히려 강이한의
이게 이유영한테는 가장 의외였다.이온유를 살리겠다고 다시 그 얼굴을 들이밀 정도로 강이한이 독한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차별의 끝을 달려가고 있는 강이한에 이유영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유영아, 온유는 사실...”강이한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움직였지만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저 사실 뒤에 무슨 말이 따를지 이유영은 아직도 몰랐다.전에 강이한이 비슷한 말을 꺼낸 적이 있었지만 그는 그때도 말을 하다 말았다.강이한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이유영의 차가운 눈을 보며 말했다.“너도 이제 엄마잖아. 아이가 엄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온유한테는 네가 엄마야. 제발 이렇게 매정하게 굴지만 말고 좀 도와줘...”강이한의 말에 이유영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박연준이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니 이온유는 이유영을 엄마라 믿고 있을 게 분명했다.하지만 이유영에게는 친딸인 이소월이 있었기에 이온유가 월이보다 우선이 될 순 없었다.그래서 이유영은 여전히 차가운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온유 일은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해, 하지만 소월이를 희생하면서까지 걔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돌아가 줘 이만.”엄마의 마음으로 보면 이온유는 정말 불쌍한 아이였지만 그 아이의 엄마가 된 게 이유영의 뜻이 아니었기에 남이 계획한 일에 자신을 희생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리고 이온유는 한지음의 딸이었기에 도와주고 싶지도 않았다.강이한은 이토록 결연한 이유영을 보며 가슴이 아파와 더 말해보려고 했지만 병원에서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에 강이한은 이유영의 눈치를 한번 보고 전화부터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음성만 들어도 아주 급한 일이라는 건 이유영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그걸 증명하듯 통화를 마친 강이한의 목소리가 덜덜 떨려왔다.“알,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자마자 강이한은 바로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유영아, 그냥 내가...”강이한이 절망적인 말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강이한은 생명을 이토록 가볍게 여기는 이유영이 실망스러웠다.누군가의 죽음이 이토록 부질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강이한은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하지만 이유영이 한지음에게 차가운 건 생명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라 그녀가 바로 죽음의 아픔을 몸소 느꼈던 사람이라서였다.홍문동, 그리고 감옥에서의 화재까지 두 차례의 화재에서 죽어 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한지음 한 사람의 죽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살이 불에 타는 느낌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몸에는 평생 지우지 못할 화상 흉터가 남겨져 있었다.그런 그녀를 매정하다 질책할 자격이 강이한에게는 없었다.이유영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한지음이 잠시나마 겪었던 그것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하지만 강이한은 한지음이 이유영을 위해 죽은 게 다 자신이 부탁해서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이유영이 다시 살아난 것도 다 자신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라고 말할 것 같은 강이한의 기세에 이유영은 고개를 돌려버렸다.설령 진짜 강이한 덕분에 살아난 것이라 해도 그가 이소월을 빌미로 잡아 이온유를 살리려 할 때 이유영은 이미 영원히 그와 적이 되기로 결심했다....그렇게 강이한이 떠나고 이유영은 이온유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사람처럼 박연준이 올 때까지 소월이와 놀아주고 있었다.“날 찾았다며?”이유영에게로 다가간 남자는 부드럽게 말하며 이소월과 장난을 쳤다.그런데 신기하게도 낯선 사람에게는 곁을 주지 않았던 소월이가 박연준을 보자마자 배시시 웃으며 두 팔을 벌려 그에게 안기려 했다.박연준은 자연스레 소월이를 안아 들고 말했다.“살 많이 빠졌네.”“...”박연준의 말에 소월이가 제 친아빠인 강이한한테 끌려가서 아무것도 못 먹고 와서도 울기만 했던 지난 3일을 떠올리던 이유영은 또 한 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너도 아는 걸 얘 친아빠란 사람은 전혀 모르더라.”“...”박연준은 강이한이 모르는 게 아니라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지금은 온 신경이 이
더 많은 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영의 행보가 박연준은 의문스러웠다.그의 질문에 이유영은 창가로 걸어가더니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강이한이 서주로 간대.”강이한이 서주로 돌아간다는 말에 박연준도 놀랐는지 말이 없어 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네 결정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는 해?”박연준은 다급히 물었다.물론 이유영이 강이한을 따라서 서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강이한이 한 모든 짓은 박연준이 직접 이유영에게 보여준 것이니 그걸 보고도 따라갈 정도로 바보 같진 않을 것이다.“왜? 다 네 계산대로 됐잖아.”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는 이유영의 말에 박연준은 다시 한번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강이한과 이유영은 첫 만남부터 계획된 것이었다.하지만 그 계획의 끝이 이렇게 된 건 박연준의 의지가 아니었다.“만약 네가 정말로 강이한한테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내가 계획을 했어도... 네가 이 모든 사실을 알 수는 없었을 거야!”박연준이 한 말이 너무나도 아픈 사실이라서 이유영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큰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이 맞아.”정말 그의 말대로 이유영이 겪은 모든 일은 결과적으로는 강이한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말을 마치고 다시 박연준을 올려다보았다.어두운 눈동자로 자신을 보는 이유영의 눈이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동굴 같아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귀신같이 들여다보던 박연준도 이유영의 생각만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그는 이유영이 왜 서주로 가려 하는지, 그 진짜 목적이 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하나만 물을게.”그때 이유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뭔데.”“네가 계획한 것들 이제 다 끝난 거야? 아직 얼마나 더 남아있어?”한지음이 이유영을 상대로 한 짓도, 이온유가 이유영의 곁에 오게 된 것도 다 박연준의 계획이었다.만약 박연준의 최종목적이 이유영을 이용해서 강이한에게 복수를 하는 거라면 그 목적은 이미 달성하고도 남았기에 이유영은 아직
고작 이번 한 번으로 그동안 이용해먹은 걸 퉁치자는 박연준이 이유영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박연준은 오히려 더 능청스럽게 이유영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그 냄새를 맡았다.은은히 풍겨오는 샴푸 향이 맘에 들었는지 박연준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왜, 그러면 안 되나?”이런 다정함이면 당해낼 여자가 없겠지만 이유영은 달랐다.“그럼 나보다 백배, 천 배는 더한 고통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거야?”강이한과 이유영 사이가 이렇게 된 데는 강이한의 잘못이 무엇보다 컸지만 박연준도 그 배후이기에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어쨌든 그들 때문에 받은 고통이었기에 이유영은 이렇게 쉽게 퉁쳐줄 생각이 없었다.이유영이 혼자 힘들어할 때도 모른 척하던 사람들인데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으면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것이다.그래서 이유영은 자신의 불행에 조금이라도 가담한 사람은 그게 누구라도 용서해줄 마음이 없었다.“네가 그러라면 얼마든지 감수할게.”눈을 진득하게 맞춰오며 진심을 다해 말하는 것 같은 박연준의 모습에 처음에는 본인의 눈을 의심했던 이유영도 이내 그것 또한 박연준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임을 깨닫고는 믿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이번에 박연준과 함께 서주로 가는 것도 자신을 마음껏 이용해먹은 남자를 빌미 강이한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그렇게 진심인 척하지마,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이유영의 말에 박연준의 눈가에는 실망이 어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아직 자신에 대한 이유영의 경계가 심해서 아무리 애를 써봐도 쉽게 허물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하지만 이용당하는 처지라도 함께 서주에 가는 건 맞으니 그동안에 노력만 잘한다면 승산이 없진 않을 것 같았다.“그런데 그럼 월이는 두고 갈 거야? 그럴 수 있겠어?”이유영을 알고 그에게 딸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유영이 소월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이번에 서주로 가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 텐데 박연준은 이유영이 정말 그동안 소월이를 안 보고 살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당연히 보고
“강이한은 이온유만 있으면 되는데 어떻게 우리 월이까지 탐내겠어? 은지야, 그거 알아? 강이한이 우리 월이를 데려간 게 한지음 딸을 구하기 위해서였어.”강이한이 한지음의 딸을 살리겠다고 제 친딸을 데려가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이유영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하고 결국 한숨으로 마무리했다.소은지는 답답한 마음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과 강이한은 그냥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강이한을 만나고 나서 인생의 불행이 시작된 이유영은 강씨 집안에 오래도록 시달리다가 겨우 그 집안의 간섭에서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강이한이 이유영의 전부인 월이를 노리고 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이 이번에 서주로 가려 하는 것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너랑 일곱째 도련님 일은 어떻게 됐어?”“아직 사람도 못 만났어.”이유영의 질문에 소은지는 이유영을 만나고 나서부터 갑자기 바빠진 엔데스 현우를 떠올리며 답했다.반산월 같은 큰일은 통화로 얘기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면서 매번 전화를 할 때마다 급히 끊어버리곤 했다.“여섯째 도련님 조심해.”소은지가 떠나려 할 때 이유영은 엔데스 명우 같은 무서운 사람에게 잡혀있는 친구가 걱정되어 끝까지 당부를 했다.그에 소은지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답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이유영은 별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소은지의 차가운 두 손을 꽉 잡아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지의 성격으로 보아 엔데스 명우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런 치밀한 사람을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 위험이 따르는 게 당연하였기에 이유영은 늘 걱정이 앞섰다....이유영과의 대화를 마친 소은지는 전화를 받더니 바로 밖으로 향했다.그런데 백산 별장을 나서자마자 엔데스 명우의 사람인 배천명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잔뜩 가라앉은 눈으로 소은지를 응시하고 있었다.“아가씨, 여섯째 도련님께서
엔데스 명우의 사람들은 소은지의 이 모든 행동이 엔데스 가의 중요한 시기에 지금 남편인 엔데스 현우의 편을 들어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소은지는 배천명의 경고 아닌 경고를 듣고 말했다.“여섯째 도련님의 수하가 이젠 나한테 명령까지 하네?”“사모님!”순간 배천명의 언성이 높아지자 소은지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내가 사모님인 걸 알긴 하네. 누가 보면 네가 도련님인 줄 알겠어.”“죄송합니다.”“엔데스 명우 지금 병원에 있어?”“사모님, 자꾸 이러시는 거 위험합니다. 도련님은 사모님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자꾸만 엔데스 명우를 도발하는 소은지에 배천명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소은지는 그런 배천명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소은지는 자신이 잇따른 소송과 일 때문에 그렇게 바빠할 때는 온갖 방법으로 훼방을 놓다가 요 며칠 귀찮게 군 걸로 짜증을 내는 엔데스 명우와 그의 사람들이 우스웠다.“시간 낭비? 틀렸어, 이건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는 것뿐이야. 예전의 나도 여섯째 도련님한테 낭비할 시간 따윈 없었거든.”“나를 일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 게 엔데스 명우인데 내가 심심하면 찾아갈 사람이 걔밖에 더 있겠어? 안 그래, 배천명 특별 경호원?”배천명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지자 소은지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약 올리듯 신나는 발걸음으로 본인의 차에 올라탔다.소은지가 떠나고 나서도 배천명은 한참이나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정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소은지는 의외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엔데스 명우와 마주쳤다.이곳에서 일부러 소은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손에는 거의 다 태운 담배를 들고 있던 남자가 차가운 눈으로 소은지를 쳐다보고 있었다.그에 잠시 당황했던 소은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없을 줄 알고 왔는데, 의외네요?”“소은지, 뭐든지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여섯째 도련님도 선이라는 게 뭔지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