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영의 행보가 박연준은 의문스러웠다.그의 질문에 이유영은 창가로 걸어가더니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강이한이 서주로 간대.”강이한이 서주로 돌아간다는 말에 박연준도 놀랐는지 말이 없어 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해졌다.“네 결정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는 해?”박연준은 다급히 물었다.물론 이유영이 강이한을 따라서 서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강이한이 한 모든 짓은 박연준이 직접 이유영에게 보여준 것이니 그걸 보고도 따라갈 정도로 바보 같진 않을 것이다.“왜? 다 네 계산대로 됐잖아.”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뱉는 이유영의 말에 박연준은 다시 한번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강이한과 이유영은 첫 만남부터 계획된 것이었다.하지만 그 계획의 끝이 이렇게 된 건 박연준의 의지가 아니었다.“만약 네가 정말로 강이한한테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내가 계획을 했어도... 네가 이 모든 사실을 알 수는 없었을 거야!”박연준이 한 말이 너무나도 아픈 사실이라서 이유영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큰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이 맞아.”정말 그의 말대로 이유영이 겪은 모든 일은 결과적으로는 강이한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말을 마치고 다시 박연준을 올려다보았다.어두운 눈동자로 자신을 보는 이유영의 눈이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동굴 같아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귀신같이 들여다보던 박연준도 이유영의 생각만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그는 이유영이 왜 서주로 가려 하는지, 그 진짜 목적이 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하나만 물을게.”그때 이유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뭔데.”“네가 계획한 것들 이제 다 끝난 거야? 아직 얼마나 더 남아있어?”한지음이 이유영을 상대로 한 짓도, 이온유가 이유영의 곁에 오게 된 것도 다 박연준의 계획이었다.만약 박연준의 최종목적이 이유영을 이용해서 강이한에게 복수를 하는 거라면 그 목적은 이미 달성하고도 남았기에 이유영은 아직
고작 이번 한 번으로 그동안 이용해먹은 걸 퉁치자는 박연준이 이유영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박연준은 오히려 더 능청스럽게 이유영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그 냄새를 맡았다.은은히 풍겨오는 샴푸 향이 맘에 들었는지 박연준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왜, 그러면 안 되나?”이런 다정함이면 당해낼 여자가 없겠지만 이유영은 달랐다.“그럼 나보다 백배, 천 배는 더한 고통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거야?”강이한과 이유영 사이가 이렇게 된 데는 강이한의 잘못이 무엇보다 컸지만 박연준도 그 배후이기에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어쨌든 그들 때문에 받은 고통이었기에 이유영은 이렇게 쉽게 퉁쳐줄 생각이 없었다.이유영이 혼자 힘들어할 때도 모른 척하던 사람들인데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으면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것이다.그래서 이유영은 자신의 불행에 조금이라도 가담한 사람은 그게 누구라도 용서해줄 마음이 없었다.“네가 그러라면 얼마든지 감수할게.”눈을 진득하게 맞춰오며 진심을 다해 말하는 것 같은 박연준의 모습에 처음에는 본인의 눈을 의심했던 이유영도 이내 그것 또한 박연준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임을 깨닫고는 믿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이번에 박연준과 함께 서주로 가는 것도 자신을 마음껏 이용해먹은 남자를 빌미 강이한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그렇게 진심인 척하지마,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이유영의 말에 박연준의 눈가에는 실망이 어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아직 자신에 대한 이유영의 경계가 심해서 아무리 애를 써봐도 쉽게 허물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하지만 이용당하는 처지라도 함께 서주에 가는 건 맞으니 그동안에 노력만 잘한다면 승산이 없진 않을 것 같았다.“그런데 그럼 월이는 두고 갈 거야? 그럴 수 있겠어?”이유영을 알고 그에게 딸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유영이 소월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이번에 서주로 가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 텐데 박연준은 이유영이 정말 그동안 소월이를 안 보고 살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당연히 보고
“강이한은 이온유만 있으면 되는데 어떻게 우리 월이까지 탐내겠어? 은지야, 그거 알아? 강이한이 우리 월이를 데려간 게 한지음 딸을 구하기 위해서였어.”강이한이 한지음의 딸을 살리겠다고 제 친딸을 데려가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이유영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하고 결국 한숨으로 마무리했다.소은지는 답답한 마음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과 강이한은 그냥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강이한을 만나고 나서 인생의 불행이 시작된 이유영은 강씨 집안에 오래도록 시달리다가 겨우 그 집안의 간섭에서 벗어났는데 이번에는 강이한이 이유영의 전부인 월이를 노리고 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이 이번에 서주로 가려 하는 것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너랑 일곱째 도련님 일은 어떻게 됐어?”“아직 사람도 못 만났어.”이유영의 질문에 소은지는 이유영을 만나고 나서부터 갑자기 바빠진 엔데스 현우를 떠올리며 답했다.반산월 같은 큰일은 통화로 얘기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면서 매번 전화를 할 때마다 급히 끊어버리곤 했다.“여섯째 도련님 조심해.”소은지가 떠나려 할 때 이유영은 엔데스 명우 같은 무서운 사람에게 잡혀있는 친구가 걱정되어 끝까지 당부를 했다.그에 소은지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답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이유영은 별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해 그냥 소은지의 차가운 두 손을 꽉 잡아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은지의 성격으로 보아 엔데스 명우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런 치밀한 사람을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 위험이 따르는 게 당연하였기에 이유영은 늘 걱정이 앞섰다....이유영과의 대화를 마친 소은지는 전화를 받더니 바로 밖으로 향했다.그런데 백산 별장을 나서자마자 엔데스 명우의 사람인 배천명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잔뜩 가라앉은 눈으로 소은지를 응시하고 있었다.“아가씨, 여섯째 도련님께서
엔데스 명우의 사람들은 소은지의 이 모든 행동이 엔데스 가의 중요한 시기에 지금 남편인 엔데스 현우의 편을 들어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소은지는 배천명의 경고 아닌 경고를 듣고 말했다.“여섯째 도련님의 수하가 이젠 나한테 명령까지 하네?”“사모님!”순간 배천명의 언성이 높아지자 소은지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내가 사모님인 걸 알긴 하네. 누가 보면 네가 도련님인 줄 알겠어.”“죄송합니다.”“엔데스 명우 지금 병원에 있어?”“사모님, 자꾸 이러시는 거 위험합니다. 도련님은 사모님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자꾸만 엔데스 명우를 도발하는 소은지에 배천명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소은지는 그런 배천명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소은지는 자신이 잇따른 소송과 일 때문에 그렇게 바빠할 때는 온갖 방법으로 훼방을 놓다가 요 며칠 귀찮게 군 걸로 짜증을 내는 엔데스 명우와 그의 사람들이 우스웠다.“시간 낭비? 틀렸어, 이건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는 것뿐이야. 예전의 나도 여섯째 도련님한테 낭비할 시간 따윈 없었거든.”“나를 일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 게 엔데스 명우인데 내가 심심하면 찾아갈 사람이 걔밖에 더 있겠어? 안 그래, 배천명 특별 경호원?”배천명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지자 소은지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약 올리듯 신나는 발걸음으로 본인의 차에 올라탔다.소은지가 떠나고 나서도 배천명은 한참이나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정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병원에 도착한 소은지는 의외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엔데스 명우와 마주쳤다.이곳에서 일부러 소은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손에는 거의 다 태운 담배를 들고 있던 남자가 차가운 눈으로 소은지를 쳐다보고 있었다.그에 잠시 당황했던 소은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없을 줄 알고 왔는데, 의외네요?”“소은지, 뭐든지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여섯째 도련님도 선이라는 게 뭔지는 아
“설마요, 아주버님이 못 하시는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워낙 선이란 게 없는 분이라.”숨이 막혀와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서도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오히려 더 짙은 웃음을 내보였다.전에는 그런 소은지의 반항이 귀여워 보였지만 지금의 엔데스 명우는 그 눈만 보며 파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소은지가 저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보고 싶어 했던 엔데스 명우인데 치밀한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가 손을 쓸 새도 없이 그의 동생인 엔데스 현우에게 가버린 것이다.엔데스 현우가 그렇게 소은지와 결혼하는 바람에 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소은지가 제 손아귀를 벗어나게 되고 게다가 제 동생의 여자로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엔데스 명우라 지금 이 상황이 아주 거슬렸지만 그는 더는 소은지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이쯤 하면 됐잖아. 그만해 이제.”“이제 내 신장은 필요 없어요?”소은지는 비아냥거리며 웃어 보였다.전에는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자신의 신장으로 설유나를 살리겠다고 애를 쓰던 엔데스 명우의 갑자기 바뀌어버린 태도가 소은지는 우습기만 했다.그녀는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있는 설유나를 보며 물었다.“저렇게 누워있은 지도 오래됐는데, 일어나는 거 볼 수는 있겠어요?”소은지의 말이 끝나자 목을 조여오던 엔데스 명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엔데스 명우가 자극을 받을 때마다 소은지는 복수에 성공한 것만 같은 쾌감이 들었다.소은지는 사실 그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설유나를 괴롭히는 건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린 엔데스 명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엔데스 명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지금 시도 때도 없이 그의 멘탈을 흔들어놓고 그를 물어뜯는 게 바로 소은지의 목적이었다.엔데스 명우도 요즘 정말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소은지를 보며 죽을 때까지 용서할 리 없다던 그녀의 말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죽이지는 못해도 그에게 그만큼의 고통은 선사해줄 생각이었다.살얼음판을
일부러 여섯째 아주버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는 소은지에 엔데스 명우의 표정은 바로 굳어졌다.이상하리만치 거슬리는 두 단어에 그는 소은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네가 감히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아닐 텐데.”“난 이미 일곱째 도련님의 와이프가 된 몸이에요. 예의를 갖춰서 부르면 여섯째 아주버님이라는 호칭이 당연한 거죠.”“그런데요 아주버님, 한 사람한테 가장 소중했던 걸 망가뜨리고 또 똑같은 걸 보상이라고 주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그래서?”거절의 의사를 비치는 소은지에 엔데스 명우가 못마땅한 듯 묻자 소은지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전에 내가 파트너 변호사의 자리에 앉은 건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리여서예요. 그거랑 아주버님이 준 게 어떻게 같겠어요?”소은지가 본인의 힘으로 올라간 파트너 변호사라는 자리는 단순히 지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신임을 나타내고 있었다.무패의 변호사 소은지와 엔데스 명우가 만들어 준 변호사 소은지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높은 자리를 준다 해도 자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생각보다 강경한 소은지의 태도에 머리가 아파온 엔데스 명우는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그의 말이 뱉어지기도 전에 소은지가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갑작스레 느껴지는 온기에 순간 긴장해버린 엔데스 명우는 아무것도 못 하고 소은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내가 가진 것들을 빼앗을 때, 이렇게 다시 보상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너도.”감히 제 앞에서 이딴 도발을 해오는 소은지에 엔데스 명우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지금의 그녀는 어떤 제안에도 넘어가지 않을 듯했다.그래서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에 엔데스 명우는 손을 뻗어봤지만 그때는 비웃음만을 남겨놓은 소은지가 이미 등을 돌려버린 뒤였다.그녀가 떠난 뒤에도 귓가에 맴도는 치욕스러운 조롱에 엔데스 명우는 주먹을 들어 벽을 그녀의 머리라 생각하고 힘껏 내리찍었다.이성
한지음만 언급하지 않으면 강이한은 이유영에게도 나름 진심이었는데 한지음에 관련된 일에서는 늘 이성을 잃으니 여진우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전에 소은지도 이유영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이유영은 그때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을 했었다.그래서 이유영은 여진우의 질문에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한지음과 강이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강이한이 한지음한테 이토록 정성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강이한한테 한지음이 얼마나 큰 존재든지 상관없이 소월이를 건드리기만 한다면 이유영은 절대 참지 않을 것이다.강이한 얘기만 하면 진저리를 치는 이유영에 여진우도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켜내며 말을 돌렸다.“최익준 씨도 같이 가는 거야?”“아니.”“그럼 루이스는? 루이스 바로 저기 있는데.”“필요 없어.”“너...”여진우는 전부 다 마다하는 이유영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내가 알아서 할게.”서주의 일은 아주 복잡하고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화를 피해갈 수 없을 텐데 이유영이 따로 알아본 바로는 루이스와 최익준 모두 가정을 책임져야 했기에 아무리 공적인 일이라 해도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원래 이런 일에는 엮이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니 이유영은 홀로 부딪혀보기로 했다.“거기 가면 장혜주라는 사람이 너 데리러 나갈 거야. 필요한 거 있으면 그 사람한테 부탁해.”“여자야?”“응.”고개를 끄덕이는 여진우의 마음이 정확히 어떤지는 몰랐지만 이유영은 그가 소개해주는 사람은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서주에서 만약이라도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언제 가?”“박연준 일정에 맞추기로 했어.”강이한과 이온유가 이미 서주에 도착했으니 박연준도 곧 출발할 것 같아 이유영은 딱히 서두르지 않았다.박연준과 같이 간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이유영의 말에 여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당부했다.“항상 조심해, 걔 믿지 말
아침을 먹을 때에도 이유영은 소월이만 신경 쓰고 있었다.“월아, 아 해봐.”엄마의 다정하고도 장난스러운 말에 환하게 웃으며 이빨을 드러내고 작은 입을 벌리는 월이는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어떻게 친아빠라는 사람이 돼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강이한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 같았다.강이한 생각에 또다시 눈에 냉기가 서렸던 이유영이었지만 소월이 앞이라 그녀는 이내 표정을 감추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한 가족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언가를 들고 뛰어 들어오는 도우미 탓에 그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져버렸다.“회장님, 사모님!”“뭔데 그래?”도우미의 손에 잔뜩 들려있는 아이 물건에 임소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고급진 박스에 담겨있었지만 아이의 물건을 자주 보러 다니는 이유영과 임소미는 꽤 비싼 브랜드의 물건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강이한 도련님 쪽 직원이 이거 소월 아가씨 거라고 가져오셨어요...”그 얘기를 들은 가족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리자 도우미는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그냥 이것만 저한테 안겨주고 가버리셔서...”다 멀쩡한 물건들이라 그저 받았다는 도우미의 말에 이유영은 표정을 굳히며 차갑게 소리쳤다.“당장 내다 버려!”강이한이 보낸 게 아무리 명품 브랜드라 해도 이유영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강이한이 소월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소월이는 이미 아빠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런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을 저질러놓고 고작 이딴 물건들로 용서받으려 하는 강이한이 어이가 없었다.“버려!”임소미도 똑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 정도 물건은 그들도 충분히 사줄 수 있었기에 남이 주는 걸 받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소월이의 방은 이미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이걸 들여놓는다면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꼴이었으니 이 물건들이 향할 곳은 쓰레기통뿐이었다.“네!”주인님이 버리라고 하니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던 도우미는 바로 그것들을 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