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이유 없이 여진우에게 애석한 마음이 생겼다.차에 올라탄 뒤, 두 사람은 말없이 도원산 방향으로 내달렸다. 절반 갔을 때, 여진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침묵을 깨뜨렸다.“서주의 난리판에는 끼어들지 마!”“...”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여진우를 향해 쳐다보았다.그 순간, 마치 여진우의 옆모습마저 그녀에게 속 모를 깊숙한 바다같은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오빠.”“서주는 네가 생각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서주의 난리판으로 강이한을 몰락하게 하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서주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여진우의 말대로 그곳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혼란함 때문에 그동안 그곳에서 세력을 일으킨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만큼 몰락한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강이한의 배후는 마치 시들지 않는 것처럼 얼마나 혼란스러운 국면이어도, 형세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의 배후는 여전히 굳건했다.게다가 그들은 이런 시들지 않는 세력을 만들기 위해 역대 이래 계승자는 다 정밀한 선별을 거쳤다.이유영이 서주의 난리판으로 강이한을 몰락하게 만들려는 생각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속에 엮여있는지 모른다.“오빠. 그 인간이 내 한계를 얼마나 많이 건드렸는지 알아?”이 순간 이유영의 말투는 아주 무거웠다.‘한계를 얼마나 건드렸지? 몇 번이고 건드렸었지? 매번...’강이한은 이유영을 영원히 아픔을 못 느끼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그녀의 마음을 망가뜨렸다.하지만 이번에 강이한이 건드린 건 이유영 자신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한계였다.근데 강이한이... 그것을 건드리고 말았다.“오빠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고... 예전의 나를 위해서야!”이유영은 또박또박 그윽하고 고요하게 말했다.그녀의 이런 말투는 운전하는 여진우의 미간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그의 눈빛에는 이유영에 대한 걱정이 역력했다.그랬다.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강이한 때문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이 2년 동안,
도원산에 도착한 후, 강이한이 핸드폰을 들어 이유영에게 일주일 기한이 되었다는 알림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 때에 갑자기 문 앞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쿵 소리와 함께 차가 문을 들이받았다.강이한은 일어서서 성큼성큼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러자 그는 캐리어를 들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이유영을 보았다. 이유영을 데려다준 차는 이미 떠나갔다.그 순간, 강이한의 눈 밑에는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이유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건네받고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순간 강이한은 온 세상을 다 잡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영의 손은 여전히 자그마했고 부드러웠고 또... 조금 차가웠다.“손이 왜 이렇게 차?”강이한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일말의 책망의 기운이 들어있었다.강이한은 예전에 의학 공부를 한 적이 있어서 여자의 손이 너무 차면 그건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이에 이유영은 대답이 없었다.비록 도원산으로 오긴 왔지만, 그녀에게도 나름 자신의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더러 예전처럼 다정하게 강이한을 대하라고 하면 절대 할 수 없었다.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아이는 왜 같이 안 왔어?”이유영이 말이 없는 것을 본 강이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그가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당신은 공평하게 대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해?”이유영은 비꼬면서 반문하였다.이 말을 들은 강이한은 온몸이 멈칫하였다.이유영을 바라보니 그녀의 눈 밑에는 차가운 풍자만 가득했다. 강이한은 심장이...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이유영은 그저 몸이 이곳으로 온 것뿐이었지 그녀더러 현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이 순간 강이한은 이런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다.이유영은 냉랭하게 자신의 손을 강이한의 따뜻하고 듬직한 손안에서 빼냈다.손이 허전한 순간 강이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가슴
“유영아.”“왜냐하면, 홍문동의 불은 그 여자가 저지른 거야.”“...”강이한은 머리가 띵 하는 것 같았다.강이한의 반응을 보더니 이유영은 더욱 크게 웃었다.“당신도 알고 있었네. 그렇지?”‘알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지? 보아하니 그 후 한지음이 강이한의 용서를 받기 위해 나랑 관련된 일에서 적지 않게 희생했나 봐?’하지만 아무리 희생했다고 해도 그건 강이한의 용서를 받기 위한 것이지 이유영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이 점에 대해 이유영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강이한,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다고 약속한 건 오로지 당신의 옆에 돌아온 것뿐이야. 다른 건... 너무 욕심부리지 마.”“나한테 있어서 당신이 내 곁으로 돌아온 것만으로 이미 충분해!”강이한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그랬다. 강이한에게 있어서 이유영이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온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모처럼 그녀를 설득하였다!전에 그렇게 많은 방법을 써봤는데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의 기회는 그에게 있어서 모처럼 힘든 기회였다.이유영은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럼 내가... 이뤄줄게!”뒤의 네 글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유영은 발걸음을 옮겼다.그녀의 뒷모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 제자리에 선 채 오랫동안... 그녀의 말에서 정신을 되찾지 못했다.‘이뤄줄게...’이 단어는 끊임없이 강이한의 머릿속을 맴돌았으며 그의 이성을 자극했다.이유영이 한 말이 절대로 말 그 자체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도원산 안으로 들어가니 이온유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이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놀란 나머지 손에 든 숟가락마저 그릇에 떨어지고 말았다.“아가씨.”이온유를 챙겨주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이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또 이온유의 반응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 속에는 이유영에 대한 불만도 차 있었다.이유영은 발을 내디뎌 주방으로 걸어들어왔다.
강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영은 칼국수를 한입 먹고는 바로 손에 든 젓가락을 탁하고 세게 식탁에 내리쳤다.그 순간, 이유영이 불만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었다.“또 무슨 일이야?”강이한은 머리가 띵 해나는 것만 같았다.“소금을 안 넣었어!”칼국수의 조리법에 대해 이유영은 더욱 일가견이 있었다. 맛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이유영은 조금이라도 넘기기 어려웠다.“오늘은 일단 대충 먹어. 아주머니들도 오늘 네가 오는 줄 모르고 있었어.”“대충?”이 두 글자를 들은 이유영은 비꼬며 싸늘하게 강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오므렸다.그녀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이온유도 마음이 끔찍해 났다.마치 언제든지 폭발할 것만 같은 화산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강이한은 그저 골치가 아팠으며 미간마저 툭툭 튀고 있었다. 그는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애써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눌렀다.“주방에 다시 한번 만들어 오라고 하세요. 우유에는 설탕을 넣지 말고, 국수는 삶기 전에 미리 소금 간을 맞춰 달라고 하세요.”“네. 네!”장 아주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이유영을 힐끔거렸다. 이 여자가 자기 집 도련님의 마음속에서 엄청나게 높은 위치에 놓여 있는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런 게 아니면 방금 이유영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을 리 없었다.장 아주머니는 또 강이한의 옆에 숨은 이온유를 한눈 보았으며 아주머니의 눈빛에는 온통 아이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찼다.‘참나... 이런 여자가 어머니라니, 온유 얘 이후의 날들은 어떡하면 좋아?’주방의 손놀림은 그나마 빠른 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영의 아침이 다시 나왔다.우유는 온도가 안 맞았다!너무 미지근해서 온도에서 식감이 조금 별로였다. 칼국수는... 너무 짰다! 만약 예전이었으면 이유영은 강이한의 앞에서 참으면서라도 먹었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손에 든 젓가락을 세게 접시에 던지고는 일어섰다.“왜 또?”“당신이나 많이 쳐드세요!”이유영은 분노에
도우미는 앞으로 다가가서 말리자니 조금 겁이 났다. 어찌 됐든, 이유영 지금의 상태는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무서웠다.꽈당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밖으로 내 던져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이 여자는 완전히 집을 뜯어 부수러 왔네.’강이한은 이를 악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러자 그는 이유영이 서랍 안의 물건들을 다 뒤집어 꺼내 밖으로 내던지는 것을 보았다.“당신 제발 멈춰!”강이한은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로 다가가 이유영의 손안에 물건을 휙 빼앗았다.그는 줄곧 물건을 정돈하게 정리해 두는 습관이 있었으며 깔끔을 떠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방안은 이유영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강이한은 이성이 불에 활활 타는 것만 같았다.‘이 여자는 왜 이렇게 말이 안 되게 구는 거지?’“왜? 여기가 나한테 쓰라고 준 방이 아니었어?”“여기 맞아!”“그럼 됐잖아. 난 내 방에 다른 사람 물건이 있는 걸 안 좋아해.”“...”‘다른 사람...’이 두 단어는 강이한이 듣기에 너무나도 거슬렸다.예전에 두 사람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데 지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는 남이 되고 말았다.“이유영!”강이한은 목이 쉰 채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당신은 아직 그거 모르지?”분노를 극도로 억누르고 있는 강이한의 두 눈을 보며 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난 여태껏 다른 사람이 쓰던 걸 쓰기 안 좋아해.”이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다!강이한은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당신 지금 뭘 가리키는 거야?”이유영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을 뻔히 알면서도 강이한은 쉰 목소리로 물음을 제기했다.‘유영이가 뭘 알아? 분명 아무것도 모르면서!’“당신 무슨 뜻인지 알잖아!”“나랑 그 여자는 절대 당신이 생각한 그런 사이가 아니야. 이유영,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당신 내 말을 믿어줄 거야?”강이한이 말한 그 여자는 한지음이었다.“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사이였건 이제 나랑 관계가 일도 없어!”“너...
이유영은 줄곧 줏대가 있는 사람이었다.전에 로열 글로벌을 잘 관리할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이유영은 능력이 보통이 아니었다.하지만 강이한 때문에 지금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이유영은 원래 파리에서 아무런 구속도 당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강이한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 줄이야...아무것도 모르는 서재욱은 당연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강이한은 감히 그런 요구를 제기해 유영 씨더러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지? 정말로 단단히 미쳤어. 그 애는 한지음의 아이잖아!’전에 청하시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강이한조차 용서할 수 없었다.‘하지만 어떻게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일 수 있지?’“재욱 씨, 청하시로 돌아가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이유영의 말투는 무겁고 분노가 억눌려 있었다.“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알아요.”“재욱 씨, 이 일로 해서 저는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해요. 알겠어요?”“일단 알겠어요!”이유영의 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 반대편의 서재욱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어휴!’이유영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가슴속의 답답한 감을 애써 짓눌렀다.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 손안의 핸드폰은 바로 바닥에 떨어졌으며 쿵 소리를 내어 사람의 마음마저 무겁게 했다.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강이한이 싸늘한 얼굴을 하고 문 앞에 서 있었다.“서재욱에게 전화한 거야?”강이한은 온몸에서 압박의 기운을 내뿜으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걸어 들어왔다.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하지만 강이한은 곧장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결국... 그녀를 도망칠 길이 없게 했다. 이유영은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눈앞의 강이한을 바라보았다.옷깃에 갑자기 힘이 전해졌다.강이한은 몸의 기운처럼 차가운 손가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유영의 눈시울을 어루만졌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이젠 이 두 눈에 그 사람밖에 안
이유영의 눈빛은 차가우면서도 소외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그 순간, 다잡을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강이한의 마음은 이유 없이 갑자기 당황했다.“재욱 씨더러 아이를 데려가게 하라고? 당신은 나더러 평생 외롭게 지내라는 말이야? 아니면 나더러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고 그 아이는 잊으라는 말이야?”이유영은 지금 강이한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글자마다 무형 속에 엄청나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강이한이 되물었다.“당신, 그게 무슨 뜻이야?”그 순간, 강이한은 무엇인가를 의식했다.이유영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 이름 모를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이유영은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전생에 당신은 내가 당신 아이를 낳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그렇게 많은 약을 먹으면서까지 그렇게 노력한 게 강씨 가문의 대를 이어주려고 한 것인 줄 아는 거야?”“유영아!”“난, 난 그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야.”강이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랬지. 유영이는 엄마가 되고 싶어 했지.’그 당시, 강이한은 줄곧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고통스럽게 쓰디쓴 약을 한 그릇 한 그릇 먹는 것을 강이한도 보았다. 그녀는 약의 쓴 냄새가 싫어서 먹을 때마다 미간이 한데 찡그려져 있었다.그때, 강이한은 이유영의 그런 모습들이 보기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녀더러 먹지 말라고 했다. 자기는 아이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견지하였다.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출생은 너무나도 잔인했다.“내가 어렵게 임신한 아이였는데 난 한지음의 입에서 그 자인한 소식을 들었어. 강이한, 넌 정말 지난번 생이랑 바뀐 게 일도 없구나!”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강이한이 전생부터 온갖 고생을 거쳐서 이번 생까지 이유영을 찾아온 것을 알면, 그가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런 줄 알 것이다.하지만 전혀 모를 것이었다.강이한은 자기를 감동하게 한 줄 알겠지만... 그는 다만 마음속에 내키지 않는 게 있는
“그때 그 불 때문에 난 모든 것을 잃었어! 게다가 출산조차 힘들어졌는데 당신은 어떻게 내가 어렵게 낳은 그 아이를 보내버리라고 말할 수 있어!?”“안 보내도 돼. 안 보내도 돼.”강이한은 앞으로 다가와 단번에 이유영을 와락 품속에 안았다.강이한의 품이 닿는 순간, 이유영은 그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떨림은 그녀에게 정말 아니꼬웠다.“보내지 말자.”그는 무의식적으로 두 팔에 힘을 주어 꽉 끌어안았다.“당신은 지금 상황이 우습지도 않아?”“유영아.”“우리 두 사람, 더 이상 우리 둘의 아이를 가질 수도 없어. 근데 당신은 날 곁에 두어서 뭐 해?”“유영아...”“한지음의 아이, 서재욱의 아이. 하하!”“그만 말해. 입 다물어. 그만 말하라고!”강이한은 지금 매 한마디가 다 너무 귀에 거슬렸다.마음이 아픈 나머지 그는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웠다.“당신은 아이의 새아버지가 되는 게 좋겠지만 나는 새엄마가 되기 싫어.”“유영!”한지음 딸의 일에 대해서, 이유영은 어느 때든지 물론하고 다 시종 이런 태도를 견지했다.그녀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지만 이유영의 이 말을 들은 강이한은 가슴이 더없이 답답해졌다.“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응?”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계속 얘기하면 안 되었다.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 것은 이렇게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줄곧 이유영더러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만 했지, 전생의 그녀가 이렇게 힘들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유영의 짧은 몇 마디에서 강이한은 그녀가 전생에서 받은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다.이유영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강이한은 알 수 있었다.하지만 한지음에 대해...“유영아, 그 얘기는 일단 그만하자. 응?”너무 조급했다.전에는 강이한이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였다.그 상처들은 아마 아직도 이유영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그녀더러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유영은 강이한의 품에서 그의 떨림을 느
오늘 저녁, 박연준과 이유영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소은지는 과감하게 도망치듯 외출했다.“그러면 안 돼요?”“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조심해야 해요.”“...”이유영을 자극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누가 말 안 해도 조심할 거였다.하지만 현우가 그런 말을 하니, 소은지는 마음이 답답해 났다.현우가 소은지에게 손을 내밀었다.“뭐 하는 거예요?”“같이 가요. 오늘 여기서 자지 말고.”“무슨 뜻이에요?”또 이유영에게 보여주려는 건가?“제가 말했잖아요, 굳이...”“읍!”말을 마치기도 전에 현우는 소은지를 끌어안았고 소은지는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현우의 차에 태워졌다.그리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호텔이었다.화려한 스위트룸을 보고도 소은지는 어리둥절했다.“설마, 본가에서 사람 시켜서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반산월에 있을 때부터 소은지와 현우는 한방을 썼다. 하지만 여긴 우천시다.현우가 소은지의 가는 허리를 감싸안았다.소은지는 현우에게서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을 감지했고 저항하던 몸짓도 멈췄다.“요즘 많이 힘들었죠?”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엔데스 가문은 난리가 났다.여섯째 도련님뿐만 아니라 다섯째 도련님, 넷째 도련님, 셋째 도련님, 그리고 큰 도련님까지 모두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엔데스 가문은 파리에서 100년 된 명문가인 만큼 모두가 파리로 모이고 있었다.가문은 잔인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현우는 아무 말 없이 조명을 껐고 그렇게 두 사람은 밤을 보냈다.그날 밤, 두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고 결국 소은지는 깊은 잠에 빠졌다.눈을 떴을 때, 현우는 방에 없었다. 그리고 어젯밤...소은지는 침대에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소은지와 현우는 부부 관계지만, 그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파트너일 뿐이었다.소은지는 현우와 그렇게까지 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그들은 다른 소용돌이에 빠진 것 같았다. 이게 대체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선 이유영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소은지는 그 말을 듣고 침묵했다.틀림없이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강이한에 대한 결론이 나 있었다.이유영뿐만 아니라, 강이한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강이한에게 있어 이유영은 절대 한지음보다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고....파리에서.현우와 송연정의 일은 점점 더 커졌고 소은지는 처음에는 그저 지켜보았지만, 며칠 후부터는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볼수록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그날 저녁.소은지는 우천시의 야경을 보러 갔다. 정말 멋졌다. 청하시에 있을 때는, 우천시의 야경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이곳만의 특징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밤 직접 보고 나서 그 말이 정말 사실임을 알았다.돌아왔을 때, 마당 앞에 서 있는 차갑고 외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현우였다!현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파리의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그런 데다 그와 송연정의 관계까지 점점 더 심각해지는 마당에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이유영 때문일까?혹시 이유영이 걱정돼서...그런 생각을 하자, 며칠 동안 겨우 진정되었던 소은지의 마음은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기분이었다.소은지는 현우의 뒤에 서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박연준이 계속 이유영 곁에 지키고 있어요.”현우가 예전에 말했듯이 박연준과 강이한은 지금 이유영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강이한이 지금 여기에 없더라도 박연준이 이유영 곁에 있으니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이유영 곁은 가장 평화로운 곳일 거였다.소은지의 목소리를 들은 현우가 뒤로 돌아섰다. 현우의 눈은 깊고 어두웠다. 현우가 많이 야윈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소은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현우는 소은지의 목을 잡아끌어 품에 안았다.“으...”아팠다!곧이어 현우의 키스가 쏟아졌다.마치 폭풍처럼 억눌렸던 감정을 터뜨렸다.현우의 감정이 소은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겁고 마치 갇힌 짐승처럼 세
강이한이......소은지는 어떻게 이유영 앞에 나타났는지 몰랐다. 이유영은 은은한 달빛처럼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우아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유영아, 네가 이런 드레스를 입은 건 처음 보네!"소은지의 말투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던 이유영은 경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씨 가문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강이한은 경제적으로 이유영에게 아낌없이 후했다.이유영이 입고 쓰는 대부분은 명품이었고 그녀는 체구가 작아 강이한은 원피스를 입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전통적인 드레스는 거의 입지 않았다."우지 씨가 사준 건데, 예쁘지?""응, 우지 씨 눈썰미가 정말 좋네."키가 작은 사람이라 해서 전통 드레스를 못 입을 리가 없다. 이유영은 마른 체형이었지만, 전통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렸다. 그 드레스를 입은 이유영은 더욱 빛났고 정말 예뻤다.소은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다 이유영 옆에 앉고는 이유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유영아.""응?""최근 신씨 가문이랑 강이한이 엄청 얽히던데... 정말 네가 한 거야?""맞아."이유영은 덤덤하게 인정했다."..."이유영과 강이한 사이의 갈등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있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에게까지 손을 댄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이온유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월이가 강이한의 딸인 걸 몰랐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됐다.월이는 이유영의 딸이었다. 강이한은 이유영에게 이미 많은 상처를 주고도 아이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하지만 소은지는 서재에서 수술 동의서를 보고 경악했다.예전에 이유영과 소은지는 강이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한지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유영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한지음도 오랫동안 시력을 잃었지만 강이한은 자신의 각막을 한지음에게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이유영한테는 달랐다.“왜 그래?”이유영은 소은지가 말이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이유영은
이유영은 염 선생의 약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수면 시간만큼은 확실히 바뀌었다. 점심 먹은 지 30분 후면 반드시 잠들어야 했다.하지만 소은지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파리 쪽 상황이 소은지를 숨 막히게 했다. 특히 오늘, 파리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떴다.기사에는 현우와 송연미의 사촌 동생인 송연정이 공개적으로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다.이 기사 때문에 소은지까지 휘말리게 되었는데 파리에서는 소은지와 현우가 이미 이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송연미의 말대로, 현우는 송연미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파리의 상황은 짐작조차 불가능했다.서재에서.“웅...”휴대전화가 진동했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소은지가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여보세요.”“나야.”송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송연미는 자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전화 너머로 송연미의 슬픔이 느껴졌다.송연정은 송연미의 사촌 동생이었다. 예전에 사이가 좋았던 현우와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였고 지금은 현우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송연정 입양에 협조하고 있었다.현우와 송연정의 모습으로 보아 송연미가 지금 파리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소은지, 고마워!”송연미의 목소리는 여전히 슬펐지만, 소은지에게 감사하는 듯한 말투였다.소은지는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송연미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지만 소은지는 여전히 쏘아붙이는 말투로 말했다.“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 없어.”“...”“송연미, 잊지 마. 넌 이미 현우와 끝난 사이야!”소은지의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태도는 송연미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송연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소은지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송연미가 감사를 표하다니?송연미는 현우가 보낸 사람이고 소은지와 현우의 관계에 송연미가 간섭할 일은 아니었다.소은지는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예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대체 왜 이러는
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이유영이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아무리 지금 익숙해졌다고 해도 소은지는 이유영이 여전히 안쓰러웠다.“괜한 생각하지 마. 너한테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야.”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강이한 곁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소은지는 그랬다.이유영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소은지는 이유영 곁에서 함께 극복했다.소은지의 조심스러운 말투를 이유영은 알아채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넌 참...”이유영의 미소에 소은지는 안도했다.“네가 날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 거 알아. 나도 이미 익숙해졌어.”특별한 상황이니만큼 조심스럽게 대해주는 거였다.소은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난 그저...”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먹여줘.”“응.”소은지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소은지는 이유영 앞의 작은 그릇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유영에게 음식을 먹였다.“유영아, 괜히 적응하려고 애쓰지 마... 분명 좋아질 거야!”예전 일은 잊어도 좋았다. 이제 이유영 뒤에는 정씨 가문이 있고 정씨 가문은 이유영이 평생 어둠 속에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세상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소은지의 긴장된 말투와 달리 이유영은 차분했다.그 차분함에 소은지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유영은... 이미 지금의 어둠을 받아들인 걸까? 가슴이 더욱 아파져 왔다.“그래,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하지만 지금 이유영의 모습은 많이 안심되었다. 특별히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소은지는 조심스레 이유영에게 음식을 먹였다. 소은지는 이유영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유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소은지는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약 먹고 정말 아무런 느낌도 없어?”소은지는 염 선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기에 그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없어.”이유영은 솔직하게 말했다. 박연준에게 거짓말을 하
“벌받을까 봐 무서우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박연준은 할 말을 잃었다.여자의 마음을 건드린 잘못은 돌이킬 수 없었다.여자 마음속 가장 중요한 선을 넘어선 것이었다. 박연준과 강이한은 이유영의 마음속 금단의 선을 넘어섰다.“무슨 의미야?”“...”“그러면서 평생 빚졌다고 생각해?”이유영은 비웃었다.박연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이유영의 말에 답답함이 밀려왔다.염 선생님의 약이 효과 없다면 평생 빚 이상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강이한은 이미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서 박연준에게 보냈다.강이한의 결정은 확고했다.만약 석 달 안에 약이 전혀 효과가 없다면... 그는 이유영을 데리고 강이한과 미리 약속한 병원으로 갈 것이다.그 병원에서 이유영은 수술을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정씨 가문으로 돌아갈 것이다.그리고 강이한은...그날 서재에서 말했듯, 강이한은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것이 그의 벌이라면 기꺼이 받겠다고 했다.이유영은 고집이 센 여자였다. 각막 이식 대기자 명단이 길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고 있었다.정씨 가문 누구도 부정한 수단을 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대기자는 너무 많았다.특별한 수단이 없다면 수술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다.그러니 지금 상황은 단순히 평생 빚을 졌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평생 빚보다 훨씬 더 잔혹한 일이었다.“유영아, 너는 아무것도 몰라...”박연준의 목소리가 낮고 무거웠다.맞다. 이유영은 아무것도 몰랐다.“그래, 아무것도 몰라! 예전에 연서가 너희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어.”“...”“너희 마음속에서 내가 연서의 대타일 뿐이었다는 것도 몰랐어!”단지 대타일 뿐이었으니, 어떻게 이용하든 상관없지 않았을까? 심지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말이다.그것이 바로 박연준이었다.박연준은 숨이 막히는 듯했다.머리가 쿵쿵 울렸다. 그는 이유영이 고의로 그를 자극하여 곁에 있지 못하게 하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