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유영의 싸늘함은 전례 없는 정도였다...“네!”전화 안에서는 익숙한 사람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단 한 글자로 이렇게 두 사람 사이의 거래는 이뤄졌다.전화를 끊은 뒤, 이유영의 눈빛은 유달리 차갑고 날카로웠다... 마치 칼날처럼 언제든지 상대를 베어 죽일 것만 같았다.강이한은 결국 그녀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몰아붙였다.사실 전에 강이한이 끈질기게 달라붙은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이유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자기 가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알았다.예전의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고 가족을 전부 잃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그녀는 이렇게 힘겹게 다시 자기의 가족을 얻게 되었다.이유영이 가족을 그토록 아끼고 지금의 일체를 그토록 아끼는데 강이한이 어떻게 여진우를 갖고 그녀를 협박할 수 있지?세월이 좀 있어 보이던 사진들, 그리고 사진 속의 내용만 봐도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강이한은 그걸 대중 앞에 공개한다는 것으로 이유영을 협박하였다.서재에서 나올 때, 이유영은 마침 밖에서 돌아오는 여진우를 보았다.여진우는 그녀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왜 월이랑 같이 안 있었어?”이 짧은 한마디는 이유영의 마음을 더 차갑게 했다.‘그래, 월이!’원래 이유영은 아무 걱정 없이 월이의 곁을 지켜줄 수 있었다.‘하지만... 강이한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지금은 강이한 때문에 다 깨지고 말았다.그녀의 삶은 지금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태풍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었다.“오빠.”이유영은 다가가서 여진우의 마른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그 순간, 마음속의 싸늘함은... 점점 더 짙어졌다. 하지만 강이한이 협박했던 것들을 생각하자, 이유영은 또 알게 모르게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그리고 이 기운을 여진우도 느꼈다. 그는 이유영을 꽉 안으며 물었다.“그 인간이 또 너를 협박했어?”“진우야!”“응?”“나 도원산으로 가서 살려고.”이유영을 안고 있던 여진우의 힘은 더욱 세졌
이유영은 허락할 수 없었다!예전에 강이한은 그녀의 삶에서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이유영의 사랑을 믿고 날뛴 것이었다.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놔둘 수 없었다.강이한은 이제 더 이상 이유영에게 요구를 제기할 자격이 없었다.비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이 마음속에 숨겨 두는 것이었고, 깊숙이 숨기고 싶은 비밀일수록 남에게 들키면 아주 위험한 것이었다.강이한은 오늘 이것으로 이유영을 도원산에 오게 협박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여진우의 이 비밀로 또 어떻게 이유영을 협박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다.유일하게 이 위험을 해결할 방법은 오로지... 강이한을 높은 곳에서 끌어내리는 것뿐이었다. 그를... 몰락하게 해야 했다....일주일 동안, 이유영은 거의 월이의 곁을 지키다시피 하였다. 이유영은 일분일초를 아꼈다.왜냐하면 이번에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이의 곁에서 떨어지게 되는 거일 것이다. 앞으로... 이유영과 월이는 누가 뭐래도 다시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월아, 아, 입 벌려야지.”마지막 저녁 식탁에서 이유영은 아주 다정하고 꼼꼼하게 월이에게 밥 먹여주고 있었다.꼬맹이가 입을 벌리는 순간, 그 모습은 정말 귀엽기 그지없었다.이유영의 미소는 더욱 다정했으며 몇 점 더 짙어졌다.“유영아. 정말 결정했어?”임소미는 걱정스럽게 이유영을 보며 물었다. 이번 일에 있어서 임소미가 반대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3일 전 이유영은 도원산으로 가서 지내겠다는 말을 꺼냈다.그녀는 강이한에게 기회를 다시 한번 주겠다고 말했다.이 점에 대해 임소미는 특히 이해할 수 없었다.“엄마, 만약 정말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면 난... 월이를 위해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도원산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 이유영은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그녀와 강이한 사이에는 전혀 미래 가능성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또 어떻게 강이한에게 기회를 줄 수 있겠는가?이
이유영은 이유 없이 여진우에게 애석한 마음이 생겼다.차에 올라탄 뒤, 두 사람은 말없이 도원산 방향으로 내달렸다. 절반 갔을 때, 여진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침묵을 깨뜨렸다.“서주의 난리판에는 끼어들지 마!”“...”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여진우를 향해 쳐다보았다.그 순간, 마치 여진우의 옆모습마저 그녀에게 속 모를 깊숙한 바다같은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오빠.”“서주는 네가 생각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서주의 난리판으로 강이한을 몰락하게 하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서주는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여진우의 말대로 그곳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혼란함 때문에 그동안 그곳에서 세력을 일으킨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만큼 몰락한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강이한의 배후는 마치 시들지 않는 것처럼 얼마나 혼란스러운 국면이어도, 형세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의 배후는 여전히 굳건했다.게다가 그들은 이런 시들지 않는 세력을 만들기 위해 역대 이래 계승자는 다 정밀한 선별을 거쳤다.이유영이 서주의 난리판으로 강이한을 몰락하게 만들려는 생각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속에 엮여있는지 모른다.“오빠. 그 인간이 내 한계를 얼마나 많이 건드렸는지 알아?”이 순간 이유영의 말투는 아주 무거웠다.‘한계를 얼마나 건드렸지? 몇 번이고 건드렸었지? 매번...’강이한은 이유영을 영원히 아픔을 못 느끼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그녀의 마음을 망가뜨렸다.하지만 이번에 강이한이 건드린 건 이유영 자신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한계였다.근데 강이한이... 그것을 건드리고 말았다.“오빠 때문만이 아니라 그리고... 예전의 나를 위해서야!”이유영은 또박또박 그윽하고 고요하게 말했다.그녀의 이런 말투는 운전하는 여진우의 미간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그의 눈빛에는 이유영에 대한 걱정이 역력했다.그랬다.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강이한 때문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이 2년 동안,
도원산에 도착한 후, 강이한이 핸드폰을 들어 이유영에게 일주일 기한이 되었다는 알림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 때에 갑자기 문 앞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쿵 소리와 함께 차가 문을 들이받았다.강이한은 일어서서 성큼성큼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러자 그는 캐리어를 들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이유영을 보았다. 이유영을 데려다준 차는 이미 떠나갔다.그 순간, 강이한의 눈 밑에는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이유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건네받고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순간 강이한은 온 세상을 다 잡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영의 손은 여전히 자그마했고 부드러웠고 또... 조금 차가웠다.“손이 왜 이렇게 차?”강이한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일말의 책망의 기운이 들어있었다.강이한은 예전에 의학 공부를 한 적이 있어서 여자의 손이 너무 차면 그건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이에 이유영은 대답이 없었다.비록 도원산으로 오긴 왔지만, 그녀에게도 나름 자신의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더러 예전처럼 다정하게 강이한을 대하라고 하면 절대 할 수 없었다.강이한이 입을 열었다.“아이는 왜 같이 안 왔어?”이유영이 말이 없는 것을 본 강이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그가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당신은 공평하게 대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해?”이유영은 비꼬면서 반문하였다.이 말을 들은 강이한은 온몸이 멈칫하였다.이유영을 바라보니 그녀의 눈 밑에는 차가운 풍자만 가득했다. 강이한은 심장이...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이유영은 그저 몸이 이곳으로 온 것뿐이었지 그녀더러 현재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이 순간 강이한은 이런 것을 철저하게 깨달았다.이유영은 냉랭하게 자신의 손을 강이한의 따뜻하고 듬직한 손안에서 빼냈다.손이 허전한 순간 강이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가슴
“유영아.”“왜냐하면, 홍문동의 불은 그 여자가 저지른 거야.”“...”강이한은 머리가 띵 하는 것 같았다.강이한의 반응을 보더니 이유영은 더욱 크게 웃었다.“당신도 알고 있었네. 그렇지?”‘알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지? 보아하니 그 후 한지음이 강이한의 용서를 받기 위해 나랑 관련된 일에서 적지 않게 희생했나 봐?’하지만 아무리 희생했다고 해도 그건 강이한의 용서를 받기 위한 것이지 이유영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이 점에 대해 이유영은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강이한,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다고 약속한 건 오로지 당신의 옆에 돌아온 것뿐이야. 다른 건... 너무 욕심부리지 마.”“나한테 있어서 당신이 내 곁으로 돌아온 것만으로 이미 충분해!”강이한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그랬다. 강이한에게 있어서 이유영이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온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모처럼 그녀를 설득하였다!전에 그렇게 많은 방법을 써봤는데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의 기회는 그에게 있어서 모처럼 힘든 기회였다.이유영은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그럼 내가... 이뤄줄게!”뒤의 네 글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유영은 발걸음을 옮겼다.그녀의 뒷모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 제자리에 선 채 오랫동안... 그녀의 말에서 정신을 되찾지 못했다.‘이뤄줄게...’이 단어는 끊임없이 강이한의 머릿속을 맴돌았으며 그의 이성을 자극했다.이유영이 한 말이 절대로 말 그 자체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도원산 안으로 들어가니 이온유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이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놀란 나머지 손에 든 숟가락마저 그릇에 떨어지고 말았다.“아가씨.”이온유를 챙겨주던 도우미 아주머니는 이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또 이온유의 반응을 보더니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 속에는 이유영에 대한 불만도 차 있었다.이유영은 발을 내디뎌 주방으로 걸어들어왔다.
강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영은 칼국수를 한입 먹고는 바로 손에 든 젓가락을 탁하고 세게 식탁에 내리쳤다.그 순간, 이유영이 불만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었다.“또 무슨 일이야?”강이한은 머리가 띵 해나는 것만 같았다.“소금을 안 넣었어!”칼국수의 조리법에 대해 이유영은 더욱 일가견이 있었다. 맛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이유영은 조금이라도 넘기기 어려웠다.“오늘은 일단 대충 먹어. 아주머니들도 오늘 네가 오는 줄 모르고 있었어.”“대충?”이 두 글자를 들은 이유영은 비꼬며 싸늘하게 강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오므렸다.그녀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이온유도 마음이 끔찍해 났다.마치 언제든지 폭발할 것만 같은 화산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강이한은 그저 골치가 아팠으며 미간마저 툭툭 튀고 있었다. 그는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애써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눌렀다.“주방에 다시 한번 만들어 오라고 하세요. 우유에는 설탕을 넣지 말고, 국수는 삶기 전에 미리 소금 간을 맞춰 달라고 하세요.”“네. 네!”장 아주머니는 무의식적으로 이유영을 힐끔거렸다. 이 여자가 자기 집 도련님의 마음속에서 엄청나게 높은 위치에 놓여 있는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런 게 아니면 방금 이유영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을 리 없었다.장 아주머니는 또 강이한의 옆에 숨은 이온유를 한눈 보았으며 아주머니의 눈빛에는 온통 아이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찼다.‘참나... 이런 여자가 어머니라니, 온유 얘 이후의 날들은 어떡하면 좋아?’주방의 손놀림은 그나마 빠른 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영의 아침이 다시 나왔다.우유는 온도가 안 맞았다!너무 미지근해서 온도에서 식감이 조금 별로였다. 칼국수는... 너무 짰다! 만약 예전이었으면 이유영은 강이한의 앞에서 참으면서라도 먹었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손에 든 젓가락을 세게 접시에 던지고는 일어섰다.“왜 또?”“당신이나 많이 쳐드세요!”이유영은 분노에
도우미는 앞으로 다가가서 말리자니 조금 겁이 났다. 어찌 됐든, 이유영 지금의 상태는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무서웠다.꽈당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밖으로 내 던져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이 여자는 완전히 집을 뜯어 부수러 왔네.’강이한은 이를 악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러자 그는 이유영이 서랍 안의 물건들을 다 뒤집어 꺼내 밖으로 내던지는 것을 보았다.“당신 제발 멈춰!”강이한은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로 다가가 이유영의 손안에 물건을 휙 빼앗았다.그는 줄곧 물건을 정돈하게 정리해 두는 습관이 있었으며 깔끔을 떠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방안은 이유영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강이한은 이성이 불에 활활 타는 것만 같았다.‘이 여자는 왜 이렇게 말이 안 되게 구는 거지?’“왜? 여기가 나한테 쓰라고 준 방이 아니었어?”“여기 맞아!”“그럼 됐잖아. 난 내 방에 다른 사람 물건이 있는 걸 안 좋아해.”“...”‘다른 사람...’이 두 단어는 강이한이 듣기에 너무나도 거슬렸다.예전에 두 사람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데 지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는 남이 되고 말았다.“이유영!”강이한은 목이 쉰 채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당신은 아직 그거 모르지?”분노를 극도로 억누르고 있는 강이한의 두 눈을 보며 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난 여태껏 다른 사람이 쓰던 걸 쓰기 안 좋아해.”이 말은 아주 의미심장했다!강이한은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당신 지금 뭘 가리키는 거야?”이유영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을 뻔히 알면서도 강이한은 쉰 목소리로 물음을 제기했다.‘유영이가 뭘 알아? 분명 아무것도 모르면서!’“당신 무슨 뜻인지 알잖아!”“나랑 그 여자는 절대 당신이 생각한 그런 사이가 아니야. 이유영,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당신 내 말을 믿어줄 거야?”강이한이 말한 그 여자는 한지음이었다.“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사이였건 이제 나랑 관계가 일도 없어!”“너...
이유영은 줄곧 줏대가 있는 사람이었다.전에 로열 글로벌을 잘 관리할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이유영은 능력이 보통이 아니었다.하지만 강이한 때문에 지금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이유영은 원래 파리에서 아무런 구속도 당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강이한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 줄이야...아무것도 모르는 서재욱은 당연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강이한은 감히 그런 요구를 제기해 유영 씨더러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지? 정말로 단단히 미쳤어. 그 애는 한지음의 아이잖아!’전에 청하시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강이한조차 용서할 수 없었다.‘하지만 어떻게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일 수 있지?’“재욱 씨, 청하시로 돌아가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이유영의 말투는 무겁고 분노가 억눌려 있었다.“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알아요.”“재욱 씨, 이 일로 해서 저는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해요. 알겠어요?”“일단 알겠어요!”이유영의 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 반대편의 서재욱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어휴!’이유영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가슴속의 답답한 감을 애써 짓눌렀다.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 손안의 핸드폰은 바로 바닥에 떨어졌으며 쿵 소리를 내어 사람의 마음마저 무겁게 했다.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강이한이 싸늘한 얼굴을 하고 문 앞에 서 있었다.“서재욱에게 전화한 거야?”강이한은 온몸에서 압박의 기운을 내뿜으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걸어 들어왔다.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하지만 강이한은 곧장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결국... 그녀를 도망칠 길이 없게 했다. 이유영은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눈앞의 강이한을 바라보았다.옷깃에 갑자기 힘이 전해졌다.강이한은 몸의 기운처럼 차가운 손가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유영의 눈시울을 어루만졌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이젠 이 두 눈에 그 사람밖에 안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