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봉투 안에는 한 묶음의 사진들이었다!엄청나게 흐릿했다... 사진은 연대가 좀 오래되어 보였다. 한눈에 이유영은 안색이 확 변했으며 강이한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강이한!”이유영은 거의 이를 꽉 깨물며 이 세글자를 내뱉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앞에 있는 재떨이를 들어 강이한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했다.그러니 이유영이 지금 어느 정도로 분노가 찼는지 알 수 있었다.하지만 손을 위로 치켜든 순간, 강이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이유영은 갑자기 손동작을 멈추었으며 가슴은 전혀 말을 안 듣고 끊임없이 기복을 이루었다.쾅 소리와 함께 이유영은 맥이 풀렸으며 손에 들었던 재떨이는 바닥에 뚝 떨어졌다. 그 순간 강이한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싸늘함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이게...”‘이게 다 뭐야?’이유영은 차마 입 밖으로 물을 수 없었지만, 심장은 말을 안 듣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순간, 온몸이 저렸다.그녀는 이 모든 것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여진우가 왕년에, 서주에서 잘 지내지 못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많은 것을 혼자 짊어진 줄은 전혀 몰랐다.“이것들은 다 진짜야!”“당신 뭐 하려고?”“내가 뭘 원하는지 물어봐야지.”이유영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강이한은 말을 이었다.“...”이유영은 입술을 꾹 오므린 채 강이한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독기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원하는 것? 무슨 염치로...!?’그랬다. 강이한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뻔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염치와 연결하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는 염치를 버린 사람이었다.“유영아.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넌 잘 알 거야. 이것들이 일단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면 여진우 그 아이는 더 이상 정씨 가문의 자랑이 될 수 없어. 네 어머니도 이것 때문에 고통 속으로 깊이 빠져들겠지.”강이한은 한 구절 한 마디 가볍게 이유영을 일깨워주었다
뒤돌아선 순간, 강이한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더니 이유영은 그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아이를 안고 있던 그녀의 손도 바짝 긴장해졌다.하지만 월이는 이유영이 멈춘 것을 느끼고는 몸을 비틀비틀하며 2번 울부짖더니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유영은 바로 월이를 눌러버렸다.“꼭 오늘 밤에 얘기해야 해?”월이가 점점 더 세게 움직이는 것 때문에 이유영은 가슴이 쪼여 들었다.그 순간, 월이가 고개를 정말 살짝만 돌리면 강이한은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엄수현도 알아본 이상 강이한이... 눈멀지 않고서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이유영은 월이를 안은 채 움직여보았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이 없었다.월이가 울기 시작하면 무조건 이유영이 안고 방에서 왔다 갔다 걸어 다녀야만 했다.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이때 강이한이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이유영은 지금, 강이한과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집을 부리는 강이한은 마치 확실한 대답을 듣기 전에 한 발짝도 떼지 않을 것만 같았다.지금, 이 순간 이유영이 얼마나 골치가 아픈지 아무도 몰랐다....이유영과 강이한 두 사람은 양쪽 모두 양보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는 서로 남남처럼 떨어졌다.반산월로 돌아온 후 엔데스 현우는 바로 떠났다!그동안 엔데스 가문의 모든 사람은 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엔데스 현우는 심지어 온밤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침대에 누운 소은지는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다.‘유영이가 정씨 가문의 친 딸이라니. 그 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건 당연히 짚고 넘어갈 사람이 있겠지.’소은지는 이유영 대신에 기뻤다!이렇게 되면 소은지 주변의 유일한 약점도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지잉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소은지는 핸드폰을 들고 보니 엔데스 명우의 전화였다.외부 사람들은 소은지와 엔데스 명우의 사이를 모르고 있었다.그래서 요 며칠 사이에 엔데스 명우가 얼마나
전화 안 두 사람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엔데스 명우의 숨결이 점점 통제를 잃어가는 것을 들으며, 소은지는 그가 단단히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사랑을 하든 안 하든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무조건 서로를 잘 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지금 보면 소은지도 엔데스 명우를... 알게 모르게 요해하게 되었다.“만약 여섯째 도련님께서 별 중요한 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여섯째 도련님, 소은지는 아주 정식적인 호칭을 붙였으며 이 두 단어를 특별히 세게 강조했다.동시에 전화 반대편의 사람을 귀띔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 소은지는... 더 이상 그의 곁에 있던 번호가 아니라 그의 제수라는 것을.촌수와 예의에 따르면 소은지는 지금 그를 여섯째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했다.게다가 엔데스 명우는... 용건이 있어야만 소은지를 찾을 수 있었다....다른 한편, 소은지가 전화를 끊은 것을 보며 엔데스 명우는 화가 잔뜩 났다. 원래 정씨 가문 연회에서 이미 화가 차올랐지만, 지금은 더 말할 것 없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소은지가 연회에서 엔데스 현우랑 능숙하게 춤을 우는 장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오늘 밤 제일 사람의 눈길을 끈 것이 이유영과 여진우였다면 엔데스 일곱째 도련님이 아내를 데리고 나와 함께 비밀의 베일을 벗은 것도 마찬가지로 파리에서 작지 않은 소동을 일으켰다.반산월의 불빛이 점점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보며 엔데스 명우의 눈 밑은 어두워졌다. 결국 그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배천명은 차에서 내리는 엔데스 명우를 보더니 대경실색하였다.“도련님!배천명도 따라서 차에서 내렸는데 엔데스 명우가 쌀쌀한 기운을 풀풀 뿜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지금... 이게 뭐 하시려는 거지!?’여긴 아무래도 일곱째 도련님의 구역이고 게다가 시간도 늦었고 소은지 지금의 신분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정말 소은지 이 여자에 대해 전부 그녀를 과소평가했다. 그녀는 오기가 한가득한 데다가 계획
엔데스 명우는 차가운 얼굴로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여자가 안 내려오면 내가 그 여자 방으로 쳐들어갈 건데. 어때?”이 말을 들은 집사는 안색이 순간 변했다.“제가 당장 가서 일곱째 사모님을 모셔 오겠습니다.”‘방으로 쳐들어간다고? 그건...’엔데스 가문의 사람이라면 엔데스 명우가 줄곧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말을 이렇게 한 이상, 오늘 저녁에 그는 반드시 소은지를 만나야 하는 것이었다. 소은지의 얼굴을 못 보면 단언컨대 그는 절대 떠날 리가 없었다.‘참... 까다롭기도 하네.’집사는 그저 머리가 아팠다.방안에서 소은지는 뒤척이며 잠에 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마주할 것이 어떤 상황일 지 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았다.소은지가 생각하기를 엔데스 명우가 이미 갔다고 생각했을 때, 집사가 올라왔다.“일곱째 사모님, 주무십니까?”집사님의 목소리를 듣고 소은지는 마음이 바로 덜컹 내려앉았다.집사라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 시간에 집사가 그녀를 부른다는 것은 특별히 중요한 일밖에 없을 것이었다.“어쩐 일이세요?”소은지는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집사는 소은지의 대답을 듣더니 한숨을 한번 내쉰 것만 같았다.어찌 됐든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의 방까지 찾아올까 봐 정말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정말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집사의 말소리가 들렸다.“여섯째 도련님께서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꼭 사모님을 만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태도가 아주 굳건했죠!?’소은지의 눈 밑에는 일말의 어두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이건 정말 엔데스 명우의 스타일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해야만 직성에 풀렸다. 바로 전에 전화에서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극도로 경고했었건만, 그는 마치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처럼 끝내 찾아오기까지 했다.‘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인데 이 정도가... 뭐라고!?’“네. 알겠어요.”소은지는 침대 등을 켜고 일어나서 외투를 집어 들어
하지만 엔데스 명우는 마치 소리를 못 들은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엔데스 명우 손의 힘은 점점 더 세졌다. 결국 짝 소리와 함께 그의 뺨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엔데스 명우는 분노가 차오른 동시에 이성도 되찾았다.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원래 분위기가 위험한 데다가 소은지가 여섯째 도련님의 뺨을 내리치는 것을 보더니 더욱 숨소리조차 내기 두려웠다.‘여섯째 도련님이... 맞았어!?’자유를 되찾은 소은지는 음험한 눈길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며 비꼬았다.“무능한 남자 같은 게!”“...”‘정말 돌았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소은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배천명은 그나마 정신이 말짱했다. 왜냐하면 그는 예전의 소은지를 봤었던 사람으로서 그녀가 예전에도 엔데스 명우를 이렇게 대했다는 것을 알았다.아무리 그녀를 짓눌러도 그녀는 온몸에 오기가 가득한 채 항상 야성을 띄고 있었으며 정말 그녀를 이해할 수 없게 했다!소은지는 매섭게 엔데스 명우를 째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더욱 엔데스 명우를 팍 돌게 했다.그는 다시 한번 소은지의 목을 덥석 졸랐다.이런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남달리 독했다!그녀는 전혀 연약함이 없이 엔데스 명우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았다.“소은지, 경고하는데 너의 그런 하찮은 꿍꿍이들을 다 집어치워!”“여섯째 아주버님, 어떤 꿍꿍이를 말하시는 거예요?” “네가 더 잘 알 거야!”“저는 아주버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요.”소은지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는데도 눈빛은 예전과 똑같았다.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용서를 비는 뜻한 느낌이 털끝만치도 없었다.소은지는 고사리같이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으로 가볍게 엔데스 명우의 손목을 잡고는 조금씩 조금씩 그의 손바닥을 목에서 떨구었다.“당신은 지금 날 죽이고 싶어 미칠 것 같죠?”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보며 씩 웃었다.이 말을 들은 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졌다.
소은지를 안고 있던 엔데스 현우는 엔데스 명우가 문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에 바로 그녀를 놔주었다.“앞으로 저 사람을 작작 건드려.”엔데스 현우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누가 두 사람보고 형제가 아니랄까 봐 이럴 때 쌀쌀맞은 것도 아주 비슷했다.“우리 두 사람 사이는 거래로 엮어있어요! 잊으신 거 아니시죠?”‘엔데스 명우를 건드리지 말라고? 우리의 원한은 이제 시작인데 이까짓 게 뭐라고!?’엔데스 현우는 소은지를 바라보더니 그의 눈 밑은... 더욱 심각해졌다.소은지는 엔데스 명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순간 알아차렸으며 덧붙여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언젠가는 끝을 볼 일이니 급하진 않아요.”적어도 엔데스 현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시점에 소은지가 함부로 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엔데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당신이 분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저 형이 너무나도 분수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거 걱정될 뿐이에요.”이 말은 결국 소은지더러 엔데스 명우를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었다.소은지는 상관이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알겠어요.”“당신도 일찍이 휴식을 취하세요.”말을 마친 뒤 엔데스 현우는 뒤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밖의 일이 아직 안 끝났는데 집사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모양인 것 같았다.‘차가워 보이는 현우 씨한테 뜻밖으로... 이런 모습도 있었네.’...반산월의 다른 한편, 소은지의 세계도 그렇거니와 이유영의 세계도 폭발하기 전의 상황이었다.이유영은 결국... 강이한이 월이의 얼굴을 못 보게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아이를 잘 달래주고는 방에서 나왔다.강이한이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이유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당신은 그 아이를 참 사랑하네요.”강이한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적어도 나는 어떤 것이 내 것이고 어떤 것이 남의 것인지는 잘 구분해!”이 말은 똑같이 풍자적이었다.강이한이 이유영더러 한지음의 아이를 받아들이라고 하면서 또 그녀가 자신의 아이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이유영 때문이 아니었다.그는 이온유에게 엄마를 만들어주기 위한, 이온유에 대한 편애였다.이런 편애는 정말 사람의 질투심을 유발했다.그의 편애 대상이 예전에 한지음이었던 것이 지금은 이온유로 변했다.“온몸에, 불에 타들어 가는 것은 어떤 느낌이야?”강이한은 갑자기 이유영을 쳐다보았으며 마치 투시 능력을 갖춘 것처럼 눈 밑에는... 날카로움이 스쳐 지나갔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새하얘졌다.“감옥에서 있었던 그 불은 정말 무척이나 아팠지!”이유영은 감옥 이 두 글자를 심하게 씹으며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강이한 눈 밑의 날카로움은 더욱 짙어졌다.“그럼, 눈이 안 보이는 건 어떤 느낌이야?”매 한 글자에 다 무겁게 이를 갈며 말했다.전에 한동안 강이한은 너무 정신없이 지냈고 또 엮인 일이 너무 많아 바빴지만, 이유영이 했던 말들을 다 까먹은 것은 아니었다.아마도... 그녀를 떠보는 것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의 눈 밑이 흐트러지면서 몸이 저도 모르게 풀리는 것을 본 순간... 강이한은 자신의 마음속 추측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이유영을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 밑에는 더욱 풍운이 용솟음쳤다.그 순간, 강이한의 마음속에는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쳤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전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때, 그는... 이유영이 차라리 전생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이유영은 전생의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어보진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이유영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본 순간 강이한은... 그녀가 전부 다 겪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유영아.”다시 입을 열었을 때, 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떨렸다.“...”이유영은 말없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눈빛에는 잠깐의 변화가 있었던 뒤, 지금은 그저 끝없는 막연함만 남았다. 이유영은 아주 쌀쌀맞았으며 태도가 엄청 싸늘했다.강이한은 앞으로 다가가서 이유영의 어깨를 와락 잡았다.두 사람의
‘유영이가 언제 이번 생으로 건너온 거지? 이혼... 그래, 이혼한다고 난리를 피웠을 때, 그 후 유영이가 언론을 처리하던 수법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이런 것들에 대해 강이한은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다.전생의 이유영은 그때 언론들을 보면서 혼자 홍문동에 숨어서 울기만 했었다!하지만 이번 생의 이유영은 매번 아주 날카롭게 반격하였으며 강이한을 떠나려는 그녀의 태도도 엄청나게 굳건했다.‘그때의 유영이가 전생에서 온 것이 아니면 뭐가 있었어?’“도련님이 말씀하신 게 혹시 사모님이십니까?”이정은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강이한 주변의 사람들은 다 이유영이 강이한을 무척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증오는 이미 도천의 지경에 이르렀다.그런 것이 아니면 아이를 숨길 이유도 없었다. 서주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실 다 그녀 마음속의 원한 때문이었다.“사실 사모님 마음속에서 지음 아가씨는... 사모님의 금기입니다!”강이한이 말이 없는 것을 보더니 이정은 결국 숨을 한 모금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맞았다. 금기였다.예전에는 한지음이었고 지금은 이온유였다.강이한은 머리가 띵해 나는 것 같았고 눈동자도... 순간 축소되었다. 이정의 말이 맞았다.만약 이유영이 정말로 전생에서 건너온 것이라면 그럼, 한지음은 정말 그녀의 마음속에서 금기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한지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최종적으로 한지음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몰라서였다.‘만약 알게 된다면 유영이는 아마도...’여기까지 생각한 강이한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차 돌려!”“도련님.”“반산월로 가.”한지음이 바로 이유영 마음속의 금기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그녀가 왜 이온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다른 한편, 강이한이 반산월을 떠난 뒤 이유영은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올라와서 강이한이 또 왔다고 말했다.그 순간 이유영은 그저 두피가 톡톡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
이유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허리에 전해진 강한 힘이 이유영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익숙한 기운이 스며들며 이유영을 감싸안았다.중심을 되찾는 순간, 이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이한이었다.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와아아...”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유영의 차가운 눈빛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월이야, 월이야.”이유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엄마, 무서워요!”“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작은 아이는 두려운 목소리로 강이한을 보고 외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한은 아이의 입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나쁜 사람... 이의 기억 속 자신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그래, 이게 바로 그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존재가 남긴 기억이었다.“그래, 맞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어떤 나쁜 사람도 월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강이한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광경이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소란을 들은 하인들과 집사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강이한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이내 임소미와 정국진도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임소미는 강이한을 보자마자 적대감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여긴 왜 온 거야?”임소미의 말투는 한 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유영이를 좀 봐.”정국진이 임소미에게 말했다.임소미는 강이한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이유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 감정을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
이유영은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이 바로 알프산 방문 때문이라는 사실도.알프산을 다녀온 후 이유영의 시력은 점점 더 악화하였고 자극을 받은 듯한 이상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강한 빛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갈 생각을 했니?”임소미는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이제 이유영이 어디를 가든 임소미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장소가 이유영의 눈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엄마, 정말 별일 아니에요...”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말하지 마!”임소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진심으로 말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도 의사가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눈 덮인 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러다 이번에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이유영 자신도 몰랐다.“잊었다고? 그 잊음 때문에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임소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임소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엄마, 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네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랄 뿐이야, 알겠니?”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이유영은 그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이유영은 손을 뻗어 임소미의 가냘픈 허리를 감쌌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임소미는 여전히 이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임소미는 평소에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알겠어요, 엄마. 화 풀어요, 네? 저, 수술받을게요.”“유영아...”“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네?”임소미의 품에 안긴 이유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임소미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안쓰러웠다.임소미는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우지는 빠르게 물을 닦아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운 물기는 이유영에게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다.언젠가 이유영의 두 눈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 공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서서히 퍼져 나왔다.아침에 물 한 잔을 쏟은 이후, 이유영은 하루 종일 우지와 우현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이제 옷장 속에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의 옷들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나머지 색깔들은 이미 모두 희미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다.아침 식탁.우지는 조심스럽게 죽을 이유영 앞에 놓으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아직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이유영이 숟가락을 집으려고 할 때, 우지는 바로 숟가락을 건네주었다.“고마워요.”이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센 혼란이 몰아치고 있었다.가슴은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다.그때, 임소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엄마.”“왜 아침 같이 먹으러 오지 않았어?”“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 먼저 드세요.”“그럼 오전에는 꼭 돌아와서 월이랑 같이 놀아 줘. 네가 이곳에 안 온다고 하면 월이가 속상해할 거야.”“네, 알겠어요.”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가슴이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월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전화를 끊고 난 후.이유영의 세계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이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진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만약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이유영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하셨을까?다행스러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아침 식사 후.이유영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백산 별장으로 돌아갔다.임소미는 이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날, 한지음이 떠난 후, 이유영은 손으로 배를 감싸안고 한동안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을 떠난 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당시의 이유영에게는 눈을 뜨면 온통 어둠뿐인 날들이 이어졌고 어떤 처참한 미래가 닥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만 같았다.강이한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확고했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알게 되는 순간, 그 용기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이유영은 두려웠고 미칠 것 같았다.자기 삶이 아무리 비참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유영이 강이한의 결정을 기다리기도 전에, 이유영 스스로 선택을 내리기도 전에 모든 것이 한 차례 대화재로 끝이 났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한지음을 용서하라고 했다.한지음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이유영을 위해 희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강이한은 결코 알지 못했다.그것이 오직 자신의 문제였다면, 어쩌면 모든 것을 잊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아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용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이유영이 아이를 위해 온갖 고통을 겪었던 그 마지막 시간 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다.한지음이 이유영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든 한지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네, 좋아요! 사모님께 가서 바로 말씀드릴게요. 사모님께서 아가씨가 수술을 빨리 받겠다고 결정하신 걸 들으시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우지가 기쁜 얼굴로 방을 나가는 모습을 본 이유영은 그저 고개를 천천히 저을 뿐이었다.그날 밤.이유영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이유영에게조차 쉽지 않았다.오랜 세월 지켜온 신념들이 의사의 진단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어두운 방 안.어스름한 방안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유영을 응시하고 있었다.차가운 손가락 끝이 이유영의 목 아래 울퉁
의사가 이유영의 상태를 면밀히 점검했다.그 결과, 백산 별장과 반산월은 조명에 한층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임소미와 정국진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조명을 다시 교체했다.밤이 되면 이유영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낮에도 햇빛이 강하면 외출을 엄격히 제한했다.임소미가 이유영의 눈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눈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이 신중히 조율되었다.백산 별장에 밤이 찾아왔다.사람들은 모두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느꼈고 시야가 흐릿한 이유영조차도 조명이 이전보다 더 어두워졌음을 느꼈다.“엄마, 이 정도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미 제대로 볼 수 없는걸요.”이유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유영이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지금의 이 조명은 이유영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하지만 임소미는 딸의 말을 단호히 받아쳤다.“나도 알아. 이 조명이 사람들한테 너무 어둡게 느껴질 거라는 거. 그래도 강한 빛이 네 눈에 더 큰 손상을 줄 수도 있잖아.”임소미는 단호히 말했다.“...”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조명은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눈에 자극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됐어. 엄마 말대로 해. 네 수술이 성공하기 전까진 이 조명 상태 그대로 유지할 거야.”임소미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이유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알겠어요.”이유영은 엄마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임소미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이유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그날 밤.이유영이 반산월로 돌아왔다.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에게 말했다.“조명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이제 아가씨의 눈에는 크게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안경은 꼭 착용하셔야 합니다.”“안경이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예전엔 눈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안경을 굳이 쓰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