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이유영 때문이 아니었다.그는 이온유에게 엄마를 만들어주기 위한, 이온유에 대한 편애였다.이런 편애는 정말 사람의 질투심을 유발했다.그의 편애 대상이 예전에 한지음이었던 것이 지금은 이온유로 변했다.“온몸에, 불에 타들어 가는 것은 어떤 느낌이야?”강이한은 갑자기 이유영을 쳐다보았으며 마치 투시 능력을 갖춘 것처럼 눈 밑에는... 날카로움이 스쳐 지나갔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순간 얼굴색이 새하얘졌다.“감옥에서 있었던 그 불은 정말 무척이나 아팠지!”이유영은 감옥 이 두 글자를 심하게 씹으며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강이한 눈 밑의 날카로움은 더욱 짙어졌다.“그럼, 눈이 안 보이는 건 어떤 느낌이야?”매 한 글자에 다 무겁게 이를 갈며 말했다.전에 한동안 강이한은 너무 정신없이 지냈고 또 엮인 일이 너무 많아 바빴지만, 이유영이 했던 말들을 다 까먹은 것은 아니었다.아마도... 그녀를 떠보는 것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의 눈 밑이 흐트러지면서 몸이 저도 모르게 풀리는 것을 본 순간... 강이한은 자신의 마음속 추측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이유영을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 밑에는 더욱 풍운이 용솟음쳤다.그 순간, 강이한의 마음속에는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쳤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전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때, 그는... 이유영이 차라리 전생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이유영은 전생의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겪어보진 않았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이유영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본 순간 강이한은... 그녀가 전부 다 겪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유영아.”다시 입을 열었을 때, 강이한의 말투는 조금 떨렸다.“...”이유영은 말없이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눈빛에는 잠깐의 변화가 있었던 뒤, 지금은 그저 끝없는 막연함만 남았다. 이유영은 아주 쌀쌀맞았으며 태도가 엄청 싸늘했다.강이한은 앞으로 다가가서 이유영의 어깨를 와락 잡았다.두 사람의
‘유영이가 언제 이번 생으로 건너온 거지? 이혼... 그래, 이혼한다고 난리를 피웠을 때, 그 후 유영이가 언론을 처리하던 수법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이런 것들에 대해 강이한은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다.전생의 이유영은 그때 언론들을 보면서 혼자 홍문동에 숨어서 울기만 했었다!하지만 이번 생의 이유영은 매번 아주 날카롭게 반격하였으며 강이한을 떠나려는 그녀의 태도도 엄청나게 굳건했다.‘그때의 유영이가 전생에서 온 것이 아니면 뭐가 있었어?’“도련님이 말씀하신 게 혹시 사모님이십니까?”이정은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강이한 주변의 사람들은 다 이유영이 강이한을 무척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증오는 이미 도천의 지경에 이르렀다.그런 것이 아니면 아이를 숨길 이유도 없었다. 서주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실 다 그녀 마음속의 원한 때문이었다.“사실 사모님 마음속에서 지음 아가씨는... 사모님의 금기입니다!”강이한이 말이 없는 것을 보더니 이정은 결국 숨을 한 모금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맞았다. 금기였다.예전에는 한지음이었고 지금은 이온유였다.강이한은 머리가 띵해 나는 것 같았고 눈동자도... 순간 축소되었다. 이정의 말이 맞았다.만약 이유영이 정말로 전생에서 건너온 것이라면 그럼, 한지음은 정말 그녀의 마음속에서 금기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 한지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최종적으로 한지음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몰라서였다.‘만약 알게 된다면 유영이는 아마도...’여기까지 생각한 강이한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차 돌려!”“도련님.”“반산월로 가.”한지음이 바로 이유영 마음속의 금기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그녀가 왜 이온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알 수 있었다....다른 한편, 강이한이 반산월을 떠난 뒤 이유영은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올라와서 강이한이 또 왔다고 말했다.그 순간 이유영은 그저 두피가 톡톡
하지만 다음 순간 이유영이 입을 열었다.“난 듣고 싶지 않아!”“유영아, 이번 일은 너와 지음이...’“그만. 강이한 당신 진짜 그만 해!”‘한지음. 이 사람은 지금까지도 한지음 소리를 하고 있네. 도대체 이 남자를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아니면 한지음이 정말 강이한의 세상에서 넘어갈 수 없는 존재인 건가?’이 순간, 한지음의 이름을 들은 후 이유영의 반응은 더욱 이정의 말을 증명하였다. 한지음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금기된 존재가 분명했다.그녀는 그게 누구든지 한지음 얘기를 꺼내는 것을 싫어했다.“유영아, 나도 알아. 너의 아픔을 나도 알아...”“아픔?”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다시금 끊어버리고는 풍자적으로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당신 자신을 너무 높게 보는 거 아니야?”‘아픔이라고? 어디 봐서 내가 아파하는 것처럼 보여?’“유영아!”이유영이 전혀 해명을 듣지 않는 것을 보더니 강이한은 가슴이 답답하였다. 마치 솜사탕이 속을 막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나 진짜 피곤해!”이유영은 온밤 강이한에게 괴롭힘을 받았으며 이렇게 서로 대치하다가는 날이 밝을 정도였다.이유영은 이제 정말 강이한이 미치도록 짜증이 났다.결국 이유영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는 이유영을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당신 뭐 하는 거야?”강이한의 행동을 보며 이유영은 다시 미칠 것만 같았다. 강이한은 정말 또라이가 분명했다. 밑도 끝도 없이 미친 짓만 했다.“나 따라가.”“내 딸이 아직 방에서 자고 있어. 이거 놔...”짝 소리와 함께 또 따귀가 강이한의 얼굴에 내리쳐졌다.“당신 제발 이렇게 역겨울 정도로 날 괴롭히지 마? 응?”이유영은 강이한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그랬다. 정말 역겨웠다.이유영은 강이한이 ‘온유는 네 딸이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너무나도 역겨웠다.‘이 사람은 정말 아무 말이나 막 하네.’“...”강이한은 가슴이 아팠다.“유영아. 넌 반드시 온유를 받아들여야 해.”강이한은 정말 이 말을 한두 번
강이한의 말투 속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실망으로 가득 찼다.그가 실망하는 것을 보자 이유영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예전에도 딱 이런 말투였다!그때 강이한은 한지금 때문에 이런 실망에 찬 말투로 이유영에게 말했었다. 마치 그녀가 정말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하지만 지금도 역시 그런 말투였다.‘강이한은 항상 이런 식이었지?’아무리 지금이라고 해도 강이한은 여전히 한지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그런 남자였다.“업보야!”이유영은 독기 서린 말투로 이 세글자를 내뱉었다.하지만 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전생의 기억이 파도처럼 용솟음쳤으며 그의 이성을 끊임없이 충격하였다.‘유영이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왜 이렇게 변한 거지?’특히 이유영의 막연한 두 눈을 보면 그녀의 몸에서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몹시 차가웠다.강이한은 이토록 냉랭한 이유영을 본 적이 없었다. 차갑기를...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당신 지금 당신이 어떤 꼬락서니인지 알아?”“어떤 꼬락서니든 그건 다 당신이 날 몰아세운 거야. 알겠어?”이유영은 또박또박 대답하였다.그랬다. 지금의 이유영이 도대체 어떤 모습이든 간에 그건 다 강이한 때문이었다.예전에 그녀도 천진난만했고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이한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꺼이 그의 뒤에서 내조를 해줬다.하지만 결국 강이한이 그녀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던가?“당신이 어떻게 되었든지 다 지음이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돼!”전생의 한지음이 마지막 순간까지 이유영의 이름을 불렀던 것을 생각하면 강이한은 마음이 아팠다.아무리 한지음이 목숨을 내바쳤다고 해도 이유영에게 저지른 죄를 보상해 줄 수는 없었다. 그때의 한지음은 정말 이유영을 구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도 결국 살아서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강이한은 부처에게 간절하게 애원하고 간절하게 기도했다!그녀는 살아있었
이유영은 제자리에 선 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녀는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아까보다 더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내가 말했었지. 당신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든 간에 그건 다 당신들의 업보라고!”이유영은 이 말을 던지고 강이한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걸어 나갔다.강이한만 제자리에서 싸늘한 기운을 가득한 채 서 있었다...이유영이 던진 업보라는 두 글자는 부단히 그의 머릿속에서 충격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그의 이성을 철저하게 깨부쉈다.“업보...”그는 조용히 이 두 글자를 중얼거렸다.그는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업보라고? 목숨까지 잃었는데 이걸로도 부족한가? 왜 그냥 다 철저하게 내려놓지 못하는 거야!?’강이한은 심장이 찌릿찌릿하며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다른 한편, 방안으로 돌아온 이유영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원래 이런 것들을 전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실이 코앞에 놓여있었다.‘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것도 모자라 강이한까지... 설마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 정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네.’강이한과 이유영은 도대체 어떤 악연이길래 전생에서부터 현생까지 이어졌으며,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이 악연을 끊어버릴 수 있는 걸까?이유영은 곤히 잠든 월이를 보며 꼬맹이의 말랑말랑한 손을 가볍게 만졌다. 전생과 이번 생! 이 아이는 마치 하늘이 그녀에게 준 선물 같았다.이 날밤, 이유영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도원산의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이온유는 아주 점잖게 식사하고 있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는 한지음의 그림자가 비쳤다.“왜? 입에 안 맞아?”이온유가 깨작깨작하는 것을 보자 강이한은 자상하게 물었다.하지만 꼬맹이는 강이한을 한눈 보더니 그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이온유는 요구를 제기하는 것을 잘 못했다.하지만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면 습관적으로 천천히 먹기도 했다.“온유야.”“네. 아빠.”“무슨 말이든
결국 강이한은 그런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그냥 아빠가 엄마한테 몹쓸 짓을 했기 때문이야. 엄마는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빠한테 화가 난 거야. 응?”“그 이유뿐인가요?”이온유의 마음은 강이한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무척 예민했다.“당연하지.”“...”“그만하고 얼른 밥 먹어. 밥 먹고 학교 가야지.”“아빠.”“왜?”“대부분 친구는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줘요.”이온유의 목소리는 아주 나지막했다. 마치... 그런 아이들을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온유는 거의 기사 아저씨가 바래다줬고 강이한이 학교에 데려다준 적도 별로 없었다.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데려다준다는 것을 강이한은 예전에 몰랐었다.아무리 기사 아저씨가 있다고 해도 보통은 엄마가 꼭 같이 데려다주곤 하였다.강이한은 가슴이... 솜뭉치에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런 괴로운 느낌은 그의 가슴에서 부단히 퍼졌다.결국 강이한은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이후에 엄마가 시간 나면 그때 엄마도 그렇게 할 거야. 지금은 너무 바빠서 그래!”‘너무 바빠서 그렇다고?’이유영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이온유는 진작에 알았다. 그래서 이유영더러 이온유의 등하교를 바래다주라고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게다가 어젯밤의 일이 있고 난 뒤, 강이한은... 사실 지금 어떻게 이유영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전에 서주로 가기 전에 이미 짐작은 했었다.하지만 그때도 그저 상황을 마주하기 두려워 피했던 것이었다.그리고 어젯밤에 사실을 확인한 후로... 강이한은 도대체 어떤 태도로 이유영을 마주해야 할지 더 갈피를 잡지 못했다.강이한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유영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이한는 이온유가 한 말 때문에 직접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동안 강이한은 이온유가 등교할 때 바래다준 적은 많았어도 하교할 때 데리러 간 적은 별로 없었다.하지만 이온유는 원래 예민한 성격인 데다가 같은 반의 친구들은 다
결국, 강이한은 엄청나게 공을 들인 끝에 이온유를 어르고 달래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조기 교육 센터로 들어갔다.이와 동시에 이유영은 다른 엄마들과 함께 교실에 앉아서 월이를 안고 선생님 따라 게임을 하고 있었다.아무리 이유영이 문을 등지고 앉아 있다고 하지만 강이한은 유리창을 통해 이유영의 모성애가 가득 담긴 다정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이유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그녀의 몸에는 인내심이 여전히 배어있었다. 지금만 봐도 아이에게 엄청나게 인내심 있는 이유영을 볼 수 있었다. 강이한은 두 손에 주먹을 꾹 쥐었다.반 시간 뒤, 서재욱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 안에서 강이한은 이유영과 아이의 일을 서재욱에게 알려주었다.얘기를 마친 뒤, 마지막에 강이한은 이렇게 말했다.“난 당신이 아이를 데려갔으면 해!”“...”이 말을 들은 서재욱은 이마를 짚었다.다행히 이유영이 사전에 서재욱에게 얘기를 해줬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이한의 전화를 받으면 정말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었다.서재욱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 모금 들이켜고는 전화 안의 강이한에게 말했다.“당신 정말 유영 씨를 사랑하는 거 맞아?”“서재욱!”“나더러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는 목적은 유영 씨더러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거야?”말이 끝나자, 순간 공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목적이라?’그랬다. 이유영은 반드시 한지음의 아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강이한은 오늘 같은 장면을 다시 이온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이 말이 없는 것을 보자 서재욱도 대충 비슷한 뜻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서재욱이 입을 열었다.“내가 말하는 거 잘 들어. 아무리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간다고 해도 유영 씨는 절대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더군다나, 유영 씨는 이미 내 아이가 있어. 나도 이제 알게 된 이상,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줘야 하나 고민 좀 해봐야겠어. 안 그래?”“서재욱!”“강이한, 네가 그동안
서재욱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였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강이한은 서재욱의 이 결정을 듣더니, 순간 더욱 위험하게 변했다.“네가 감히!”그는 거의 이를 꽉 깨물며 두 단어를 내뱉었다.“넌 한지음의 딸에게 온전한 가정을 줄 거지? 그럼 반드시 유영 씨를 놓아주어야 해. 넌 그걸 똑똑히... 알아야 해.”여기까지 말하자 서재욱의 말투는 조금 더 심각해졌다.그 후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넌 아직도 모르겠어? 한지음과 관련된 거를 택하면, 유영 씨를 얻을 수 없고 반대로 유영 씨를 얻으려면 반드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서재욱의 말투는 무척 무거웠다.마치 큰 돌덩이처럼 무거웠으며 세게 강이한의 가슴에 내려앉았다.서재욱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이유영은 한지음과 관련된 일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서재욱의 말대로, 한지음이 있으면 이유영이 있을 수 없었다.그리고 이유영을 얻으려면 한지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온유는 고작 아이였다. 강이한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서재욱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유영이 때문에 지음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음이가 무엇을 희생했는지도 모르면서, 지음이가 유영을 위해 목숨까지 내다 바쳤다는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두 사람 중 한 명만 남길 수 있다는 소리를 하는 거지?’...강이한은 다시는 이온유가 파리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지 못하게 서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월이를 데려가라고 말하려던 것이었다.하지만 오히려 서재욱에게서 이유영에게 한 발짝 다가가겠다는 통지를 받았다.이유영은 서재욱의 전화를 받고 조금 전 강이한이 그에게 전화했다는 것을 듣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올랐다.“재욱 씨, 제가 미안해요...”이유영은 이마를 짚었다.강이한이 이토록 미친 줄은 몰랐으며 더욱이 서재욱에게 이런 전화를 할 줄 이유영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재욱 씨더러 월이를 데려가라고 하다니? 강이한 이놈은 왜 가서 처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