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강이한은 그런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그냥 아빠가 엄마한테 몹쓸 짓을 했기 때문이야. 엄마는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빠한테 화가 난 거야. 응?”“그 이유뿐인가요?”이온유의 마음은 강이한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무척 예민했다.“당연하지.”“...”“그만하고 얼른 밥 먹어. 밥 먹고 학교 가야지.”“아빠.”“왜?”“대부분 친구는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줘요.”이온유의 목소리는 아주 나지막했다. 마치... 그런 아이들을 엄청나게 부러워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온유는 거의 기사 아저씨가 바래다줬고 강이한이 학교에 데려다준 적도 별로 없었다.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데려다준다는 것을 강이한은 예전에 몰랐었다.아무리 기사 아저씨가 있다고 해도 보통은 엄마가 꼭 같이 데려다주곤 하였다.강이한은 가슴이... 솜뭉치에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런 괴로운 느낌은 그의 가슴에서 부단히 퍼졌다.결국 강이한은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이후에 엄마가 시간 나면 그때 엄마도 그렇게 할 거야. 지금은 너무 바빠서 그래!”‘너무 바빠서 그렇다고?’이유영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이온유는 진작에 알았다. 그래서 이유영더러 이온유의 등하교를 바래다주라고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게다가 어젯밤의 일이 있고 난 뒤, 강이한은... 사실 지금 어떻게 이유영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전에 서주로 가기 전에 이미 짐작은 했었다.하지만 그때도 그저 상황을 마주하기 두려워 피했던 것이었다.그리고 어젯밤에 사실을 확인한 후로... 강이한은 도대체 어떤 태도로 이유영을 마주해야 할지 더 갈피를 잡지 못했다.강이한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유영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아침 식사가 끝난 뒤, 강이한는 이온유가 한 말 때문에 직접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그동안 강이한은 이온유가 등교할 때 바래다준 적은 많았어도 하교할 때 데리러 간 적은 별로 없었다.하지만 이온유는 원래 예민한 성격인 데다가 같은 반의 친구들은 다
결국, 강이한은 엄청나게 공을 들인 끝에 이온유를 어르고 달래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조기 교육 센터로 들어갔다.이와 동시에 이유영은 다른 엄마들과 함께 교실에 앉아서 월이를 안고 선생님 따라 게임을 하고 있었다.아무리 이유영이 문을 등지고 앉아 있다고 하지만 강이한은 유리창을 통해 이유영의 모성애가 가득 담긴 다정한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이유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그녀의 몸에는 인내심이 여전히 배어있었다. 지금만 봐도 아이에게 엄청나게 인내심 있는 이유영을 볼 수 있었다. 강이한은 두 손에 주먹을 꾹 쥐었다.반 시간 뒤, 서재욱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 안에서 강이한은 이유영과 아이의 일을 서재욱에게 알려주었다.얘기를 마친 뒤, 마지막에 강이한은 이렇게 말했다.“난 당신이 아이를 데려갔으면 해!”“...”이 말을 들은 서재욱은 이마를 짚었다.다행히 이유영이 사전에 서재욱에게 얘기를 해줬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강이한의 전화를 받으면 정말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었다.서재욱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 모금 들이켜고는 전화 안의 강이한에게 말했다.“당신 정말 유영 씨를 사랑하는 거 맞아?”“서재욱!”“나더러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는 목적은 유영 씨더러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거야?”말이 끝나자, 순간 공기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목적이라?’그랬다. 이유영은 반드시 한지음의 아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강이한은 오늘 같은 장면을 다시 이온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강이한이 말이 없는 것을 보자 서재욱도 대충 비슷한 뜻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서재욱이 입을 열었다.“내가 말하는 거 잘 들어. 아무리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간다고 해도 유영 씨는 절대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더군다나, 유영 씨는 이미 내 아이가 있어. 나도 이제 알게 된 이상,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줘야 하나 고민 좀 해봐야겠어. 안 그래?”“서재욱!”“강이한, 네가 그동안
서재욱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하였다.하지만 전화 반대편의 강이한은 서재욱의 이 결정을 듣더니, 순간 더욱 위험하게 변했다.“네가 감히!”그는 거의 이를 꽉 깨물며 두 단어를 내뱉었다.“넌 한지음의 딸에게 온전한 가정을 줄 거지? 그럼 반드시 유영 씨를 놓아주어야 해. 넌 그걸 똑똑히... 알아야 해.”여기까지 말하자 서재욱의 말투는 조금 더 심각해졌다.그 후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넌 아직도 모르겠어? 한지음과 관련된 거를 택하면, 유영 씨를 얻을 수 없고 반대로 유영 씨를 얻으려면 반드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서재욱의 말투는 무척 무거웠다.마치 큰 돌덩이처럼 무거웠으며 세게 강이한의 가슴에 내려앉았다.서재욱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이유영은 한지음과 관련된 일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서재욱의 말대로, 한지음이 있으면 이유영이 있을 수 없었다.그리고 이유영을 얻으려면 한지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온유는 고작 아이였다. 강이한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서재욱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유영이 때문에 지음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음이가 무엇을 희생했는지도 모르면서, 지음이가 유영을 위해 목숨까지 내다 바쳤다는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두 사람 중 한 명만 남길 수 있다는 소리를 하는 거지?’...강이한은 다시는 이온유가 파리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지 못하게 서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월이를 데려가라고 말하려던 것이었다.하지만 오히려 서재욱에게서 이유영에게 한 발짝 다가가겠다는 통지를 받았다.이유영은 서재욱의 전화를 받고 조금 전 강이한이 그에게 전화했다는 것을 듣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올랐다.“재욱 씨, 제가 미안해요...”이유영은 이마를 짚었다.강이한이 이토록 미친 줄은 몰랐으며 더욱이 서재욱에게 이런 전화를 할 줄 이유영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재욱 씨더러 월이를 데려가라고 하다니? 강이한 이놈은 왜 가서 처
이유영이 조기 교육 센터에서 나올 때, 강이한은 아직도 밖에 있었다. 이유영은 무의식적으로 월이의 얼굴을 자기의 품속으로 숨겼다.온 오전동안 게임을 하고 논 월이는 방전이 되어 이미 이유영의 품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조용하게 잠들어서 말썽을 피우지 않았기에 참 다행이었다.“내가 이미 서재욱에게 말해놨어!”이유영을 본 강이한은 아주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이유영은 지금 품속에 아이를 안고 있어서 행동이 불편해서였지 안 그러면 바로 강이한의 얼굴을 찢어버렸을 것이었다.‘강이한 네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이유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를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지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유영아. 서씨 가문에서는 서재욱이... 하기를 줄곧 바라고 있어...”“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강이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유영은 소리를 내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녀는 그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강이한을 보면서 눈에는... 싸늘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승낙하는 거야?”이유영의 한 마디는 강이한을 깜짝 놀라게 했다.어찌 됐든 이유영이 월이에 대한 감정은 강이한도 눈에 담고 있었다. 게다가 거의 밤마다 이유영이 직접 아이를 재우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이유영이... 이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이유영이 한 말은 강이한의 망상을 철저하게 깨부쉈다.“당신은 내가 아이를 서재욱에게 넘겨주고 한지음의 딸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거잖아. 강이한, 당신은 정말 문제가 이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해?”‘너무 천진난만한 거야!? 아니면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거야?’이유영이 이온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절대로 그녀와 강이한, 한지음 사이의 과거에 있었던 갈등 때문이 아니었다.‘내가 한지음에 관한 일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강이한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강이한은 왜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도대체 강이한이 어디서 난 자신감인지 왜 여기서 이유영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전 세계에 진우의 과거를 알리겠다고?’어젯밤 강이한은 미친 듯이 반산월로 찾아와서 여진우가 어렸을 때 제일 비참했던 모습을 이유영의 앞에 내놓았다.그것들은 여진우 마음속의 상처들이며 그의 풀어낼 수 없는 아픔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만약 그것들이 강이한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 앞에 드러난다면 그럼... 진우는 어떤 비판을 받게 될까?’“강이한!”이유영의 말투는 조금 긴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눈앞의 강이한을 보며... 이건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는 생각이 들었다.일단 강이한이라는 사람의 손에 잡히기만 하면 벗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다.“당신 그걸 알아? 이온유가 파리에 나타난 건 다 그 아이 배후의 사람이 손수 만들어낸 계획이고 음모야.”“하지만 온유는 고작 아이일 뿐이잖아!”이온유의 출현에는 음모가 들어있다는 것을 강이한도 알고 있었다.이정은 이온유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조사해 내서 강이한의 눈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온유가 어릴 적부터 진 아주머니와 함께 지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 도우미는 죽으면서 그제야 이온유에게 그녀의 엄마가 누구며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었다.한지음이 이온유를 낳은 건 맞지만 아이의 기억 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온유는 고작 어린애인 거 알잖아? 하물며 이 음모 때문에 나더러 아이를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이야?”강이한은 실망하면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것이야말로 사건의 근본이었다.이온유의 일에서 도대체 누구 제일 가증스러운 사람인가? 그건 이온유를 이용하고 이 음모를 계획한 배후의 사람이었다.하지만 아이는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이렇게 엮이게 된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을 보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나랑 당신 사이가 불가능한 건 내 아이 때문이 아니라고. 그리고 내 아이 때문에 이온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아니야.”“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번 생각해 봐.”“...”이유영은 머리가 띵 해나는 것만 같았다.강이한
여진우가 오늘의 성과까지 이룬 건 도중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심지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고 얼마나 절망스럽게 버텨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됐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여진우는 이유영의 등을 토닥이면서 위로하였다.하지만 이유영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그의 눈 밑에는 일말의 날카로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한참 지나서야 이유영은 여진우의 위로하에 상태를 회복하였다.그리고 여진우는 몸을 돌려 나가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반대편의 사람은 아주 빨리 전화를 받았다.“도련님!”“어떤 사람이 내 뒷조사를 했어?”비록 그의 과거들은 다 깨끗하게 지워졌지만 누군가가 마음을 먹고 조사한다면 무조건 캐낼 수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터뜨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유영이의 오늘 모습을 보니 알아낸 건가? 아니면 유영이의 성격대로라면 주동적으로 나를 오빠라고 부를 리 없는데. 게다가 주동적으로 나를 안을 리도 없는데.’유일하게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군가가 이 일로 이유영을 협박했다는 것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반대편에서 대답하였다.“강이한 도련님이네요!”이 말을 듣자, 여진우의 눈 밑은 조금 어두워졌다.“알겠어.”이 세글자는 아주 싸늘하게 내뱉어졌다.‘이 일로 유영이를 협박한 거였구나? 강이한도 이제 막다른 길에 들어서서 유영이한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구나?’그랬다. 강이한도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였지 아니면 이런 짓까지 벌일 리가 없었다.점심때, 강이한은 이온유를 픽업해서 점심을 집에서 같이 하였다. 하지만 갑자기 불청객 한 분이 나타났다. 여진우였다...식탁에서 강이한은 이온유에게 말했다.“온유야, 먼저 먹고 있어. 아빠가 손님 좀 만나고 올게.”“네.”이온유는 마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전부 지나간 것처럼 아주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하지만 이온유를 잘 아는 사람만 알 수 있었다.아이는 일단 상처를 받으면 마음속에 오래도록 트라우마로 남게
강이한은 오로지 이유영을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 다른 건... 챙길 겨를이 없었다.여진우는 냉소를 지었다.“그럼, 네가 유영이한테 줄 수 있는 게 뭔데?”결국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진우는 강이한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집요한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물었다.강이한이 이렇게 집요하게 구는 것은 마치 이유영이 아니면 안 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뭘 가져다줄 수 있을까?“내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유영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그래. 그럼, 지금 당장 그 아이를 데리고 파리를 떠나!”여진우는 비꼬면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그랬다.이건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선택제였다. 강이한은 물러설 길이 없었다.이유영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온유를 보내야 했고, 이온유를 택하면 그럼, 이유영은 쉽게 타협할 사람이 아니었다.강이한은 마음이 얼음장처럼 시렸다.“봐봐. 이렇게 작은 요구도 못 들어주면서!”강이한이 답이 없는 것을 보자, 여진우는 쌀쌀해진 말투로 말했다.“넌 아무것도 모르면서!”“우린 알 필요도 없잖아. 그저 어떤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떤 것은 없는지만 알면 되잖아.”이것이 바로 그들과 이유영의 입장이었다.이유영은 따로 무엇을 알 필요가 없었다.‘유영이가 이온유라는 애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맞지만 단지 강이한 이 사람만 놓고 봐도 유영이가 견딜 수 없는 거잖아.’강이한은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처럼 아팠다. 그 후, 그의 눈 밑에는 차가운 빛이 역력했다.“참으로 고집이 세네!”강이한의 모습을 보니, 여진우는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말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강이한은 지금 아무것도 귀에 들어가지 않는 남자였다.여진우가 일어선 순간, 강이한은 끝내 입을 열었다.“만약 당신이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선택했을 거 같아?”‘만약 나였다면?’여진우는 높은 곳에서 강이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난 절대로 상황이 너 같은 지경에 이르게 자신을 허락하지
이유영이 짜증으로 가득 찼을 때, 소은지는 아주 신속하게 엔데스 일곱째 사모님의 역할에 이입했으며 활력이 왕성하게 상류사회를 돌아다녔다.소은지가 일곱째 도련님인 엔데스 현우의 아내였기에 그녀를 본 사람들은 다 그녀를 공손하게 대했다.자선 파티에서,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더러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불사하고 자기를 위해 그림 한 포기를 경매해 오도록 했다.하지만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자선 파티에서 마침 설유나랑 마주쳤다.“참 여우 같은 년. 넌 우리 명우 오빠한테 버림받았다고 돌아서자마자 바로 현우 오빠한테 들러붙냐!”설유나의 말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커다란 짝 소리와 함께 따귀가 설유나의 얼굴에 내려졌다.순간 설유나는 입안에서 피 맛을 느꼈으며 입가는 아직 얼얼하게 뜨거웠다.소은지가 얼마나 큰 힘을 써서 때렸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설유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소은지를 쳐다보았다.“너, 네가 감히 날 때려?”“아파?”“나, 나 가서 명우 오빠한테 다 이를 거야!”설유나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소은지를 보며 순간 제자리에서 폭발하였다.‘이 년이 어떻게 감히 날 때려?’하지만 설유나의 협박을 소은지는 전혀 마음에 담지 않았으며 입을 열었다.“나이를 30살이나 먹은 아줌마가 돼서 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거야? 참 남들이 웃겠어!”“뭐라고? 너 이 여우 년이 누구더러 아줌마라는 거야?”설유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소은지는 설유나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그녀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화내지 마. 당신 신장을 생각해야 지. 감당하지 못하면 어떡해?”소은지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우면서도 조롱의 뜻이 담겨있었다.설유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는데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이 년이, 이 년이!’설유나는 소은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소은지가 미웠다. 화가 난 설유나는 발악하면서 소은지한테 달려들 기세였다.하지만 소은지는 그저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기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
이유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허리에 전해진 강한 힘이 이유영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익숙한 기운이 스며들며 이유영을 감싸안았다.중심을 되찾는 순간, 이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이한이었다.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와아아...”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유영의 차가운 눈빛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월이야, 월이야.”이유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엄마, 무서워요!”“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작은 아이는 두려운 목소리로 강이한을 보고 외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한은 아이의 입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나쁜 사람... 이의 기억 속 자신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그래, 이게 바로 그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존재가 남긴 기억이었다.“그래, 맞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어떤 나쁜 사람도 월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강이한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광경이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소란을 들은 하인들과 집사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강이한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이내 임소미와 정국진도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임소미는 강이한을 보자마자 적대감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여긴 왜 온 거야?”임소미의 말투는 한 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유영이를 좀 봐.”정국진이 임소미에게 말했다.임소미는 강이한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이유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 감정을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
이유영은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이 바로 알프산 방문 때문이라는 사실도.알프산을 다녀온 후 이유영의 시력은 점점 더 악화하였고 자극을 받은 듯한 이상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강한 빛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갈 생각을 했니?”임소미는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이제 이유영이 어디를 가든 임소미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장소가 이유영의 눈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엄마, 정말 별일 아니에요...”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말하지 마!”임소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진심으로 말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도 의사가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눈 덮인 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러다 이번에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이유영 자신도 몰랐다.“잊었다고? 그 잊음 때문에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임소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임소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엄마, 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네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랄 뿐이야, 알겠니?”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이유영은 그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이유영은 손을 뻗어 임소미의 가냘픈 허리를 감쌌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임소미는 여전히 이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임소미는 평소에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알겠어요, 엄마. 화 풀어요, 네? 저, 수술받을게요.”“유영아...”“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네?”임소미의 품에 안긴 이유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임소미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안쓰러웠다.임소미는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우지는 빠르게 물을 닦아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운 물기는 이유영에게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다.언젠가 이유영의 두 눈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 공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서서히 퍼져 나왔다.아침에 물 한 잔을 쏟은 이후, 이유영은 하루 종일 우지와 우현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이제 옷장 속에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의 옷들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나머지 색깔들은 이미 모두 희미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다.아침 식탁.우지는 조심스럽게 죽을 이유영 앞에 놓으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아직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이유영이 숟가락을 집으려고 할 때, 우지는 바로 숟가락을 건네주었다.“고마워요.”이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센 혼란이 몰아치고 있었다.가슴은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다.그때, 임소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엄마.”“왜 아침 같이 먹으러 오지 않았어?”“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 먼저 드세요.”“그럼 오전에는 꼭 돌아와서 월이랑 같이 놀아 줘. 네가 이곳에 안 온다고 하면 월이가 속상해할 거야.”“네, 알겠어요.”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가슴이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월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전화를 끊고 난 후.이유영의 세계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이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진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만약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이유영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하셨을까?다행스러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아침 식사 후.이유영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백산 별장으로 돌아갔다.임소미는 이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날, 한지음이 떠난 후, 이유영은 손으로 배를 감싸안고 한동안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을 떠난 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당시의 이유영에게는 눈을 뜨면 온통 어둠뿐인 날들이 이어졌고 어떤 처참한 미래가 닥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만 같았다.강이한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확고했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알게 되는 순간, 그 용기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이유영은 두려웠고 미칠 것 같았다.자기 삶이 아무리 비참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유영이 강이한의 결정을 기다리기도 전에, 이유영 스스로 선택을 내리기도 전에 모든 것이 한 차례 대화재로 끝이 났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한지음을 용서하라고 했다.한지음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이유영을 위해 희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강이한은 결코 알지 못했다.그것이 오직 자신의 문제였다면, 어쩌면 모든 것을 잊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아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용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이유영이 아이를 위해 온갖 고통을 겪었던 그 마지막 시간 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다.한지음이 이유영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든 한지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네, 좋아요! 사모님께 가서 바로 말씀드릴게요. 사모님께서 아가씨가 수술을 빨리 받겠다고 결정하신 걸 들으시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우지가 기쁜 얼굴로 방을 나가는 모습을 본 이유영은 그저 고개를 천천히 저을 뿐이었다.그날 밤.이유영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이유영에게조차 쉽지 않았다.오랜 세월 지켜온 신념들이 의사의 진단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어두운 방 안.어스름한 방안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유영을 응시하고 있었다.차가운 손가락 끝이 이유영의 목 아래 울퉁
의사가 이유영의 상태를 면밀히 점검했다.그 결과, 백산 별장과 반산월은 조명에 한층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임소미와 정국진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조명을 다시 교체했다.밤이 되면 이유영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낮에도 햇빛이 강하면 외출을 엄격히 제한했다.임소미가 이유영의 눈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눈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이 신중히 조율되었다.백산 별장에 밤이 찾아왔다.사람들은 모두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느꼈고 시야가 흐릿한 이유영조차도 조명이 이전보다 더 어두워졌음을 느꼈다.“엄마, 이 정도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미 제대로 볼 수 없는걸요.”이유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유영이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지금의 이 조명은 이유영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하지만 임소미는 딸의 말을 단호히 받아쳤다.“나도 알아. 이 조명이 사람들한테 너무 어둡게 느껴질 거라는 거. 그래도 강한 빛이 네 눈에 더 큰 손상을 줄 수도 있잖아.”임소미는 단호히 말했다.“...”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조명은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눈에 자극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됐어. 엄마 말대로 해. 네 수술이 성공하기 전까진 이 조명 상태 그대로 유지할 거야.”임소미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이유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알겠어요.”이유영은 엄마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임소미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이유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그날 밤.이유영이 반산월로 돌아왔다.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에게 말했다.“조명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이제 아가씨의 눈에는 크게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안경은 꼭 착용하셔야 합니다.”“안경이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예전엔 눈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안경을 굳이 쓰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졌다.
임소미의 가슴은 비수로 찔린 듯 아팠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끝에 다시 찾은 딸이니,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조금 전, 의사가 임소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이유영 씨가 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의사의 한마디는 그녀가 실명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했다.“정말 강이한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어!”임소미는 울먹이며 감정을 터뜨렸다.강이한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이 눈이 이렇게 된 이유는 모두 강이한이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을 감옥에 넣었기 때문이다.만약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유영도 그 끔찍한 화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임소미는 지금껏 이유영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딸의 흐릿해진 눈은 매 순간 그녀에게 그날의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이유영은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던 걸까?“그만하세요, 엄마.”강이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유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강이한에 대한 이유영의 감정은 이제 미움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는 몰랐다.이유영 역시 한 아이의 엄마였다. 자식이 상처받을 때 부모가 느끼는 그 분노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바로 그때도 이런 감정이었다.강이한이 아이와 관련된 일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유영은 그의 목을 비틀고 싶은 심정이었다.더군다나 임소미는...어릴 적부터 이유영과 함께하지 못했기에 딸이 이런 상처를 입은 걸 본 순간 느꼈을 분노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수술하면 안 되겠니?”임소미의 목소리는 떨림으로 가득했다.그래, 수술.이 눈은 어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그 끔찍한 화재로 인해 이유영의 두 눈은 너무나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기본 재활치료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오직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엄마, 수술은 저한테도 위험
박연준은 전기봉 하나로도 이미 머리가 아팠다.그런데 이유영까지 그에게 지나치게 냉혹하게 굴었다.이유영의 눈에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강이한에게 비친 이유영의 모습은 모든 것을 잃고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이온유가 집으로 돌아왔다.아이에게 놀고 싶다는 욕구는 본능이었다. 퇴원 후 며칠간 쉬고 나니 매일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아빠.”온유는 어느새 훌쩍 자란 모습이었다.온유가 방으로 들어온 것을 본 강이한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며 물었다.“어디 갔다 왔어?”“놀이공원이요!”놀이공원 이야기가 나오자, 온유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그곳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아마도... 어릴 적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에야 놀이공원을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이번 달은 놀이공원은 쉬자, 알겠지?”“네.”온유는 작은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아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아이였다.놀기 좋아하면서도 말을 잘 들었다.강이한은 온유를 안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몸이 이제 막 나았으니,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해.”“정 아저씨가 한적한 곳만 골라 데려갔어요.”온유는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공공장소는 어디든 위험이 도사릴 수 있었다.한 차례 병을 겪고 난 뒤, 강이한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온유가 그런 곳에 가는 것이 늘 불안했다.“온유야.”“네, 아빠.”“아빠가 며칠 동안 출장을 가야 해. 집에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겠지?”“아빠는 온유를 안 데려가요?”아빠가 출장을 간다는 말에 작은 아이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그도 그럴 것이.이온유에게 있어서 강이한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그런 아빠가 집을 떠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서운함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었다.강이한은 말했다.“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네 몸은 이제 막 나아졌잖아, 응?”“네.”작은 아이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