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심하겠습니다!”이유영의 인정을 받은 후, 루이스는 다시 마음속의 경종을 울리고는 더욱 신중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이유영은 재차 당부했다.“절대로 은지를 파리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돼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이유영의 세상도 그제야 조용해졌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한참이나 파도가 일렁이며 잠잠해지지 않았다.파리에 난리가 났다! 여기서... 더 혼란스러워지면 안 되었다.이유영의 세상도 마찬가지로 더는 난리가 나면 안 되었다!...사실 이유영은 현황에 안주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함부로 자신을 짓밟게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나염을 보자 이유영은 박연준이 어젯밤에 다시 자신을 이용한 것이 떠올라, 이제 더 이상 표면상의 체면도 유지하기 귀찮았다.“말해요. 무슨 일인데요!’“형님께서 아가씨더러 서주로 가시라고 했어요.”이유영은 눈살을 치켜들며 그윽하고 짙은 눈빛으로 나염을 바라보았다.‘이런 뻔뻔스러운 자식들!’“하 참, 이유는?”이유영의 말투는 별로 좋지 않았다.‘이런, 박연준...’이유영을 바라보는 나염의 눈빛에는 좀처럼 껄렁거리는 느낌이 없었으며 그저 깊고 엄숙했다. 이유영은 그런 나염을 바라보며 비꼬는 느낌이 더욱 진해졌다.나염이 입을 열고 말했다.“당신 지금 여기에 남아있어봤자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의 핍박만 받을 거예요. 당신은 그 사람한테 게임이 안 돼요!”“...”“정씨 가문은 엔데스 가문의 이익과 엮이는 걸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나염의 말이 맞았다!정씨 가문은 마땅히 피해야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년간 엔데스 가문과 맞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었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이 일 때문이라면 그쪽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아주 냉정하게 거절했으며 그녀의 말속에는 온통 박연준에 대한 거리감이 느껴졌다.지금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박연준이든 강이한이든 이유영은 다 멀리해
‘박연준은 전에 나한테 엔데스 명우가 정씨 가문과 관계를 엮는 건 이로써 자기가 엔데스 가문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려고 한다고 말했으면서 박연준 본인은 신변의 나염 보고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라니!?’ 솔직히 말하면 박연준이나 엔데스 명우나, 이들은 다 이유영에게 있어서 도긴개긴이었다.“형수님 지금 가실 건 까요?”변화무쌍한 이유영의 안색을 보며 나염의 말투는 엄숙하면서도 강인했다.“나 지금 연준 씨하고 통화 가능해요?”“당연히 가능하죠!”나염은 핸드폰을 꺼내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고는 이유영에게 핸드폰을 건넸다.핸드폰 화면에는 전화번호가 반짝거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더니 박연준의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유영아.”“연준 씨, 제가 지금 어떤 말로 당신을 형용하면 좋을까요?”박연준은 외삼촌을 서주로 유인시켜 원래 혼란하던 국면을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게다가 이로써 강이한을 견제하는 목적에 달하였다.심지어 지금은 이유영더러 서주에 오라고까지 했다. 왜일까? 그건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랑 손을 잡아 파리에서의 엔데스 명우의 세력을 키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어떤 좋은 점이든 박연준은 빠짐없이 다 챙겼다!“유영아, 먼저 서주로 와요. 그럼 내가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극도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아니나 다를까!박연준은 이렇게 사이가 틀어져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 이 세상에는 박연준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 남자는 모든 좋은 점들을 다 챙기려고 했다.근데 그것도 이유영이 도대체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를 봐야 했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외삼촌이 이 사람들과 어떤 대립 면에 섰는지 이유영도 다 알아챘다.이렇게 된 이상, 다들 서로 숨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그럼... 대놓게 철저하게 까놓고 숨기지 말자.’“엔데스 명우는 비록 날 이용하는 거지만 이 싸움에서 내게 적지 않은 이득을 줬어요.”“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럼 당신은 누구랑 묶이고 싶은데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유영의 얼굴색은 다시 어두워졌다.지금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아담한 몸에는 온통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당신도 내가 바로 전에 연준 씨랑 사이가 틀어진 것을 봤잖아요. 여기서 내게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제발 내 인내심을 그만 긁어요!”이유영은 또박또박 엄청 매섭게 말을 남겼다.“...”나염은 자기 반대편에 있는 이 체구가 아담한 여인을 보면서, 이 사람이 예전에 강씨 가문에서 모욕을 당하던 그 새댁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만약 엔데스 명우가 정말 소은지를 찾아내서 돌아온다면 난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자신 있는데!”“...”이 말을 들은 나염은 순간 몸이 더욱 굳어져 버렸다.‘내가 소은지로 이유영을 협박했는데 지금 도리어 온갖 정성을 다해 소은지의 행방까지 보호해야 해!?’아니면 소은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파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이유영은 무조건 다 죄를 나염의 머리에 씌울 게 분명했다.나염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마저 얘기를 이어 나갔다.“박연준이 서주에 갔지만 파리에 있는 동안, 그의 관건은 풍산이었죠?”“형수님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데요?”형수라는 호칭에 대해 이유영은 불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걸고넘어질 여유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이유영은 자신의 이쁜 네일을 어루만지며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풍산은 파리를 위해 반쪽짜리 서류를 보관해 두었죠.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엔데스 가문의 손에 들어있고요. 그럼, 엔데스 가문은 파리의 반쪽 주인으로서 그동안 줄곧 박연준 손에서 그 반쪽짜리 서류를 갖고 싶어 하겠죠?”말이 끝나자,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나염의 표정은 순간 변했다.나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 나갔다.“제 추측이 맞다면 엔데스 가문이 그동안 풍산이랑 줄곧 사이가 안 좋았던 건 박연준이 그 반쪽짜리 서류를 엔데스 가문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럴 뿐만 아니라 반대로 엔데스
나염은 이유영의 표정을 바라보며 도무지 그녀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이유영은 나염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시울을 올려 나염을 바라보며 웃음기 가득 찬 눈빛으로 그에게 되물었다.“생각해 봐요. 만약 엔데스 가문에서 전기봉이라는 자에 대해 알아냈다면 당신들은 지금쯤 기필코 그 반쪽짜리 서류를 빼돌리느라고 온갖 심혈을 다 퍼부어야겠죠?”“...”“엔데스 가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은 엄청나게 많잖아요. 만약 사람마다 다 전기봉을 지켜본다면 당신들은 아마 서류를 빼돌릴 방법조차 없겠죠?’나염은 그저 냉기가 발밑부터 시작해 온몸에 퍼지는 것만 같았다!아까 나염이 갖고 있던 협박과 강인함은 지금, 이 순간 여우 같은 이유영의 미소에 와르르 무너졌다.‘이 여자 너무 무서운 사람이네.’만약 진짜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가면 이 여자 때문에 더욱더 통제력을 잃게 될 게 분명했다.“나염, 우리 둘이 내기할까요?”“무슨 내기요?”“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과연 소은지에게 더 관심을 가질지 아니면 그 반쪽 서류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지?’“형수님 다른 일 없으시면 저 먼저 가볼게요!”이 말인 즉 내기를 안 하겠다는 거였다.이유영은 태연하게 말했다.“이유영 아가씨라니까요.”“네! 이유영 아가씨.”이유영은 웃었다.뒤돌아서 가는 나염의 뒷모습을 보며 이유영 입가의 웃음기는... 점점 사라졌다!‘감히 날 협박해? 이 사람들 도대체 어디서 난 자신감이야. 도대체 왜 언제 어디서든 날 협박하려 하는 거지?’...이유영은 아주 손쉽게 박연준이 다시 자기를 이용하려는 것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강이한과 정국진 역시 그녀를 서주의 혼란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다.그래서 서주 쪽의 혼란한 국면은 잠시 이유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서주 쪽은 조용해졌지만, 눈앞의 엔데스 가문은 여전히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다.이유영이 박연준을 물리칠 수 있으면 당연히 엔데스 명우와도 빙글빙글 굴레를 돌며 대치를 할 수 있었다.그녀는 박연준의 체
비록 이유영은 아이에게 별 적의는 없었지만 이렇게 큰 아이가 자기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좀 불편했다. 그리고 이건 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안민은 이유영을 탕비실로 잡아당기고는 바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안절부절못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보며 물었다.“이 대표님, 대표님께 확실히 자식이 없으신 거 맞습니까?”‘아니!’이유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안민은 어두워진 이유영의 얼굴을 보며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대표님을 찾으신대고 했습니다.”“저를 찾는다고요?”“네. 그리고 또...”“또 뭐라고 했어요?”“또 대표님이 자기의 엄마라고 했습니다!”“...”이유영의 안색은 빨개졌다가 다시 파래지고 다시 보라색으로 변했으며 변화무쌍했다.‘그래서 아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분위기가 이상했던 거구나!? 하루아침 만에, 사람들은 다 나를 자기 딸을 버린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이유영은 자신이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왔는지 모른다.방금까지 자고 있던 아이는 지금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있었으며 커다란 두 눈으로 경계하고 대비하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아이 눈 밑에 드러난 적대 의식을 버리면 이 아이는 정말로 이쁘장하게 생긴 건 확실했다.“아가야, 넌 누구예요?”이유영의 말투는 이미 최대한으로 부드러웠다.아이의 키로 봐서 이 아이는 대략 열 살쯤 되어 보였다.아이의 옷차림은 아주 정교했으며 손에는 바비 인형을 안고 있었다. 이유영이 자신에게 묻는 걸 들은 아이는 억울한 듯 고개를 숙였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다시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왜 이러는 거지? 왜 억울한 표정을 짓는 거지?’요즘 이유영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겨우겨우 서주와 엔데스 명우에 관한 일을 처리했는데 지금 갑자기 아이 한 명이 나타나서 이유영의 딸이라고 하다니? 누구라도 이런 일을 당하면 다 마음이 안 좋을 것이었다.특히 이유영...필경 지금 이유영의 신변은
이유영은 손에 들고 확인했다.‘이온유, 이름은... 맞고!’접혀 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펴서 본 1초 만에 다시 탁하고 접었다.여기서 이유영의 분노 정도를 충분히 보아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가족관계증명서의 모친 항목 뒤에 바로 이유영의 이름이 있었다. 심지어 생년월일, 주민등록 번호까지 세세히 적혀있었다...정말이지 상대방의 계산은 이유영에게 발을 뺄 구멍조차 주지 않았다.“안민 씨!”“네, 대표님.”“먼저 나가 있어요.”“대표님, 진정 좀...”이 순간, 이유영 몸의 기운을 느낀 안민은 정말 이유영이 저 아이를 창밖으로 내다 버릴까 봐 걱정되었다.이유영은 안민을 세게 째려보았다.안민은 바로 타협했다.“저 바로 나가보겠습니다!”아유, 안민은 지금 자기 앞가림도 힘들었다.안민이 나가자, 사무실에는 이유영과 이온유 두 사람만 남았다. 열 살짜리 되어 보이는 아이는 세상 물정 다 알게 생겼으며 눈빛도 엄청 날카로웠다.“그만 훌쩍대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난 네가 울기만 할 줄 아이라는 게 믿어 않져!”이건 사실이었다!‘여기까지 찾아온 아이이니만큼 만만하진 않겠지?’어린아이는 역시 또 훌쩍거리기 시작하면서 한 쌍의 촉촉해진 큰 눈시울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손에 든 가족관계증명서를 흔들며 물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심지어 증명서 위의 날짜는 다 5년 전으로 되어있었다!?‘이 아이 배후의 사람 속셈이 얼마나 깊길래 이렇게 5년 전부터 나에 대한 계산이 시작된 거지!?’이온유는 이유영을 한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진 아줌마께서 내가 다 컸으니 이제 당신을 찾아와도 된다고 했어요!”“진 아주머니가 누구예요?”“그분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이 서류들을 제가 줬어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돌아가셨으니, 증인도 없는 거야?’‘아이고 이런 도대체 누구의 아인데!?’‘왜 날 찾아온 거지?’이유영은 열심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비록 그녀는 전생에서 생을 건너
“엄마.”아이는 자기의 작은 손으로 이유영의 손을 꼭 잡았다.이유영은 아이를 보면서 순간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 섞여서 난리가 났다.그녀는 얼떨결에 무슨 정신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안민은 이유영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와서 물었다.“대표님, 어떻게 되셨습니까?”안민의 언어는 온통 걱정들로 가득했다!이 일주일 내내 이유영은 도저히 갑자기 나타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줄곧 안민이 아이를 돌봐주었다.지금 드디어 검사 결과도 나왔다.“안민 씨.”“네.”“피가 안 섞였는데 혈족관계 검사에서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을까요?”이유영은 낮은 소리로 물었다.“의학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죠!”이유영은 순간 절망했다.‘이게 다 무슨 일이야 정말.’사무실의 문을 닫은 후, 이유영은 아이를 자기의 앞에 놓고서는 아이의 생김새에서 뭐라도 얻어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하지만 아무래도 이유영의 눈이 안 좋은 이유 때문인지 아이의 생김새를 주변의 사람들과 결합할 수 없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심지어 무수한 가능성이 떠올랐다.‘설마 망나니 아버지가 또 밖에서...? 아니지, 아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언제인데. 그럼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내내 이유영은 단 한 번도 이온유를 만나주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어린아이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는 물었다.“온유야?”“네.”“진 아주머니께서 또 뭐라 했었어요?”이유영은 아이와의 교류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분명했다.하지만 이온유는 입을 열고 대답했다.“진 아줌마께서 엄마말을 꼭 잘 들으라고 했어요. 그래야 엄마가 날 좋아할 거라고.”이유영은 머리가 깨지는 것만 같았다.“난 네 엄마가 아니야.”말이 끝나자, 아이의 눈에는 억울한 눈물이 글썽했다.이유영은 이마를 짚으며 어이가 없었다.‘얘 지금 뭐 하자는 거야!?’“울지 말고, 난 아니야. 됐고 아가야 일단 울지
한지음!지난 생이든 아니면 이번 생이든 다 이유영의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은 사람, 그리고 이유영의 인생을 철저하게 깨부순 존재였다.그렇게 안 좋은 기억들, 불쾌한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치솟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지음이 이유영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면서 언니라 부르던 장면에서 멈췄다...!이유영은 동공이 움츠러들면서 최익준을 바라보았다.“죽었다고요?”“네!”“어떻게요?”이유영은 자기도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갑자기 이렇게 죽었다고!?’‘헉...!’“드라바강 부근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랍니다.”“...”안색이 안 좋던 이유영의 얼굴은 순간 더욱 어두워졌다.한지음이란 존재는 이유영에게 있어서 정말 극악무도한 원수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갑자기 이런 소식을 들으니, 이유영도 마음속 흔들림을 금치 못했다.눈길을 돌려서 소파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본 순간, 이유영의 머릿속에는 번뜩 무언가가 떠올랐으며 마음속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언제의 일이에요?”“보름 좀 넘었답니다!”‘보름?’‘한지음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이 언제였더라? 20일 전? 그러니까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 아이를 돌보던 진 아주머니가 돌아간 시간이랑 비슷하잖아?’‘이건 도대체 우연일지 아니면...!?’아이를 바라보는 이유영의 눈빛은 몇 푼 더 그윽해졌다!“최익준 씨.”“네!”“전에 한지음이 지냈던 병원으로 가서 한지음의 유전자 좀 받아오세요.”이유영은 심오한 말투로 말했다.이유영은 자신의 신변에 또다시 한번 천번지복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다.이건 이유영 이때의 느낌이었다.많은 귀찮은 일의 끝은 어쩌면 끝이 아니라 반대로... 새로운 시작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진작에 이런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막장다운 일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최익준은 이유영이 무엇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채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