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침묵을 지켰다.이 시기에 엔데스 명우가 강세로 결혼을 강요할 게 분명했다.엔데스 가문의 상속자에 관한 후계 작업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정씨 가문은... 틀림없이 엔데스 명우의 키 카드였다!근데 그의 손에는 정씨 가문 말고도 다른 카드들이 있을 게 뻔했다.하지만 정씨 집안과의 인연이 시작된 이상, 엔데스 명우는 그걸 엔데스 가문의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그래서 그는 이유영을 손에 꽉 잡고 있어야지 마음이 든든했다.이유영은 어젯밤 외삼촌의 당부가 떠올랐다.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 문제에 직면할지 몰랐다.이유영도 알고 있다...엔데스 명우의 요구를 절대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을. 일단 그와의 혼인을 승낙하면, 그럼 진정한 번거로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게다가 소은지...두 사람의 날카로운 눈빛은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대치하고 있었다.갑자기 집사가 들어오면서 이 정적을 깨뜨렸다.“아가씨.”이 한마디가 이유영과 엔데스 명우의 대치를 깨버렸다.엔데스 명우의 미간에는 불쾌한 기운이 서렸다. 다른 한편 이유영은 집사를 바라보았다.“나염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이유영은 엔데스 명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피우면서 박연준의 사람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저 어깨를 들썩이었다.하지만, 이때 이유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젯밤의 부드러운 박연준이 아니라 오히려... 그날 공항에서 당한 일이었다.“거실에서 좀 기다리라고 하세요.”“네.”집사가 나간 후, 정자에 다시 이유영과 엔데스 명우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남자는 손에 든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그윽한 말투로 말했다.“유영아, 당신도 박연준, 이 사람한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거예요.”‘너희들 다 개자식이잖아.’이때 이유영은 정말 이 말을 냅다 엔데스 명우에게 던지고 싶었다.하지만 이유영 맞은 쪽에 앉은 엔데스 명우는 말이 없는 그녀를 보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당신 외삼촌하고 박연준 다 서주로
이유영은 머릿속이 쾅 하고 터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녀는 엔데스 명우가 언제 떠났는지도 몰랐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자기와 강이한이 함께 했던 오랫동안 세월과 장면들이 끊임없이 맴돌아 쳤으며 그리고... 소름 돋는 결말이 떠올랐다.틀림없는 건...이유영의 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교내에서 제일 예쁜 애가 아니었다. 그저 아담하고 정교하게 생긴 느낌일 뿐이었다.하지만 예쁜 여자가 그렇게나 많았는데 강이한은 왜 유독 이유영에게 집착하면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던 걸까?7년이란 긴 연애를 하던 시절, 강이한은 그녀를 손바닥에 놓고 애지중지했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이유영은 마치 진짜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세상은 천번지복의 변화가 일어났다. 결혼하기 전과 달리 결혼한 후 강이한의 잔인한 대우와 기억에서 잊혀 지지 않는 불...!그 큰불! 그리고 감옥에서 일어났던 그 큰불!전부의 전부, 그리고 파리에서의 재회, 모든 것들은 다 떨쳐낼 수 없는 과거로 남았으며 이유영에게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하지만 엔데스 명우의 말 한마디 때문에 지금 두 사람의 첫 시작부터, 만남 그리고 결말까지... 지난 생이든 아니면 이번 생이든 다 미스테리한 느낌이 한층 더 해졌다.서주!‘그곳은 아주 특별한 곳이네.’‘강이한, 연준 씨 그리고 외삼촌! 도대체 이들은 서주에서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 걸까? 그리고 강이한과 외삼촌 사이에 혹시 무슨 원한이 있었던 걸까?’‘만약 정말 두 사람 사이 원한이 있었다면 엔데스 명우의 말이 설마....!?’이 순간 한 오리 냉기가 이유영의 발끝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너무 갑작스럽게 빨리 올라온 탓에 이유영은 무서운 느낌이 한껏 들었다.지잉 지잉.핸드폰의 진동 소리에 이유영은 다시 사색의 틈에서 정신을 되찾았다.그녀는 핸드폰을 마구 집어 들고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접니다.”핸드폰에서 루이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이유영은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렸다.“
“네! 명심하겠습니다!”이유영의 인정을 받은 후, 루이스는 다시 마음속의 경종을 울리고는 더욱 신중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이유영은 재차 당부했다.“절대로 은지를 파리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돼요!”“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이유영의 세상도 그제야 조용해졌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한참이나 파도가 일렁이며 잠잠해지지 않았다.파리에 난리가 났다! 여기서... 더 혼란스러워지면 안 되었다.이유영의 세상도 마찬가지로 더는 난리가 나면 안 되었다!...사실 이유영은 현황에 안주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이 함부로 자신을 짓밟게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나염을 보자 이유영은 박연준이 어젯밤에 다시 자신을 이용한 것이 떠올라, 이제 더 이상 표면상의 체면도 유지하기 귀찮았다.“말해요. 무슨 일인데요!’“형님께서 아가씨더러 서주로 가시라고 했어요.”이유영은 눈살을 치켜들며 그윽하고 짙은 눈빛으로 나염을 바라보았다.‘이런 뻔뻔스러운 자식들!’“하 참, 이유는?”이유영의 말투는 별로 좋지 않았다.‘이런, 박연준...’이유영을 바라보는 나염의 눈빛에는 좀처럼 껄렁거리는 느낌이 없었으며 그저 깊고 엄숙했다. 이유영은 그런 나염을 바라보며 비꼬는 느낌이 더욱 진해졌다.나염이 입을 열고 말했다.“당신 지금 여기에 남아있어봤자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의 핍박만 받을 거예요. 당신은 그 사람한테 게임이 안 돼요!”“...”“정씨 가문은 엔데스 가문의 이익과 엮이는 걸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나염의 말이 맞았다!정씨 가문은 마땅히 피해야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년간 엔데스 가문과 맞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었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이 일 때문이라면 그쪽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아주 냉정하게 거절했으며 그녀의 말속에는 온통 박연준에 대한 거리감이 느껴졌다.지금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박연준이든 강이한이든 이유영은 다 멀리해
‘박연준은 전에 나한테 엔데스 명우가 정씨 가문과 관계를 엮는 건 이로써 자기가 엔데스 가문을 전반적으로 장악하려고 한다고 말했으면서 박연준 본인은 신변의 나염 보고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라니!?’ 솔직히 말하면 박연준이나 엔데스 명우나, 이들은 다 이유영에게 있어서 도긴개긴이었다.“형수님 지금 가실 건 까요?”변화무쌍한 이유영의 안색을 보며 나염의 말투는 엄숙하면서도 강인했다.“나 지금 연준 씨하고 통화 가능해요?”“당연히 가능하죠!”나염은 핸드폰을 꺼내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고는 이유영에게 핸드폰을 건넸다.핸드폰 화면에는 전화번호가 반짝거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더니 박연준의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유영아.”“연준 씨, 제가 지금 어떤 말로 당신을 형용하면 좋을까요?”박연준은 외삼촌을 서주로 유인시켜 원래 혼란하던 국면을 더욱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게다가 이로써 강이한을 견제하는 목적에 달하였다.심지어 지금은 이유영더러 서주에 오라고까지 했다. 왜일까? 그건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랑 손을 잡아 파리에서의 엔데스 명우의 세력을 키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어떤 좋은 점이든 박연준은 빠짐없이 다 챙겼다!“유영아, 먼저 서주로 와요. 그럼 내가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극도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아니나 다를까!박연준은 이렇게 사이가 틀어져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마 이 세상에는 박연준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 남자는 모든 좋은 점들을 다 챙기려고 했다.근데 그것도 이유영이 도대체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를 봐야 했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외삼촌이 이 사람들과 어떤 대립 면에 섰는지 이유영도 다 알아챘다.이렇게 된 이상, 다들 서로 숨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그럼... 대놓게 철저하게 까놓고 숨기지 말자.’“엔데스 명우는 비록 날 이용하는 거지만 이 싸움에서 내게 적지 않은 이득을 줬어요.”“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럼 당신은 누구랑 묶이고 싶은데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유영의 얼굴색은 다시 어두워졌다.지금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아담한 몸에는 온통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당신도 내가 바로 전에 연준 씨랑 사이가 틀어진 것을 봤잖아요. 여기서 내게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제발 내 인내심을 그만 긁어요!”이유영은 또박또박 엄청 매섭게 말을 남겼다.“...”나염은 자기 반대편에 있는 이 체구가 아담한 여인을 보면서, 이 사람이 예전에 강씨 가문에서 모욕을 당하던 그 새댁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만약 엔데스 명우가 정말 소은지를 찾아내서 돌아온다면 난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자신 있는데!”“...”이 말을 들은 나염은 순간 몸이 더욱 굳어져 버렸다.‘내가 소은지로 이유영을 협박했는데 지금 도리어 온갖 정성을 다해 소은지의 행방까지 보호해야 해!?’아니면 소은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파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이유영은 무조건 다 죄를 나염의 머리에 씌울 게 분명했다.나염이 입을 열어 말을 하기도 전에 이유영은 마저 얘기를 이어 나갔다.“박연준이 서주에 갔지만 파리에 있는 동안, 그의 관건은 풍산이었죠?”“형수님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데요?”형수라는 호칭에 대해 이유영은 불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걸고넘어질 여유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이유영은 자신의 이쁜 네일을 어루만지며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풍산은 파리를 위해 반쪽짜리 서류를 보관해 두었죠.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엔데스 가문의 손에 들어있고요. 그럼, 엔데스 가문은 파리의 반쪽 주인으로서 그동안 줄곧 박연준 손에서 그 반쪽짜리 서류를 갖고 싶어 하겠죠?”말이 끝나자,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나염의 표정은 순간 변했다.나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영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 나갔다.“제 추측이 맞다면 엔데스 가문이 그동안 풍산이랑 줄곧 사이가 안 좋았던 건 박연준이 그 반쪽짜리 서류를 엔데스 가문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럴 뿐만 아니라 반대로 엔데스
나염은 이유영의 표정을 바라보며 도무지 그녀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이유영은 나염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눈시울을 올려 나염을 바라보며 웃음기 가득 찬 눈빛으로 그에게 되물었다.“생각해 봐요. 만약 엔데스 가문에서 전기봉이라는 자에 대해 알아냈다면 당신들은 지금쯤 기필코 그 반쪽짜리 서류를 빼돌리느라고 온갖 심혈을 다 퍼부어야겠죠?”“...”“엔데스 가문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은 엄청나게 많잖아요. 만약 사람마다 다 전기봉을 지켜본다면 당신들은 아마 서류를 빼돌릴 방법조차 없겠죠?’나염은 그저 냉기가 발밑부터 시작해 온몸에 퍼지는 것만 같았다!아까 나염이 갖고 있던 협박과 강인함은 지금, 이 순간 여우 같은 이유영의 미소에 와르르 무너졌다.‘이 여자 너무 무서운 사람이네.’만약 진짜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가면 이 여자 때문에 더욱더 통제력을 잃게 될 게 분명했다.“나염, 우리 둘이 내기할까요?”“무슨 내기요?”“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과연 소은지에게 더 관심을 가질지 아니면 그 반쪽 서류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지?’“형수님 다른 일 없으시면 저 먼저 가볼게요!”이 말인 즉 내기를 안 하겠다는 거였다.이유영은 태연하게 말했다.“이유영 아가씨라니까요.”“네! 이유영 아가씨.”이유영은 웃었다.뒤돌아서 가는 나염의 뒷모습을 보며 이유영 입가의 웃음기는... 점점 사라졌다!‘감히 날 협박해? 이 사람들 도대체 어디서 난 자신감이야. 도대체 왜 언제 어디서든 날 협박하려 하는 거지?’...이유영은 아주 손쉽게 박연준이 다시 자기를 이용하려는 것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강이한과 정국진 역시 그녀를 서주의 혼란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다.그래서 서주 쪽의 혼란한 국면은 잠시 이유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서주 쪽은 조용해졌지만, 눈앞의 엔데스 가문은 여전히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다.이유영이 박연준을 물리칠 수 있으면 당연히 엔데스 명우와도 빙글빙글 굴레를 돌며 대치를 할 수 있었다.그녀는 박연준의 체
비록 이유영은 아이에게 별 적의는 없었지만 이렇게 큰 아이가 자기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좀 불편했다. 그리고 이건 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안민은 이유영을 탕비실로 잡아당기고는 바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안절부절못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보며 물었다.“이 대표님, 대표님께 확실히 자식이 없으신 거 맞습니까?”‘아니!’이유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안민은 어두워진 이유영의 얼굴을 보며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대표님을 찾으신대고 했습니다.”“저를 찾는다고요?”“네. 그리고 또...”“또 뭐라고 했어요?”“또 대표님이 자기의 엄마라고 했습니다!”“...”이유영의 안색은 빨개졌다가 다시 파래지고 다시 보라색으로 변했으며 변화무쌍했다.‘그래서 아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분위기가 이상했던 거구나!? 하루아침 만에, 사람들은 다 나를 자기 딸을 버린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이유영은 자신이 어떻게 사무실로 돌아왔는지 모른다.방금까지 자고 있던 아이는 지금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 있었으며 커다란 두 눈으로 경계하고 대비하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아이 눈 밑에 드러난 적대 의식을 버리면 이 아이는 정말로 이쁘장하게 생긴 건 확실했다.“아가야, 넌 누구예요?”이유영의 말투는 이미 최대한으로 부드러웠다.아이의 키로 봐서 이 아이는 대략 열 살쯤 되어 보였다.아이의 옷차림은 아주 정교했으며 손에는 바비 인형을 안고 있었다. 이유영이 자신에게 묻는 걸 들은 아이는 억울한 듯 고개를 숙였다.이유영은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는 다시 물었다.“이름이 뭐예요?”‘왜 이러는 거지? 왜 억울한 표정을 짓는 거지?’요즘 이유영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제 겨우겨우 서주와 엔데스 명우에 관한 일을 처리했는데 지금 갑자기 아이 한 명이 나타나서 이유영의 딸이라고 하다니? 누구라도 이런 일을 당하면 다 마음이 안 좋을 것이었다.특히 이유영...필경 지금 이유영의 신변은
이유영은 손에 들고 확인했다.‘이온유, 이름은... 맞고!’접혀 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펴서 본 1초 만에 다시 탁하고 접었다.여기서 이유영의 분노 정도를 충분히 보아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가족관계증명서의 모친 항목 뒤에 바로 이유영의 이름이 있었다. 심지어 생년월일, 주민등록 번호까지 세세히 적혀있었다...정말이지 상대방의 계산은 이유영에게 발을 뺄 구멍조차 주지 않았다.“안민 씨!”“네, 대표님.”“먼저 나가 있어요.”“대표님, 진정 좀...”이 순간, 이유영 몸의 기운을 느낀 안민은 정말 이유영이 저 아이를 창밖으로 내다 버릴까 봐 걱정되었다.이유영은 안민을 세게 째려보았다.안민은 바로 타협했다.“저 바로 나가보겠습니다!”아유, 안민은 지금 자기 앞가림도 힘들었다.안민이 나가자, 사무실에는 이유영과 이온유 두 사람만 남았다. 열 살짜리 되어 보이는 아이는 세상 물정 다 알게 생겼으며 눈빛도 엄청 날카로웠다.“그만 훌쩍대고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난 네가 울기만 할 줄 아이라는 게 믿어 않져!”이건 사실이었다!‘여기까지 찾아온 아이이니만큼 만만하진 않겠지?’어린아이는 역시 또 훌쩍거리기 시작하면서 한 쌍의 촉촉해진 큰 눈시울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손에 든 가족관계증명서를 흔들며 물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심지어 증명서 위의 날짜는 다 5년 전으로 되어있었다!?‘이 아이 배후의 사람 속셈이 얼마나 깊길래 이렇게 5년 전부터 나에 대한 계산이 시작된 거지!?’이온유는 이유영을 한번 보고는 입을 열었다.“진 아줌마께서 내가 다 컸으니 이제 당신을 찾아와도 된다고 했어요!”“진 아주머니가 누구예요?”“그분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이 서류들을 제가 줬어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돌아가셨으니, 증인도 없는 거야?’‘아이고 이런 도대체 누구의 아인데!?’‘왜 날 찾아온 거지?’이유영은 열심히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비록 그녀는 전생에서 생을 건너
엔데스 명우는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이 소은지에게 철저히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백산 별장 쪽 상황.아침부터 백산 별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백산 별장은 이유영의 실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유영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없어졌다. 그런데 그 편지의 글씨는 이유영의 필체가 아니었다.정국진이 편지를 들고 살펴본 뒤 이 글씨는 강이한 것임을 확신했다. 편지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무사한 상태로 데려올 겁니다.”“무사한 상태? 무사한 상태라는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인 건가?”분명한 것은, 임소미도 이 편지가 누가 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어제 강이한이 여기 나타났고 오늘 아침 이유영이 사라졌다.백산 별장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무사히 뚫고 사람을 데리고 나가다니, 강이한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그러나 강이한의 이런 능력은 사람들의 이를 갈게 만들었다.정국진의 눈빛 역시 날카로웠다.“국진 씨, 반드시 유영이를 데려와야 해요. 반드시...”임소미는 이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태였다.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임소미는 이제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재앙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와 함께 있는 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유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알겠어.”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의 눈에도 살기가 번뜩였다.이유영은 지금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이유영을 데려가다니.다른 때는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 쳐도, 지금은... 여진우의 사람들까지 이유영을 찾으러 나갔다.그 순간, 반산월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가 전화를 받은 뒤, 엄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사모님, 선생님!”“무슨 일이야?”“반산월 쪽에서...”여기까지 말하고 집사가 잠시 머뭇거렸다.“반산월에 무슨 일이야?”이미 충분히 긴장한 상황에서 반산월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더욱 긴
“소은지, 네가 그 사람과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 사람 마음속에 네 자리는 없어. 언젠가 너는 버려질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그때쯤이면, 여섯째 도련님, 네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실컷 봤겠지. 너의 모든 추한 꼴을 확인했으니 나는 손해 볼 게 없어.”“...”말이 끝나자, 남자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은지는 단순히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넘어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난공불락의 존재였다.결국, 엔데스 명우는 화를 억누르며 소은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지금의 소은지는 그야말로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엔데스 명우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안했음에도 소은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소은지의 이런 태도는 엔데스 명우에게 증오와 답답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차 안에서.옆자리에 있던 배천명이 어색한 공기를 감지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은지 아가씨 쪽에서 여전히 거절이신 건가요?”‘아가씨’라는 호칭은 엔데스 명우의 측근들 사이에서 소은지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표현이었다.과거에, 누군가 그녀를 ‘일곱째 사모님’이라 불렀다가 엔데스 명우에게 바로 응징당해 입에 피를 흘리며 쫓겨난 일이 있었다.이런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소은지의 완강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배천명의 물음에, 엔데스 명우는 한 손으로 짓눌리듯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이 여자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이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엔데스 명우가 처음 소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은지를 굴복시켰던 걸까?분명한 것은, 소은지가 끝내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은지의 눈 속에 담긴 강인한 고집은 언제나 선명했다.수년간 얼마나 많은 여자가 그에게 몰려들었는가? 그들이
언제 조건을 말했다는 건데?도대체 언제였다는 걸까?눈 내리던 날, 설선비의 추락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반복적으로 항변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넌 나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없어.’라고 했었던 말을 가리키는 걸까?그 모든 말 속에는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내건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결과는?결과는 뻔했다.소은지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청하시 사업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소은지의 명성을 어떻게 철저히 짓밟았는지.청하시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변호사 소은지의 진짜 얼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썩했지만, 그 기사를 본 소은지의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과거에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때 그토록 신속하고 냉혹하더니, 여섯째 도련님도 감정에 얽매일 때가 있다니 놀랍군.”소은지의 말은 점점 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워졌다.그랬다.그날,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에게 모든 진실과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전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은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듣겠다니! 소은지의 삶에는 더 이상 조건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설령 소은지가 내건 모든 조건이 하나하나 충족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건 소은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항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나아가는 사람이야.”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가 나한테 주는 보상들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설령 같은 사회적 위치를 되찾아준다 해도 그것은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것을 소은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보상도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소은지였다.“정말 잘난 척하는군.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사실 너도...”“맞아, 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하지만 예전에 내 대단함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
이정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결코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선택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유영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이번에 우천으로 간다면, 최소 반년은 걸립니다.”이정은 무거운 목소리로 강이한에게 말했다.반년.평소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처럼 서주가 긴박한 상황에서는 반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정은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의 태도를 보니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여진우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중요한 것, 그리고 포기.삶에는 지켜야 할 것이 많지만, 때로는 과감히 선택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영이 지금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알겠습니다.”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이한의 눈빛은 단호했다. 이 순간, 이정이 강이한에 대한 모든 의문과 흔들림이 경외심으로 바뀌었다.이 남자는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강이한의 삶에는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주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결코 눈을 감고 지나칠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한편.서주의 상황은 점점 더 긴박해지고 있었다. 엔데스 가문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엔데스 명우가 서주에 나타났다. 최근 들어 그는 반산월을 드나드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소은지.”남자는 커피잔을 우아하게 들어 올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하지만 소은지는 그를 비웃듯 바라보며 그의 이가 갈릴 정도로 억눌린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여자, 곧 죽어?”소은지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의 차가운 기운은
서주가 이런 상황인데도 강이한은 굳이 파리로 찾아갔다.이유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사건 이후, 아이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정은 깊게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를 보셨습니까?”소월이...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유영 품으로 달려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꽉 찼다.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피워 물며 무겁게 말했다.“그 사람... 소식은 들었어?”강이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에 관해 묻기 시작하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염 선생님은 지금 우천에 머물고 있습니다.”“우천?”“네, 주소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은거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염 선생님은 명망 높은 의학자였다. 그는 70세에 서주 국제병원에서 은퇴한 후 행방을 감추었는데 그의 진료는 항상 예약이 어려웠으며 그의 손을 거친 환자는 어떤 이유로 실명을 겪더라도 결국 시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그는 한지음을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염 선생님이 이미 은퇴한 후라,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드디어 찾아내게 되었다. 강이한은 이유영과 함께 전생을 경험했기에, 이유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었다. 수술을 계속 미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수술이 실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평생 어둠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이유영은 이미 한 번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무력함을
남자의 따뜻한 손끝이 이유영의 눈가를 살며시 스쳤다.아주 조심스럽게...이유영은 마치 그 온기가 자신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여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말로는 상황이 심각하대. 이번엔 제발 말 좀 들어줘, 응?”“응.”그동안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유영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유영은 전생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의 공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이유영은 다시 과거의 어둠 속으로 빠지기 싫었기에 항상 핑계를 대며 수술을 미뤘다.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눈 수술은 본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실패라도 한다면 이유영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그 고통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었다.그렇기에 이유영은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았다.그 어둠은.마치 악마의 동굴과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유영아.”“응?”“수술 전까지는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가져봐. 그러면 수술에도 좋을 거야.”여진우의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그는 마치 곧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였다.여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유영이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왜?”여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자, 알겠지?”이유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진우는 잠시 멈칫하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유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씨 가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상의 수술 환경을 준비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지금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다.강이한, 한지음, 이온유... 이들은 모두 이유영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유영은 이런 고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