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손에 든 핸드폰을 꽉 쥐었다.그녀는 기사를 두고도 엔데스 명우가 자기를 향해 도발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이런... 빌어먹을 남자!”지금의 이유영은 그야말로 화가 나 폭발할 것만 같았다.가슴이 턱턱 막히고 혈압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분명한 건 지금 그녀는 엔데스 명우에게 한 방 먹은 것이었다.그러기도 한 것이 엔데스 명우의 예전 소문들은 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이유영이 갖고 놀자고 하니 그리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지잉 지잉.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정국진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유영은 이 진동이 마치 손을 데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지금 이유영은 정말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어떡하지!? 정말 미쳐버리겠네.’우지는 아주 걱정스레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숨을 깊게 몇 번 들이마셨지만, 여전히 가슴속의 답답한 느낌을 짓누를 수 없었다.그러자 이유영은 입을 열어 자신을 달랬다.“괜찮아. 괜찮아.”그러고는 전화를 받았다!“외삼촌.”“기사는 봤어?”전화 반대편 정국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 봤어요.”이 순간 분위기는 얼어붙는 것을 넘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이유영은 지금 어이가 없어 미칠 것 같았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이유영은 정말 화가 나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외삼촌, 저도 엔데스 명우가 이렇게 드세게 나올 줄 몰랐어요.”‘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결혼을 견지하다니?’‘도대체 누굴 화나게 하려는 것이야?’지금 파리 사람들은 엔데스 명우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명찰을 줬을 뿐만 아니라 전 파리 사람들은 다 이유영을 여우라고 욕할 것이었다.정국진의 별로 좋지 않던 말투는 지금 더욱 엄숙해졌다.“너 지금 반산월에 가만히 있어. 어디도 가지 마.”“그럼, 삼촌...”“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어떻게 처리해요?”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상 엔데스 명우더러 결혼을 취소하라고 하는 건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지금 엔데스 명우는 자기에게 좋은 이미지를 벌
엔데스 명우는 이런 방식으로 이유영의 모든 계략을 부숴버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강제로 자기랑 이유영을, 그리고 정씨 가문을 엮어 놓았다.저녁 시간이 되자 엔데스 명우가… 왔다!식탁에서 이유영은 마치 상대방을 잡아먹을 기세로 매서운 눈빛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왜? 이런 밑지는 장사는 처음이에요?”“…”‘처음!?’당연히 이렇게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는 처음이었다.이유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엔데스 명우는 계속해서 말했다.“전에 강이한도 참, 어떻게 당신의 이런 서투른 수작에 속아 넘어간 거죠?”‘서투른 기교라고?’맞는 말이긴 했다. 이번 생… 이유영은 깨어난 순간부터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어떻게 하면 강이한이랑 연을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깨어난 그 순간부터 강이한과 관계를 단절할 생각이었다.이혼을 위해, 그녀는 한 발짝 한 발짝 압박했다!처음에 강이한은 매번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동의를 한 거였지?’이유영은 이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혼에 동의한 건… 이유영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였다.그랬다. 이유영이 너무나도 세게 난리를 피웠으며 한 발짝 한 발짝 압박을 가했다. 그녀의 시달림 때문에 강이한은 결국 이성을 잃고 이혼에 동의했다.“뭘 어떻게 했겠어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그것에 눈이 멀어서 그랬겠죠.”그리고 강이한의 마음은 줄곧 자기한테 있지 않았다고 이유영은 생각했다.“하!”엔데스 명우는 콧방귀를 뀌었다.이유영은 이런 엔데스 명우가 꼴 보기 싫어서 눈앞에 있는 와인잔을 들어 와인을 몇 모금 마셨다.하지만 가슴속의 그런 답답함은 여전히 내려가지 않았으며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열받았다.“그럼, 이번에는 꼭 기억해요. 사랑과 마음이 없는 남자를 절대 함부로 건드리지 말 것을, 나의 왕비 전하님?”이유영은 와인잔을 든 손이 순간 멈칫했다.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몇 푼 더 날카로워지더니 말투는 더욱 쌀쌀해졌다.“그래요. 고
이 순간, 아무리 핸드폰을 통해 전자파로 교류하고 있었지만, 엔데스 명우는 상대방 몸의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정국진은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가 이토록 직접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그리고 파리에서 지낸 세월 동안, 정국진은 남을 밑지게 하면 했지, 자신이 밑지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금 정국진이 이처럼 불만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제가 안도베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 반대편 정국진의 말투는 아주 날카로웠다.“네. 좋아요.”전화를 끊은 뒤, 차 안의 기운은 여전했다.엔데스 명우의 입가에 걸친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어떻습니까?”성진남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 필경 정국진은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늙은 여우였다.이 사람은 종래로 교활했다.엔데스 명우는 성진남의 물음에 대답했다.“아무리 내가 이렇게 큰 소란을 일으킨다고 다고 해도 저 사람은 절대로 쉽게 이유영을 내게 시집보내지 않을 거야.”까놓고 말해서 정국진은 엔데스 가문이라는 똥물과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게다가 그동안, 엔데스 가문의 많고 많은 사람들이 정국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정국진은 여전히 중립 태도를 유지했다.누구도 그 사람 앞에서 뜻대로 되는 사람은 없었다.정국진의 태도는 확실했다. 지금 이유영과 연을 끊었다고 선포한 건 그저 엔데스 명우를 물리 치우기 위해서였다.“후...”엔데스 명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주 느긋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이렇게 자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만난 것처럼.삽시에 엔데스 명우의 머릿속에는 고집이 세고 차가운 두 눈이 번뜩 떠올랐다. 아무리 자신이 그녀를 세게 괴롭혀도 자기를 바라보는 그런 불굴의 두 눈을 가진 여인.정말이지 만약 그녀가 그 일과 상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명우는 정말 그녀를 꽤 맘에 들어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가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렇게 재판에서 설선비를 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아마도 이유영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때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그때 한지음은 강이한에게 접근할 방법조차 없었다.그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그 사람은 한지음이 강이한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를 난장판으로 만들게 도와주었다.그리고 이유영이 한 발짝 한 발짝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한지음은 마음속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이유영을 심연에 빠뜨린 줄 알았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진영숙이 진실을 들고 올 줄, 심지어 조형욱이 조사를 한 결과 진영숙의 말이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시시각각 한지음에게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게 했다.지금 유 아주머니가 한 말들은 그저 한지음을 역겹게 만들었다.한지음이 말없이 온몸에서 냉기가 도는 모습을 보자, 유 아주머니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결국 별소리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사람이 나오더니 공손하게 한지음의 곁에 왔다.“한지음 아가씨, 안으로 들어가시죠.”하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공손하게 한지음을 위해 차 문을 열어당겼다.유 아주머니는 그 사람이 한지음을 데리고 들어가게 내버려두었다.아주머니가 보기엔 한지음과 이유영 사이에는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힌 원한이 있어 한지음의 매번 출현은 다 이유영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유 아주머니는 아주 마음 놓고 한지음을 혼자 들어가게 두었다.그리고 한지음이 이유영 때문에 다칠지 말지는 유 아주머니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유 아주머니는 이유영이 한지음을 다치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되면 강이한은 이유영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될 수도 있었다....반산월의 등불은 밝지도 않고 그렇고 해서 절대로 너무 어둡지도 않았다. 딱 이유영에게 적절한 밝기였다.거실에서 이유영은 돼지 인형 한 개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온몸에서 특유의 우아한 기운을 내뿜었으며 사람 전체가 여유롭게 조용해 보였다.심지어 두 눈을 먼 한지음
한지음의 이 말에 대해 이유영은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이 짓거리도 몇 번째더라?’지난번 생에서, 한지음은 자기랑 강이한이 서로 애틋한 사진을 이유영에게 보냈었다. 그리고 도대체 그런 짓을 몇 번째 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목적은 다 이유영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였다.한지음이 강이한에게 기댄 채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들, 그리고 두 사람이 침대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사진들, 여러 가지 사진들이 부지기수였다.그리고 매번 이런 사진을 받은 후 강이한은 다 피로에 찌든 모습을 하고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 이유영은 거의 잊고 있었다.그 당시의 자신이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강이한을 마주했는지 이유영은 거의 까먹고 있었다.사실 강이한이란 남자를 잊는 것도 어찌 보면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기억에서 지우면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그리고 현재, 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을 내려놓았다!하지만 한지음이 지금에 와서 이유영에게 그 남자랑 앞으로 관계가 없을 거라고 하다니?“왜,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야?”‘도대체 무엇부터 말해야 하지?’이유영의 말투는 조금 사늘했다.분명한 건 이 문제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이번 생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이유영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전생과 이번 생이 겹쳐서 같이 뒤섞이니 이유영도 자기가 도대체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지금 내가 그토록 힘겹게 그 지옥에서 벗어났는데, 한지음이 이렇게 손쉽게 관계를 뿌리치다니.’이유영은 이 상황이 매우 웃겼다. 하지만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언니.”“…”이 말에 이유영은 머리가 윙 했다.그러고는 한지음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없이 날카롭게 변했다.이유영이 입을 열기 전에 한지음이 계속해서 말했다.“그 사람을 용서해 줘.”그 사람은 강이한을 말하는 것이었다!지금에 와서 아무리 해명을 해봐도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하지만 한지음은 단지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그녀가 생각하는
심지어 이유영이 다 큰 후, 오랫동안 아버지는 항상 그녀 마음속의 본보기였다.하지만 진실이 그녀의 눈앞에 놓였을 때, 그 당시의 진실이 그토록 잔인하고 어머니한테 그렇게 무서운 일이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깨달았다.근데 이유영이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겠는가?“한지음,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어머니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이유영은 그저 한지음이 이상 행동을 해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고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어머니 얘기를 꺼내자, 이유영의 모든 인내심은 철저하게 무너졌다.어머니, 진실을 안 후로, 어머니는 이유영 마음속의 아픔이 되었다.그 당시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상황에서 어머니를 배신했든 간에 이유영이 보기엔 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리고 어머니를 배신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언니.”한지음은 상심한 말투로 이유영을 부르고는 이유영 쪽으로 몸을 돌렸다.한지음은 있는 힘껏 이유영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눈앞은 어두컴컴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건 기억 속의 이유영이었다. 아담한 키에 얼굴도 자그마한 이유영, 아주 여려 보이면서도 정교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지금은 정상가지 올랐다.이유영을 부르는 한지음의 말투 속에는 상심과 참회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날카롭고 차가운 말투로 답했다.“그렇게 역겨운 호칭으로 날 부르지 마.”‘역겹다고?’한지음의 마음은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팠다.‘하긴, 유영의 마음속에 나란 존재는 항상 역겨운 존재였지. 그런 그녀가 또 어떻게 날 자기의 여동생이라고 인정하겠어?’‘유영이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그 외로움을 달갑게 받았지. 하지만 정씨 가문을 등 뒤에 업고 있는 지금은 당연히 오점 같은 존재인 나를 인정하지 않겠지.’“우지!”이유영의 말투는 몇 푼 더 싸늘해지고 더 무거워졌다.우지는 이유영의 뜻을 알아채고 공손하게 다가가 한지음에게 말했다.“한지음 아가씨, 우리 아가씨께서 쉬셔야 합니다. 당장 이곳에서 떠나주
그래서 지금 한지음이 아무리 진정성을 갖고 얘기한다고 해도 이유영은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그리고 미안해!”여섯 글자는 아주 쩌렁쩌렁했다.이렇게 굳건한 말투에서 한지음의 뉘우침을 들어낼 수 있었다.‘근데 얘 지금 정말 후회하는 거야?’이유영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한지음이 문 어귀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차 안에서, 유 아주머니는 한지음을 데리고 나오는 우지의 얼굴에 불만과 증오가 가득한 것을 보고 유달리 만족해했다!!사람들 얼굴만 보아도 안에서 무조건 또 불유쾌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꺼지세요. 앞으로 다시는 여기 찾아오지 마세요.”우지는 한지음을 차 옆까지 데려다주고는 심한 말을 남기고 휙 돌아서서 갔다.유 아주머니는 차 문을 열고 안에서 내렸다.그리고 뾰로통한 우지의 뒷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씨도 참 갈수록 능력이 있으시네요!”이 말은 도무지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이유영 주변의 사람도 이 정도로 화가 난 것을 보면 이유영 본인은 더 말할 것 없겠지!?’한지음은 입을 다문 채 무뚝뚝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그리고 유 아주머니는 주요하게 한지음이 임무를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그래서 결과가 좋기만 하면 한지음이 자기에게 어떤 얼굴을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차는 시동을 걸고 바로 반산월에서 떠났다.유 아주머니는 안색이 별로 안 좋은 한지음을 보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아가씨도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그쪽도 아가씨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으시잖습니다.”이 말을 사실이었다.한지음이 입을 열었다.“진영숙에게 연락해 주세요.”진영숙, 강이한의 어머니였다.한지음의 일련의 행동에 대해, 유 아주머니는 그저 한지음이 그 애를 미치도록 만나고 싶어 하는 줄로만 생각했다.‘그래서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뭐 나야 더 좋지.’“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연락해 드리겠습니다.”강이한과 관련된 사람과 만나는 것이라면 유 아주머니
풍산 쪽의 서재 안에, 이 시각, 용준하고 문기원이 다 있었다.어두운 등불 아래, 남자는 온몸에서 매서운 기운을 내뿜었다!“서주?”그의 눈 밑에는 짙은 위험함이 스쳐 지나갔다.지금 이 시기에 강이한이 갑자기 파리를 떠난 것이 서주에 다녀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근데 강이한이 이번에 먼저 돌아가 이유가 뭘까?’‘설마, 그분께서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원래 근 몇 년간, 그 분께서는 줄곧 모든 것을 강이한의 아버지한테 맡겨 두었었다. 하지만 지금 강이한이 갑자기 서주로 돌아갔다.‘그분 지금 무슨 뜻이지? 임종 전에 차기 후계자를 확정하려는 건가? 그럼, 그분께서 택한 게 강이한이란 말인가!?’이렇게까지 생각하자 박연준 눈 밑의 차가운 기운은 더욱 진해졌다.“네.”용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엄숙한 기운이 가득했다.박연준은 입가에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이런 싸늘함은 박연준 주변의 사람들이 보기 드문 것이었다. 종래로 진중하고 엄숙한 박연준도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랐다.다음 순간, 박연준이 입을 열었다.“제월, 유암 그리고 나염 보고 다 들어오라고 해!”서주에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이렇게 다년간... 그분이 그쪽에서 어떤 주맥을 장악하고 있지? 그리고 그분에게 속하지 않는 것들, 죽어서도 절대 놓아주지 않겠지?’“네.”용준은 박연준의 말에 응하고는 서재에서 나갔다.문기원은 엄숙한 표정을 하고 박연준을 바라보았다.“강 도련님이 이번에 서주로 돌아가신 것이 아마도 그분께서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줄곧 박연준의 곁을 지키던 문기원도 눈치를 챈 듯하였다.그러니 지금 사태의 심각성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박연준의 눈 밑에는 일말의 맹렬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박연준이 입을 열었다.“십중팔구인 듯 해.”이렇게 다년간 그쪽에는 줄곧 강씨 집안의 그분이 계셨다. 근데 지금 갑작스럽게 강이한더러 돌아오라고 하다니, 강씨 집안 역대의 전통과 엮어서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
이유영은 그 말을 듣고 온몸이 굳어버렸다.어머니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크게 걱정하실 것이 분명했다.마음속에서 요동치던 불안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간절함은 이 순간 잠잠해지며 차분함이 찾아왔다.“아가씨.”“우지 씨, 물 좀 가져다주세요.”이유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우지는 서둘러 나갔다가 금방 물을 들고 돌아왔다.강이한은 밖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 안이 차분해진 모습을 보며 강이한의 눈에 안도감이 비쳤다.역시, 익숙한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상황이 달랐다.지금 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강이한을 가장 답답하게 했다.하지만 지금은 우지와 우현이 함께 있으니, 이유영도 차분해진 것 같았다.비행기가 유천에 착륙했다.그 순간, 마치 공기까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파리와 서주의 날씨는 좋지 않은 날이 많았지만 유천은 달랐다.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불리며 은퇴한 사람들이 여생을 즐기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었다.독특한 지역 문화를 담은 공항의 건축 양식을 바라보며 강이한은 그곳에 한눈에 반한 듯했다.“나 혼자 갈 수 있어.”이유영은 강이한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그가 느끼는 편안함을 감지하고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그는 이곳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유영도 과거 유천의 특별한 매력을 들었을 때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유영과 강이한은 늘 긴박한 환경 속에서 지내왔기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유영아, 조금만 얌전히 있어. 여긴 낯선 곳이니 내 옆에 있는 게 안전해.”강이한은 이유영이 어둠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민감해도 지금 있는 이곳은 완전히 낯선 환경이었다.그가 기억하는 지난 생애에서 이유영이 시력을 잃은 뒤 거의 홍문동을 벗어나지 않았다.그곳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은 어느 정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
한때 이유영은 강이한과의 갈등이나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둘 사이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에 기대어 버텼다.이유영은 자신과 강이한의 만남은 아름답고 추억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아무리 아름다웠던 기억도 이유영의 마음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그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를 일찌감치 떠나온 것을.만약 아직도 미련을 붙잡고 있었다면, 가장 소중했던 추억들이 거대한 음모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유영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지금도 이유영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다른 건 모두 네 뜻대로 해도 돼. 하지만 유천에 가는 건 반드시 내 말대로 해!”강이한의 목소리는 한층 더 단호해졌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조심스레 침대 위로 눕혔다. 지금 강이한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은 너무나 강압적이었다. 이유영은 그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그 감각은...이유영의 마음을 한없이 불안하게 했다.이유영은 깨달았다. 마치 자신이 지난 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시절, 이유영은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머물며 어둠에 대한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었다.그리고 그 기억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이유영의 머릿속으로 몰려들었다.강이한이 방을 나갔다.잠시 후, 우지와 우현이 방으로 들어왔다.“아가씨.”우지가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왔다.우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유영은 온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우지 씨, 어떻게 여기 있는 거예요?”“아가씨… 혹시, 눈이...”우지는 이유영의 두 눈을 보고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조차 초점 없이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순간, 우지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이유영은 예상하지 못했다. 강이한이 이유영을 여기로 데려온 것도 모자라 반산월에서 우지까지 데려올 줄은.“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이유영은 이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미칠 듯 서글펐고 동시에 눈물까지 흘러내릴 만큼 절망적이었다.“유영아...”강이한은 이유영의 웃음에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두 사람 사이가 이렇게 돼서는 안 됐다. 왜 꼭 이런 지경까지 와야만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까지 오게 된 게, 과연 누구 탓인가?이유영은 광기가 폭발하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평온을 되찾았다.하지만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이유영의 몸은 여전히 떨고 있었다. 강이한은 그 떨림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이유영이 입을 열었다.“강이한, 네 인생에서 나는 언제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아.”한때 함께했던 시간, 그리고 전생의 기억까지 모두 떠올랐다...사람들은 말했다. 이유영은 복 받은 여자라고. 강이한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으며, 그저 강씨 가문의 작은 부인으로 편안히 지내기만 하면 되는 인생이라고.강이한과 함께하는 동안,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유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무엇을 하든, 무엇을 선택하든, 항상 강이한이 결정했고 이유영은 강이한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이유영이 혼자 선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이제 와서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을 때, 강이한 역시 깨달았다. 자신이 이유영의 삶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를.그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그래서 무엇이든 그의 결정이 절대적이었다.이유영의 삶을 세세히 돌보는 데도 강이한의 성격이 드러났다.작은 것 하나까지 강이한의 뜻에 따라야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이유영은 그에게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었다.“유영아...”과거, 모두 이유영을 위한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우리는 이미 이혼했어, 알아?”“...”이유영이 계속해서 강이한에게 상기시켰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이유영이 다시금 이혼 이야기를 꺼냈
우천시?그곳은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유영이 예전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유영이 언젠가 강이한에게 시간이 나면 꼭 데려가 달라고 했던 곳이었다.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 머물러 그곳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정서를 느껴보고 싶다던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날... 집으로 보내줘!”단호한 목소리의 이유영에게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이유영은 우천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이유영이 지금 원하는 것은 그저 이 남자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특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무력감에 휩싸인 채 그와 함께 있는 건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다.이유영은 지금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강이한의 곁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단 한 순간도.“조금만 더 견뎌.”강이한은 이유영 옆으로 다가가 얼음처럼 차가운 이유영의 손을 잡았다.이유영은 강이한의 손을 단번에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강이한이 손에 힘을 주며 단단히 붙잡았다. 이유영은 결국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온몸이 떨렸다.강이한도 이유영의 떨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유영아.”“내 손… 놓으라고 했잖아!”이유영의 목소리 역시 떨렸다. 그 떨림은 이 남자에 대한 완전한 거부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뚜렷이 느꼈다. 그 거부감은 강이한의 마음을 더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절대로 널 놓지 않을 거야.”강이한의 목소리는 무겁고 쓸쓸했다.그래, 놓지 않겠다고.“...”놓지 않겠다고? 지금에서야 이런 말을 하는 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유영은 강이한의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지만, 강이한은 이유영을 완전히 끌어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강이한이 팔에 힘을 주자 이유영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강이한!”“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이유영의 몸이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강이한의 가슴을 더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눈을 뜬 이유영은 곧 이상한 점을 느꼈다. 침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상황을 확인하려고 눈을 떴다.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이유영의 온몸이 얼어붙었다. ‘휙’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이유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그러나… 어둠뿐이었다. 눈앞은 온통 깜깜했다.손을 뻗었지만, 손끝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이었다.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아무리 어두워도 시력이 있다면 손그림자 정도는 보인다고. 그러나 지금 이유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이 이런 상태로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동안, 강이한이 움직임을 느꼈다.다가가 보니, 이유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두 눈은 공허하고 생기를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강이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저토록 생기 없이 죽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그리고 지금 이유영은…“유영아…”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기까지 했다. 입을 열었을 때, 강이한의 목소리는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의 목소리를 듣고 몸이 더욱 긴장했다. 그의 방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보려는 듯했다.설마…“너…”설마 지난 생으로 돌아온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어!“대체 무슨 일이야?”강이한이 앞으로 다가와 이유영을 단단히 끌어안았다.이유영은 창백한 얼굴로 귀신이라도 본 듯 강이한을 밀어냈다. 그 순간, 이유영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진정은커녕 점점 더 불안해졌다. 마치 폭풍처럼 이유영의 신경과 이성을 휘몰아쳤다.“여기가 어디야?”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유영은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강이한이 답했다.“비행기 안이야.”비행기?이유영은 지난 생을 떠올리려 애썼다. 강제로 수술을 받은 뒤로 강이한이 이유영을 홍문동 밖으로 데리
“국진 씨, 제발 유영이를 꼭 데려와 주세요!”임소미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유영을 반드시 빨리 찾아와야 한다. 절대로 강이한 곁에 남겨둬선 안 된다.현재 서주의 분위기 또한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강이한이 서주에서 가진 특별한 신분을 생각하면 이유영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 없었다.그 순간, 여진우가 모습을 드러냈다.임소미는 재빨리 여진우에게 다가가 물었다.“진우야, 소식 있어? 설마 서주로 간 건 아니지?”서주!강이한이 이유영을 데려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처음 떠올린 건 서주였다.지금 서주의 상황을 보았을 때 강이한이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갔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그런데 서주의 상황 자체가 이미 그리 좋지 않은데 강이한이 하필이면 지금 이유영을 데려갔으니... 임소미는 이미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여진우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이 답변은 모두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했다.아니라고? 서주로 간 게 아니라고?“강이한과 함께 파리에서 온 이정은 돌아갔지만, 강이한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이 말을 듣자, 임소미는 완전히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서주의 상황이 지금 이상하긴 하지만, 만약 강이한이 이유영을 서주로 데려갔다면 최소한 목적지가 있어 이유영을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강이한은 자신이 데려온 사람을 되돌려보냈을 뿐, 이유영을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유영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사람과 엮인 걸까!”임소미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였다.정국진도 임소미와 마찬가지로 긴장된 상태였다.이 소식은 그들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상황을 모를수록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기 쉽다.게다가 그들은 이미 연서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위험이 따를 가능성이 높았다.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언제든 필요에 따라 희생될 수 있는 운명이었다.그것은
엔데스 명우는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이 소은지에게 철저히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백산 별장 쪽 상황.아침부터 백산 별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백산 별장은 이유영의 실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유영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없어졌다. 그런데 그 편지의 글씨는 이유영의 필체가 아니었다.정국진이 편지를 들고 살펴본 뒤 이 글씨는 강이한 것임을 확신했다. 편지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무사한 상태로 데려올 겁니다.”“무사한 상태? 무사한 상태라는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인 건가?”분명한 것은, 임소미도 이 편지가 누가 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어제 강이한이 여기 나타났고 오늘 아침 이유영이 사라졌다.백산 별장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무사히 뚫고 사람을 데리고 나가다니, 강이한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그러나 강이한의 이런 능력은 사람들의 이를 갈게 만들었다.정국진의 눈빛 역시 날카로웠다.“국진 씨, 반드시 유영이를 데려와야 해요. 반드시...”임소미는 이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태였다.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임소미는 이제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재앙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와 함께 있는 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유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알겠어.”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의 눈에도 살기가 번뜩였다.이유영은 지금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이유영을 데려가다니.다른 때는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 쳐도, 지금은... 여진우의 사람들까지 이유영을 찾으러 나갔다.그 순간, 반산월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가 전화를 받은 뒤, 엄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사모님, 선생님!”“무슨 일이야?”“반산월 쪽에서...”여기까지 말하고 집사가 잠시 머뭇거렸다.“반산월에 무슨 일이야?”이미 충분히 긴장한 상황에서 반산월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더욱 긴
“소은지, 네가 그 사람과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 사람 마음속에 네 자리는 없어. 언젠가 너는 버려질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그때쯤이면, 여섯째 도련님, 네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실컷 봤겠지. 너의 모든 추한 꼴을 확인했으니 나는 손해 볼 게 없어.”“...”말이 끝나자, 남자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은지는 단순히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넘어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난공불락의 존재였다.결국, 엔데스 명우는 화를 억누르며 소은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지금의 소은지는 그야말로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엔데스 명우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안했음에도 소은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소은지의 이런 태도는 엔데스 명우에게 증오와 답답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차 안에서.옆자리에 있던 배천명이 어색한 공기를 감지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은지 아가씨 쪽에서 여전히 거절이신 건가요?”‘아가씨’라는 호칭은 엔데스 명우의 측근들 사이에서 소은지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표현이었다.과거에, 누군가 그녀를 ‘일곱째 사모님’이라 불렀다가 엔데스 명우에게 바로 응징당해 입에 피를 흘리며 쫓겨난 일이 있었다.이런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소은지의 완강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배천명의 물음에, 엔데스 명우는 한 손으로 짓눌리듯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이 여자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이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엔데스 명우가 처음 소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은지를 굴복시켰던 걸까?분명한 것은, 소은지가 끝내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은지의 눈 속에 담긴 강인한 고집은 언제나 선명했다.수년간 얼마나 많은 여자가 그에게 몰려들었는가? 그들이
언제 조건을 말했다는 건데?도대체 언제였다는 걸까?눈 내리던 날, 설선비의 추락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반복적으로 항변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넌 나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없어.’라고 했었던 말을 가리키는 걸까?그 모든 말 속에는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내건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결과는?결과는 뻔했다.소은지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청하시 사업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소은지의 명성을 어떻게 철저히 짓밟았는지.청하시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변호사 소은지의 진짜 얼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썩했지만, 그 기사를 본 소은지의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과거에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때 그토록 신속하고 냉혹하더니, 여섯째 도련님도 감정에 얽매일 때가 있다니 놀랍군.”소은지의 말은 점점 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워졌다.그랬다.그날,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에게 모든 진실과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전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은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듣겠다니! 소은지의 삶에는 더 이상 조건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설령 소은지가 내건 모든 조건이 하나하나 충족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건 소은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항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나아가는 사람이야.”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가 나한테 주는 보상들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설령 같은 사회적 위치를 되찾아준다 해도 그것은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것을 소은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보상도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소은지였다.“정말 잘난 척하는군.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사실 너도...”“맞아, 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하지만 예전에 내 대단함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