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파리의 고요함은 점점 한 점씩 찢어졌다.여론에서 이유영이 엔데스 명우의 약혼자이며 남자 측에서 곧 고가의 예물로 결혼할 거라고 소문이 팔팔 들끓었을 때, 원래 조금씩 고요함을 잃고 있던 파리에는 또 갑자기 큰일이 한 개 일어났다.로열 글로벌에서 [이유영 대표의 로열 글로벌에서의 일체 직무를 해제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순식간에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다.전에 사실 이유영이 정국진 외동딸의 위치를 넘어서 이미 정식으로 로열 글로벌의 미래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과 혼인을 맺기 직전인 이 타이밍에 로열 글로벌의 모든 직무를 해제한다고?그럼, 그 말인즉 이유영은 더 이상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가 아니란 말인가?심지어 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 건, 이 소식이 발표된 지 불과 반날 만에 더욱 중대한 소식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이유영은 앞으로 더 이상 정씨 가문과 털끝만큼의 관계가 없으며 이미 정씨 집안에서 나갔다]는 소식이었다.이 소식은 그야말로 핵폭탄 같은 소식이었다.심지어 오전에 나온 소식보다 더 충격적이었다.이건...지금 이유영이 로열 글로벌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정씨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말이었다.“그러니까 친 자식이 아닌 건 정말 남이라니까요.”“그러게, 말이에요. 전에 나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이제 꼴이 좋네요. 지금은 아예 정씨 가문이랑 아무 사이가 아니니 별것도 아니네요?”“몰래 무슨 일을 범했는지도 몰라요!”“뭐겠어요?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랑 이유영이 가당키나 해요? 아무래도 자기 친 자식이어야죠.”“하긴, 걔가 정씨 가문에 들어선 후부터 조카라는 자가 친딸의 모든 풍조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엔데스 가문과도 관계를 맺으니...”지금 파리는 온통 미친 여론 때문에 들썩이고 있었다.지금 사람들은 다들 이유영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혀를 놀려대고 있었다. 다들 뱀은 뱀이지, 결국 용이 되진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다.지금, 이유영도
성진남은 무의식적으로 배천명을 보며 그의 눈에는 그윽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배천명도 엔데스 명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험한 기운을 느껴서 다시 입을 열 때 말투도 따라서 바짝 긴장해졌다.배천명이 입을 열었다.“정 회장님 쪽 사람들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습니다!”그 말인즉 소은지의 행방을 놓친 게 분명하다는 말이었다.배천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떨이는 바로 그를 향해 날아왔다.그는 피할 엄두도 없어서 그저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날아오는 재떨이는 쿵 하고 그의 이마에 맞았다. 그는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고 피고... 이마를 따라 주르르 흘러내렸다.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몇 점 더 싸늘해졌다.하지만 배천명은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배천명, 너 참 죽일 놈이야!”“네! 제가 최대한 빨리 74번을 찾아내겠습니다!”74번이라는 수자에 대해 배천명은 강조하였다. 마치 엔데스 명우에게 소은지가 그의 곁에서 어떤 존재였던지, 또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 지를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성진남의 한데 일그러진 미간은 배천명을 볼 때 다시금 더 엄숙해졌다.엔데스 명우가 입을 열었다.“됐어!”다시 입을 열 때 그의 싸늘하던 말투는 더욱 차가워졌다.“너 먼저 나가 있어.”배천명을 보고 한 말이었다.배천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사무실에 엔데스 명우와 성진남만 남았을 때, 엔데스 명우는 탁탁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피우고는 매섭게 한 모금 들이켰다.한참 지나서야 엔데스 명우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지아 보고 알아보라고 해.”지아, 본명 도지아!성진남은 종래로 침착하고 듬직한 남자였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차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여태껏 지아한테는 아무렇게나 임무를 배정해 준 적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그녀가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지금 고작 여자 한 명을 찾는데 지아를 시킨다고?’“네.”성진남은 수만 가지 생각을 거친 후에 바로 고개를 끄
엔데스 명우는 전에 로열 글로벌에 갑자기 뜬금없이 후계자가 나타난 것도 아주 의외롭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국진이 이런 대응도 엔데스 명우가 보기에는 이유영의 꾀가 적지 않게 들어갔다고 생각되었다.이유영의 머리에는 잔꾀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보기에는 무심해 보여도 도리어 상대방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릴 수 있었다.그러니 이번 일도 엔데스 명우가 보기에는 이유영이 또 무슨 방법을 써서 일을 뒤엎을 게 뻔했다.당연히... 이번 일로 이유영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번 일을 계기로 이유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엔데스 명우는 생각했다....파리는 지금 난리법석이었다.그리고 정씨 가문에서는 그럴듯하게 정말 이유영을 집에서 내쫓은 행세를 보였다. 이유영은 정말 공개적으로 백산 별장에서부터 반산월 쪽으로 이사를 갔다.현재 반산월에서 이유영은 한가하게 소파에 누워서 엔데스 명우가 자신이 따로 숨겨둔 약혼녀가 있다는 소식 또는 이유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에서 외숙모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여섯째 도련님은 아주 교활한 사람이야. 난 너희가 이렇게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그렇게 쉽게 관두지 않을까 봐서 걱정이야.”이번 일이 터진 후 외숙모는 당장 퀘벡에서 돌아오려고 했다.하지만 퀘벡 쪽에 일 때문에 도무지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다행히 파리에 정국진이 있어서 외숙모도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근데 지금 파리가 들썩일 정도로 일이 커진 이상 아무리 멀리 퀘벡에 있는 외숙모도 거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정씨 가문...요 몇 년이래, 아무리 정국진이 일을 크게 벌였다고 해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난 적이 거의 없었다.지금 눈이 뜨인 셈이었다.“엔데스 명우가 그 당시에 그런 요구를 제기한 것도 원래 정씨 가문의 지원을 받으려고 그런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없어진 이상 그 사람도 더 이상 나한테 관심이 없을 거예요.”이유영을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유영은 손에 든 핸드폰을 꽉 쥐었다.그녀는 기사를 두고도 엔데스 명우가 자기를 향해 도발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이런... 빌어먹을 남자!”지금의 이유영은 그야말로 화가 나 폭발할 것만 같았다.가슴이 턱턱 막히고 혈압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분명한 건 지금 그녀는 엔데스 명우에게 한 방 먹은 것이었다.그러기도 한 것이 엔데스 명우의 예전 소문들은 다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이유영이 갖고 놀자고 하니 그리 쉬운 일일 수가 없었다.지잉 지잉.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정국진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유영은 이 진동이 마치 손을 데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지금 이유영은 정말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어떡하지!? 정말 미쳐버리겠네.’우지는 아주 걱정스레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은 숨을 깊게 몇 번 들이마셨지만, 여전히 가슴속의 답답한 느낌을 짓누를 수 없었다.그러자 이유영은 입을 열어 자신을 달랬다.“괜찮아. 괜찮아.”그러고는 전화를 받았다!“외삼촌.”“기사는 봤어?”전화 반대편 정국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네. 봤어요.”이 순간 분위기는 얼어붙는 것을 넘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이유영은 지금 어이가 없어 미칠 것 같았다.‘이게 다 무슨 일이래?’이유영은 정말 화가 나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외삼촌, 저도 엔데스 명우가 이렇게 드세게 나올 줄 몰랐어요.”‘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결혼을 견지하다니?’‘도대체 누굴 화나게 하려는 것이야?’지금 파리 사람들은 엔데스 명우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명찰을 줬을 뿐만 아니라 전 파리 사람들은 다 이유영을 여우라고 욕할 것이었다.정국진의 별로 좋지 않던 말투는 지금 더욱 엄숙해졌다.“너 지금 반산월에 가만히 있어. 어디도 가지 마.”“그럼, 삼촌...”“이번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어떻게 처리해요?”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상 엔데스 명우더러 결혼을 취소하라고 하는 건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지금 엔데스 명우는 자기에게 좋은 이미지를 벌
엔데스 명우는 이런 방식으로 이유영의 모든 계략을 부숴버린 것이었다. 그러고는 강제로 자기랑 이유영을, 그리고 정씨 가문을 엮어 놓았다.저녁 시간이 되자 엔데스 명우가… 왔다!식탁에서 이유영은 마치 상대방을 잡아먹을 기세로 매서운 눈빛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왜? 이런 밑지는 장사는 처음이에요?”“…”‘처음!?’당연히 이렇게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는 처음이었다.이유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엔데스 명우는 계속해서 말했다.“전에 강이한도 참, 어떻게 당신의 이런 서투른 수작에 속아 넘어간 거죠?”‘서투른 기교라고?’맞는 말이긴 했다. 이번 생… 이유영은 깨어난 순간부터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어떻게 하면 강이한이랑 연을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깨어난 그 순간부터 강이한과 관계를 단절할 생각이었다.이혼을 위해, 그녀는 한 발짝 한 발짝 압박했다!처음에 강이한은 매번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동의를 한 거였지?’이유영은 이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혼에 동의한 건… 이유영이 하도 난리를 피워서였다.그랬다. 이유영이 너무나도 세게 난리를 피웠으며 한 발짝 한 발짝 압박을 가했다. 그녀의 시달림 때문에 강이한은 결국 이성을 잃고 이혼에 동의했다.“뭘 어떻게 했겠어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그것에 눈이 멀어서 그랬겠죠.”그리고 강이한의 마음은 줄곧 자기한테 있지 않았다고 이유영은 생각했다.“하!”엔데스 명우는 콧방귀를 뀌었다.이유영은 이런 엔데스 명우가 꼴 보기 싫어서 눈앞에 있는 와인잔을 들어 와인을 몇 모금 마셨다.하지만 가슴속의 그런 답답함은 여전히 내려가지 않았으며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열받았다.“그럼, 이번에는 꼭 기억해요. 사랑과 마음이 없는 남자를 절대 함부로 건드리지 말 것을, 나의 왕비 전하님?”이유영은 와인잔을 든 손이 순간 멈칫했다.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몇 푼 더 날카로워지더니 말투는 더욱 쌀쌀해졌다.“그래요. 고
이 순간, 아무리 핸드폰을 통해 전자파로 교류하고 있었지만, 엔데스 명우는 상대방 몸의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정국진은 마치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가 이토록 직접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그리고 파리에서 지낸 세월 동안, 정국진은 남을 밑지게 하면 했지, 자신이 밑지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지금 정국진이 이처럼 불만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제가 안도베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 반대편 정국진의 말투는 아주 날카로웠다.“네. 좋아요.”전화를 끊은 뒤, 차 안의 기운은 여전했다.엔데스 명우의 입가에 걸친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어떻습니까?”성진남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 필경 정국진은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늙은 여우였다.이 사람은 종래로 교활했다.엔데스 명우는 성진남의 물음에 대답했다.“아무리 내가 이렇게 큰 소란을 일으킨다고 다고 해도 저 사람은 절대로 쉽게 이유영을 내게 시집보내지 않을 거야.”까놓고 말해서 정국진은 엔데스 가문이라는 똥물과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게다가 그동안, 엔데스 가문의 많고 많은 사람들이 정국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정국진은 여전히 중립 태도를 유지했다.누구도 그 사람 앞에서 뜻대로 되는 사람은 없었다.정국진의 태도는 확실했다. 지금 이유영과 연을 끊었다고 선포한 건 그저 엔데스 명우를 물리 치우기 위해서였다.“후...”엔데스 명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주 느긋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만에 이렇게 자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만난 것처럼.삽시에 엔데스 명우의 머릿속에는 고집이 세고 차가운 두 눈이 번뜩 떠올랐다. 아무리 자신이 그녀를 세게 괴롭혀도 자기를 바라보는 그런 불굴의 두 눈을 가진 여인.정말이지 만약 그녀가 그 일과 상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명우는 정말 그녀를 꽤 맘에 들어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녀가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렇게 재판에서 설선비를 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아마도 이유영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때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그때 한지음은 강이한에게 접근할 방법조차 없었다.그때 그 사람이 나타났다.그 사람은 한지음이 강이한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를 난장판으로 만들게 도와주었다.그리고 이유영이 한 발짝 한 발짝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한지음은 마음속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이유영을 심연에 빠뜨린 줄 알았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진영숙이 진실을 들고 올 줄, 심지어 조형욱이 조사를 한 결과 진영숙의 말이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시시각각 한지음에게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게 했다.지금 유 아주머니가 한 말들은 그저 한지음을 역겹게 만들었다.한지음이 말없이 온몸에서 냉기가 도는 모습을 보자, 유 아주머니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결국 별소리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에서 사람이 나오더니 공손하게 한지음의 곁에 왔다.“한지음 아가씨, 안으로 들어가시죠.”하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공손하게 한지음을 위해 차 문을 열어당겼다.유 아주머니는 그 사람이 한지음을 데리고 들어가게 내버려두었다.아주머니가 보기엔 한지음과 이유영 사이에는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힌 원한이 있어 한지음의 매번 출현은 다 이유영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래서 유 아주머니는 아주 마음 놓고 한지음을 혼자 들어가게 두었다.그리고 한지음이 이유영 때문에 다칠지 말지는 유 아주머니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유 아주머니는 이유영이 한지음을 다치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되면 강이한은 이유영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될 수도 있었다....반산월의 등불은 밝지도 않고 그렇고 해서 절대로 너무 어둡지도 않았다. 딱 이유영에게 적절한 밝기였다.거실에서 이유영은 돼지 인형 한 개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온몸에서 특유의 우아한 기운을 내뿜었으며 사람 전체가 여유롭게 조용해 보였다.심지어 두 눈을 먼 한지음
한지음의 이 말에 대해 이유영은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이 짓거리도 몇 번째더라?’지난번 생에서, 한지음은 자기랑 강이한이 서로 애틋한 사진을 이유영에게 보냈었다. 그리고 도대체 그런 짓을 몇 번째 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목적은 다 이유영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였다.한지음이 강이한에게 기댄 채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들, 그리고 두 사람이 침대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사진들, 여러 가지 사진들이 부지기수였다.그리고 매번 이런 사진을 받은 후 강이한은 다 피로에 찌든 모습을 하고 돌아왔다. 지금에 와서 이유영은 거의 잊고 있었다.그 당시의 자신이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강이한을 마주했는지 이유영은 거의 까먹고 있었다.사실 강이한이란 남자를 잊는 것도 어찌 보면 좋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기억에서 지우면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그리고 현재, 이유영은 정말 강이한을 내려놓았다!하지만 한지음이 지금에 와서 이유영에게 그 남자랑 앞으로 관계가 없을 거라고 하다니?“왜,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야?”‘도대체 무엇부터 말해야 하지?’이유영의 말투는 조금 사늘했다.분명한 건 이 문제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이번 생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이유영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전생과 이번 생이 겹쳐서 같이 뒤섞이니 이유영도 자기가 도대체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지금 내가 그토록 힘겹게 그 지옥에서 벗어났는데, 한지음이 이렇게 손쉽게 관계를 뿌리치다니.’이유영은 이 상황이 매우 웃겼다. 하지만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언니.”“…”이 말에 이유영은 머리가 윙 했다.그러고는 한지음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없이 날카롭게 변했다.이유영이 입을 열기 전에 한지음이 계속해서 말했다.“그 사람을 용서해 줘.”그 사람은 강이한을 말하는 것이었다!지금에 와서 아무리 해명을 해봐도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하지만 한지음은 단지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그녀가 생각하는
강이한 때문에 이유영은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는데, 박연준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은지가 연서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박연준과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보호를 해주었는지와 상관없이 이유영은 그 둘에게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그 이유는 그들이 이유영에게 접근한 이유가 처음부터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이유영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자존심 강한 이유영은 진영숙의 억압 속에서도 강이한을 위해 참았지만, 이제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이유영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 고통스러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소은지가 부엌으로 간 사이, 박연준은 이유영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이유영은 손을 빼려 했지만 박연준은 더욱 힘을 주었다.“박연준!”이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준은 이유영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답답한 듯 말했다.“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박연준의 질문은 이유영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미 다 설명했는데, 왜 이유영은 서로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이유영의 차가운 대답은 박연준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요즘 이유영은 박연준이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항상 차가웠다. 마치 높은 벽을 쌓아놓은 듯, 넘어설 수 없을 만큼 차가운 태도였다. 박연준은 이유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했다.이유영은 냉담한 시선으로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박연준은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다.이유영의 차가운 말에 박연준의 끈기와 노력은 무너져 내렸고 결국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 약 먹고 어땠어?”박연준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대답하기 전에 박연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영아, 진심으로 대답해 줘. 네 건강과 관련된 문제야.”박연준은 이유영이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아무런 느
현우에 대한 생각은 소은지와는 달랐다.그들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강제로 바꿀 수는 없었다.또한 그녀와 엔데스 명우의 관계는 그녀의 인생에서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치욕이었다.온몸이 더럽혀진 자신이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남자, 현우와 어울릴 수 있겠는가?그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였고,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자격도 없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갔다.파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유영에게는 그것이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정확히 일주일이 지났고 소은지는 우천시의 날씨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여기는 정말 비가 자주 오네.”소은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지는 비 오는 느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기분은 정말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답답해지곤 해.”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이런 곳에서 자면 꽤 편안함을 느꼈었다.하지만 밤이 되자, 소은지는 바로 이유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여기 밤에 정말 추워!”소은지는 이불을 두 겹 덮어도 여전히 추웠다.사람들은 우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소은지는 이곳이 춥기만 했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니. 겨울이 오면 이곳 날씨는 정말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은지는 이곳이 벌써 싫어졌다.이유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넌 정말!”그 목소리에는 살짝 애정 어린 톤이 담겨 있었다. 소은지는 이유영을 보며 말했다.“요즘 너 기분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소은지는 이유영의 세상이 정말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박연준과 강이한 덕분에, 그녀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서주나 파리 어디에서도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었다.이유영은 대답했다.“네가 왔으니까, 당연히 행복하지.”“그렇구나.”소은지
소은지는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그릇을 들고 숟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서 더 깊은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꼈다.“그 사람은... 떠났어?”그는 강이한을 말한 거였다.박연준은 아침에 이유영과 불편한 대화를 나눈 후, 일 보러 밖으로 나갔다.게다가 엔데스 회장의 별세는 서주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를 둘러싼 일이 정말 많았다.“응.”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말없이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눈빛은 더욱 깊어져 갔다.여기에 오고 나서, 현우의 사람들은 이곳 주변이 아주 평온하다고 했다. 확실히 이곳은 아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말을 떠올렸다. 송연미는 그 이유를 말하길, 이유영 뒤에 있는 박연준과 강이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들이 엔데스 가문이 원하는 중요한 것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엔데스 가문 사람들은 이유영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와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거야?”소은지가 이유영에게 물었다.“응.”이유영은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깊은 감정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그녀의 한마디는 그렇게 단호했다. 그 말은 마치 그들 사이에 애초에 아무 감정도 없었다는 듯이, 끝났다는 말조차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는 듯했다.소은지는 웃었다.“예전부터 난 네가 행복하기만 바랐어, 강이한과 멀리해.”“맞아, 그때 넌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유영은 그 가운데서 무엇도 보지 못했다.소은지는 여러 번 말했었다. 여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이성이 사라진다고.그러나 그때의 이유영은 소은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강이한에게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만약 그때 소은지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말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은지야.”“응?”“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조심해.”이유영은 소은지를 향해 깊고
박연준은 어둠 속 이유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꼭 괜찮아져야 해...”그 말은 깊고 아픈 감정이 담겨 있었다.마치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한 말이었다.이유영은 비 내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박연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떠난 이후, 그들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이렇게 차가웠다.“탁탁탁!”하이힐 소리와 바퀴 소리가 뜰에서 울려 퍼지자 이유영은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섰다.“소은지 씨입니다.”이유영의 얼굴에 당황함이 스쳐 지나자 우지는 급히 이유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누구도 알지 못했다.하이힐 소리가 들렸을 때, 이유영의 마음속에 느껴진 감정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괴로웠다.홍문동이 불타던 그날도 이유영은 그 하이힐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둠 속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그것은 차가움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이유영에게 공포로 다가왔다.우지가 소은지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이유영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소은지가 왜 여기에 온 건지 의문이었다.“유영아.”소은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지야.”이유영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 나야.”“왜 갑자기...”소은지의 예고 없는 방문에 이유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이유영에게 가장 답답한 일이 바로 소은지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는 소은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답답한 마음이 이유영을 괴롭게 했다.“현우 씨가 너한테 가라고 해서 왔어.”소은지가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이유영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은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이유영은 소은지의 손을 반대로 잡으며, 현우가 소은지를 보낸 것이라면, 아마 엔데스 명우는 이 시점에서 매우 바쁜 상황일 것임을 짐작했다.이유영은 소은지가 안쓰러웠다.소은지 역시 이유영의 텅 빈 눈을 보며 가슴 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퍼졌다. 현우가 이유영의 시력이 거의 없다고 말했을 때는 그저 듣기만 했지만, 이유영이 정말로 보
시간이 지나면서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이 서려 있었다. 이유영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오늘은 어때?”한 남자가 그녀의 옆에 나타나 덩굴 의자에 앉았다.이유영은 이미 이 의자의 냄새에 익숙해졌다.익숙함, 그건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의자나 의자에 앉을 때마다 딱딱한 느낌만 들곤 했다.강이한이 이유영을 위해 덩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그 위에 부드러운 쿠션을 깔아 주었다. 이유영은 덩굴 의자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화려한 소파는 아니지만 그 자리는 이유영에게 편안함을 주었다.그러나 박연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차가워졌다.“아니.”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는 매일 아침 마치 일과처럼 그녀에게 묻곤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만 했다.이유영은 남자의 기운이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염 선생은 의술이 뛰어난 분이시니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박연준은 사람을 위로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유영이 이렇게 오랜 시간 약을 복용했음에도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다급해졌다.남자의 말을 듣고 이유영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이제 바로 네가 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왔다.“유영아, 내가 너한테 무엇을 원하는지 너도 알잖아. 왜 이렇게 날 비꼬는 거야?”맞다, 이유영은 알고 있었다.이유영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강이한과의 관계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 버린 사람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한 편에 서 있었다.그들이 이유영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우리 이러지 말자, 응?”박연준의 목소리는 씁쓸했다.박연준은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연준의 마음은 점점 더 조여오고 있었다.이유영은 차갑게 대답했다.“괴롭다면 떠나도 좋아.”이유영의 분위기와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은 날카롭고 잔인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 없는 조롱을 던졌다.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소은지가 딱 그랬다.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이라 해도 소은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소은지의 눈빛에 비친 두려움 없는 모습이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차라리 그녀의 눈을 빼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여섯째 도련님!”여섯째 도련님이라니.엔데스 명우는 처음으로 이런 모욕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감히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특히 여자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구애했지, 감히 이렇게 대들지 못했다. 소은지는 정말 대단했다.남자는 소은지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돌아서며 말했다.“소은지, 기다리고 있겠어.”“...”“현우가 너를 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남자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났다.마치 그 일이 눈앞에서 곧 벌어질 것처럼.남자가 더 말하지 않아도 소은지는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우가 그녀를 버리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엔데스 명우의 무자비한 복수뿐이었다.그들의 앙숙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은지는 이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마치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남자가 문까지 가다가 발을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넌 엔데스 가문 남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해!”심지어 너무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들은 늑대들이었다...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남자들. 소은지는 그들 사이에 갇혀 이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소은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엔데스 명우가 떠나고 소은지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만 남아 있었다......파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엔데스 현우는 사람을 보내 소은지를 전용기를 태웠다.비행기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소은지는 파리
“가고 싶어?”“가면 안 돼?”소은지는 차갑고 비꼬는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는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서질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소은지의 등이 차가운 벽에 밀쳐졌고 집사와 하인들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가 고함쳤다.“다 꺼져!”집사와 하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얼어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나가세요.”이 남자가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다.집사와 하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렸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소은지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말했다.“다들 나가세요!”“...”사모님의 엄한 명령에 마음이 조여왔지만 결국 모두 급히 자리를 떠났다.엔데스 명우와 소은지만 남았을 때, 소은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증인들은 다 나갔어. 네 마음대로 해.”소은지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표정은 예전에 그와 함께 있을 때와 똑같았다. 그가 아무리 고문해도 그녀는 항상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었다.명우가 소은지를 가장 아프게 해도, 소은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다.마치 그녀의 세계에는 고통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소은지에게는 약점이 없었다.한때 엔데스 명우는 이런 여자가 길들여지면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교만한 뼈 구조마저 너무 미워서 하나하나 뜯어내고 싶을 정도였다.그녀의 오만함은 뼈와 피에서부터 자라 세포로 뻗어 나온 듯했다. 그렇게 끈질기게 자라 아무리 짓밟고 억눌러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두 눈을 직접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눈빛이 싫었다.그녀는 항상 무관심하고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명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왜? 안 때릴 거야?”“그렇게 쉽게 내 손에 죽고 싶어?”“흥!”하긴, 이렇게 쉽게 그녀를 보내줄 순 없었
소은지는 누군가를 한 번도 깊이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송연미의 눈 속에서 마치 그런 깊은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다.송연미의 눈에 담긴 감정은 차분하고 억제된 것이었으며 심지어 극단적이고 날카롭게 느껴졌다.모두 그 한 사람만을 위한 감정이었다.처음 송연미를 봤을 때, 엔데스 가문의 여자들 사이에서 송연미는 유난히 고독하고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엔데스 가문에 변화가 생기자 송연미는 반산월에서 그녀는 네 번째 사모님과 송씨 가문의 아가씨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고 미친 듯이 화를 냈었다.아버지가 사촌 여동생을 양녀로 삼으려는 얘기를 했을 때, 송연미는 절망적이면서도 차분한 모습이었다.이유영에게서 보았던 것, 즉 결혼의 끝을 생각하면 소은지는 감정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그런 사랑이 송연미에게서 보인 것이다. '그가 좋다면 나는 뭐든지 괜찮다'는 그런 사랑을.그 사랑은 소은지가 감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을 뒤엎어 버렸다. 송연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소은지는 이제 송연미가 불쌍하고 애석하게 느껴졌다.엔데스 운빈과 송씨 가문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현우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송연미를 파리에서 떠나게 한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 아버지가 사촌을 입양한 사실을 참고 있는 이유도 현우 때문이었다.이런 여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난 오늘 밤 떠나.”잠시 후 소은지는 송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송연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 속에 기쁨이 스쳤다.“진짜로 떠날 거야?”“응.”소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지는 진심이었다.송연미가 한숨을 돌린 듯했다. 마치 그 전까지의 모든 계획이 소은지에게 걸려 있었던 것처럼.이제 소은지가 입을 열었으니 그들도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소은지는 송연미의 반응을 보며 송연미의 눈 속에서 깊고 날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신의 사람을 아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리가 없었다.“내 아버지가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파리에서의 권력이었어. 네 좋은 친구인 이유영에게 물어보면, 내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거야.”송연미도 소은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소은지는 강압적인 방식보다는 부드러운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써왔던 여러 방법이 소은지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결국,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은지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일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기도 했고 현우가 이 사건에 소은지를 전혀 끌어들이지 않아서 이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정씨 가문은 이 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야?”소은지는 문득 그렇게 물었다.정씨 가문은 매우 큰 상업 제국이었다. 정국진은 언제나 무사히 지나갔고 그만큼 이 사람이 능숙하다는 뜻일 것이다.정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송연미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이유영 옆에 강이한과 박연준이 없었더라면, 엔데스 가문이 정국진을 그냥 놔뒀을 리가 없어.”하지만 아쉽게도 정씨 가문의 유일한 딸 이유영은 강이한과 박연준과 관계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따라서 이유영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사실 송연미가 가장 부러워한 사람은 바로 이유영이었다.왜냐하면 이유영이 이 파리에서 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