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강이한은 예전에 엔데스의 여섯째 도련님이랑 아주 큰 모순이 있었었다. 지금 이유영이랑 같이 올라가는 건 그저 이유영을 더욱 난처한 경지에 빠지게 할 뿐이었다.“세팅은 다 했어?”강이한은 얼굴색이 아주 어두웠다.이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걱정 마십시오. 사모님한테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그럼, 다행이네!’이시욱의 말을 듣자, 경직된 강이한의 얼굴은 그나마 조금 풀렸다....꼭대기 층의 사무실 안에서, 이유영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온몸에 진귀하고 차가운 기운을 뿜고 있는 남자는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이유영의 사무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든 시가에는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삽시에, 그 시가는 이유영을 향해 날라왔다. 이유영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 시가는 그녀의 얼굴을 스치며 그녀 뒤에 있는, 테이블에 있는 재떨이에 떨어졌다.아주 정확하고 깔끔하게 딱 떨어졌다.“...”이유영은 얼굴이 따끔거렸다!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을 보는 이유영의 눈빛도 조금 날카롭게 변했다.“여섯째 도련님, 참 훌륭한 솜씨네요!”“제 사격 솜씨가 더 훌륭한데 어떻게 한번 확인해 보겠어요?”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엔데스 명우가 몸을 숙이는 순간, 그의 따뜻한 숨결은 이유영의 얼굴에 퍼졌다.비록 숨결은 따스했지만, 이유영은 한없이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이유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코앞에 있는, 아주 완벽에 가까운 예술의 조예만 한 엔데스 명우의 위험한 두 눈과 마주쳤다. 정말 이 남자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도 보면 분노할 만한 잘생긴 얼굴에, 바다처럼 깊은 두 눈에는 위험한 기운이 그득했다.그윽하면서도 매처럼 날카로웠다.“도련님은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경고하시는 건가요?”“저는 제가 대표님과 원한이 없다고 기억하는데 말해 보세요.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저를 오게 만든 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엔데스 명우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다란
“왜요? 그 여자가 이 대표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인가요?”“그 여자를 내게 주세요!”네 단어는 거의 이유영의 잇새에서 새어 나온 것이었다. 원래의 인내심은 지금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엔데스 명우는 웃었다.그 웃음은 아주 날카로웠다.“달라고요?”“네!”“그건 안 되죠. 아니면 대표님이 그 여자 말고 제 주변의 다른 여자로 바꾸세요.”“전 딱 그 여자를 원해요!”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반대편의 엔데스 명우의 얼굴색은 조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의 몸에 위험한 기운은 지금 더욱 극한에 도달했다.이 시각,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끊임없이 파열되고 있었다.그리고 위험한 기운도 끊임없이 용솟음쳤다.마치 바로 다음 순간에 폭발할 것처럼.이유영은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 곁에 있는 소은지의 처지와 그런 대우를 받는 소은지를 생각하자, 그녀의 눈 밑에 있던 인내는 철저히 부서졌다.엔데스 명우는 늑대처럼 변한 이유영을 바라보며 웃었다.“재밌네요!”“...”“이러니 정국진이 이렇게 큰 회사를 당신에게 맡기지. 키는 이렇게나 작은데 이토록 큰 박력이 있다니! 하지만 안타깝게도...”말을 여기까지 한 엔데스 명우는 말을 멈추었다.이유영의 눈을 보는 그는 점차 웃음기를 거두고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이유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엔데스 명우는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너무 어리네. 어쨌든 여자인지라 너무 감성적이고!”이유영의 눈빛은 어둡게 변했다.“도련님!”“가서 당신 외삼촌한테 전해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말을 마친 엔데스 명우는 깔끔하게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등에는 아주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을 찾아왔지만, 프로젝트의 재시작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다!이로부터 이 남자의 오만함과 거만함을 보아낼 수 있었다.“여섯째 도련님이 그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저는 더 이상 로열 글로벌이랑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그러니 도련님이 죽이시든 갈구시
‘계승? 엔데스 가문?’‘이렇게 중요하다고?’지금 엔데스 가문에 있는 몇 명은 다 능력자라는 것을 이유영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엔데스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는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그렇게 방대한 가문이어서 안 봐도 상황이 어떤지 대충 감이 잡혔다.그들 매 사람 손에 운행 중인 것들이 곧 그들의 리더십 능력을 대표했고 엔데스 명우를 진정으로 진노한 건 사실 이유영이 끊어버린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가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건 자기가 이유영이라는 여자한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이었다.생각 정리를 마친 이유영은 머리가 아파 났다.하지만 더 그녀를 골치 아프게 한 건... 사실 소은지였다!이유영이 이렇게 큰일을 벌였는데 결국 얻은 소식은 하나밖에 없었을뿐더러 엔데스 명우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지 못했다!“내가 당장 사람을 안배해서 당신이 떠날 수 있게 준비시킬게.”강이한은 정색 하면서 말했다.“난...”이유영이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을 꺼내서 보니 박연준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연준 씨.”전화를 받는 순간, 이유영은 말투마저 따뜻하게 변했다. 그건 강이한이 박연준을 찢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그런 따뜻함이었다.박연준이 말했다.“용준이가 이미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왜요?”“제가 해외에 다 준비를 시켜놨어요. 유영 씨 잠깐 파리에 있지 말고, 먼저 가서 한동안 있어요.”“네?”박연준도 이유영더러 떠나라고 하다니!?‘일이 정말 그 정도로 심각한 건가?’이유영은 가슴이 두근두근 긴장했다.아까 이유영은 이미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강이한 박연준 두 사람이 다 자기보고 떠나라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여진 제가 알아서 유영 씨 대신 처리를 잘할게요. 유영 씨는 마음 편히 먼저 달빛산에서 한동안 지내세요.”“그 정도로 심각해요?”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일이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절대 믿기지 않았다.전화 반대편 사람의 말에는 조금 유
정국진의 이유영은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소은지!’이유영은 아직도 소은지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외삼촌에게 다시 말을 꺼낼 용기를 잃었다.그러니깐 외삼촌과 강이한 등 사람은 진작에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 손에 있는 걸 알면서도 끝내 이유영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었다.지금 결국 이유영도 다 알았다!이유영은 홧김에 이런 소동을 벌인 것이었다.그리고 지금 그들의 반응을 보고서야 이유영도 일의 심각성을 인식하였다....다른 한편, 이유영 쪽의 난장판에 비하면 한지음 쪽은 그나마 조금 조용했다. 조형욱은 움직임이 아주 빨랐고 그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하지만 조형욱의 방문에 제일 신이 난건 유 아주머니였다.유 아주머니는 한지음과 조형욱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워 주었다. 이 순간 조형욱은 아주 엄숙하게 한지음을 바라보았다.한지음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그녀도 조형욱 몸의 무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한지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대충 결과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말해 주세요. 저는 감당할 수 있어요!”한지음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조형욱의 눈빛은 조금 어두워졌다.“아뇨. 지음 씨는 감당할 수 없어요.”필경 한지음이 이유영을 향한 복수의 길에서 도대체 무엇을 잃었는지, 그 속에 엮인 사람들은 다 명명백백하게 봤었다.그래서 조형욱이 보기에도 한지음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조형욱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도 한지음은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아니요. 전 감달할 수 있어요!”‘그래. 난... 감당할 수 있어!’사실 조형욱이 몰랐던 건, 이전에 진영숙이 이미 한번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요 며칠 한지음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폭풍우가 몰아쳤다.이때 조형욱더러 조사를 해보라는 건 그저 이 모든 것이 다 가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조형욱이 입을 열자, 한지음은 진영숙의 말이 다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진영숙의 말은 결코 한지음을 속이는 것이 아니었다!조형욱은 미간을 찌
이유영은 이미 반산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으슥한 곳에서, 이유영의 차는 갑자기 포위되었다!차 안에서 검은 착장을 입은 남자가 내리더니 그의 두 눈은 매처럼 예리했고 안색도 날카로웠다.강이한은 쌀쌀한 표정을 지었다.차 문이 열렸다!“이유영 대표님, 저희 여섯째 도련님께서 대표님을 모시고 한 잔 마시고 싶으시답니다!”남자의 언어에는 건달 냄새가 깃들어있었다.이유영은 당장에서 안색이 어두워졌다.‘이게... 모시는 거라고!?’“제가 안 간다고 하면은요?”“걱정 마세요. 저희가 무조건 안전을 보장해 드릴 겁니다. 당연히... 대표님의 외삼촌께서 협조를 해주신다면.”이 말의 뜻은 협박이 틀림없었다.이유영의 안색은 이미 새파랗게 질렸다!지금에야 이유영은 외삼촌이 왜 자기보고 당장 빨리 파리를 떠나라고 했는지 알았다.엔데스 명우의 소문에 따르면 지금 그는 반드시 외삼촌의 껍질을 한층 벗겼을 것이었다.“루이스.”“네. 아가씨!”“자신 있어요?”이유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아담한 몸이 빙그르르 도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쾅 소리와 함께 이유영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강이한이 노호하는 소리가 들렸다.“빨리 가!”그다음 이유영의 몸은 차의 빠른 관성 때문에 세게 뒷좌석에 박혔다. 그리고 바로 전까지만 해도 그녀 옆에 같이 앉아 있었던 강이한이 사라졌다.이유영이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차의 갑작스러운 브레이킹과 급격한 방향 전환에 이유영은 다시 세상이 핑 도는 느낌을 받았다.동시에 몸도 제대로 평형을 잃었다.“강이한은?!”쿵 소리와 함께 루이스는 온몸에 쌀쌀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억지로 길을 내고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이유영은 힘겹게 일어서며 뒤를 쳐다보았다.뒤로 한눈을 팔자, 그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슴은... 순식간에 목구멍까지 조여 올랐다.‘강이한이!? 이런 빌어먹을 남자. 아까 차가 그렇게나 많았는데.’한잔하자는 것으로 이유영을 부른 엔데스 여섯째 도련님이 보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낼 수 있었다.
차를 세우자마자 보니 용준이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아가씨.”용준은 앞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이유영을 보고 한시름을 놓았다.“우린 지금 당장 떠나야 해요!”‘지금 바로 간다고?’이유영은 루이스를 한눈 보았다.우지는 이미 정리를 마친 캐리어를 들고나왔다.돌아오기 전에 루이스는 이미 우지에게 어떤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 지, 정국진이 어떤 걸 당부했는지 다 알려주었다.그런 것이 아니었으면 그들은 바로 떠났을 것이었다.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결국 용준의 차에 올라탔다. 루이스도 따라서 차에 탔다...이시욱이 도착했을 때, 그는 강이한이 곤경에 몰린 이유영을 빼돌리기 위해 그녀를 박연준의 차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국외자라고 해도 이 광경을 보니 이시욱은 저도 모르게 눈 밑이 시큰거렸다....시테섬의 한 별장에서, 소은지는 낭패한 옷차림을 하고 화면 속의 영상을 보면서 가슴이 졸아들었다. 그녀의 멀지 않은 곳에는 고귀하고 도도한 남자가 서 있었다.소은지의 창백한 얼굴색을 보며 남자는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다.“당신의 이 친구, 좀 귀엽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당신에게 이렇게 당신을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절친한 친구가 있는 줄 몰랐네!”“당신의 사람들을 철수시켜!”소은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줄곧 평온하던 그녀는 지금 이 남자 앞에서 결국 잔잔한 거울에 금이 간 것처럼 보였다.소은지...2년 동안 사라진 여자, 이유영이 온갖 곳을 다 뒤진 여자, 지금 그녀의 몸에는 청하시에 있을 때의 오만하고 멋진 모습이 한치라도 남지 않았다.그때의 소은지는 사업의 전성기에 있어서, 활기가 넘쳤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마치 흙탕물에 떨어진 허수아비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 청하시에서의 재기가 하나도 없었다.그러나 이 2년 동안, 엔데스 명우가 아무리 소은지를 괴롭혀도 그녀의 얼굴은 시종일관 평온하고 무심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지금 화면
안색이 원래도 안 좋던 소은지의 얼굴색은 엔데스 명우의 이 말을 듣고 더욱 창백해졌다.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이유영에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 것 같아? 어느 정도로 절망할 것 같아?”‘절망? 그래서 이 사람은 지금 유영이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드리려는 거야?’원래 그나마 평온하던 소은지의 두 눈은 이 순간 엔데스 명우의 말을 듣고 그를 바라보면서... 눈 밑에는 긴장감이 핑 돌았다.“내가 미리 그녀에게 보여주는 건 어떤 것 같아?”‘미리 보여준다고? 그 말인즉 손을 쓰겠다는 거잖아!?’소은지는 두 손에 주먹을 꼭 쥐며 온몸의 떨림이 더욱 세졌다.“당신의 그런 선심은 정말 필요 없어!”소은지는 참으면서 말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엔데스 명우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엔데스 명우의 눈 밑에 드리운 위험한 기운을 보면서 소은지의 가슴은 이 순간 너무 졸여진 나머지 아파 났다.이유영 주변에 상황이 어떤지 소은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엔데스 명우가 끼어들지 않는 게 낫는 건 분명했다.이유영은 줄곧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 반드시 낌새를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아니면 사실 이유영이 이미 눈치를 챘지만 계속해서 방법을 써서 상황을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엔데스 명우가 나서서 일의 악화를 촉진할 필요는 없었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의 곁으로 다가와 고사리같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살며시 소은지의 턱을 끌어올렸다.“그거 알아? 2년 동안 내가 당신 몸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게 뭔지?”‘좋아한다고?’‘이 단어를 내뱉다니 참말로 뻔뻔스럽네!’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는 소은지의 눈빛에는 일말의 굴복도 없었다.그는 소은지의 턱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주었다.“내가 제일 맘에 드는 건 당신의 이런 강직한 성격이야!”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는 소은지의 두 분은 다른 여자들이랑 달랐다.이건 분명 밀당하는 눈빛이 아니라는 것을 엔데스 명우도 알아보았다.이
엔데스 명우는 뒤돌아서 소은지를 소파에 눌렀다. 그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소은지의 부드러운 턱뼈를 어루만졌다.“방금 뭐라고? 잘 못 들었어!”‘결국 입을 여네?’‘거참 힘드네.’소은지는 입이 정말 무거웠다. 이 2년 동안 어떻게 그녀를 대하든 소은지는 단 한 번도 빈 적이 없었다. 보아하니 이유영이 소은지의 마음속에서 어지간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엔데스 명우의 차가운 숨결은 그에게 질곡을 당한 소은지의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그는 아주 위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눈 뜨고 날 봐봐!”아주 강경한 명령의 어투였다.아무리 소은지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시각에는 엔데스 명우의 강경한 위협에 찔려 두 눈을 떴다.흐릿한 눈매, 정말이지 오만함을 벗은 그녀의 두 눈은 아주 아름다웠다.엔데스 명우는 아주 자세히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그가 원하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이 여자는 그래도 다르구나...’“한 번 더 말해봐. 응?”“제가 빈다고요. 제발!”소은지가 2년 동안 정말 처음으로 이 남자한테 이 단어를 꺼낸 건 사실이었다.소은지가 보기엔 사람은... 어느 때든지 다 쉽게 자기 머리를 숙여서는 안 되었다. 그건 그 사람의 마지노선을 대표하는 것이었다.그럴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유영이 이 일에 엮였다고 했을 때 소은지는 결국 당황했다. 눈앞의 이 악랄한 남자한테 소은지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엔데스 명우는 웃었다!풍자의 웃음이었다.챡! 챡! 챡! 엔데스 명우는 가볍게 소은지의 뺨을 치고는 몸을 뒤척이며 일어섰다.“기억해. 앞으로는 이 태도로 날 대해야 해.”진작 소은지가 이 태도였더라면, 엔데스 명우도 2년 동안 그렇게 격렬한 수단으로 그녀를 혼내지 않았을 것이었다.소은지는 정말 꿋꿋하기 그지없었다.소은지는 안색이 창백했다.그녀는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가는 엔데스 명우의 뒷모습을 보았다. 소은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난 이 대표를 돕고 있는 거야.”“...”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