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최근 들어 점점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분명 그 여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인데도 매번 그 여자에게 불리한 일을 할 때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그는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그쪽으로 출발해.”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시욱이 물었다.“이유영 씨를 보러 간다는 말씀입니까?”“그래.”말을 마친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힘껏 연기를 들이마시며 짜증을 억눌렀다.이시욱은 차를 돌려 경찰서로 향했다.이때, 강이한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그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여보세요.”“그까짓 여자 둘에게 끌려다니다니. 참 실망이구나.”수화기 너머로 근엄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이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까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벌써 10년이다.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니!”“과거에 거절했듯이 지금도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강이한은 싸늘한 목소리로 단박에 거절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둘은 서로 핸드폰에 대고 기싸움이 오갔다.잠시 후, 싸늘하고도 음침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그럼 어쩔 수 없구나. 네가 못한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그 여자들을 처리하는 수밖에!”“아무것도 하지 마세요!”“이한아….”강이한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그 사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결국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이만 끊겠습니다.”그는 상대가 더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핸드폰을 무심하게 던져버린 그의 얼굴은 사납기 그지없었다.“차 돌려!”강이한이 싸늘하게 굳은 목소리로 이시욱에게 말했다.이시욱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뒷좌석을 살폈다.그는 갑자기 통화를 마친 상사가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궁금했다.잠시 후, 강이한이 지친 목소리
형사가 말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사는 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심문 방식은 저희 쪽에서 조정해 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이유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사실 가슴이 조금 아프기는 했다.길고 길었던 심문이 이 아이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다고 생각하니 쓰라린 마음도 있었다.잠시 후, 크리스탈 가든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가 안으로 들어왔다.이유영은 처음에 동교 사건 해결이 굉장히 골치 아플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심각한 건 크리스탈 가든의 사건이었다. 증거도 확실하고 증인까지 있으니 그녀는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그물망에 걸린 느낌이었다.아무리 그녀와 무관하다고 해도 결국 인정하지 않으면 사건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증거가 확실한 상황에서 결국 그녀를 기다리는 건 재판밖에 없었다.“조 비서가 밖에서 보석 신청을 하고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모든 걸 변호사에게 맡겨요.”루이스는 진지한 얼굴로 이유영의 옆에 서서 그녀를 위로했다.현재 그녀가 임신한 상태라서 보석 절차에 더 유리할 수도 있었다.이유영은 머리가 어지럽고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온 세상이 흑백이 된 기분이었다.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니 강이한에게 분노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는 속으로 몇 번이고 자신에게 되물었다.반항할까? 아니면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포기할까?지난 생의 그녀는 암흑 속에서 반항할 힘조차도 없었다.이번 생은 어떠할까? 약간의 반격을 한 뒤에 결국 또 그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았는가?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강이한의 손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강이한에게 실망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웠다.어쩌면 모든 건 하늘이 정한 운명이고 피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그쪽에서 제시한 증거 하나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한참의 고민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강이한이 그녀에게 죽음을 강요하더라도 그녀는 끝까지 무관함을 주장할 거라는 태도 표시이기도 했다.결국 이 싸움에서 져서
의무실 직원과 루이스가 인상을 찌푸리고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루이스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모든 건 여기서 일단 나가고 다시 생각해요.”박연준이 청하 시를 떠났고 정국진이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은 강이한에게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이유영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이번 생도 그렇고 지난 생도 그렇고 그녀는 사람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자신의 핏줄이지 않은가!“루이스는 몰라요.”이유영은 담담한 눈빛으로 루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로써 자신의 아이조차 지킬 수 없는 이런 상황은 이미 그녀에게 지옥과도 같았다.그런 상황에서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가장 중요한 건 이 아이를 이용해서 밖으로 나간다면 강이한에게도 소식이 갈 것은 불 보듯이 뻔했다. 그녀는 더 이상 미친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아이를 이용해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누가 알겠는가?그가 만약 그녀를 감방에 보내기로 결정했다면 아마 아이 때문에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굳이 이 소식을 그에게 알릴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회장님 쪽에 얘기도 해보지 않고….”루이스는 말끝을 흐렸지만 이유영은 그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다.외삼촌 쪽에는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고 사람은 파리에 있으니 이쪽 상황을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아이를 이용하는 짓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절차 알려주세요.”루이스는 처음 보는 그녀의 단호하고 차가운 표정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느꼈다.의사도 아까의 차가운 표정 대신,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대체 아이 아빠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으면 이런 상황에서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절차가 좀 복잡하긴 한데 꼭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는 있어요.”의사가 착잡한 표
루이스는 따뜻한 물 한잔을 따라 이유영에게 건넸다.“이거라도 마셔요.”“고마워요.”이유영은 허망한 얼굴로 물컵을 입가로 가져갔다.분명 생수인데도 입맛이 썼다.한편, 세강 그룹.회사에 도착한 강이한은 홀로 사무실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이시욱이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짙은 담배연기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대표님.”“시킨 일은 다 지시했지?”“네.”이시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또 물었다.“한지음 쪽은 잘 준비되고 있어?”“뭘 준비해야 하나요?”이시욱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그는 상사가 뭘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아까 차에서 그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강이한의 태도가 이상했다.그리고 곧이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유영의 보석을 막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한지음 쪽에 뭘 준비하라는 건지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강이한은 그제야 자신이 이유영에게만 신경 쓰다가 가장 지켜줘야 할 사람에게 소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이정수를 지음이 쪽으로 보내.”“대표님!”이시욱이 당황한 얼굴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이정수는 해외에 발령된 강이한의 심복이었고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청하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었다.세강 그룹이 흔들릴 때도 호출하지 않았던 사람을 한지음을 위해 부른다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혹시 제가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이시욱이 물었다.이정수까지 호출했다는 건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설명했다.그제야 이시욱은 어쩌면 이유영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강이한의 행동이 그녀를 지키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잔소리 말고 티켓이나 보내!”남자는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이시욱은 다음 지시를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지시는 없었다.‘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임신한 조사 대상이 보석을 거절당하는 일은 거의 흔치 않았다.게다가 정국진도 연락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혹시 정국진마저 이유영을
루이스는 억울함을 가득 담은 그녀의 눈빛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더라도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갈 것이다.강이한은 한지음과 강서희를 위해 그녀를 벼랑으로 몰더라도 그래서 평생 감옥에서 나갈 수 없더라도 그녀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뭘 하시려는 겁니까? 제가 대신 처리하겠습니다.”루이스는 그녀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현재 외부와 그 어떤 연락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루이스는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이유영은 알 수 없었다.“지현호 씨에게 전화해서 전에 확보한 서류 대조 자세히 하라고 하세요.”“네.”“그리고 감정기관에 의뢰해서 필적도 자세히 대조하라고 해두고요.”장시간의 조사에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녀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검찰 측에서 현재 확보한 증거를 계속 밀고 나간다면 스스로 조사를 할 것이다.강이한은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그녀는 절대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평생 감옥에 있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알겠습니다.”루이스는 그녀의 단호한 얼굴을 보며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쉬었다.강이한이 경찰에 연락해서 보석 신청마저 보류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희망을 잃을까 봐 걱정했지만 그래도 잘 추스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루이스. 외삼촌 쪽에 무슨 상황인지 알아봐 줄 수 있나요?”계속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DNA 감정서가 공개된 뒤로 그녀와 외삼촌 사이도 이상하게 틀어진 것 같았다.하지만 정국진이 그 일로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 같지는 않았다.아니면 정유라 일 때문에 그녀를 멀리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하지만 정말 그렇다고 해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정유라는 그의 소중한 딸이고 현재 상황을 들었을 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루이스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회장님 쪽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그가 아는 정국진은 이렇게 오래 연락이 두절될 인물이 아니었다.
집사가 말했다.“한지음 씨는 많이 놀라셨는지 지금까지 방에서 나오지를 않네요.”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계단 입구를 올려다보았다.그의 주변의 살기가 한층 진해졌다.결국 그는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이시욱은 이정수의 귀국을 지시하던 상사를 떠올리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하루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위층으로 올라가자 마침 한지음의 방에서 나오던 가정부가 그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상황은 어떻습니까?”“이한 오빠.”가정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한지음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놀란 고양이처럼 잔뜩 겁에 질린 그 목소리에 강이한은 가슴이 저렸다.그는 가정부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눈짓한 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나 여기 있어.”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차가운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그녀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지자 남자의 눈빛에 살기가 스쳤다.“그 사람 도둑 아니었어요. 도둑은 절대 아니었어요.”한지음은 횡설수설하며 강이한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알아. 내가 처리할게.”“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오자마자….”그 인간의 의도를 떠올린 듯, 한지음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하게 질렸다.강이한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며 다독이듯이 말했다.“이제 괜찮아.”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지음은 와락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그 순간, 강이한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밀어내려 손을 뻗었다.하지만 현재 그들의 관계와 평생 책임지겠다고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허공에서 손을 멈추었다. 결국 그는 힘없이 손을 내리고 한지음의 가녀린 허리를 끌어안았다.“내가 있으니 이제 괜찮아.”“오빠, 난 너무 무서워요.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에게서 위험한 냄새를 느꼈어요.”진짜로 시력을 잃은 뒤로 그녀는 주변 환경에 굉장히 민감했다.그래서 위험이 닥친 순간에 더 두렵고 무기력함을 느꼈다.강이한은 그녀가 실명한 원인을 이유영의 탓으로 돌리며
그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에 싸늘한 눈빛으로 이시욱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그럼요.”이시욱이 나간 뒤, 서재에 홀로 남은 강이한은 고민에 잠겼다.정국진은 완전히 이유영을 포기한 것일까?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이유영….”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는 이혼한 뒤에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무슨 일이 있어도 당분간은 안에 얌전히 있기를 바랄게!’어느새 시간은 흘러 강서희의 생일날이 다가왔다.그 시간 동안 모두가 편안하게 보낸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꿈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고 이유영은 지옥을 헤매고 있었다.진영숙은 강서희에게 실망했지만 생일 파티는 성대하게 준비하였다.화려하게 치장한 강서희의 방에 왕숙이 들어왔다.“아가씨, 도련님 오셨어요.”왕숙의 목소리에서 짙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고개를 돌린 강서희가 물었다.“아줌마, 무슨 일 있어?”왕숙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한지음 씨도 같이 왔더라고요.”그 말에 강서희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머릿속에 홍문동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걔가 여기를 왜 와?”한지음 얘기가 나오자 강서희는 좋았던 기분이 연기처럼 사라졌다.이유영이 들어오기 전에는 가족들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파티를 즐겼고 이유영이 들어온 뒤로 불편함을 느껴서 겨우 쫓아보냈는데 한지음이 또 끼어들 줄이야!문제는 한지음은 이유영처럼 만만히 당하고 있을 상대가 아니라 오히려 괴롭히는 쪽이라는 게 문제였다.“아가씨.”“나 걔 얼굴 보고 싶지 않아.”강서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한지음만 떠올리면 오빠를 빼앗겼다는 처참한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왕숙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위로했다.“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아가씨잖아요. 주인공이 파티에 참석하지 않으면 큰 사모님 얼굴이 뭐가 돼요.”“아줌마.”“현재는 도련님이 그 아가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니까 손님들 잘 접대해.”“응, 엄마.”강서희는 진영숙의 팔을 놓고 파티장을 돌아다니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맨마지막에 심드렁한 얼굴로 강이한과 한지음에게로 다가갔다.강이한은 재벌가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한지음의 손을 잡고 있었다.행동 하나하나 배려하는 모습에 강서희는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녀석, 안목 좋네. 하지만 이 아가씨의 처지가 좀 안타깝기는 하구나.”한 나이든 회장이 강이한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한지음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연민이 가득했다.오늘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유영과 한지음 사이에 있었던 불쾌한 일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지음을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강서희에게는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강이한은 그 회장의 말을 듣고 묵묵히 한지음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나 괜찮아요, 오빠.”“피곤하지 않아?”강이한이 부드럽게 물었다.“안 피곤해요.”둘이 함께 있는 화면은 한지음의 공허한 눈동자만 아니면 무척이나 어울렸다.강서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오빠.”강이한이 고개를 돌리자 강서희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그래도 생일이라서 그런지 강이한은 더 이상 차가운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다.“그래.”담담한 반응에도 강서희는 대범하게 다가가서 한지음의 팔짱을 꼈다.“지음 언니, 왔구나?”누가 봐도 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그녀는 한지음의 팔목에 낀 팔찌를 보고 짐짓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팔찌 거의 부러졌어.”“아까 부주의로 어디 부딪혔나 봐.”한지음은 조금 전에 강이한의 셔츠 단추에 팔찌가 걸린 적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강서희는 미소를 지으며 강이한에게 말했다.“오빠, 지음 언니 잠깐 빌릴게. 내 방에 액세서리 많아.”그 말을 들은 한지음은 본능적으로 강이한의 손을 꽉 잡았다.강서희와 단둘이 있으면 절대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