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청하 구치소.이유영은 반복되는 조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옮겨졌다.루이스는 늘 하던 대로 매일 그녀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날 밤, 독방에 옮겨진 이유영이 잠깐 휴식을 취하려는데 루이스가 찾아왔다.그의 표정은 사뭇 심각해 보였다.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줄곧 지현우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제출한 증거는 이미 통과되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희망을 지현우에게 걸었다.다만 루이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일이 뒤틀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어때요? 결과는 나왔나요?”이유영의 질문에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졌다.이유영도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이 철렁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았다.“지현우 실장님이 결과를 올려보냈는데 강이한 쪽에서 미리 알고 손을 쓴 것 같습니다.”그렇다는 건 감정결과가 그녀에게 불리하게 나왔다는 것을 의미했다.이유영은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그 인간은 아마 내가 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군요.”‘하긴.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력을 들여서 준비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그의 악랄함은 이미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으니 기회가 있을 거예요. 지 실장님과 조 비서도 방법을 생각해 보고 있으니 대표님도 희망을 잃지 마세요.”루이스가 말했다.이유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울음을 삼켰다.한참이 지난 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단호함과 처절함만 남았다.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루이스에게 말했다.“지 실장에게 말해서 비밀리에 해외 기관에 감정을 맡기도록 하세요.”청하에서 아무리 조사를 해도 강이한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요.”“달리 방법이 없잖아요.”어쩌면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결과서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종 재판에서 상황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그녀는 무슨
한편, 강이한의 본가.한지음은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강서희가 자신을 도발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귓가에 계속해서 강서희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일 우리 오빠 다른 곳으로 보내. 내가 찾아갈 거야.”협박이 다분한 말투에 한지음도 분노가 치밀었다.“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지?”“한지음!”“나 곧 이한 오빠랑 약혼할 거야. 일주일 뒤면 너 나한테 새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둘은 목소리를 깔고 대화를 나누었기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이가 무척 가까워 보였다.강서희는 일주일 뒤에 둘이 약혼한다는 얘기를 듣고 증오에 치가 떨렸다.“감히 내 말을 거부해?”“말했잖아. 너보다는 힘 있고 믿음직한 너희 오빠한테 기대는 것을 택했다고.”지난번에도 했던 말이었다.강주에 있을 때 강서희와 진영숙이 자신을 찾아와서 했던 말을 생각하면 한지음도 짜증이 치밀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강이한을 빼고 아무도 자신을 평생 돌봐주지 않을 거라고 인식했다.이제 완전히 시력을 잃었으니 남은 생을 어떻게 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고민한 결과는 바로 강이한에게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강서희와 했던 거래는 전부 중지하는 게 맞았다.잠시 후, 손목에서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다.“윽!”한지음은 저도 모르게 강서희를 밀쳐냈다.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이 둘에게로 쏠렸다.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었으나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알게 모르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한지음이 강서희를 밀친 것처럼 보였다.“아, 아파!”바닥에 쓰러진 강서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한지음을 바라보고 있었다.한지음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물론 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이시욱이 놀라서 다가왔다.“한지음 씨?”“그게….”한지음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자신을 바라보는 불쾌한 시선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내가 뭘 잘못했지?’소리를 들은 진영숙이
처음 사건이 터지고 이유영을 조사했을 때 나왔던 카드번호였다.그는 뭔가 잘못 본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카드를 빤히 쳐다보았다.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눈앞이 캄캄해졌다.그것은 한지음 납치 사건 때 납치범들을 매수한 돈이 빠져나간 카드였다.집사가 진영숙의 명을 듣고 방으로 찾아왔을 때, 강이한은 카드를 손에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도련님.”집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하지만 강이한은 모든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 카드가 왜 여기에!’“도련님!”집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이한은 바람처럼 방을 뛰쳐나갔다.정원.강서희는 바들바들 떨며 진영숙에게 안겨 있었고 진영숙은 분노한 얼굴로 이시욱을 노려보고 있었다.“당장 얘 데리고 나가! 나가라고!”진영숙은 결국 참지 못하고 축객령을 내렸다.오늘은 무척 중요한 날이었고 초대한 사람들도 많은데 한지음 때문에 분위기를 망쳤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는 노부인이 손님들을 해산시켰다.손님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육속 정원을 빠져나갔다.이시욱은 강이한이 늦도록 나타나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한지음에게로 다가갔다.“한지음 씨, 일단 홍문동으로 돌아가시죠?”사실 강이한이 한지음을 대동하고 파티에 나타난 이유는 이 자리를 빌어 한지음과 자신의 사이를 공개하기 위함이었다.아무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한지음도 충격에 빠져 바들바들 떨었다. 항상 남을 속이고 골탕 먹이는 쪽이었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강서희에게 한방 먹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참 대담한 년이야. 들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한지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서희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희 네가 네 오빠 좋아하는 거 알아. 네 얕은 수로 날 네 오빠 옆에서 밀어내도 그 자리에 네가 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아
“엄마.”강서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진영숙을 불렀다.이시욱이 말했다.“한지음 씨, 이만 가시죠.”“가긴 어딜 가?”이때 계단 입구에서 강이한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혼란스럽던 현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그가 집사에게 눈짓하자 집사가 남은 손님들을 밖으로 안내했다.그 과정에서 강이한은 싸늘한 시선으로 현장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지켜보던 손님들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을 보고 급급히 현장을 떠났다.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집안 사람들만 남게 되자 강이한은 살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강서희를 노려보았다.“엄마….”강서희가 어깨를 움찔하며 진영숙에게 달라붙었다.그녀는 현재까지도 강이한이 왜 자신을 그런 눈으로 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진영숙은 습관적으로 강서희의 어깨를 다독였다.“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순간 강서희는 놀란 어린아이처럼 진영숙의 품을 파고들며 안정을 찾았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왕숙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노부인에게 말했다.“피곤하실 텐데 이만 들어가서 쉬실까요?”“그래.”노부인은 안 그래도 엉망이 된 현장을 보고 짜증이 치밀었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진영숙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강이한을 보고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강이한의 살기 번뜩이는 눈은 강서희를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그 시각 현장에는 강서희와 진영숙, 한지음, 이시욱만 남아 있었다.집사를 비롯한 남은 고용인들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강서희와 진영숙도 강이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뒤늦게 느꼈고 시력을 잃은 한지음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오빠….”강이한이 진영숙의 앞으로 다가왔을 때, 강서희는 날카로운 그의 시선을 보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왜 이러는 거니?”진영숙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비록 강서희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강이한의 상태를 보고 저도 모르게 강서희를 감싸안았다.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갑자기 손을 뻗은
강서희는 강이한을 빤히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카드에 닿았다.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오빠… 그게 아니라….”그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했다.이성은 지금 당장 부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카드를 본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무섭게 굳은 강이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짝!강이한은 그대로 카드를 그녀의 얼굴에 던졌다.진영숙은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발견하고 주섬주섬 다가갔다. 강서희는 황급히 손을 뻗어 카드를 손에 쥐고 뒤로 숨겼다.“그런 거 아니야. 내 말 좀 들어봐, 오빠.”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진영숙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강이한에게 물었다.“저게 뭐야?”대체 저 카드가 뭐기에 강이한을 이토록 이성을 잃게 만든 걸까?“오빠.”“그래, 어디 변명 좀 해봐.”강이한은 싸늘한 눈으로 강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강서희는 언제나 자상하기만 하던 오빠가 악귀처럼 변한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초라한 모습도 강이한의 연민을 자극하지는 못했다.남자는 실망 가득한 얼굴로 바닥에서 카드를 손으로 가리고 있는 강서희를 바라보았다.‘너였구나! 모든 게 너였어!’이때, 머릿속에 이유영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그 카드 진작에 잃어버렸다고!”“내가 한 게 아니야!”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제대로 해명할 기회조차 준 적이 없었다.그녀는 매번 아니라고 했지만 한 번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신이 조사한 증거들만 믿었다.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했던 카드가 강서희의 화장대에서 발견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그거 이리 줘!”상황을 지켜보던 진영숙이 무릎을 굽히고 강서희의 손에서 카드를 빼앗았다.강서희는 바둥거리다가 결국 카드를 진영숙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다.진영숙은 카드를 들고 이리저리 훑어보았지만 딱히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냥 평범
강이한도 아무 생각 없이 화장대 서랍을 뒤지다가 거기서 카드를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왜 말이 없어?”강이한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강서희를 노려보며 물었다.강서희는 겁에 질린 눈으로 강이한을 바라보고 있었다.조급해진 진영숙이 강서희를 다그쳤다.“빨리 말해. 이 카드가 왜 너한테 있어?”예전에 이유영과 강서희의 관계로 봤을 때 이유영이 자발적으로 강서희에게 카드를 건넸을 리는 없었다.설마 도둑질이라도 한 걸까?그럴 가능성이 떠오르자 진영숙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그건… 한지음한테 받은 거야.”드디어 강서희가 입을 열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한지음을 바라보았다.‘그래! 한지음을 물고 늘어지는 거야.’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도 강이한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혼자 죽기 싫어서 한 말이었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무거운 정적이 돌았다.강서희에게로 쏠렸던 강이한 모자의 시선이 한지음에게로 쏠렸다. 공허한 눈동자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모습은 마치 금방 세상에 내려온 천사 같았다.시선을 느낀 그녀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이한 오빠, 저 말을 믿나요? 내가 무슨 수로 언니한테 접근해서 카드를 가져왔겠어요?”부드러운 그 한 마디는 강서희의 해명을 완전히 거짓말로 만들었다.한지음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 이유영에게 접근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그래서 굳이 한지음이 나서서 해명할 이유도 없었다.강서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시울이 시뻘겋게 붉어졌다.“한지음, 이 카드 네가 나한테 준 거 맞잖아. 계속 아니라고 할 거야?”그녀는 협박이 다분한 말투로 한지음을 재촉했다.어차피 그 수많은 일들은 둘이 손을 잡고 완성한 것들이었다.그러니 강서희는 절대 혼자 뒤집어쓸 생각이 없었다.짝!말이 끝나기 바쁘게 아찔한 소리와 함께 강서희의 고개가 돌아갔다.남자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분노한 목소리로 고함쳤다.“아직도
강이한은 가슴이 철렁하며 흔들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고개를 돌렸다.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인데?”“화재예요. 임강구 소방서가 출동했는데 인력이 부족하여 중심가 쪽에 있는 소방서까지 출동했다고 합니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시욱의 귓가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이한은 이미 대문을 뛰쳐나가고 있었다.이시욱도 다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잠시 후, 거리로 나가자 긴장감 넘치는 경적 소리가 거리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현장에 남은 진영숙과 강서희, 그리고 한지음은 구치소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울렁거렸다.강서희는 저도 모르게 한지음을 바라보았다. 눈빛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한지음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를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강서희는 저도 모르게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한편.운전대를 잡은 강이한은 미친 듯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뒤에서 다른 운전자들의 욕설이 들려왔지만 그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가는 길에도 급박한 소방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강이한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었다.“유영아….”그는 애달픈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하지만 긴박한 소방차의 경적소리는 화재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만 일깨워주고 있었다.왜 갑자기 화재가 난 거지?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익숙한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구치소가 아니라 그와 그녀의 집이었다.어떻게 된 거지?머리가 울렁거리면서 시야가 흐려지고 신호등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20분 뒤, 강이한은 휘청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와 급하게 물을 뿌리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불바다가 된 구치소의 불길은 전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현장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강이한은 가슴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주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며 쓰러졌다.혼란스러운 현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뜬 그는 멍하니 불길을 쳐다보며 이유영의 얼굴을 떠올렸다.“대표님!”이시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는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온몸에 힘이 풀리고 끝없이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그는 눈을 뜨려고 애를 썼다.‘정신 차려, 가서 유영이를 구해야 해!’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형의 큰 손이 그의 뒷덜미를 잡고 계속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다.그리고 강이한은 아주 기나긴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그는 교실 앞 창가에 서 있었다. 교실 안에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가녀린 소녀가 보였다.다시 장면이 바뀌고 그는 이유영과 함께 학교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그가 장미 한 송이를 그녀에게 선물했을 때,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는 평생 이 소녀의 웃음을 지켜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결국 그녀는 그가 사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으로 입장했다. 그때의 강이한은 자상했고 이유영의 미소는 눈부셨다.장면이 다시 바뀌더니 그는 불타는 홍문동 별장 앞에 서 있었다.그는 미친 사람처럼 안으로 달려들어가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막아섰다.“불길이 이렇게 거센데 이유영 씨는 진작에 사망했을 거예요. 지금 들어가셔도 소용없다고요.”“아니야. 거짓말이야!”평생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주지 못했다.“그냥 죽게 내버려 둬. 온몸이 불에 탔을 거야. 살아남아도 고통스러울 뿐이라고!”“안 돼!”비명소리와 함께 강이한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병상을 지키던 진영숙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이한아.”강이한은 주변을 둘러보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아!”머리가 빠개질 것처럼 아파왔다.“어디가 아픈데? 엄마한테 말해봐.”진영숙은 고통스러운 그의 표정을 보며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