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 번도 진정으로 그의 세상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그들의 결혼은 그녀 인생의 가장 큰 실패였다.그는 한번도 유영의 안식처가 되어주지 않았다. 한 달에 수천만 원의 용돈을 받으며 다른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정작 유영은 행복하지 않았다.“당장 지금 하려는 거 멈춰.”“싫어!”“이유영!”“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당신은 믿지 않는구나. 하지만 경찰도 과연 당신처럼 멍청할까?”오늘 그녀가 가지고 온 증거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그는 그녀가 그 증거들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두 사람의 숨막히는 기싸움이 이어졌다.남자가 거의 폭발할 때쯤, 유영이 말했다.“한지음 사고에 대해 경찰 쪽에서는 계속 추적하고 있었어. 아마 내가 증거를 가져가면 아주 좋아할걸? 어떻게 생각해?”“감히!”“뭘 위해서 나한테 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거야? 일이 귀찮아질까 봐? 아니면 사실은 당신도 강서희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 확고하지 않은 거 아니야?”공기마저 얼어붙었다.전에 진범이 강서희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도 유영은 한 번도 이렇게 그의 앞에서 주장을 펼친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이 남자에게 명확히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더 이상 없는 죄명을 뒤집어쓸 이유가 없었다.“꼭 그렇게 해야겠어?”“경찰에 증거만 제출할 뿐이야. 진범이 누구든 상관없어. 강서희가 아니라면 무사하겠지.”유영이 또박또박 말했다.남자는 그녀를 놓아주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후회하지 마.”“우리 사이에 그런 얘기하는 게 웃기지 않아? 후회라면… 당신을 만난 걸 후회해.”그 말을 끝으로 유영은 걸음을 돌렸다.그랬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강이한을 만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그녀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고 이렇게 될 거면 왜 자신에게 한번의 삶을 더 주었는지 하늘을 탓했다. 차라리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강이한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그러면 아마 세상을 유람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결국 한번의 삶을 더 얻었지만 여전히 이 남자에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는 크리스탈 가든에서 가짜 보석을 원자재로 썼다는 기사만 올렸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인지는 다루지 않았다.지현우는 이미 준비한 자료들을 가지고 유영의 사무실로 들어가서 그녀에게 서류를 건넸다.“최근 주문한 리스트들입니다. 감정 결과는 인터넷에서 다운했고요.”유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그녀는 비록 대표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런 일을 처리해 본 경험이 없었다. 지현우는 정국진의 옆에서 일하며 유사한 상황을 많이 겪었기에 그의 뜻에 따르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유영은 자신이 강이한을 찾아간 시간에 지현우가 이미 대처 방안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믿었다.“주문이 나간 제품들을 모두 회수하고 저희 회사에서 발주한 게 맞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해두기 위해서는 그 작업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뭔데요?”“크리스탈 가든에서 나간 제품 중에는 가품이 있을 수 없어요!”이점에서 그녀는 정국진을 믿었다.“그게 무슨 말씀이신지?”“누가 가장 먼저 기사를 터뜨렸는지 확인하고 우리 고객인지 아니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지 먼저 확인해요. 고객이 아니라면 이 기사를 발표한 사람이 우리 고객과 친분이 있는지도 확인하고요.”유영은 또박또박 힘을 주어 말했다.지현우는 이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유영의 기지에 탄복했다는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주문이 나간 제품을 모두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믿는 쪽을 선택했다.“그럼 감찰 기관 쪽에는요?”“우리는 절대 가품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세요. 아, 그리고….”유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지현우를 보며 말했다.“만약 진짜 우리 고객이라면 직접 공장에 내려가서 조사를 해봐야겠어요.”그녀는 문제가 공장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만약 정말 공장 생산라인에서 생긴 문제라면 생각보다 귀찮아질 것이다.“알겠습니다.”공장 얘기가 나오자 지현우의 표
왕숙은 혼자 돌아온 진영숙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아가씨는요?”비록 강서희가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진영숙과 같이 나가서 어디 딴데로 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강서희 얘기가 나오자 진영숙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무슨 일 있어요?”왕숙이 물었다.“서희가 사고를 쳤어.”진영숙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힘없이 답했다.그 말을 들은 왕숙의 두 눈에 당황함이 스쳤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았다.“무… 무슨 일인데요?”하지만 떨리는 목소리까지 억제하지는 못했다.“대체 걔는 왜 굳이 이유영을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거야? 물론 나도 예전에는 그 계집애를 싫어했지만 어쨌든 정국진 회장의 조카라잖아.”“전에는 가만히 있던 애가 이유영의 신분이 밝혀진 시점에서 왜 저렇게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겠어!”“사모님, 아가씨는 그리 경솔한 사람이 아닙니다.”왕숙이 다급한 어투로 말했다.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진영숙은 그 말을 듣고 더 화가 치밀었다.“아니긴 뭐가 아니야? 서희가 한 짓이 아니면 아직까지 경찰서에서 못 돌아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처음에 진영숙은 딸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참고인 조사만 받고 나올 줄 알았던 딸이 여기저기 인맥도 동원해 봤는데도 여태 감감무소식이었다. 강이한은 아마 밤새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답변을 해주었다.그녀는 강서희가 안쓰러웠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왕숙이 말했다.“뭔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사모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엄격히 교육하면서 키운 아가씨인데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사모님이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아가씨는 사모님 말씀을 어기고 혼자 무리한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사모님이 이유영 씨를 저격하지 말라고 말까지 했는데 그런 일을 했을 리 없잖아요.”진영숙은 흠칫하더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왕숙을 노려보았다.왕숙은 서늘한 눈빛에 긴장하며 목을 움츠렸다.“죄… 죄송합니다.”“아줌마, 명심해. 이유영 씨가 아
“강서희 씨, 사건 당일 날 강서희 씨는 어디에 계셨죠?”경찰서에서 형식만 바꾼 같은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이게 벌써 열 번째 질문이었다.강서희는 이미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였다.“홍문동에 있었습니다.”“누구랑 있었죠?”“엄마랑요.”“강서희 씨 그러면….”강서희는 멘탈이 나갈 것 같았다.이미 강서희 씨란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흘렀고 질문 하나하나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그렇게 열 번의 질문이 계속되는 동안 전에 했던 질문과 앞뒤가 맞는지 반복해서 고민해야 했다.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던 그녀에게 이런 심문 조사는 당황스럽고 두려웠다.그리고 이때, 조사관이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싸늘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강서희 씨, 한지음 씨 납치사건과 배준석 씨 약혼녀 납치 사건 관련해서 드릴 질문이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강서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저 아니에요!”그녀는 본능적으로 발뺌부터 했다.강서희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한지음 사건 관련해서 전에도 조사를 받고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는데 이제 와서 조사관이 또 그때와 같은 질문을 할 줄이야!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었기에 강서희는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아니라고 발뺌한다고 될 게 아니에요. 강서희 씨를 가리키는 증거가 나왔으니 조사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안 그래도 하얗게 질린 강서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뭔가 문제가 생겼어!’속으로 경종이 울리자 그녀는 애써 두려움을 가다듬고 호흡을 정리했다.“좋아요. 그럼 시작하시죠.”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시각, 홍문동.강이한은 여러 인맥을 동원했지만 강서희를 경찰서에서 빼내는 일에 실패하고 오히려 유영이 증거를 들고 경찰서에 찾아갔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하! 모든 죄를 서희한테 뒤집어씌우고 이대로 빠져나가려고?’이 소식이 여론에 퍼진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게다가 한지음과 배준
결혼도 하기 전에 감옥에 들락거린 기록이 남으면 강서희의 앞길은 망한 거나 다름없었다.“하! 강서희가 경찰서에 불려가니까 미래를 운운하네? 그럼 나는?”비록 그의 마음속에 그 자그마한 자리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강이한의 이런 태도에 이유영은 화가 치밀었다.그녀는 실망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가 뭘 했는지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이유영, 정말 대단한 멘탈을 가졌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기가 한 짓을 모두 서희에게 밀어버리다니!”“하!”이유영은 황당해서 비웃음만 나왔다.강이한이 하는 이런 말에 이미 적응돼서 화도 나지 않았다.이 사람이 전에 10년의 추억 운운하며 그녀를 꽉 잡고 질척거리던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내가 뭘 했는지 내가 가장 잘 알아. 다만 강서희나 한지음이 한 짓에 대해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이야!”두 사람은 통화로 너 한마디 나 한마디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강이한은 분노에 이를 부드득 악물었다.눈빛에 서린 살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쾅!그는 결국 분을 못 이기고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한편, 회의실에서 나온 이유영은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그가 핸드폰을 아예 바닥에 던져버렸다고 판단했다.그녀의 기분도 별로 좋지 못했다.소은지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물었다.“강이한이야?”“응.”“강서희 때문에?”“맞아.”“멍청한 자식.”소은지는 황당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이혼까지 한 사이에 서로 각자의 길을 가도 모자랄 판에 계속 주변에서 시비를 걸어대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유영도 아마 스튜디오 같은 걸 설립하지 않고 아예 멀리 떠나는 게 나았을 수 있었다.이유영이 청하에 있는 한, 강이한과 얽히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강서희의 이간질도 아마 멈추지 않을 것이다.중요한 건 그 모든 악행을 강서희는 전부 이유영이 한 것으로 돌렸다는 것이다.“아니 세강 사람들은 다 멍청이야?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여태 네가 한 거라고 믿고 있다고
이유영은 음울한 어투로 말했다.“됐어. 뭐 아쉬울 게 있다고 그런 표정을 지어? 그냥 마음에서 지워버려.”소은지가 다가와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그녀는 여전히 이유영처럼 착하고 예쁜 사람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나쁜 건 강이한이었다.“내 표정이 뭐가 어때서. 다만 경험자로서 말하는 건데 남자가 말 몇 마디 예쁘게 한다고 절대 넘어가지 마!”“당연하지.”소은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이유영의 처지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써 남자와 사랑이 얼마나 믿음직스럽지 못한지 처절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소은지는 사랑을 위해 목숨마저 던지는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였다.이유영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박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이한이 사람 열 명이 죽은 것이 그녀 때문이라고 했던 말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아가 치밀었다.건축 디자인을 배우면서 관련 법률 사항도 엄격히 배웠고 규정을 위반했을 시 따르는 위험 부담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다만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어서 조바심이 났다.수화기 너머로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그런데 누구시죠?”박연준이 아닌 낯선 목소리였다.“혹시 이 대표님?”“네, 저예요.”“저희 대표님은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유영은 가슴이 철렁했다.“무… 무슨 일 있었나요?”“아가씨가 입원하셨어요.”이유영은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박연준과 강성 오너 일가의 가족관계에 대해 그녀는 깊이 아는 게 없었다.아직 그 정도로 친해진 사이도 아니었고 박연준도 그녀에게 가족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어디 병원이죠? 지금 갈게요.”“중심 병원이요.”“알겠습니다.”이유영은 신속히 전화를 끊었다.수심에 잠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소은지가 앞으로 다가서려는데 이유영은 곧장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지현우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무실로 좀 와주세요.”“네.”잠시 후, 지현우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공손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서 섰다.이유영
이유영이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를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안심이었다.이유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일단 돌아가.”어차피 할 일이 많아서 소은지를 챙길 시간도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친구가 걱정되어 찾아온 소은지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잠시 후, 이유영은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박연준은 응급실 문밖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아주 심각했다.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었던 머리도 흐트러져 있었고 준수한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이유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평소의 부드러움과 다르게 억지스러운 표정이었다.이유영은 다급히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환자 상태는 좀 어때요?”“좋지 않아요.”박연준의 목소리가 차가웠다.“혹시 동교에서….”결국 그녀는 말을 잊지 못했다.하지만 박연준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들었다.강이한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오늘 밤 뭔가 일이 크게 벌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다.박연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옆에 있던 문 비서가 다급히 말했다.“이 대표님, 지금은 일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에요!”이유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확실히 중요한 사람이 생명의 경각을 다투는 순간에 사업 얘기를 꺼낸 건 경솔했다.게다가 환자가 박연준과 가장 가까운 여동생이었다.“박청하 씨는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이유영이 물었다.사실 동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확신을 하기에는 어려웠다.박연준은 말이 없었다. 옆에 있던 문 비서가 그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사실 아가씨는….”쾅!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술실 문이 열리며 대화가 중단되었다.세 사람의 시선은 일제히 문쪽으로 쏠렸다.한참 말이 없던 박연준이 의사에게 다가가서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되었나요?”마스크를 벗은 의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박 대표님,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쾅!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이게 어떻게 된
병원 복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와중에 조민정에게서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동교 재개발 프로젝트 건물 디자인에 관한 사안이었다.긴급한 사안이었기에 조민정은 소식을 받자마자 이유영에게 연락했다.이유영은 조민정으로부터 박청하가 오늘 동교 현장에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박연준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현장 고찰을 나갔다가 우연치 않게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대체 왜 무너진 거예요?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조사해 봐요.”이유영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었다.공사 현장 사고는 이유영의 스튜디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조민정이 말했다.“조사는 제가 할 테니까 대표님은 지금 당장 파리로 떠나세요.”이유영은 더 어안이 벙벙했다.지금 이 상황에 모든 걸 버리고 파리로 떠나라고?그제야 어제 크리스탈 가든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최대한 빨리 파리로 오라던 외삼촌의 당부가 떠올랐다.그런데 불과 하루 사이에 또 이런 중대 사건이 벌어질 줄은 누가 알았을까?“지금 무슨 생각하시는지 잘 알아요.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대표님을 저격하고 벌어진 사건이 분명해요. 안전을 위해서라도 잠시 피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피한다고 피해질까요?”이유영이 말했다.동교 공사 현장 사고는 건축 디자이너인 이유영에게 대부분의 책임이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이것도 함정이라면 동교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일 수도 있었다.강이한이 한 짓일까?이유영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조민정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적어도 여기서 여론의 물매를 맞는 것보다는 나아요.”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복도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내에게 눈길이 갔다.“일단 알겠어요.”결국 이유영은 조민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정국진의 후계자이자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이긴 하지만 그 전에 건축디자이너였다.지금 공사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분명 디자인에 문제가 있는 쪽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외삼촌의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