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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알아들었으면 앞으로 얌전히 지내. 그러면 지금처럼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을 마친 진영숙은 더 이상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서희는 먼저 밖으로 나간 진영숙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지음을 보며 말했다.

“엄마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이유영이 요즘 나락 갔거든.”

그 말이 한지음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다.

그녀는 유영을 증오했고 유영의 괴로움이 그녀의 위로였다.

“아직 부족해!”

“배준석이 돌아왔어. 약혼녀가 납치당했다는 소식 듣고 너 수술하는 날 수술 포기하고 달려나간 주치의 말이야. 지금 모든 증거가 유영을 향하고 있어. 네가 뭘 해야 하는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강서희의 말에 한지음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유영이 뭘 하든 이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말을 마친 강서희도 서둘러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한지음은 멍하니 앉아 주변의 암흑을 피부로 느꼈다.

이런 숨막히는 암흑을 체감할수록 유영이 더 증오스러울 뿐이었다.

간병인이 주방에서 나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모님도 참… 어떻게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할 수가 있죠?”

간병인은 한지음을 착하고 온화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전에는 앞을 못 보는 장님이라 만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점차 한지음의 힘든 처지를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간병인들은 진심으로 한지음을 따랐다.

한지음은 간병인의 손등을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재벌가 사람들은 출신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죠.”

“가장 중요한 건 인품 아닌가요? 그 언니라는 사람은….”

“그만해요!”

한지음은 싸늘한 목소리로 간병인의 말을 끊었다.

유영을 감싸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냥 유영을 언니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유영이 그녀를 거부하는 것 만큼 그녀 역시 유영이 증오스러웠다.

어릴 때 겪은 모든 고난을 생각하면 유영의 사지를 찢어 죽여도 부족했다.

분명 같은 아버지를 가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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