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본가. 강서희는 방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다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핸드폰 안의 사진을 보더니 발송했다. ‘이유영, 조용한 생활을 두고 왜 하필 이러는 거야?’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배준석 도련님이 돌아온다고 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서희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알았어.” ‘드디어 돌아오는구나. 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돌아와서 다행이다.’ 전화를 끊은 후 강서희는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진영숙은 막 나가려고 했는데, 귀부인의 메이크업에 새로운 헤어스타일까지 더욱 귀티가 났다. 강서희가 내려오는 것을 본 그녀는 잠깐 멍했다가 강서희에게 말했다. “내일 진씨 가문의 도련님이 돌아온다고 하니까 가서 만나봐!” 저번의 소개팅은 실패했지만 진영숙은 줄곧 강서희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상업결혼은 아니더라도 강서희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강서희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말했다. “엄마, 나 결혼하기 싫어.” “그게 무슨 말이야?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내 곁에 있을 거야?” “나 평생 엄마랑 함께 있을 거야.” 강서희는 다른 건 몰라도 말은 잘했다. 그래서 진영숙도 책망하다가 부드러운 얼굴로 변했다. “말 들어. 진씨 가문은 보수적인 집안이라 내일 단아한 옷으로 입고 가. 알았어?” “엄마!” “됐어. 나 일 있어서 나가봐야 해.” 말을 마치고 진영숙은 가방을 가지고 나갔다.나이가 50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젊었을 때 엄청 미인이었을 것 같았다. 진영숙이 나가자 강서희의 눈빛은 순간 날카로워졌다. 왕숙은 아래층에서 고개를 돌리자 바로 그녀의 위험한 눈빛과 마주쳐 가슴이 덜컹했다. “아가씨.” “왕 아주머니.” “네!” “떡 좀 만들어줘.” 강서희는 기분이 좋아서 내일 소개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배준석이 와 이유영을 기다릴 장면을 생각하니 그녀는 가슴이 후련했다. 왕숙은 고개를 끄
강서희의 안색이 변하더니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 “좋긴 뭐가 좋아?” “…….” 왕숙은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강서희는 맛있게 먹다가 못 다 먹은 떡을 쟁반 위에 던졌다. “조…… 조금 더 드세요!” ‘겨우 만든 건데 반 조각밖에 먹지 않다니.’ 강서희는 일어서며 말했다. “안 먹어.” 그러자 왕숙의 눈에 서운한 빛이 스쳤다. “아가씨, 사실 제가 진씨 가문의 도련님도 뵌 적이 있는데 외모와 성격이 괜찮아서 아가씨랑 잘 되면…….” “닥쳐!” 왕숙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강서희에게 끊겼다. “아가씨 마음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전에도 진영숙의 반응을 떠보아서, 왕숙은 강서희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었다. 만의 하나라도 진영숙의 귀에 들어간다면 지금 가진 것도 모두 없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서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왕숙을 보며 물었다. “다 안다고?” “전 어릴 때부터 아가씨를 지켜보았어요. 아가씨 마음속의 서러움을 제가 어떻게 모르겠어요?” 왕숙의 말에 강서희의 마음은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인도 아는 걸 자신을 친딸처럼 생각한다는 사람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사모님은 서로 걸맞은 사람끼리 결혼하는 걸 선호하는 데다가 강씨 집안이 대가족이다 보니 가문의 이익 위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사모님이 아가씨를 키우다시피 했지만…….” 왕숙은 말을 다 하지 않고 잠깐 멈칫했다. 강서희는 왕숙을 째려보며 말했다. “계속 말해!” “사모님은 아가씨가 눈에 차지 않는 것 같아요.” 왕숙의 말을 들은 강서희는 원래 안 좋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왕숙의 말이 좀 듣기 거북하지만 강서희도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영숙은 확실히 강서희가 눈에 차지 않았다. 이유영에 대한 태도의 변화도 모두 이유영 외삼촌의 지위와 그가 국제에서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강서희의 눈엔 원망이 스쳤다. 그녀는 진영
지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엔 지현우도 이유영의 처리수단에 대해 만족했다. 그는 상대방이 누구든 지금의 자리에 앉았으면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맞받아칠 박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정국진이 원하던 것이었다. 예전에 정국진이 이유영을 여론 속에 내버려 둔 건 그의 성질과 기개를 단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로열 글로벌의 미래 타수로서 많은 일들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지현우가 나가자마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이유영이 고개를 들어보니 강이한이 위험한 기운을 풍기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유영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남자는 문에 기대고 말했다. “주동적으로 말할 거야? 아님 내가 심문할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유영은 화가 나서 강이한에게로 펜을 던졌다. ‘해명은 그렇다 치고 심문은 너무 오버 아니야? 왜? 고문하고 사형까지 내리지 그래?” 남자는 문을 닫고 들어왔다. 이유영의 아무렇지 않은 태도 때문에 잘생긴 얼굴에 분노로 가득했다. 그는 이유영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품속에 고정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이유영은 그의 호흡을 피하며 말했다. “비켜!” “내가 네 외삼촌을 더 바빠지게 할까? 아님 로열 글로벌을 무너뜨릴까?” “흥, 네가 그렇게 대단해?” 이유영은 더 이상 듣기 싫었다. ‘로열 글로벌을 무너뜨린다고? 허세는.’하지만 이유영은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손에 로열 글로벌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도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유영은 화가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 강이한은 그녀의 턱을 잡고 음침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다. 이유영이 강이한에게 주는 느낌이 바로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넌 이런 수단 말고
분명히 물어본 사람은 강이한이었는데 이유영의 답을 들으니 그는 더 화가 났다.강이한은 이유영을 의자에 던지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이유영. 너 참 대단하다.”그는 계속 말했다.“네가 모든 것을 잃고도 이렇게 날 도발할 수 있을까?”“경고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이유영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강이한은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날 도발할 수 있는 것도 네 뒤에 외삼촌이 있어서 그런 거잖아?”그의 말은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협박이라는 건 확실했다.이유영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눈가의 위험한 눈빛도 순간 더욱 짙어졌다.강이한이 계속 말했다.“난 정말 그렇게 해보고 싶어.”“그래. 나도 네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 보고 싶네.”이유영이 말했다.그녀는 강이한이 계속 외삼촌으로 협박을 하니 꼭대기에서 겨룰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그러자 위험한 압박력을 지닌 키스가 이유영의 입술에 떨어졌다.이유영은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손톱으로 강이한의 목을 그어 핏자국이 생기고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강이한은 화가 나서 이유영을 놓고 핸드폰을 그녀의 앞에 던지며 물었다.“이 번호 알아?”강이한의 갑작스러운 화제전환에 이유영은 어리둥절해졌다.그녀는 강이한을 째려보더니 핸드폰을 들고 보았다. 한 눈만 보았을 뿐인데 그녀의 눈에는 위험한 눈빛이 스쳤다.이유영은 강이한도 조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몰라.”이유영은 생각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이유영!” 강이한은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났다. 이유영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내가 강서희의 번호라고 하면 믿을 거야?” “너 무슨 일이나 서희와 엮지 마.” “그럼 몰라. 나는 강서희와 상관있다고 생각해. 모호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이야.” ‘믿든 믿지 않든 그건 강이한의 선택이야.’ 이유영이 말을 마치자 강이한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그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유영은 마치 강이한의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강이한이 떠난 뒤, 이유영은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치미는 분노를 억제하려고 심호흡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가 떠나기 전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박연준이 했던 말처럼 그는 절대 곱게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그녀가 외삼촌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할 것을 확신하고 벌인 일이었다.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기엔 너무 억울하고 분이 내려가지 않았다.“유영아.”“일은 어떻게 되었나요?”이유영이 물었다.지금도 그 남자를 생각하면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다.정국진이 말했다.“걱정 마. 잘 처리했어.”“외삼촌.”“그래.”“로열 본사 내부에 다른 문제는 없죠?”그녀는 크리스탈 가든에 생긴 것과 비슷한 문제가 로열 글로벌 내부에 존재할까 봐 걱정했다.비록 그녀가 한 일은 아니지만 이미 기업의 수장이 되었으니 책임을 피해갈 수 없었다.이미 전임 대표가 만들어 놓고 간 쓰레기들을 치우는 일만 해도 그녀는 골머리가 아팠다.“본사에 무슨 문제가 있겠어. 설마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거니?”정국진의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정국진은 그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유영은 눈을 질끈 감고 짜증을 숨겼다.그녀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을 토로했다.“이번 일, 강이한이 주도한 거예요.”수화기 너머로 정국진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넌 진작에 알고 있었고?”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국진이 물었다.“네.”“그런데 왜 이제 와서 말을 꺼내는 거지?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에 말을 했어야 했어!”정국진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최근 로열 글로벌 내부에 생긴 문제는 그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내부에서만 생긴 문제라면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갈 리가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면 앞뒤가 설명이 됐다.“죄송해요, 외삼촌.”“그 인간이 너 협박했어?”“외삼촌….”“이유영,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외삼촌도 못 미더웠다 그거지?”“그게 아니라….”
‘비겁한 자식!’유영이 말했다.“외삼촌, 저한테 생각이 있어요.”유영은 정국진에게 계획 전부를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방향은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정국진은 그녀의 생각을 듣고 바로 의도를 알아챘다.“알았어. 크리스탈 가든의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네가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 하지만 회사에 영향주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가능한 거야. 알겠니?”“네, 외삼촌.”유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국진이 원하는 건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사 일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유영을 위해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강이한과 한지음에게 당한 게 있는데 되돌려주지 않으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것을 정국진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을 막고 싶지 않았다.“곧 한 해가 지나가는데 박 대표랑 같이 파리로 와서 같이 보내는 건 어때?”유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외삼촌, 사실 저랑 박 대표 사이는….”“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적응해 보도록 해.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게 어디 쉽겠어? 하지만 박 대표는 좋은 사람이야. 외삼촌 안목은 한 번도 틀린 적 없어.”결국 유영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도로 삼켜야 했다.사실 외삼촌을 만난 뒤로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눈빛이 가끔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매번 그런 눈빛을 떠올리면 가슴이 갑갑하고 씁쓸했다.전화를 끊은 유영은 홀로 사색에 잠겼다.강이한이 하고 있는 이 모든 미친 짓의 의도는 결국 그녀를 옆에 붙잡아 두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아직 그녀에게 미련이 남은 것이다.유영은 그가 지나간 그들의 10년을 내려놓지 못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그녀는 그들이 옛날처럼 서로를 사랑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그에게 미련이 남았다면 박연준이 떠나 있는 동안에 벌써 흔들렸을 것이다.매번 강이한과 함께 있을 때면 지난 생에 자신을 억지로 수술실에 들여보내던 광기 어린 얼굴과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
비록 해외로 도망가긴 했지만 유영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대략 어디쯤으로 갔는지 알아냈으니 슬슬 범위를 좁히며 수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걱정 마세요.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호언장담하는 사설 탐정의 얘기를 들으며 유영은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잘했어요.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 주세요.”“그럼요.”수화기 너머로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화를 끊은 뒤, 그녀의 주변은 또다시 평온이 찾아왔다.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들이 그녀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면 그녀도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정국진에게 사실을 알린 뒤로 그녀의 생각대로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반전을 이루어냈다.퇴근 시간에 그녀를 찾아온 강이한에게 그녀는 냉담한 어투로 말했다.“이제 순정동으로 돌아가야겠어.”“이유영!”“이 게임, 이제 끝이야.”“게임? 여태 이걸 놀이로 알았어?”“그게 아니면 뭔데? 강이한, 억지 부리지 마. 내가 이렇게 하면 바보처럼 네 진심을 믿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니?”유영은 강이한이 진심으로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잡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정말 그녀가 소중했다면 전생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보기에 그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은 건 한지음의 상황이 그 정도로 최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만약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 이 남자는 결국 망설임 없이 그녀를 수술대에 올렸을 것이다.이 점에서 그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남자는 착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미처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이유영, 감히 네가 날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유영은 입가에 처연한 미소를 머금었다.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화를 내는 그 성격은 여전했다.“내가 못할 게 뭐가 있어? 평생 당신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당신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날 줄 알았니?”전생의 그녀는 그랬다.그때 그녀에게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결국 시력
하지만 조형욱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남달랐다.얼마 전부터 조형욱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하지만 유영은 기억에 조형욱에게 불만을 살만한 일을 한 적 없었다.설마….그녀는 전에 한지음이 강이한의 본가에 찾아갔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의 옆에 있던 사람은 조형욱이었다.‘남자 홀리는 재주 하나는 정말 대단하네.’“조 비서, 태도 똑바로 해.”강이한은 불손한 그의 태도를 보고 경고 섞인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조형욱은 그 눈빛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담담히 화제를 돌렸다.“배준석 씨 오셨습니다. 지금 접대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배준석 얘기가 나오자 강이한의 얼굴에 깊은 분노가 드리웠다.최근 그는 줄곧 배준석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다.한지음의 수술이 실패한 원인도 배준석이 수술 당일에 환자를 버리고 갔기 때문이었다.배준석이 집도했더라면 실패하지 않았을 수술이었다.솔직히 말해 이번 일에서 강이한은 배준석을 원망했다.그가 돌아왔으니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였다.“일단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난….”“조 비서, 도망 못 가게 잘 지키고 있어. 놓치면 조 비서 너도 옷 벗을 줄 알아!”말을 마친 사내는 씩씩거리며 접대실 방향으로 갔다.유영은 떠나는 그의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사모님, 안으로 들어가시죠.”비서실 직원이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세강은 대기업 중에서도 연봉이 가장 높은 편에 속했다. 여직원은 어렵게 구한 직장을 잃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말을 마친 그녀에게 싸늘한 두 갈래의 시선이 쏠렸다. 조형욱과 유영이었다.유영은 여직원을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 조형욱의 표정 변화를 주시했다.그러고는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갔다.조형욱이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커피 가져왔습니다.”말투는 여전히 공손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유영은 나가려는 조형욱을 불러세웠다.“조 비서님.”“네. 무슨 일이시죠?”조형욱은 끝까지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다.유영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