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든 지금이든, 그리고 미래든, 넌 네 엄마와 동생의 문제를 한 번도 직시한 적이 없어. 그리고 그 후엔 한지음까지!” “…….” “강이한, 예전엔 아무런 배경이 없어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지만, 지금은 우리 외삼촌과 외숙모의 말을 들을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재결합하지 않겠다고. 알겠어?” 간단히 말해서, 그가 자기 어머니와 강서희 쪽에 서있으면 그녀도 외삼촌과 외숙모 편에 서겠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강이한이 외삼촌에게 손을 쓴 게 바로 이유영의 마지막 한계였다. ‘이 남자가 혼인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내가 그동안 고생을 한 거야.’ “유영아.” 강이한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이제야 이유영이 강씨 집안에서 어떤 억울함을 당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이유영의 마음속의 넘을 수 없는 고비였다. “나도 예전엔 너처럼 우리 두 사람의 일이니까 홍문동에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한 사람이 당신을 괴롭히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괴롭힌다. 한 도시가 아니라 외국에 산다고 해도 온갖 이유로 널 불러와서 괴롭힌다. “강이한, 난 지금 사업에 집중하고 싶어.” 이유영의 뜻은 명확했다. 개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어떤 공을 들이든 그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강이한은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위험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먼저 이 물건들을 보고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을 텐데…….” 그는 말하며 옆에 있던 서류봉투를 그녀에게 주었다. 서류봉투를 본 이유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보지 않아도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너는 날 협박하는 거 빼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유영은 열어보지 않아도 안에 든 것이 그녀를 협박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씁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방식으로 지내는 사이가 됐어?”
사실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집착하지 않으면 강서희도 이러지 않을 테고, 그러면 이유영도 외삼촌의 말대로 자기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혼을 한 순간부터 그녀는 강이한과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강이한이 놓아주질 않으니 강서희와 한지음도 날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이유영은 조금씩 그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 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밝았다. 강이한은 객실로 가기 싫었지만 이유영이 죽어도 그와 단둘이 있으려 하지 않아서 더 집착했다가는 반대 효과가 나올 것 같고, 밤까지 새워서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객실로 갔다. 이유영은 가운을 입고 손에 와인을 들고 창문 앞에 서있었는데 마치 밤의 요정 같았다. 핸드폰에는 강서희의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상대방이 불쾌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뭐야?” “너한테 통지할 일이 있어서.” “이유영?” 이유영의 목소리를 들은 강서희는 정신을 좀 차렸다. 그리고 시간을 한 눈 보더니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너 제정신이야? 이 시간에 전화하게?” 강서희는 늦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다. 원래는 9시까지 자야 하는데 날이 밝자마자 전화가 와서 아주 불쾌했다. 이유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냉소하며 말했다. “너보다는 제정신이야!” “너…….” “강서희, 나는 너와 달라. 넌 사람 뒤통수를 칠 줄밖에 모르는 어둠 속의 빈대야. 내가 전화한 목적은…….”이유영은 잠깐 멈추고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계속 말했다. “너의 가면을 한 층 한 층 벗기는 것이야.” “흥, 허세는. 누가 널 믿겠어?” “그건 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증거만 확실하다면 네가 강씨 가문의 사람이라 해도 별 수 없겠지.” 강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일까? 어쩌면 강이한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녀와의 집착을 통해 알 수 있듯 그 남자는 두려운 게 없고, 안중에 아무것도 없는 남자다. 하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강서희는 냉소하며 물었다. 예전엔 이유영이 자신의 앞에서 이런 표현력이 없었는데, 지금은……. 처음으로 이유영에게 그런 말을 들은 강서희는 마음이 불쾌했다. “그리고 너뿐만 아니라, 한지음도 기다리라고 해.” “그래, 기다릴게.” 강서희는 건방지게 말했다. ‘이유영이 지금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벌써 움직였겠지. 오늘까지 기다릴 필요 있었겠어?’그러니까 강서희는 전의 흔적들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이유영이 절대로 아무것도 조사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증거들은 모두 이유영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강서희는 이유영이 발뺌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 전화를 끊은 후, 이유영의 기운이 점점 차가워졌다. 그녀는 일부러 강서희를 화나게 한 것이었다. 강서희를 자극해 목덜미를 잡으려는 거다.이유영도 그렇게까지 하기 싫었다. 하지만 돌아오면서 강이한이 한쪽으론 자기에게 집착하고 다른 한쪽으론 강서희 편을 드는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 증거들을 찾아서 강이한을 떨쳐내려고 마음먹었다. ……. 강이한은 정말 피곤했는지 하루종일 출근하러 가지 않았다. 점심을 먹을 때도 내려오지 않았다. 집사는 이유영 혼자만 있는 것을 보고 주방에 음식을 준비하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적당히 담아서 이유영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더러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이유영은 숟가락을 든 손을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안가!” “하지만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안 오시면 화내실 거라고…” 그 말이 집사의 입에서 나오니 좀 웃기긴 했지만 이유영은 그 속의 위협을 알고 있었다. ‘그 자식 정말…….’이유영은 심호흡을 하더니 테이블 위의 와인을 두 모금 마시고 화를 가라앉히고 일어났다. 그녀가 쟁반을 가지러 가려고 하자 하인이 공손하게 말했다. “사모님, 제가 할게요.” 이유영은 손을 내리고 생각했다. ‘나도 하기 싫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이유영은 쟁반을 테이블에 놓았다. 하지만 남자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물었다. “너 불만이 가득한 것 같은데?” “네 생각엔 내가 어떤 심정이어야 하는데?” “나와 재결합하면 네 생활도 좋아질 거야. 예전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면 좋잖아?” 이유영은 냉소하며 생각했다. ‘누가 들으면 예전에 그의 곁에서 엄청 행복하고 자유로웠는 줄 알겠네.’ “예전에 네 곁에서도 아무것도 못 했는데. 강이한, 너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이유영은 조롱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분명 자기 와이프도 보호하지 못했다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강이한은 이불에서 나와 그녀에게로 다가가며 화난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결국은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야?” “지금 내가 지나간 걸 물고 늘어진다는 뜻이야?” “이유영!” 이유영은 강이한의 분노한 눈빛과 마주쳤다. 원래 잠을 못 잔 데다가 방금 일어나서 그녀의 태도는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밥 먹어!” “예전엔 미안해…….” 결국 말을 했다. 아직은 많은 일들이 조사 중이긴 하지만 그는 이유영이 자기 곁에서 멀어지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관계를 좀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유지하는 건 아무에게도 좋을 게 없으니까. “사과가 쓸모 있다면 내가 사과할 게. 미안해, 내가 널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러니까 날 놓아줘.” “너…….” 강이한은 말로 지금의 이유영을 이길 수 없었다. “이러면 너에게도 좋을 게 없어.”그의 뜻을 알아들은 이유영은 원래 안 좋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내가 프로젝트 두 개 배상해 줄 게.” 이유영은 프로젝트 두 개를 배상해 주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그와 엮이기 싫었다. “네 생각엔 우리 사이에 프로젝트밖에 없어?” “이혼할 때 나에게 준 걸 다 돌려주면 적진 않을 텐데?” “이 망할 여자가 정말!” 이유영은 말할수록 점점 심해졌다. 강이한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녀를 안고
강이한은 깊은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이유영을 가리켰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의혹들이 가득했다. 강이한은 혼란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봐?” 이유영은 강이한의 눈빛이 불편해서 불쾌한 말투로 물었다.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리고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예전의 일, 정말 너와 상관 업어?” 강이한이 물었다. 비록 전에도 이유영이 해명했었지만 지금 그는 이유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유영은 그가 갑자기 이런 문제를 제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비웃으며 말했다. “상관있든 없든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진실이 어떻든 이 남자는 모두 나와 상관있다고 생각하는데 해명해서 뭐 해?’ “이유영!” “넌 네가 믿고 싶은 대로 믿잖아?” 강이한의 세계에선 항상 그랬다. 이유영은 그가 자신을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강이한이 믿는 건 오직 자신과 증거뿐이었다. 증거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예전에 모든 증거가 이유영에게로 가리킬 때도 강이한은 더 많은 걸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많은 일이 일어난 지금에야 나에게 와서 물어본다고? 웃겨!’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강이한은 짜증 나서 머리를 긁었다. 어떤 일의 깊이는 조사할 수 없었다. 전에도 모든 증거가 이유영을 가리킬 때 강이한은 다른 걸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른 게 튀어나오자 모든 게 맞지 않았다. 지금도 모든 증거는 이유영을 가리키지만 그 속에 발견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계좌이체 기록으로 봐서는 이유영에게로 가리키고 이유영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통화기록과 연결해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강이한은 협박을 통해 이유영을 홍문동에 잡아놓고 한 편으로는 과거를 조사했다. 이시욱이 홍문동에 왔다. “대표님!” “정말 아무것도 없어?” 전에 전화로 이유영이 인터넷 폭력을 당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없어
보기에는 강이한이 이유영을 강박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사실 아무도 강이한 마음속의 화를 알 수 없었다. 이유영은 여전히 자신의 생활을 지냈다. 매일 출근하고 회의하고 강이한을 대응하고. ……. 이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나예요.” 전화기에서 박연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유영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돌아왔어요?” 이유영은 전화번호를 보니 강성건설이었다. “네, 같이 점심 먹을까요?” 박연준이 물었다. “…… 그래요.” 이유영은 망설이다가 승낙했다. 원래 그녀는 박연준과 만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앞으로 업무상에서도 접촉을 피면 할 수 없었다. ‘강이한이 이 정도도 이해하지 않는다면…….’ 박연준의 전화를 끊고 이유영은 내부 호출 전화를 들고 말했다. “잠깐 들어와 주세요!” “네!” 전화를 끊고 지현우는 바로 들어왔다. “저 부르셨어요?” “네.” 이유영은 백지에 두 개의 번호를 적어서 지현우에게 건네주었다. 하나는 강서희가 예전에 그녀와 연락할 때 자주 사용하던 번호였고, 다른 하나는 탐정회사에서 조사해 낸 납치범의 번호였다. “이 두 번호의 통화기록을 조사해 주세요.” “언제 기록 말입니까?” 이유영은 눈을 감고 말했다. “한지음이 납치되던 전후요!” 원래는 이 일들을 탐정회사에 넘기려고 했는데, 지현우에게 맡기는 건 정국진에게 자신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현우는 멈추고 이유영의 말을 기다렸다. 이유영은 진작에 잃어버린 자기의 은행카드 계좌를 적어서 건네주며 말했다. “이 계좌의 사용기록도 조사해 주세요. 어디에서 언제 사용했는지!” “이건 사장님 계좌인가요?” “네.” “잃어버렸었나요?” “네.” “그럼 왜 분실신고를 하지 않으세요?”이유영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유영도 전에 분실신고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을 겨냥하던 사람들은
“이유영!” 강이한은 화가 나서 이를 갈며 말했다. 이유영의 행동은 강이한의 인내심을 도발했다. “나와 박연준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이런 상황 빨리 적응해.” “흥.” 강이한은 코웃음을 지었다. ‘이 여자가 간덩이가 부었나.’ 하지만 이유영의 말은 확실히 그를 화나게 했다. 예전엔 고분고분 집에서 기다리던 여자가 지금은 업무량이 자기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이유영은 그의 태도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너 우리의 일에 방해하지 마. 그렇게 하면 우리가 더 자주 만날 테니까.”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었다. 이유영이 일깨워지지 않았다면 강이한은 정말 방해하려고 했다. “어디서 먹는데?” “왜?” “가족 데려가면 안 돼?” “가족은 무슨.” 이유영은 말을 다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강이한이 제어하려고 할수록 이유영이 발버둥을 쳤다. 조금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강이한이 사무실에서 화를 내고 있을 때 이시욱이 들어왔다. “대표님.” 그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여자가 출근하는 게 뭐가 좋아? 쇼핑하고 영화 보고 미용실에 가면 좋지 않아?” 강이한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이게 뭐야? 자기 아내와 밥을 먹으려고 해도 바쁜지 물어봐야 하고.’ 이시욱은 코를 만지며 말했다. “사모님께서 줄곧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그의 말은 강이한을 일깨워주었다. 전에 매달 충분한 용돈을 줘서 마음껏 쓰라고 했지만 이유영은 거의 사는 것이 없었고 명품들도 모두 강이한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유영이 출근하기 시작한 후부터 업무에 재미가 붙은 것 같았다. ‘이유영이 출근하는 걸 좋아했구나. 진작에 알았으면 내 밑에서 출근하라고 할걸. 인정하기 싫지만 그 여자는 확실히 인재야.” “참, 대표님. 통화기록 조사했습니다.” 이시욱은 기록을 강이한에게 건네주었다. 이시욱의 행동력은 확실히 강했다. 조
이유영과 박연준은 전에 갔었던 식당에 갔다. 박연준은 친절하게 스테이크를 썰어서 이유영의 앞에 놓았다. 이유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박연준은 앞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유영은 서류봉지를 박연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따가 보세요.” “급하지 않아요.” 박연준이 말했다. 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연준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유영 씨와 강이한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이유영은 마음이 철렁했다. 박연준을 보는 눈빛에도 엄숙한 빛이 스쳤다. 그녀는 박연준이 강이한을 언급하는 게 싫었다. 박연준은 날카롭고 깊은 눈빛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이유영이 어떻게 대답할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박연준이 말했다. “나에게 감출 생각하지 말아요. 그의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유영은 안색이 창백해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 ‘다 알고 있었어?’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박연준이 말했다. “유영 씨 외삼촌이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에 그가 안다면 강이한과 어떤 관계가 되겠어요?” ‘어떻게 될까?’공항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정국진이 세강그룹에 손을 쓴 것이었다. 그래서 로열 글로벌에게 손을 쓴 게 강이한이라는 걸 알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유영이 요즘 강이한의 주위를 맴도는 것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이유영은 박연준을 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박연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게…” “유영 씨, 강이한에게 협박당한 거 아니죠?” 박연준이 물었다. 원래 좋지 않던 이유영의 안색은 그의 말을 듣자 더 차가워졌다. “당신도 외삼촌처럼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할 건가요?” ‘외삼촌은 강서희와 한지음의 가면을 뜯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전엔 나도 강이한과 이혼하는 게 끝일 거라고 생각했고.’그뿐만 아니라
엔데스 명우는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이 소은지에게 철저히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백산 별장 쪽 상황.아침부터 백산 별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백산 별장은 이유영의 실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유영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없어졌다. 그런데 그 편지의 글씨는 이유영의 필체가 아니었다.정국진이 편지를 들고 살펴본 뒤 이 글씨는 강이한 것임을 확신했다. 편지 내용은 단 한 문장이었다.“무사한 상태로 데려올 겁니다.”“무사한 상태? 무사한 상태라는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인 건가?”분명한 것은, 임소미도 이 편지가 누가 쓴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어제 강이한이 여기 나타났고 오늘 아침 이유영이 사라졌다.백산 별장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무사히 뚫고 사람을 데리고 나가다니, 강이한의 능력은 확실히 대단했다.그러나 강이한의 이런 능력은 사람들의 이를 갈게 만들었다.정국진의 눈빛 역시 날카로웠다.“국진 씨, 반드시 유영이를 데려와야 해요. 반드시...”임소미는 이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상태였다.많은 일이 벌어진 뒤였다.임소미는 이제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재앙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와 함께 있는 한, 무사할 리가 없었다. 이유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알겠어.”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의 눈에도 살기가 번뜩였다.이유영은 지금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을 앞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이유영을 데려가다니.다른 때는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 쳐도, 지금은... 여진우의 사람들까지 이유영을 찾으러 나갔다.그 순간, 반산월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가 전화를 받은 뒤, 엄중한 표정으로 다가왔다.“사모님, 선생님!”“무슨 일이야?”“반산월 쪽에서...”여기까지 말하고 집사가 잠시 머뭇거렸다.“반산월에 무슨 일이야?”이미 충분히 긴장한 상황에서 반산월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더욱 긴
“소은지, 네가 그 사람과 정말 오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그 사람 마음속에 네 자리는 없어. 언젠가 너는 버려질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그때쯤이면, 여섯째 도련님, 네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실컷 봤겠지. 너의 모든 추한 꼴을 확인했으니 나는 손해 볼 게 없어.”“...”말이 끝나자, 남자의 분위기는 한층 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소은지는 단순히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넘어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진 난공불락의 존재였다.결국, 엔데스 명우는 화를 억누르며 소은지를 뒤로하고 자리를 떠났다.지금의 소은지는 그야말로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엔데스 명우가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제안했음에도 소은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소은지의 이런 태도는 엔데스 명우에게 증오와 답답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차 안에서.옆자리에 있던 배천명이 어색한 공기를 감지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은지 아가씨 쪽에서 여전히 거절이신 건가요?”‘아가씨’라는 호칭은 엔데스 명우의 측근들 사이에서 소은지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표현이었다.과거에, 누군가 그녀를 ‘일곱째 사모님’이라 불렀다가 엔데스 명우에게 바로 응징당해 입에 피를 흘리며 쫓겨난 일이 있었다.이런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소은지의 완강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배천명의 물음에, 엔데스 명우는 한 손으로 짓눌리듯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이 여자를 너무 쉽게 본 것 같다.”이 말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엔데스 명우가 처음 소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았다.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은지를 굴복시켰던 걸까?분명한 것은, 소은지가 끝내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은지의 눈 속에 담긴 강인한 고집은 언제나 선명했다.수년간 얼마나 많은 여자가 그에게 몰려들었는가? 그들이
언제 조건을 말했다는 건데?도대체 언제였다는 걸까?눈 내리던 날, 설선비의 추락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며 반복적으로 항변했던 그때를 말하는 걸까?‘넌 나를 이렇게 대할 자격이 없어.’라고 했었던 말을 가리키는 걸까?그 모든 말 속에는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에게 내건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결과는?결과는 뻔했다.소은지는 똑똑히 보았다. 그가 청하시 사업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소은지의 명성을 어떻게 철저히 짓밟았는지.청하시에서는 패배를 모르는 전설적인 변호사 소은지의 진짜 얼굴에 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떠들썩했지만, 그 기사를 본 소은지의 마음은 고통과 분노로 폭발 직전이었다.“과거에 나를 파멸로 몰아넣을 때 그토록 신속하고 냉혹하더니, 여섯째 도련님도 감정에 얽매일 때가 있다니 놀랍군.”소은지의 말은 점점 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워졌다.그랬다.그날,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에게 모든 진실과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전했다.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은지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건을 듣겠다니! 소은지의 삶에는 더 이상 조건이라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설령 소은지가 내건 모든 조건이 하나하나 충족된다고 해도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그건 소은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항상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나아가는 사람이야.”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가 나한테 주는 보상들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설령 같은 사회적 위치를 되찾아준다 해도 그것은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이 모든 것을 소은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어떤 보상도 소은지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게 지금의 소은지였다.“정말 잘난 척하는군.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하지 마. 사실 너도...”“맞아, 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해. 하지만 예전에 내 대단함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어
이정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결코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선택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유영은 끝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이번에 우천으로 간다면, 최소 반년은 걸립니다.”이정은 무거운 목소리로 강이한에게 말했다.반년.평소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처럼 서주가 긴박한 상황에서는 반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정은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의 태도를 보니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여진우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중요한 것, 그리고 포기.삶에는 지켜야 할 것이 많지만, 때로는 과감히 선택하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영이 지금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알겠습니다.”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이한의 눈빛은 단호했다. 이 순간, 이정이 강이한에 대한 모든 의문과 흔들림이 경외심으로 바뀌었다.이 남자는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강이한의 삶에는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주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결코 눈을 감고 지나칠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한편.서주의 상황은 점점 더 긴박해지고 있었다. 엔데스 가문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엔데스 명우가 서주에 나타났다. 최근 들어 그는 반산월을 드나드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소은지.”남자는 커피잔을 우아하게 들어 올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엔데스 명우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하지만 소은지는 그를 비웃듯 바라보며 그의 이가 갈릴 정도로 억눌린 분노를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여자, 곧 죽어?”소은지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의 차가운 기운은
서주가 이런 상황인데도 강이한은 굳이 파리로 찾아갔다.이유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사건 이후, 아이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정은 깊게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를 보셨습니까?”소월이...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유영 품으로 달려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꽉 찼다.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피워 물며 무겁게 말했다.“그 사람... 소식은 들었어?”강이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에 관해 묻기 시작하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염 선생님은 지금 우천에 머물고 있습니다.”“우천?”“네, 주소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은거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염 선생님은 명망 높은 의학자였다. 그는 70세에 서주 국제병원에서 은퇴한 후 행방을 감추었는데 그의 진료는 항상 예약이 어려웠으며 그의 손을 거친 환자는 어떤 이유로 실명을 겪더라도 결국 시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그는 한지음을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염 선생님이 이미 은퇴한 후라,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드디어 찾아내게 되었다. 강이한은 이유영과 함께 전생을 경험했기에, 이유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었다. 수술을 계속 미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수술이 실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평생 어둠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이유영은 이미 한 번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무력함을
남자의 따뜻한 손끝이 이유영의 눈가를 살며시 스쳤다.아주 조심스럽게...이유영은 마치 그 온기가 자신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여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말로는 상황이 심각하대. 이번엔 제발 말 좀 들어줘, 응?”“응.”그동안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유영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유영은 전생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의 공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이유영은 다시 과거의 어둠 속으로 빠지기 싫었기에 항상 핑계를 대며 수술을 미뤘다.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눈 수술은 본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실패라도 한다면 이유영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그 고통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었다.그렇기에 이유영은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았다.그 어둠은.마치 악마의 동굴과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유영아.”“응?”“수술 전까지는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가져봐. 그러면 수술에도 좋을 거야.”여진우의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그는 마치 곧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였다.여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유영이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왜?”여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자, 알겠지?”이유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진우는 잠시 멈칫하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유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씨 가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상의 수술 환경을 준비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지금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다.강이한, 한지음, 이온유... 이들은 모두 이유영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유영은 이런 고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