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 좀 해봐!”불길함을 느낀 소은지가 그녀를 재촉했다.이유영은 그녀에게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자초지종을 들은 소은지도 치를 떨었다.“젠장! 그 자식 미친 거 아니야?”“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소은지가 물었다.일이 힘들어질 것을 알았지만 이혼까지 한 마당에 강이한이 이토록 강압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어쩌면 이혼도 그가 그냥 홧김에 저질러 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그 화를 모두 이유영에게 풀어대는 게 분명했다.“이제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어떡해?”이유영이 울먹이며 말했다.“외삼촌한테도 차마 말하지 못하겠어.”“왜?”소은지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전남편에게 이토록 시달림을 당하면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당연지사였다.그녀는 부모가 없으니 외삼촌이 곧 친정식구인데 이런 상황에서 외삼촌한테 사실을 숨긴다니 갑갑했다.이유영도 소은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한숨만 나왔다.“강이한은 지금 미쳐 날뛰고 있어. 한지음을 해결하고 여유가 생기니까 본격적으로 나를 저격하기 시작한 거야. 그 인간 성격에 아마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했을 거야.”그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에 섣불리 외삼촌한테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혹시라도 더 큰 함정이 외삼촌을 옥죄일까 봐 두려웠다.소은지는 이유영의 뜻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품었다.“설마 네 외삼촌인데 그렇게까지 하겠어?”소은지가 느끼기에 강이한은 이유영과의 재결합을 원하고 있었다.그렇다면 정국진은 그가 호감을 사야 할 상대인데 그에게 공격적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그 인간이 워낙 미친 사람이라서 그래.”이유영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생각할수록 화만 치밀었다.그날 밤, 이유영은 밤새 잠에 들 수 없었다.다음 날,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회사로 출근한 그녀의 안색은 안쓰러울 정도로 어두웠다.“대표님.”“무슨 일이죠?”“기업 감사 기관에서 나왔습니다.”“뭐라고요?”그
“네.”지현우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정국진은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이유영을 걱정해서 계속 전달을 미루고 있었던 것 같았다.하지만 유사한 일이 앞으로도 많아질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회사에서 나온 이유영은 오한에 떨었다. 지현우 앞이라서 말은 아꼈지만 크리스탈 가든이 지금의 국면을 맞은 건 거의 백프로 강이한의 걸작임이 확실했다.핸드폰에 익숙한 번호가 떴다.“여보세요.”남자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유영은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이것도 당신이 한 거야?”“그래.”이유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남자는 전혀 자신의 행각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런 태도가 더 화가 났다.“강이한!”“나 지금 당신 스튜디오에 있어.”순간 이유영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이 순간이 되어서야 그녀는 이런 남자에게 걸리면 얼마나 무서운 상황이 벌어지는지 몸소 체감했다.한지음 쪽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니 그는 거의 모든 정력을 그녀에게 퍼붓고 있었다.그녀는 길게 심호흡하고 전화를 끊었다.대화를 계속하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잠시 후, 오로라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그녀를 본 조민정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왔다.“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곧 오실 거라고 해서요.”“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별거 아니에요. 민정 씨는 할 일을 하세요.”이유영은 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이 남자는 그녀의 행적과 일거수일투족을 뻔히 꿰고 있었다.다른 곳에 신경을 쓸 일이 없고 여유가 생기자 사람 마음을 분석하는 머리도 잘 돌아가는 모양이었다.사무실 입구에 도착한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갔다.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본 그녀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그 발 내려!”남자는 그녀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건들거리고 있었다.이유영은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남자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그런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남자는 거친 손으로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으며 가소롭다는 듯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유영은 맹수를 닮은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오한이 돋았다.“전에 온화하고 현모양처 같던 내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과거 얘기가 나오자 이유영은 사력을 다해 바둥거렸다.“그만해! 이거 놓으라고! 악!”입술에서 알싸한 통증이 전해졌고 입안에 남자의 향기가 침범했다.남자는 이유영이 통증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를 풀어주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이유영이 분노하며 그를 밀어냈다.“돈 좀 있는 외삼촌이 나타났다고 사람이 완전히 바뀐 거야?”지금의 그녀에게서는 그가 기억하던 온순하고 순종적이던 완벽한 아내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꺼져!”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를 보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고통이 몰려왔다.이건 분명한 보복 행위였다.전에 그녀가 그 난리를 피웠던 것에 대한 보복이 틀림없었다.“진짜 꺼져 줘? 확실해? 내가 이 문을 나가면 크리스탈 가든은 어떻게 될까?”그 말에 이유영은 가슴이 철렁했다.너무 화가 나서 그 일을 잊고 있었다.화가 나면 모든 걸 잊고 달려드는 면에서 둘은 비슷했다. 강이한도 그랬다.그는 이유영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동안 바빠서 그것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중에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종합해 낸 결론은 정국진의 등장이 이유영을 강압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들었다는 거였다.이유영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고 담담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크리스탈 가든은 아무 문제 없어. 기업 감사, 세무 감사 다 나와서 뭘 어쩔 건데?”그 말을 들은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가져온 서류를 그녀에게 던졌다.“그렇게 자신 있어? 이거나 좀 보고 말하지 그래?”이유영은 확신에 찬 그의 모습을 보고 점점 동요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땅에 떨어진 자료를 주워 확인했다.잘은 모르지만 전후를 대비하니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이… 이건!”“크리스탈
“그래서 배상을 못해주겠다?”“내가 강제로 빼앗았어? 당신 디자인 팀이 일을 못해서 경쟁에서 밀린 게 내 탓이야?”잠깐 무거운 정적이 돌았다.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저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이유영은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조건은 그녀가 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한참이 지난 뒤, 남자가 먼저 침묵을 깼다.“그렇다면 이건 세무관리국에 보내야겠군.”“그건 나랑은….”“당신이랑은 상관없겠지. 거기 대표가 된지 얼마나 지났다고. 게다가 당신이 그런 일을 벌일 깜냥도 안 되고 말이야.”“그걸 알면서 어떻게….”“하지만 어쨌든 크리스탈 가든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잖아?”남자가 눈썹을 꿈틀하며 말했다.이유영은 입을 다물었다.저 기록은 아마도 전임 대표가 남긴 흔적일 것이다. 원래는 시간을 내어 청산하려 했는데 강이한에게 먼저 약점을 잡힐 줄은 몰랐다.크리스탈 가든은 내부 정돈이 시급했다.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당신이 빼앗겼다고 말하는 그 개발 프로젝트들, 내가 한 역할은 건축 디자인을 제공한 것뿐이야. 난 프로젝트 하나를 통째로 물어다 줄 능력은 못 돼.”그 말은 진심이었다.애초에 강성건설과 서원그룹에서 먼저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을 뿐이었다.“배상을 원한다면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번 돈만 당신에게 줄 수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한숨이 나왔다.프로젝트 완공이 가져다주는 이익과 디자인 원고료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든 걸 떠안을 수도 없었다.“당신 능력 있잖아.”강이한이 싸늘하게 말했다.여전히 그녀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말투였다.그는 그때 박연준의 강성건설과 서원그룹 서재욱에게 느꼈던 패배감을 모두 그녀에게 풀고 있었다.이유영은 자신이 무언가를 내놓지 않으면 이 남자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7년을 연애하고 3년을 부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한때는 사랑했고 누구보다 소중했던 연인이 지금은
다른 방식!?말 안해도 안다, 그게 썩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이유영도 알고 있다.그리고 역시나 강이한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내가 하라는대로 해, 어때?”“가능할거라고 생각해?”“왜 불가능하지? 나한테 물어본거 아니였어?”이유영이 이를 악물었다.이 남자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강이한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이를 악문 모습을 보며 단번에 품으로 당겨 거칠게 입을 맞췄다!이유영은 몸부림쳤지만 강한 힘이 그녀를 꼼짝도 못하게 했다.그녀는 도망쳤다, 싫어!그가 다른 여자도 이렇게 건드렸다는 생각만 하면 얼굴을 손으로 잡아 뜯고 싶었다. 남자가 마침내 그녀를 놓아줬다.이유영은 손을 들어 내리치려고 했다.그러나 남자 입가에 담긴 위협적인 웃음에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켰다.남자는 그의 얼굴을 두드리며 광대를 어루만졌다. “착하지, 응?”이유영은 그의 손을 한방에 꺾을수 없는것이 분했다.그러나 그녀는 그럴수 없었다!남자가 제 눈앞에서 거들먹 거리며 사무실 문으로 걸어가다 손잡이를 잡은 바로 그 때.이유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물었다. “강이한, 삼촌이 없었다면 나를 강제로 수술대에 올렸을거야!?”저번생에도 그랬잖아!삼촌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이미 저번생에 결과를 알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정국진 10명이 와도 막지 못해!”웃기고 있네.문이 닫히는 순간 남자가 말했다. “퇴근하면 내가 데리러 올게.”“......”괜찮다는 세글자가 바로 튀어나오려 했다.하지만 남자의 차가운 뒷모습을 보고 그녀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강이한이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조민정이 들어왔다!“이게 어떻게 된거에요?” 이유영의 좋지 않은 낯색을 본 조민정이 물었다.이유영은 조민정을 보더니 말했다. “제가, 만만해 보이나요?”조민정은 그녀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다.‘만만해보이냐고요? 전혀요!’그녀가 앞서 강이한, 그리고 강씨 집안의 사람들과 대치한 모습은 아기 호
말하지 않으면 그저 그녀와 강이한의 대치이지만 말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그녀는 더 많은 파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이 쪽 일이 좀 까다로워서 당분간은 못 돌아갈것 같아요. 돌아가면 만나러 갈게요.”“알겠어요!” 이유영은 거절하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박연준이 빨리 돌아오길 기도했다.박연준이 많이 보고싶다는건 아니다.그저 박연준이 출국한건 강이한이 벌인 짓이라 만약 돌아온다면 일이 해결되었다는 뜻이니까.전화 반대편에 있는 남자는 그녀가 거절하지 않자 오히려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는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걱정마요, 빨리 돌아갈게요.”“네.” 이유영은 내심 좋았다.그리고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통화할때 이유영은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그리고 박연준과의 전화를 끊었다.잠시 생각한 이유영은 결국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쪽은 바쁜듯했다.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고 주변은 조용했다.“나는 니가 크리스탈 가든에 도착하면 전화할 줄 알았어.” 전화 반대편의 정국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유영이 물었다. “큰 문제는 아니죠?”“큰 문제 아니야, 그냥 좀 귀찮아졌어!” 정국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말했다.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긴장되었다.크리스탈 가든이 국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잘 알고있다.여기서 만든 주얼리는 해외 귀부인들 사이에서 특히 유행이다. 만약 크리스탈 가든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어떤 영향력일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현재 소식은 모두 끊겼다.하지만 강이한이 이런 일을 벌였으니 그 뒤에 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까?세상에 바람 안 새는 벽이 어디 있을까!저번 생이든 이번 생이든 이유영이 가장 많이 겪은건 여론의 압력이다. 그건... 딱히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세상에 사람이 몇인데, 그 입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막으리.“그쪽은 별일 없지?” 정국진이 이유영에게 물었다.이유영이 말했다. “걱정마세요, 별일 없어요!”별일 없다고는 했지만, 지금 강이한은…이어서 정국진이 말했다. “조민정
청하시의 바람은 비밀과도 같다!한지음은 강이한에 의해 강주로 보내졌고 두명의 하인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한지음은 아파트 로비에 앉아있었다. 오는 내내 길이 울퉁불퉁했고 어두컴컴했다! 새로운 환경에 도착하니 공기도 낯설었다.강서희가 베란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었다.눈빛은 매서웠다!이유영......!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이유영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강서희도 강이한과 이유영이 이혼하기만 하면 그들이 끝날 줄 알았다.하지만 강이한이 그럴 줄은!강서희는 죽상을 하고 있는 한지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강서희에 의해 떨어질 뻔했다.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온몸에 우아함을 풍기고 있었다!유일하게 그 기질과 어긋나는 것은 그녀 눈빛에 담긴 흉포함이었다.“넌 겨우 이 정도밖에 안돼!” 오빠가 결국 이유영과 이혼한 이유는 한지음한테 있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다!한지음이 퇴원한 후 강이한은 그녀를 만나러 온 적이 없다!한지음에 대한 보살핌도 강씨 집안에게 맡겼다! 오빠가 전에도 말했듯이 한지음에 대한 보살핌은 그저 한지석 때문이었다.이 말을 들은 한지음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내쪽은 이미 다 정해뒀어. 지금은 이유영과 함께 있을테지?”“......”“강서희, 니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강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수 없어!”짝! 한한지음의 말이 끝나자 강서희가 뺨을 때렸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드러났다!“여기서 마지막 시간을 잘 즐겨!”“잠깐!”강서희가 몸을 돌리려는 그 때 한지음은 그녀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이유영을 강이한 곁에서 밀어낼수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유경원? 아니면 너?”“닥쳐!” 강서희가 매섭게 소리쳤다.그녀와 강이한의 사이는 금기와도 같았다!몇 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계획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입밖에 내는것은 허락할 수 없었다.“돌아가서 잘 생각해봐, 응?
이 점에서 보면 강씨 집안은 한지음을 홀대하지 않았다.비록 다 강서희가 찾은 사람이지만 진영숙쪽에서도 전화가 왔고 이제 시작이라아직 밝히지 않은것들이 아주 많다.가만히 있을 그녀가 아니다.“핸드폰 좀 써도 될까요?” 한지음이 물었다.하인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한아가씨. 강아가씨께서 누구와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셔서요.”이 말을 들은 지음의 얼굴에는 폭풍우가 지나갔다.강서희, 분명히 자기를 연금시킨 것이다.이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알겠어요, 괜찮아요.”“아가씨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들은 하인은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하인은 방금 주방에서 모든걸 목격했다. 그 강아가씨는 그리 착한 인간이 아니다.......두가지 의미다!오후내내 유영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현우가 전화로 그 사람들이 떠났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을때까지는.“그래요, 알겠어요.”“......”“지금부터는 하고있는 일 미뤄두고 이 휴유증들을 처리해줘요!”“알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유영은 물을 한모금 마시며 마음속의 급박함을 달랬다.정말 오늘 같은 일은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아주 골치가 아플것이다.강이한이란 인간, 정말 독하다!조민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이사장님.”“무슨일이죠?”“강도련님 곁에 있던 이시욱이 왔습니다.”이시욱!예전에는 줄곧 조형욱이었다.조형욱이 어디로 뭘 하러 간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강이한 곁에 있었던 사람은 이시욱이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유영은 탐탁치 않았다.하지만 이 시기에 강이한과 맞서면 안된다는 것도 잘 안다.조민정이 떠나고.이시욱이 들어왔다. 그는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이 밑에서 기다리십니다!”“이시욱.”“네.””내가 그 사람이랑 이혼했다는걸 몰랐어?” 지금은 강이한에게 화풀이 할수는 없지만 그의 밑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양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시욱이 말했다. “도련님이 본부하셨습니다.”이 강이한이!유영의 손에 쥐어져 있던 컵이 책상위로 세게 박혔다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
이유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허리에 전해진 강한 힘이 이유영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익숙한 기운이 스며들며 이유영을 감싸안았다.중심을 되찾는 순간, 이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이한이었다.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와아아...”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유영의 차가운 눈빛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월이야, 월이야.”이유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엄마, 무서워요!”“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작은 아이는 두려운 목소리로 강이한을 보고 외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한은 아이의 입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나쁜 사람... 이의 기억 속 자신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그래, 이게 바로 그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존재가 남긴 기억이었다.“그래, 맞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어떤 나쁜 사람도 월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강이한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광경이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소란을 들은 하인들과 집사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강이한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이내 임소미와 정국진도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임소미는 강이한을 보자마자 적대감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여긴 왜 온 거야?”임소미의 말투는 한 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유영이를 좀 봐.”정국진이 임소미에게 말했다.임소미는 강이한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이유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 감정을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
이유영은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이 바로 알프산 방문 때문이라는 사실도.알프산을 다녀온 후 이유영의 시력은 점점 더 악화하였고 자극을 받은 듯한 이상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강한 빛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갈 생각을 했니?”임소미는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이제 이유영이 어디를 가든 임소미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장소가 이유영의 눈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엄마, 정말 별일 아니에요...”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말하지 마!”임소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진심으로 말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도 의사가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눈 덮인 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러다 이번에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이유영 자신도 몰랐다.“잊었다고? 그 잊음 때문에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임소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임소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엄마, 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네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랄 뿐이야, 알겠니?”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이유영은 그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이유영은 손을 뻗어 임소미의 가냘픈 허리를 감쌌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임소미는 여전히 이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임소미는 평소에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알겠어요, 엄마. 화 풀어요, 네? 저, 수술받을게요.”“유영아...”“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네?”임소미의 품에 안긴 이유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임소미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안쓰러웠다.임소미는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우지는 빠르게 물을 닦아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운 물기는 이유영에게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다.언젠가 이유영의 두 눈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 공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서서히 퍼져 나왔다.아침에 물 한 잔을 쏟은 이후, 이유영은 하루 종일 우지와 우현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이제 옷장 속에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의 옷들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나머지 색깔들은 이미 모두 희미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다.아침 식탁.우지는 조심스럽게 죽을 이유영 앞에 놓으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아직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이유영이 숟가락을 집으려고 할 때, 우지는 바로 숟가락을 건네주었다.“고마워요.”이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센 혼란이 몰아치고 있었다.가슴은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다.그때, 임소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엄마.”“왜 아침 같이 먹으러 오지 않았어?”“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 먼저 드세요.”“그럼 오전에는 꼭 돌아와서 월이랑 같이 놀아 줘. 네가 이곳에 안 온다고 하면 월이가 속상해할 거야.”“네, 알겠어요.”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가슴이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월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전화를 끊고 난 후.이유영의 세계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이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진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만약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이유영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하셨을까?다행스러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아침 식사 후.이유영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백산 별장으로 돌아갔다.임소미는 이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날, 한지음이 떠난 후, 이유영은 손으로 배를 감싸안고 한동안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이유영의 머릿속에는 강이한을 떠난 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다.당시의 이유영에게는 눈을 뜨면 온통 어둠뿐인 날들이 이어졌고 어떤 처참한 미래가 닥치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만 같았다.강이한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확고했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를 알게 되는 순간, 그 용기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이유영은 두려웠고 미칠 것 같았다.자기 삶이 아무리 비참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유영이 강이한의 결정을 기다리기도 전에, 이유영 스스로 선택을 내리기도 전에 모든 것이 한 차례 대화재로 끝이 났다.강이한은 이유영에게 한지음을 용서하라고 했다.한지음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이유영을 위해 희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강이한은 결코 알지 못했다.그것이 오직 자신의 문제였다면, 어쩌면 모든 것을 잊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아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랐다.용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이유영이 아이를 위해 온갖 고통을 겪었던 그 마지막 시간 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다.한지음이 이유영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든 한지음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네, 좋아요! 사모님께 가서 바로 말씀드릴게요. 사모님께서 아가씨가 수술을 빨리 받겠다고 결정하신 걸 들으시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우지가 기쁜 얼굴로 방을 나가는 모습을 본 이유영은 그저 고개를 천천히 저을 뿐이었다.그날 밤.이유영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이유영에게조차 쉽지 않았다.오랜 세월 지켜온 신념들이 의사의 진단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어두운 방 안.어스름한 방안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유영을 응시하고 있었다.차가운 손가락 끝이 이유영의 목 아래 울퉁
의사가 이유영의 상태를 면밀히 점검했다.그 결과, 백산 별장과 반산월은 조명에 한층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임소미와 정국진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조명을 다시 교체했다.밤이 되면 이유영이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낮에도 햇빛이 강하면 외출을 엄격히 제한했다.임소미가 이유영의 눈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눈에 자극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이 신중히 조율되었다.백산 별장에 밤이 찾아왔다.사람들은 모두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느꼈고 시야가 흐릿한 이유영조차도 조명이 이전보다 더 어두워졌음을 느꼈다.“엄마, 이 정도까지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미 제대로 볼 수 없는걸요.”이유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유영이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지금의 이 조명은 이유영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하지만 임소미는 딸의 말을 단호히 받아쳤다.“나도 알아. 이 조명이 사람들한테 너무 어둡게 느껴질 거라는 거. 그래도 강한 빛이 네 눈에 더 큰 손상을 줄 수도 있잖아.”임소미는 단호히 말했다.“...”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조명은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눈에 자극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됐어. 엄마 말대로 해. 네 수술이 성공하기 전까진 이 조명 상태 그대로 유지할 거야.”임소미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이유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알겠어요.”이유영은 엄마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임소미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이유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그날 밤.이유영이 반산월로 돌아왔다.우지와 우현이 이유영에게 말했다.“조명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이제 아가씨의 눈에는 크게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안경은 꼭 착용하셔야 합니다.”“안경이요?”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어요.”예전엔 눈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안경을 굳이 쓰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졌다.
임소미의 가슴은 비수로 찔린 듯 아팠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끝에 다시 찾은 딸이니,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조금 전, 의사가 임소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이유영 씨가 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의사의 한마디는 그녀가 실명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했다.“정말 강이한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어!”임소미는 울먹이며 감정을 터뜨렸다.강이한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이 눈이 이렇게 된 이유는 모두 강이한이 한지음 때문에 이유영을 감옥에 넣었기 때문이다.만약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유영도 그 끔찍한 화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임소미는 지금껏 이유영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딸의 흐릿해진 눈은 매 순간 그녀에게 그날의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이유영은 어떤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던 걸까?“그만하세요, 엄마.”강이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유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강이한에 대한 이유영의 감정은 이제 미움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는 몰랐다.이유영 역시 한 아이의 엄마였다. 자식이 상처받을 때 부모가 느끼는 그 분노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바로 그때도 이런 감정이었다.강이한이 아이와 관련된 일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유영은 그의 목을 비틀고 싶은 심정이었다.더군다나 임소미는...어릴 적부터 이유영과 함께하지 못했기에 딸이 이런 상처를 입은 걸 본 순간 느꼈을 분노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수술하면 안 되겠니?”임소미의 목소리는 떨림으로 가득했다.그래, 수술.이 눈은 어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그 끔찍한 화재로 인해 이유영의 두 눈은 너무나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기본 재활치료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오직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엄마, 수술은 저한테도 위험
박연준은 전기봉 하나로도 이미 머리가 아팠다.그런데 이유영까지 그에게 지나치게 냉혹하게 굴었다.이유영의 눈에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강이한에게 비친 이유영의 모습은 모든 것을 잃고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이온유가 집으로 돌아왔다.아이에게 놀고 싶다는 욕구는 본능이었다. 퇴원 후 며칠간 쉬고 나니 매일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아빠.”온유는 어느새 훌쩍 자란 모습이었다.온유가 방으로 들어온 것을 본 강이한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며 물었다.“어디 갔다 왔어?”“놀이공원이요!”놀이공원 이야기가 나오자, 온유의 얼굴에 금세 생기가 돌았다. 그곳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아마도... 어릴 적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에야 놀이공원을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이번 달은 놀이공원은 쉬자, 알겠지?”“네.”온유는 작은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아빠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아이였다.놀기 좋아하면서도 말을 잘 들었다.강이한은 온유를 안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몸이 이제 막 나았으니,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해.”“정 아저씨가 한적한 곳만 골라 데려갔어요.”온유는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강이한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공공장소는 어디든 위험이 도사릴 수 있었다.한 차례 병을 겪고 난 뒤, 강이한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온유가 그런 곳에 가는 것이 늘 불안했다.“온유야.”“네, 아빠.”“아빠가 며칠 동안 출장을 가야 해. 집에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겠지?”“아빠는 온유를 안 데려가요?”아빠가 출장을 간다는 말에 작은 아이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그도 그럴 것이.이온유에게 있어서 강이한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그런 아빠가 집을 떠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서운함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었다.강이한은 말했다.“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네 몸은 이제 막 나아졌잖아, 응?”“네.”작은 아이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