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소리야?]강이한은 갑작스러운 말에 기분이 상했다.장성호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영상 속에서 이유영은 박연준과 같이 밥을 먹고 손을 잡고서 마라탕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가게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본 강이한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이유영!”그는 부드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불과 한 시간 전까지 그와 신나게 싸워대던 그녀였다.그런데 박연준과 함께 둘이 처음 데이트를 나갔던 가게에서 밥을 먹다니!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가게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익숙한 가게 이름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장성호에게서 화상 통화 요청이 왔다.강이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정말 이혼했어?”“그래.”“너도 참 대단하다. 너 이혼하자마자 연준이 걔한테 전처를 빼앗긴 셈인데 화도 안 나?”대학교 때부터 박연준과 강이한은 라이벌 관계였다.둘은 평소에 별로 교류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둘을 두고 비교했고 그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둘 사이는 점점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하지만 그냥 서로 짜증 난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정작 대놓고 싸운 적은 없었다.이런 상황에 기분이 안 나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둘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데?”“그야 나도 모르지. 나도 차 타고 지나가다가 둘이 같이 있는 걸 보고 너한테 보낸 거야.”“둘이 꽤 가까워 보이던데 곧 결혼 발표가 있을지도 모르지.”눈치 밥 말아먹은 장성호의 말에 강이한의 얼굴은 점점 음침하게 굳어갔다.“둘이 10년을 만났잖아. 어쩌다가 이혼하게 된 거야?”“설마 네가 밖에서 만나는 그 여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희들까지 이러면 누가 감히 사랑을 믿겠어?”탁!강이한은 그대로 전화를 바닥에 던져버렸다.10년을 쌓아온 사랑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는 욱하는 마음에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장성호가 보내온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이유영이 웃으며 박연준의 입에 마라탕을 넣어주고 있었고 박연준도 과거
“아… 알겠습니다!”수화기 너머로 긴장한 이시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이한을 제외하고 그의 신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유영은 금기어와도 같았다.잠시 후, 시욱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대표님, 이유영 씨는 박연준 대표와 같이 식사를 하시고 음악회 관람하러 갔습니다.”“음악회?”“네. 해외 오케스트라가 하는 공연인데 요즘 장안의 화제라고 하더군요.”음악회는 박연준의 취향이었다.강이한은 듣는 순간 오만상을 썼다.벌써 둘이 같이 취미생활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워진 걸까?그는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가능하다면 이유영을 홍문동으로 납치해서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다.과거의 이유영의 생활은 단조로우면서도 강이한 위주로 돌아갔다. 지금과 비교하니 속이 뒤틀렸다.그가 씩씩거리고 있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조형욱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분명 한지음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전화한 것일 텐데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하지만 결국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받고 말았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병원에서는 한지음 씨 퇴원해도 된다고 하는데 어디로 모셔야 할까요?”한지음은 이제 광명을 회복할 기회를 잃었기에 입원해 있는다고 더 나아질 건 없었다.게다가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으면 사람만 피폐해질 뿐이었다.강이한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어머니가 부동산 하나 새로 마련하신다고 했으니까 그쪽으로 전화해 봐.”“네, 알겠습니다.”그는 하마터면 홍문동으로 데려가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참아냈다.이유영이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었다.비록 지금은 집을 나갔지만 그곳은 이유영이 오랜 시간 생활한 곳이었다.비록 둘 사이는 이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다른 여자가 그곳에 돌아가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 여자가 한지음이라고 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진영숙도 한지음의 거취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한지음이 한지석의 동생이라고 생각해서 잘 돌봐주려고 했는데 일이 점점 꼬여가고 있었다.
진영숙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말을 마친 그녀는 따뜻한 차를 한잔 들이켰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강서희의 두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사실 요즘 여론이 떠들썩하긴 하지만 원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잖아.”“이유영은 이미 오빠랑 이혼했고 일을 크게 만드는 성격도 아니야. 현재는 일하느라 여념이 없을걸? 그렇다고 경원 언니가 소문 냈을 가능성도 없어. 언니는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했으니까.”진영숙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오빠랑 결혼할 사람이 세강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일에 가담했을 리는 없어.”그렇게 다 배제하고 나면 한지음 한 사람만 남았다.이제 시력을 잃었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세강뿐이니 소문이 나서 이득을 보는 쪽은 한지음이었다.강서희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진영숙은 그 뒤에 숨은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하지만 걔가 무슨 수로 상류층 사람들과 접촉하겠어?”강서희가 말했다.“걔 지금 있는 병원, 재벌가 사람들만 찾는 병원이야.”“그러니까 걔가 세강의 사람이 되려고 일부러 소문을 퍼뜨렸단 거야?”“그거야 모르지. 세강에 입성하려고 온갖 짓을 다 벌이던 여자가 한둘이야? 엄마도 알잖아.”진영숙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강서희는 이때다 싶어 계속해서 말했다.“게다가 걔 이제 완전히 시력을 잃었잖아. 지금 걔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진영숙은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쉬었다.“일단은 여기서 살게 해. 다른 방법이 없잖아.”지금 이 시점에서 한지음을 밖에 거처만 마련해 주고 치워버리면 사람들의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강서희의 두 눈이 교활하게 빛났다.“그야 어쩔 수 없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모시고 살 수밖에!”누군가가 이 일을 통해 이득을 보았다면 그 사람이 배후일 수밖에 없었다.진영숙의 눈빛도 싸늘하게 빛났다.“걔 들어오면 네가 잘 좀 지켜봐. 절대 오빠랑 단둘이 있게 하지 말고.”강서희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걱정 마!”“서희야.”“응
“네?”“처음 볼 때만해도 엄청 딱딱하고 차가운 분인 줄 알았는데.”누가 박연준이 이토록 다정할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요?”“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박 대표님 와이프 될 사람은 엄청 행복하겠어요!”사람은 첫 인상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유영은 박연준과 만났던 첫 날을 떠올렸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하하!”박연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맺혔다. 그러나 이어서 나온 말에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지만, 삼촌이 괜한 수고를 한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강이한이랑도 첫 시작은 아름다웠으니까.”그는 이유영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차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가 보여드릴게요.”박연준이 입고 있던 검은 코트를 이유영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그는 구태여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함께하다 보면 이유영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와 강이한은 달랐다. “고마워요.”이유영이 미소 지으며 감사함을 표했다. “집까지 배웅해드릴게요.”“네, 알겠어요.”이유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매번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계가 더 발전하지 못하더라도 둘은 계속 함께 계속 일을 해야 하는 파트너였으니까. 둘은 그렇게 함께 순정동에 도착했다.“내일도 데리러 와줄 수 있나요? 제가 차를 안 가져와서.”이유영이 차에서 내리며 박연준에게 말했다. “그럴게요.”박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오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솔직해진 덕분에 둘은 전보다 훨씬 편한 관계가 되었다. “먼저 들어가요.”박연준이 신사답게 말했다. 이유영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집안으로 들어갔다. 박연준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한 것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이유영은 당장 연애를 할 생각이 없었다. 정국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유영은 그의 뜻을 이뤄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이유영은 무언가 이
“이유영, 넌 박연준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이러는 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박연준의 가문이 얼마나 복잡하고 치열한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영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가문과 얽히려고 하는 것일까? 강이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그쪽 집안이랑 얽히던 말던 네가 무슨 상관이야?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그래 환장했다!”이유영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강이한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녀가 매번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겁대가리 없이 덤빌 때마다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달깍달깍, 강이한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참 더러운 기분이었다.강이한은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집에 있을 때 힘들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때는….”그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전에 그녀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이제 강이한도 알았다. 그도 나름 배려한다고 최대한 진영숙과 마주치지 않게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진영숙이 찾아왔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것도 와서 이유영을 그토록 괴롭혔다니!“그때는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박연준의 가문도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이한의 집안도 만만치 않았다. 이유영은 그런 강이한이 적하반장 자신한테 이러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강이한은 속이 답답한지 다시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원래 그도 이유영을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연준과 히히덕거리며 사이좋게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뒀다가는 이유영이 정말로 그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시 묶어 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됐어, 이제 다 지난간 일인데… 말해 뭐 해.”이유영이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허탈하게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강씨 가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본 강이한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 웃기지 마.”그
지금이라도 한지음을 내보내겠다고 한다면 이유영이 이토록 비참한 기분을 느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어떻게 내쫓아? 앞도 안 보이는데 나가서 어떻게 살아?”강이한이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뿐인데, 그의 눈빛은 마치 이유영을 질책하고 있는 듯했다. 이유영은 그런 그의 태도가 너무 우스웠다. “유영아….”이유영의 표정을 본 강이한은 그제야 자신이 말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떄는 늦어버렸다. 이유영이 싸늘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피가 연결되어 있는 나도 하지 않는 걱정을 네가 왜 해? 설마 형부로서 하는 걱정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이유영의 말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강이한의 요구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인가? 그녀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한지석의 동생이기도 하잖아….:”“한지석 같은 소리하고 있네.”“….”“그럼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살아. 한지석한테 은혜 갚으면서.”그 말과 함께 이유영은 계단을 올라갔다. 강이한은 포기하지 않고 바로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집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강 대표님, 이만 가시지요. 아가씨도 이만 쉬셔야 해요.”지나가려면 자신을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강경한 태도였다. 강이한은 여기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기로 했다.침실로 돌아온 이유영은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녀는 연거푸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그녀는 멀어지려 할수록 자꾸만 집착해오는 강이한의 태도가 너무나도 역겨웠다. 그리고 한지음과 피가 연결된 사이라는 것도 마치 저주처럼 느껴졌다. 지잉- 이때 핸드폰이 진동했다.“여보세요.”“나다, 유영아.”정국진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렸다. 이유영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삼촌.”“박연준이랑은 요즘 잘 지내니?”“네
일말의 기대조차 짓밟혔다. “이유영….”영원히 자신의 곁에 머물러 줄 것만 같았던 익숙한 사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이럴 수는 없어!’강이한은 처음 둘의 관계가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그의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이혼은 그저 잠시 타오르던 불길을 끄기 위한 임시 방편이었을 뿐, 그의 진심이 아니었다. 강이한은 절대로 이대로 이유영을 놓아줄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유영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모르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 둘의 인연은 이미 오래 전에 끝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유영이 회귀하는 순간 이미 둘은 같은 시간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이어지는 3일, 세강에 큰 변화가 있었다.그건 바로 한지음이 퇴원이었다. 그녀는 퇴원한 뒤로 곧바로 강이한의 본가로 들어왔다. “저희 둘 사이, 어머님께서 확실히 해두셨을 거라 믿어도 되죠?” 유경원이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 때문에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한지음이 강씨 집안으로 들오다니, 자칫했다간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유경원은 강이한과의 사이를 이번이야말로 확실하게 해두고 싶었다. 반면 진영숙도 마음이 조급했다. 마냥 착하게만 봤던 한지음이었지만, 이번에 강서희가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 일이 점점 더 꼬일 것만 같았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 조만간 약혼식 날짜 잡도록 하자!”진영숙도 얼른 이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차라리 예전의 이유영이 더 상대하기 쉬웠다. 한지음의 오빠한테 진 빚도 그렇고 눈에 장애까지, 언론을 의식해서라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은혜는 은혜지만, 그렇다고 가문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돌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진영숙도 참 난감했다. 이때 유경원이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와 강
유경원이 떠났다.이때 강서희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유경원이 뭐라고 했어?”“한지음이 뭐하는지나 제대로 감시해!”진영숙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강이한과 유경원의 사이를 못 밖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씨 가문에서 이토록 강경하게 나올줄은 예상치 못했다. 한지음이 강씨 집안으로 들어오게 된 게 모든 것의 원이었다.“그건 내가 알아서 잘 할게. 그래서 유경원네 집에서는 뭐래?”“뭐라하기는, 당연히 쓴 소리 하지!”진영숙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진영숙은 속으로 다른 계획을 짜고 있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진영숙이 말을 더 이어가려던 찰나, 집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사모님이름으로 택배로 서류가 왔어요!”“택배?”“네!”“어디서 온 건데?”“파리에서 왔어요!”해외서 택배가 왔다니, 진영숙은 의아했다. 그녀는 단 한번도 해외에서 무언가를 주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숙이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엔 두툼한 사진 뭉치가 들어있었다.“이, 이건?”진영숙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옆에 있던 강서희도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둘은 사진을 한 장, 또 한 장, 계속해서 넘겼다.결국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진영숙이 참지 못하고 사진을 쾅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그녀는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도대체 뭘 본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 더러울 수가?“이런 주제에 아까 나한테 그렇게 당당하게 굴어?”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녀는 좀 전에 가문의 이름으로 당당히 자신을 압박해오던 유경원을 떠올렸다. 그녀의 부모는 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당당할 수 없을 테니까!“진짜 유경원이네. 여자가 돼서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몸을 굴릴 수가 있지?”강서희가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우며 말했다. 사진 속 유경원은 외국남자의 품에 안겨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보지 마!”진영숙이 강서희의 손에 있던 사진을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