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원이 떠났다.이때 강서희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유경원이 뭐라고 했어?”“한지음이 뭐하는지나 제대로 감시해!”진영숙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강이한과 유경원의 사이를 못 밖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씨 가문에서 이토록 강경하게 나올줄은 예상치 못했다. 한지음이 강씨 집안으로 들어오게 된 게 모든 것의 원이었다.“그건 내가 알아서 잘 할게. 그래서 유경원네 집에서는 뭐래?”“뭐라하기는, 당연히 쓴 소리 하지!”진영숙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진영숙은 속으로 다른 계획을 짜고 있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진영숙이 말을 더 이어가려던 찰나, 집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사모님이름으로 택배로 서류가 왔어요!”“택배?”“네!”“어디서 온 건데?”“파리에서 왔어요!”해외서 택배가 왔다니, 진영숙은 의아했다. 그녀는 단 한번도 해외에서 무언가를 주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영숙이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으로 서류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엔 두툼한 사진 뭉치가 들어있었다.“이, 이건?”진영숙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옆에 있던 강서희도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둘은 사진을 한 장, 또 한 장, 계속해서 넘겼다.결국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때, 진영숙이 참지 못하고 사진을 쾅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그녀는 두 눈을 의심했다. 내가 도대체 뭘 본 것인가? 어떻게 이렇게 더러울 수가?“이런 주제에 아까 나한테 그렇게 당당하게 굴어?”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녀는 좀 전에 가문의 이름으로 당당히 자신을 압박해오던 유경원을 떠올렸다. 그녀의 부모는 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당당할 수 없을 테니까!“진짜 유경원이네. 여자가 돼서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몸을 굴릴 수가 있지?”강서희가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우며 말했다. 사진 속 유경원은 외국남자의 품에 안겨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보지 마!”진영숙이 강서희의 손에 있던 사진을 빼
이때, 진영숙의 뇌리에 이유영이 스쳤다.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었다. “엄마, 이제 어떡해?”“….”“지금 한지음 쪽도….”강서희의 입에서 한지음의 이름이 나오자 진영숙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한지음은 절대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 강씨 가문에 들어온 솜씨만 봐도 그랬다.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큰 사단이 날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지음이 그녀의 아들, 강이한과 얽히는 일을 막아야 했다! 앞도 안 보이는 주제에 강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넘보다니, 말도 안 되지!“한지음, 잘 감시하고 있어. 혹시나 해서 생각해 뒀던 걸 계획에 옮겨야겠어.”진영숙은 굳이 계획을 강서희한테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 확실치 않은 일에 괜한 설레발을 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겠어, 엄마.”강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엄마, 그래도 오빠를 좀 더 믿어봐. 꼭 정략결혼으로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강서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진영숙은 듣기 싫다는 듯 짜증스레 손을 저을 뿐이었다.자꾸만 편법으로 일을 해결하려 드는 진영숙과 달리 강서희는 강이한을 믿었다. 그는 이번에도 강이한이 여느 때처럼 문제를 잘 해결할 거라 확신했다. 그녀가 아는 강이한은 항상 멋있고 강인했으며, 못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진영숙도 강이한이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에 벤 오래된 습성이 어디 쉽게 버려지나?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자신이 있고 확실한 방법으로 강씨 가문을 지키려 할 뿐이었다. 안그래도 최근 강이한이 연달아 큰 프로젝트 두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친척들의 견제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유씨 가문과의 정략결혼도 파토가 났으니, 진영숙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새로운 결혼 상대를 찾아 든든한 아군을 만들어야만 했다.진영숙이 자신의 계획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강서희만 집에 남았다. 바닥엔 아직 유경원의 사
여자라면 대체적으로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살이 잘 찐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길 원하는 여자라면 마음 편히 이런 음식을 섭취하진 못할 것이다.왕숙이 흐뭇한 표정으로 맛있게 음식을 먹는 강서희를 바라봤다.“점심도 제가 직접 만들어드릴까요?”“좋지!”“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해산물 먹고 싶어!”“그럼 랍스타 어떠세요?”“아주 좋아!”강서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랍스타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럼 타르트는 두개만 더 드세요. 더 먹으면 점심 못 먹어요.”“알겠어.”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만큼 요리사에게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었다. ….진영숙은 강씨 본가를 나오는 즉시 사람을 시켜 이유영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이유영이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리스탈 가든이라면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브랜드였다. 진영숙은 이 사실에 매우 놀랐다.그녀는 이유영을 만나기 위해 크리스탈 가든으로 향했다.아주 고급스럽고도 진중한 분위기를 가진 응접실 안에 진영숙이 앉아 있었다. 이때 비서로 보이는 한 사람이 공손히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여기서 잠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지금 회의 중이시거든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진영숙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유영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 따위 예전이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진영숙은 매우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약 두시간 후, 이유영이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 뒤로 서류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뒤따르고 있었다.“전 대표님이랑 있었던 일은 잘못이 맞지만, 제 원고는 우수해요. 대표님, 제발 좀 봐주세요!”“….”“대표님, 제발요….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대표님….”여성이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 옆에 있던 비서가 다가갔다.진영숙은 그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모두
자동문이 열리고, 이유영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키는 평균보다 작았지만, 그것이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비율이 좋았다. 거기에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풍기는 압도적인 분위기까지, 진영숙은 자신이 알던 이유영이 많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혔다. 고부지간으로 있을 때도 살가운 대화라고는 나눠본 적 없는 두 사람이었다. 침묵 속에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이유영이 여유로운 자세로 맞은편 소파에 앉아 물었다. 진영숙은 너무나 달라진 이유영의 태도에 큰 혼란에 휩싸였다.“대표님, 여기 커피요.”이때 비서가 쟁반에서 커피잔을 이유영과 진영숙 앞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마워요.”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이유영은 그제야 회의로 인해 쌓였던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진영숙도 얼떨결에 함께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이혼하더니 잘 사는가 보네.”“그럼 못 살길 바라셨어요?”이유영이 평온하지만 비꼼이 들어간 말투로 답했다. 진영숙은 그 말투에 잠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다.“아직도 날 원망해?”진영숙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제가 그 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라도 하길 바랐어요?”과거 이유영이 아직 세강의 며느리로 있을 때, 강이한이 집을 비우기만 하면 진영숙이 찾아왔다. 이유는 다양했느나, 목적은 하나였다. 진영숙은 사사건건 모든 것에 태클을 달아 이유영을 괴롭혔다. 그렇게 진영숙이 한번 찾아오면 이유영은 강이한이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겨우 벗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 세월을 버텼는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그때는 내가 좀 너무했지? 하지만 내 입장도 생각해봐. 그럴 수밖에 없었어.”진영숙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유영은 무려 그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였으니까!크리스탈 가든이 어디 평범한 회사인가? 처음
끝까지 겪어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깜빡 속을 정도로 아주 노련한 연기였다. 이유영도 회귀를 겪지 않았다면, 진영숙이 변한 것이라 생각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어차피 강이한과 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원망은 무슨, 가당치도 않았다. 지금 이유영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바로 무관심이었다. 그토록 무시하고 멸시하던 존재가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것만큼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 테니까!이유영은 진영숙이 순간 말문이 막혀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매우 통쾌함을 느꼈다. 오랜 시간 억눌렸던 체기가 단번에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영숙이 아무리 온화한척 굴어도, 속은 화를 참느라 아주 죽을 맛일 테니까. “유영아.”진영숙이 입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다정한 호칭이 나왔다. 이유영은 기가막혔지만, 진영숙이 도대체 어디까지 비굴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굴더니 결국 더 강한 힘 앞에선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구나! 재벌들의 세상이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너의 둘이 이렇게 된 건 다 내 탓이야.”“….”“둘이 아주 잘 어울렸는데, 내가 모든 걸 망쳐버렸어.”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진영숙은 매우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떻게든 이유영의 마음을 돌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유영은 전혀 흔들림이 없이, 오히려 전보다 더 싸늘하고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영숙을 바라보고 있었다.진영숙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넘어올 기색조차 없는 이유영의 태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내가 이러는 거 너의 삼촌 때문이 아니야.”“하! 아니라고요?”이유영이 코웃음 치며 진영숙을 몰아붙였다. 이유영은 강이한과 이혼한 것으로 더는 강씨 집안 사람들과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강씨 집안 사람들과 감정이 좋지 않았지만, 굳이 거기까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싶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진영숙이 제 발로 찾아온 마당에 굳이 봐줄 이유는 없었다. 둘의 입장은 이제 완전히 뒤
이유영의 얘기만 하면, 강이한은 항상 저기압이었다. 진영숙은 그것 때문에 아들과 말다툼 했던 적이 몇 번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입장에선 강이한이 항상 이유영의 편을 들어줬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온 세상이 강이한과 한지음의 사이를 아는데, 포장한다 한들 의미 없어요!”“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진영숙이 얼른 받아쳤다. 그녀에게 한지음은 은인의 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유경원하고도 아무 사이 아니야. 이한이가 걔를 어떻게 대했는지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잖아?”부모는 자기 자식을 객관화되게 볼 수 없다. 진영숙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강이한은 항상 옳은 존재였고, 잘못한 것은 이유영이었다. 둘이 이렇게 이혼하게 된 것도 그녀의 입장에선 언제까지 이유영의 문제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유영만 생각을 바꾼다면 해결 될 문제라고 여겼다.“내 말이 틀렸니?”“….”“우리 아들은 그 둘한테 마음 주지 않았어! 너한테 일편단심이었다고!”전에 진영숙이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둘의 사이가 더 나빠지길 바라며 움직였으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천하의 진영숙이 그토록 무시하던 이유영을 다시 며느리로 들이기 위해 이토록 비굴해질 수 있을 줄이야!“한지음은 그냥 은혜를 입은 사람의 동생이니까 챙겨주는 것뿐이야. 너도 내 성격 알잖아?”진영숙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한지음도, 유경원도, 모두 세강의 며느리가 될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못 둬!”역시나 이유영의 예상했던 대로였다. 진영숙이 조급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나도 이런 것까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이제 한지음이 마냥 착하지만 않다는 걸 알아. 그러니 너희 둘 재결합하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해봐.”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사용, 진영숙은 이 전략으로 이유영을 회유하려 들고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진영숙이 할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세강은 체면과 명성에 매우 신경 쓰는 집안이었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일에 휘말리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진영숙은 물론 그녀의 시어머니, 유혜정 또한 모두 굉장히 보수적인 노인이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이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게,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아무리 이유영과 강이한이 이혼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한때 부부였던 사이 아닌가? 그런데 둘이 갈라졌음에도 그 동생이 세강 본가에 머물고 있다? 이보다 황당한 얘기는 없을 것이다!“그것까지 설명할 정도로 한가진 않네요.”이때, 손목 시계를 잠시 쳐다보던 이유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이유영이 응접실을 나가려던 찰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진영숙이 뒤에서 불렀다. 이유영이 살짝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또 무슨 일인데요?”“그럼 너는 걔를 어떻게 생각하는데?”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진영숙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한 질문이었다.“제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이유영이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답했다. 한지음은 처음부터 이유영을 노리고 세강에 접근했다. 그러니 당연히 좋게 생각할 리 없었다.“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게. 우리 아들한테 다시 한번 기회 주면 안 될까?”이 순간에도 진영숙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진영숙은 이유영이 이 사실을 이 시점에 알려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지음과의 관계를 처리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영숙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이유영이 조롱 섞인 표정으로 진영숙을 바라보며 말했다.“기회요? 하!”이유영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꼈다. 기회는 아직 미련이 남은 사이나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이미 끝이 난 사이에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강씨 본가에서.강서희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
복수한다고 했던 일들이 도리어 이유영에게 날개를 달아 준 꼴이 되어버린 격이 아닌가? 한지음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제 발로 이유영 대신 지옥에 들어오게 되어버렸으니까!”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니? 너랑 오빠가 단 둘이 만날 일은 앞으로 절대로 없을 거야!”그 말과 함께 강서희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한지음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강이한과 단 둘이 있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 그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졌다. “강서희!”“꿈 깨!”“말했잖아! 난 오빠한테 이성적인 관심 없어!”“거짓말인 게 뻔히 보이는데, 누가 믿을 줄 알고?”한지음이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부족함이 하나 없지만, 자신의 의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신세가 되어버렸다!“어디 청하시 뿐만인줄 알아? 그 밖에서도 오빠랑 인연 맺고 싶어서 다 안달 이었어! 내가 그 년들을 떼어낸다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한지음이 채 말을 하기도 전에 강서희가 계속했다. “….”“너 같은 년 내가 제일 잘 알아!”“강서희!”“처음엔 다 너처럼 순진한 얼굴로 접근하지, 그런데 뒤집어보면 다 속들이 똑같아! 흥! 결국 오빠한테 꼬리치기 바쁘지!”강서희가 한지음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흉내 내며 조롱했다.한지음은 강서희가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이 호화스러운 저택이 지옥으로 느껴지게 만든 진짜 악마!“그러니까 이유영이 이 강씨 집안에서 괴롭힘 당했던 것도 결국 네 짓이었단 말이야?”“우리 오빠한테 흑심 품은 여자들은 다 좋게 안 끝나게 되어 있어!”강서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한지음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 집안으로 들어선 것이 악몽의 시작이 될 줄은 그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한지음은 강서희의 말들을 통해 이유영이 이곳에서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을 살았을지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