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이 열리고, 이유영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키는 평균보다 작았지만, 그것이 전혀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비율이 좋았다. 거기에 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풍기는 압도적인 분위기까지, 진영숙은 자신이 알던 이유영이 많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혔다. 고부지간으로 있을 때도 살가운 대화라고는 나눠본 적 없는 두 사람이었다. 침묵 속에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이유영이 여유로운 자세로 맞은편 소파에 앉아 물었다. 진영숙은 너무나 달라진 이유영의 태도에 큰 혼란에 휩싸였다.“대표님, 여기 커피요.”이때 비서가 쟁반에서 커피잔을 이유영과 진영숙 앞으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마워요.”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이유영은 그제야 회의로 인해 쌓였던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진영숙도 얼떨결에 함께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이혼하더니 잘 사는가 보네.”“그럼 못 살길 바라셨어요?”이유영이 평온하지만 비꼼이 들어간 말투로 답했다. 진영숙은 그 말투에 잠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다.“아직도 날 원망해?”진영숙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제가 그 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라도 하길 바랐어요?”과거 이유영이 아직 세강의 며느리로 있을 때, 강이한이 집을 비우기만 하면 진영숙이 찾아왔다. 이유는 다양했느나, 목적은 하나였다. 진영숙은 사사건건 모든 것에 태클을 달아 이유영을 괴롭혔다. 그렇게 진영숙이 한번 찾아오면 이유영은 강이한이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겨우 벗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그 세월을 버텼는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그때는 내가 좀 너무했지? 하지만 내 입장도 생각해봐. 그럴 수밖에 없었어.”진영숙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유영은 무려 그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였으니까!크리스탈 가든이 어디 평범한 회사인가? 처음
끝까지 겪어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깜빡 속을 정도로 아주 노련한 연기였다. 이유영도 회귀를 겪지 않았다면, 진영숙이 변한 것이라 생각 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어차피 강이한과 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원망은 무슨, 가당치도 않았다. 지금 이유영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바로 무관심이었다. 그토록 무시하고 멸시하던 존재가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것만큼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 테니까!이유영은 진영숙이 순간 말문이 막혀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매우 통쾌함을 느꼈다. 오랜 시간 억눌렸던 체기가 단번에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진영숙이 아무리 온화한척 굴어도, 속은 화를 참느라 아주 죽을 맛일 테니까. “유영아.”진영숙이 입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다정한 호칭이 나왔다. 이유영은 기가막혔지만, 진영숙이 도대체 어디까지 비굴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굴더니 결국 더 강한 힘 앞에선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구나! 재벌들의 세상이란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너의 둘이 이렇게 된 건 다 내 탓이야.”“….”“둘이 아주 잘 어울렸는데, 내가 모든 걸 망쳐버렸어.”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진영숙은 매우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떻게든 이유영의 마음을 돌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유영은 전혀 흔들림이 없이, 오히려 전보다 더 싸늘하고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영숙을 바라보고 있었다.진영숙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넘어올 기색조차 없는 이유영의 태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내가 이러는 거 너의 삼촌 때문이 아니야.”“하! 아니라고요?”이유영이 코웃음 치며 진영숙을 몰아붙였다. 이유영은 강이한과 이혼한 것으로 더는 강씨 집안 사람들과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강씨 집안 사람들과 감정이 좋지 않았지만, 굳이 거기까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싶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진영숙이 제 발로 찾아온 마당에 굳이 봐줄 이유는 없었다. 둘의 입장은 이제 완전히 뒤
이유영의 얘기만 하면, 강이한은 항상 저기압이었다. 진영숙은 그것 때문에 아들과 말다툼 했던 적이 몇 번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입장에선 강이한이 항상 이유영의 편을 들어줬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온 세상이 강이한과 한지음의 사이를 아는데, 포장한다 한들 의미 없어요!”“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진영숙이 얼른 받아쳤다. 그녀에게 한지음은 은인의 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유경원하고도 아무 사이 아니야. 이한이가 걔를 어떻게 대했는지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잖아?”부모는 자기 자식을 객관화되게 볼 수 없다. 진영숙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입장에선 강이한은 항상 옳은 존재였고, 잘못한 것은 이유영이었다. 둘이 이렇게 이혼하게 된 것도 그녀의 입장에선 언제까지 이유영의 문제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유영만 생각을 바꾼다면 해결 될 문제라고 여겼다.“내 말이 틀렸니?”“….”“우리 아들은 그 둘한테 마음 주지 않았어! 너한테 일편단심이었다고!”전에 진영숙이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둘의 사이가 더 나빠지길 바라며 움직였으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천하의 진영숙이 그토록 무시하던 이유영을 다시 며느리로 들이기 위해 이토록 비굴해질 수 있을 줄이야!“한지음은 그냥 은혜를 입은 사람의 동생이니까 챙겨주는 것뿐이야. 너도 내 성격 알잖아?”진영숙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한지음도, 유경원도, 모두 세강의 며느리가 될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못 둬!”역시나 이유영의 예상했던 대로였다. 진영숙이 조급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리라!“나도 이런 것까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이제 한지음이 마냥 착하지만 않다는 걸 알아. 그러니 너희 둘 재결합하는 거, 다시 한번 생각해봐.”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사용, 진영숙은 이 전략으로 이유영을 회유하려 들고 있었다.하지만 이유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진영숙이 할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세강은 체면과 명성에 매우 신경 쓰는 집안이었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일에 휘말리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진영숙은 물론 그녀의 시어머니, 유혜정 또한 모두 굉장히 보수적인 노인이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이 상황은 도무지 받아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게,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아무리 이유영과 강이한이 이혼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한때 부부였던 사이 아닌가? 그런데 둘이 갈라졌음에도 그 동생이 세강 본가에 머물고 있다? 이보다 황당한 얘기는 없을 것이다!“그것까지 설명할 정도로 한가진 않네요.”이때, 손목 시계를 잠시 쳐다보던 이유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잠깐!”이유영이 응접실을 나가려던 찰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진영숙이 뒤에서 불렀다. 이유영이 살짝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또 무슨 일인데요?”“그럼 너는 걔를 어떻게 생각하는데?”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진영숙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너무 혼란스러웠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한 질문이었다.“제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이유영이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답했다. 한지음은 처음부터 이유영을 노리고 세강에 접근했다. 그러니 당연히 좋게 생각할 리 없었다.“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게. 우리 아들한테 다시 한번 기회 주면 안 될까?”이 순간에도 진영숙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진영숙은 이유영이 이 사실을 이 시점에 알려준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지음과의 관계를 처리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영숙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이유영이 조롱 섞인 표정으로 진영숙을 바라보며 말했다.“기회요? 하!”이유영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대꾸할 가치조차 못 느꼈다. 기회는 아직 미련이 남은 사이나 할 수 있는 얘기였다. 이미 끝이 난 사이에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강씨 본가에서.강서희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
복수한다고 했던 일들이 도리어 이유영에게 날개를 달아 준 꼴이 되어버린 격이 아닌가? 한지음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제 발로 이유영 대신 지옥에 들어오게 되어버렸으니까!”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니? 너랑 오빠가 단 둘이 만날 일은 앞으로 절대로 없을 거야!”그 말과 함께 강서희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한지음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강이한과 단 둘이 있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 그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졌다. “강서희!”“꿈 깨!”“말했잖아! 난 오빠한테 이성적인 관심 없어!”“거짓말인 게 뻔히 보이는데, 누가 믿을 줄 알고?”한지음이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부족함이 하나 없지만, 자신의 의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신세가 되어버렸다!“어디 청하시 뿐만인줄 알아? 그 밖에서도 오빠랑 인연 맺고 싶어서 다 안달 이었어! 내가 그 년들을 떼어낸다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한지음이 채 말을 하기도 전에 강서희가 계속했다. “….”“너 같은 년 내가 제일 잘 알아!”“강서희!”“처음엔 다 너처럼 순진한 얼굴로 접근하지, 그런데 뒤집어보면 다 속들이 똑같아! 흥! 결국 오빠한테 꼬리치기 바쁘지!”강서희가 한지음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흉내 내며 조롱했다.한지음은 강서희가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이 호화스러운 저택이 지옥으로 느껴지게 만든 진짜 악마!“그러니까 이유영이 이 강씨 집안에서 괴롭힘 당했던 것도 결국 네 짓이었단 말이야?”“우리 오빠한테 흑심 품은 여자들은 다 좋게 안 끝나게 되어 있어!”강서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한지음의 심장을 꿰뚫었다. 이 집안으로 들어선 것이 악몽의 시작이 될 줄은 그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한지음은 강서희의 말들을 통해 이유영이 이곳에서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을 살았을지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도 깨달았다.“
한지음은 힘겹게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옷장으로 향했다. 옷장엔 전에 조형욱이 가져다 놓은 그녀의 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구석구석 어디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곳을 뒤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핸드폰이 잡히지 않았다.“한지음 씨, 약 드실 시간이에요. 왜 이렇게 방을 어지럽혔어요!”방으로 들어온 도우미가 방의 모습을 보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제 핸드폰 어디 있어요?”그녀는 당장 강이한한테 연락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감옥을 벗어나야만 했다. 한지음은 강서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너무나 두려웠다. 강이한을 향한 강서희의 집착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강서희는 자신이 자길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게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고 있었다. 강이한의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아야 자신에게 올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사모님이 가져가셨어요. 눈도 불편하니 사용할 수 없을 거라 하셨죠. 그러니 용무가 있으면 저희한테 말씀하면 된다고 하셨어요.”도우미가 조금의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 아주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무슨 자격으로 내 것에 손을 대!”그 말에 한지음은 더 분노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방음이 잘 되어 있는 방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한지음 씨, 욕심 적당히 부리세요. 이미 그쪽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 사모님이 다 대주고 있다는 거 잊으면 안 돼요. 그러니 지금은 잘 먹고, 잘 쉬는 것에만 전념하세요.”목숨만 붙어있으면 된다. 도우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지음은 날개가 잘린 채 철창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되었다. 앞도 볼 수 없는데, 손과 발이 달려 있어도 주변이 꽉 막혀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디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도우미는 말없이 옆에 약을 아무렇게 내려 놓고 방을 나왔다. 방이 어질러 있던 말던, 전혀 뒤처리를 해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향한 곳은 강서희가 있는 곳이었다.“한지음 씨가 대표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네요.”“흥!
진영숙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서희는 당연히 그녀가 이유영이 아닌 다른 집안을 찾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진영숙은 자존심보다 욕심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알겠어.”강서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느덧 파랗던 하늘도 서서히 석양이 지고 있었다.한편, 크리스탈 가든에서.이유영은 사무실로 돌아와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지현우가 들어와 그녀를 불렀다. “대표님!”“내일 일정 어떻게 돼요?”“청하 쪽에서 이 대표님이 오신다는데, 만나보실래요?”지현우가 일정표를 확인하며 말했다.“그건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그렇게 중요한 일정 없으면 내일은 좀 따로 움직일게요.”“알겠어요.”지현우가 나가자, 이유영은 서랍에서 전시회 티켓을 꺼냈다. 이 티켓은 전에 정국진이 주고 간 것이었다. 그녀는 오늘 진영숙과의 만남으로 다시한번 정국진의 위상을 깨달았다. 어쩌면 앞으론 이런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유영은 심난해지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박연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유영이 주동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일 시간 있어요?”“네?”“전시회가 있는데, 같이 갈래요?”“좋아요.”“그럼 내일 오전 10시, 순정동에서 출발할까요? 회사로 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잠깐만요.”전화 너머 박연준이 비서에게 스케줄을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그가 답했다.“아침에 회의가 있어서, 바로 전시장에서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주소 보내주면 거기서 만나요.”“좋아요.”통화를 마친 후, 이유영은 전시회 티켓에 적힌 주소를 찍어 박연준에게 보냈다. 하지만 바쁜지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오후가 되었고 이유영은 슬슬 손에 있던 서류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 다음 뒤에 일정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소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어, 유영아.”“같이 밥 먹을까?”“좋아, 나도 일 곧 끝나. 데리러 갈게.”“아니야, 내가 갈
“계속 여기서 얘기할 거야?”강서희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나도 일정이 있는 사람이야. 그렇게 중요한 일 아니라면 차리라 내일, 아니 모레 오던가.”“바쁘긴 많이 바쁜가 봐? 하긴, 무려 그 오로라 스튜디오의 창립자이자 이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이사가 되었으니, 당연하겠지!”강서희는 자신보다 한 뺨이나 작은 이유영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이유영이 강씨 가문의 며느리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강이한으로부터 시작된 것, 둘이 이혼한 뒤로는 강서희가 이유영을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좀 전에 받았던 전화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유영이 위세가 강씨 가문까지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10분이면 돼?”“그 정도면 되지.”결국 두 사람은 로비 한쪽에 있는 휴게실로 갔다. 강서희는 우아하게 직원이 놓고 간 커피를 마셨다. 입양아이긴 하지만 얼마나 진영숙이 정성을 들어 키웠는지 보이는 순간이었다.“오늘 엄마가 찾아왔다며?”강서희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날카롭게 이유영을 쳐다보았다. 전에 강씨 가문에 있을 때도 많이 보여주던 모습이었다. 진영숙이 이유영에게 그토록 두터운 선입견을 가지게 된 이유여도 강서희였다. 이유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과거가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이유영이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강서희가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외모로 봐서는 강서희는 결코 이유영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엄한 데에 정력을 쏟는 모습에 이유영은 안타까웠다. 강서희는 이유영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핸드폰을 이유영 앞으로 내밀었다. 핸드폰 화면엔 한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이게 뭔데?”“한지음. 너도 궁금할 것 같아서, 우리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강서희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뭔가 불길한 기분을 느낀 이유영은 화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답했다.“관심 없어.”“한지음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