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음은 아버지의 바람과 자신이 이유영을 어떻게 함정에 빠뜨렸는지만 쏙 빼놓고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진술했다.그녀는 전혀 반성하거나 찔리는 어투가 아니었다. 이미 강이한이 이 질문을 할 줄 알고 반복해서 연습한 결과였다.“지금 보면 유영은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그게 아니라면 제가 이런 모습이 되지도….”한지음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울먹이며 고개를 속였다.강이한은 한지음을 그토록 증오하던 이유영의 얼굴을 떠올렸다.“이한 오빠, 그 여자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제 혈육이기도 하지만 저는 용서해 줄 수 없어요.”“그 여자가 저와 제 엄마를 증오하는 거 알아요. 저와 제 엄마가 자신의 가정을 파탄냈다고 생각할 거니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제 엄마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건 그 여자의 엄마였어요.”강이한은 혼란스러웠다.중재하려고 해도 두 여자 사이에는 이미 증오밖에 남은 게 없었다.그래도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유영은 한지음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었다.“유영의 엄마는 우리 엄마의 존재를 알고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돌렸어요. 그래서 유영은 가족을 잃은 뒤에도 생활에는 부족함이 없었죠. 하지만 저는 어땠을까요?”한지음이 어떻게 자랐는지 강이한도 조사해 본 바가 있어서 알고 있었다.“정말 좋은 엄마를 두었더군요. 다른 사람의 남자를 빼앗아가고 죽더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먹고 살 걱정 없이 모든 걸 처리해 놓았으니까요.”“하지만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딛고 성립된 거죠. 처음에는 미운 감정이 들지도 않았어요. 저한테 무슨 짓을 해도 가만히 있었죠. 제가 언제 반항한 적 있나요? 하지만 이번은 달라요. 어떻게 우리 엄마한테….”그러고 보면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한지음은 먼저 강이한에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 없었다.그녀가 요구한 것은 사과뿐이었다.강이한은 혼란에 빠졌다.한지음과 이유영의 관계는 그가 처음 이유영에게 정국진이라는 외삼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더 충격이었다.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눈을 질
마라탕을 맛본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이유영은 야채를 골라 그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처음 이거 먹었을 때 이게 무슨 맛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 먹고 싶어지는 맛이에요. 절대 후회는 없을 거예요.”그녀가 강이한을 처음 이 가게에 데려왔을 때 그도 오만상을 쓰며 거부했었다.결국 강이한은 그녀가 살던 평범한 세상에 녹아들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세계에 적응한 사람은 이유영이었다.“이거 정말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요?”박연준이 오만상을 쓰며 물었다. 미식가인 그에게는 참 받아들일 수 없는 매운 맛이었다.“먹어보면 괜찮다니까요?”박연준은 의심의 눈초리로 이유영을 바라보다가 결국 젓가락을 들고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마치 사약을 먹는 것 같은 표정을 보고 이유영이 웃음을 터뜨렸다.“어때요?”사실 이유영은 박연준도 강이한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을지 테스트하고 있었다.전에 강이한을 데리고 이 집에 왔을 때, 그는 먹자마자 음식물을 뱉어낸 뒤로는 한 번도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박연준도 속이 울렁거렸지만 기대에 찬 이유영의 눈빛을 보자 결국 이를 악물고 음식물을 삼켰다.“흠. 괜찮네요.”그 모습을 보자 이유영의 두 눈에 씁쓸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만약 과거 강이한도 조금 더 적응해 보려는 시도를 해보았다면 어땠을까?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로 강이한은 그녀가 추천하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아야! 왜 그래요?”박연준이 손을 뻗어 이유영의 볼을 꼬집자 이유영은 불만스럽게 남자를 노려부았다.“나랑 있으면서 다른 남자 생각하는 거예요?”이유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볼을 만졌다.“진짜 데이트도 아니잖아요.”사실 그들의 데이트는 정국진이 하도 닦달해서 성사된 것이었다.이유영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기에 재벌가 사람을 다시 만날 생각은 없었다.박연준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족들이 자신을 곱게 봐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나한테는 진짜 데이트인걸요?”박연준이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말
이런 사람이 과연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을까?“유영 씨?”“네?”“유영 씨는 남편을 잃었을 뿐이지 인생을 잃은 건 아니에요.”“하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걸요.”그녀는 이 과정에서 원래의 자신을 잃어갔다.그 말을 들은 박연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수저를 내려놓았다.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아직도 강이한을 내려놓지 못한 건가요?”이유영은 그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그 미소에는 씁쓸한 감정도 담겨 있었다.그녀가 말했다.“그건 내려놓고 안 내려놓고의 문제가 아니에요.”“그럼 뭐죠?”남자가 물었다.그는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이유영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지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말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최근 외부에서 전해지는 소문과 공개되지 않은 진실까지 전부 박연준에게 말해주었다.박연준은 조용히 끝까지 듣고만 있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남자는 차디찬 얼굴을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그러니까 그 녀석은 끝까지 그 여자 말만 믿었다는 거죠?”“맞아요.”이유영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회사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면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는 그렇듯 당연하게 그녀에게 사과와 이해를 요구했다.“그 사람은 나는 상처받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래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주지 않으니 분노하고 나한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죠.”“그렇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겠네요.”둘 사이는 이제 끝났으니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라는 얘기였다.이유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말도 맞네요. 고민할 필요가 없죠.”세강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 그와의 결혼 자체가 잘못된 시작이었던 것이다.“지금 세강 사람들은 유영 씨한테 뭐라고 해요?”박연준이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직은 별말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죠.”
[그게 무슨 소리야?]강이한은 갑작스러운 말에 기분이 상했다.장성호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영상 속에서 이유영은 박연준과 같이 밥을 먹고 손을 잡고서 마라탕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가게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본 강이한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이유영!”그는 부드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불과 한 시간 전까지 그와 신나게 싸워대던 그녀였다.그런데 박연준과 함께 둘이 처음 데이트를 나갔던 가게에서 밥을 먹다니!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가게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지만 익숙한 가게 이름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장성호에게서 화상 통화 요청이 왔다.강이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락 버튼을 눌렀다.“정말 이혼했어?”“그래.”“너도 참 대단하다. 너 이혼하자마자 연준이 걔한테 전처를 빼앗긴 셈인데 화도 안 나?”대학교 때부터 박연준과 강이한은 라이벌 관계였다.둘은 평소에 별로 교류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둘을 두고 비교했고 그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둘 사이는 점점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하지만 그냥 서로 짜증 난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정작 대놓고 싸운 적은 없었다.이런 상황에 기분이 안 나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둘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데?”“그야 나도 모르지. 나도 차 타고 지나가다가 둘이 같이 있는 걸 보고 너한테 보낸 거야.”“둘이 꽤 가까워 보이던데 곧 결혼 발표가 있을지도 모르지.”눈치 밥 말아먹은 장성호의 말에 강이한의 얼굴은 점점 음침하게 굳어갔다.“둘이 10년을 만났잖아. 어쩌다가 이혼하게 된 거야?”“설마 네가 밖에서 만나는 그 여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희들까지 이러면 누가 감히 사랑을 믿겠어?”탁!강이한은 그대로 전화를 바닥에 던져버렸다.10년을 쌓아온 사랑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그는 욱하는 마음에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장성호가 보내온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이유영이 웃으며 박연준의 입에 마라탕을 넣어주고 있었고 박연준도 과거
“아… 알겠습니다!”수화기 너머로 긴장한 이시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이한을 제외하고 그의 신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유영은 금기어와도 같았다.잠시 후, 시욱에게서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대표님, 이유영 씨는 박연준 대표와 같이 식사를 하시고 음악회 관람하러 갔습니다.”“음악회?”“네. 해외 오케스트라가 하는 공연인데 요즘 장안의 화제라고 하더군요.”음악회는 박연준의 취향이었다.강이한은 듣는 순간 오만상을 썼다.벌써 둘이 같이 취미생활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워진 걸까?그는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가능하다면 이유영을 홍문동으로 납치해서 예전처럼 지내고 싶었다.과거의 이유영의 생활은 단조로우면서도 강이한 위주로 돌아갔다. 지금과 비교하니 속이 뒤틀렸다.그가 씩씩거리고 있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조형욱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분명 한지음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전화한 것일 텐데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하지만 결국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받고 말았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병원에서는 한지음 씨 퇴원해도 된다고 하는데 어디로 모셔야 할까요?”한지음은 이제 광명을 회복할 기회를 잃었기에 입원해 있는다고 더 나아질 건 없었다.게다가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으면 사람만 피폐해질 뿐이었다.강이한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어머니가 부동산 하나 새로 마련하신다고 했으니까 그쪽으로 전화해 봐.”“네, 알겠습니다.”그는 하마터면 홍문동으로 데려가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참아냈다.이유영이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었다.비록 지금은 집을 나갔지만 그곳은 이유영이 오랜 시간 생활한 곳이었다.비록 둘 사이는 이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다른 여자가 그곳에 돌아가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 여자가 한지음이라고 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었다.진영숙도 한지음의 거취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한지음이 한지석의 동생이라고 생각해서 잘 돌봐주려고 했는데 일이 점점 꼬여가고 있었다.
진영숙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말을 마친 그녀는 따뜻한 차를 한잔 들이켰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강서희의 두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사실 요즘 여론이 떠들썩하긴 하지만 원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잖아.”“이유영은 이미 오빠랑 이혼했고 일을 크게 만드는 성격도 아니야. 현재는 일하느라 여념이 없을걸? 그렇다고 경원 언니가 소문 냈을 가능성도 없어. 언니는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했으니까.”진영숙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오빠랑 결혼할 사람이 세강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일에 가담했을 리는 없어.”그렇게 다 배제하고 나면 한지음 한 사람만 남았다.이제 시력을 잃었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세강뿐이니 소문이 나서 이득을 보는 쪽은 한지음이었다.강서희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진영숙은 그 뒤에 숨은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하지만 걔가 무슨 수로 상류층 사람들과 접촉하겠어?”강서희가 말했다.“걔 지금 있는 병원, 재벌가 사람들만 찾는 병원이야.”“그러니까 걔가 세강의 사람이 되려고 일부러 소문을 퍼뜨렸단 거야?”“그거야 모르지. 세강에 입성하려고 온갖 짓을 다 벌이던 여자가 한둘이야? 엄마도 알잖아.”진영숙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강서희는 이때다 싶어 계속해서 말했다.“게다가 걔 이제 완전히 시력을 잃었잖아. 지금 걔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진영숙은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쉬었다.“일단은 여기서 살게 해. 다른 방법이 없잖아.”지금 이 시점에서 한지음을 밖에 거처만 마련해 주고 치워버리면 사람들의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강서희의 두 눈이 교활하게 빛났다.“그야 어쩔 수 없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모시고 살 수밖에!”누군가가 이 일을 통해 이득을 보았다면 그 사람이 배후일 수밖에 없었다.진영숙의 눈빛도 싸늘하게 빛났다.“걔 들어오면 네가 잘 좀 지켜봐. 절대 오빠랑 단둘이 있게 하지 말고.”강서희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걱정 마!”“서희야.”“응
“네?”“처음 볼 때만해도 엄청 딱딱하고 차가운 분인 줄 알았는데.”누가 박연준이 이토록 다정할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요?”“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박 대표님 와이프 될 사람은 엄청 행복하겠어요!”사람은 첫 인상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유영은 박연준과 만났던 첫 날을 떠올렸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하하!”박연준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맺혔다. 그러나 이어서 나온 말에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지만, 삼촌이 괜한 수고를 한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강이한이랑도 첫 시작은 아름다웠으니까.”그는 이유영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차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가 보여드릴게요.”박연준이 입고 있던 검은 코트를 이유영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그는 구태여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함께하다 보면 이유영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와 강이한은 달랐다. “고마워요.”이유영이 미소 지으며 감사함을 표했다. “집까지 배웅해드릴게요.”“네, 알겠어요.”이유영은 거절하지 않았다. 매번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계가 더 발전하지 못하더라도 둘은 계속 함께 계속 일을 해야 하는 파트너였으니까. 둘은 그렇게 함께 순정동에 도착했다.“내일도 데리러 와줄 수 있나요? 제가 차를 안 가져와서.”이유영이 차에서 내리며 박연준에게 말했다. “그럴게요.”박연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오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솔직해진 덕분에 둘은 전보다 훨씬 편한 관계가 되었다. “먼저 들어가요.”박연준이 신사답게 말했다. 이유영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집안으로 들어갔다. 박연준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한 것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이유영은 당장 연애를 할 생각이 없었다. 정국진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유영은 그의 뜻을 이뤄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이유영은 무언가 이
“이유영, 넌 박연준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이러는 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박연준의 가문이 얼마나 복잡하고 치열한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영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가문과 얽히려고 하는 것일까? 강이한은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그쪽 집안이랑 얽히던 말던 네가 무슨 상관이야?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그래 환장했다!”이유영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강이한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녀가 매번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겁대가리 없이 덤빌 때마다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달깍달깍, 강이한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참 더러운 기분이었다.강이한은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집에 있을 때 힘들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때는….”그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전에 그녀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이제 강이한도 알았다. 그도 나름 배려한다고 최대한 진영숙과 마주치지 않게 본가에 내려가지 않았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진영숙이 찾아왔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것도 와서 이유영을 그토록 괴롭혔다니!“그때는 뭐?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박연준의 가문도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이한의 집안도 만만치 않았다. 이유영은 그런 강이한이 적하반장 자신한테 이러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강이한은 속이 답답한지 다시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원래 그도 이유영을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연준과 히히덕거리며 사이좋게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뒀다가는 이유영이 정말로 그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시 묶어 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됐어, 이제 다 지난간 일인데… 말해 뭐 해.”이유영이 세상 다 산 표정으로 허탈하게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강씨 가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본 강이한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 웃기지 마.”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