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이 말했다.“저 그냥 맛만 보면 돼요.”다시 태어난 뒤 첫 설날을 그녀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평소 좀처럼 하지 않았던 그녀의 부탁을 은경애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럼 제가 바로 해올게요. 바깥에서 드시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그래요.”은경애는 다급히 꼬치구이 재료를 준비하러 자리를 떴다. 장소월이 매운 것을 잘 먹지 않기에 집에 고춧가루도 별로 없었다.아래층에 내려가니 주방에서 도우미들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은경애는 그때에야 집에 꼬치구이 도구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급히 오 집사에게 부탁했다. 오 집사는 돈을 받은 뒤 바로 전연우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별장 안 사람들은 은경애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연우의 사람이다.장소월에 관련된 일은 반드시 그의 허락을 맡고 난 뒤에야 행할 수 있다.마늘 한 조각을 사는 사소한 일이라도 말이다.전연우는 종래로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아주 자세한 일까지 알기를 원했다.전연우가 전화를 받고 장소월을 보러 가려 일어섰을 때, 마침 오 집사가 걸어왔다.“이게 먹고 싶대요?”“네. 아주머니가 돈을 주며 여기에 씌어있는 재료들을 사 오라고 했습니다.”오 집사는 종이를 전연우에게 보여주었다.살펴보니 모두 일반적으로 쓰이는 도구였다.그의 기억력은 꽤나 뛰어났다...남자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는 얼굴로 말했다.“해달라는 대로 해요.”“네. 대표님.”전연우는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5만 원짜리 몇 장을 꺼냈다.“이 돈으로 사고 나머지는 돌려줘요.”“네.”오 집사가 나간 뒤 전연우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장소월은 책 한 권을 옆에 두고 침대에 앉아 창밖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구름 사이를 뚫고 들어온 한 줄기의 빛이 그녀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하얀 피부가 빛을 반사해 미세한 솜털까지 또렷이 보였다.예전 그녀가 이 집에 살 때 장해진의 모든 주의력은 전연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날 역시 지금처럼 눈이 내렸었다
장소월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본 순간 그의 깊은 눈동자가 어두워졌다.그는 장소월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네가 몸을 회복하면 해외에서 주문한 웨딩드레스도 도착해 있을 거야. 그때 한 번 입어 봐.”전연우가 장소월의 손을 잡자 그녀는 단번에 빼버렸다.“전연우,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 내 동의도 없이 혼인신고까지 했으면 네 목적 다 달성한 거 아니야? 더는 내 앞에서 존재감 과시하지 마.”전연우는 그녀의 말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말했다.“얼마 후 우리 결혼 소식이 서울 전체에 전해질 거야. 넌 이제 성세 그룹 안주인이야.”“전연우! 사람들이 우리가 예전 무슨 관계였는지 알고 있다는 거 몰라? 넌 내 아버지의 양자였고, 내 오빠였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가 결혼한다니... 사람들이 우릴 어떻게 보겠어?”전생에서 그들이 결혼했을 때, 장소월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전연우의 아내임을 알리고 싶어 했으나 그가 원하지 않았다.그녀와의 결혼이 전연우에게 있어선 더없는 수치였으니까.이제...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완전히 마음을 접은 지금, 도리어 그가 미친 듯이 원하고 있다.“사람들 시선 신경 쓸 필요 없어. 웨딩 사진 찍고 나면 회사 연말 파티에 널 데리고 갈 거야.”장소월은 전연우가 그녀를 일부러 자극하는 건 아닌지 의심까지 들었다.전연우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따뜻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푹 쉬어.”그는 일어서 몸을 돌리고 몇 번 연이어 기침했다.장소월도 전연우의 몸이 아직 채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 그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으니 말이다.전연우는 서재에 들어가 의자에 앉은 뒤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책상 위엔 하얀색 약병 두 개가 놓여있었다.그건 서철용이 전연우에게 처방해준 분노를 제어하는 약물이었다.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전연우는 적잖은 정력을 소모했다.전연우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조명 불빛이 천
전연우였다!장소월은 여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품 안은 그야말로 난로와도 같이 뜨거웠다.몸을 회복하지도 못했으면서 왜 그녀와 함께 집에 있는단 말인가?장소월은 고개를 들고 준수하고 잘생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 이런 다정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면 장소월은 아마 행복감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을 것이다.‘전연우... 전생엔 대체 왜 그렇게 날 미워했던 거야? 만약 백윤서 때문이라면... 난 이미 속죄했잖아.’‘그럼 이번 생은?’‘나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 거야?’...까마득한 높이의 펜트하우스 안, 샤워 가운을 입은 송시아가 책상 위 모든 물건을 쓸어내렸다.“전연우! 너 어떻게... 장소월과 결혼할 수가 있어!”송시아는 미친 듯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기사에 실린 두 사람의 혼인신고서를 본 순간 손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려왔다.그녀는 정말이지 미치광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네 옆에서 성세 그룹을 세운 것도 나고, 널 성세 그룹 대표 자리에 앉힌 것도 나야.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널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혔단 말이야. 전생에서 넌 날 선택했어. 이번에도... 응당 나와 결혼해야 한다고!”송시아는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어 머리를 쥐어뜯었다.“그게 이렇게 이성을 잃을 일이야?”중년 남자가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머리에선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송시아는 바로 감정을 가라앉혔지만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표독함은 감추지 못했다.“억울해서 그래요. 전연우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거 절대 인정 못 한다고요!”남자는 아직 성욕이 채 소진되지 않았는지 여자의 가운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부드러운 그곳을 뒤적거리다가 그녀를 번쩍 안아 의자에 앉혔다.“조급해하지마. 이제 시작이야...”송시아는 그의 얼굴을 감싸고 말했다.“그럼... 동의한 거예요?”“당연하지.”송시아는 씩 웃으며 바로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그의 행동에 협조했다.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음란한 기운이 방안에 만연했다...
그때, 대표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긴 생머리에 정장 치마를 입은 25세 정도의 여자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기... 기 비서님... 커피...”기성은이 이마를 찌푸렸다.“거기 놔요.”이름은 소피아, 소민아가 떠난 뒤 잠시 고용한 기성은의 새 비서였다. 소피아가 불안하게 커피를 내려놓았다.“기 비서님, 다른 시키실 것 있으세요? 없으면 서류 프린트할 게 남아서 가보겠습니다.”기성은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그래요. 가봐요.”기성은은 대표님을 제외하면 가장 대면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고위급 인사들까지도 그의 낯빛을 살펴야 할 정도였다.일하는 과정에서 조그마한 착오라도 생길 시엔 반죽음으로 욕설을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바로 해고될지도 모른다.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나서는 그 순간 등 뒤에서 또다시 기성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민아 씨 아직도 연락 안 돼요?”“기 비서님께서 소민아 씨를 출장 보내신 거 아닌가요? 저희도 오랫동안 소민아 씨 보지 못했어요. 전화해도 연결되지 않더라고요.”“그래요. 알겠어요.”사무실 문이 닫힌 뒤, 기성은은 사인펜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대표님과 약속을 잡은 몇몇 다른 회사 대표, 그리고 사무적으로 연결된 임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만 가득했다. 소민아와 나눈 메시지는 며칠 전에 멈춰있었다.기성은은 일을 함에 있어 효율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소민아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그녀가 맡았던 일들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그는 다시 문자를 작성해 그녀에게 보냈다.[두 시간 안에 회사로 와요. 아니면 다시는 성세 그룹에 발 들일 생각하지 말아요.]멀고 먼 곳에서 소민아는 선글라스를 걸고 선텐하며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돌연 도착한 기성은의 문자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그의 연락처를 악마라고 저장해 놓았다.문자 내용을 본 순간 피식 웃으며 욕설을 퍼부었다.“뻔뻔한 인간 같으니라고. 해고하려면 하라지. 내가 무서워할 줄 알
소민아 역시 강지훈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흉악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소민아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녀들 앞을 막아 나섰다.“경... 경고하는데 또 우리 언니 때릴 생각하지 말아요.”엄마의 등 뒤에 서 있던 소현아가 저도 모르게 소민아를 칭찬했다. 목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민아는 정말 대단해.”강지훈은 소현아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지훈은 날카롭게 이마를 찌푸리며 소현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현아야, 이쪽으로 와!”소현아는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다가 급기야 울음까지 터뜨렸다.“난 가기 싫어요. 당신은 나쁜 사람이잖아요. 엄마한테도 말했어요. 당신은 많고 많은 여자들과 아이를 낳았다고요. 엄마가 다시는 당신과 놀지 말래요. 소월이도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어요. 다시는 당신 보고 싶지 않아요!”저번 강지훈에게 맞은 뒤 이마에 커다란 혹까지 튀어나왔다.그는 노원우처럼 나쁜 사람이다.말을 마친 뒤, 소현아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인형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강지훈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겨우 그녀를 찾아냈다. 서울에서부터 강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건 결코 그런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명세진이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선생님, 제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요. 제발 제 딸을 놔주세요. 머리에 문제가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제발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현아만 아니면 원하시는 것 모두 드리겠습니다.”소민아가 얼른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하지만 강지훈은 강압적으로 소리쳤다.“난 소현아를 데려가고 싶어. 아무도 못 막아.”“오늘 이 집안을 불태워버리는 한이 있더라고 소현아는 데려가야겠어.”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소장님.”한 무리의 남자들이 다짜고짜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 소민아가 야구방망이를 쳐들었다.“내가 있는 한 절대 언니 데려갈 수 없어요!”하지만 1초도 채 되지 않아 소민아는 바
강지훈의 부하들이 올라가고 몇 초 뒤, 소현아의 비명소리가 무언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연이어 울려 퍼졌다.소현아가 조심하지 않아 방 안의 꽃병을 깨뜨린 것이다. 안에 꽂혀 있던 꽃들은 전에 장소월이 병문안을 왔을 때 선물해준 것이었다.지금까지 마르지 않도록 정성껏 가꿔왔던 꽃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소현아는 처참히 꺾여버린 장미꽃을 손에 들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경호원은 그 틈을 타 소현아를 안고 아래로 내려갔다.소현아는 그 시간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살려주세요! 민아야... 얼른 경찰 아저씨 불러...”“나 당신들 신고할 거예요. 흑흑흑... 내 꽃을 짓밟았어.”소민아는 어이가 없었다.“언니! 지금 상황에 꽃이 대수야?”소현아는 아래층에 내려가 강지훈을 본 순간 꽃이 망가졌던 일은 완전히 잊어버렸다.“나쁜 놈... 민아야... 나 살려줘! 나 저 나쁜 놈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명세진은 자신의 딸이 잡혀가는 걸 막으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으나 이내 경호원에게 밀쳐져 쓰러져버렸다.소현아가 울부짖었다.“엄마... 우리 엄마 밀지 말아요... 흑흑흑...”소현아가 강제로 강지훈의 앞에 놓였다. 그녀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엄마한테 가려고 발을 내디뎠다.“어디 가려고!”강지훈이 차갑게 소리치며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소현아는 몸을 돌려 나쁜 놈을 확 밀치고는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다.“이 나쁜 놈, 우리 엄마 밀면 안 돼요! 난 당신이 미치도록 싫다고요! 어서 내 집에서 나가요. 얼굴도 보기 싫어요!”강지훈은 그녀에게 밀렸음에도 전혀 아프지도, 심지어 가렵지도 않았다. 그저 육중한 산처럼 자리에서 미동도 없었다.다만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 얼굴을 보니 정말 공포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당신이에요. 아니... 소월이 오빠와 똑같이 싫어요.”소현아는 울먹거리며 명세진에게 달
강지훈의 차가운 눈동자가 소민아에게로 향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치료 가능해?”소민아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어렸을 때 생겼던 병의 뿌리가 아직 남아있는 데다 저번 강지훈 씨로부터 충격까지 받아 심리적인 병까지 가중되었다고 해요. 예전처럼 회복하려면 천천히 머리부터 치료해야 해요. 하지만 십 년이 넘게 약을 먹었어도 치료하지 못했어요. 더욱이 강도 높은 충격까지 받았으니 언제 괜찮아질지 아무도 장담 못 해요.”“치료하지 못하는 병은 없어. 하루 줄 테니까 물건 챙겨서 내일 서울로 와. 아니면 모든 후과 책임져야 할 거야.”강지훈의 시선이 소현아를 스쳐 지나갔다.그가 문을 나선 뒤에야 소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차에 돌아간 뒤 강지훈은 옷소매를 거두고 팔을 살펴보았다. 옷엔 침 자국이 흥건했고 팔엔 깊은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부관이 백미러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장님의 팔에선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소장님이 이렇게까지 여자를 참아주는 건 처음 봅니다.”다른 여자였다면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강지훈은 옷을 내려 상처를 감추고는 말했다.“운전에나 신경 써.”소씨 가문 본가에 돌아오면 평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서울만 벗어난다고 하여 되는 게 아니었다. 이제 와 또다시 돌아가야 한다니.소민아는 얼른 의약 상자를 열어 명세진에게 연고를 발라주었다.소현아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작은 입술로 중얼거렸다.“엄마, 제가 호 불어줄게요. 그럼 안 아플 거예요.”명세진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현아야, 엄마는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가엾은 그녀의 딸은 어렸을 때부터 얌전하고 착해 다른 아이를 건드리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대체 그들 소씨 가문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에게 찍혔단 말인가.서울을 떠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강지훈이 이곳까지 찾아왔다.“현아야, 엄마한테 물 떠다 줄래?
소민아가 물었다.“전부 저축이라고요? 이걸 다 저희한테 주시면 두 분은 어떻게 하시려고요?”명세진이 말했다.“나와 네 삼촌은 일이 이렇게까지 되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어. 너와 현아가 떠나 이 돈으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우리에겐 더 바라는 것 없어.”소민아는 가슴이 저릿해졌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숙모...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저희 소월 언니한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요? 소월 언니가 강지훈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성세 그룹 대표님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분은 소월 언니의 오빠니까 틀림없이 저희들을 도와줄 거예요.”“민아야... 소월 아가씨는 이미 우리한테 많이 도와줘서. 이번엔 상황이 달라. 더는 아가씨에게 기대선 안 돼,”소현아가 물을 들고 둔탁하게 걸어왔다.“엄마, 물 마시세요. 엄마... 조금 전 실수로 컵을 깨뜨렸어요. 하지만 현아가 이미 깨끗이 청소했어요.”명세진은 걱정이 가득 실린 얼굴로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우리 현아 잘했네.”“민아야, 얼른 가서 짐 챙겨. 오늘 밤 비행기표 끊어서 출발해야지.”소민아가 몸을 일으켰다.“네. 지금 갈게요.”소현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명세진이 말했다.“현아야, 너 친구 만나러 해외에 나가고 싶다고 했잖아? 민아가 그 친구 찾았대. 곧 만날 수 있을 거야.”소현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반짝거렸다.“정말요?”명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환하게 웃는 그녀의 두 볼에 보조개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그럼 바로 가서 준비할게요. 맛있는 것도 챙겨가야겠어요.”명세진은 신나게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현아의 뒷모습을 아프게 바라보았다.“현아야...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명세진은 주방에 들어가 직접 저녁상을 차렸다.소현아는 털이 보송보송한 하얀색 모자를 쓰고 천진난만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명세진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껴안았다.“우리 현아는 어디에 가든 행복하게 잘 살